2010년 이름없는공연 예기 작업노트
 
1995년부터 각 작품별로 써오던 작업노트를
2010년부터 하나로 통합하여 작성하기로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그 안에 다가가고 사색하고 준비하여 행동하며 표현해가는 얘기들이
각기 다른 소재와 주제를 지니고 다양하게 작업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지만
이제 삶이라는 형태의 존재함과
그 안에 의미지어 보던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 할 시점에서
모든 얘기들은 하나의 시선으로 통합되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연관되고 이어져서
어느 것 하나 홀로 이뤄지지 않은 얘기의 씨줄과 날줄을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작업에 등장했던 인물의 얘기가
다른 작업에서 다시 만나서 그 소재가 되고
전혀 낯선 곳에 있었을 얘기의 단서가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문제의 핵심에
있습니다.
 
그간 움직임에 기반이 되었던 통장의 잔고도
이제 전처럼 다시 비었습니다.
 
하루의 생존비를 얼마로 책정하고 계산해볼 때
우리의 삶의 시간도 한두 달 정도를 고비로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움직임의 여유를 갖고 
2010년 1월의 겨울은
이 겨울의 시작부터 이어온 4대강순례작업을 지속하려 합니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시간이 허락한다면
4월의 제주를 다시 예약하고
그 넋들에게 드릴 세상에서의 얘기 한 움큼을 심어가는 작업을
준비하려 합니다.
 
그동안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그러다 못내 미워했던 사람들에 대한 허망함도 이젠
거두고 정리해야 할 시점입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
연명이 가능하다면
그 시간은 지나온 작업을 영상으로 정리하여
온라인공간 한구석에 남기는 작업으로
2010년을 작업할 예정입니다. 
 
2009년 12월 26일 토요일오후 3: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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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공연자상 그 성격을 정리하며 올해 수상자를 최종 결정했습니다..
 
4년전 처음 이름없는공연자상을 만들 때는
우선 세가지 조건을 가진 작업을 지향했습니다.
우선 절실한 가슴으로 스스로 다가와서 열심히 준비하고
함께해 준 사람.
둘째 그 과정과 함께 결과물인 작품의 완성도와 높고
진실성과 감동 마져 담아 내준 작업자.
그리고 셋째는  그 작업을 마친 후에도 그의 삶의 부분에서
그 작업의 화두를 놓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분.
즉 그저 공연만을 위한 공연이나 연기로서 열심히 우수한 작업을 해냈다면
그것이 바로 훌륭한 거짓말이 되어버린다는 생각에
세번째 조건을 가장 중시하면서
한해동안 한번이상 이름없는공연자가 되기 위해 다가와서
작업해준 사람을 대상으로 이름없는공연자상을 정하려 했습니다.
 
헌데 첫해엔 그게 가능했고
그 대상자도 여럿있어서
그 심사평에서 보듯이
한사람한사람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제외하면서
마지막 한 사람을 고르는 작업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해부터 이 세가지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려워 졌습니다.
 
아름다운주제를 실존 안에서 찾아내고 다가가서
그것을 하나의 자기표현형태로 만들어서
이른바 공연의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실천가들에겐 공연부분이 힘들고
공연자들에게는 실천부분이 낯설어서
자연히 이 연계를 구체화시켜 내고 실천하며 존재하려는    
이름없는작업은
누구에게나 재미없는 작업이 되어가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다가와서 함께 한다는 것이
꼭 경제적 보상이 없어서가 아니더라도(대부분은 실제로 최소한의 경제적 댓가가 없어서
다가오지 않습니다만)
그 의미와 거치보다는 개인적 이득이나 관심 혹은 인간적인 정에 끌려서
같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산사람들의 인간현실에서
이름없는 공연의 냉정한 제안은
점차 흥미꺼리에서 벗어나거나
불편한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아예 스스로  같이하자고 다가온 사람이 참가한 공연마저
없엇습니다.
이름없는공연자상은 이제 몇해안가서 단한편의 후보작도 없는
시상식이 될 조건을 갖춰가고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온것에 가장큰 원인은
이름없는 공연이 점차
사람들이 관심갖고 같이해보고자하는흥미와는거리가 먼 작업과 그 작업방식을 추구하므로서
인간의 관심과 거리를 멀리하고있다는 점이고      
그 작업형태에서도
그저 참가하고싶다고 말하고 당일날 와서
자기생각한것을 표현하는 정도로 작업하고 스스로
좋은일햇다고 감동받던 형태를 버리고
정말 절실하게 가슴아파하고 진실한 사람들이 다가와 함꼐하거나
그렇게 자신을버리고찾아와
자신보다는세상 모르는 이들의 아픔을 향해
자신이 해야할 바를찾아가는 최소한의 작업의 과정은 가져야한다고
제안하므로서
이러한것을 원치않는 사람들에게
동행의 의미를 쥐어주지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얼마남지않은시간동안 더 극으로 강화되어갈 것이고
타협보다는 더 강하게 지켜내다 마칠 마지막작업형태를 유지할것이므로
그 절실함에 동지를 얻거나 부분적으로라도 하몎할 사람을
산사람들속에서 찾기는어려울것같습니다.
 
옛날처럼 멀리서 바라보다가 동행을 위해 찾아오는이가 있거나
세상을 살아감에서 자기를 버리고
세상을 위해 돈없이도 명예없이도 할 일을 찾아서
다가와 같이 공감하며 작업할 사람도 없을것이고
 
아무조건없이 일년에 한번이라도 미리  자신의 시간을 배당해서
다가와 처절히 노력할 이를 만나고 
동조자를 얻어 같이한다는 일은
이제 인간세상에서는  불가능해질것 같아 보입니다.  
 
따라서 이름없는공연자상이 그 세가지조건을 갖춘사람을 찾아
지난1년의 작업을 정리하면서
그중 가장 아름다왔던 이에게
감사의 의미로 상을 정해드리는작업도
후보작조차없는 드릴분없는 상이 될 날이
바로 올것입니다.
 
하지만 이름없는공연은 어던 작업이던 모든것을 구상순간부터 준비과정모두를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그 참가자를 최종순간까지 기다리다
아무도 오지않으면 홀로가는 작업방식은
마지막작업날가지 이어질 방식이고
그러므로 이름없는공연자상역시
폐지시키기보단
희망의 씨앗으로 남겨두고
오지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는 마음마져 닫아버린 절망에만은 이르지말아
없어도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없음이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이름없는공연자상은
그 처음 만들때의 세가지 조건을 버리고
그래도 살아서 어느 시간  다가와서 스치듯 만나
자신의 욕심이나 의도와는 다르게라도
세상에 없는 아름다움을
그래도 보여준 사람이라도 있을때까지
그렇게 만난 한사람을 찾아
추억과 생존의  기록처럼 쥐어드리는 감사의 선물로
존재시키려합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원년이 되어버린
올해 2009년의 이름없는공연자상은
그러한 방식으로 한분을 선정하엿습니다.
 
시상식날 그분을 만나 회포라도 나누고싶지만
끝내 오신다는 얘기가 없어서
그분없이 영정사진앞에 상패를 놓듯이
2009년 제4회 이름없는공연자상시상식은
지난해 나창진님때와 같이( 그저 공연만을위해 오셨던 나창진님은 공연후 관심을 버린 까닭에 
자신이 3회 이름없는공연자상의 후보와 수상자라는 것을 지난해 수상작 선정과 시상과정에서 모르셨고
아직도 모르시는것 같습니다)
12월27일 서울 어디선가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진행하겠습니다..     
    
09년 12월 26일 토요일오후 12: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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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일 하루도 빠짐없이 그 날짜마다의 하나하나주제를 잡아서
평화 그 그리움으로란 이름으로 연작공연을 해온 것도 이제 154일을 지냈습니다.
자이툰 부대의 파병을 반대하며 시작했던 평화에 대한 거리행동이
점차 시선을 키워가고 관심의 폭을 넓혀 배워가면서
평화의 이름으로 담아내야할 많은 얘기들을 홀로 혹은 더불어 다른 사람들 곁에서
같이 작업해왔는데
2009년12월27일은 그 255일째 작업으로
서글픈 죽음 그 342일째를 지내는 용산 참사 현장으로 다시 가려합니다. .
 
간혹 그곳에서 열리는 문화재나 추모행사에 공연을 의뢰 받아가기도하고
홀로 몇 차례 가서 남 모르게 공연도 하고 돌아왔던 곳인데
이 날은 매일열리는 1인시위음악회와 미사에 앞서서 낮부터 하루종일 거리음악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하여 이 삭막하고 무심한도시에서 그들이 노래하는 그 4구역을 찾아가면서
그리고 다시 돌아보면서 멈추고 걷고 하며
인간이 못내 놓치고 사는 평화에 대한 그리움 다시 바라보려 합니다.
 
같이 갈 사람이 있었음해서 일부러 요일도 일요일로 정하고
공지도 올렸는데 언제나 그렇듯 아무도 연락이 없어서 홀로 준비합니다.
 
용산 현장에서 공연한 영상을 한해 동안
이 곳 저 곳에서 상영하고 공연하면서 사람들 앞에 보여주었으나
관심은 그저 관심일 뿐 늘 그렇게 무관이 무행동을 낳고
그저 신문이나 방송으로 듣고 보며 모든 것을 걱정하는 정도가 일반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민족극한마당에서 그리고 촛불 송년회에서
다시 2009년 세가지 죽음의 기억이란 제목으로 영상을 만들어서 사람들 앞에 상영했습니다.
망루 속 당신이란 추모의 노래를 들으며 용산으로 향하겠습니다.
여기는 용산참사역입니다 하는
가슴아린 이들에게만 보이는 역안내판을 따라서
그 평범한 사람들이 소박한 꿈을 키우며 생활하던 곳.
그 못다 한 그들의 꿈이 340여일 지내며 우리곁에 일러주는 참세상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평화 그 그리움으로.
 
09년 12월 26일 토요일오후 04:05:13
 
2009년 세가지 죽음의기억(2009촛불송년회에서의 상영본)
2009년12월20일부터 방송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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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이름없는공연자상은 [바다가보이는 작은 마을 이야기]의 오수지 님께
 
네 번째 맞이하는 이름없는공연자상
한해 동안 이름없는공연자가 되어서 함께 작업해준 분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이름없는공연이 지향하는 의미에 근접했던 분 한 분에게 드리는 감사한 마음의 선물로
정해 드려보는 상.
올해는 스스로 다가와서 같이 이름없는 공연자가 되어 세상에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생명을 위한
사랑의 작업을 해준 사람도 점차 줄어서 몇 안되는 분들이 그 후보에 포함되었고 몇 개의 워크숍공연이 있어서
그 안에 같이한 분들 역시 후보가 되어 그 안에서 가장 근접한 한 분을 찾는 작업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힘든 부분이 있었다면 이제는 더 이상 4년전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무어라도 감사하고 싶어서 이름없는공연자상 이란 것을
제정하고 즐거이 그 대상자 한분을 선택하던 그 작업을 할수조차 없게되었다는 것.
결국 이름없는 공연자상은 그것을 처음 만들고 지속하려던 수상자의 조건을 갖추어준 사람을 1년에 단 한 분도 찾을 수 없어서
존속여부를 고민하다가 상의 의미를 바꾸어서 그래도 한해 동안 이름없는 공연작업중 한번이라도 다가와서 함께 해 준 사람들 중
그래도 그중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임해주고 떠나간 분을 기억하고 싶어서 상을 지속합니다.
그리고 올해 그 4회의 이름없는공연자상 수상자로
어느 정해진 워크숍에서 자기의지도 없이 주어진 프로그램에 의해 만났지만
그 만남 동안 가장 아름다운 마음으로 자신보다는 세상을 향해 공존을 추구하는 마음을 키우며
진심어린 마음으로 아름다운 인물을 만들고 표현해주었던 유일한 분이 있어주어서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 이야기]에서 바다가 보이는 농장 주인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농사짓고 수확하여
어느 가을 추수하고 가꾼 농산물들을 갖고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음악회를 열어주는 농부의 모습을 그려준
오수지님을 추억하며 올해의 이름없는공연자상의 수상자로 정하였습니다.
 
비록 그 자신이 스스로 택한 워크숍도 아니고 자신이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부모와 선생님들이 만들어준 프로그램 안에서
이름없는공연자가 되어서 몇번 안되는 워크숍 시간동안 만나고 헤어지며
세상을 살아갈 아름다운 꿈을 키워보며 또 그리하여 아름다운 공존의 세상과 마을을 꿈꾸며 즐거워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 모두를 관심갖고 돌보며 사랑하는 모습이 2009년 이름없는공연에 다가와 작업해준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의미있고 고왔던 인물의 생성과 표현 그리고 감사한 실존의 모습으로 기억되었습니다.
 
12월27일 이름없는공연의 한해를 돌이켜보며 함께했던 사람들과 같이 만나서 올해의 작업도 추억하고
그 작업을 통해 기억하고 실천한 자신의 모습도 돌아보면서 다음해자신의 작업도 생각해보는 모임으로 이름없는공연자상 모임을 준비하고
그 후보를 선정하고 최종후보까지 온라인으로 선정해 나가면서 함께 해주었던 그 당사자 분 들이나 그들을 축하해줄 분들과의 만남
기다렸으나 결국 12월27일 이름업는공연자상 모임은 1년을같이한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도 오지 않은 채
쓸쓸한 가운데서 자신이 수상자인지도 까맣게 모르고 있을 사람을
다가와 함께 해주었던 그 순간만을 잊혀질 추억으로 기억하며 4번째 이름없는공연자상의 수상자로 선정해드리고
그 모임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2010년은 다섯번째 이름없는 공연자상을 수상할 또 한 분의 아니 여러분의 아름다운 사람들의 동행을 기다리며
이름없는공연을 이어갑니다.
 
09년 12월 28일 월요일오후 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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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그 그리움으로 -342일째날의 용산 참사 현장에서.
366일 모든 날 하루라도 잊음 없이 평화 그리기 그 255일째날
낯설어하기만 하는 세상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알리며 다녔지만 오랫동안 못가본 용산참사역 그 현장에
다시 한편의 공연을 준비해서 갑니다.
며칠 전 더 이상 테잎 구입이 어렵고 유랑생활의 가방 속에 테잎을 보관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큰 맘먹고 바꾼 내장 메모리 기록형 핸디캠 구입으로
사용하지 않게 된 6미리 캠코더를 누군가 필요한 분에게 드리고 싶다고 까페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바로 그것을 정말 필요로 하시는 분이 응답해주셔서
지난2년간 이름없는공연과 onCorea 뉴스등을 촬영하고 편집하며 몸처럼 갖고 다니던 그 핸디캠을 고이 닦아서 갖고 나가는 길..
용산 현장에서 살면서 매일저녁 미사 전 1인시위음악회를 지속해오시는 조약골님이
촛불 미디어 방송국 분들에게 전해주면 좋겠다하셔서 한해를 지내며 그 현장에서 열리는 불법음악회의 장소에서
전해드리려 갖고 가는 길이 평화 그 그리움으로 255일째 날의 그리움을 더 의미지어주십니다.
 
지하철 역 역사입구엔 우리 눈에만 보이는 역사팻말  
이곳은 용산참사역입니다.
그 서글픈 이정표가 마치 내리는 싸락눈 속에서 중앙차선 버스정류장 표시판에도 눈물처럼 그대로 아른거리고.
 
아름다운 분 들이 이 서글픈 거리를 지키시며 사랑과 미덕을 배우며
이기적이거나 망각하며 살지 않기 위해 인간의 도리를 지켜내기 위해 이곳을 다시 찾고  또 머무르는 시간들.
의미도 찾지 못할 차가운 궤변 속에서 대화조차없이 지워가는 마을골목길
아름다운 음악회 위에 하얗게 내려 적셔주는 함박눈.
그 마을길 다시 돌아보다가 눈 위에 적어보고 또 지워봅니다
 
우리 그대로 지울 수 없이 당신들의 아픔 곁에서 눈물지며살아온 340일 그리고 341일 그리고 오늘 342일..
 
09년 12월 28일 월요일오후 8:01:11
1227평화 그 그리움으로255(342일째 용산참사현장)공연사진집 새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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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이름없는공연은
그 동행을 위한 문을 열고
스스로 시간을 내서 다가와 함께
지금 이세상에 있어야 할 관심과 사랑을 소재로
이름없이 작업할 분을 기다리며 작업을 이어갑니다.
 
2010년 1월에 하루라도 자신의 시간을 내어서
다가와 함께 작업해보실 분은
1월3일까지 이곳에 가입하셔서 참가의사를 표시해주시길 바랍니다.
 
가입신청시 가입질문의 답은 시천에서 입니다.
가입하신 후 이 게시판에
1월몇일부터 며칠까지 혹은 며칠과 몇일 시간을 내서
서울 혹은 자신이 행동하실 수 있는 지역에서
어떤 주제나 소재의 작업을 같이 만들어 해보고 싶다고 글 올려주시면
한 분 한 분 그 마음을 찾아서
이름없는공연이 지향하는 작업과 같이 워크숍이나
순례를 통한 작업 마련해 보겠습니다.
 
1995년부터 한번이라도 예기플라타너스나 이름없는공연에 함께해 주었던 분들
기억하고 상기하신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행동으로 옮겨보신다면
2010년 이곳은 
두 사람 이상의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며 함께 작업하여
홀로가 아닌 두 사람 이상의 걸음으로 작업노트도 적고
많은 이 들이 놓치고  관심 주지 않아 서글픈 얘기와 그 현장을 찾아
실천하며 순례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다시 피어나는 해될 수 있을 겁니다.   
 
2009년 12월 30일 수요일오후 2: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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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된 4대강순례작업,1박2일 주말 낙동강순례팀과 동행을 준비하며
 
 진행하던 4대강순례작업이 잠시 갖고 있는 자금의 고갈로 중단되었습니다.
영산강 순례 준비를 보루하고
낙동강순례1박2일의 프로그램에 동참하여
경비도 줄이고
다른 분들의 순례따라 함께 하는 방법으로
1월둘째주나 셋째주의 낙동강순례를 준비합니다.
예기 예플러 두 사람의 참가회비와
그곳 프로그램 출발지 까지의 왕복 차비까지 15만원정도가
확보되면 출발이 가능합니다.
 
저희의 희망순례일정은 1월9-10일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자금을 못 마련하면
1월16-17일.
그리고 그것조차 불가능하면
일단 이번 1월의 그분들의 프로그램에 동행은 포기하고
서울지역에서 전철과 시내버스등으로 연계되어 이동할 수 있는 
남한강 경인운하 지역등을 순례하는 것으로
1월의 순례를 이어가려합니다.
 
혹 1월9-10일 이나 16-17일 낙동강순례에 함께 하면서
저희랑 순례 작업 같이하실 마음과 실천 가능하신 분은
1월낙동강순례에 참가신청해주시고
연습 미팅 통해서 
우리가 그 강에 다가가 해야 할 일을 찾아 준비해서
한분이라도 더 같이 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12월31일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2009년 12월 30일 수요일오후 3: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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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대강순례연작작업에 함께하기로 신청해주신 이정훈님께
 
우선 연습미팅이나 순례작업가능한 일정을 알려주시고
낙동강순례는 1월몇째주 주말에 가는 것이 가능한지도 게시글로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름없는공연의 4대강순례 작업과 시각을 같이할 수 있는지 혹은
또다른 시각으로 이 소재를 보시는지도 궁금하므로
일단 정부의 4대강살리기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현재에
작가로서의 생각도 먼저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덧글아닌 예기와의 만남 게시판에 게시글로  작업노트 형태로
적어주시길 바라며
희망미팅일정도 잡아주시면 
만남 통해서 구체적인 작업일정과 
작업동행 시작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이름없는 공연의 4대강순례작업은
일반적인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이는 단순한 찬성이나 반대
혹은 예산문제 인간에게 이로움과 해로움 등의 시각을 벗어나서
인간의 생명과 자연에 대한 오만함에 대한
사죄와 미안한 가슴으로 다가가 용서비는 바라봄의 개념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2009년 12월 31일 목요일오전 11:3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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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님은 진정한 작업자로서의 동행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신 듯합니다.
 
이정훈님 참가하신다는 의사표시와 회원가입보고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렸으나 질문드린 작업에 대한 글과 연습 일정 등에 대한 계획은 적어주시지 않으셔서
일단 이번 작업에 동행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4대강과의 만남을 위한 추스림을 갖고 절실한 가슴으로
그들에게 드리고 나눌 얘기를 만들어서 같이 떠날  사람을 동행이라고
의미하여 함께 할 분을 찾고 있는데 이정훈님은 그것보다는 그저 강에 한번 찾아가보는 것 정도를
작업동행이라 생각하시고 있는 것 같아서
작업참가자로 함께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연말 국회에선 예산 마져 처리되어버림으로서 이 겨울 이 나라의 아름답던 강길은 처참한 살육에 놓일 겁니다.
더 절실한 가슴으로 가슴 아려하면서 그 인간의 이 오만을 대신이라도 용서빌며 사과할 예인의 작업이 필요한데
사실 정부의 이 4대강사업의 결과물을 기다리고
또 그 것이 포장을 마치고 친환경이란 모습으로 위장하면 가장 먼저 다가가서
개발 이익자 들의 초대에 응해 환영공연을 하면서
이익을 남길 사람들 중에는 공연예술인들도 있습니다.
대운하를 차치하더라도 자전거도로와 강변체육시설 그리고 문화공연장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강과 산야는 지금 황토로 파헤쳐지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걸 인위의 자연으로 잔디깔고 꺽어와 심고해서 마치 푸름으로 위장하겠지만
현재 현장에서 자행되고 있는 것은
심고 가꾸는 것이 아니라 수백 년된 숲의 나무들을 통채로 잘라 없애고
강변의 슾지와 늪지 강변의 푸름과 아름답던 동산과 언덕을 포크레인으로
밀어버리는 모습뿐입니다.
절실한 가슴으로 이 시기 이 인간의 오만과 죄악에 가슴을 애이는 마음으로 다가갈 사람이
이 나라에 한 사람이라도 있길 바라며
그 동행자를 찾고 있는데 그것을 잘못 이해하고 작업의 동행이라고 여기신 것 같아 아쉽습니다.
1월의 4대강순례작업 그 동행자를 기다리는 작업은 4일까지 이곳에서 마감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알게 되었던 공연예술인이나 표현자들 가운데 한분이라도
이 절실한 아픔에 애태우는 가슴으로 같이 가자고 찾아올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아무도 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작업을 하면서 다시 같이 가자고 제안해보는 것은
그래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하기때문입니다.
 
2010년 1월 1일 금요일오후 12: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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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일
지난 12월27일 용산 참사 현장에 다시 다가가서 그려본 평화 그리기 255일째날 공연
그 공연 안에 한 장면으로 우린 하얗게 내려 쌓이는 용산4구역 길목길목에서
그 흐느껴 흘러 쌓여지는 눈 위에 341,342...그렇게 숫자를 적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냥 숫자만 늘어가는 안타까움에 342,344,그리고 345를 마지막으로 숫자적기를 멈추며
공연을 마쳣습니다.
그리고 우연처럼 그 사흘 후 아침 용산의 그 숫자는 345일짜를마지막으로
장례나마 치를 수 있는 최소한의 타협이지만 유족들의 눈물을 조금은 달래줄 수 있는 소식을 전하며
멈추었습니다.
 
대추리에서 무건리에서 지금도 우린 여기저기서 하루하루 아프고 절실한 숫자를 적으며
세상의 이기심과 차별 앞에 눈물짓고 있습니다.
 
2010년 남은 111일의 평화 그리기를 지속해 나가려 합니다.
가능하다면 하루하루 소중하게 더 큰 주제와 만남을 통한 인간의 평화의 의미를 찾아가면서
끝내 이세상에선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실체를 가슴에 안아보지 못할 그 아픈 단어를 그리며.
2010년 1월 1일 금요일오후 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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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순례연작의 1월작업희망참가자와의 첫 작업 미팅을 마치고
 
지난가을부터 홀로 진행해온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라는 부제의 4대강순례연작공연작업을
2010년1월에 들어서며 또 한 번 혹시라도 알지 못해서 늦게라도 말할 사람을 만날지 몰라서
작업동행을 희망하는- 같이 작업할 사람을 찾는 공지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에 답해서 찾아온 한 사람이 있어서
1월5일 서울에서 작업을 위한 첫 미팅을 가 봄윱求?
 
그간 시천교에서 부터 낙동강하구 해명지구
여주남한강과 팔당 두물 머리 그리고 부여공주를 따라 흐르는 금강까지
늘 같이 가자고 공지를 올렸지만 한번도 누구랑 같이 가지 못했던 순례길.
홀로 찾아 다가가서 바라보고 말없이 얘기나눈 그 얘기들을
중간에 합류하면서 최소한 이해할 수 있을 만큼까지 오리엔테이션 해주고
그의 생각도 듣습니다.
 
몇 번을 같이하며 얼마나 지속적으로 이 화두를 절실한 가슴으로 안고 살아가며
행동과 일치시킨 삶으로
동행해줄지 알 수 없지만
뭍예술가나 공연자들처럼
제 감정을 추스리고 보여주기 위한 관객대상의 연기를 위한 퍼포먼스가 되지 않길 우선 우려합니다.
그렇게 한번 그저 감정격하게 아파하고 일회성으로 시늉하여 제 스스로 감동하고 돌아서면
또다른 얘깃거리를 찾아 떠나는 공연예술가나 표현예술가가 되지 않게.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고 그저 누구나 알 듯한 만큼의 환경론과 사색으로 자기지식만큼의 사상으로
판단된 작업이 되는 죄악을 범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생명평화 환경을 생각하는 운동가의 시각으로
정부의 개발정책에 반대하는 차원을 넘어서
조금은 더 깊고 넓고 다른 시각으로 인간이 행하고
자연의 스스로움을 해체해가는 4대강공사를 대하며
이같은 참담하고 미안한 마음을 안고 다가가야 할 의무감과 존재의 방식을 찾아
행동을 구체화시켜 내는 작업..
 
그리고 그래서 똑같지는 않더라도
또 하나 인간아닌 인간의 시선으로 인간세상의 논리 속에서 외톨이가 되어
강물과 들길을 찾아다가가 행동하는 인물을 만들고
그처럼 살아가길 약속하는 일.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갈 수 있는 만큼 한번이라도 더
누가 부르거나 찾지 않더라도
순례자의 순수하고 고요한마음으로
평화를 찾아서 자정하고 자각하면서 공연이란 이름으로
관객이 있기보단 없기를 바라며
인간아닌 그의 시선과 마음과 손길 그리며
가장 낮은 존재로서의 인간이 되어
공부처럼 걸어볼 ,그리고 멈춰 서서 그리울 평화그림이 되기.
 
몇 차례 같이 하면 이 연작 작업 길에
자신의 시간을  어느 정도 내서 동행할지 알 수 없어서
일단 작업의 동행은 부분적 병합으로
자신이 행동하고 실천하고 싶은 인물의 캐릭터를 구상하고
그것을 이름없는 공연의 4대강순례에 부분부분에
정성만큼 존재하는
인간적 생존방식과  이기심을 버린
그 또한 하나의 자연의 모습으로 이 작업 안에 동행하길 구상합니다.
 
2010년 1월 6일 수요일오후 11: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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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9일 서울에서의 평화그리기  함께하실 분 ,영화관과 갤러리에서 우연처럼 만나뵙길..
 
1월9일 토요일은 오랫만에 서울에 나갑니다.
2010년을 이을 작업들을 준비하며 잠시 다가가 볼 두개의 시선이 있어서입니다.
시간되시는 분은 우연처럼 만나 스치며 함께했으면좋겠습니다.
 
cgv 압구정점 3:55 위대한침묵 바라보기.
그리고 돌아오는길 충무로 중부경찰서맞은편 갤러리 m
사진전  빛으로쓴 시.
 
2010년 1월 7일 목요일오후 4: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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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지난 14년간의 꿈을 다시 지우는 가장 서글픈 5월연작을 준비합니다..
 
매년 5월 그 날이 오면
빛고을이라 이름지어진 그곳을 죄스러운 마음으로 용기내어 찾아가기 시작한지도
15년째가 됩니다..
21세기 프론티어 남도의 물결 분 들을 온라인으로 만나 그분들의 인도로 용기내어 찾아갈 수 있었던 곳.
그리고 돌아오는 길
그 당시와 다를 것 없이 소외되고 단절된 5월에 안타까워하며
그곳 아닌 곳에서 같은 날 제대를 마련하고 전야제와 추념식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51817이란 제목의 5시간자리 첫공연.
그리곤 해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습 속에서 또다른 의미로 다가와주는 얘기를 찾아서
한해에 한편씩 늘 다른 공연을 만들어 다가가던 곳.
오늘같은 밤이면 ,남행열차 그날 아닌 날에도, 후이넘에서 돌아와  후이넘에서 돌아와 -상무대,
,겨울여행2,잊지 마세요. 헤어진 다음날 ....그리고 지난해 전남도청까지.
처음 갔을 때 5월금남로에서 만날 수 있던 사람들은 이제 보이지 않고
점차 형식화되고 축제화되어가는 정형화된 현실 속에서
버림받아 버린 영혼들을 찾아
그들에게서 배우며 벗되어본 시간들.
 
하지만 마침내 산산이 조각나고 해체되어가는 인간의 생존을 보며
그리고 다시 그 넋들의 마음 마져 이용하여 의미없이 동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광주사태라고 이름 짓고 싶었던 지난해(2009)를 보내고
이젠 그 실망과 낙담 속에서도 남은 진정으로
빛을 잃어 버린 이 도시의 한구석에서라도 이방인이 되어 기억하고 이어가야할 얘기를 찾아
다시 5월의 삶을 준비합니다.
 
다 잃어 버리고 변환되어서 이젠 아무 곳에서도 말 걸기조차 어려워진 그곳에선
또다시 30년이란 이름에 맞춰서 거짓 슬픔에 스스로 감동받을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준비하고
든 추억을 스스로 말살해 버린 금남로에서 도청에서
소외당한 하얀 넋들의 서글픈 회향이 스쳐갈 시간.
 
정말 정말 살아남은 이들의 행복과 삶의 이윤을 버리고
넋들에게 빈손으로 다가가서
그 아름다운 시간의 이유를 보답할 사람들을 찾을 수 없어진 이 세상에서.
그 어느 해보다 아픈 5월연작을 만들어 찾아 가야하는 서글픔으로
혹시라도 같이 떠날 5월의 순례자를 기다리며
그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름없는공연자들이 모여 스스로 준비하여 다가가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는 넋들에게 쥐어드리고 얘기나누고픈 작업 같이하고 돌아올
2010년 5월의 빛고을순례공연, 함께 준비할분은 이곳에 오셔서 가입하고 같이 준비를시작해주십시요.
2월부터 작업시작하겠습니다.
 
예기플라타너스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 작품목록
1997.5.17-18 51817(오늘같은밤이면+남행열차)서울
1997.11그날아닌날에도(서울)
1998.5.16-19 지워진소외(서울)
1999.5.17-18 후이넘에서돌아와2-광주(금남로)
2000.5.18 잊지마세요(금남로,망월동)
2001.5 27-28겨울여행2(망월동,전남도청)
2002.5-10 후이넘의기억-상무대(상무대,망월동) 5.19 상무대(5.18 22주년)
.5.20 망월동 (5.18 22주년)  6.4-6 씨어터제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6.9l 경기도문예회관(수원화성국제연극제)  6.11화성행궁(수원화성국제연극제)
8.19 씨어터제로 (2002실험예술제)  10.19 안면도(2002겨울여행,가을,안면도)
 
2003.5 잊지마세요032(금남로)겨울여행2-유서 잊지마세요033(서울여성프라자)
2004.5.17-27 2004년5월 (광주.전주)
 
2005.5.24존재하는평화를향해(광주상무대,아시안인의마당)
2006.5.18 순애언니
2006.5.27 잊혀질 때까지는
2007.5.25잊혀질 때까지는(518기념문화관,난장인프리)
2007.5.27헤어진다음날 1(옛전남도청앞새벽)
2007.8.11헤어진다음날2(8.11성주성밖숲.청실홍실공연후무대)
2007.9.10-11헤어진다음날3(광주)
 
2008.4.25 평화 그 그리움으로166(5.18기념공원)
2008.4.28 평화 그 그리움으로167(광주 문화의전당)
2008.4.29 평화 그 그리움으로168(광주 우다방)
2008.5.27후이넘의기억2-춘천마임축제,명동,중앙로건널목
2008.12.13-14시린겨울-이름없는공연 밤샘영상회(옛 전남도청3층)12.13-14
 
2009.5.4평화 그그리움으로236(전주한옥마을영화제,차마당)영상공연
2009.5.5-6평화 그 그리움으로237,238(광주 옛 전남도청별관)
2009.6.13눈되지못하고눈되지않고-2009년6월 5월광주에서(옛 전남도청3층)6.13
2009.6.13도청별관01(광주 옛 전남도청)
2009.6.28눈되지못하고눈되지않고07-(광주 옛 전남도청)
2009.6.28-29도청별관02(광주 옛 전남도청)
2009.7.27평화그그리움으로244(광주엣전남도청오월의문걸개그림앞에서)
2009.7.27평화그림004-오월의문?(광주엣전남도청오월의문걸개그림앞에서)
 
2010년 1월 7일 목요일오후 05: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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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이름없는공연 4대강순례 공연 영상회에 초대합니다.
 
지난해부터 시작하여 이 겨울 지내며 이어가고 있는 4대강순례공연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연작공연의 영상을 모은 영상회를 준비합니다.
예기가 기획하고 준비하여 공연하는 공연의 모습을 스스로 기록하여 편집한 이름없는공연의 공연 영상회는
누구던 원하시면 다가가서 그분이 원하는 장소에서 상영회를 가지며
그 또한 하나의 순례의 가슴으로 이어가는데
이번 상영회는 이 연작작업에 동행하기로 한 한 분과 같이 얘기 나누고자 제안되어 이뤄진
그분의 작업공간으로 찾아가 그곳에서 함께 하고픈 사람들과 같이
우리가 조그맣게 시작한 이 겨울 4대강순례작업의 기록을 보면서
지금 이시기 이 나라에서 인간의 오만이 생채기 내며 지워가는 자연과 뭍생명 앞에
인간으로서 해야 할 바를 얘기 나누고 싶어 만남 청하는 영상회입니다.
비록 조그마한 작업실에서 준비되는 영상회지만
많은 분들이 함께 하셨으면 하면서 초기순례의 보고회처럼 영상회를 준비합니다..
 
영상회 일정 및 상영작품목록
2010년 1월14일(목)늦은 7시부터 연속상영
장소 : 문래동 이정훈 스튜디오 (문래역 7번출구방향 직진 횟집 나오면 좌회전 삼형제 두루치기 간판 건물 4층)
 
파람20-그냥 그렇게 흘렀으면 좋겠네(고마리와 글쓰기 갈천 캠프) (06;27)
827평화,그 그리움으로(아라 뱃길 시천) (09;42)
1025평화 그 그리움으로(부산 구포 낙동강 화명 지구) (09;13)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3(남한강, 여주-강천구간)(23;34)
1124평화 그 그리움으로(양수리 두물 머리 생명평화미사) (11;32)
1210-1211평화 그 그리움으로(4대강순례연작-금강편,금남교,공주,부여,부소산) (23;54)
이름 없는 공연자가 되어 이 아픔을 겪고 있는 4대강과 그 강을 따라 살아온 산야와 뭍생명들을 찾아 떠나는
4대강순례는 2010년한햇동안 지속적으로 하나의 화두를 안고 진행되며 그에 동의하며 같이 준비하여 만날
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지금은 같이 가지 못하더라도 시간을 내서 언젠가 며칠간만이라도 함께 하실 분은
언제든 이름 없는 공연 작업자 까페( http://cafe.daum.net/oncorea) 로 연락 주십시오.
 
2010년 1월 8일 금요일오후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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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평화그림,-용산참사 355일장이 치뤄지던날,
충무로 m갤러리 박노해사진전,빛으로 쓴 시-라 광야展을 찾아서
 
지난해 (2009년)7월
평화연작의 또 하나 방식으로
소리없이 평화를 그리는 그림 만들기 연작을 시작했습니다.
 
그저 자연의 소리와 뭍생명들이 살고 지는 소리들만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인간들의 소리도 담아
우리는 스스로 다른 소리를 만들어 넣지 않고
그 안에 그림을 그리며
또 하나의 평화를 그려보는 작업.
 
일상처럼 다가와 함께 할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름 없는 공연팀이란 작업팀 이름을
이름 없는 공연이라고 팀 이란 글자하나를 떼어내면서
경남 함양과 비진도 통영에서
끝내 오지도 못할 평화를 마지막노래처럼 소리없이 .그림 그리며 살다 지고자
새벽 섬마을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영상에 담으며 아무런 음악이나 나레이션도 넣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연음과 묵음만으로 세상에 담겨진 평화의 자락을 찾아가는 그림 그리기 입니다.
 
함양 비진도 통영으로 이어진 3일간의 작업에서의 세 번의 평화그림작업은 이어
광주 옛 전남 도청 앞 5월의문에서 서울광장 김대중 대통령 분향 소에서
국가 보안법 철폐를 향해 연을 날리던 차디찬 겨울 여의도 공원에서 여섯 번의 공연을 이어갔습니다
 
평화그림001-함양(2009.7.14이름없는공연) 평화그림002-비진도(2009.7.16이름없는공연) 평화그림003-통영해저터널(2009.7.17이름없는공연) 평화그림004-오월의 문?(이름없는공연2009.7.27)
평화그림005-서울광장 김대중대통령분향소 평화그림006(2009.12.5서울여의도광장)
.평화그림001-함양2009.7.14
평화그림002-비진도7.16
평화그림003-통영해저터널7.17
평화그림004-5월의문?7.27
평화그림005-서울광장 김대중 대통령 분향소8.22
평화그림006(2009.12.5서울여의도광장)12.5
 
그리고 그 작업마다의 영상엔
그 개별시간이나 장소나 화두에 개별작업없이 똑같은 자막을 넣었습니다.
 
평화연작의 또 하나 방식으로
소리없이 평화를 그리는 그림 만들기  
대사나 음향 모든 것을 없애고 
그저 그림이 되어서
평화를 그리면 그것이 평화그림이 되는
그런 작업입니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장소에 깃든 얘기들을 그림으로 담아서
하나하나 그림 그려가는 시공.
 
그것이 어찌 보면 거리에 서 있는 1인시위자의 시위로 보일수도 있고
상념에 잠긴 바보의 행동이나 정적으로 보일수도 있곘으나
소통의 욕구나 제안보다는
그저 행동하는 하나의 소망으로
그렇게 멈추다보면
세상엔 하나하나 흔적지어지는
의지로운 눈물의 자욱이 남겠지요. 
 
하고
 
그리고 오늘 2010년 1월9일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355일만에 치뤄지는 구슬픈 장례가 있던 날.
다시 눈 내리는 서울거리,압구정뒷골목 한 영화관을 찾아
존재의 의미를 묻는 또한무리 사람들의 위대한 침묵에 귀기우려보고
인적없이 한적한 충무로 한 쪽 갤러리 [빛으로 쓴 시-라 광야전]이란 제목의 사진전을 찾아
그 사진 속에 담긴 또 하나의 그리움,
인간이 끝내 이루지 못하는 평화에 대한 일곱 번째 그림.평화그림을 그려봅니다.
늘 그러듯이
상념에 잠긴 바보의 행동이나 정적으로 보일수도 있겠으나
소통의 욕구나 제안보다는
그저 행동하는 하나의 소망으로
그렇게 멈추다보면
세상엔 하나하나 흔적지어지는
의지로운 눈물의 자욱이 남겠지 하면서요..
 
2010년 1월 10일 일요일오전 1:16:35
http://yegie.com/peacepic007/page_01.htm
 
...................
평화그림007(용산참사 355일장이 치뤄지던날,충무로 m갤러리 박노해사진전,빛으로 쓴 시-라 광야전을 찾아서
이름없는공연 공연영상집
2010년1월10일부터 방송중 
2010년 1월 10일 일요일오후 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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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rivertrail/NX41/2
님들이 붙여준 여강길 이정표따라 순례공연 진행했습니다.
여강길 정기걷기 공지가 다시 이어지는날 다가가 함께 하겠습니다.
 
2010년 1월 12일 화요일오후 3:02:49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3-4대강순레연작공연-남한강 여주-강천편 공연동영상|
 
http://yegie.com/4river03/page_01.htm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여강편1 공연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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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20편의 연작을 마친 이름없는공연 파람-피안의 길목에서 (1).
 
그 어느 작업도 공들이지 않은 작업이 없었겠지만
처음 시작부터 20부작을 목표로 해서 하나의 얘기를 완성해보고자 시작했던 파람-피안의 길목에서
4대강순례연작을 시작하던 첫 작업이 파람20으로 마무리되면서 자연스럽게 파람의 얘기는 마쳐졌습니다.
4대강순례영상회를 마련하고 그것을 몇몇 관객들과 같이 영상회를 통해 바라보면서
그 첫 영상 파람 20을 봅니다.
2003년1월 익산중앙로에서 열리던 어느 촛불집회에서
파람은 시작되었습니다.
 
후이넘 연작 초기 언젠가 다가가 만들어보고 싶었던 아크로 폴리스 계단에서란 미완의 작업구상이
그들이 떠나온 하늘에 대하여 와 포도밭을 지나는 국도 곁에서 를 중간점으로 해서
8년정도의 생각끝에 20부정도의 연작으로 작업하면서
다가오는사람들과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의 혹은 자신의 마음보다 조금더 나은 인간의 생존방식을 찾아가며
세상에 공기전환을 햔한 그리움으로 제시처럼 표현해보고자하면서.
 
209년8월 고마리와 글쓰기 아이들과 같이한 갈천 캠프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해보길 권했던
파람20-그냥 그렇게 흘렀으면 좋겠네 까지
20회동안 같이 준비해서,혹은 준비없이 다가온 사람에게 낯설게 제안하며
작업했던 파람엔 그래도 참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다가와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사람의 모습을
이미지시켜주고 떠나갔습니다.
 
처음엔 이창원님이 이 작업에 동행하며 연작의 3회까지를 이어가며  피안의 언덕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만났던 사람의 얘기를
연작 안에 이어주었지만 4회이후 그를 다시 만날 수 없어서 그 인물들은 추억 속에서만 살아 숨쉬며
공연 안에 .마무리 지어 담아 가야할 얘기를 실존으로 표현해주지 못하였습니다.
파람의 첫 장면에는 그 마지막장면이 나오는데
그 마지막장면의 인물은 피안의 입구에 앉아서 물 한 모금을 전해주는 어느 노인의 얘기입니다.
익산 미륵사지에서 제 가진 것을 하나하나 버리며 언덕에 이른 노인에
56억 7천만년의 약속을 기다리며 미륵사지 연못가를 걸어오는 백제의 연인을 바라보며
물 한 모금 권하던 파람 2편의 장면은
파람 연작의 나창진님의 모습으로 다시 익산에서 공연할 수 있었던 파람18에서 재현되었고
4월초파일 부산 보광사에서 공연되던 파람 19로 아쉽게나마 연결고리를 이어서 마감되었습니다.
파람1에서부터 20까지 그 모든 내용을 이어가면서 하나 혹은 여러 인물로  문득 다가와서 하몎 공연하고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모든 얘기를
놓지 않고 기억하고 생존시키면서 작업해주어서
같은 인물의 과거와 미래 시간의 교차를 표현해준 공연자들 자신도 모르는 얘기가 그나마 이어져 하나의 뭉게구름을 만들었습니다.
 
파람의 작업 노트를 처음적은 것은
2002년12월27일입니다.
그리고 그 첫 작업노트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파람은 피안의 산스크리토어 원어로서 열반 극락 천국 등의 종교용어와도 흡사하지만
종교이전에 생긴 언어로서 그저 우리가 인간의 도리로서 이르러야 할 이승의 저편같은 둔덕너머를 뜻합니다.
예기플라타너스는 2003년 이 파람의 제목으로 연작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파람의 입구에까지 다다른 후 그곳에 들어가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존재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 담기로 합니다.
2002년 12월 포도밭을 지나는 국도곁에서의 작업마무리에서 형상화한 가능성을 토대로
2003년 초연을 시작으로 파람은 연작으로 만들어지며
그 연작의 영상을 담아서 다시 하나의 짧은 영화로 마무리지어집니다.
피안의 문 앞에 이르러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돌아와 꽃처럼 존재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이 열린 게시판을 통해서 많은 분이 잠시라도 시간을 내서 공유하며
자신이 만나본 피안의 인물이 되어 그 얘길 형상화시켜 들려주는 작업에 함께 해주시길 바라며
작업노트를 시작합니다.
20부연작으로 작업한 파람 1회부터 20회까지의 공연연보와 공연 사진집..
2003
[파람1]1.25 익산촛불집회
[파람2]1.26 익산 미륵사지
[파람3]2.13 추전,승부역
[파람4]3.23 간현역
[파람5]3.29 성미산
[파람6-전쟁 속의 사람들]3.30 마일 연극의 날
[파람7]4.28 꽃지해수욕장.6회안면도축제
[파람8]4.28 승언리.6회안면도축제
[파람9]5.18 광주 상무대 피의자 대기실
2004
[파람10]1.13 성산역
[파람11]1.27 성산역
2006
[파람12]4.3평택팽성황새울
[파람13]4.21그린페스티벌.청계천
[파람14]5.13인권영화제,문화제
[파람15]10.10광주비엔날레
[파람16]10.11광주비엔날레
2008
[파람17]3.11팔당
[파람18]5.5 익산영등동공원
[파람19]5.12부산보광사
2009
[파람20]갈천,고마리와글쓰기아이들]
 
param01-파람-피안의길목에서(이름없는공연팀) param02-파람-피안의길목에서(이름없는공연팀) param03-파람-피안의길목에서(이름없는공연팀) param04-파람-피안의길목에서(이름없는공연팀) param05-파람-피안의길목에서(이름없는공연팀)
param06-파람-피안의길목에서(이름없는공연팀) param07-파람-피안의길목에서(이름없는공연팀) param08-파람-피안의길목에서(이름없는공연팀) param09-파람-피안의길목에서(이름없는공연팀) param10-파람-피안의길목에서(이름없는공연팀) param11-파람-피안의길목에서(이름없는공연팀)
param12-파람-피안의길목에서(이름없는공연팀)파람13(2006.4.21)청계천 그린페스티벌 파람14-2006.5.13서울아트씨네마.인권영화제 param15(2006.10.10)광주비엔날레 param16(2006.10.11)광주비엔날레 param17-피안의길목에서(2008.3.11팔당)
파람18-피안의길목에서(2008.5.5익산영등동공원) 파람19-2008.5.12부산보광사초파일공연 파람20-그냥그렇게흘렀으면좋겠네(고마리와글쓰기갈천캠프)
2010년 1월 15일 금요일오후 02: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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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숨결느끼기에 동행을준비하며
 
조금씩 일상처럼 진행되던 귀울림현상이
턱과 목 어깨뼈의 어긋남을 느낄정도의 삐걱임과 함께
강한 규칙적진동음까지 더해져 진행되면서 한쪽청력을 잃어갑니다.
2010년 1월 둘째주말 ,낙동강숨결느끼기 여덞덟번째 걸음에 신청하고
출발을 준비합니다.
어찌 이곳을 흐트리려합니까?
그렇게 이름짓고 사람들이 낙동강을 찾아갑니다.
조용히 흘러야할 강과 산야에
24시간 이명이 들리고
시린아픔으로 인간의 우매와 오만함으로 가장 서글픈 겨울을 지내고 있는 당신.
귿어져 버린 볼과
자연음을잃어가는 오른족귀로 얼마남지 않은 아름다웠던 만남의 시간을 찾아갑니다..
 
2010년 1월 16일 토요일오전 06: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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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님이 파람의 길목에서 들려주시던 얘기,다시 들으며....낙동강숨결느끼기여덟번째 순례속
작은공연-이름없는공연4대강순례연작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7"
 
낙동강숨결느끼기 그 여덟 번째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안에 함께합니다.
뭍생명과 당신에게
인간이라는 것이 너무도 처절히 미안해서 고개숙여 무릎끓어보는 지금 이 땅에서.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찾아서 피안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을 눈물처럼 스칩니다.
 
그곳에 그렇게 있어주어서 그저 감사할 수 있엇던 그 곳, 그 생명.
뭍생명들과 함꼐 바라보며
유일한 거스름의 종족인 인간의 숱한 이기심과 과오마져 감싸안아주면서 다시금 또다시금
그리움지며 흘러주는 이.
파람의 길목에서 그 마지막 부분 들려주던 그의 실향가가 다시
꿈속의 꿈을 꾸며걷는 어린 이의 가슴을 적십니다.
 
100억개의 형제들이 고향을 떠나 흩어져서
나는 60개하늘을 가진 조그마한 감성의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10억년을 지내며 그 감성을 식혀낼 이성적요소를 생성하면서 나를 구축했다.
그리고 40억년을 지내며 내 표피 위에 생명과 무생명체들이 살 수 있도록
나의 이성면을 감쌀 또하나의 푸른빛표피를 만들었다.
수억의 존재들이 지질시대위에서 생성되고 소멸되어갔으며
나는 그들의 사랑과 미움을 바라보면서
간혹 슬픔에 겨워 고향을 떠나 이 공간으로 온 그날이전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시생대를 거쳐 600만년전 우리의 영혼을 닮은 인간들이 생성되고
난 요즘 형제이웃들과 함께 내안에 존재하는 그들의 얘길 간혹 꺼내곤한다.

언제나 그런건 아니지만
간혹 어느 누추하고 조용한 표피구석에서 발견하는
그들의 지극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
 
(이름없는공연 "파람-피안의 길목에서" 중에서..)

"
2010년 1월 19일 화요일오전 10: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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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도 드릴말씀이 없어서 그저 죄스러운 가슴으로 당신곁에 다가갑니다.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낙동강숨결느끼기 편 ..이름없는공연 4대강순례연작공연작업노트..
아무 말도 드릴말씀이 없어서 그저
죄스러운 가슴으로 당신곁에 다가갑니다.
 
그리고 이승에서의 마지막즈음이 되어서야
서툴게나마 익히기 시작한
인간아닌 당신의 언어로
모래 위에 가슴 앞에 그리고 하늘에
편지를 적습니다.
바람이 햇살을 마주할 때만 전할 수 있는 글과
강물이 금빛모래를 적셔 스며주는 순간에만 드릴 수 있는 언어로.
그리고 두물머리,고무나루 금모래 은모래, 바위늪구비,..곳곳에 소중히 접어 심었던 하얀 종이꽃 한 송이
병산슾지 길목에 심습니다..
강천보 공사 현장 바라보고 온 남한강의 얘기들으며
서글픈 가슴으로
고향을 떠나 낯설고 숨쉴 수 없는 용수위 위 지역으로 이주를 시도한  바위늪구비에 살던
한 송이 단양쑥부쟁이 얘기도 전해드리면서..
 
2010년 1월 19일 화요일오전 11: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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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7-낙동강숨결느끼기,여덟번째순례곁에서의
이름없는공연 공연동영상
http://cafe.daum.net/oncorea/7Ff4/26
onCorea                  
copyleftⓒyegie 2010.1.20 www.yegie.com 2010이름없는공연작업노트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7-낙동강숨결느끼기,여덟번째순례곁에서
이름없는공연4대강순례연작.
2010년1월20일부터 방송중 
편성 및 촬영편집 :예기 신영철 019-696-2550(onCorea news )
www.yegie.com
2010년 1월 20일 수요일오전 11: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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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순례길 잠시 스치던 옥연정사에서..
 
낙동강순례길 둘째날 아침 부용대 내려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나룻배를 기다리던 모래길 길목에
잠깐 통과해 스친 곳 옥연정사.
아침인사주시는 지기님을 마주치며 문득 몇 년 전 영동물꼬학교에서 만났던 오누이가 생각났습니다.
잠깐의 스침 이었지만 함께 평화를 얘기 나누며 교정에 평화 나무를 만들고 미군기지이전을 위해 고향을 떠나 가야하는
대추리 노인 분들의 얘기와 미군의 이라크침공과 그 침략 전쟁의 한편이 되어서 국익이란 이름으로 파병을 결정한
이 나라.그 미안한 가슴으로 이라크의 아이들에게 부르는 노래를 들려주던 공연.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작업을 정리하는 길에 다시 그 공연사진과 영상집을 찾아보니
지금은 낙동강가 하회마을에 살고 있는 나현이와 령이 오누이의 모습도
또 하나의 평화로 남아있네요.
언젠가 여유가 되면 다시 한번 다가가서 낙동강이 들려주는 얘기 ,옥연정사에서 함께 얘기 나누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모래사장에서 나룻배를 기다리며 그려볼 또 한 편의 평화 그리기 상기된 모습으로 그려봅니다.
 
참 그리고 김나현 님이 그 날 그려준 마름모꼴 카드의 평화나무는 그 스무날째였던 평화 그 그리움으로 이후
지난12월27일 용산 참사 현장에서의 이백쉰다섯날째 평화 그리기까지 공연을 이어오는 동안
이 땅 이 곳 저 곳 순회하며 그린 평화공연의 현장에서
참 많은 모습으로 놓여지고 또 다른 이들에 의해 다시 그려지면서 그 잎새와 줄기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2010년 1월 20일 수요일오후 3:47:23
 
영동물꼬학교에서의 평화 그리기..1126평화,그 그리움으로 공연영상집
(2006년12월3일부터 방송중)
 
1126평화 그 그리움으로(자유학교물꼬)2006-20 공연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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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도 할 수 없는 바위늪구비 그리고 영산강 순례를 준비하며...
금강순레를 끝으로 더 이어가지 못하게되었던 4대강순례작업.
누군가 이름도 없이 쥐어주신 후원금으로 1박2일의 낙동강숨결느끼기순례길에 동행하며
준비했던 순례공연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상주 하회거쳐 병산 마애까지 낙동강 순례 길에서 돌아와
공연을 정리하고 영상을 완성하며 많이 앓고 있습니다.
준비해갔던 애기도 강에게 들려드리고 그곳에서 들은 얘기,만난 그리움
다시 얘기담아 찾아 가야할 곳도 정했지만 기약할 수 없음이 아픔을 더합니다.
 
다시 찾아가려던 바위늪구비와 아직 못 가본 영산강 순례도 아직 남겨두었는데
여건이 이뤄진다면 (지금으로선 아무 것도 기약할 수 없이 그저 그리움만으로 꿈을 꾸지만..)
미처 못다 한 얘기 ,이승에서 못다담은 얘기,드리지 못한 그리움...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지만 어떻게든 다가가 곁에 있어야 하는데....
지난가을 멀리서나마라도 바라보고 만나본 바위늪구비.
그곳에서 눈물짓던 벗들을 찾아가 다시 만나고
그들의 서글픈 미래에 동행할 준비를 시작합니다.
 
혹시라도 이 작업에 동행할 분들은
여기와 같이 준비를 시작해 주십시오.
한 사람이라도 더 동행해준다면
그들이 인간에게 얻은 실망과 비애와 아픔이 조금은 더 적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2010년 1월 23일 토요일오후 2: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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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순례연작의 1차 순례길 그 네번째 강인 영산강을 만나는 작업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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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순례연작의 1차 순례길 그 네번째 강인 영산강을 만나는 작업.
비록 차비나 경비를 마련하는 길이 어려워서 미뤄지고 있지만 어떻게든 1차순례만큼은 빠른 시일 내에
시작을 마쳐야 하는 의무감으로 2월초작업을 준비합니다.
혹시라도 동행할 분이 있을까 기다림을 공지하고 그에 응답하는 이 없으면 다시 다른 강을 찾아갈 때처럼 홀로
그 순례의 일정을 준비합니다.
낙동강 숨결 느끼기와 함께 한 일곱 번의 연작을 통해서
이 작업의 등장인물과 생명흐름의 공존을 찾는 작업은 어느 정도 구체화되었고
그 존재함의 방식도 답을 찾았습니다.
지구의 심장인 맨틀의 마음을 읽으며 그의 시선으로 그 안에 공존하는 뭍생명들의 사랑방식을 찾아서
가장미안한 가슴으로 죄스러움을 용서빌며 다가가는 순례자의 작업은
시간과 공간의 시선을 확대시킴으로서 온유를 찾아내고
현재를 인내하며 자신의 행동 몫을 찾아서 그렇게 행동합니다.
1월29일까지 작업참가자를 마감하고 한 분이라도 동행을 원하는 분이 있다면 그와 함께
예정한 2월초순1박2일의 영산강 순례 일정을 상의하여 구성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홀로 일정을 정하고 그를 만나러 갈 준비를 시작하려 합니다.
2010년 1월 29일 금요일오후 0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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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순례연작의 등장인물을 만들어가면서..
 
시천에서 낙동강하루까지라는 부제로 작업하고 있는 이름없는공연 4대강순례연작은
인간과 인간의 문제를 다룬 작업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체들과의 공존의 기초원리를 찾아 그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 가야할 존재의 방식을 화두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 작업이 인간의 잘못된 행동과 이기심,그리고 그것을 자조하고 용납하는 인간의
무분별한 자기본위적 합리주의를 작업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그 등장인물과 그가 스치고 만나는 인간의 모습은
인간의 인간과의 관계적 시선에서 이미 벗어난 시선과 상념을 기초로 합니다.
따라서 등장인물의 시간적 시선이나 공간적 시선이
인간의 생태나 삶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지 않으며
맨틀의 표피 위에 더불어 생성되고 소멸되어간 기생적 생명체들의 삶의 순환 속에서 인간의 생태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바라봄의 시각을 통해서
인간의 시각에서 오는 인간과의 갈등구조나 그 상관 관계에서 일어나는 대화가 아닌
뭍생명과 지구 생명체 본질과 인간종의 하나인 미물로서의 자신의 몫이 가지고 나눌 얘기를 안고 갑니다.
공연은 연작 작업을 통해서 점차 구체화되면서
인간의 언어를 버리고 인간의 글과 언어가 아닌 자연의 언어를 배우고
그것을 터득해가면서 낯설게나마 대화를 시작하고
편지를 적습니다.
생존하는 방식 역시
인간적인 방식을 버리고
물처럼 바람처럼 그리고 나무나 바위처럼 해하지 않고 더불어 존재하며
제 이익이나 편리함을 찾아가는 생존이 아닌 배려와 폐 끼치지 않음의 존재방식을 구체화시켜 나갑니다.
4대강연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래서
인간이기이전에 삼라만상의 일원으로서의 존재방식을 찾아서 그것을 공부하고 실천하여 행동하는 형태를 갖추며
그의 생각과 이념 그리고 모든 관심 역시 그 안에서 찾아지고 행해집니다.
이제까지 이 작업에는 한 사람의 인물이 그 캐릭터를 생성 시켜가면서 작업해왔으나
하나 두울 또다른 작업자들이 다가올 때
그저 개발의 반대나 환경의 보존이라는 인간의 시선에서의 단순한 개념적 의지만으로 만나지진 않았음 합니다.
그 부차적인 의지나 행동들이
이 작업이 추구하고 만나려는 원론적 개념 안에서 이뤄지지 않고
단순히 인간의 시선으로 억겁의 시간을 해결하려 한다면
그 또한 오만이 되며
이 우주에 인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너무 벗어난 답을 유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다가와서 이 작업에 동행할 캐릭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생각하고 행동해온 것이 아니어서
아직은 화두에 낯설고 단순한 애정만으로 자연과 생명에 대한 공존에 접근하고 있으나
이 작업의 연작을 만들어온 화두와 대사들을 하나하나 보다 큰 시각과 관념으로 바라본다면
그 또한 인간이라는 하나의 구성체로서 이 우주에서 그가 뭍생명과 더불어 배려하며 살아 가야할 행동의 방식을
쉽게 찾아내고 그것을 하나하나 실천함으로서 조금씩 정진하고 죽어가는
또 한 명 인간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생성과 존재의 이유에 맞게 죽음의 이유까지 연결시켜 내는 합당한 인물의
생존방식을 찾아보려 생각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그가 순례자이건 아니면 강가 습지 어느 곳에 작은 공간을 짓고 살아가는 인물이건
아무도 몰라주는 그리고 알리고도 싶지 않은 그 의무와 책임을 짊어진 행동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구체화됨으로서 이 작업의 등장인물은 작업의 공간 안에서
또 하나의 인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작업을 준비하면서 스스로 모든 걸 버리고 집중하며 내주지 않아서
그리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지 못한 채 공연이 이뤄지고
그 많은 화두와 존재의 방식에 대한 수업을 따라오지 않음으로서
간사한 한두 마디 말로는 이해시키고 체감하며 교류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고
공연이나 워크숍이란 단어에 익숙한 모습으로 질문과 답변을 찾아서
스스로 생각한 만큼의 선한 모습으로
감동하다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연작 일곱 번째 낙동강 순례편 에 담았듯
간혹은 첫사랑에 빠진 사람의 말처럼
이 작업은 하루온종일 그대생각뿐이고 내일도 그리할 것이라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의
절실함이 그나마 이 다가갈 화두에 죄스러움을 용서 빌 자격이나마 지어줍니다..
 
이제 영산강을 찾아가면 4대강의 1차순례가 끝나고
4대강의 얘기를 모두 모아 전하는 작업도 1차마무리됩니다.
죽음 전에 하고 싶었던 시작
마무리하고 조금은 부담을 던 마음으로 죽는 날까지 이 별 가람 곁에서
생명을 다할 한 사람의 얘기를 조금씩 구체화 시켜보려 합니다.
 
2010년 1월 31일 일요일오후 2: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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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담양습지 순례전에 다시 생각해보며....예플러
글을 안쓴지 오래 되어서 언제 쓰고 다시 쓰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없는 작업을 하면서 초기에는 인간에 대한 미움들로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힘들어 하며 보냈던것 같다.
그러면서도 놓지 않고 계속해서 작업을 할 수 있었던건
늘 진화하는 작업이었기에 가능했던 시간들이였다.
그럼에도 자주 잊고 투정부리고 속상하게 하면서
다시 조금씩 애쓰면서 작업해온것같다.
예전에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 또한 함께 작업노트를
쓰면서 자기가 만든 배역에 얘기들을 나누기도 했었다.
이런 나눔들이 줄어들고 본의 아니게 혼자서 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작업노트를 쓰는 일이 점점 게을러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안쓰게 되었다.
현장을 스스로 찾아서 느끼고 마음에 담아서 그리면서
모든것을 함께하기에 굳이 글을 쓸 필요성을 못 느곘던거 같다.
새로운 작업을 하는 사람에겐 많은 이야기와 체험들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 시간들을 같이 보냈다면 얘기는 많이 다를것이다.
그러면서 배우고 느끼면서 표현하는 공연형식이 이름없는 작업방식
같다.
예를들자면  소위 말하는 기승전결에서 말하는 발단이 이렇고
얘기를 전개하고 클라이막스를 거쳐 카타르시스를 자극할 때까지
하고 나중에 말하고자 했던 키포인트로 결말을 내는 멋진
드라마나 영화처럼, 반전이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더 사랑받는
그런 이야기는 세상에 많이 있을진데 또 그런 이야기들도
분명 있어야하고 ..실은 많이있다.
하지만 이름없는 작업은 모든것을 거의 절제하면서 하는 작업같다.

스스로 정진하려는 마음없이는 좀처럼 마음이 열리지 않는
그런 하챤은 작업같다.
저게 무슨 공연이라고 하는거지 한다면 공연도 아니다
그저  늘 말하지만 삶이지,
그런데 그런 삶이 공연이라면 난 그런 공연에 맞기에 공연한다.
근 10년간은 늘 그런 공연을 쉬임없이 하면서 살아온것 같은데도
요즘들어 다시 느슨해지는  생활에 맞닥들임을 감지한다.
자연을 바라보며 온유함을 배워야할진데..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산을 깎고  강의 흐름을 함부로 바꾸는
 인간들만의 세상에서 오직 인간을 위해서 존재해야하는 자연은
자연그대로여야 자연이지 인간에 잣대로 환경운운하는 것도
말이 안되는 이치같다.
인간은 자연앞에 지나가는 바람같은 존재들같은데..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살면서 또 자주 잊기까지 한다는거다.
내가 그러하다.
잊지않으려 하는데도 자주 잊으면서 화를 낸다.
하지만 또 잊고 화를 내더라도 마지막의 선택은
자연그대로의 삶처럼 온유한 죽음을 맞고싶다.
영산강.담양습지 순례전에...
2010.2.1
15:26 예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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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그리기 256일째 인공하천 굴포천 자락 경인운하 김포터미널 공사현장을 바라보면서.
최이라는 사람이 먼저 자연의 들녘에 물길을 내려고 개울을 팠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세월 흘러 몇 백년 후 다시 김안로 라는 이가 같은 목적으로 하천을 파고자 했답니다.
파다가 채 못파서 간석이고 판만큼은 굴포라 했습니다.
자연이 생성하고 만들어온 샘이나 하천 강이 아닌 그 인공의 우매한 물길이
어리석은 인간에게 교훈처럼 남아있는데
또 몇 백년지나 그곳에 또다른 이기심의 행정가들이 인간의 이익을 이유로
자연을 파괴하는 물길만들기가 재개되는 곳.
 
강이 아름답듯이 들녘도 동산도 아름다웁게 그 안에서의 인간의 공존을 얘기하는데
아라 뱃길 이름으로 들과 산을 파서 그곳에 바닷물을 들여 강으로 연결시키려 합니다.
세월을 거치며 자연이 들려주는 얘기들을 듣지 못하고 그저 핑계로만 이유잡던
평교 핑계다리는 이제 덧씌워지는 굴포교로 지워지지만
자연형 하천조성 사업이란 이름과 친환경이란 이름으로 수없이 덧칠해지는 현상.
 
발원지를 이유로 생성되고 지구 공,자전을 따라 만들어져 뭍생명들을 포근히 감싸주는
강과 하천의 공생
하지만 그 약속이 어리석고 이기적은 인간종의 욕심으로 지켜지지 못하는 곳.
 
광부의 손에 들려 갱도로 들어가는 새장 속 카나리아처럼
굴포천 합류부 핑계다리에서 아라 뱃길 김포 터미널 공사가 한창인
김포시 고촌면 전호리 아랫말 그리고 윗말 지나 만나는 아름답던 푸른 별의 죽음.
인간의 욕심과 오만으로  파헤쳐지고 왜곡되며 흘러야 할 바닷물과 강의 역류적 합류,
그곳에서 예시하며 숨을 멈추는 카나리아의 죽음을 확인합니다.
2010년 2월 3일 수요일오후 9:40:55
................
2010년3월 어성전리에 머무르며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작업을.. 
 
2010년 3월 어성전리에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 작업을 하면서 산촌유학아이들과의 만남을 시작하려합니다..
학사일정에 피해없게 적합한 일정을 정해주시면
준비하여 찾아가 산촌유학아이들과 함께 평화를 그리는 영화도 만들고 영화관도 만들면서
첫 작업을 준비하겠습니다.
 
이름없는공연의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 공연개요.
 언덕과 산으로 둘러쌓인 작은 마을에
어느날 한 사람이 찾아와서
조그마한 선물을 만들어드리기로 마음먹고
작은 영화관을 만듭니다.
 
이동식으로 영화를상영해주고 가는 그러한 영화가 아닌
누군가가 보고싶을 때 연락을하면 찾아와서
영화를 상영해주는 조그마한 영화관의 시설을 갖춘
야외상영이 가능한 기재를 갖춘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선 평화에 대한 그리움과 실천들을 담은 영화들을담아내고싶어서
평화를노래하는 이라는 이름없는이름이 붙여진 간판이 보입니다.
 
대개의 영화관이 영사시설과 영사막 그리고 사이에 객석을 갖춘 형태를 택하지만
이 평화를 노래하는 영화관이라 이름붙여진 곳은
영사막을 설치할수있는 자리를 만들어 두고
그 맞은편에 영사시설을 놓을수잇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음향시설을 연결시킬수있는 받침대까지.
 
그리고 그곳에 영사막이 하얀 암막으로 설치되면
영상이 비춰지는 프로젝터와 영사막사이
어성전리 모든곳이 객석입니다.  
 
영화관을 만들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성전리에서  영상상영을 실험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영화관이 설치됩니다.
그리고 약속한날 저녁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의 첫 영화가 
마을사람들 앞에 상영됩니다.
2010년 2월 5일 금요일오후 12:32:53
..................
영산강 후에
10.02.11 13:38 이정훈
  
가기전에 눈을 감아 그곳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내가 생각한대로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생각한 그곳과 영산강의 습지는 많이 닮아있었다.
상상속에서는 농사도 지었고 그 음식을 그곳에 사는 동물들에게 주고 배고 잘 닦았고 다친 새와 고라니, 너구리, 수달등을
잘 태워주고 물고기와 얘기도 나누고 했는데 현장에서는 그것이 잘 되지 않았었다.
무언가를 빨리 하려고 하는 나를 발견했다.
다음번엔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천천히 그것을 표현해야겠다.
그리고 내가 가져간 옷은 문제가 있었다. 습지에 사는 사람의 옷으로 보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선생님 말대로 습지에 자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생각을 지우고 자연읨 생각으로 자연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돌아와서 이틀동안 계속 꿈만 꾸었다.  앞으로의 나의 일들도 이젠 이렇게 꿈을 꾸고 행동으로 옮겨야겠다.
오늘도 눈을 감고 꿈을 꾼다. 꿈속에서는 별별일들이 다 일어난다. 그리고 행복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잠을 평소보다 많이 잔다는 단점도 있지만...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착했던 정훈이도 만났다. 겁많은 정훈이도 만났다. 키가 훌쩍 커버린 정훈이와 키작은 정훈이기
꿈속에서 만나 함께 힘을 함쳐 음식도 나눠주고 동물들을 함께 도와주었다.
영산강에서 새처럼 생긴 씨앗을 멀리 보낸일은 내 인생에서 아주 아름다운 페이지로 남았다.
그 아이들이 멀멀리 가서 잘 살았으면 생각한다.
조금더 정리해서 금강에서 한강에서 작업을 이어갈까한다.
......................
4대강순례 마지막순례지 나주담양 영산강변에서
 
봄을 기다리는 강변습지와 그 넘어 동산길에는
어느새 겨울을 지낸 풀꽃들이 새싹을 틔울 봉우리를 키워
겨울비속 이슬 맺힌 님들.
하지만 지난가을 혹은 겨울 바람동안 채 못보낸 씨톨들
갓털끝에 씨앗담아 바람을 기다리건만
사람들의 이기로 파괴되고 담수되어 버릴 공간 앞에
쓸쓸한 망설임만이..
학산리 승천보 공사장곁 언덕길에서
또 못내 서러운 그들을 만납니다.
봄마저 빼앗아 버리는 인간의 오만에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용서빌며
갓털과 씨앗품은 님, 소중히 안아 쥐고 영산강따라 담양에서
그래도 이한 봄은 지낼 수 있을 습지 언덕목에
바람결 기다려 날려드립니다.
 
2010년 2월 23일 화요일오전 11: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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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으로 쓰인 음원의 저작권보호을 이유로
그간 온라인상에서 함께나누던 이름없는공연의
모든공연영상을 인터넷상에서내립니다
 
 
이름없는공연은 관객도 없이 거리나 무대에서 스스로 준비하여
삶의 시간들을 표현형태로 고쳐서 공연의 형태로 실천해왔습니다.'그리고 그것을 영상으로 담아서
작업일지와 영상회 등으로 다시 만나고 져하는 이를 찾아서 그와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져
작업해왔습니다.
그 작업과정중에서 일상 속에 우연히 듣거나 세상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노래나 음악을
공연의 배경음악이나 주제를 같이하는 노래로 사용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작업자의 작업형태가 문화상품이나 입장료가 매겨진 작업이 아니어서
그저 라디오를 틀어놓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또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 듯 혹은 어디선가 듣게 된 모르는 이가 만든 음악이나 노래에 젖어서
그 노래나 음악을 들으면서 얘기를 진행시키는 방법으로 대부분의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그것을 영상으로 다시 정리해서 담는 과정에서도
그 음악이나 노래는 공연기록의 과정에서 하나의 소중한 동행의 매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시되고 이제 시행되기 시작한 저작권법은
타인의 음악을 개인의  ucc에 배경음악으로 담아도 저작권을 어기는 것으로 시행된다고 합니다.
현행 저작권상으로 아직 어떠한 조치가 있은 것은 아니지만
블로그나 까페에 음원을 모두 삭제하듯
이제 저도 그간 누구나 보고 나눌 수 있게 공개해왔던 이름없는공연의 공연영상집도
그 안에 사용된 음원의 저작권을 보호해드리는 차원에서 공유를 포기하고 인터넷상에 올렸던
동영상 모두를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름없는공연의 공연영상을 보고 싶어하실 분들이 계실지도 몰라서
그 나눔만이라도 이어가고 싶어서
이제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이란 제목의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름없는공연의 영상회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공연의 작가가 스스로 기록하고 편집한 영상을
누구라도 한분 원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분께서 보 실 수 있게
노트북과 작은 빔프로젝터 들고 만남을 기다라는 작은 영화관.
그리고 그것을 만들고 그 영화관에서 상영할 평화를 노래하는 공연을 만드는 작업이
병행되는 작업.
그것이 이제 이 마지막 해의 이름없는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희망하기론 공연자가 비상업적으로 상품화시킬 목적없이 타인의 음원이나 노래를 배경으로 사용하며
공연하거나 영상화한 영상들이 그 곡을만드신분에게 내용상으로 해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곡을 배경으로
그러한 공연이나 영상작업이 이루어진 것에대해 양해해주며 기뻐해주는 세상이 되어서
이렇게 일개인이 세상을 향해 소극적인 모습으로나마 만들고 떠나는 이름없는공연의 모든 공연영상이
온라인상에서 모른이이들에게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세상이 후에라도 이뤄지길 꿈꿉니다)
 
 
2010년 2월 23일 화요일오후 3: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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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작업위해 2월 28일 고마리 작은 학교로 갑니다.
고마리 전화받고 일단 28일 낮 12시 동서울에서 출발하는 양양행 버스 티켓 예매했습니다
요즘 이명과 복시 현상 등이 와서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여서
어떠한 약속도 하지 못하고
3월 첫주 중쯤에 몸을 추스려서 어성전리에 가려 계획하고 있었는데
일단 28일 3시쯤 양양터미널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고마리 작은 학교 산촌유학이 시작되어 어느 정도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과정에서
제가 준비한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프로그램도 덧붙여 시작되었으면 했는데
일단 전화주신 일정에 맞춰 가서
제 요즘 몸상태로도 진행이 가능할지 가서 가늠해보고
조심스럽게나마 준비한 작업 아이들과 나눌 희망 가져보려 합니다.
 
2010년 2월 27일 토요일오전 9: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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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다가기 전에 정리해보는 신원에 한번 가보세요.
 
2월11일이 다가오면서 다시한번 가보고 싶었던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의 세 마을이 있는 신원.
하지만 올해도 가지 못하고 그저 이 땅 한구석에서 그들을 기억하며 인간과
심신을 떠난 넋으로서의 인간의 시선을 바라보면서
2월을 보냅니다.
[신원에 한번 가보세요]는 사실 4.3순례작업의 한 가닥으로 접하게 되었고
그 막연하던 양민학살의 얘기가 4.3순례의 연결선상에서 또다른 하나의 주제로 이뤄지면서
유성의 역류처럼 하늘로 향한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아가들의 얘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신원에 다가가서 만나던 첫번째인물
 
"그 날
몇 달 전 이 세상을 아름답게 키우기 위해 하늘에서
이슬이 되어 내려왔던 아이가
어미의 등에 업힌 채
총알에 맞아서 아픔도 모른 채
다시 유성의 역류처럼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이 작은 행성 작은 나라 작은 마을에
시차를 두고 다가와 꿈을 키우던 몇몇 별들과 함께..
 
그리고 그 역류하는 유성의 별똥이 씨앗이 되어
들풀이 되었고
그들풀이 이곳시간으로 한 갑자를 다해가며
은빛 사랑이 되어 들녘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넋들이 쥐어주신 그 무언의 응답을 통해서 작업이 이뤄졌고
공연은 작업 노트를 통해 대본이 완성되었습니다.
별에 대한 얘기와
아이의 몸으로 이승을 떠난 넋의
인간시간 한 갑자 지나 돌아와 바라보는 이의 모습도 만들어보고.
 
2008년 4번의 공연을 통해서
그 날 그에게 전해주었던 그의 메모와 같은 내용의 글을 담은 편지를
하얀 종이 꽃잎과 함께 전했습니다.
그리고 또 2월
인간의 죄악이, 세상의 아픔이, 고여지는 그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낯설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고픈 마음을 포현하는 하나의 화두로
신원은 이름없는 공연작업의 구슬픈 암호로 쓰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올해도 2월이 가기 전에
그 암호같은 편지
절실하고 절실한 가슴으로 담아서
작업 노트를 통해서라도
전합니다.
[신원에 한번 가보세요]하고.
 
우리 곁에 인간이 행해놓은 수많은 신원을
이승에서의 시간 속에서 하나라도 더 같이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주길 희망하면서.
 
이름 없는 공연의 '신원에 한번 가보세요" 공연대본
작 예기
(2008.2.9-11신원에서의 초연)
작,구성;예기 신영철
사용음악-별빛(꽃별),별(이소라)
............................
1.
인간들에게는
상대에게 아픔을 줄 때
자신은 아무 것도 상처받거나 아프지 못하는
무딤의 병이 있다합니다.
그래서 남을 해할 때도 그 행동 속에서 아픔을 감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상 속에서 모든 감각을 잃어버리고
신경없는 생채가 되어 버리는 병이 있다합니다.
 
별이 하나 씩
시간을 기다려 인간으로 내려와 마을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자연처럼 살면서
이로운 공기를 만들고 향기를 키우며
꽃과 풀을 도왔습니다.
 
바람과 물과 빛이 들풀과 흙 곁에서
하나 둘 다가와 커가는 그 아름다운 별들의 인간화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보살펴 기대하며
돌보며 꿈꾸던 공존의 문명.
 
...................
2
정월 초나흗날 그리고 초닷샛날..그리고 초엿새날
배냇 나이에 또 하나
새해나이를 먹으며 덤처럼 나이들던 아가들이
이승에서의 1년도 못채우고
건강한 모습그대로
별이 되어 다시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를 맞이해서 귀한 세상 함께 만들어보려 꿈에 부풀던
삼라만상을 이별했습니다.

돌아와보니
쑥스럽고 미안할 다름 입니다.
그래서 그 미안함 지우려
이렇게 다시 빛이 되어
은하의 길을 따라 시선을 놓지 못하고
이 별을 찾아와 머무르곤 합니다.
 
다시 용기를 내어 다가가고픈
저 모질게도 슬픈
어리석음의 곁으로
................................
3
간혹 알려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별을 가꾸기 위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인간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다가온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기억과
그 어리석은 기억 앞에 우리의 자세.
 
아름답게 주변만 보살피며 살아가는 고운 당신에게
우리  마음을 다해 답해야 할
인간의 시간을 찾아다녀와 들려 주고픈 얘기가 있습니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다가 간혹
당신에게 알려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신원에 한번 가보세요.
족지하나 써서 넌지시 쥐어드리는
애절하고 수줍은 동지의 모습으로 전하니
신원에 한번 가보세요.
 
별이 되어 되돌아간 사람들의 얘기와
수줍은 양심으로 고개숙인 사람의 넋이
화석처럼 머무는 그 곳으로.
..................
4.
먼 하늘 별빛처럼 고요히
시간 속에서 빛나는 너
오늘도 말 한마디 못한 채
안녕 혼자서 되뇌인다
나 아무리 원해도 넌 도무지 닿을 수 없어
갈수록 멀어지는 알 수 없는 나의 별
 
움켜진 틈 사이로 흐르는
너는 모래처럼 스르륵
바슬 거리는 이 마음은
마른 잎 되어 구른다
 
나 이렇게 너를 원해도 너에게 닿을 수 없어
갈수록 멀어지는 알 수 없는 나의 별
오늘도 말 한마디 못한 채
니 옆에 떠 있는 날 기억해
가늘게 솟아오는 눈썹달
이렇게 여윈 나를 기억해
 
 
신원에 한번 가보세요 공연영상집은 신원에서의 초연 양사재,광주5.18민주공원에서의
공연영상이 한편의 영화로 되어 완성되어있습니다.
언젠가 거창기념공원 안 영사실에서도 그 영상을 상영하면서 또다른 사람들의 순례와 함께 하는
작업의 희망 가져봅니다..
 
2010년 2월 27일 토요일오전 10:26:37
............................
259일째 평화그리기-3.1절에 내리는 눈
 
 366날 하루도 잊음 없이 평화 그리기
그 마무리 해가 되게 노력했지만 2월의 몇 날을 불건강을 이유로 채우지 못한 채 다음해로 미루고
3월을 맞습니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아직은 국도만이 마을 곁을 지나가는 어성전2리,작고 고요한 마을..
대보름 지나며 3.1절 91돌되는 날 밤.
밤부터 내린 눈이 마을을 감싸 안아
세상은 온통 하얗습니다.
나가보니
91년전 모진세월속에서도 평화라는 그리움을 안고 어질게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하얀 설원의 아침길에 이슬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나뭇가지 위에 모여 앉았다가 떨어지는 눈송이 소리 속에 이명되어 들리는
가느다란 음물결.
90여년이 지났어도 티벳,버마,,처럼 이 세상 어느 곳에선 아직도 반복되는 찬탈의 역사.
인간의 어리석은 독성이 스스로의 심성의 진화를 더디게하며
역사의 망각과 지움이 하얀 자연 앞에 인간의 모습을 초라하고 부끄럽게 합니다.
3.1절에 내리는 눈.
뉴스는 초등학교아이들의 앙케이트 결과 3.1절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올해엔 초등학교4학년 교과서 첫 장에 나오던 유관순전기와 그림을 삭제해 버릴
계획도 구체화되었다는 얘기도..
프리티벳 프리버마.. 그리고도 또 참 많은 아픔들이 아직도 혼재하는 이 세상에서
서로의 주권을 존중해주며 찬탈하지 않고 사는 세상은 언제나 이룰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사실이 우리 곁에 있음에 무심하지 않는 세상만이라도..
 
2010년 3월 1일 월요일오후 12:43:12
 
 
...............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어성전리 고마리 작은 학교에서의 작업을 시작하면서.
.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2리에 도시에 살던 아이들이 전학와서 같이 공부하고 자라는
고마리 작은 학교라는 이름의 산촌유학이 시작되고
이름없는공연은 그 아이들과 같이 지내며 자유로운 형태의 연극수업으로 한편한편의 공연을 만들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공연으로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이란 작품을 준비하여
이 작은 마을에 모인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시작합니다.
 
첫 시간 우선 아이들에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사실은 우선 낯설은 아이들에게
세상에 평화를 전하는 마음을 만들고 그 것을 즐겁게 실천해보는 일을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평화,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 네 개의 화두를 쥐어줍니다.
열명의 아이와 또 누구라도 같이할 사람들과 함께
연극은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평화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 혹은 아이들이 찾아와서
마을 한 곳에 혹은 이동할 수 있는 야외영화관을 만들고
밤이면 가로등하나없이 별,달빛만 가득한 어둠에 잠기는 산골마을에
마을어귀에 앉아서 혹은 스쳐 거닐면서 누군가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며
마을 분들이 쉼처럼 볼 수 있는
매일 혹은 정기적으로 아름다운 평화의 얘기를 담은 영화가 상영되는 줄거리입니다.
첫 시간 열 명의 아이들은 이 낯선 제안을 받고
영화관이란 단어와 평화를 노래하는 이란 어휘에 주목하며
자신이 마을에 만들어드리고 싶은 영화관의 모습에 대해서 초안을 그려보았습니다.
자연 속에 아름다운 동화처럼 어울리는 영화관의 모습을 자유롭게 생각하며
열명의 아이들이 그 의견을 모아서 하나의 예쁜 야외영화관의 모습이 설계를 마치면
한편으로는 그것을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그 영화관에서 상영할 영화도 한편
스스로 구상하고 만들어서 영화관의 개관을 준비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하나의 연극이 되어 실제와 무대를 혼용시켜 진실한 모습으로
어우러 실천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곧바로 평화의 노래가 되게 공연은 가상의 줄거리를
구성합니다.
3월한달간 일상 안에서 수업과 만남을 지속하며
조금조금씩 얘기 나누고 준비하며 작업하려 합니다.
2010년 3월 2일 화요일오전 9: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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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고양 그리고 강원 동해안 지역에서 4대강순례공연영상회를 준비합니다.
 
이름없는공연이 지난해 가을부터 겨울지난 이른 봄까지
오랜 세월 우리 곁을 흐르며 굽이 형성된 생명의 터로서의
그 스스로의 흐름을 잃어가는 이 나라 4대강의 모습을 순례하며 공연한
4대강순례연작[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의 공연영상을 갖고
강원도 양양에 왔습니다.
속초 고성 양양 지역 분이나 강릉 주문진 동해까지
그 얘길 함께 나누며 영상회 같이하고 싶으신 단체나 모임계시면
찾아가 함께 얘기 나누며 지금 이시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보겠습니다.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이름없는공연 4대강순례연작공연사진집
파람20-그냥 그렇게 흘렀으면 좋겠네(고마리와 글쓰기 갈천 캠프)2009.8.11
827평화,그 그리움으로 248-아라뱃길에서 낙동강 하구까지(시천)2009.8.27
1025평화 그 그리움으로250-(부산 구포 낙동강 화명 지구)2009.10.25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3(남한강, 여주-강천구간)2009.11.20-21
1124평화 그 그리움으로251(양수리 두물머리 생명평화미사)2009.11.24
1210평화 그 그리움으로252(4대강순례연작-금강편,금남교,공주)2009.12.10
1211평화 그 그리움으로253 (4대강순례연작-금강편,부여,부소산) 2009,12.11
4대강순례공연영상회(문래동 이정훈 작업실)2010.1.14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7-낙동강숨결느끼기1.16-17
203평화,그 그리움으로256(굴포천,평교..)2010.2.3
207평화 그 그리움으로257(영산강-나주 노안면 학산리)2010.2.7
208평화 그 그리움으로258(영산강-담양습지)2010.2.8
 
영상회는 상영회 희망 일자와 장소와 시간을 정해주시면 그 시간에 맞게 위 공연의 영상들 가운데서
영상을 선별해서 상영프로그램을 구성합니다..(상영기재가 있는 곳엔 그 기재를 이용하고
없는 곳엔 저희가 기재를 준비해서 갖고 가 상영회를 준비하겠습니다)
 
신청글 올려주실 곳.
다움까페 이름없는공연 예기와의 만남 게시판
http://cafe446.daum.net/_c21_/bbs_list?grpid=1EU3f&mgrpid=&fldid=2Gei
2010년 3월 2일 화요일오전 10:13:32
..................
 
어성전리에 찾아온 아이들이 만들어낼 선물 그 낯설은 시작은 이렇게.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의 모습 그려보기.
 
강원도 양양군 어성전리에 산촌유학이 시작되고 고마리 작은 학교라는 이름으로
도시아이들이 찾아와 이곳 산촌학교에 유학하며 생활하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이름없는공연의 작업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작업이
연극처럼 제안되었습니다.
도시에서의 생활에 익숙하던 열명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평소 익숙하지 않았던 평화를 노래하는 과 이름없는 이란 단어가 낯설게 주어졌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화두를 제안하며 꿈꾸는 것은
느리게나마 하나 둘 듣고 바라보고 조금씩 행동하면서 다가가볼
세상을 살면서 세상을 향해서 내가 모르는 다른 누구에게 주어드릴 사랑의 선물,
그리고 평화를 노래하는 법,입니다.
 
아무런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이 마을 어딘가에 만들어 설치할 야외상영의 영화관의 모습을
그려보자고 했는데
산촌 유학 온 아이들의 생각은 아직 일반적인 단어의 집합뿐 ,
꿈꾸지 못하는 어려움으로 특별하고 아름다운 영화관의 모습을 생각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스크린이 있고 객석이 있고 매표소가 있는 평범한 형태의 영화관의 형태 안에서
최소한의 꿈을 꿉니다.
평화를 노래하는 누구나 쉼처럼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영화관의 모습정도로.
 
어성전리에서 공연할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 두 번째 얘기는
조용하고 작은 열명남짓한 아이들이 살고 있는 산촌마을에
열명의 아이들이 찾아와 함께 살게 되면서 그 아이들이 이 마을과 마을 분 들을 위해서
아름다운 평화를 노래할 영화관을 만들어드리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 얘기가 더욱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산촌유학이란 낯선 삶을 시작하는 아이들이
그 유학의 연극수업의 하나로 낯설게 주어지는 이 작업의 화두를 통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아직은 갖지 못했던 존재의 방식을 찾아내고
조금씩 그 이유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의 마음을 키워본다는 것.
 
아이들이 각자 가져온 인생의 시간들이 스스로의 논리를 만들고 많이 부딪히거나
남을 위해서 평화를 제안하고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의 가치를 이해하고
스스로 즐거워 할 때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제안하며 한편으로 만들어가는 누군가의 모습을 무심처럼 장난처럼 동행하다보면
각기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개성과
인간의 고운 본성도 한 두 아이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작업을 추진합니다.
 
아이들이 낯선 설명을 들으면서 아직은 잘 알 수 없는 생각 속에서 그려본
자신이 만들어보고 싶은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의 모습들.
아직은 꿈과 사랑까지는 담겨있지 않지만
점차 생각이 구체화되고
이해 못하던 얘기들이 조금씩 가슴에 들어오면
이렇게 처음 그려본 막연했던 마을 영화관의 모습도
실존적 형태로 형상화될 연극아닌 연극 속에서
다른 곳의 그것과는 또다른 이곳만의 그 아름다운 제 모습을 갖추겠지요.
 
2010년 3월 4일 목요일오후 2:00:19
 ................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어성전리]야외 영화관 만들기 그 형태구성.
어성전리에 생기는 영화관의 모습은
마을사람들이 마을 마실 길에 보고 싶은 분은 누구던지 멈춰 볼 수 있게
야외에 스크린이 설치되고 그 앞 쪽으로 10-15미터에서 영상을 비추는 기능을 가진
영화관의 모습을 갖춘 미니어춰로 구성됩니다.
우리가 그리는 영화관의 모습을 축소시킨 건물형태를 갖춘 영화관구조물에는
빔프로젝터와 영상물 화일을 연결해서 상영할 수 있는 노트북 그리고 스테레오 혹은
서라운드 음향을 전할 스피커시스템을 연결시킬 수 있는 전원연결선이 들어갑니다.
작업에 같이 참가하는 아이들과 함께 그 미니어춰 건물의 형태가 결정되면
공연은 이 작은 영화관을 만들고 꾸미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같이 만들고 준비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서 마치 인형의 집을 만들 듯이
아니면 나뭇가지 위에 걸리는 예쁜 새집이나 집마당 입구에 세워두는 우편함을 만들 듯이
마음을 모아 장식하고 상영될 영화에 대한 안내판
평화를 노래하는 영화들이 상영된다는 얘기를 전하는 상징물이나 그림 도안 사진들이
그 작은 벽의 벽화를 꾸밀 수도 있을 겁니다.
스크린은 야외에 고정설치되므로
비나 눈 바람에도 견딜 수 있게 한 개 혹은 두 개의 봉을  고정시키고
거기에 브라인드 형식의 암막을 달아서
구성합니다.
평상시에는 암막을 말아두어서 보호하며 상영이 있을 때, 브라인드를 내려서
영사막을 설치하게 됩니다.
2010년 3월 4일 목요일오후 5: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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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삼거리 59번국도에서 그려보는 260번째 평화 그리기.
 
신작로가 처음 생길 때,산속 작은 마을에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고
마을 앞까지 버스가 들어오게 되었을 때
반기던 기억.
길은 그렇게 사람들의 삶 속에서 평화처럼 만들어 져 왔습니다.
비포장의 모습 마져 그대로 산삼리 부연동 지나며 아름다운 길로 남아있는 59번도로.
전남 광양에서 강원도 양양을 잇는 길.
 
그 아름다운 길도 언제부턴가 사람보다는 더 빨리 가야할 자동차들을 위한
직선의 고속화 도로로 개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공사가 어성전까지 왔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문득 내려서 걷고 싶은 길,
자동차보다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국도가 하나 둘 없어지며
발걸음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의 마음에 담겼던 길이 주는 평화도
지워져 갑니다.
 
마을의 중앙을 가로지르고 산을 뚫으면서 직선으로 내달리는 길.
그 길을 만들다 멈춘 현북면 현성 삼거리 넘어 표시판 바라보며
조금은 여유롭게
그리고 느리게 생각하며 살아가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260일째 평화 그 그리움에 잠깁니다.
2010년 3월 6일 토요일오전 7: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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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 유학 온 아이들이 마을과 마을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선물.
 
도시에서의 생활을 떠나 이러 저런 이유와 목적으로 산촌유학을 결정한 아이들.
그들이 찾아온 산촌마을엔 조그마한 학교와 마을사람들.
자신의 삶에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였으나 그 한편으로는
이 산촌과 마을에 무언가 해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도시의 거리에서 일상처럼 만나던 거리의 전광화면들.
대개는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상품을 광고하기 위해 설치되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현혹하지만
저 화면에 아름다운얘기들과 감동을 나눌 얘기들이 비춰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일.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마을길 한두 곳 전신주에 피어나는 가로등뿐
외로워지는 이 산골마을에
혹시라도 쉼처럼 마실 나와 걷거나 멈춰 앉아 있을 누군가가
선물처럼 바라볼 수 있는 거리의 영화관을 만들어드리면 어떨까?
그리고 그 영상을 통해
우리가 함께 꿈꾸고 만들어갈 평화를 얘기해보면 어떨까?
 
아이들은 마음과 의견을 모아서
그 거리의 영화관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스크린을 설치할 자리와
그 스크린에 영상을 비출 기재들과 음향기기가 담겨질
예쁜 영화관건물 모양의 설치물.
2010년 3월 6일 토요일오전 7: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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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마음 만들기,아이들 몰래 제안하고 기다리는 평화의 노래.,
 
산촌유학아이들과 만들어가는 연극.
그저 프로그램이나 교육정도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
세상과 자연 안에서 자기보다는
뭍생명들을 생각하고 돌보며
사람이 태어난 의무에 걸맞게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찾아내길 희망하며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이란 제목을 주고
제안하며 기다립니다.
연극수업 배역을 주고 대본을 주고 대사를 외우며 발표회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 행동할 아름다움을 기다립니다.
깊은 산촌마을 하얀 눈세상 속에서
언젠가 가슴으로 느껴 행동할 아름다운 마음의 실천을 꿈꿔봅니다.
 
시간이 나면 아이들이 편하게 혹은 무심히라도 볼 수 있게
지난밤 밤을 새며 소중히 준비한 이름없는공연의 공연영상을 보여줍니다.
나 아닌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그리고 인간위주가 아닌
뭍생명들과 자연이 중심이 되고 그 안에 함께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도리만을 생각하며
이름없이 행동해보는 사람들의 마음과 모습이 담겨있는 공연영상들.
 
언젠가 이 아이들도 연극이란 이름으로라도
수줍은 양심으로 직접 하지 못했던 친절과 사랑을
이렇게 연극이란 형태로나마 용기내어 조금씩 다가가서
마침내 세상의 한구석에서
또 하나 고운 풀이 될 수 있게..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꿈꾸며 다가가는 작가의 마음을 적은 작업노트를
보여줍니다.
그리곤 혹시라도 귀에 담아줄까 마음속으로라도 읽어보게 해봅니다.
 
아직 아무도 산촌유학을 온 아이들이나 부모나 교사나
이 연극이 제안하는 베품과 자기 아닌 남을 위한 자기희생의 목적을 느끼지 못합니다.
산촌마을이 그들이 옴으로서 더 온유해지고
아름다워지며
인간으로 인해 해쳐지던 자연의 삶이
그들이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전해주는 사랑으로 인해
다시 그 평화를 찾아가게 될 얘기.
그 얘기의 주역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스스로 이름없는 영화관의 모습을 꿈꾸거나 디자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독촉없는 기다림에 화두조차 기억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다른 어른들도 그러했듯
자신의 즐거움이나 이익 혹은 주어진 의무에 부합되지 않는 일
스스로 택하는 아름다운 자유에 대해선 인간모두가 서툴고 나약합니다.
아이들도 아직 그렇게 이 작업에 임하고 있어서
우선은 한 사람의 솔선이 필요하고
그 이유 모를 행동이
혹시라도 참가하는 아이들 중 누군가에게
질문을 쥐어주거나
끝내 그것 마져도 만나지 못해도
이곳 어성전리에는 세상을 아름답게 할
이름도 없는 작은 영화관이 생겨서
새들과 풀꽃 그리고 바람과 이슬, 눈비가
또 하나의 평화,그리고 인간이 제안드리는 그 그리움을 만날 것입니다.
2010년 3월 9일 화요일오전 10: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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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순례공연영상회 첫 만남 위한 60분용 영상을 편집 마치고
 
지난겨울.
이 나라 강과 그 강을 따라 살아온 습지의 모든 생명들이 가장 아픈 시간을 견뎌야 했던 시기.
그들을 찾아 순례했던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4대강순례연작의 공연기록이
총 아홉 편,2시간16분 36초(136분36초)의 분량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것을 함께 나누며 얘기하고 싶어서 이름없는공연의 홈페이지에
4대강순례영상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글을 남기고 기다립니다.
봄이 오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관심을 갖고 같이 모여 그 영상에 담아온 기록을 보며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속초고성양양 환경운동연합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3월22일 세계 물의 날 저녁에 속초에 모여 그 영상을 같이 보면서 얘기 나누고 싶다는.
영상회가 아니라 모임 안에서 보는 형태이므로
총 136분의 긴 시간을 준비할 순 없고 해서
1시간정도로 편집본을 제작합니다.
그리고 하다보니
많은 부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 서글픈 강과 습지의 모습을 놓치지만
사실 격하게 정부의 개발정책을 반대하고
시위하다 잡혀가는 영상도 아닌
그리고 세세히 조목조목 교육하는 방식의 4대강살리기정책에 대한 반론을 담은 영화도 아닌
상념의 이미지극 형태의 공연 영상집이
지역 환경 운동가들의 모임에서 60분조차도 지루할 거라는 생각에
편집이 수월치만은 않습니다.
 
강을 바닥부터 파헤쳐서 생명이 흐르던 길을 인간의 이기대로 변화시키는 작업.
보가 설치되고 담수되면 다시는 볼 수 없이 물에 잠겨 버릴 지역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굽이굽이의 자연 그 모습대로의 길을 잃을 물길들의 모습 앞에서
고향을 잃어 버릴 것도 모르며 마지막 봄을 맞이하는 풀꽃들의 얘기를 찾아 떠났던
순례의 공연영상이 일단 60분상영본으로 편집됩니다.
마치니 아마도 40분,80분정도의 편집본도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서
제작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원의 저작권문제도 이젠 인터넷상에도 공개할 수 없어서
이젠 이름없는공연의 공연영상도 자유롭게 보고 나눌 수 없게 되었는데
한분이라도 보시고 싶다는 분이 계시고
그곳이 나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교통비가 얼마들지 않아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던 달려가서 나누고 싶은 마음이지만
정말 마음처럼 그렇게
이 세상 이 시기에
함께 마음 모으며 같이 바라볼 사람이 얼마나 있을련지?
 
 
4대강순례공연영상집(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2009-2010겨울순례편 9편의 원본영상)
파람20-그냥 그렇게 흘렀으면 좋겠네(고마리와 글쓰기 갈천 캠프)2009.8.11 (6분27초)
827평화,그 그리움으로 248-아라뱃길에서 낙동강 하구까지(시천)2009.8.27 (9분42초)
1025평화 그 그리움으로250-(부산 구포 낙동강 화명 지구)2009.10.25 (9분13초)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3(남한강, 여주-강천구간)2009.11.20-21 (22분08초)
1124평화 그 그리움으로251(양수리 두물머리 생명평화미사)2009.11.24 (11분32초)
1210평화 그 그리움으로252(4대강순례연작-금강편,금남교,공주)12.10 (금강편,부여,부소산)12.11 (23분54초)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7-낙동강숨결느끼기1.16-17 (24분30초)
203평화,그 그리움으로256(굴포천,평교..)2010.2.3 (9분25초)
207평화 그 그리움으로257(영산강-나주 노안면 학산리)2010.2.7  (영산강-담양습지)2.8(19분45초)
2010년 3월 9일 화요일오전 11: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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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 구조물 조립시작
 
어성전 고마리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며 수요일과 토요일 연극수업시간을 가집니다.
그리고 매일저녁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공연의 공연영화들을 상영합니다.
물론 예기와의 수업은 전원이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픈 사람만 자유롭게 참가하는 식이어서
관심없거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 작업에서 멀어져가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만의 특별활동같은 개념으로 작업이 이뤄져서
이 실존적 공연이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주 첫 만남에 이어서 둘째주 수업을 위해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의 구조물의 기본틀을
만들었습니다.
 
막연히 말로만 이해하기 어려웠던 아이들에게 우리가 만들어 마을에 설치하려는 영화관의
실체가 드러나자 작업에 임하는 이도 구체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사람이 다가와 이 영화관의 모습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디자인을 생각하고 발표하면서
마을에 만들어드릴 야외상영이 이뤄질 영화관에 대한 얘기도 현실화되기 시작합니다.
2층양옥집 형태의 모양을 갖춘 영화관은 1층에 빔프로젝터와 노트북이 탑재되는 공간을 갖고
벽과 벽사이에 그 연결선을 통과시켜서 영상출력을 가능케합니다.
그리고 그 건물 사이사이에 적절한 공간을 찾아서
미니어춰식의 아름다운 영화관을 만듭니다.
 
아이들의 생각이 이제 꿈을 찾고, 그 꿈을 실체화시킬 얘기들을 나눕니다.
건물의 지붕 모습도 구체화시키고 1층 입구 쪽에  마을사람과 영화관을 가꾸는 사람들이
의견과 소통을 나눌 우편함도 만들고 1층 처마밑엔 화분도 놓아서 꽃도 함께 돌보는 영화관의
모습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2010년 3월 11일 목요일오전 7: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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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스티로폴로 만드는 2층 양옥모양의 어성전 영화관
 
처음 어성전리로 올 때는
이곳에 새로 만들어지는 산촌유학 작은 학교에서 한달간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도시에서 이사온 아이들이 아름답고 조용한 강원도 어느 산골마을에
평화를 노래하는 작은 영화관을 만들어드리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주에 두 차례 연극 수업을 통해서 그 과정을 통해 마음을 진전시키고
한편으로는 그들 삶에 낯설은 세상
우리 사는 세상과 자연 안에서 우리가 관심가지고 행동해야 할 일들에 대한 얘기를 담은
평화행동을 다룬 이름없는공연의 곻연영상을 모아서
매일 밤 영상회를 가지며 귀기울여주길 기다립니다.
 
두 주간 그렇게 연극 만들기 아닌 마음만 들기는 진행됩니다.
하지만 아직 너무도 자기본위의 삶에 익숙한 이곳 아이들에게는
그 제안이 너무 낯설고 어려워 보입니다.
 
하얗게 쌓이는 은세계와 굽이진 산길과 하늘이 주는 얘기들과
눈 쌓인 살얼음아래로 흐르는 시냇물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 안에서 청아하게 평화를 생각할 시간이 오면
아이들도 차츰 하나 두 울
자기 아닌 세상을 위해 자신이 살아가는 법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연극처럼 아름답게 이 산골에 노래를 불러줄 겁니다.
 
전날 속초로 나가서 사온 마을 영화관 건물에 부착할 온화한 할머니인형
그리고 지붕 처마를 따라 흐르는 물을 받으며 살아갈 작은 화분과
마을사람들이 영화관사람들과 마음을 전하고 받을 편지함.
 
영화관은 산골학교에서 받은 골판지로 된 택배 박스와 분홍색 스치로폴을 소재로
그 골조를 만들어갑니다.
원래는 아이들과 같이 만들고 싶었으나
아직은 아이들과의 작업이 불가능해서
일단 그 만들어지는 모양이라도 보면서 조금쯤 다가와줄 아이들의 마음을 기다리면서
하루종일 홀로 마을영화관을 만들었습니다.
빔프로젝터와 노트북 그리고 스피커연결선까지가 담아질 2층양옥모양의 미니어춰 방식의 영화관.
마을 어느 곳에 세워지면
밤새 홀로 이슬도 맞고 비바람도 그으면서
마을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평화의 얘기를 준비해서 거리 영상회를 가져줄
고운 생명을 가질 이름없는 영화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빔프로젝터와 노트북을 넣을 곳을 1층에 두고
2층과 건물 곳곳에 방모양의 공간과 발코니를 만들었습니다.
곳곳엔 평화사진전 혹은 그림들이 전시될 것이며
건물벽면도 사진이나 그림으로 변화되고 장식되길 바라며 공간을 준비합니다.
 
다음 연극수업시간엔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이 영화관의 마지막 구조물을 보여주면서
그곳에 담고 싶은 장식하고 싶은 평화에 대한 애기를 물어보고
그들의 상상과 꿈을 기다려보려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준비되지 않았다면 평화 그 그리움으로 연작의 사진들을 모아
이 평화를 노래하는 영화관 한 공간에 전시회를 장만하고
아이들도 같이 그릴 평화에 대한 모습을 스케치해서
벽화처럼 영화관의 외형을 완성하는 과정을 가지려 합니다.
2010년 3월 13일 토요일오전 7: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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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성전마을에 세워지고 있는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작은 산골 마을 어성전마을에
어느 겨울 도시의 아이들이 산촌유학의 이름으로 전학을 오고
마을 분 들께 드리는 선물의 마음으로
작은 영화관을 세울 것을 구상합니다.
 
하루해가 지고 어둠이 오면
마을길 마실 하다가 작은 쉼터처럼 앉아서
마을길 한쪽에 세워진 작은 영화관에서 하얗게 쏟아져 나오는 빛줄기로
스크린에 비춰지는 아름다운얘기들을 바라 보 실 수 있게.
 
2010년 3월
아이들이 이 마을에 온 첫 달.
그 구상대로 거리 영상회가 가능한 기재들을 담아 세울 곳의 형태로
마을한편에 작은집을 세웁니다.
이제 점차 구조물의 형태를 갖추어가는 평화를 노래할 이름없는 영화관,
그 모습이 마을 한편에서 이렇게 공사중 입니다.
 
2010년 3월 13일 토요일오전 09: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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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성전 이름없는 영화관에서 평화를 노래해줄 아이들의 모습 그리며
 
들려주고 함께 하자고 했지만 꿈꾸기 아직 일러 잘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하얗게 눈이 쌓인 마을한편에 세워지고 있는 공사중인 영화관건물의 모습을 담은 사진 몇 장은
그들에게 제안하고 같이하자고 한 꿈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같이 만들자고 해도 그저 흘러 들으며 관심없던 아이들도 자신도 저런 것 만들고 싶다고
관심을 다시 보이고  그 영화관이 이제 이 마을에 드리기 위해 준비해야 할 평화라는 화두에도
조금은 관심을 가져줍니다.
가능하면 이 아이들이 연극수업이라는 작은 주어짐을 통해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 아닌 세상을 위한 자신의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상상하는 마음을 만들어 연기라는 형태로라도 (사실은 연기가 아닌 진실인데도
아이들은 아마 연기라고 생각하며 하게 될..)행동하며 실천하게 될
평화만들기가 이 이름없는 영화관을 통해서 진행되길 그 아이들 몰래 노력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자신아닌 타인을 위한 평화만들기가 상대를 설정하고 그 상대를 향해서
받음이 아닌 스스로의 희망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주어짐이 낯설음에서 익숙함으로
자율적인 의무감으로 즐거이 시작되는 곳.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이 구상되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상영될 영화가 준비되고 제작되어
누군가를 위해 선물처럼 상영되는 일이 산속 작은 마을에
어진눈물처럼 이뤄지기를..
3월첫달의 작업으로 이 작업을 준비하고 시작하였지만
채 준비 안된 아이들의 마음 앞에서 조금은 더디게
그렇지만 이해되고 그 이해를 통해 이전될 사랑을 그립니다.
 
잠시 떠나며 아이들에게 작은 숙제를 내 주었습니다.
물론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숙제지만
들을 땐 모두들 금방이라도 할 것처럼 초롱초롱함이
여는 어른들과 다름없는 인간의 모습 그대로 입니다.
영화관의 내부와 외벽을 완성할 여러 자료들을 구입하고 장만하러 대관령넘어
다시 도시로 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과제로 드린 평화를 노래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내서
준비해줄지 몰라 아이들이 원하면 미리라도 직접 작업할 수 있게
영상 작업을 해볼 캠코더도 하나 미리 선생님들에게 맡겨두고 옵니다.
 
비록 모든 것이 그들스스로의 삶 속에서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그저 놀이의 개념과 자기만족의 방식으로 접근 된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바라보면서
솔선하는 모습으로 작업하고 이루는 인물을 배치하여
그를 통해 무언의 질문거리를 쥐어주는 방식으로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 어성전편의 3월 그 첫 번쨰 에피소드는
이어질 겁니다.
남 몰래 산천에 피고지는 매일 밤 자유롭게 관람되는
이름없는 공연의 영상 기록물들과의 만남에서
혹시라도 질문을 얻고 의문을 찾아서
다가와 물어 봐주는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생기는 날이 온다면
이 작업도 작가의 꿈과 홀로 그리는 실천이 아닌 그들의 것이 되어
작가의 죽음이후에도 어디선가 이어질 이름없는 희망 그 하나의 꽃씨가 될 겁니다..
2010년 3월 14일 일요일오전 09:25:49
................
2010 4,3 예약했던 제주행 항공권을 환불했습니다.
 
결국 올해 4.3엔 그리운 제주를 다가가 만나지 못합니다.
몇 달 전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려서 구입했던
김포-제주간 편도 20,300원에 예약판매되는 저가 항공사의 선예약권.
4.3일저녁에라도 도착해서
그날 그곳에 하루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예약해놓았던 4.3제주행 그 항공권을
쓸쓸한 마음으로 공항에 가서 해약했습니다.
가는 비행기표만 이라도 준비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준비하엿으나
4월이 다가오며 나누고 싶은 작업도 드리고 싶은 얘기도 가슴 가득한데
그곳에 머무르고 또 다시 돌아올 차비를 끝내 만들 수 없어서
그 옛날처럼 다시 뭍에서 4.3을 기리며
지난해 제2 14처-마지막순례 라는 작품으로
그 섬에서 담아온 공연얘기들을
내 의지로 폐 끼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곳
그리움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나누며 넋들을 만날 수 있는 곳에서
4월을 맞이하는 것으로서
물질도 없이 잠시라도 가졌던 작은 욕심을 비웁니다.
.
4월이 오면 그들이 그리던 분단 없는 세상
서로를 이해하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그래서 사상을 이유로 서로 미워하고 학살하지 않는 세상을 기리며
60여년 지나도 봉합되지 못하는 분단의 상처 그 가까이에 다가가서
짙푸른 동해바다에 제주섬의 노래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언젠가 북녘에 가서 만났던 북녘사람들에게 이곳 남녘땅과 바다 산야의 사진들 보여주자
남녘 아무 곳도 못가본 이가
그 여러 사진 중 하필이면 제주섬 사진한 장 골라서 바라보면서
제주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하던 음성이 생각나는 4월이 옵니다.
2010년 3월 18일 목요일오전 11:46:13
...................
무심의 한편에서 완성되어가는 어성전,평화를 노래할 이름없는영화관
 
그 누구도 관심조차 없는 곳에 흔적이라도 되어줄 의미를 남겨주고 싶어서
세상을 살다간 어떤 사람의 평화라는 화두라도 되어주고 파서
혹은 의미모를 낯선 행동에 왜 일까?하는 질문이라도 가져볼 사람을 만나고 싶어
어성전 산골마을에 들어와서
산촌 유학 온 작은 학교 아이들 곁에서
그들이 듣고 관심 가져 주었으면 하면서 종이 집을 만듭니다.
 
영화관이라고 부르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노력을 기울입니다.
종이집은 이제 하나하나 모양을 갖춰가고 부질없는 꿈도 이뤄줄 동무처럼 모양을 갖춰갑니다.
 
시간이 주어지면 아이들과 둘러앉아서
메아리없는 얘기를 꺼내고
혹시라도 그들의 삶의 한 부분 스쳐가던 바람으로라도 남아줄지도 모른다는 희망 버리지 못하고
우리가 이곳에서 쥐어 드리고픈 평화를 노래하자고 제안해보곤 하면서
한 달이 흘러갑니다.
 
아이들은 그저 그들의 삶 자체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만이 평화인 양 그리 받아들이며
이것이 하나의 놀이였으면 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버리고, 잃어버린 이 세상에서
갈망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그리운 그것.
평화가 그저 놀이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은
이 산촌에서 철없이 뛰어 노는 아이들에게 부질없이 말 걸어보는 서글픔은
무심의 공간 그 모습 안에 살아가는
남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무지의 평화를 바라보며
서글픔에 부딪기며 공동체 세상을 찾아가게되는 외로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그 모습을
오히려 그리웁게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얘기 나누고 만들고 싶었던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은
그저 바라만 보아주는 무심의 아이들 곁에서
메아리 없이 얘기 들려주며 노는 아이들 곁에서 일하는 그들의 목공처럼
하루하루 지어지고 이제 그 모습을 다갖추고
영상기재를 넣고 시연도 마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평화를 화두로 쥐어주고 연극하며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이 영화관에서 상영할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고 또 기다림을 시작합니다.
 
어성전마을 어딘가에 설치할
암막 스크린이 택배로 도착했습니다. 210*210 두개
바람이 좀 가라앉고 날씨가 조금 따스해지면
만들어진 영화관을 꺼내 마을한편에 고정시키고
나무와 나무사이에 밧줄을 달고 그곳에 봉을 설치해서 스크린을 세우려 합니다.
2010년 3월 19일 금요일오후 4:12:14
.....................
설악산 자락 산촌 어성전리, 4월,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이 만들어지면..
..
전라도 함평 해보면 산내리보다 나중 기획되었지만
그보다 앞서서 먼저 강원도 산골마을 현북면 어성전리에 세워지는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은
마을이름을 달고 이뤄지는 산골마을 작은 갤러리의 기획전에 참가하는
한 작가의 개인작품으로 세워지고 진행되는 산내리에서의 작품형식과는 달리
산촌유학을 떠나온 아이들의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연극수업의 과정이며 결과물입니다.
 
평화에 아직은 낯 설은 아이들이어서
그들이 직접 같이 만들지는 못하고
그들곁에서 제안하고 기다리면서
작가가 홀로 진행하고 보여줍니다.
참가하는아이들이 그 과정안에서 느낌을 찾아 다가와주길 희망하는 작업의 연속이지만
결국은 이 마을 어귀에서 그 아이들과 마을 분들을 만나게 하고
그 아이들의 이름으로 살아갈 작은 영화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연극수업에선 조금은 이르지만
이곳에 산촌 유학 온 아이들이 스스로 이 마을 분들과 함께 얘기 나누고 드리고 싶은 선물로
작은 야외영화관을 만들었으며 그곳에서 이러이러한 것을 하고 싶다는 꿈을 만들고
그것을 얘기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얘기들을 영상에 담아서 이 마을에서 이 영화관이 문을 여는 날.
마을 분들에게 아이들의 마음을 전해드리면 좋겠다고 얘기를 꺼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예측했던 대로 아직 아이들은
자기자신이 시간과 정성을 내어 마을 분들에게 사랑을 나눠드릴 준비가 되지 못해서
혹은 그런 마음을 만들어 꿈꾸기엔 아직 소심하고 어눌해서
이 마을영화관을 통해서 해낼 아름다운 얘기를 재미있게 상상하고 생각해내진 못합니다.
그저 평화라는 주제가 막연하기만 한가봅니다.
 
지난 몇년간 평화잃은 세상사를 찾아 그 곳을 순례하고 유랑하며
듣고 본 많은 것들을 들려도 주고 같이 얘기도 나누고 싶은데
이곳은 스스로 구속없이 행하고 그리는 곳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기획안에서 이뤄지는 공교육체의 구속안에서 이뤄지는 산촌유학이란형태의 학교여서
어렵게 시작한 작은학교를운영하는 분들에게 혹시라도 피해될까 염려되어
함부로 그릇되고 모순된 사회현실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가며 얘기 나누며
세상의 아픔을 관심 가져보자고 말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 역시 산골마을들이 어디나 그러하듯
자신이나 자기가족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주어지지 않는 한은
세상 다른 마을 사람들의 삶에 관심가지지 못하는
무지와 무심의 겉평화로 고요한 마을입니다.
마을엔 개발지원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붙어있고
이 마을도 여느 마을처럼 개발과 편리를 추구하며 소득의 증대를 꿈꾸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평화를 노래하는 이란 화두가
이 마을에선 어떻게 제안되고 표현되어야 할지 어디까지 제안하여야 할지 하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결국 결정은 그들과의 소통을 욕구하지 않고
이름없는공연의 살아가는 그 모습 그대로
세상의 무심 앞에 혹시라도
나 아닌 누군가의 슬픔을 찾아내어 절실히 슬퍼할 누군가와의 만남을 그리며
평화 그리움의 소중한 본질에 충실하는 것.
 
제안하기보단
그저 들풀처럼 피어 비추이는 말없는 의미의 길을 그 길로 결정합니다.
이 마을영화관이 그 첫 영화를 상영해볼 예정일인 4월첫주는 4월3일입니다.
 
아직도 그립도록 외로운 남도.
분단의 아픔이 눈물처럼 가까이 여겨지는 이 설악의 한 자락 산촌에서
제2 14처 -그해 겨울을 상영작으로 개관작으로 결정하고
영화관 벽면에 붙은 상영작을 공지하는 칠판에 백묵으로 적습니다..
 
2010년4월3일..
제2 14처-그해 겨울. 이라고.
2010년 3월 20일 토요일오전 7:53:56
..................
4대강순례영상집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속초 마산 영상회를 준비하면서
 
지난겨울 너무도 답답하고 서글픈 마음으로
죄스러움 안고 ,제 스스로 걸을 수 있는 마지막 순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4대강울 순례하며 기록한 공연영상집.
다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보면서
얘기 나누고 싶어 준비한 영상회의 제안에 속초와 마산 두 곳에서 응답이 왔습니다.
어성전산골에 있는 기간이라서
강원도지역에서 이동할 수 있는 만큼 많은 분들과 만나고 싶었는데
유일하게 속초환경연합에서 연락 주셨고
가고 싶었던 공수전이나 송천,묵호 동해 주문진 등에선 아무도 연락주지 않고
절실한 그리움으로 적은 글에 그저 안부인사만 댓글 붙여주셔
서글픈 마음으로 만남의 기대를 접습니다.
 
그리고 마산.
감사한마음으로 네 준비해 가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이곳 어성전에서 마산까지 가는 길이 너무도 힘에 겹습니다.
 
우선 다섯 번 정도 하루 몇 대 안되는 구간 시외버스의 배차시간을 맞춰 갈아타면서 가야하는 시간적인 문제와
아무리 궁리해도 줄이지 못하는 차비.
하루 미리 가서 영상회 당일을 맞을 수 없는 형편이
어성전마을에 들어오는 아침 첫 버스로 시작하여 12시간정도는 예상해도 빠듯한 이동구간.
그리고 편도만도 5만원정도되는 우리 두 사람 왕복에 차비만 20만원이 넘는...
 
돌아올 뱃삯을 끝내 못 마련하여 오래 전 예약했던 항공권을 해약하며 4.3제주행을 포기해야 했는데
이렇게 귀한 초대에 감사하지 못하고
가슴조리는 마음이 쓸쓸합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는 불소통의 세상에서
그래도 이렇게 영상회를 준비해서 오라도고 불러주는 곳이
한 곳이라도 있으니
4대강을 순례하며 눈물짓던 지난겨울 그리고
삼라만상과 같이 기다리던 눈물의 봄이 오랜만에 이승에서도 적적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필요할까 몰라
낙동강 병산 습지 길목에 앉아 편지적던 사진 위에
영상집 제목이랑 소개글 간단히 적어서
사진한 장 만들어 올립니다.
2010년 봄, 누군가와 만나고 싶었던 그 바보같은 그리움으로.
 
공존을 모르는 인간의 오만에 용서빌며
자연 앞에 가슴 아파할 줄 아는 겸손한 바보들과 만나고 싶어 그린
순례 공연 영상집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라고..
2010년 3월 20일 토요일오후 10:35:47
................
261일째 평화그리움 속초 속고양 환경 연합에서의  첫 4대강순례공연영상회
 
언제 부턴가 거처 없는 순례 생활 속에서 어느 지역에 가게 되면 어렵게 떠난 그 길에서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을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한 기간 서로 살아가며 보고 온 세상얘기를 같이 나누길
평화 그 그리움으로 기대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혹시라도 볼 수 있게 인터넷공간 안에서 그들이 근접할 곳을 찾아서
나누고 싶은 마음을 전하며 기다립니다.,
4대강순례를 다녀와서 그 공연영상을 한편의 영화로 완성하고 절실한 가슴으로 그 얘길 나누고 싶어서
마침 강원도 오는 길에
살아오며 인연처럼 함께 했던 이 지역의 몇몇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언제나처럼 어리석은 꿈에 부풀어 그렇게 만남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친교가 아닌 나 아닌 다른 이 들을 위한 삶을 얘기하자는 제안에는
늘 답주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결국 이번에도 내가 기억하고 그리워했던 지인들과의 만남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유일한 강원도에서의 제안에 대한 응답은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이들이었습니다.
속초고성양양 지역 환경운동연합에서의 영상회 의뢰는 그래서
강원지역에서 만나는  유일한 희망이었고
헝클어지는 산야 앞에 인간으로서 살아 가야하는 절망 앞에
한모금 머리들 수 있는 그만큼 감사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찾아간 속초시내 낯설은 한 사무실에서의 영상회는
그래도 이 시기 실로 오래만에 이승의 사람들 세상에서 
자연과 뭍생명과의 공생을 화두로 얘기 나누는 이들을 만나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261일째 평화 그리기 그 저녁을 기다리며
다시금 마지막 편집을 마치고 기다린
그리운 사람들과의 만남.
 
무심과 이기의 인간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어느 순간만큼 만이라도
나를 위한 세상이 아닌 나 아닌 이들의 행복을 찬탈없는 세상을 향한 같은 마음으로
눈시울 붉혀볼 수 있다는 안도감에
조금이나마 감사할 수 있었던 시간.
64분의 기록은 비록 하얀 회벽에 휴대용 작은 빔프로젝터와
손바닥 크기만한 휴대용 모노 스피커를 통해서 거친 음향 전하며 영사되는 첫 상영회였지만
혹시라도 이 영상과의 만남이
우리의 미안하고 처절한 이시기 인간으로서의 생존의 가슴앓이를
같이 호흡해줄 사람과의 스침이 되었기를 바라며
까아만 밤 도시를 지나 다시 산촌으로 돌아오던
평화 그리기 그 이백 예순 한번째. 날
2010년 3월 23일 화요일오전 9:29:12
.............................
[우리가 마을에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을 만들었어요]공연을 구성 마치고
 
어성전 산촌유학 아이들에게 들려준 제안
아이들은 한달간 같이 생활하면서 매주 한두 번 만나는 연극 수업 시간을 통해서
아주 특이하고 낯설은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존처럼 생각하면서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맡은 역은 산촌마을에 유학온 아이들이
이 산골마을에 드리고 싶은 선물로 작은 영화관을 만들고
그곳에서 상영할 평화를 화두로 한 영화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장면에서 마을에 지을 영화관의 모습을 구상하고
두 번째 장면에서 마을영화관을 만들고
세 번째 장면에서 이러 이런 영화를 찍어서 마을에 상영해보고 싶다고
꿈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를 전하고 싶다는 얘기를 소박한 모습으로 얘기하며
카메라를 들고 마을로 나가는 장면이 마지막장면입니다.
이 공연을 통해서 아이들은 자신의 변화된 삶 속에서
그저 자신의 미래만을 위해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산야를 위해서도 살아볼 또 하나 할 수도 있는 일을
생각해보고 혹시라도 그것이 정말 실천될 수도 있을거라는 기대를 쥐어줍니다.
자신의 연극 속 대사가 하나의 약속이 될 수도 있으며
그냥 말 그대로 연극한번 해본 것으로 잊혀질 수도 있습니다.
공연은 아직 평화가 낯설고 평화행동이 어눌한 아이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할 일을 생각해보고 행동해볼 세상에 대한 얘기를 꺼냄으로서
일단 프롤로그를 마칩니다.
그리고 프롤로그가 아이들에게 드린 제안이며
그 나머지는 각기의 삶 속에 이어질 수 있는 아이도 한 두 명은 있기를 기대해보며
작품을 마무리합니다.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은
이제 실제로 마을에 설치되고 평화를 화두로 한 영화가 마을에서 상영되며
연작의 다음작업으로 이어집니다.
아이들이 정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만들거나
영화관을 직접 같이 만들지 못하고
그저 연극이란 형태로 낯설게나마 연기해보는 것으로
한편의 연극이 완성된 것이 약간은 쓸쓸했던 작업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을 만들었어요.]는
이렇게 한 달간 어성전리에서
실제 만들어지고 상영될 영화와는 별도로
아이들이 주인공이 된 한편의 동화 그 시작으로
아이들 실생활의 다른 한 편에서
어눌하지만 그리웁고 예쁘게 만남의 첫 작품으로 구성을 마쳤습니다...
...............
우리가 마을에 평화를 노래하는 ....아홉명의 아이들로 만들어보는 장면구성.
 
리고 첫 연극수업.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
산촌유학 고마리 작은 학교 아이들과의 연극 만들기
그 첫 번째 작업인 [우리가 마을에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을 만들었어요]
그간의 숨고르기를 바탕으로 해서
어느 정도 흐름을 감지한 아이들에게 이젠 낯설음 없이 작품을 구성합니다.
아이들에게 우선 자기의 배역이름을 자유롭게 정해보자 제안합니다.
극의 흐름에 집중하는 아이들과 그저 장난으로 생각하며 꿈꾸지 못하는 아이들이 구분됩니다.
푸른 하늘,이슬비,체리,하루,나뭇잎,
미스터 제임스,공주님,미스터 와일드 빼드,옵티머스 프라임
이렇게 아홉명의 이름으로 스스로의 배역이름들을 정하면서
진지하게 혹은 장난스럽게 연극 만들기에 참가합니다.
 
장면은 우선 4개의 장으로 나뉩니다.
1장은 이름없는영화관을 어떻게 만들까 디자인하는 얘기입니다.
공주님,푸른 하늘,이슬비 세 사람이 순서대로
각기의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제시합니다.
2장은 그 아이디어로 만들기 시작하는 영화관의 만들기 작업입니다.
다섯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이 부분부분 만들어가는 작업모습을 보여줍니다.
등장 순서는
미스터 와일드 빼드,체리,미스터 제임스,하루,나뭇잎
3장은 이제 영화관을 다 만들고 마을에 한 부분
영화관을 배치하면서
자신들이 함께 만들고 키워 나갈 이 영화관의 목적과 용도를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이장면은 전 출연자가 모두 한번식 얘기를 하게 해서
이 공연이 제안하는 평화를 향한 행동 그 첫걸음을 각기 얘기해주는 장면입니다.
얘기의 순서는 일단
1.미스터와일드 빼드, 2 하루, 3.미스터 제임스,4.공주님
5.푸른 하늘과 이슬비 6.나뭇잎과 체리
7.옵티머스 프라임  의 순서로 정했습니다.
마지막 4장은 이들이 마을에서 평화를 화두로 한 영화를 촬영하는 장면입니다.
나뭇잎,하루,이슬비 세 아이들이 평화롭게 노는 모습을 극화시키고
그 모습을 푸른 하늘이 촬영하는 장면입니다.
 
아이들의 생각과 자유로운 자기제안으로 장면마다 출연자를 정하고
출연순서도 정했습니다.
평화라는 화두는 자유라는 의무와 배려와 타인에 대한 사랑을 기조로 하므로
그 작업의 방식에서도 스스로 자유를 구속할 줄 아는
자기정화의 성숙함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자유의 성숙함은 언제나 그렇듯
실리적이고 이기적인 삶의 방식으로 판단력을 잏은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에게서 쉽게 찾아집니다.
 
간혹 진지함을 찾지 못하고
놀이개념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진지한 가슴으로 자신의 이익이 아닌 타인을 위한 존중과 존재방식을 찾아가자고 부탁하면
정말 그렇게 가슴 아리게 다가와주는 것이 또한 인간의 본성이어서
이 작업의 제안도 아이들의 숨겨진 아름다운 마음 안에서
어렵지 않을거란 희망을 갖게합니다..
.
2010년 3월 24일 수요일오후 9:40:15
 .......................
30주년 5월 광주에, 민족극한마당의 한 구석에서
이름없는 공연 5월연작공연영상회 로 함께 할 수 있을까요?
 
80년 그해 모진 삶의 한가운데 무거운 숙제처럼 다가와서
아름다운 영혼들의 격려로 오히려 삶의 길을 배우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빛고을의 얘기.
16년지난 그 해부터 매년 한해에 한 작품 혹은 두세 편의 작품을 만들어 공연하면서
넋과 나눠온 이름없는공연의 5월연작.
30주년이 되는 올해 민족극한마당이 열리는 5월광주에서
미안하고도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아남은 이들의 바로 이루지 못한 여전한 어리석음 용서빌며
절실한 가슴으로 다가가 그 품에 안겨 며칠간만이라도 포근한 사랑 그리길 꿈꿉니다.
강원도 설악산 자락 한 구석에서 기다리며 정리하는 5월
그리고 이땅에서 어렵고도 어렵게 이어가며 지킨 빛고을의 꿈.
언제나 처럼 그리고 지난한해 굴절하며 가장 서글픈 한해를 맞았던 인간의 슬픈 자화상은
올해 30주년이란 어휘로 다시 서글픈 모습을 더 깊게 할 것이고
그래서 그 한쪽 구석에서라도 넋들과
그들을 진정 잊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아직도 지닌 어눌한 분들과 함께
조용한 가슴으로 나누고 싶은 얘기들.
민족극한마당 기간동안 우리에게도 참가자로서 기회를 주어주신다면
그 서린 가슴안고 다가가 금남로 혹은 옛 도청 주변 , 상무관에 영사막을 설치하거나
영상상영시설이갖춰진 518관련실내공간에서
이름없는 공연이 지난 15년간 5월광주에게 배우고 익히며 만들어온 공연의 영상들을 모아
작은 영화제를 만들어 그곳에 동행하고 싶습니다.
참가가 가능하다면 연락 주십시오.
그리고 만약 이번 광주에서의 전국 민족극한마당 행사의 취지나 프로그램 구성 형편에 맞지 못한다면
그렇게 이유적어 거절의 답주시면
그리운 빛고을에서의 만남의 꿈을 거두고
이 5월 광주아닌 다른 곳 어디에서라도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곳에 있는 듯 넋들에게 드리는 가슴으로 홀로 공연 영상회를 준비하겠습니다
영상회는 매일저녁 하루 1시간에서 1시간30분정도 4-5일정도 같은장소 혹은 다른장소에서
그간 이름없는공연이 공연한 5월광주연작작품들을 선별편집하여 컴퓨터화일로 빔프로젝터에
연결해 상영하려하며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공연영상회" 란 부제로 기획하려합니다
 
2010년 3월 25일 목요일오전 11:03:08
 
이름없는공연팀 5월연작
5월,그곳에 하늘이 열리고나면
그 희망으로 다시
그 긴기다림은 시작되고..
예기플라타너스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 작품목록
1997.5.17-18 51817(오늘같은밤이면+남행열차)서울
1997.11그날아닌날에도(서울)
1998.5.16-19 지워진소외(서울)
1999.5.17-18 후이넘에서돌아와2-광주(금남로)
2000.5.18 잊지마세요(금남로,망월동)
2001.5 27-28겨울여행2(망월동,전남도청)
.
2002.5-10 후이넘의기억-상무대(상무대,망월동) 5.19 상무대(5.18 22주년)
.5.20 망월동 (5.18 22주년)  6.4-6 씨어터제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6.9l 경기도문예회관(수원화성국제연극제)  6.11화성행궁(수원화성국제연극제)
8.19 씨어터제로 (2002실험예술제)  10.19 안면도(2002겨울여행,가을,안면도)
2003.5 잊지마세요032(금남로)겨울여행2-유서 잊지마세요033(서울여성프라자)
2004.5.17-27 2004년5월 (광주.전주)
 
2005.5.24존재하는평화를향해(광주상무대,아시안인의마당)
2006.5.18 순애언니
2006.5.27 잊혀질 때까지는
2007.5.25잊혀질 때까지는(518기념문화관,난장인프리)
2007.5.27헤어진다음날 1(옛전남도청앞새벽)
2007.8.11헤어진다음날2(8.11성주성밖숲.청실홍실공연후무대)
2007.9.10-11헤어진다음날3(광주)
 
2008.4.25 평화 그 그리움으로166(5.18기념공원)
2008.4.28 평화 그 그리움으로167(광주 문화의전당)
2008.4.29 평화 그 그리움으로168(광주 우다방)
2008.5.27후이넘의기억2-춘천마임축제,명동,중앙로건널목
2008.12.13-14시린겨울-이름없는공연 밤샘영상회(옛 전남도청3층)12.13-14
 
2009.5.4평화 그그리움으로236(전주한옥마을영화제,차마당)영상공연
2009.5.5-6평화 그 그리움으로237,238(광주 옛 전남도청별관)
2009.6.13눈되지못하고눈되지않고-2009년6월 5월광주에서(옛 전남도청3층)6.13
2009.6.13도청별관01(광주 옛 전남도청)
2009.6.28눈되지못하고눈되지않고07-(광주 옛 전남도청)
2009.6.28-29도청별관02(광주 옛 전남도청)
2009.7.27평화그그리움으로244(광주엣전남도청오월의문걸개그림앞에서)
2009.7.27평화그림004-오월의문?(광주엣전남도청오월의문걸개그림앞에서)
  ...
우리가 마을에 ..고마리 작은 학교 연극수업 마지막 연습 정리
 
우리가 마을에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을 만들었어요.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만들지 못하고 수업의 한편에서 개인작업으로 만들어야 했던
영화관의 거의 완성된 종이조형물을 아이들 앞에 선보였습니다.
극 안에선 그들이 디자인하고 만든 것으로 나오지만
그리고 그렇게 같이 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무관심으로 미쳐 그렇게 같이하지 못하고
무심의 한편에서 만들어온 작은 조형물.
장난감같은 그 조형물이 장난처럼 듣고 흘려 버리면서 진행해 온 아이들에게
어떤 무게감으로 받아들여질까 궁금했습니다.
같이하고 싶었으나 그리고 그런 마음 가져주길 바라며 기다렸으나
같이 생활하는3주간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아서
같이 만들 수 없었던 마음도 얘기하면서
그래도 이제 이 영화관을 마을에 드리고 싶어 만들은 사람들이 자신이라고
배역처럼 자신을 담으면서
평화를 향한 마음을 조금은 진실되게 장난이 아닌 진정한 가슴으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니 몇 아이는 그렇게 하고픈 눈빛을 쥐어줍니다.
장난처럼 변하는 마음을 그대로 따라 주다 보니
한번 장난으로 얘기한 것 마져도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믿어주는 방식의 수업도
아이들에게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는 듯 적응되어갑니다.
진실만을 얘기하며 상대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 모두를 진실로 믿고 따라주는 세상에선
농담이나 거짓말은 오히려 자신을 외로운 존재로 만들어주게 됩니다.
익숙한 거짓말과 농담 언어의 왜곡이 오해를 만드는 일이 없는 세상을 노력하며
수업을 진행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하루사이에 또 바뀌고
어제는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 오늘은 자신도 하고 싶어져서
어제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각 장면을 이해하고
그 장면장면에 자신의 참여를 약속합니다.
 
다음주 공연을 앞두고 워크숍 마지막 주 수업
각 장면별로 등장할 인물들이 다시 구성되었습니다.
 
1장 영화관을 디자인한 사람들
2장 영화관 만들기 작업하는 사람들.
액자 및 장식하는 사람들-
건물을 조립하는 사람들-
3장이 영화관을 만들고 난 후 그 곳에서 가질 꿈을 얘기하는 사람들
4장 평화롭게 노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촬영하는 사람.
2010년 3월 25일 목요일오후 8:44:42
..............
4대강순례공연영상집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마산에서의 두 번째 상영회
 
그래도 간혹 살다가 같은 그리움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수가 있습니다.
그저 예의상 담론처럼 나누는 환담이 아니라
절실한 가슴으로 누군가와 얘기 나누고 싶어서
다가가 돌아보고 공연하고 만든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데
아무도 관심없어 시간을 놓치고 덮쳐 버리는 일이 다 반사인 세상에서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만나자고 연락주고 기다려 함께 시간내주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화두가 우리의 삶을 위한 이익이 아닌
나 아닌 생명과 자연을 향한 안타까운 그리움이어서 더욱 감사한..
시천에서 낙동강까지 그 두 번째 영상회는 그렇게
처음 가보게 되는 마산이란 도시에서 생명과 환경 그리고 사랑과 자유에 관심갖고
사는 분들.
시와 책을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한 달에 한번 금요 문화 산책이란 이름으로 모임을 마련하는 곳에
다소 지루할 수밖에 없을 64분의 시간을 영상회로 배려받아서
강을 노래하는 시낭송으로 문 열어주시고 그대로 흐르게 하라는 내용의 노래로
영상회의 마무리를 해주십니다.
작은 자유를 찾아 떠나는 욕심없는 말걸기에 공감해주고 바라봐주는 이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그렇게 다스한 공유의 시간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
이 세상 또 어디에 선가 한 두 사람이라도 다시 만나 같이 꿈에 잠길
시천에서 낙동강까지 세 번쨰 영상회의 만남을
또한 번 기다리면서
 
 
2010년 3월 28일 일요일오후 6: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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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그림008-마산,50주년 315의거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그 두 번째 영상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산의 3월을 만납니다.
50년지나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민주화를 향해 죽어간 이들의 아름다운 갈망.
그리고 자부심.
하지만 이 3월 26일 서울 어느 교회에선 3.15의거를 있게 한 독재자 그의 135주년
탄신기념식이 진행되고 같은 정부에 의해 역사는 교묘하게 정리되며
인간의 교활한 욕구와 자기합리화에 이용됨을 혼란스럽게 보게 됩니다.
마산,번화한 도로 사이에 서있는 3.15의거탑.그리고 이어져 걸어보는 3.15길.
그간 작은 도시만의 얘기로 담아내야했던 3.15의거의 국가 기념일 지정을 맞아
기억해온 이들의 이름으로 아리게 혹은 서글프게 그 날의 얘기를 되새기는
기념행사가 마련되는 경남의 민주도시 마산의 3월 그 한 자락에 서보는
이름없는공연 평화그림 그 여덟 번째 시선.
2010년 3월 28일 일요일오후 6: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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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이름없는공연은 제주아닌 설악에서 4월을 기리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축제
4.3 62주년을 준비합니다.
 
.4월엔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 어성전에서 제주 섬얘길 상영합니다.
지난해 몇 차례 홀로 여정을 기획하고 다가가 함께 한 후 그해 겨울-대정에 이어
마지막 순례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제주섬.
처음부터 그랬지만 그래도 몇 번은 만나보았던 사람들마저도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어 버린 쓸쓸한 그곳.
추하게 잃어가는 선한 마음들을 뒤로 하고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조차 미련없이 버려야 하는 서글픔으로
광주 그리고 제주를 보내주어야 하는 해.
올해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제주행을 포기하고
어성전에 생기는 두 번째 평화영화관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에서
더더욱 낯설어할 사람들을 피해
그 아픔모두 바라보고 얘기나누어줄 산야와 바람 그리고 나무들 앞에서
63년세월이어온 4월 제주섬 산야의 얘기를 들려줄 개봉을 준비합니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 준비하였으나
아무도 관심없어  쓸쓸히 찾아간 제주에서
처음만나는 열명 남짓한 사람들만이 다가와 장소를 마련해주고 보아주었던
[제2 14처-그해 겨울]
그리고 이 나라 어디에서도 관심 있는 이 찾을 수 없어서
4월에도 같이 보지 못했던 그 겨울의 4월그리기.
 
2010년 4월 이름없는공연은 제주 아닌 설악의 깊은 산골에서
한라산 그 자락 안에 담겨졌던 그 얘기들을 다시 나누며
무심과 이기의 인간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산야와 함께
나무처럼 돌처럼 바람처럼 그리고 별달 햇빛처럼 그 4월을 기리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축제
4.3 62주년을 준비합니다.
2010년 3월 29일 월요일오전 7:25:26
2010년4월3-10일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에서 가지는
62주년 4.3 이름없는공연의 4.3순례공연영상회 프로그램
 
14처-이정표를세우며(35:35)
2006년2월1일부터 2월14일까지 하루한곳씩 14일간 14곳의 제주섬 4.3유적지를찾아순례하며
이정표를 세웠던 14처연작 첫작품의 공연기록l
제2 14처-그해 겨울(45:11)
2008년1월29일부터 2월4일까지 그리고 다시 4월8일부터 30일까지
4.3 60주년제주에서 그린 그해 겨울 넋들을 찾아간 순례공연기록. 
제2 14처 대정 (24:11)
제2 14처-마지막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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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14처-대정,plfe2009(21:09)
미향마을의 우편함05-춘천마임의집뜰(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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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14처 순례를위한 순례영상집1(4:33)
제2 14처 순례를위한 순례영상집2(3:13)
제2 14처 07- 끝나지 않은 노래(8:09)
제2 14처-815 61주년슬픈분단날에(12:48)
 
우리이젠다시헤어지지 말아요(4.3 59주년워크숍공연)(10:00)
2007년4월23일부터 25일까지 2박3일간 동광리 잃어버린마을 무등이왓에 찾아가
마을을 다시세우고 살며 넋들과 함꼐한
이름없는공연의 4.3민족극한마당워크숍공연기록  
이름없는공연 4.3제주연작 공연작품사진집
14처 2006.2.1-2.14
2006.2.1제주낙선동성터
2.2제주목시몰굴
2.3제주표선백사장
2.4제주다랑쉬마을
2.5제주성산알출목터진목
2.6제주북촌옴팡밭
2.7제주함덕백사장
2.8제주원동마을
2.9제주무등이왓
2.10제주동광큰넓궤
2.11제주정방폭포소남머리
2.12제주동광헛묘
2.13제주섯알오름학살터
2.14제주백조일손지묘 
2.18축제소극장
3.31샘표스페이스
4.8 대구228공원 4,9 31주기추모문화제
7.29산골마을예술축제-자계리
8.2 실험예술제-정동진
8.4 민족극한마당-성주
2007.4,28제주문예회관 4.3평화인권마당극제
 
제2 14처를 위한 4.3순례 영상집 1
제2 14처를 위한 4.3순례 영상집 2
제2 14처를 위한 4.3순례 2007.6(제주,뭍)
제2 14처-그해 겨울(2008.1.29-2.2)-제주
제2 14처-60주년4월(2008.4.1-4.7)제주
제2 14처-4월제주(2008.4.8-30)제주
제2 14처-일곱 번째-,끝나지않은노래PARTIZAN(2008.10.10청주)
제2 14처-귀향(2009.4.11-14)제주
제2-14처 그해겨울 제주첫상영회(2009.4.13)
제2 14처-815(슬픈분단날 임진강에서)2009.8.15
제2 14처-대정읍(가파도ㅡ마라도)2009.9.9.-11
제2 14처-대정(plfe2009돌체소극장)200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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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서 만난 낙동강..시천에서 낙동강 하구까지-열 번째 얘기
 
4대강순례 열 번째 공연 안동에서 만나는 낙동강
안동에서 시내 버스를 타고 다가가 바라볼 수 있는 낙동강을 찾았습니다.
택시 운전 기사 한 분이 다가와 어디를 갈 거냐고 묻습니다.
낙동강을 보러 왔습니다.
그러자 답합니다 저어 쪽으로 조금가면 낙동강입니다.
아니 제가 보고 싶은 것은 개발되지 않은 낙동강입니다.
잠시 멈칫거리시다 답해줍니다.
이곳 낙동강은 거의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콘크리트가 발라지면 이미 개발입니다..
 
시내를 끼고 흐르는 낙동강을 찾아 걸어봅니다.
저편에 안동댐이 보이고 4대강사업 보작업 공간처럼
이곳도 여지없이
포크레인과 트럭들이 강을 파고 모래를 나르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아름답게 피고 지던 습지는 생명이 피어날 봄을 맞으며 죽어가고 있었고
흐름을 막히고 돌려진 물길은 곳곳에 고여져 흐름을 멈추고 맴돕니다.
여기저기 인위적으로 가져다 놓은 돌조각들.
인간의 욕구에 따라 인위적으로 해체되고 꾸며지는 놀이공간을 만들기 위해
자연그대로의 생태와 흐름을 파괴당해야 하는 또 하나 찬탈의 현장.
습지에 피고 지던 꽃 모래를 만들고 조약돌을 만들어내던 돌멩이.
안동시내한편 고수 부지 터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얘길
또 하나 새로운 작업의 화두로 가슴에 안습니다..
2010년 3월 29일 월요일오전 8: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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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개발사업에 학살당하는 나무와 산 곁에서 바라보는
262일째 평화 그 그리움으로
 
농촌 마을 개발 사업이란 제목으로 이뤄지는 또 하나 개발의 현장,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선발된 마을들이 경축 속에 40억-70억의 예산을 따내서
이웃지역의 부러움 속에 공사를 시작합니다.
 
아름다웁고 정겹던 고향의 산촌에 포크레인이 들어와 수십 년 자란 나무를 자르고
산을 깍아 개발이란 이름의 합의하에 나름의 미래와 희망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저 나무들 저 강과 언덕,그리고 산봉오리들이 무참히
파 헤져 진 후에 생길 자연을 파괴시킨 후 만들어 낼 친환경이란 이름의
이기적 인간지향의 마을.
그곳에서 인간이 지향하며 살게 될 마을이란 어떤 것일까요?
삼거리 버스 정류장에 마을주민들의 경축현수막이 걸린 강원도 현성권역도
이 봄 눈이 녹기 시작하자 공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선 무참히 살해당하는 산등성이의 벗들...
 
실버스타인은 정말 나무가 인간에게 아낌없이 준다고 생각했을까요?
나무는 그저 저렇게 처참하게 밑둥까지 잘려 학살자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 뿐인데..
이기심만으로 모든 것을 빼앗고서 상대가 주었다고 감명동화를 써내는 인간의 양면성.
 
그리고선 자연 아닌 곳에 인위적으로 나무를 심고 물을 담고 산을 조성해서
친환경과 생태,자연사랑을 얘기하며 그 인위적 체험공간으로 제 이익을 만드는...
2010년 3월 31일 수요일오전 9:05:48
http://yegie.com/330peace/page_0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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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마을로 유학온 아이들에게 제안한 평화에 대한 응답,
이백 예순 셋째 날의 평화 그리기
331평화,그 그리움으로263(고마리작은학교에서의 평화공연준비)
2010년3월,고마리 작은 학교의 개설과 함께 찾아와 한달간 머물며
도시에서 산촌유학이란 이름으로 강원도 산촌마을에 온 아이들 곁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며 그들에게 제안해본 평화라는 화두.
사람들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중 하나일 평화에 대한제안.
누구나 쉽게 생각하고 제 위주로 생각하고 자기편안만을 이유로 다다렀다고 생각해 버리게된
서글픈 평화라는 낱말.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을 지어보기로 정하고
그들 앞에 제안해서 스스로 절실한 가슴으로 만드는 것처럼 공연을 구성하고
평화엔 낯설은 아이들에게 더디지만 차근히 쥐어줘 본 한달 간의 기다림.
4월1일의 공연을 앞두고 마지막 3일간 최종구성된 공연의 구성본을
반복해서 정리하고 리허설 해 보면서
아이들 마음에 하나 둘 심어지는 평화에 대한 어휘를 찾아내려 노력해봅니다.
그리고 그에 답해서 그저 장난처럼 접하던 아이들이 하나 둘
평화라는 낯선 화두에 마음을 담아줍니다.
그리고 조금식 꺼내 보여주는 세상을 향한 작지만 아름다운 숨겨졌던 귀한 마음들도
간혹 보이고.
혼자서 만들었지만 그 혼자 만들어본 장난감 집같은 작은 영화관의 제시가
아이들에게 힌트가 되고 매개체가 되어 아이들은 마침내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영화관을
만들고 어눌하지만 마음이 담긴 아름다운 종이집을 한 칸 한 칸 만들어서
어성전마을에 세울 종이집은 참 많이 풍성해졌습니다.
최소한 제안자인 저희와,그 제안을 받아들여 같이 꿈꾸고 실천한 아이들에게는
이 영화관은 장난감이 아닌 진짜 영화관입니다.
366일 하루도 잊음없이 평화 그리기  그 이백 예순 세 번째되는 날.
 
한달 간의 기다림이 곱게 열매맺어
아이들에게 쥐어주는 평화의 제안이 하나의 그리움의 공연이 됩니다.
그리고 그에 답해서
어른들의 지식과 상식으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마음과 제안의 응답으로 채워진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을 만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연극이 마지막 리허설을 준비합니다.
 
 
http://yegie.com/331peace/page_01.htm
2010년 3월 31일 수요일오후 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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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을에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을 만들었어요..
이름없는 영화관 어성전편 만들기,
산촌유학 아이들과 함께 만든 꿈처럼 들려준 공연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
함평군 산내리에서 시작했으나 고마리 작은 학교가 어성전에 세워지고
그 아이들과 연극수업을 하게 되면서
두 번째 영화관이면서도 설치되는 첫 영화관이 된 어성전 평화영화관.
그 개설을 준비하는 한 쪽에서
평화에 낯선 아이들과 같이 한달간 같이 생활하며 만들어본 부속공연.
비록 연극이지만 사실적 배경과 상황 설정 속에서
실제로도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얘기를 소재로 참가자들에게 화두를 쥐어주고
가능하다면 진실한 마음으로 ,그리고 그것이 어렵다면 그저 연극이란 형식으로
작업에 임해서 하나의 인물이 되어보자고 제안하고 기다린 시간들. 공연을 만들어가면서 그 기다림에
최소한의 감성으로나마 답해주는 참가자들.
우리가 살면서 어렵고 불가능하게만 생각하는 일이 연극이란 핑계로 가장하면
이렇게 쉽게 접근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변화되는 자신의 모습에 점차 익숙해질 수도 있는..
 
스스로 준비하여 굳이 바라지도 않는 마을사람들에게 조심스레
진정 그렇게 나 아닌 남을 위하는 평화를 만들어 줄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공연의 과정에선 그 시간만큼은 우린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고
또 다른 세상을 꿈꾸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꿈꾸는 일에 약간은 익숙해져서
그 마음과 실천으로 인해서 공연은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이
어느 슬픈 사람의 외로운 홀로 그리움의 산물이 아닌
이렇게 하나하나 사람들의 고운 마음에 의해서
만들어 졌으면 하고 꿈을 꾸며 마치는 공연.
우리가 마을에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을 만들었어요.
연극이란 게 그 만듦의 과정과 형식이 자유로와서 오히려 낯설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난으로 접근하는 동무들마져 타이르며
귀한 평화 만들어 준 자유로운 작업자들.
그리고 마음을 모아 직접 만들어 본 영화관의 부속건물들.
그 안에 마음을 모아 세세히 그리고 장식한 평화의 이미지들.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던 아홉사람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척박해가는 세상에서 사람에 대한 희망 쥐어준  
아홉사람의 마음에도  감사드리고.
 
2010년 4월 1일 목요일오후 4:11:51
http://yegie.com/cinema02m1/page_0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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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주년 4.3 이름없는공연4.3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어딘가에서 이 4월을 맞을 당신을 만나고파 초대합니다.
 
올해도 4.3은 제주에서만 기획되고 진행됩니다.
정작 그것을 기리고 상기하며 추모해야 할 주체는 뭍인데
62년이 지나도 언제나 처럼 남도는 그대로 고독한 섬이며
그들만의 아픔을 딛고 상생을 추구하는 아린 시간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행사라는 것.
정부의 탄압 속에서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지내야 했던 시간에 준비하고 치루던 그 절실함은
여전히 애매한 정부의 국가 기념일 행사 안에서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준비되고 행해짐으로서
그만큼 자신도 모르게 모질게 역행되어가는 모습 마져 보이고.
그렇게 행사와 겉치레 속에서 만들기에 급급해서 진정성은 축소되어갑니다..
 
62주년 4.3은 그렇게 영혼 앞에 죄스러운 모습만 커가는 30주년 광주를 모델처럼 답습하면서
어리석은 체험학습의 교육장으로, 한바탕놀이의 축제화로,눈물조차 잃어버린 형식의 이기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박제된 역사가 되어갑니다.
 
지난 몇년 간의 4.3제주행을 멈추고
올해는 스스로마져 그러한 형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마침 존재하는 공간,강원도 깊은 산촌 설악의 자락에서 한라의 얘길 그립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던 그 첫 만남부터 조금은 그들의 마음을 추측하게된 지금까지
그동안의 순례공연의 기록을 정리하고
4월이 오면 세상 어디에 살다가도
못내 그리워 가슴아려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혹시라도 있다면
그와 함꼐 나그네처럼 만나서 서로 설명없이 바라보며 그리움 나누고자
뭍 설악 자락 한구석에서 일주일간의 기다림을 준비합니다.
 
예상하기는  4.3이라는 가슴새긴 화두를 안고
이 깊은 산골까지 찾아와 영상앞에 분향할 사람이 7일간 한 사람도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늘 그렇듯 도시에서도 제주에서마져도 아무도 응답해 주지 않았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절실해지고 준비해야하는 시간.
넋들 앞에 저희라도 지키고 싶어서
이 62주년 4.3에 이름없는공연의 4.3영화제를
있지도 못할 서글픈 만남의 공간으로 준비합니다.
 
그저 4.3을 알고 싶어서 교육용 홍보행사로 알고 오거나
그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얻어가려고 오는 이가 없길 바랍니다.
자신의 살아온 삶의 시간 속에서
62년전 이 땅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연속되는 시간의 연결고리를 가슴아려해보았던 사람.
4.3이란화두와 제주섬의 영혼들이 가르쳐주는 인간의 도리에 대해 자각해 본 적이 있었던 사람.
일상으로이어지는 삶의 시간안에서 다시 4월을 맞으면
다시금아려지는 가슴으로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을 정진할 시간을 찾아보아야했던 그런 사람이
이승에 아직 살고 있다면
단지 그같은사람만을 만나고 싶어서 이 작은 영화제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2010년 4월 어느날 일상에서 해방된 스스로가 마련해낸 시간으로
영혼들에게 다가서서 절실한 가슴으로 얘기 나누고져 하는사람이 살고 있다면
혹시라도 하는 가슴으로 그들을 만나고자 이 영화제를 준비하고 기다립니다.
 
아무나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4.3이 그저 자신의 삶의 시간 속에 하나의 허영과 장식이 되는 모습으로
ㄱ랫다더라 하면서 괜한 걱정하고 눈물짓다가 이내 잊어 버리고 다시 제 안위를 위해 살아갈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영혼의 제단에 누되지 않게
이 영상회를 어리석은 짓이라 단정하며 외면해 주십시요.
 
4월3일저녁 7시반 제2 14처 그해 겨울을 밤하늘의 별들이 보게 상영합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일주일간(4월4일-10일)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2리 마을에있는 고마리작은학교의 방하나를빌려서
그곳에 조그마한 영상상영의 제대를 마련하고
세상엔 없을 사람을 기다리며
제주섬의 순례얘기를 담은 영상회를 지속합니다.
 
이시기 이승에
혹시라도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가와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관객이 아닌 사람이 두 사람 아니 한 사람만이라도 있어서 찾아와
마음 같이 나눌 수 있다면 이 영화제는 많은사람이 왔었다고 행복해할겁니다.그리고
영혼들 앞에 살아 있는 이들의 망각과 오만에 대한 죄스러움 달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지 않아도 행복할겁니다.
넋들과 함께 같이한 설악산자락에서의 일주일간의 시간여행이
이 4월을 보듬어줘서..
 
영상회에 오실 땐 하얀국화 한송이 같고 오셔야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2010년 4월 2일 금요일오전 9: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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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주년 4.3날 설악산자락에서 함께 한 이름없는공연4.3영화제 그 첫날에 |
 
홀로 영상을 틀어놓고 제대 앞에 앉은 기분으로
62주년 4.3을 지낼 줄 알았는데
많은 분이 와주셔서
60년 지나 다시 보고지는 어진 영령과 넋들 앞에
살아있는 이들의 마음 전해드릴 수 있는 귀한 영화제가 되었습니다.
 
62주년 4.3을 같이 얘기하면서
현재의 우리를 담론해보았던 님들,
기억할 수 있게 그리고 또 마음과 작업이어갈수있게
이곳에서도 뵈울수 있음 좋겠습니다.
 
강원도 설악의 자락에서
한라와 남도의 그 섬 그리고  채 못이루고 별이 되어 떠나간 님들의 얘기나눈
62주년 4.3 이름없는공연 영화제
같이 했던 작품제목은 "제2 14처-그해 겨울"입니다.  .
2010년 4월 3일 토요일오후 10: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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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  그 두 번째 꿈, 어성전에 세우고 그리고 헤어지며.
 
3월한달간 양양군 산촌유학 고마리 작은 학교에 아이들과 함께 얘기 나누고 들려주면 만든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 그 두 번째관이 어성전리에 세워지고
62주년 4.3 이름없는공연 4.3영화제로 그 개관상영을 마칩니다.
 
강원도 설악 자락 조그마한 산촌 마을에 세운 이름없는영화관은
아직 주민들에겐 인식되지 못한 채 마을한편 길가에 설치한 스크린에 영상을 쏘면서
그 개관을 마쳣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을 같이 만들고 운영을 이어가 주었음 하며 제안한 고마리 작은 학교 아이들조차
자신들이 살면서 이 마을 분들과 같이 나눌 평화를 위해 이 영화관이 사용되기를
직접적으로 체감하지는 못한 채 누군가가 와서 보여주고 설치해주고 가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라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듯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만듦의 과정에서 들려준 얘기들을 모아본다면
아니면 혹시라도 이 영화관을 만들며 적은 작업노트를 관심갖고 읽어라도 보게 된다면
그 들에게 쥐어주고 싶었던 그래서 그들이 이 영화관을 가지고 그려낼 평화에 대한 꿈을
이해할날이 올지도 모르겟지만
언제나 그러듯 이름없는공연은 또 하나 쓸슬한 가슴으로
함께 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만을 간직한 채
어성전리 작은 학교 마당에 이 영화관을 설치하고 갑니다.
 
첫날 실내에서 상영하고 둘째날 그동안 준비해온 야외 설치를 마치고 상영회를 가졌습니다.
밤이 되자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마침 바람이 잦아서
하나하나 영화를 보러 와주는 별빛들의 찾음과 둘러앉은 시선을 함께 하면서
한라와 섬에서 담아온 얘기를 설악의 자락에서 들려주고 들어주는 아름다운 밤.
 
산내리 보다 먼저 만들어져서 야외에 설치되고 상영회를 가진 어성전의 이름없는영화관은
이렇게 아름답게 하지만 서글픈 모습으로 시집가는 아이처럼 쓸쓸히 이별식을 가졌습니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천덕꾸러기 취급하지 않고 귀하게 보살펴주면서
평화와 사랑을 교류하면서 제게도 소식 전해주고
다시 불러주어 만나는 날이 또 있었음 좋겠습니다.
 
그저 별로 쓸모없는 물건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게
누군가 애정을 가지고 가꾸어주길 기대하면서
그래서 편지함에 고운 편지도 많이 쌓이고 또 답장 나누며
구석구석 작은 방마다 하나하나 즐겁고 아름다운 의미의 일이
이 슬픈 세상에서 고운 눈물꿈처럼 이어져 이뤄지기를.
 
첫 상영회를 가지던 4월4일 밤.
순서된 4.3 영화제를 마치고 마지막 상영은
이 영화관을 지켜줄 아이들이 이 영화관을 같이 만들면서(?) 공연한
[우리가 마을에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을 만들었어요]를 영상으로 담은
영화였습니다.
그 연극 속의 그들처럼 그런 꿈으로 그렇게 실천하며 이 마을에서 이 영화관이 가꾸어지길
홀로 꿈꾸던 밤.
하늘의 별들이 관객이 되어 그 허망한 꿈마저 포근히 안아주었습니다.
이루지 못할 꿈이어도 괜찮을 인간세상에선 이해 이루지 못할
바보스런 이 가치에 대해서..
http://yegie.com/cinema02/page_01.htm
2010년 4월 5일 월요일오전 9:33:02
.....................
62주년맞는 4.3을 설악의 자락에서 얘기하는 것이 뜽금없지만..
 
4월3일부터 10일까지 8일간 어성전리 설악의 자락에서
62주년 4.3 이름없는공연4.3영화제를 열고 있습니다.
62주년맞는 4.3을 제주아닌 설악의 한끝자락에서 얘기 꺼내는 것이 뜽금없지만.
우리에겐 이 4월 제주가 아닌 곳, 제주 사람 아닌 사람들이 하나라도 모여 4.3을 기리며
자신을 돌아보고 그 역사 안에 담긴 사랑을 기억하려 하기에  
제주에서의 4월행사속에서 순례하며 맞았던 그 어느 해와는 또다른 가슴으로 이 만남이 소중합니다.
한라의 얘기를 그리고 남도의 얘기를 설악에게 그리고 동해에 들려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사람보다는 역사를 묵묵히 지켜온 이 산야와 같이 얘기 나누고 싶어 제안하고 실천하는 이 일주일간의
시간이 기대에 대한 미련과 인간의 실천적 그리움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서야
이렇게 찾아집니다.
도시나 서울에서도 제안하면 아무도 오지 않았던 이런 기다림에 익숙한 제게
설악의 자락에서 자연과 벗하며 홀로 그리려 했던 4월의 그리움에
낯모를 분들이 찾아와 귀한 얘기 나누며
진정한 가슴으로 그해 겨울의 얘기를 들어주고 저 또한 영상만으로 전해지지 못하는 아픈 얘기를
순례의 얘기를 속절없이 털어 놓곤 합니다.
어찌 보면 홀로 혹은 안내받으며 순례했던 그 시간을 넘어와
이렇게 어설픈 정부의 이중적 혼돈의 형식 안에 치뤄지는 행사의 공간아닌 이 한적한 곳에서
정말 선한 마음으로 찾아와 영화제를 같이 보면서 얘기 나눠주는 사람들과 만나는
이 7일간의 4월이 가장 아름다운 4월나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더 찾아와 줄 사람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주일간 매일같이 기다립니다.
 
'혹시라도 언젠가 만남이나 스침의  시간 안에서 제주섬 4월얘기와 분단된 이 나라의
끝나지 않은 슬픔에 관심가지고 한마디라도 얘기 나눴던 그들이
순례공연길에 같이 순례하며 하루라도 같이 이정표를세우고 공연하고 노래했던 이들이
찾아와서 같이해줄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그 때의 그 행동이 일회성 형식적 감정적 행동이나 거짓공연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 안에 담아둔 귀하고 진실한 사실이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면서..
뭍에서 제주 사람아닌 그들을 그리워하는 타지인이 준비한
유일한 4월얘기에
한 사람이라도 더 다가와서 같이해준다면
그래서 뭍에서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제주사람들의 아린 가슴이
조금이라도 열릴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평화가
이 조그마한 4월의 영화제를 매개로 한 사람의 가슴 안에서라도 더 가능해진다면..
2010년 4월 5일 월요일오전 10:22:39
http://yegie.com/6243movfes/page_0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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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일째 평화 그리기- 설악에 전하는 한라,섬이야기
 
62주년 4.3 이름없는공연4.3영화제를 준비하고 이제는 아무도 오지 않는 이곳에서
섬에서 약속드린 대로 그 얘기 전하려 뭍 위의 어느 산 그 자락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인간의 분단과 갈등의 그 아픔을 바라보았던 그들에게
아직도 지지 않는 인간의 그 모진슬픔 바라보며 살아가는 한라의 얘기 전합니다.
굽이져 오르는 산길,마지막 남은 비포장의 국도를 걸어 고개를 오르며
같은 하늘 아래 중첩되어 이어지는 시간의 얘기를 전합니다.
 
그리고 산을 내려와 바다로 그 섬의 얘길 전하러 가는  길목에서.
2010년 4월 5일 월요일오후 10:26:04
 
..............
언젠가 물으셨지요? 그래서 다녀와 전해드립니다. 이 서글픈 4월에
 
언젠가 드린 약속. 그 약속 지키기 위해 ,그래서 다녀와 전해드립니다.
이 4월에 ,이 서글픈 4월에.
21일간의 직시.끊어진 동해선 일곱 역을 걸으며 그리던 얘기,
경원선 어딘가에서 처럼 만났던 보이지 않는 사람.종이배들의 행진.
 
어제 설악 지나 오대산자락에 다가가 드린 얘기,
오늘은 길을 더 걸어 다시 채 못다가갈 수밖에 없게 된 이 나라.
비바람찬 속초등대에 올라서
내려다보이는 동해바다에 님들의 얘기,님들의 소식 그리워하는 하늘바다에
눈시울 적시며 전합니다.
62년흘러도 못내 이룬 평화를 그리워하며
평화 그리기 그 이백 예순 닷새째 날에 ..
 
"이곳을 보고파 그리워할 그에게 전해주려고
오늘도 사진기와 메모집을 갖고
마을을 거닙니다.
 
그리고 건널목으로 다가가선
바람 열차를 기다립니다.
바람열차는
레일도 없는 하늘 저편에서 와서
그리운 편지를 전해받고
구름 속으로 사라집니다.
 
오늘 그는 기관사로부터
사진과 함께 편지 한 장도 전해받았습니다.
오름의 봄모습이
그립도록 보고 싶다는..

바람열차에 편지를 전해받고
다랑쉬를 찾아 떠나는 사람"
http://yegie.com/406peace/page_01.htm
2010년 4월 7일 수요일오후 3: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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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간의 직시 중 두 번째 에피소드
비오는 날 경원선에서 만난 사람
이름없는공연 공연대본(예기 신영철 작,구성)
 
1.식물학자
달리는 기차 소리
after the rain-kevin ken
 
민통선 이편에서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으로 올라갈
넝쿨 줄기를 키우며
그 열매가 이곳아닌 저 북방한계선 위 민간마을에
열리게 채소밭을 가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매년 씨앗을 뿌리고 특별한 열매가
나의 눈으론 보이지 않는 저 먼 북방에 열리게
해마다 새롭게 연구하고 개발해온
식물학자같은 한 사람..
그는 특수한 자료를 만들어서 그 고운 가루를
물에 타서 주기적으로 물을 줍니다.
 
언젠가 남 몰래 다가섰던 추모의 공간
사진 속에서 만났던 그리웠던 얼굴 
 
어느 비오는 날 
경원선을 따라 거닐다 만난
첫번째 사람이었습니다.
  
2.빨래
memory-그 섬에 가고 싶다
 
하얗게 빨래를 해서 하늘에 널면
바람이 다가와서 그 몸의 습기를 가져가면서
자신의 입내음과 향기를 남겨주고 갑니다.
그리운 사람의 옷을 빨래 널면
바람이 그의 내음을 찾아서 그 옷에 담아주고 갑니다.
비록 그가 분단의 한쪽에 살고 있더라도
바람은 그를 찾아서 그의 얘기를
그 작은 줄 위에 널린 그의 옷가지에 담아주고 갑니다.
 
바람 부는 날
오늘도 해도없는 밤하늘에 그는
보고픈 이들의 옷가지를 빨래 넘니다.
이윽고 바람이 다가와서 그곳의 얘길 전해주고
빨래에 담은 얘기를 전해받습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하얀 빨래들의 움직임.
그 속에 떠나온 곳 지금은 가지 못하는 곳에
서로 나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운 밀서가 있습니다
 
비내리는 날
해도 없는 밤하늘에
보고픈 이의 옷가지를 빨래 널고 있던 사람
슬퍼 다가간 우리에게
오히려 낯설게 사랑을 얘기해주는
미소진 얼굴
 
어느 비오는 날
경원선을 따라 거닐다 만난
두번쨰 사람이었습니다
 
 3.바람열차-냇골
옴팡밭에서-별음자리표 mr
 
이곳을 보고 파 그리워할 그에게 전해주려고
오늘도 사진기와 메모집을 갖고
마을을 거닙니다.
 
그리고 건널목으로 다가가선
바람 열차를 기다립니다.
바람열차는
레일도 없는 하늘 저편에서 와서
그리운 편지를 전해받고
구름 속으로 사라집니다.
 
오늘 그는 기관사로부터
사진과 함께 편지 한 장도 전해받았습니다.
오름의 봄모습이
그립도록 보고 싶다는..

바람열차에 편지를 전해받고
다랑쉬를 찾아 떠나는 사람
 
어느 비오는 날
경원선을 따라 거닐다 만난
세번째 사람이었습니다.
 
 4.종이배지기
임진강
 
꽃이랑 편지랑 사진이랑
전하고 싶은 사랑을 담아서
개울로 강으로 바다로 나와
띄운 종이배들.
 
임진강을 끼고 흐르는 작은 마을 개울곁에는
힘겹게 여행하는 그 종이배들을
수리해주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간혹은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그분의 모습과
너무도 닮은 모습을 가진 분
 
어느 비오는 날
경원선을 따라 거닐다 만난
네번째 사람이었습니다 
.............................
 
평화 그 그리움으로 주행 속도 4키로미터를 제안합니다.
 
평화 그 그리움으로 다음주 작업을 준비하면서
언젠가 사잇골 가는 길에 만났던 도룡농과 개구리들의 로드킬.
그대로 가꾸고 싶어 작업 안에 담았던 인간아닌 뭍생명에 대한 공존의 노력을
다시 화두로 삼습니다.
그리고 장소 역시 우연히도 인근한 강원도 어느 산촌마을 .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이 봄이 오는 길목을 횡단하다가
새벽 혹은 저녁 마을도로를 오가는 자동차바퀴에 죽어가는 현장에서.
산책길 그 이유도 모르고 죽어간 아픈 주검들을 바라보며
본디 그들의 길이었을 그곳에서 낯설은 이방인처럼 죽어간 그들을 보며
무디어진 인간의 가슴을 향해 제안합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4킬로미터의 주행속도를 제안합니다.
이곳이 작은 동물들의 보호구역임을 표시하고
작은 동물들의 횡단구간임을 표시하여
그들이 피할 수 있는 속도인
시속 4키로의 서행운전을 제안하는 교통표지판을 세웁니다.
2010년 4월 7일 수요일오후 7: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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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그 그리움으로 -4키로미터 편,산촌유학아이들과의 두 번째 공연,시작하며
 
학교가는 길에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보게 된 아이들.
지난밤 그리고 새벽찻길에 치여 죽은 수많은 개구리들의 주검을 보면서 학교를 가는 산촌 유학 온 아이들에게
4키로미터는 공연이라기보다는 조그마한 행동의 제안으로 현장극의 모습을 띄게 됩니다.
아이들만의 작업이 아닌 생명의 공존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작은 산촌 찻길에서 작은 제안을 시작하면
혹시라도 작은 생명들의 서글픈 죽음이 줄어들 수 있을지 않을까?
그리고 나중에 나 자신이 혹은 이 공연에 참가한 아이나 그의 가족만이라도
봄이 오는 새벽길 자동차를 운전해 지나갈 때
자신들의 고향에서 예전처럼 횡단하던 길을 잃고 낯설게 죽어가는 작은 생명들을 생각하며
조금은 조심스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러한 화두에 공감하고 연극에 참여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통표지판이나 전단 같은 것을 만들어서 새벽길에 서서
저속운전을 유도해보겠다고 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아름답고 그 마음을 연극이라는 방식으로라도
이렇게 실존의 거리에서 행동해 볼 그 시간이 이뤄진다면
아이들에게 낯설고 막연하게만 여겨졌던 평화는
스스로가 생각하고 택한 행동 안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2010년 4월 8일 목요일오후 6:44:35
....................
 
5.18 30주년 5월광주 가장 아픈 가슴으로 5월을 준비하며
다시펴보는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중
2000년 20주년 5월의 작품 [잊지마세요]공연대본.
 
잊지마세요
공연대본
신영철 작 구성
5,18 민주항쟁 20주기 2000.5.18금남로와 망월동
 
무대-거리.탁자와 의자두개
(빈공간)
1.
music-in 현경과 영애-아름다운사람
(여자의 집.떠나는 날 아침 아이와 남편과 인사하며 촬영여행을 준비한다)
  
사람들.
원래 하나였던 우리가 이렇게 여러 개의 모습으로 태어나 살아간다.
아름다운 진화를 위해 시차를 두고 고향을 떠나오던 그날,
그날 그곳에서의 우리들의 모습과 마음을 까맣게 잊어버린채말야..
 사실 우린 얼마나 자기영혼의 실체를 기억하고 있을까?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으로 다가와 가져보는 이 시간 동안 원래 하나였던 우리가
서로 다른모습으로 태어나 너와 나 혹은 우리와 남으로 다시 만나는 이 순간 안에서.
고향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려 존재의 의미도 잊어버린 우리들,
회귀의 그날전에 미리 기억하고 잊지않으므로서 더많이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는 없을까?
   
2.
(여자. 기차역. 광주행 표를 사들고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광주로의 동행을 마지막으로 권유하고 불확실한 대답을 들으며 전화를 끊는다.)
   
인식하거나 기억하지도 못하는 우리들의 행동과 삶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앞에 [잊지마세요]란 말을 건넨다는 것은 정말 무리한 일일지도 몰라.
작업을 준비하면서 세상을 보다 가까이서 바라보고 사람들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처참하리만치 외로운 이의 독백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이 작업은
처음부터 아무도 공감하지못하는 실패작이 될거란걸 알아.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준비하고 실천할 수 밖에 없는 말 한마디는 잊지마세요 하는 그 말 한 마디야 .
하긴 그들이 비록 들을수없는 목소리로 들리지않게 얘기할 뿐이지만.
  
3.
(순례자-아침에 방에서 일어나 짐을 챙긴다)
 
아주 오래전 아니 어제였을까?
어느 조그마한 마을
우린 그곳을 돈암동 혹은 [51817]이라고 부르기도 했어.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 그 사람들은 어디서 그 사랑을 이어가고 있을까?
기억하고 있을까? 안타까워서 기억하세요 하고 말해보려하지만
그말을 들어줄 여유도 없이 슬픈 모습으로 자아에 빠져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비참한 욕구에 침몰된 기억잃은 영혼들.
그래서 다시 그리움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잊지마세요 하고 속삭여라도 보고싶어.
  
(여자. 광주 도착. 버스 정류장에서 첫 번째 목표지로 가기위한 버스편을 찾는다.
옆의 사람에게 물어 확인한다.)
  
사람들은 늘 자신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하고픈 것 안에서
사랑이나 선을 찾곤하지.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은 사랑하고픈 것만 사랑하며
행동하고픈 것만 행동해.
그래서 자신의 이기심의 전제안에서 사랑하고 봉사하지.
하지만 선이나 의를 위해 자기를 버리지는 못한다해도
그 조그마한 이기적사랑의 불씨가 영혼을 기억하는 시작은 될거야.
   
(여자,전시회가 열리는 곳을 촬영한다.
또 다른 행사장으로 계속 이동하며 촬영을 한다)
 
(순례자-길을 걷다가 경복궁에 도착 입장권을 사서 궁내로
들어가 명성황후 조난지에서 분향한다.)
 
 
(여자.광주의 다른 행사장을 찍는다. 지친 모습으로 잠시 쉰다.
전화를 걸어 다른 행사장의 일정을 확인하고 이동로를 재조정 하기도 한다.)
(순례자-길을 걷다가 어느 조그만한 간이역에 도착
팻말을 발견 헌화하고 선배에게 전화를 한다.)
 
4.
우리는 살아가면서 꿈처럼 현실을,
현실을 꿈처럼 인식하는 존재들이야.
하지만 자신을 구성하고있는 본질적 원소가 영혼임을 알지못하고 심신의
조각들을 본질로 착각하며 살고있는거야.
그래서 모든 영혼들의 귀한 본질을 기억하지못하고
3차원적 공간안에서 보고 듣는것에 급급해 이기적인 행복만을 추구하지.
 
(여자,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광주에서는 생각보다 얻어 갈 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는 푸념섞인 내용이다.
온김에 순애언니를 찾아보아야 겠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들이 떠나온 하늘에 대하여]처럼 이 작업은
우리가 뿌연 창을 통해 바라보는 불순함과 어리석음을
문을열어 바로 바라보는 훈련이며
시각의 전환이 되었으면해.
눈으로 보던 것을 눈을 감고 보고
귀로 듣던 것을 귀를 막고 들으며
정신이라는 뇌세포로 인지하던 것을
영혼으로 인지하는 작업의 징점다리 작업이었으면 하고말야..
 
 5. 
(여자,방송국에서 사람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애언니를 찾아보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다)
(순례자-지리산 피아골에 도착한다. 담배 한개피..)
(방송카메라앞에서의 여자의 인터뷰)
 
여자-
김순애 씨를 찾고있어요.
헤어진건 아마 76년도 였던 것 같고 ..그때 순애언니가 열여덟
전 열네살이였어요.
 
노동하시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저희 칠남매만 남아
정임언니랑 오도가도 못하고 방을 구하러 다닐 때 저희를 보살펴준 언니예요.
정임언니랑 저희 동생들을 보고 아무도 방을 내주지않고
문전박대할 때 순애언니가 우연히 저흴보고 자기집에라도 가서
같이 지내자고 해서 상계동으로 가게되엇어요.
불암산밑에 재현국민학교쪽 작은문방구가 있었고 그뒷쪽에
판잣집이었은데 단칸방에서 구로동 공장엘 출퇴근하는 언니였어요.
마침 주인이 없이 세들어사는 방이어서 주인눈치를 볼필요는
없었지만 그 조그마한 방에 혼자살기도 불편한데 싫은 표정하나도 안보이고
우리남매 일곱을 모두 한방에 데려가 그 겨울을 났어요.
막내가 네 살이었어요.
맏인 정임언니는 순애언니 소개로 공장엘나갔지만 그래도 여덟식구의 생활이란게 늘 부족한데
순애언니는 자기먹을 것은 챙기지도 않고 우리동생들만 주고 ..
동생들이 춥다고 이불싸움하다 저나 정임언니한테 야단이라도
맞아 울면 순애언니가 나서서 먼저 덮어주고 아랫목에 뉘우며 언니랑 저를 야단쳤어요.
 
네..넷째동생이 집앞 가게에서 빵을 훔쳐먹다가 주인아저씨에게
잡혀서 집에까지 온적이 있었어요. 정임언니는 없었고 저는 무서워서 나가지도 못하고 숨어버렷는데,
마침 아파서 공장엘 못가고 쉬고있던 순애언니가 달려나가 아저씨에게 죄송하다고 비는 거예요.
그리구 들어와서는 내가 울고있는걸보고 같이 막 울쟎아요.
넷째 동생에겐 한마디 야단도 안치시구..
그저 너희같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겟다고만 말하면서...
   
정임언니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어요. 25년동안 상계동에서의 그 겨울을 잊지못하고 늘 순애언니얘길 했어요.
꼭 찾아서 은혜를 갚아야한다구.. 아님 다른사람에게라도 꼭 언니의 은헤는 보답해야된다구..
20년전엔가 우연히 광주에서 부딪겼는데 그저 눈인사만 하고서 가시더래요.
정임언니이름은 기억하실거예요. 키가 적었고 좀 통통한 편이였어요.
 
(여자-방송촬영을 마친다)
   
6.
(언덕위의 바보 라는 이름의 까페.
까페주인-오늘 하루 사용할 물건과 물품들을 준비하고 챙긴 쇼핑백을 두손에 들고 까페에 들어선다.
준비해온 물품들을 꺼내어 정리한다.)
   
나는 이 작업에서 우주에 공존하며 별을 가꾸고 있던 모든 영혼들이
이 지구에서 서로 자신을 기억하고 회상할 수 있는 영혼의 시선이 교차되길 노력해.
그러면 우리가 보고듣고 생각하던 3차원적 갈등과 선입견 고통과 욕심
그리고 편애와 미움이 모두 한갖 부질없는 찰나임을 발견케될 것이니까.
그리고 그 것을 기억함으로 인해서 외모나 선입견으로 미워하거나 아니면 동정하거나 사랑하던
단순한 미물로서의 가슴들이 열릴거구.
우리가 왜 사랑하여야하며 왜 이 짧은순간의 여행에서 자신을 버리고 공동체를 위해
존재해야하는가하는 의미를 알게될 거야.
   
(여자,다시 광주촬영은 계속된다.
망월동으로 가는 길목에 다다르면 문득 언니로 부터 들은 카페가 생각이 난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그 카페를 묻기 시작한다.)
(순례자-공주 우금치에 다다른다. 편지를 쓰고 소지한다)
(까페주인-준비해온 물품들을 꺼내어 정리한다.
테이블위에 작은 인형 몇개와 엽서 약간..
다른 한켠엔 안개꽃 한다발을 병에다 꽂는다)
 
오늘 이 작업을 통해 우리들 중 몇사람만이라도 이제까지의 왜곡된 오감을 던져버리고
모두다 하늘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영혼들임을 발견했음좋겠어.
그래서 우리가 알고있는 현실이 꿈이고 꿈이라 믿어온 영원의 세계가 바로
그들과 내가 떠나온 하늘 즉 현실임을 어렴풋이나마 감각하게 되었으면 좋겠어.
보이는 사람만 볼 것이며 들을수잇는 사람만 들을 수 있을거야.
편견이 자신을 감싸고 있다면 그벽으로 인해
영혼을 보지못하거나
아니면 못보고도 보앗다고 거짓말을 하겠지.
 
우린 아마 착각하는 현실처럼 진실을 시시각각으로
공유할 수는 없을 거야..
   
7.순례자와의 만남
 (순례자-광주에 도착 길을 걷는다.
어느 한 곳에서 제대를 발견하고 분향한다.)
   
우리가 떠나오던 날 우린 이 여행의 짐을 꾸리면서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고자 미물적 속성을 즐겨 짊어졌고 그순간에 우린 이미 회상의 능력을 소실햇을지도 몰라..
하지만 인간의 능력안에 담긴 영혼의 존재는 죽음이 없는 우주안에서 기억할 사랑마져 벗어두고 온것은 아닐테니까...
   
(여자ㅡ촬영을 하다가 거리에서 아주 특이한 차림으로 제례를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순례자를 보고 그에게 다가간다.
촬영을 허락받고 순례자와의 인터뷰가 시작된다.
그와의 대화가 끝나면 기념으로 그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 장 찍어 짧은 인삿말을 적은 뒤 선사한다.)
 
 
8.까페 언덕위의 바보
 
사람들은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하기에 익숙해서 모두를 사랑하지는 못해.
내가 만든 우리 안에 또래나 동아리를 만들고
가족의 개념마져도 벽의 개념으로 사용해.
우리라는 개념이 만들어질 때마다 가족이라는 개념을 만들때마다
하나 하나의 단절의 벽을 쌓고있는 것같아.
나의 가족이란 말은 곧 남의 가족이란 말을 만들고
우리라는 말 역시 우리 아닌 남들이란 말을 만들어 .
   
(여자,금남로까페에서 얘기들은 망월동입구 까페 언덕위의 바보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까페의 주인과 순애언니에 대한 얘길 나눈다.)
그러다 테이블곁에 놓여있던 한사람의 편지를 꺼내주고 여자 그것을 읽는다.)
 
광주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고맙네요.
모두들 말로는 관심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게 부담이었든, 혹은 잘못됐다는 비판에서든..
어쨌든 광주는 외롭습니다.
그 책임이 일차적으로는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있겠지요.
그러나 그 책임의 일부는 그런 광주를 비판하는 방관자들에게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외골수로만 가는 광주를 비판만 하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그 아픔 속에 함께 하는 자세로 설득하려는
노력은 없습니다.
 
문제는 애정이죠. 애정이 있으면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광주를 포위하고 있는 이 철벽같은 장벽을 허물어
뜨릴려고 하면 할수록
이 벽은 마치 늪에 빠진 물체가 허우적 거릴수록 더욱 빠져들듯
두터워짐을...
 
마침내 구경꾼은 늪에 빠진 생명체를 구하기를 포기하면서...
나로선 어쩔 수 없었어....이렇게 말합니다......
80년 5월에도 그랬죠? 아마?
 
정말이지 광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이란 ....
무슨 천형을 짊어지고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깊습니다.
때로는 광주에서도 [에이 언제 우리가 남한테 기대고 살았냐...
우리끼리 올바르면 됐지....]
이런 식의 반응이 주류를 형성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입장에 반대합니다.
우리 스스로 정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5월항쟁기간에 느꼈던 고립으로부터 오는 공포감에서
여전히 헤어날수 없기 때문입니다.
 
16년전 오늘 광주는 작은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나중에야 어찌될망정 우린 계엄군의 퇴각을 환호했습니다.
나는 도청에 들어가서 붙잡혀온 공수부대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생각 같아선 그냥 그 자리에서 총살이라도 시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때 우린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선 안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성난 군중들은
그를 제물로 삼기를 원했지만 만류했고,
투쟁의 대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판 처음 만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무장한 채였죠.
해방기간 동안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항상 우린 고립감에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서 고립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공포의 실체를 맛보았습니다.
 
물론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닫고......
책속에서 만나는 공포가 아닌 우리 앞에 가로놓인 공포감은 대단히 실질적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파멸될 수도 있고, 모든게 한꺼번에 끝나버릴수도 있는...
16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보면 참, 역사란 무심한 거구나 싶습니다.
진실은 왜곡되고...심지어는 희화화되고....
광주의 진실은 빛이 바래고 이제 누구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
그런 흉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원합니다.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재미를 원하고, 뚜렷한 논리적인 상징을 원하고...
그런 식으로 투쟁의 진실은 형해와되고....
이제 모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80년 5월 고립된 광주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다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십수년간을 그 문제에 매달려왔습니다. 고립은 공포다....
어떻게든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그건 우리에게 논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 점에서 저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내부건 외부건 결과적으로 고립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제게 정의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고립을 해소시켜줄 수 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정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정의가 그 자체로서 외롭고 고립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저는 언제라도 변절? 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런 저런 문제를 생각해보는 군요.
예기 님의 끊임없는 진지함에 이끌려 새삼 이런 상념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music in - 김민기 아름다운사람
 (둘의 얘기가 계속되고 여자는 까페주인을 카메라에 담는다.인터뷰)
  
나는 소외가 투쟁적 또래의식을 만들어온 사회적구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다소간의 어려움을 느끼곤해 .  
하나라는 개념이 확대되어 정말 하나라는 안에 모든것을 넣지 못하면
그건 둘 혹은 그이상의 개념과 상통하고 결국은 적개나 경쟁 혹은 소외를 만들거든.
가족공동체란 말의 의미를 생각해 봤어.
그것은 우리 가족 너희 가족이란 개념이 아닌 생명체 모두가 하나의 가족개념을 갖는걸 말하지.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가족이란 것이 편애나 그로인한 슬픔을 자제하게되고
그것이 간혹은 냉정으로 오해받을 수 도 있을 것 같아.
마치 어린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면 그 여우와 다른 여우를 구분하게되어
모든 여우를 사랑할 수 없게되는 모순 안에서
미처만나지않은 모든 여우마져 가족공동체로 사랑하려할 때
길들여진 여우가 오히려 사랑의 소외를 느끼는 그런거지.
   
(뒷편으로 제주로 향하는 순례자
(그리고 제주에서 4.3의 넋과 만나 준비한 마음을 풀어놓는 순례자의 모습)
 
우리가 이제 살면서 기억해야할 것은 서로를 마주할 때
욕정의 재물인 심신의 오감으로 보지않고 본연의 영혼을 만나는 훈련이야.
일상의 사람들은 마치 씬레드라인에 나오는 전장속 군인들의 모습과도 같아.
고향을 그리면서도 늘 고향과 멀어져가는거야.
그들의 영혼은 과연 기억잃은 자신의 육신을 어떻게 다시 만날까?
하지만 가끔씩은 외쳐봤으면 좋겠어 [잘 지내고 계신가요?] 마치 와타나베히로꼬처럼.
 
(여자,누군가 준비해 놓은 제대 앞으로 가 향을 피우고 광주를 떠날 채비를 한다.)
 원래는 하나였던 우리의 그 큰 영혼의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내게 반문하고 내 마음과는 너무도 다른 또다른 나를 인간안에서 바라보는거야.
 어쩌면 같은 영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기억속에서 상대를 죽이는
씬레드라인의 우리들의 모습처럼 시간의 공존속에서
단지 역사라고 오판하는 우리의 망각을 보면서 기억하고 계신가요 기억하세요 이렇게 말하는거야
그리곤 마지막으로 잊지마세요 우리가 떠나온 하늘에 대하여 하고 말야.
 
(까페언덕위의바보에 노래하는 이 나와 노래한다)
 music3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in -out
 
행복했어,
고마웠어, 나 지금 너에게 미안해 하고있어
그토록
아름다웠던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리
멀리 있어도 지금 빛나는
저 별처럼
Chorus) I Will Give You Everything Your Heart Wishes For
To Tee Day We All Go,
I Just Want You To Know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인걸
아주 가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 바보처럼
날 사랑해줬던 널 보고 싶어라
너의 환한 미소
어쩌다 내가 아프면
나보더 더 아파했었던
내 친구
Chorus) I Will Give You Everything Your Heart Wishes For
To Tee Day We All Go,
I Just Want You To Know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인 걸
너를 위해
사랑했던
너의 그 두눈을
영원히 (Forever)
I Will Give You Everything Your Heart Wishes For
To The Day We All Go,
I Just Want You To Know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인걸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music-in 꿈에서본 거리
 
(광주역. 여인,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나야... 잘 지냈어? 지금 올라가려구 표 끊었어. 음 좀 피곤하네. 촬영?
그냥 뭐... 내가 찍으려고 계획했던 부분에서는 실망이 큰데 다른 부분에서 수확이 컸어.
음... 올라가서 얘기할께... 후후후... 그렇게 궁금해?
지금 올라가면 이 번 작업 방향 자체를 바꿀려구해. 그냥 뭐랄까...
작아보이지만 정말 아름답게 그리구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아보구 싶어졌어.
그런 사람들이야말루 내 필름에 담아야 할 주인공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들이지 뭐.
만나서 내가 만났던 그 사람들 얘길 해줄께. 분명히 내 주변 어딘가에두 이런 사람들이 있었을텐데
여기와서 보이기 시작한거 보면 광주의 미덕이 그런데 있는거 아닌가 싶네. 후유...
피곤하니까 횡설수설 하는것 같아. 그럼 서울에서 만나. 안녕."
   
꿈에서 본 거리
 
아침에 문득 눈을 떠보니 낯설게 보이는 모든게 내 주위에 가득차
일어나 다시 살펴보았더니 오래된 내 작은방
어젯밤 꿈에 나는 보았지 하얗게 뻗어나가 있는 길옆의 그 거리를
언제나 가슴으로 그리던 곳을 난 꿈을 타고 찾아낸거야
빠알간 벽돌 길모퉁이에서 난 플라타너스 바라보면서
웃음이 아닌 다른건 모두 잊은채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었지
어지럽던 내 사랑도 이제는 하늘 저멀리 구름위로 날려 버린채
숨가쁜 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그곳은 내꿈에서 본 거리일거야
................................
 
2010년 5월 가장 서글픈 5월연작을 준비하면서
사랑하는 벗들을 만날 수 있었던 고향 빛고을에게..
 
"80년 5월 고립된 광주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다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십 수년간을 그 문제에 매달려왔습니다. 고립은 공포다....
어떻게든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그건 우리에게 논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 점에서 저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내부건 외부건 결과적으로 고립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제게 정의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고립을 해소 시켜줄 수 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정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정의가 그 자체로서 외롭고 고립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저는 언제라도 변절? 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래만에 ...이런 저런 문제를 생각해보는 군요.
다시 고립된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모든 이상을 버리고 변절하겠습니다. "
5월 그리고 빛고을 광주는 그렇게 제게 다가왔습니다.
언론사 편집국 복도에 놓여진 텔렉스에 전송되어오는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도
정작 자신의 지면엔 아무 것도 적어낼 수 없어 그저 펜을 놓고 태업하거나 다시 돌아와서
은유로라도 기사를 적어가면서 양심을 유지하던 그해 여름.
그리고 이어 이뤄진 언론통폐합이라는 조치에 홀로 응하지 않음으로서
넋들 앞에 사죄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던.
16년지나 마침내 용기내어 다가간 그곳에서
마지막 그 날까지 의로움을 지켜냈던 한 분이 보내주신 메일에
인간이인간에게 주는 고립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며
그들 곁에서 그들 아닌 타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서
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시작했던 5월연작.
때로는 같이하자 말 걸고 다가오면 얘기 들려주면서 함께 하기도 하고
어떤 해는 아무도 함께 하지 않는 또다른 고립에 잠겨서
홀로 준비해 다가간 5월.
하지만 5월은, 빛고을은 언제 부턴가 스스로 고립되어가고
그가 얘기했듯 살아남은 이 들은 넋들 앞에서 밀납인형처럼 흉물로 굳어가면서
뜻모를 사람들의 축제 곁에서
아직도 채 눈물 남은 사람들은 자리를 내어주고
5월금남로에서 우다방에서 약속 없이도 만날 수 있었던
고운 이들의 모습을 하나 둘 찾을 수 없게 되어갑니다.
아름다웠던 사람들.
이세상 모든 이 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그 아름다운 열흘간의 사랑은
어느 해 5월 YMCA에 새로운 임대주가 입주하며 계단복도구석에 내팽개쳐져 있던 영령들의 영정처럼.
5월그날의 아침, 상복을 입고 자식의 묘소에 찾아간 어머니를
정부관리가 온다는 이유로 입장을 저지하며 통곡하시게 하던 그 날부터,
5월금남로를 봉사나온 아이들이 시민군 공수대원 옷에 총검들고 장난처럼 휘저으며 노는
축제가 시작되면서   
서로 대립하는 5월단체들과 518재단의 갈등,
29년만에 처음 애끓는 가슴으로 그 죽음의 장소인 도청에서 이뤄지는 유족들의 위령제,
분수대 돌아 들어오는 꽃상여와 유족 분들의 행진곁에서
나몰라라 연습하며 음향틀던 5월행사단.
빛고을은  이제 그 고립의 순간에도,지켜냈던 그 정의를 그리고 공동체의 사랑을
교활한 이들의 지능적인 분열술수에 타협하며 그 빛을 잃어갑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소리없이 지워가며 형식처럼 세워가는 기념비만으로
넋들이 지켜준 아름다운 삶의 가치를 찾아 순례하는 순례자들에게 더이상 찾아볼 길 없게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빛을 내세우나 진정 그 빛은 없는
서글픈 조형도시로 30주년을 맞습니다.
5월연작을 작업하여 찾아갔던 5.18자유공원에서 5월순례자들이 준비한5월 공연들을
지역 아파트 단지 사람들의  시끄럽다는 민원으로 중지시키던 광주.
27일밤 몇 명의 순례자들의 공연을 위해서 신묘역 수만평 전체에 불을 켜주고 음향을 틀어주시던
518묘역도 이젠 찾아볼 수 없으며
정부의 지원금 없이 단체의 깃발없이 순수한 가슴으로 찾아가는 5월순례자들에겐
이미 닫쳐버린 도시.
살아가는 방식이 너무 달라서 아니면 살아야 하기 때문에 변해버린.
그리고 그 변해버린 자신을 스스로 감지조차 못한 채 자기합리화속에서
나름의 고민으로 5월과 넋들의 마음을 그저 광주라는 도시를 경제적으로 부흥시키는
화두정도로 활용하기에 급급하며 살아남은 혹은 살아 변절한 사람들의 부질없는 이익을 위해
끝없이 변질되어가는 서글픈 5월.
광주의 모든 것이 바뀌고 재개발되어도 금남로 상무대 분수대 도청 본 별관의 그 거리만은
80년그모습 그대로 벽돌한 장 고치지 않고 보존해 줄줄 알았던 빛고을.
29주년을 지내면서 바라본 그 처절한 광주의 몰락은 광주사태였습니다.
인간이 이윤을 위해 끝없이 갈라지고 끝없이 서로를 탈락시키고 그러다가 다시 이윤을 위해
통합하기도하는..
역설처럼 적었으리라 믿으며 읽었던 어느 광주인의 편지를 다시 펴들고 읽어봅니다.
" 정의가 그 자체로서 외롭고 고립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저는 언제라도 변절? 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래만에 ...이런 저런 문제를 생각해보는 군요.
다시 고립된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모든 이상을 버리고 변절하겠습니다."
하지만 정년 그렇지 않기를..
살아있는 이들보다는 그 아름다운 5월을 우리에게 쥐어주고 가신 넋들을 위해서.
그리고 5월이 축제가 아닌 순례의 길이되길 바랍니다.
이제는 축제로 지내야 할 광주라고 못내 바꿀 수 없다면
민주화가 이렇게 역행되는 그리고 넋들이 생명바쳐 이룬 그 아름다운 민주의 세상이
역류하는 시기에만이라도. 사랑빠진 그 형식적 축제의 한편 어딘가에
아직 채 못흘린 눈물로 정진을 위해 5월을 찾아온 진정한 순례자들이
소리없이 눈물지을 공간 하나만은 마련해주시기를.      
2010년 4월 9일 금요일오후 7:15:33  
..........................
8일간의 어성전에서의 4.3영화제를 마치고,
 
제주 아닌 곳에서도 4.3을 얘기나누기 위해.62주년4.3을 맞으며
강원도 오대산자락 현북면 어성전리 조그마한 공간에서
4월3일부터 8일간의 시간을 정해서 10여편의 영상을 모아
이름없는공연 4.3영화제란 이름으로 준비하고 가져본 4.3영화제.
첫날 속초에서 찾아주신 두 팀이 있어서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던
그리고 그분들에게 4.3이란 것이 이 영상회를 찾아 오고 또 보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만남의 기억이 되었기에 감사했던 시간.
하지만 이후 7일간 아무도 다시 찾는 이없이 홀로 영상회를 준비하고 기다리며
그리고 마지막날 마을과 산촌유학 작은 학교 입구와 내부에 붙였던
안내포스터와 안내문들을 치우면서 아직은 너무도 먼 우리의 타인과 내 일 아닌 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생각합니다.
술 한 잔 하자는 말에 멀리서 달려오는 사람은 있어도
스스로 조건없이 만들어 기다리는 사람의 가슴아린 곳을 찾아 달려가주는 마음은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더욱 슬퍼지는 넋들의 아린 가슴.
4월도 5월도..그렇게 행사로만 남고 행사아닌 일에는 제 스스로 발길을 옮겨내지 못하는
4.3혹은 5월 민주와 인권 통일을 얘기하던 사람들.
산사람들 안에서 역사는 늘 그렇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확인해야 할 줄 알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여
꿈꾸며 넋과 영혼 그리고 인간아닌 뭍생명들의 생존 앞에 그려본 쓸쓸한 행복.
기간동안 마져 편집하지 못하였던 지난해 가을의 공연기옥 제2 14처 -마지막순례
그 공연영상을 편집마쳐 4.3영화제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상영했습니다.
분단이전부터 통일을 그리워했고 또 분단 후에도 일상처럼 통일을 기다리며
꿈꾸었던 고운 사람들 그리고 이 땅 뭍과 바다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북녘과 남녘을 오가며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 얘기 전해주던 작업.
그들이 듣고 싶다던 한라와 제주섬 얘기를 설악과 동해 바다에 가서 공연하고
평화 그 그리움으로 그 공연의 모습도 영상으로 담아서
이 영화제에 끝부분을 메웠습니다.
제주섬에선 4월 마지막 주까지 4.3 62주년을 기리는 행사들이 이어진다 합니다.
마당극제도 변함없이 열리고
벗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의 가슴으로 변함없이 고향의 아픈 추억을 되새기며
추모의 시간을 가질 겁니다.
마지막순례 이 공연에서 마주하며 돌아섰듯 이제 4.3도 5월광주처럼 하나의 형식으로
기념비를 세우고 한편으론 그 얘기를 담고 있는 그대로의 제주를 지우면서 사람들 안에서
또 하나의 낯모를 교육으로 축제로 순례자의 순례를 거부하는 섬으로 그 정겨움을 잃어갑니다.
하지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렇다 하여 그것을 탓할 수도 없으며
제주섬 곳곳에서 아름다운 얘기를 전해주시는 삼촌들의 넋들과의 만남을 향한 그리움이
지워질 순 없습니다.
4.3은 그렇게 62주년을 지내면서 30여년지난 뭍에서의 그 5월의 얘기로 화두를 넘겨줍니다.
그리고 함께 가자고 청하십니다.
네 그리하지요. 제가 뵈었던 그곳의 벗들과 같이 만나시는 모습 부러웁게 뵈면서
이제 곧 이룰 당신들 만날 날 고대하렵니다.
2010년 4월 13일 화요일오전 9:49:30
....................
이틀 전 청초호에서..413평화 그 그리움으로 .
 
이틀 전 속초 청초호에서 아직 떠나지 못한 철새 몇 마리를 보았습니다.
몇주 전 이 고장 환경단체들이 학생들과 같이 철새를 떠나보내는 행사까지 가졌다는데..
혹시 겨울새인 그들이 돌아 갈 그곳이 인간의 오만에 의해 침삭 당해서 사라져 버려서는 아닐까
하는 턱없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 나라 이곳에서 이뤄지는 현실처럼 이세상 또 어디에 선가 새들의 오랜 고향이 거짓말처럼 사라져서
흔적조차 없어져 버리는 일이 이뤄지는 걸 그들이 또 만나게 될까 죄스러웁고 창피한 가슴으로.
청초호,도시가 그 바다와 접한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하나하나 침식해가며 만들어져가는 인간의 유원지화에 마치 동물원의 새들처럼 그들의 겨울고향을
잃어 버리는 슬픈 새들의 마음을 인간은 알기나 할까?
지나가는 아주머니 몇 분이 오래만에 이곳에 들리는지 "참 잘해 놨다"고 감탄하며 갑니다.
그리고 호숫가 갈밭 습지 바로 곁까지 길을 내서 달리는 모터자동차 타는 가족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들.
사람의 생존을 위해 그들의 조망을 위해 박제 아닌 박제가 되어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소음과
유흥을 들어야 하는 호수의 주인과 오랜 손님들.
청초호는 그렇게 처참하게 상해되어가고 그곳을 찾아주던 고마운 손님들의 날갯짓은
피눈물처럼 슬퍼만 보이는.
이제는 인간의 친환경 생태관찰이라는 난감한 유희를 위해 반 밖에 남지 않은 청초호에서.
이제는 결코 다시 찾을 수 없을 평화를 그립니다.
그 그리움 찾기 이백 예순 닷새째 날에.
.
2010년 4월 13일 화요일오전 10:19:49
...........
시속4킬로미터의 제안.개구리들이 죽지 않고 횡단할 수 있게.
 
어성전 산촌유학,고마리 작은 학교 아이들과 같이 만드는 두 번째 연극수업은
시속4킬로미터의 제안입니다.
그 옛날 개구리들이 다니던 길에 사람들이 도로를 포장하고 자동차들이 다니면서
습성처럼 그 길을 지나는 개구리들이 자동차바퀴에 깔려 죽어가는데
사람들은 이 길의 주인이었던 작은 생명들의 횡단을 위한 조금의 배려도 없이
그들의 살던 길을 무서운 무게와 속도로 가로지르며 무심히 생명을 빼앗습니다.
산촌 유학 온 도시의 아이들이 개학 후 아침 학교가는 길에 보게 되는 것은
지난밤과 새벽 무수히 죽어간 작은 생명들의 주검입니다.
그리고 처참하고 서글픈 그 죽음에 애처로운 마음으로 생명과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수업을
받습니다.
시속4킬로미터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평균속도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처음 자동차를 만들었을 때 그 자동차의 속도 역시 시속4킬로였답니다.
속력을 줄여 시속 4키로로 마을길을 운전해 나가면 도로를 횡단하는 작은 생명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밟지 않고 운전해 나갈 수 있으며
작은 생명들 또한 자신의 걸음이나 뜀으로서 자동차의 바퀴를 피할 수 있습니다.
개구리같은 뭍생명들의 생명 또한 인간의 생명처럼 존엄하고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그 생명을 무심히 해칠 수 없습니다. 아이들과 연극 수업을 통해서 그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정녕 그 아림을 느끼는 아이들을 만나서 그들이 그 작은 생명들을 지켜주기 위해서
그 작은 생명들을 무심히 해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애태움으로
작은 교통 신호판을 만들어서 마을길로 나섭니다.
개구리들의 횡단 보도임을 알리는 횡단보도표식,개구리가 다니는 지역이라는 표식,
그리고 시속 4킬로미터로 속도를 줄여 가주길 바라는 도로표시판.
그리고 이같은 마음을 같이 나눠줄 것을 바라는 간절한 가슴으로 적은 편지를 갖고
작은 생명들이 횡단하는 도로에 서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세우고 안내드리고자 바람찬 거리에 서있는
사람까지.
우린 우선 그렇게 산촌마을 지방도에 서서 시속4킬로미터로 제안하는 또다른 잊혀진 평화를 꿈꿔봅니다.
13일저녁부터 15일아침까지 준비하고 거리에 나서서 연극아닌 연극으로
세상에 제안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스스로 망각하지 않을, 그리고 또 실천하기 위한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바람찬 마을도로에서
뭍생명과의 공존을, 인간만의 세상이 아닌 모두가 더불어 존중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면서.
은진,은성,준희,빈,성열,강현이 예플러와 함께 13일저녁
마을길에서 4월 15일 가질 평화 그리기 -4킬로미터 그 얘길 시작했습니다.
2010년 4월 13일 화요일오후 10:10:52
..........
강원도에서의 한달반, 대답없는 그리움에 서글피 돌아서며.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에 조그마한 산촌유학학교가 생긴다며 찾아오신 고마리 님의 초대에
아이들과의 연극수업을 꿈꾸며 다가가본 강원도에서의 한달 반.
첫 프로젝트로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화관이란 제목의 작품을 기획하고
마을에 작은 영화관을 만들고 그 과정을 아이들과 같이 연극으로 만들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작업으로 이 시간 처절히 파괴되어가는 이 나라 강의 얘기를 같이
하고 싶어서 고마리와 조약돌(짱돌)이란 작품을 기획하다가
이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작업적 제한이 있어서 생명의 공존의 화두를
아이들이 일상의 공간에서 직접 체험하는 개구리들의 로드킬로 바궜습니다.
 
그리고 긴 설명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보고 느끼는 감성을 바탕으로
도시아이들은 알 수 없는 가장 슬픈 얘기를 4킬로미터란 제목의 작품으로
바람찬 지방도에서 이틀간 눈물어린 공연을 마쳤습니다.
 
모두가 그렇진 못했지만,스스로 이 작업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아이들은
그 마음과 정성만큼,어른들도 모르는 진실한 마음과 인간으로서의 미안함을
봄이 오는 산촌 어느 차도에서 제안드린 화두에 정확히 답해주면서
실로 오래만에 예플러 혼자가 아닌 같이하는 공연으로서의
참 아름답고도 서글픈 작품을 공연해주었습니다.
 
여러 생각을 갖고 그동안 멀리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누지 못했던 만남과 얘기를
같이 나누고 싶어서 다가와본 강원도 그리고 동해.
그간 보고싶엇던 그리고 언젠가 만났던 아름다운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서
그들에게 제안드렸지만 그리고 처음 만나게 된 분들과 그들과도 같이 나눌
많은 꿈을 제안하고 기다렸지만
알게 된 것은 멀리 있어서 우리가 같이 나누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
절실하지 않아서 나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이름없는공연의 이러한 제안이 그리 필요치않다는 것.
그리고 철없이 보일 뿐이라는 것.
 
일상처럼 같이 살면서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산촌유학공간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개발계획안에 포함된 하나의 프로젝트여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자기의지로 선택하고 제한하면서 살아 가야하는  
특수성과 낯설음이 이름없는공연의 작업동행에는 어려움이 있는 곳..
세월이 바뀌어 같은 곳이 전혀 다른 생각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시기 그곳에 머무르며 스스로 제한된 표현으로 생존을 위해 자신이 가져오던 신념과
달려가 나누고싶은 얘기를 우회해가면서 작업하여야 하는 사람들과의 동행은
그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결론에
강원도는 결국 이별을 독촉합니다.
 
결국 한달 반 가량 강원도에 있으면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응답받으며 안아주었던 것은
사람이 아닌 자연이었습니다.
설악과 오대산자락에서 속초등대에서 만나던 동해바다에서
62주년을 맞던 4.3제주의 얘기를 전해줄 수 있게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했던 4월 강원도.
그리고 다시 올 때는 그 모습 지우고 맞아줄 서글픈 청초호와 그곳에 겨울고향을 가진 새들과의 만남.
 
애타게 다가와서 청해보았지만 끝내 응답받지 못하고 떠나는
공수전리 아이들과 같이 나누던 그 사랑은
의무처럼 만났던 탁동철선생님보다는
스스로 시간을 내어 어성전에서의 4.3영상회를 찾아주었던
이제는 중학생이 된 담인님과의 만남 안에서
그 작업을 기억하고 동행하고 싶어하는 마음의 표현에
그나마 유일한 위안을 가질 수 있었을 뿐..
이곳에 머무르며 다시 만나 통일의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동해 민예총 분들께 드린 제안도 메아리 없이
이제는 없어져 버린 주문진 민족 예술 학교도
한번도 만나진 못했지만 꼭 뵙고 같이 나누고 싶었던
묵호 이야기 분들과의 만남을 향해 드린 제안도 대답없이 초라하게 지워졌습니다.
 
그나마 고마웁게도 4대강영상회와 4.3영화제에 응답해서 새롭게 만날 수 있었던 귀한 분들
속초 지역 환경 연합분 들과 속고양촛불분들과의 만남.
하지만 이분들과의 만남역시 절실한 가슴앓이를 같이해줄 동지로서의 만남으로는 이어지지 못한 채.
 
강원도는 더 이상 스스로 찾아서 세상의 아픔을 공유할 수 없는 쓸쓸한 공간으로의 안주를 제안합니다.
자신의 생존에 집착하며 평화로운 삶의 의미를 반전시키고
세상아픔에 대한 무감각을 권해주는 관계의 연속.
세상어디에도 없겟지만
유배지처럼 차비없어서 걸어나가 바라보기조차 못하는 이곳은
시급한 탈출과
세상 아픔이 눈물짓는 뭍생명들이 사는 곳.
그리고 그들의 동지되고픈 이들이 사는
그리운 곳으로의 귀환을 결정하게 합니다.
강원도 산촌에서의 긴 공백이
그저 먹고자는 곳이 해결됨으로서 끝에 다다른 생존을 조금더 연장시켜준다는 이유만으로
추한 죽음을 기다리는 안이함의 답이된다면
뻔한 죽음을 예측할 수 있으면서도 로드킬을 모험하는 작은생명체들에게서 배울수 있는
아름다운 생의 마감을 찾아가는 것이 주어진 생의 도리일거라 생각하며
4대강지키기 평화미사가 열리는 공주 곰나루를 향해
마지막 차비로
이제는 그리 길지 않을 남은 길을 기약없음두고 나섭니다.
2010년 4월 17일 토요일오후 12:19:03
....................
평화그림009-산촌마을 한달 반의 만남,그 마지막 질문.
 
어성전 산촌 유학 아이들과 헤어지는 날.
그 아이들과 같이 마을에 세우고 싶어 갖고 왔던 평화엽서들
이름없는공연에 같이 했던 고운 아이들이 절실한 가슴으로 평화를 그리며 적었던
편지들을 이 산촌유학의 특수성으로 인해 못내 이 아이들과 같이 하지 못하고 떠나며
한달 반 동안 그래도 두 편의 공연을 하며
평화를 그리는 애절한 공연영상들을 그림자 장난기회로나 생각하는 아이들 앞에
그래도 혹시라도 듣고 보아줄까 기대하며 상영하였던 그 결과로
그 마지막날 낮 혹시라도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질문처럼
숙소마루 위에 전시를 시작했습니다.
한편에선 아이들의 지독한 싸움이 시작되고 있어서
그 곁에서 시작한 평화그림 아홉번째.
바람에 날리는 평화그림들이 하나 두 울 복도에 놓이고
무심히 지나가는 아이들 가운데서 그래도 4키로미터란 화두에 응해
생명과 평화에 대한 얘기를 들어주고 공연해주었던
한두 아이가 다가와 앉아 또다른 평화얘기를 읽어줍니다.
 
이제는 더이상 아이들과 만날 일도 평화나무를 심을 누구도 만날 수 없어
그 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공연해왔던 평화의 편지들을 놓아 두고 가고 싶었던 이곳에서
준비해왔던 평화나무도 평화사진전도 심거나 열지 못하고
이렇게 한쪽 구석에서 홀로 작별의 의식을 취하는데
그래도 한 아이가 다가와 함께 읽고 적으며
그리고 어려운 평화를 한조각이나마 이 세상한편에 쥐어줍니다.
 
평화그림 아홉째날.
만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평화를 그렸을 다른 아이들이 적어준 평화편지를 읽으며
자신도 적어본 고운 평화의 편지 몇장.
따사로운 햇살이 한명의 동지를 쥐어주며'
한편으론 이 세상과는 같이 호흡할 수 없는 또 하나 외톨이를 만들어주는
서글프고 아름다운 산촌의 작별의식.
마지막까지 남은 두 아이에게 그동안 간직하고 공연해온 모든 평화엽서와 그림들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제 저희는 다시 그런 사람들 만날 수 없어서 평화나무나 평화엽서를 같이 적는
이런 공연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들에게 쥐어 주고 온 그 것들이 단몇장이라도 소중히 남아서
또 다른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며 평화의 꿈 전해주는 일이 형식이나 행사아닌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동화처럼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2010년 4월 17일 토요일오후 11:48:34
.....................
4월과 5월광주순례를 위해 작은켐코더를 팔았습니다..
 
4월 긴박해져만가는 서글픈 산야를 다시 만나기위해 떠나는 순례와
30년 지나 다시찾아갈 5월광주순례작업을 하기위해 지난해 구입했던 소형켐코더를
그것을필요로하는분이있어 그분에게 팔았습니다.
가격도 정하지 않고 나눠서주신다는 말 만듣고 드렸는데
그것이 차비나 되어서 거리에서의 마지막 멈춤을 조금은 더 연장시켜주는 도구로
마지막 순례길에 사용될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공주곰나루,여주 바위늪구비,팔당 두물머리..그리고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남도의 5월유적지와
그곁을 흐르는 영산강까지..
함께할 사람을 찾지는않겟지만 그래도 다가가야할 많은 죄책감과 의무감으로 막연하고도
그리운 인간의 도리로서의 찾음의 여정을 준비합니다.
2010년 4월 18일 일요일오전 7: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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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생명 평화 미사에서 다시 그려보는 평화 그 이백 예순 여덟째날
 
지난겨울의 슬픈 만남 이후 다시 만나고 싶어 어성전에서의 한달 반을 버리고
다시 다가가 만나는 님들의 모습.
 
공산성입구에 급조되어 세워진 금강 살리기 촉구 대회를 스쳐
생명평화미사가 열리는 곰나루에서.
사람보다는 자연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창조의 그 모습대로 흐르게 하자고 마음을 모읍니다.
 
그래도 아직 인간이 아름다운 건
자신이나 주변의 이익아닌 자연과 공동체의 생명과 공존을 그리며
이렇게라도 행동하는 이들이 남아 있다는 것.
 
금강보 이미다 막아 버린 철조 구조물 방벽아래 막혀 버릴 그 물길 곁에
아무 것도 모르고 피어난 봄의 풀꽃들.
그 화사함이 뜻모를 눈물이 되어 바람에 흐느끼는데
 
수천의 사람이 모여 그 공사의 곁을 거닐며 기도드리면
이 모진 공사가 멈출까?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버린
그 욕심이 멈춰질까?
 
세기초 인간의 그 오만과 서툰 이기심을 경고주며 숨을 허덕이는
이 푸른 별의 거친 호흡조차 외면한 채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종의 우매함 앞에서..
2010년 4월 20일 화요일오후 6:03:55
http://yegie.com/419peace/page_0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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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그 그리움으로 269일째-두리반 그리고 외박
 
또 하나의 작은 용산이라고 이름 지으며 세상의 아픔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이는 두리반에서
화요 독립 영화 상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외박이 상영된다는 소식에
지난 몇 년간 거리에서 간혹 만날 수 있었던 홈에버 비정규직 직원들의 값진 투쟁을 상기하며
이백예순아홉날째 평화 그리기로 서울 홍대 근처 두리반으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본과 이윤에 맹종하는 권력과 맞서는 용기있는 사람들,
그들의 현상적 패배 속에서도 이어지는 끈질긴 인권의 성장과 자각의 시간들을 만납니다.
마치 민주화의 열념과 생명평화를 그리는 이들의 조그마한 행동들이 모여서
그 희생의 시간을 바탕으로 더디게라도 커 나가는 인간세상이 이룩하려는 희망이 꽃피듯이
그렇게라도 곳곳에서 외면없이 상기되고 행동되는 살아 숨쉬는 인간의 얘기를
조망해봅니다.
2010년 4월 21일 수요일오후 3:12:03
..................
65일째 생명평화미사가 열리는 두물머리에서
 
4대강순레연작공연 그 네 번째 여정에 만났던 두물머리에 다시 갑니다.
지난겨울 다가오셔서 이곳에 머무르며 그 아픔을 같이 지새준 생명평화미사는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3시에 65일째 제대를 준비하고
멀리서 다가온 사람들이 오손도손 모여 일상처럼 드리는 비닐하우스에서의 미사.
두물머리 들어서며 유기농 단지엔 아이들의 단체체험수업이 여느 해처럼 한창이고
저 넘어 여강에 무섭게 이뤄지는 공사에도 변함없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흐르는 두물머리는 태풍전야처럼 너무도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두물머리 그 꼭지점에 눈물처럼 세워진 나무십자가
그리고 서글피 다시 십자가에 박히신 나무고상.
미나리랑 봄풀들 피어나는 물결 언덕따라 세워진 십자가의 길.
간혹 두물머리 십자가 놓인 야외제대 앞으로 팔당호에 돌연 파도가 넘실대고
무섭게 굽이쳐 다가오는 물결이 인간의 오만을 경고합니다..
인간이 그리는 평화란 것이 인간만의 평화가 아닌 삼라만상과 함께 하는
겸손함과 자기희생을 통해 이루는 평화여야함을 인식해주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 싶은
이세상에서
평화 그리기 그 이백칠십일째날.
그 아픔 삼키며 그것을 위해 행동하며 기도 드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2010년 4월 24일 토요일오전 7:56:55
.
http://yegie.com/422peace/page_01.htm
........................
새만금 인간의 찬탈 앞에 아름답게 죽어가던 그 갯벌을 상기하며
 
인간의 오만이 그리고 참혹하게 잔혹한 찬탈의 습성이
뭍생명들의 생명을 몰살하고 수만 년 이어 만들어온 삶의 터전
갯벌을 메우고 파괴시켜서 자신들만의 삶의 공간으로 침략을 마친 20년간의 업적.
그 새만금에서 인간들은 축제를 준비하고 예술가들이 나서서
친환경 녹색의 깃발을 들고 무참히 매몰되어 죽어간 생명보다는 찬탈자들의 입장을 옹호하며
인간이 이루어낸 못난 개발의 성과를 찬양합니다.
바다를 막고 메울 이 지구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를 만들었다는 찬사는
가장 큰 학살과 공존의 양식을 버린 죄악을 저질렀다는 점마저 망각한
이 지구별 가장 구슬픈 존재들.
2010년4월은 뭍생명들의 또 하나의 기일이 되어 그 주검 마져 찬란하던 갯벌의 모습을
상기케합니다.
기름유출사고에 온 국민이 다가가서 기름때를 딲으며 갯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던 그들이
스스로 죽여 버린 갯벌에서 흔드는 축제의 깃발 그 모순 앞에서..
2010년 4월 25일 일요일오전 09:56:16.
http://yegie.com/629peace/page_01.htm
...................
다시 찾아가본 여강 그리고 지워져 버린 바위늪구비.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4대강순례연작 여강선원에서의 13번째 공연
 
자연의 인내심은 간혹 인간에게 의문을 쥐어줍니다.
마치 기적을 이룰 수 있는 존재가 그 기적을 행하지 않고 고통을 참아내는 이유를
뭍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듯이..
하룻밤 비로 그 모든 것을 멈추게 할 수도 있건만
여강은 그렇게 처참하게 살육당하면서도 인간을 지켜봅니다.
바위늪구비 아름답던 뭍생명들의 삶의 터전도
조약돌을 만들어내야할 아름다운 금모래은모래밭도
개발희망에 들뜬 인간에 의해 이젠 자취도 없이 지워졌습니다.
이제서야 -하지만 지금이라도 귀하게
생명의강 지키기 예술행동이란이름으로 답사온 이들을 안내하는
여강선원의 환경운동가는
남한강교아래에서 저편 바위늪구비를 바라보며
고작 사진몇장을 펴들고 이곳이 이렇던 곳이라고 설명을 해줄 수 있을 뿐입니다.
 
여강선원은 두물무리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는 신부님들의
거처보다 외로워보이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별음자리표님의 노래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그노래안에서 신륵사아래 강변 금모래찾아
겨울을돌아 찾아온 이 쓰라린 봄까지 순례길의 얘기
하얀꽃 심으며 들려줍니다..
2010년 4월 25일 일요일오전 10:5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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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평화,그 그리움으로271(명동성당들머리,명동생명평화미사시작날.)
http://yegie.com/426peace/page_0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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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8일 춘천 마임 축제 미친 토요일 참가작 人言江南樂으로 참가를 결정하며
 
3년간 시민들이 참가하는 거리극 워크숍으로 기획의뢰를 받아서 참가한 춘천마임축제 속
이름없는공연은
세 번 모두 참가희망자가 없어서 워크숍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축제측이 원하던 시민 참여 프로그램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의 건널목 공연은 이름없는공연의 홀로 공연형태에
지나가던 공연자들이 작품의 내용도 모르고 그저 축제의 여흥과 즉흥으로 참가하는
방식으로 공연이 이뤄 별?/font>
설치 및 이동극 형태로 준비했던 지난해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로
오락과 놀이형태의 거리극이 모두 중단되는 결정 안에 포함되어서
준비했던 공연은 춘천마임축제 안에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올해에는 시민들을 모아보겠다는 의지표명도 어려웠는지
그리고 특별히 사람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극의 내용과 주제가
춘천마임축제의 내용에 어울리지 못했는지
올해에는 일찍이 축제측으로부터 그간해오던 기획공연의뢰는 없다는 연락이 왔고
이름없는공연 또한 그 작업의 방식과 화두 및 성격이 그리 맞지 않는 이 축제에
참가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30주년 5월광주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4월중순 한 통의 전화로 다시 공연의뢰가 왔는데
이번에는 미친 금요일에 참가의뢰였습니다.
미친 금요일은 난장의 개념으로 그 슬로건은 "미치지 않으면 축제가 아니다"
그리고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젊은 예술가들과
공연축제를 좋아하는 예술메니아들이 밤새 어우러져 벌이는 한판굿으로
예술가와 관객이 하나로 어울리는 밤샘프로그램"이라고 설명되어있습니다.
사실 춘천마임축제의 기록을 보면 1회와 2회는 제가 서울에서 기획하고 제작한
한국마임페스티벌의 춘천초청공연을 그 역사로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3회부터는 저와 관계없이 한국마임협의회와 춘천의 기획자들의 손에서
축제의 방식이 변화하며 이렇게 처음 제가 구상하고 실현했던 페스티벌의 의미와는
다른 본연의(?)의미로 발전했습니다.
2003년 6월 이름없는공연은 그 안타까움을 지우고 싶어서 [마임페스티벌]이란 작품을
초연한 후 춘천 마임의 집, 민족극한마당 한국실험예술제등에서 공연하며
판토마임을 봅시다와 제1회 한국마임 페스티벌의 마음을 이어가는 진정한 마임페스티벌을
아무도 동행하는 마임이스트없이 한 사람의 모노드라마형태로 이어갔고 이 작업은
[21일간의 직시]연작으로 지난해 11회를 맞았던[플라타너스 페스티벌]로
그 흐름과 의미를 이어 처음 만든 이의 축제를 만들었던 그 마음 그대로의 변형되지 않은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작하였으나 이젠 그 뿌리와 관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발전한 축제에
의도적이건 무의도적 이건 항상 그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답답한 춘천마임축제.
그리고 그 가장 큰 이유인 도깨비난장과 미친 토요일 등의 기획프로그램은
매년 참가하여도 초반에 준비한 공연을 끝내고 주말은 굳이 보지 않고
일찍 춘천을 떠나게 되는 그들의 축제.
4월중순 축제를 한달 정도 남기고 참가자 마감이 다 끝난 상태에서
미친 금요일에 참가의뢰전화를 받았습니다.
5월28일 금요일 시간이 된다면 5분이상 자유공간에서 작업작가로 참가해 달라는 내용이었고
5월27일 새벽 공연으로 광주에서 일정을 마칠 계획이므로 28일 저녁 춘천에서의 공연참가는
일정상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5월말.광주를 떠나 돌아오는 또다른 공간에서의 허탈함과 외로운 마음으로
영혼들과 얘기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춘천마임축제의 미친 토요일은
'역설적으로 지극히 적합해 보인다는 생각에 그 여정을 정하고 작품을 구상합니다.
 
인언강남락(人言江南樂)
사람들은 강의 남쪽에서 풍류를 논하는데..
30주년 가장 슬픈 5월 빛고을의 얘기를 이제는 30년지켜온 원형 마져 스스로 지워 버릴
잃어 버릴 도청 그리고 분수대 금남로 저편에서의 빛을 버린 빛고을 그 새벽공연을 마치고
이름모를 축제에서 벗어나 돌아와 또다른 축제의 공간에 서서
수많은 예술혼의 정열 속에서 그려볼 그리움.
이제는 이승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을 그 영혼의 빛을 그리며
누이의 싯귀하나 상기해 적어볼 헤어진 다음날밤의 얘기.
혹시라도 남 모를 사랑에 서글픈 5월지세운 이가 있다면
미친 금요일 우다마리라 이름 지어진 강가 보름달밤 공지천에서
나머지 하나 찾을 수 없는 그 마지막 달을 그리던 네 개의 달 앞에 앉았던 그의 마음으로
[인언강남락]에 함께 해주실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2010년 4월 29일 목요일오전 10:22:26
......................
이름없는공연 [인언강남락] 2010 춘천마임축제 미친금요일 신청서
hwp프로그램이 없어서 txt화일로 보내드립니다.
 
2010 춘천마임축제 미친금요일 신청양식1
예술인(단체)명 국문 이름없는공연   영문 noname
예술인(단체)주소  없음
홈페이지 www.yegie.com
대표자연락처 이름 신영철 전화번호 019-696-2550 휴대폰 019-696-2550
       이메일 yegienet@hanmail.net
사무담당연락처: 대표자와 같음
 
2010춘천마임축제 미친금요일 신청양식2
작품명 국문 인언강남락人言江南樂 영문 in un gang nam rak
공연쟝르 플라타너스
공연소요시간 20분
주요제작진 및 출연진
작가 예기 연출 예기 무대디자인 없음 조명디자인 없음
음향디자인 없음 기타주요스텝 예기
주요출연진 예플러
 
창작배경(연출 및 기획의도)
인언강남락(人言江南樂)
사람들은 강의 남쪽에서 풍류를 논하는데..
30주년 가장 슬픈 5월 빛고을의 얘기를
이제는 30년지켜온 원형 마져 스스로 지워 버릴 잃어 버릴 도청
그리고 분수대 금남로 저편에서의 빛을 버린 빛고을 그 새벽공연을 마치고
이름모를 축제에서 벗어나서 돌아와
또다른 축제의 공간에 서서 수많은 예술혼의 정열 속에서 그려볼 그리움.
이제는 이승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을 그 영혼의 빛을 그리며
누이의 싯귀하나 상기해 적어볼 헤어진 다음날밤의 얘기.
혹시라도 남 모를 사랑에 서글픈 5월지세운 이가 있다면
미친 금요일 우다마리라 이름 지어진 강가 보름달밤 공지천에서
나머지 하나 찾을 수 없는 그 마지막 달을 그리던
네 개의 달 앞에 앉았던 그의 마음으로
[인언강남락]에 함께 해주실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2010춘천마임축제 미친금요일 신청양식3
공연내용(작품의특징)
프로필
(2010.1-2010.4)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7-낙동강숨결느끼기1.16-17
203평화 그 그리움으로256(굴포천,평교..)2.3
207평화 그 그리움으로257(영산강-나주 노안면 학산리)2.7
208평화 그 그리움으로258(영산강-담양습지)2.8
301평화 그 그리움으로259(3.1절에 내리는 눈-어성전)3.1
305평화 그 그리움으로260(59번국도 현성삼거리에서)3.5
322평화 그 그리움으로261(속고양환경연합-4대강영상회)3.22
우리가 마을에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을 만들었어요 메이킹  3.1-3.21
시천에서낙동강하구까지64m두번째영상회(마산 시와자작나무)3.26
평화그림008-마산,50주년 315의거3.27마산
시천에서낙동강하구까지10-안동,낙동강.3.26
330평화,그 그리움으로262(농촌마을개발사업,현성권역)3.30
331평화,그 그리움으로263(고마리작은학교평화연극을준비하며)3.31
우리가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을만들었어요01(고마리작은학교)
62주년4.3 이름없는공연4.3영화제(2010.4.3-4.10)이름없는영화관2-어성전리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관02-어성전리 4.3-4.4
405평화,그 그리움으로264(설악에 전하는 한라.섬얘기)4.5
406평화,그 그리움으로265(동해에 전하는 한라.섬얘기)4.6
413평화,그 그리움으로266(속초 청초호)4.13
415평화,그 그리움으로267-시속4km(어성전리)4.13-4.15
평화그림009-평화그림전,2010.4.17고마리작은학교4.17
419평화 그 그리움으로268(금강생명평화미사)4.19
420평화 그 그리움으로269(외박 그리고 두리반)4.20
422평화,그 그리움으로270(65차 두물머리생명평화미사)4.22
시천에서낙동강하구까지13-여강선원에서.4.24
426평화,그 그리움으로271(명동성당들머리,명동생명평화미사시작날.)4.26
 
특기사항
1.2010년5월27일 저녁 춘천에 도착,현장리허설하고 28일 11시부터의 공연에
참가하고 30일 축제마지막날까지 춘천마임축제에 함께할 예정입니다.
숙소배정가능일자 문의드립니다.(희망일 27-30)
2. 공연은 빔프로젝터로 비춰지는영상과 연기자1인의 이동공연형식입니다.
빔프로젝터를 연결할 전원이 제공되는지 문의드립니다.
음향 및 조명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3.초연작품이므로 작품사진이나 자료는 없으며
프로그램등에 넣을 관련사진이 필요하실 경우는
이 사진을 사용해주시길 바랍니다 .
http://yegie.com/419peace/419peace22.jpg(사진원본)
2010년 4월 29일 목요일오후 12: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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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명동성당에서 그리는 평화 그 그리움으로 이백 칠십 이일째
http://cafe.daum.net/oncorea/7Ff4/99
 
1970년대초 그곳에 다가가 교리를 배우고 영세를 받았을 때
그곳은 숨쉴 수 없는 시대를 촛불을 홀로 켜주고 있던 성지였습니다.
영세 후 수백 명 회원을 가진 본당단체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봉사하고 사목하던 그곳은
세상에 가려진 진실을 알리고 목마른 이들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힘이 되었었습니다.
오랫동안 가지 않던 시계를 고치고 문화관을 만들고 지하성당에서 작은 미사를
시작하고 매주 기타반주로 같이 노래할 수 있는 새 성가를 만들어 연습하던 그곳은
험한 세상 세상을 향해 이웃을 돌보며 양심을 지키려는 이들의 안식처였습니다.
성모동산이 만들어진 후, 그곳은 기도하는 곳이었고 공권력을 피해 쫒겨온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그들과 대화 나누며 꽃 한 송이 빵 하나라도 쥐어드리고 손잡아드릴 수 있는
이 땅 마지막 자유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6월항쟁 마침내 이뤄낸 시민혁명.명동성당은 그곳을 진정한교회로 만들어준
아름다운사람들의 용기로 인해서 본당마당까지 떨어지는 최루탄을 이겨내고
민주화의 성지로 다시 섰습니다.
가방에 기도서를 보여주어야지만 경찰의 저지선을 통과해서 미사를 드리려 오를 수 있었던
들머리.성모동산에 하나하나 올리는 촛불이 세상을 지키려는 아름다운 꿈이 되던 곳.
무장한 전경 대원들의 장벽 속에서도 24시간 어느 시간에도 열려져 있던 들머리와 본당마당 본당
그리고 성모동산.
누구라도 찾아가면 이유를 묻지 않고 교회본연의 가르침대로 성역을 유지해주던 곳.
언제나 기도드릴 수 있던 곳.
하지만 언제부턴가 명동성당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양심을 지키고 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교회가 가장 아려해야 할 창조의 질서를 지키고자 기도드리는 사제들의
아린 기도마저 질서를 이유로 내몰아치는 명동성당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강을 지키고자 미사를 드린 사제와 성도들이 기도를 드리려 성모동산으로 가는 것마져
철문을 닫으며 험한 목소리로 막아서는 교회.
사제들의 기도조차 막아 서던 그 성모동산에선 색색깔 조명과 환호 속에서
또다른 사제가 여자사회자와 함께 천박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가수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노래를
박수 쳐 듣습니다.
성모성월을 맞는 2010년의 서울교구 그리고 명동성당의 새로운 기도방식으로의 문화제는
이렇게 기도하는 사제들을 근접도 하지 못하게 하던 시간에 또 하나의 명동이 되어서
아린 가슴으로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듭니다.
 
가톨릭 회관 건물 벽엔 선거철 후보현수막보다 더 큰 현수막으로 5월 이곳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문화제의 내용이 소개되어있고 그 첫머리에는 이 행사의 주인공인양
한 사람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2010년 명동성당은 이렇게 아픔을 외면하고 즐거움을 찾아서 변절했습니다.
세상을 살기 가장 편한 방법은 그 시기를 사는 외롭고 고통받고 탄압하는 이들 편에 서지 않고
그 시기 공동체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무지하여 알지 못한 채
나름대로 양심을 얘기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여흥을 만들고 기도해주는 것일 겁니다.
가난한 이와 고통받는 삼라만상을 위해 같이 기도해주고 그들의 벗이 되어주던 명동성당.
마치 6월과 촛불의 성지였던 시청광장이 진정한광장으로서의 역할을갈망하는 이들을 폭력으로 몰아내고
관변축제의 공간으로 변화시켜 또다른 시민들의 여흥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처럼.
2010년 5월의 명동성당은 그들이 언젠가는 87년의 그 아름답던 민주화의 성지 얘기마져도
수치스러워 하는 교회로 변할 것같은 우려를 심어줍니다.
2010년 5월 2일 일요일오전 9:07:28
 
 
 
 
 
501평화 그 그리움으로 공연영상안에 자막으로 적은..
 
3일전 들머리에서의 미사를 마치고 성모님께 기도드리기위해
이곳 성모동산을 오르던 신부님들과 신도들이 그 기도를 거부당한 곳.
성모동산에 다시와서  같은 시간 이렇게 그분들이 드리고싶었던
거부당한 그 기도를 대신 드립니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과 더불어 모든 생명이
살아가게 하신 하느님.
지금 온 나라 곳곳에서
강과 자연이 파괴되고
숱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죽음을 낳는다는 성경말씀처럼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개발셰력에게서
엄청난 탐욕과 교만과 죄악을 봅니다.
저들은 대다수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권력을 앞세워 진실을 왜곡하고 법을 어기면서
엄청난 세금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국민과 하느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아름다운 산하와 생명을 파괴하는 일을 멈추게 하소서
또한 우리가 우리안의 욕심을 이기고
생명의 젓줄인 자연을지키게 하소서
아멘.
2010년 5월 4일 화요일오후 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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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 5월 광주, 민족극한마당의 한 구석에서
이름없는 공연 5월연작공연영상회 로 함께 합니다.
 
80년 그해 모진 삶의 한가운데 무거운 숙제처럼 다가와서
아름다운 영혼들의 격려로 오히려 삶의 길을 배우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빛고을의 얘기.
16년지난 그 해부터 매년 한해에 한 작품 혹은 두세 편의 작품을 만들어 공연하면서
넋과 나눠온 이름없는공연의 5월연작.
30주년이 되는 올해 민족극한마당이 열리는 5월광주에
미안하고도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아남은 이들의 바로 이루지 못한 여전한 어리석음 용서빌며
절실한 가슴으로 다가가
그 품에 안겨 며칠간만이라도 포근한 사랑 그리길 꿈꿉니다.
이땅에서 어렵고도 어렵게 이어가며 지킨 빛고을의 꿈.
언제나 처럼 그리고 지난한해 굴절하며 가장 서글픈 한해를 맞았던 인간의 슬픈 자화상은
올해 30주년이란 어휘로 다시 서글픈 모습을 더 깊게 할 것이고
그래서 그 한쪽 구석에서라도 넋들과
그들을 진정 잊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아직도 지닌 어눌한 분들과 함께
조용한 가슴으로 나누고 싶은 얘기들.
이름없는 공연이 지난 15년간 5월광주에게 배우고 익히며 만들어온 공연의 영상들을 모아
작은 영화제로 30주년 5월광주 ,민족극한마당에 함꼐합니다..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공연영상회" 프로그램.
 
5월18일 순애언니(2006.5) 外
(26년지난 5월에도 잊지 못하고 찾아다가온 빛고을.혹시라도 만날 수 있을까 20여년전 어느날
금남로 어느곳에서 몬득 스쳐만났던 순애언니를 찾아서 상계동 골짜기 아홉남매의 막내가
큰언니 순임언니의 유언따라 다시 찾아온 광주.올해도 끝내 언니의 모습 만나지 못하고 광천터미널을
떠납니다.)
5월19일 헤어진다음날(2007.5.-9) 外
들불야학 그리고 그해 오월 도청지도부에 함께했던 윤상원,김영철 박효선
세 사람의 마음과 흔적을 찾아서 순례한 27년후 5월에서
9월까지 세사람의 기일에 찾아간 헤어진 다음날의 거님..
5월20일 잊혀질 때 까지는(2006.5) 外
5.18 26주년 5월27일 0시부터 5시까지 옛 전남도청에서 넋들과 함께 밤을 새운
공연의 기록.
5월21일 도청별관 (2009.6)外
빛고을에 남은 마지막 원형의 민주성지 옛 전남도청.아시아문화전당건축을 위한
금남로개발과 그 별관철거계획앞에 옛모습그대로의 원형보존을 그리는 순례자의
슬픈 희망그리기.
2010년 5월 6일 목요일오후 4:04:33
............
이름없는공연팀 5월연작
 5월,그곳에 하늘이 열리고나면
그 희망으로 다시
그 긴기다림은 시작되고.. 
 
예기플라타너스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 작품목록
1997.5.17-18 51817(오늘같은밤이면+남행열차)서울
1997.11그날아닌날에도(서울)
1998.5.16-19 지워진소외(서울)
1999.5.17-18 후이넘에서돌아와2-광주(금남로)
2000.5.18 잊지마세요(금남로,망월동)
2001.5 27-28겨울여행2(망월동,전남도청)
.
2002.5-10 후이넘의기억-상무대(상무대,망월동) 5.19 상무대(5.18 22주년)
.5.20 망월동 (5.18 22주년)  6.4-6 씨어터제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6.9l 경기도문예회관(수원화성국제연극제)  6.11화성행궁(수원화성국제연극제)
8.19 씨어터제로 (2002실험예술제)  10.19 안면도(2002겨울여행,가을,안면도)
2003.5 잊지마세요032(금남로)겨울여행2-유서 잊지마세요033(서울여성프라자)
2004.5.17-27 2004년5월 (광주.전주)
 
2005.5.24존재하는평화를향해(광주상무대,아시안인의마당)
2006.5.18 순애언니
2006.5.27 잊혀질 때까지는
2007.5.25잊혀질 때까지는(518기념문화관,난장인프리)
2007.5.27헤어진다음날 1(옛전남도청앞새벽)
2007.8.11헤어진다음날2(8.11성주성밖숲.청실홍실공연후무대)
2007.9.10-11헤어진다음날3(광주)
 
2008.4.25 평화 그 그리움으로166(5.18기념공원)
2008.4.28 평화 그 그리움으로167(광주 문화의전당)
2008.4.29 평화 그 그리움으로168(광주 우다방)
2008.5.27후이넘의기억2-춘천마임축제,명동,중앙로건널목
2008.12.13-14시린겨울-이름없는공연 밤샘영상회(옛 전남도청3층)12.13-14
 
2009.5.4평화 그그리움으로236(전주한옥마을영화제,차마당)영상공연
2009.5.5-6평화 그 그리움으로237,238(광주 옛 전남도청별관)
2009.6.13눈되지못하고눈되지않고-2009년6월 5월광주에서(옛 전남도청3층)6.13
2009.6.13도청별관01(광주 옛 전남도청)
2009.6.28눈되지못하고눈되지않고07-(광주 옛 전남도청)
2009.6.28-29도청별관02(광주 옛 전남도청)
2009.7.27평화그그리움으로244(광주엣전남도청오월의문걸개그림앞에서)
2009.7.27평화그림004-오월의문?(광주엣전남도청오월의문걸개그림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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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고 외로운 이들의 두물머리와 들머리 미사곁에서 ..
 
공권력을 앞세운 물리적 강제찬탈의 수순을 기다리며 단식과 기도로 지켜가는 두물머리의
미사와 함께 희망을 안고 민주성지로서의 희망을 안고 찾아와 시작한 명동들머리 미사마져
서글프고 쓰라린 모습으로 한주일을 지냅니다.
옳고 그름의 논쟁이 아닌 상식과 도리를 얘기하기마져 힘겨워진 인간세상.
무심의 거리엔 무엇이 그리 바쁜지 산다는 것에 허덕이며 존재의 원리마져 잊어 버린
사람들속에서 아이처럼 인간본연의 도리와 이치를 기억하는 이들이
약자처럼 죄인들처럼 매일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두물머리와 들머리를 오가며 하루에 두 번씩 매일 그렇게 행하는 이들따라
하루를 그렇게 이동하면서 봉헌해봤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이 이 평화로운 이들의 미사마져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다시 그들곁을 찾아 자리하나 더 채움이 고작입니다.
이승의 아름다운 색과 빛을 모두 버리고 하얗게 순백이 되어 버린 새들과 물고기들을
보았습니다.
천사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새와 물고기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꿈에서 만난 그들의 귀한 모습을 그리며
그 영혼의 성본처럼 고상처럼 만들어 두물머리와 명동들머리 성모상앞에 놓아봅니다.
너무도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자전과 공전의 순리따라 파이율로 굽이져 흐르는 그 아름다운 흐름
그리하여 깊고 얕음이 조화롭고 습과 모래가 이동하며
인간마져포함한 뭍생명모두의 공존의 젖줄이 되어주는 강의 품앞에서
제 하나만의 이익을 따지며
이 역행을 주도하는 무리 즉 인간.
소수의 사람들이 지키는 참회와 외로운 기도곁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뭍생명들에 대한 학살을 막을
자연의 아름다운 자정의 기적을 그립니다.
2010년 5월 8일 토요일오전 10: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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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8일 생명의 강 지키기 예술행동에 가지 못했습니다.
 
지난달말 다시 여강에 찾아가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생명의 강 지키기 예술 행동 분들과의 동행.
그 날의 답사를 이어 그 첫 행동일이 공지되었지만 5월8일 같이 가지 못했습니다.
우선 1인당 2만원씩 4만원이라는 회비를 만들지 못한게 하나 원인이었고
도자기축제가 열리는 신륵사 주변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여강선원 앞에서
강을 바라보며 치루는 주말 수많은 단체들의 행사치레들이
강건너 보이는 파괴의 현장과 어울려 강과 생명들에게 더 큰 번잡스러움만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 다른 어느 날 행사가 아닌 조용한 찾음을 준비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사람들은 바위늪구비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강선원에서 바라보듯 금모래 은모래도 사라졌습니다.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그 순례연작에서
낙동강 변산슾지길에 앉아서 바위늪구비를 떠나간 단양쑥부쟁이의 얘길 전해주던 날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굴암늪 이무기의 서글픈 울음소리도.
광주로 가기 전 어떻게든 갈 수 있는 차비마련해서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처음 만남의 약속지키고자 강천에 가려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인간의 어리석음 바라보며 또 하나 서글픈 지층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생명들 그 영혼을 만나려 합니다.
2010년 5월 9일 일요일오전 9:07:39
..............
바위늪구비 굴암늪 가에 앉아서 닉드레이크를 듣습니다.
 
평화 그 그리움으로 278일째,4대강순례연작 그 21번째 순례로
여강 강천리 바위늪구비와 굴암늪 그리고 굴암리에서 도리섬의 마지막모습을 바라봅니다.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도할 줄 안다면 그렇게 기도라도 드리고 싶은 계절입니다
바위늪구비,늪지에 살아온 풀곷들의 홀씨가 눈비처럼 흐느껴 내리고
바람따라 내려앉아 솜틀처럼 가득 쌓여있습니다.
자연과 고독을 사랑하며 이름도 없이 살다간 누군가의 마음이 생각나서
그의 노래를 기억합니다..
미안하고도 서글픈 마음으로 마지막이란 말없이 인사 나누고 돌아오는 길
그 영상을 편집하며 굳이 자막을 넣지 않고 그의 노래 두 곡을 듣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길 기다립니다...
첫 곡
cello song
 
Strange face, with your eyes
당신은 그렇게 진심으로 창백한 눈과 낯선 얼굴로 있네요.
So pale and sincere
Underneath you know well
You have nothing to fear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다는걸 알고 있지요.
For the dreams that came to you when so young
Told of a life
Where spring is sprung
당신이 어렸을 때의 가졌던 꿈은 아름다웠지요.
You would seem so frail 
In the cold of the night
When the armies of emotion
Go out to fight
수 많은 감정과 싸우는 차가운 밤에는
당신이 쉽게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아 보여요.
But while the earth sinks to its grave
You sail to the sky
On the crest of a wave
그러나, 지구가 무덤으로 가라 앉을 동안에도 당신은 큰 일을 해내고 있었지요.
So forget this cruel world
Where I belong
내가 속해 있는 잔인한 세상은 잊어 버려요. 
I'll just sit and wait
And sing my song
난 여전히 하던 일을 하면서  당신을 기다릴거에요.
And if one day you should see me in the crowd
어느날 낮은 신분으로 있는 나를 보거든,
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당신이 나를 도와서
Lend a hand and lift me
To your place in the cloud 
당신이 있는 곳으로 올려 주세요.
..........
그리고 두 번째 곡
river man
Betty came by on her way
Said she had a word to say
About things today
And fallen leaves.
베티는 가던 길에  들려서
할말이 있다고 했어요.
요즘 일들에 대해서
낙엽들에 대해서.. 

Said she hadn't heard the news
Hadn't had the time to choose
A way to lose
But she believes.
새소식을 들은 적도
실패할까 선택을 망설인 적도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는 믿고 있어요

Gonna see the river man
Gonna tell him all I can
About the plan
For lilac time.
강사람을 만날 거라고
그에게 다 이야기 할거라고
라일락이 필 무렵을 위한
모든 계획들을..

If he tells me all he knows
그가 만약 내게
그가 아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준다면
'bout the way his river flows
And all night shows
In summertime.
강이 흘러가는 길과
여름철 밤 풍경에 대해

Betty said she prayed today
For the sky to blow away
베티는 오늘도 기도했어요
하늘이 다 날아가기를
Or maybe stay
She wasn't sure.
혹은 그대로 이기를
어느 쪽을 빌었는지 
확신하진 못했지만.
 
For when she thought of summer rain
Calling for her mind again
그의 마음을 부르는 여름 비를 생각할 때면
다시 자신을 불러봤어요.

She lost the pain
And stayed for more.
고통을 잊고
아주 오래도록 머물수있었어요.

Gonna see the river man
Gonna tell him all I can
강사람을 만나서
그에게 내 할수있는 모든 걸
말씀드릴 거여요.

'bout the ban
On feeling free.
자유를 느끼는 것을 막는
모든 것들을

If he tells me all he knows
About the way his river flows
그의 강이 흐르는 길에 대해 
그가 아는 모든 것을 내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I don't suppose It's meant for me.
그것이 꼭 내게 의미가 되리라 생각진 않아요 

Oh, how they come and go
Oh, how they come and go
모든건 그렇게 왔다가는 것.
모든건 그처럼 흘러가는 것.
 
 
2010년 5월 16일 일요일오후 4:34:16
.......................
 
광주 시민 여러분 27일 새벽4시 도청 앞으로 나와주세요
2007년 5월 그 제안을 2010년 30주년 5월에 다시 제안합니다..
(2007년5월26일 밤 적었던 첫 제안글)
 
광주 시민 여러분
그리고 5월을 기억하며 광주에 와 계신 아름다운 순례자분들..
 
27일 새벽 4시 도청 앞으로 나와주세요,
 
26년전 이날 그렇게 애태우며 방송하던 새벽 선도차의 낭랑한 목소리에
우리들 답하지 못해
도청을 지키던 아름다운사람들을 그대로 보내야만 했지만
이젠 다시 그런 일없게
오늘27일 새벽3시에서 4시사이
꽃한송이 촛불하나 들고서 도청 앞으로 나와주세요.
 
그래서 우리 이제는 정말
그 누구도 외롭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한 사람이 이 얘길 하고 파서 광주에 왔습니다.
그리고 헤어진 다음날이란 작품으로
 새벽 도청 앞에서 작은 움직임을 갖겠습니다.
그리고 도청 창문으로 내다보는 금남로와 도청 앞 분수대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하나하나 촛불과 꽃을 들고 나와
인간방패처럼 민주를 지키는 약속을 해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볼 넋들.
그들과 만나기 위해
27일 새벽 옛 도청 앞으로 나와주세요.
 
이글을 보시는 분들 서로 연락해주시고 또 갈무리해서
27일 새벽 광주영령들과 함께 사랑을 약속할 분들을 모아
27일 새벽 4시 도청 앞에서 만납시다.
 
2010년 5월 19일 수요일오전 8:05:21
.......................................
이름없는공연제안   5월27일 새벽 4시 도청 앞으로 나와주세요,
 
광주 시민 여러분
그리고 5월을 기억하며 광주에 와 계신 아름다운 순례자분들..
 
5월27일 새벽 4시 도청 앞으로 나와주세요,
 
30년전 이날 그렇게 애태우며 방송하던 새벽 선도차의 낭랑한 목소리에
우리들 답하지 못해
도청을 지키던 아름다운사람들을 그대로 보내야만 했지만
이젠 다시 그런 일없게
30년 지난 그날 다시 27일 새벽 4시에
꽃한 송이 촛불하나 들고서 도청 앞으로 나와주세요.
 
그래서 우리 이제는 정말
그 누구도 외롭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그날 새벽 계엄군이 처들어오고 있다며
광주시민들에게 나와 달라고 외치던
그 가두 방송 차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고 거리로 나와
인간방패라도 되고 싶었던 사람의 마음으로
이 공연을 제안합니다.
 
지난해 그 새벽
넋들과함께 도청2층과 3층창가에 서서
밝아오는 새벽을 보며
작별인사를 나누던
그들의 눈동자에 어렸던 텅빈 거리.
 
그곳에 한 사람 두 사람 나와서 손을 잡고
인간방패가 되어주면
그리고 그들보다 먼저 꽃잎처럼 쓰러져주었다면
우린 그들과 함께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하면서.
 
27일 새벽 도청 앞으로 나와주세요.
그리고 그때는 그렇게 서글퍼했던
그 넋들의 추억 앞에
뜻밖의 환시처럼
지금을사는 우리들이 답해드려요.
 
노래도 부르고 종이배도 접으며
고운 꽃도 한 송이 가슴에 안고
 
다시는 결코
인간의 욕심과 폭력이
평화의 의지를 꺾거나 짓밟을 생각을 하지 못하게.
 
27일 새벽 옛 도청 앞으로 나와주세요.
 
이 말을 듣고 보시는 분들
서로 연락해주시고 또 갈무리해서
27일 새벽 광주영령들과 함께
사랑을 약속할 분들을 모아
27일 새벽 4시 도청 앞에서 만납시다.
 
이름없는공연이 제안하고 기다립니다.
 
2010년 5월 20일 목요일오후 1:36:46
.........................
민족극한마당 곁에서 가진 4일간의 5월공연영상회.
함께해주신 귀한 만남과 스침에 감사드리며
 
23회민족극한마당이 열리는 30주년맞이 5월광주에서
지난해까지와의 광주로의 순례와는 조금 다른 아주 슬픈 마음으로
이름없는공연의 5월공연영상회를 준비합니다.
5.18 기념공원,대동홀 민주홀 그리고 5.18재단이 있는 건물한편에서
민족극한마당의 시작이튿날 저녁부터 끝날 저녁까지 4일간
하루 1시간반 혹은 그 이상의 시간까지
빛의 반대되는 어두운 공간에서
안내도 없이 조용히 스크린을 설치하고 건물입구계단에 그리고 로비에
작은 영화관을 만들어서 지난 17년간 빛고을을 그리며 만들고 찾아와서
순례처럼 공연한 작업들을 담은 영상을 상영합니다.
 
30년지난 5월광주에 언제 부턴가 하나 둘 잃어 버린 살아 있는 벗들과의 만남.
그리고 같이 준비해 찾아오던 이들과의 이유 모를 이별의 흔적.
 
인간세상은 점점 아름다워진다는데
그 어느해 추모식에서 읽혀지던 어느 시인의 싯귀 문명의 날.
인간의 가슴으로 이루는 문명의 날은 아직도 아늑하고
아니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고
51817에서부터 잊지 마세요.순애 언니,후이넘의 기억-상무대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잊혀질 때까지는, 헤어진 다음날.. 그리고 도청별관까지.
우리가 찾아 그려온 광주의 미덕은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라던 절망으로 준비한 조촐한 영상회에서
그래도 발걸음 멈춰 찾아주는 몇몇의 아름다운 사람들 시선의 머무름과 만나
그 만남만큼의 의미로 용기를 키우고
이름모를 사람들과의 소리없이 나누는 그 만남과,대화,
그 시간만큼의 추억으로 기억은 다시 절망에서 용기로 됩니다.
 
어둠 속에서 가만히 앉았다가 혹은 서서 바라보다가 가신 분들
그렇게 만나 상기하며 넋들의 소개로 동지되는 이름모를 이들이 있어
한없이 감사할 수 있었던
실로 오래만에 다시 만나는 5월빛고을에서의 만남.
 
행사의 하나 프로그램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 조심한 만큼
5월영상회는 23회를 준비하며 새로운 시작을 하는 민족극한마당의 다짐
그 한구석에서
5월광주여서 가능했던 넋들과의 만남을 통한 통탄의 사랑을 새겨냅니다.
평화 그 그리움으로 280일에서 282일까지.
민족극한마당의 무대가 철수하는 그 마지막 밤
모두가 떠난 뒤 5.18공원을 밝혀주는 위패모신 공원 영혼의 빛들 앞에서
밤을 새며 간혹 가장 포근한 꿈으로 잠이 듭니다.
2010.5.19-21 518 30주년5월연작영상회(23회전국민족극한마당에서). 519평화 그그리움으로
520평화 그 그리움으로  521평화 그 그리움으로
2010년 5월 24일 월요일오후 2:53:51
................
30주년 5월광주 22일, 5.18기념공원에서 위패모신 넋과 함께 하는 밤 그리고 새벽
 
5.18 30주년이 되는 해 그 5월에 맞춰서 함께 치룬 전국민족극한마당.
주먹밥에 적은 그 글 자체가 대본이 되어 준비해온 2010년 30주년 5월연작 새 공연.
닷새간의 귀한 축제 민족극한마당을 마치고 상무지구 5.18기념공원의 무대를 떠나는 광대들의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한 뒷모습.
그들과 헤어지며 그들과는 같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작업을 시작합니다.
5월영령들의 위패가 모셔진 5.18공원에 0시를넘어 지친 하루가 지나면 사람들이 떠나고
위패를 봉안한 돌무덤 위에는 주홍색 가로등이 켜지고
일렬로 혹은 종횡대로 늘어선 쇠장대들은 그 가로등의 반사를 받아서 일상과는 다른 슬픈 모습을
드러냅니다.
처음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 5.18의 기념공원이 지어지고 재단 사무실 곁에 기념관과
몇 가지 기념조형물들이 들어서는 것이 아쉬웠지만
10여년넘어흘러 민주와 통일이 정진되고 또 다시 이렇게 반민주와 분단으로 역사가 역행하면서
한편으로는 망각이지만 그 안에서 또 하나 역사를 만들어가며 용기를 쥐어주는
흔적을 버린 상업지역으로 변화된 상무지구의 이 의미로운 작은 공간.
5월광주순례에서 망월동 묘역,전남도청,금남로,5.18자유공원상무대 와는 차별 두어
단한번도 밤을 새워보지 않은 이 곳이
5.18 지난 30년 그 30년의 희비와 쓰라린 좌절의 역사를 얘기 나누고 싶어서 머물러 밤을 새웁니다.
나흘간의 작은 영상회가 있었던 곳.
그리고 그것을 마치고 지새는 이 밤에 그저 무심히 켜지고 꺼지는 가로등 곁에서
눈물이 되어 빛나는 넋들의 시선 안에 하나되어 잠들 수 있는 또 하나의 밤 그리고 새벽.
 
2010년 5월 24일 월요일오후 3:41:28
............................
30주년5월광주 5월22일..망월묘역과 금남로음악회속에서..
 
30주년5월광주 민족극한마당에서의 5월영상회를 마치고
518기념공원 위패실 밖에서 지새운 밤.그리고 새벽.
518번 첫 버스를 타고 망월동으로 갑니다.
아직 묘역직원들도 출근하지 않은 시간.
5월과 어제의 흔적을 지켜보며 빗속을 걸어 신묘역지나 다가가는 구묘역엔
다시 그 날의 모습처럼 진정한 민주국가를 향한 처절한 서글픔이 맴돕니다.
 
여전히 이곳에 남아서 못내 그리운 얘기를 전해주시는 아름다운 이들.
지난해처럼 아니 그보다 더 이상한 5월기념식이 열리는 이곳 신묘역.
이방인인 제가 직접 할 수 없는 일 이지만 지켜드리지 못해 죄스럽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역류가 님들을 더욱 그리웁게하고
님들의 삶을 더욱 상기케합니다.
 
마침 망월묘역에선 들불 열사의 추모식과 들불상시상식이 열리고 그 수상자들은
5월의 뜻을 행동으로 이어가는 현재를 얘기합니다.
남 몰래 폭우라도 기다려야 했었는데,비가 다시 많이 내립니다.
금남로 공원에선 작은 음악회가 빗속에 준비되고 공연됩니다.
눈되지 못하고 눈되지 않고 떠나간 한 사람의 1주기를추모하는 사람들이
준비하고 만든 음악회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한 부분 의뢰받은 4대강관련 영상을 편집해서 동행하고 헤어집니다.
27일 새벽 도청 앞에서 만납시다.
그렇게 말 전하며 5월빛고을을 떠나옵니다.
30주년 5월
서글피 다가갔으나 그래도 결코 슬픔만은 쥐어주지 않는 빛고을의 미덕.
5월21일 밤부터 5월23일아침까지 이틀밤을 꼬박 새우며 그 얘기 안에 동행하는
넋들의 사랑 안에 담긴 그 시간의 흐름.
 
주먹밥 28호를 펴서 참으로 오래만에 활자로 인쇄된 이름없는공연의 대본을 읽으며
27일  새벽 도청 앞에서 공연할 2010년 5월연작 그리고 춘천 마임 축제에서 28일 이어갈
5월작업,인언강남락을 준비합니다.
2010년 5월 25일 화요일오전 11:11:56
........................
다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또다른 그들이 기도드립니다...
 
다시 또다른 분들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그리고 카돌릭 회관 입구
차디찬 입구에서 기도와 단식을 시작하셔서
그 8일째날입니다.
이 가장아름다운 계절 성모성월에
또 하나 슬픈 5월의 현장을 바라봅니다.
남한강에서 금강에서 낙동강에서 영산강에서 순례하며 기도하던 분들이
그 처절하고도 절실한 가슴으로
오늘은 이곳 차디찬 빗속에서 추운 밤과 새벽을 곡기를 끊고 밤을 지새우십니다..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를 격려해가면서
마치 자신의 생존권이라도 지키기 위해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처럼.
자신아닌 뭍생명의 삶과 질서를 위해
보시처럼 세상의 한편에서 이렇게 ..
366일 하루도 놓침없이 평화 그리기 그 이백여든세 번째날.
명동성당들머리의 5월은 님들의 기도가 있어서
서글픈 외면과 무심속에서도 아름다웠습니다.
 
http://yegie.com/524peace/page_01.htm
2010년 5월 25일 화요일오전 11:45:29
...........
 
27일 새벽4시 도청앞에서 만납시다.한명도 미리 응답없어 같이 가지 못하는 그 슬픈 시간.
 
30년지나 다시 5월,
짧았던 민주세상 짧았던 통일세상
그 모든 것을 다시 역행하여 참담히 상실하고
눈물 속에 맞이하는 5월.
인권과 민주의 시작이었던 5월 금남로 도청 앞 분수대엔
이젠 아무도 모이지 않고
넋을 그리는 슬픈 제안만이 도청 앞을 홀로 거닙니다.
 
꿈처럼 환시처럼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그래서 우리가 다시는 인간의 이기와 욕심 앞에
단 한 사람의 주권도 찬탈되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 지키려 하지만
이미 세상은 그런 의지를 버린 듯
아무도 대답없이 한달 간의 그리움을 접으며
홀로 다시 그 새벽을 향합니다.
 
다시 역류하는 서글픈 민주세상에서
올해는 참 많은 사람들이 그 새벽
넋들이 지키고 자했던 그 의지 상기하면서
다가와 얘기 나누며 자신이 준비한 만남을 교차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너무 아픈 한해를 보내야 했던 우리들이
그리고 그 언제보다 더 예리하고 무서운 속도로 진군하는 역류의 세력 앞에서
우리가 지키고 변화시켜야 할 인간의 정의와 도리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해서
그날 27일 도청 앞은
단순한 추모나 행사가 아닌
인간세상을 문명화해갈 꿈을 지키는 의지체들의 무언의 약속이 이뤄지는 시간으로
만남이 제안되었습니다.
하지만 꿈에 부풀어 그려본 세상은
낯선 거리에 낙오된 이의 슬픈 하소연이 되어
단 한 사람도 같이 가자 응답없는
그래서 아무도 같이 만나 미리 준비해가는 얘기를 만들지 못한 채
다시 홀로 그 새벽의 금남로로 향하는 버스를 탑니다.
 
지난 14년간 5월연작중 가장 슬픈 공연이 될 것 같다던 그 예감처럼
살아 숨쉬는 인간에 대한 허망한 꿈은 현실이 되어
살아오며 5월을 얘기하고 민주를 얘기하고 아름다운 세상 정의를 얘기하던 사람들을
아무도 이날 그 약속의 장소에서 다시 만나지 못하고 이승을 떠납니다.
 
넋들에게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자만하며 내기라도 걸 듯 인간편에 섰던 어리석음이
죄스럽게만 다가옵니다.
행사가 아닌 시간과 장소엔 스스로 다가와 눈물 흘리지 못하게 차갑게 식어 버린
이기적 자기생존형 생태파괴의 종족들.
스스로 찾아내어 벗과 넋의 외로움조차 달래주지 못하는 미물이 되어 버린 노예들.
 
우린 아마도 두 번 다시는 그토록 아름다운 인간대동의 세상을 만들지 못한 채
멸종될 겁니다.
2010년 5월 26일 수요일오전 8:57:07
 .....................
30년지나 5월, 27일새벽 도청 앞에서
 
여전히 만날 수 없는..
여전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임을 알면서도
광주에만 오면 이렇게 산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잔향처럼 흐릅니다.
그리고 또 부질없이15년넘게 이어오며 스쳐갔던 사람들의 그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멈춰 버린 기억을 추억합니다.
80년그날 시간이 멈추었다면 그들을 향해 다가가던 저희에게도
눈물이 고여 멈춘 시간이 있습니다.
30년지나 오월 이란 작업은
또다시 그러한 미련을 놓지 못하고
그려보고 기다리는 찾음의 공간,기다림의 시공,
그리고 아무도 못만나고 다시 돌아서는 행불자의 유족같은 심정의 회향입니다.
그래도 혹시 다시 준비해간 5월27일
잊고 있었네요 하고 노래하던 분은 다시 잊어 버렸네요 하고 노래하는 듯하고
금남로 분수대 도청 가로막힌 철재장벽과 새벽내내 쉬지 않고 들리는 공사장 소음은
인간이 지향하는 스스로 지워감에 이젠 익숙할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그렇게 못내 서글픕니다.
이날 이 새벽을 늘 광주에서 맞이하셨을 분들이
몇분 도청 앞에 나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듯 이 새벽의 존재함을 얘기하는데
지난 몇 년간 매년 이날 밤과 새벽을 이곳을 찾아와 지새며 기다리던 사람은
또 한 사람 우연처럼 스쳐가는 사소한 자기감동에 빠진 이승의 사람 그 모습을
인연맺지 못할 슬픈 사랑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30년지나 5월,
30이란숫자가 성장의 의미보단 역류의 의미로 다가와
참담히 머무르는 이곳 빛고을
그곳에서 부끄럽고 추한모습으로 넋들과 만나는 슬픈 현장에서
하얀 종이꽃 그리고 누군가 가져와 지피는 몇 개의 향.
함께 준비해올 사람없어
늘 이렇게 홀로 와서 조금은 더 가까워진 만남의 시간 기다리며 넋들곁에 한 걸음 다가가 서 보는 곳.
당신들과 같은 시선으로 같은 여정으로 여기 와서
애욕없이 바라볼 그 날만이 기다려집니다..
2010년 6월 2일 수요일오전 9:57:23
.........................
춘천마임축제 미친 금요일 헤어진 다음날 새벽세시 그곳에서의  人言江南樂 초연.
 
27일 새벽을 도청에서 지새고 춘천으로 향하여
춘천마임축제 미친 금요일 프로그램 안에 공연할 20분짜리 공연 그 바탕동영상을 만듭니다..
소리를 사용하지 않고 지난1년간 이땅 우리 인간이 만들어내는 아픔을 찾아서
그곳에 함께 했던 공연사진들을 정리하고 나열합니다.
이 5월 30년지나 광주에서의 민족극한마당에서 다시 4대강미사와 선원에서 그리고 27일새벽
다시 도청 앞에서 그리고 마임축제가 열리는 춘천에서
좁은 땅 같은 시간 속에서 너무도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 속을 이리저리 스치며
모른다는 것 외면한다는 것 그리고 알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이해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속성 안에 존재하며 절절이 살고 있는데
우린 아무에게도 몇 시간 전 함꼐하던 사람들의 얘기와 그 시공의 모습을 전할 수도 없습니다.
소외라는 것이 교차되는 삶의 공간을 분주히 다가가는 사람이 가지게 되는 것이란 걸 몰랐습니다.
외로움은 굴레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굴레를 벗어나 순례하는 이들의 몫으로 돌아오고
사람들은 서로서로 제무리 속에서 최선을 다하느라 다른 세상을 소외시킵니다.
그래서 슬픈 이 들은 홀로 슬프며 즐거운이 역시 홀로 즐겁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처럼 그 여럿을 동시에 만나는 이들은
무리의 즐거움 속에서 홀로 슬픔을 새깁니다.
오랜 친구들 멋들은 오히려 즐거움 쪽에서 스치며 인사를 건네고
변절자처럼 저는 그들 속에서 웃지 못하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그들끼리 서글피 울던 곳이 그리워서
못내 그 얘기만 새기며 이승을 거닙니다.
허난설헌의 한시 한조각을 작업에 소재로 사용했습니다.
벗을 그리며 다섯 개 달이 피어난다는 곳에서 벗의 눈동자에 비치던 달을 잃은 사람의
그리움을 얘기하던 네 개의 달에서 사용했던 강남곡의 일부를
도청 앞에서 헤어진 다음날 다시 이어지는 이튿날 새벽 지새움의 시간에 담아보려
작업을 준비하고 그 제목을 정한 [인언강남락]그 초연을
우다마리라 이름지어진 광란의 축제 현장 곁에 무심을 기다리며 놓아봅니다.
예상처럼 사람들은 그 새벽 안보회관 벽에 투시되는 서글프고도 아린 사진한장한장의 의미를
알 수 없이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영상 앞에 다가와 그림자 놀이를 하며
포즈를 취하기 도하고 사랑을 나누기도 합니다.
약속된 시간 공연이 시작되어도
모여서 그것을 들여다봐도 이 세월 이땅에서 장단의 슬픔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공유하지 못합니다.
설명한다면 혹시라도 관심 가져 주겠지만 그렇게 설명하고 설득시켜서 관심 가져주어야 할
내용도 아닙니다.세상의 아픔은 설명하여 교육되는 체험이나 실천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고
알고자 하여 다가가는 사람 들이 애끓는 마음이 있어서 멸망과 퇴화의 속도를
줄여주거나 잠시 멈춰줄 수 있을 뿐입니다.
축제의 공간에 자기 아닌 타인과 세상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순례하는 이의 모습이
아주 짧은 시간 존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인간이 세상 안에서 외톨이로 공존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처음 그가 시를 쓸 때 강이란 단어가 이리 슬픈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2010년의 강남곡은 그 강과 모래라는 단어만으로도
장단의 처절함을 더 이상 갈곳 없이 극대화시킵니다..
그리고 첫 구의 그 사람들이 말하는 즐거움과 댓 귀의 나의 근심이
수 백년지나 이 5월에 더더욱 애절합니다.
 
人言江南樂(인언강남락) 사람들은 강의 남쪽에서 즐거움을 말하지만,
我見江南愁(아견강남수) 나는 강남에서 근심을 봅니다..
年年沙浦口(년년사포구) 해마다 모래벌 나룻터에서
腸斷望歸舟(장단망귀주) 애간장 찟기는 마음으로 떠나는 배를 바라봅니다.
 
2010년 6월 2일 수요일오전 10:47:48
http://yegie.com/inun01/page_05.htm
....................
소신공양하신 문수스님,기약하신 후일인 오늘 ,그 말씀대로 다시 꿈속의 꿈을 꿉니다..
 
조계사 분향소에 달려가 바라보는 평화,그 그리움으로 286일째.
그리고 287일째 평화 그리기를 준비하며
 
이 6월 지난해 그 날처럼 다시 반복되는 서글픈 죽음과 그 추모
6월4일 서글픈 나라,민주의 역행과 생명파괴 앞에서
무거운 가슴으로 소신공양하신 한 수도자의 장례가 치뤄집니다.
 
그 안타까운 소식듣고 달려가 본 분향소에 걸린 그의 유서.
그 글 가운데서 뚜렷이 다가오는 어휘는
"후일을 기약합시다."
내세나 다음 세상이 아닌 후일이란 단어가
우리의 태만과 진정한 슬픔없는 행동에 가슴칩니다.
 
사판을 떠나 3년동안 홀로 수련하던 이판수도자의 소신공양이
서툴고 조그마한 양심 앞에 내려놓는 큰 질문.
그 답변을 마련할 정진의 시간입니다.
 
몇 년 전 한 스님을 바라보며 처음 기억하던 삼몽사
세월을 흘러 또다른 꿈속에서 나그네를 만납니다.
그리고 표주박에 물한 모금 떠 드리며 얘기 나누고 보내는 그.
낙동강가 강과 마을을 막은 뚝방길에서 꿈속의 꿈을 꿉니다.
그리고 새벽바람 앞에 시린 물한 모금.
목과 가슴을 스쳐 내리는 생생한 그 촉감마저도 꿈이던가요.
낯설음 없이 다가오셔서 물한 모금 같이하고 떠나시는 당신.
오늘이 바로 기약하신 그 후일이네요..
 
主人夢說客  客夢說主人 
주인몽설객  객몽설주인  
今說二夢客  亦是夢中人   
금설이몽객  역시몽중인

주인은 꿈 속에서 나그네와 말하고
나그네는 꿈 속에서 주인과 말하네
말하는 이 꿈 속에 두 나그네
역시 꿈속의 사람들이지.
 
깊은 절의 지는 꽃은 붉은 비요
긴 숲의 대나무는 파란 연기라네.
흰구름은 산위에 엉기어 자고
푸른 학은 스님과 함께 졸고 있네
 
옷 한 벌 표주박 하나 한 칸 집이여
일평생 흰구름 산에 길게 누웠네
사립문 닫힌 이 풀집 맞고 보내는 이 없으니
밝은 달 맑은 바람이 왔다가 가네.
 
2010년 6월 3일 목요일오후 6:11:33
  ..................................
  문수스님에 대한 생각 그리고 꿈속의 꿈으로 평화 그리기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은 이 세상을 지내며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과의
스침이며 사랑에 대한 담론 그 마지막 정점을 보게 합니다.
물론 그것이 아름다운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서글픈 일이며
인간과 뭍생명의 조화로운 삶의 원칙이 이뤄지는 곳에서 이룰 수 있는
인간의 더 큰 아름다움이 있겠지만
지금 이시기 이 인간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란
과연 무엇이며 존재의 방법은 무엇일까하는데에 해답아닌 해답이
선문답의 화두로 다시 돌아옵니다.
소신공양이라는 한줄기 어휘로
그 무엇보다 큰 인연과 만남은 이뤄지고
그 만남을 통해서 바라보게 되는 것은
인간이 이 꿈속에서 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꿈입니다.
다비식이 있는 날 지보사까지 가지 못하고
조계사 마당에 다시 옮겨 세워진 분향소에서 그 사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선승의 사리함이 모셔져 있는 아늑한 공간에서
공간을 초월하는 생각에 잠깁니다.
사판을 헤메던 한 스님이 어느 나즈막 한 곳 한 이판승의 소신공양 앞에서
목이 메입니다.사람들은 통쾌한 말씀에 박수를 치고 환호하지만
그가 마침내 말하며 얻고 싶었던 반응은 그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한 송이 연꽃을 바라보며 노래했던 선승의 고운 노랫말이
오히려 구슬피 들려지며
청허휴정 스님의 삼몽사가 시간을 넘어 넋 속에 엉켜집니다.
속물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용기의 아름다운 선행과 수행의 아름다움이
눈물처럼 맺혀지는 시간들.
2010년6월4일 문수스님의 다비식날 조계사분향소에 그리는
이백 여든 일곱째 날의 평화
그리고 이튿날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추모제를 함께하며 그리는
열번째 평화그림.
인간존재 이유를 찾아 행하고 회향하신 가장 아름다운 공양곁에서...
2010년 6월 17일 목요일오후 3:33:36
.............................
열흘지나 다시와 본 한강선원에서..616평화그 그리움으로 290일째공연
 
잠적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깨달은 이의 다시 길 떠남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멀리서 바라보길 파람의 길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야 만날 수 있을
그래서 이렇게 머물러서는 다시 만나지 못할 더 높은 피안의 길목.
평화그림 그 열 번째 작업 안에서 스쳐 만날 수 있었던 참된 목소리 그 이후 열흘만에
그를 앞서 떠나보내고 다시 가보는 한강선원에서..
 
생명평화대화마당이란 이름으로
낯설게 열리는 한 작가의 대화 모임이 열리고 사람들은
온누리를 향한 기도 정진의 정결한 목탁소리를 지우며
소신공양스님의 분향소 제대 옆에서
또다시 속세를 얘기 나누며 나름의 철학과 살이법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머물러 즐거운 사람들의 시간이 스쳐갑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후 조명등이 꺼지고서야 다시 정진의 시간을 찾아 밝어진 쓸쓸한 공간.
평화 그 그리움으로 다가온 곳.
그 290일째시간은
그곳에 하나의 그림자가되어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멈춤을 찾아봅니다.
 
 자전의 공간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은 그 멈춤이 움직임이며
시공과 동행의 흐름은 오히려 정지된 듯 보입니다.
사라진 듯 보이지 않는 것이 곧 생명이며 허상을 남기는 그 모습이 곧 망령입니다.
2010년 6월 17일 목요일오후 04:12:01
 
...........................
20일 낙동강에서 공연할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그 26번째 연작을 준비하며
 
내가 인간종의 하나로 태어나 살고 있는 이 시기 이 정부의
한반도 운하 설치 계획과 4대강공사를 바라보며 그 연작을 시작한
이름없는공연의 4대강연작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그 화두를 따라 의무처럼 찾아가서야 바라볼 수 있었던 강과 산야를 통해서
공연은 그 시선과 행동의 방향을 조금씩 넓히고 심화 시키면서
하나의 배움으로 뭍생명의 공존 앞에 너무도 무지했던 존재의 흐름을 찾아갑니다.
가을부터 겨울을 보내며 만든 한편의 주제는
인간의 오만과 이기심에 대한 확인이며 인간의 한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그 대책에
대한 찾음 이었습니다.
그리고 뭍생명에서 빼앗아 버린 그 봄을 지내며 또 한 계절.
참담한 모습으로 학살당하는 자연과 생명의 현실을 바라보며
정진과 기도로서 인간 앞에 맞서는 사람들의 아린 행동을 같이합니다.
 
피안의 입구에 다다라서 물한 모금 목축이고
다시 돌아서 인간세상으로 떠나오는 사람처럼
후이넘에서 돌아와 그 기억을 통해 자기정진을 이어가는 사람처럼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연작을 통해 강을 순례하는 이의 가슴은
모진 어리석음과 이기심에 가득찬 유일한 종족 인간에 대한
스스로의 보시의 모습으로 그 길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소신공양과 다시 길떠남 등으로 만나는 그 해답 앞에서
다시금 자각하고 용기 내는 존재함의 도리.
 
지워짐에 대한 아픔보다는 지우는 어리석음에 대한 아픔이 더욱 크고
그 어리석음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삼라만상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으로 지켜가다 감사히 맞이할
인간의 어리석음을 통해 치뤄질 멸종의 기다림입니다.
 
아주 오래 전 실향가를 들으며 작업했던 파람의 첫 작업에서
적었던 맨틀의 마음을 다시 이 강의 순례자의 가슴에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그의 포근한 시선 안에서 간혹 스쳐 맴도는 사람의 눈물을 만납니다.
 
낙동강에 다시 가기가 두렵지만
생명의 강 지키기 예술행동과 함께 잛은시간이나마 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서
낙동강 어느 구비에서 그곳을 거닐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용기드리며
혹시라도 만나면 드리고 싶었던 조그마한 얘기를 구성합니다.
 
지난 24번의 연작 그 초반작업에 담았던 얘기와
그 순례길에 들으며 상기했던 노래로
순례의 가슴으로 인간이기보다는 강이 되고 싶었던 한 사람의 마음을
시간의 공간 속에 적어낼 준비를 합니다.
 
11분정도의 시간 안에
5개의 짧은 이미지 장을 만들고
사람의 관계와 갈등보다는 강과 산야에 감사하며
삼라만상의 뭍생명의 하나로 스쳐 만나고 떠나는 인간의 모습으로
순례하며 그 길에  만나고 그렸던 작은 소망과 행동들이
위로도 아닌 위로로 강가에서
애처로운 그 모습이
미소라도 쥐어드릴 수 있음 하면서.
 
620평화,그 그리움으로-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25
음향 및 대본 구성
1.나그대와 함께살겠네(박창근)
나 그대와 함께 살겠네 푸른 바람 맞으며 그 바람이 주는 생명에 소릴 들어 주겠네
나 그대와 함께 살겠네 저 산 어느 한 자락
우릴 위한 땅이 있는 한 흙과 함께 살겠네
참 고마운 이 생명들 참 아름다운 이 존재들
사랑스런 이 보배들 우릴 있게 하는 고귀한 친구들
인간의 죄를 용서하소서 그 슬픔 함께 하소서
 
2.kelsang chukie tethong(changga)
3.멘틀의 나레이션
100억개의 형제들이 고향을 떠나 흩어져서
나는 60개하늘을 가진 조그마한 감성의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10억년을 지내며 그 감성을 식혀낼 이성적요소를 생성하면서 나를 구축했다.
그리고 40억년을 지내며 내 표피 위에 생명과 무생명체들이 살 수 있도록
나의 이성면을 감쌀 또하나의 푸른빛표피를 만들었다.
수억의 존재들이 지질시대위에서 생성되고 소멸되어갔으며
나는 그들의 사랑과 미움을 바라보면서
간혹 슬픔에 겨워 고향을 떠나 이 공간으로 온 그날이전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시생대를 거쳐 600만년전 우리의 영혼을 닮은 인간들이 생성되고
난 요즘 형제이웃들과 함께 내안에 존재하는 그들의 얘길 간혹 꺼내곤한다.
언제나 그런건 아니지만
간혹 어느 누추하고 조용한 표피구석에서 발견하는 그들의 지극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
4.실향가(정태춘)
고향 하늘에 저 별, 저별 저 많은 밤 별들
눈에 어리는 그 날, 그 날들이 거기에 빛나네
불어오는 겨울 바람도 상쾌해
린 날들의 추억이 여기 다시
춤을 추네 춤을 추네
 
5.작은자유(오지은)
너와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쓸데없는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네
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아름다운 것들을 같이 볼 수 있다면 좋겠네
 
작은 자유가 너의 손 안에 있기를
작은 자유가 너와 나의 손 안에 있기를
 
너의 미소를 오늘도 볼 수가 있다면
내일도 모레도 계속 볼 수 있다면 좋겠네
 
니가 꿈을 계속 꾼다면 좋겠네
황당한 꿈이라고 해도 꿀 수 있다면 좋겠네
 
너와 나는 얼굴을 모른다 하여도
그래도 같이 달콤한 꿈을 꾼다면 좋겠네
 
지구라는 반짝이는 작은 별에서
아무도 죽임을 당하지 않길
 
지금 나는 먼 하늘 아래 있지만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니가 오늘도 행복하길
작은 자유가 너의 손 안에 있기를
작은 자유가 너와 나의 손 안에 있기를
 
2010년 6월 18일 금요일오후 4:49:53
..........................
4대강연작26 생명의 강 지키기 예술 행동,상주,낙동강 강굿에서의 공연
620 평화,그 그리움으로 영상대본
 
아무 말도
드릴 말씀이 없어서
그저 죄스러운 가슴으로
당신곁에 다가갑니다.
그리고 이승에서의
마지막 즈음이 되어서야
서툴게나마 익히기 시작한
인간아닌 당신의 언어로
    
 모래 위에 가슴 앞에
그리고 하늘에
편지를 적습니다.
    
그리고 두물머리,고무나루
금모래 은모래,
바위늪구비..곳곳에
소중히 접어 심었던
하얀 종이꽃 한 송이
병산 습지 길목에 심던 날
생각합니다.
      
강천보 공사 현장 바라보고 온
남한강의 얘기들으며
서글픈 가슴으로
고향을 떠나
낯설고 숨쉴 수 없는
용수위 윗지역으로
이주를 시도한
바위늪구비살던
단양쑥부쟁이 얘기도
전해드리던 지난겨울..
     
애타게 다시 찾아와
바라보는
상주보 현장넘어
찟기워진 모래밭.
     
뜨거운 그 모랫길을
맨발로 걸어보는
순례자들과 함께.
오만과 죄악이
무심히 이어지는
상주 낙동강변에 서서.
 
2010년 6월 22일 화요일오전 1:54:44
.....................
강과 기도 ,4대강순례연작 그 두 번째 작업을 준비하면서
 
2박3일간의 4대강순례영상전[강과 기도] 작업공간을 찾습니다.
 http://cafe.daum.net/oncorea/2Gei/731
 
이름없는공연이
인간의 이기로 상처받고있는 4대강과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공연한
지난해 가을부터 이 봄까지 작업해온  공연과 공연영상을 전시할
2박3일간의 순례보고회를 준비합니다..
  
4대강순례공연영상을 상영하면서
2박3일간 24시간 공연할 공간을 제공해주실분을 찾고있습니다.
정부의 4대강살리기 사업에 찬성하지않는분으로서
3평이상의 작은 갤러리나 극장 혹은 교회나 성당 법당 혹은 사무실이나 주차장등의
여백 공간을 갖고계신 분.
7월8,9,10일 3일간 무상으로 장소를 제공해주시면
그곳에서 이름없는공연의 4대강순례영상전시와 공연을 준비해서
2박3일간의 작업 [강과 기도]를 공연하려합니다.
 
서울지역에서 이 작업을위해 제공해주실 장소를 갖고계신 분,
혹은 자신의 사무공간이나 3평이상의 영상상영전시가 가능한 사유공간을
이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제공해주실분이 계시면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연락주실곳
http://cafe.daum.net/oncorea/2Gei/731
019-696-2550
 
이름없는공연의 4대강순례연작 사진집및 공연영상있는곳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이름없는공연 4대강순례연작공연
2010이름없는공연작업노트
파람20-그냥그렇게흘렀으면좋겠네(고마리와글쓰기갈천캠프)2009.8.11
827평화,그 그리움으로 248-아라뱃길에서낙동강하구까지(시천)2009.8.27
1025평화 그 그리움으로250-(부산 구포 낙동강 화명지구)2009.10.25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3(남한강, 여주-강천구간)2009.11.20-21
1124평화 그 그리움으로251(양수리 두물머리 생명평화미사)2009.11.24
1210평화 그 그리움으로252(4대강순례연작-금강편,금남교,공주)2009.12.10
1211평화 그 그리움으로253 (4대강순례연작-금강편,부여,부소산) 2009,12.11
4대강순례공연영상회(문래동이정훈작업실)2010.1.14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7-낙동강숨결느끼기1.16-17
203평화,그 그리움으로256(굴포천,평교..)2010.2.3
207평화 그 그리움으로257(영산강-나주 노안면 학산리)2010.2.7
208평화 그 그리움으로258(영산강-담양습지)2010.2.8
322평화 그 그리움으로261(속고양환경연합-4대강순례공연영상회)2010.3.22
시천에서낙동강하구까지64m두번째영상회(마산 시와자작나무)2010.3.26
시천에서낙동강하구까지10-안동,낙동강.2010.3.26
419평화 그 그리움으로268(금강생명평화미사)11 2010.4.19
422평화,그 그리움으로270(65차 두물머리생명평화미사)12 2010.4.22
시천에서낙동강하구까지13-여강선원에서.2010.4.24
426평화,그 그리움으로271(명동성당들머리,명동생명평화미사시작날.)4.26
502평화,그 그리움으로273(두물머리 75차 생명평화미사.)5.2
503평화,그 그리움으로274(두물머리,명동성당들머리생명평화미사.)5.3
507평화,그 그리움으로275(명동성당들머리생명평화미사.)4river17-5.7
509평화,그 그리움으로276(조안에서 신원까지 남한강...)4river18-5.9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19(생명의강을위한명동성당시국미사)5.10
511평화,그 그리움으로277(노들연구소 홍성태교수특강.)4river20 5.11
514평화,그 그리움으로278(여강 바위늪구비,도리섬)4river21 5.14
524평화,그 그리움으로283(4대강사업중단촉구 전국사제단식기도회8일째)22
525평화,그 그리움으로(서울선원개원식) 4river23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24(양수리성당,생명평화미사)6.14
616평화,그 그리움으로290-서울선원(문수스님분향소..)4river25 6.16
620평화,그 그리움으로291(낙동강순례강굿.)4river26
2010년 6월 30일 수요일오전 11:04:23 
..................
강과 기도. 그해 6월을 보내는 한강선원에서..평화 그 그리움으로 그 292일째 날에
 
그 해 어느날부터 그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강을 위해 기도하기시작했습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아이처럼
그리고 사랑을 느끼기도 전에 이별을 맞는 연인처럼
애절하고 서글픈 가슴으로
강과 기도는 연결되었습니다.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4대강을 스치며
순례길에 만나게 된 것은 기도라는 행동.
그 해 6월을 그렇게 기도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의 재개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아름다움을 만난..
6월의 마지막 날
오늘은 깊은 밤이 도시 한 가운데 눈물로 세워진 한강선원
그 기도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회색도시속 사찰에서
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도와
그들을 온유히 맞아주는 강을 봅니다.
 
2010년 7월 1일 목요일오전 1:10:09
....................
7월한달간 4대강순례공연 거리 영상회를 진행합니다.
http://cafe.daum.net/oncorea/2Gei/739
 http://cafe.daum.net/oncorea/2Gei/738
7월한달간은 그간 작업해온 4대강순례공연영상회를
거리와 공간에서 상영하며 작업을 이어가려 합니다.
관객이 있건 없건 단한분이라도 보실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던 준비해서 가려합니다.
직접 공간을 갖고 계시거나(길가 벽면이라도 좋습니다)
혹 좋은 공간 연결해주실 분은 연락 주십시오
이름없는공연 홈피와 까페에서 기다립니다.
www.yegie.com
http://cafe.daum.net/oncorea
2010년 7월 5일 월요일오전 11:25:49
.......................
 
4대강순례공연영상회 그 순례 상영회를 준비해 길을 나서며
 
강에 다녀왔습니다.
지난겨울 그리고 봄 다시 이 여름에
그리고 그곳에서 강과 기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청원이나 바램이 아닌
행동의 기도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 뭍생명과 동행하는 일.
 
이 여름 7월엔 이름 없는 공연자가 되어 함께 강과 기도하고 픈 사람들을 찾아서
거리 어느 구석 조그마한 벽 하나라도 허락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강의 얘기를 비추어 새기며 그 앞에서 기도하겠습니다.
 
강과 기도
전원하나만 꽂을 수 있는 여건과 영상을 비출 조그마한 벽이나 공간을 가지신분
연락주십시오
단 한 분이라도 부르시면 다가가서 그 사람과 함께 하겠습니다.
강과 강사람의 얘기를.
(2010년7월에 떠나는 이름없는공연 4대강순례연작공연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강과 기도 공연 영상회 안내영상자막).
2010년 7월 5일 월요일오후 5:24:55
 
...............
이름없는공연4대강순례공연영상회 [강의 기도],함께해 줄 누군가를 향해서....
 
이름없는공연의 7월은
그간 4대강을 순례하면서 작업해온 공연영상들을
이제는 차비 등을 마련할 수 없어  더는 갈 수 없는 현실에서
또 하나의 기도형태로 서울에 머무르며
서울인근 차비부담없이 갈수 있는 곳에서라도
지속적으로 강의 얘길 행동하는 기도로서 작업하면서
혹시라도 같이 할 분들이 계시다면 동행하고 싶어서 
이름없는 공연의 마지막 작업으로 진행하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상영회를 할 수 있는 곳은 
서울지역과 인근으로 그 작업능력이 제한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무료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지역이나 강변.
4대강을 지키는 선원이나
4대강지키기 행사나 프로그램의 한쪽에서
혹은 그 프로그램 시작 전이나 후에 상영이나 공연공간이 마련된다면
다가가 함께 할 기회가 주어지길 희망합니다.
 
서울에서 행선지까지 두 사람의 왕복차비를 마련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리고 누군가 함께하고 싶어 부르시는 분이 계셔서
그분이 빔프로젝터를 연결한 전원만 준비해주실수있다면
일정표에 그 일정을 정하고
그곳으로 다가가서
저희가 보고 온
그리고 나누고 온
강의 얘길 전해드리겠습니다. 
2010년 7월 6일 화요일오후 7:36:34
.....................
강과 기도 그 다섯 번째 얘기 -두리반 골목에서의 이틀간의
이름없는공연4대강순례공연영상회에 초대합니다
 
사람이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기도일 겁니다.
기도는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행하는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갈망이며
삼라만상들 가운데 사람이어서 해낼 수 있는 고귀한 재능이기도 합니다.
2010년 여름 이 지구의 한구석에서
인간의 오만과 욕심에 의해 소리없이 죽어가는 생명들과
산과 강들과 늪의 학살 앞에서
아린 가슴으로 스스로 다가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절실히 이뤄지는 기도들.
 
이름없는공연의 4대강순례연작 두 번째 강과 기도는
간혹은 소리없이 그림으로 간혹은 누군가의 귓전에 작은 목소리로
기도의 모습으로 이 계절을 살아갑니다.
 
그 다섯 번째 기도는
그 기도의 공간을 허락해준 분의 도움으로
서울 동교동 홍대가는 길 작은 용산 두리반 앞 골목길에서
평화 그 그리움으로 293일과 4일이 되는
7월8일과 9일 저녁9시-11시에
소리없는 4대강순례공연거리순회영상회의 형태로 준비합니다.
 
많은 분이 오셔서 이 도시의 한구석에서
강사람과 강의 얘길 전해들으며
자신이 준비한 사람으로서 해야 할 기도를 갖고 같이하실 분들
만나는 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름없는 공연 4대강순례공연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와 [강과 기도]연작 공연 거리영상회
2010년7월8일(목),9일(금) 저녁 9시-11시
작은용산두리반 정문옆 골목입구에서
홍대앞 '작은 용산' 두리반
http://cafe.daum.net/duriban
2010년 7월 8일 목요일오전 9:48:40
...........
끝내 못이룬 홀로 준비해보던 한강선원에서의 대화마당후 영상회
 
한강선원을 다니며 생명의 강을 위해 그리고 문수 스님 소신 공양49재기간 동안 분향소에서 
밤을 지새며 기도드리시는 분들과 그 하늘곁에서
강과 기도 영상회드리며 공연하고 싶었는데
그 마음이 그곳을 지키시고
행사를 기획하시는 분들에게 닿지 못해서
이뤄지지 못한 채 이제 문수스님의 분향소도
한강선원과 조계사를 떠날 날이 다가옵니다.
 
대화마당이 끝나고 사람들이 떠난 후에도
그곳을 지키시며
기도를 드리시는 분들
그 곁에 세워진 하얀 텐트 벽면에
강의 영상을 담아서
밤샘기도를 대신하고 싶었던 작은 꿈이
이어지지 못해 아쉽기만 합니다.
 
 2010년 7월 13일 화요일오후 1:25:14
.....................
이름없는공연 4대강순례연작 그 두 번째 [강과 기도]를 향해..
 
시천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2009년 8월 시천교 경인 아라뱃길 공사 구간에서 시작해서
2010년6월 성주 대남강변에서의 작업까지.
스물여섯 번의 순례공연을 통해 바라보며 익힌 것은
인간이 가지는 오만과 그 오만이 이뤄내는 조화와 순리에 대한 반역.
그리고 그 곁에서 뭍생명과의 원리적 평화를 지켜내려는
또다른 생명들의 고운 기도들.
 
그 인간종의 욕심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60억년의 순환.
주체가 될 수 없는 우매한 종이 철부지처럼 행하는 그 이기적 잔혹에
소리없이 파괴되고 학살되어가는 뭍생명들과 눈물어린 생태.
해와 달 그리고 별 그리고 비와 바람 안개와 물
이슬이 합쳐서 수억 년 지구의 공,자전을 따라 만들어준.
생명의 공존을 위해 지어준 고운 사랑의 터.
 
강을 다녀와 자각하는 것은
뭍생명들이 기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삼라만상의 생명,무생명 속에서 인간은
그 자신의 이기적 오만과 그 오만이 만들어내는 단기적 행위로 인해서
자연의 흐름 그 고리 안에서 낙오되고 제외되어가고 있다는 것.
 
멸종을 자초하는 그 노력으로
인간은 지구생태에서 강에서도 숲에서도 살 수 없는
환경비적응 종으로 되어가고
그 변화를 보며 인간은 오히려 지구생태가 변화한다고 아우성치며
이 지구별을 제게 맞추려 하다 멸종될 것입니다.
 
기도는 인간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오만으로 파괴하고 죽이는
강과 바다 그 길을 흘러가는 물결,
바람과 모래와 늪과 갈대와 조약돌들의
삼라만상 미물들을 위해 부르는 하늘을 향한 호흡.
 
강과 기도는
뭍생명들의 그 아름다운 기도들을 바라보며
그 곁에 서서 익혀 배우며 다가가는
인간 속 서글픈 이들의 의지굳은 어린 삶의 모습을 찾아가는 작업
그리고 마치 연극처럼
연극이라는 핑계로 수줍은 양심을 뿌리치며
소심하게만 이라도
처절한 가슴으로 나를 버리고 사랑을 찾아가고픈 노력.
 
그 원리 속을 걸어갈 수 있게 주어진 짧고 적은 시간동안이나마
기도할 수 있는 능력체로서
행하다 갈 수 있는 존재성에 감사하며
뭍인간들의 논리와 감성에 동참못해
무리에서 쫒겨나온
반역의 모습으로 외톨이가 되어 버린 이들의
더 이상은 할 수 없는 만큼까지의 공양.
 
이름없는공연 4대강순례연작 1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연작 26편의 공연사진집
827평화,그 그리움으로 248-아라뱃길에서낙동강하구까지(시천) 1025평화 그 그리움으로250-(부산 구포 낙동강 화명지구)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4(이름없는공연4대강순례연작)남한강,여주-,강천지역 1124평화 그 그리움으로251(양수리 두물머리 생명평화미사)4대강연작공연 1210평화 그 그리움으로252(2009겨울 4대강순례-금강편,금남보-공주) 1211평화 그 그리움으로253(2009겨울 4대강순례-금강편,부여,부소산)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07-(이름없는공연4대강순례연작)-2010.1.16-17 203평화 그 그리움으로256(굴포천,평교..) 207평화 그 그리움으로257 208평화 그 그리움으로258 322평화 그 그리움으로261(속고양환경연합-4대강순례공연영상회) 시천에서낙동강하구까지64m두번째영상회(마산 시와자작나무)
시천에서낙동강하구까지10-안동,낙동강. 419평화 그 그리움으로268(금강생명평화미사) 422평화,그 그리움으로270(65차 두물머리생명평화미사) 시천에서낙동강하구까지13-강천보,여강선원 426평화,그 그리움으로271(명동성당들머리,명동생명평화미사시작날.) 502평화,그 그리움으로273(두물머리 75차 생명평화미사.)
503평화,그 그리움으로274(두물머리,명동성당들머리생명평화미사.) 507평화,그 그리움으로275(명동성당들머리생명평화미사.) 509평화,그 그리움으로276(조안에서 신원까지 남한강...)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19(생명의강을위한명동성당시국미사) 511평화,그 그리움으로277(노들연구소 홍성태교수특강.) 514평화,그  그리움으로278(여강 바위늪구비,도리섬)
524평화,그 그리움으로283(4대강사업중단촉구 전국사제단식기도회8일째) 525평화,그 그리움으로284(조계사,서울한강선원개원식)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24(6.14양수리성당,생명평화미사) 616평화,그 그리움으로290-서울선원(문수스님분향소..) 620평화,그 그리움으로291-4대강연작26,상주,낙동강 강굿
2010년 7월 19일 월요일오전 9: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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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스님,추모문화제에서 드리는 강과 기도 여섯 번째날.
 
문수스님 소신공양 추모 문화제엔
어쩌면 역설적으로 기다렸을지도 모를 그 비가 한없이 내렸습니다.
하얀 비닐 비옷을 입고 조각인조잔디 젖은 광장에 다시 모여 앉아
촛불을 켜든 사람들.
48일지나 이젠 그분의 중천에서의 심의도 끝이 나고
내일이면 지금보다는 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같이 살며
얘기나눌 수 있을 그분.
살아선 못 만나보았지만
소신공양의 귀한 사랑으로 남은 이승에서의 시간에
유일한 벗이 되어줄 이.
철없이 노래하고 행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공양 마져도 슬픔보다는 자기존재의 이익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도 보이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
이 비속에서 이렇게 자리를 뜨지 않고
촛불처럼 눈물처럼 앉아있습니다.
기억하건 데
님이 두 번째 편지에 남겨주신 말
기약하신 후일이 이제 저희들에게 시작되었습니다.
 
빗속의 밤 민주의 광장.그곳에서
48일전 당신의 빈소로 찾아가 적었던 그글
다시 돌이켜 적어봅니다..
 
소신공양하신 문수스님,기약하신 후일인 오늘 ,그 말씀대로 다시 꿈속의 꿈을 꿉니다..
http://cafe.daum.net/oncorea/7Ff4/116
조계사 분향소에 달려가 바라보는 평화,그 그리움으로 286일째.
그리고 287일째 평화 그리기를 준비하며
 
이 6월 지난해 그 날처럼 다시 반복되는 서글픈 죽음과 그 추모
6월4일 서글픈 나라,민주의 역행과 생명파괴 앞에서
무거운 가슴으로 소신공양하신 한 수도자의 장례가 치뤄집니다.
 
그 안타까운 소식듣고 달려가 본 분향소에 걸린 그의 유서.
그 글 가운데서 뚜렷이 다가오는 어휘는
"후일을 기약합시다."
내세나 다음 세상이 아닌 후일이란 단어가
우리의 태만과 진정한 슬픔없는 행동에 가슴칩니다.
 
사판을 떠나 3년동안 홀로 수련하던 이판수도자의 소신공양이
서툴고 조그마한 양심 앞에 내려놓는 큰 질문.
그 답변을 마련할 정진의 시간입니다.
 
몇 년 전 한 스님을 바라보며 처음 기억하던 삼몽사
세월을 흘러 또다른 꿈속에서 나그네를 만납니다.
그리고 표주박에 물한 모금 떠 드리며 얘기 나누고 보내는 그.
낙동강가 강과 마을을 막은 뚝방길에서 꿈속의 꿈을 꿉니다.
그리고 새벽바람 앞에 시린 물한 모금.
목과 가슴을 스쳐 내리는 생생한 그 촉감마저도 꿈이던가요.
낯설음 없이 다가오셔서 물한 모금 같이하고 떠나시는 당신.
오늘이 바로 기약하신 그 후일이네요..
2010년 7월 19일 월요일오전 9: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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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작업정리중에..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정말 아득히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11년전작업영상을 정리하며
고양정신보건센터 회원 분들과 같이 만나서 같이 얘기 나누고 들으며 만들던 몇 편의 공연작품들에 대한
그리움을 찾아갑니다.
그 당시 8미리 캠코더로 촬영했던 영상들이나 켑춰 사진들이 지금은 찾을 길 없는 작품들도 있고
하이텔 나우누리 한미르 등의 동호회를 만들고 함께 작업하며 그 게시판에 적던 작업노트들도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그 작업들.
지금은 아무도 찾아와 같이 작업해주는 이들이 없지만
그때는 참 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다가와서 배우고 익히고 얘기 나누고
작업노트를 적으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일들이 이뤄 봅解?/font>
그 결과 노력하고 정성들인 만큼 자신의 성숙과 사회나 남을 위한 사랑만들기가 공연을 통해
쉽고 가능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참여한 사람들도 그가 참여하며 느낀 사랑도 커서
마치 플라타너스같은 존재로 거리 안에 함께 하는 기운도 가져가곤 했습니다..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은 고양정신보건센터 분들과의 연극수업중
그 전해에 새로 시작된 제2회 한마음 열린 음악회에 센타를 대표해서 나가는 경연작품으로 준비된
작업으로 공연이 아니라 음악회작품으로 한 목사님이 수업하던 음악수업의 합창을
공연화 시켜본 작업입니다.
두 곡의 연습중인노래는 찬송가라는 제한이 있었지만 노래가사중에서 작업 안에 담은 것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사랑하라고 태어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사랑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예기 플라타너스 작업을 찾아와서 함께 하던 두 사람 이선화 신연주님에게 쥐어주고
어느 추운 겨울밤 조그마한 목로주점에서 가난한 마을사람들에게 선물과 음식을 대접하는 두 사람의
얘길 형상화 시켜가며 작업을 준비했습니다.
고양정신보건센타에선 경연대회의 참가작이라는 행사로 제안된 이 작업을 정성껏 준비했지만
회원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만들고
이 공연의 기회를 계기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실천함이 가능했던 것이
행복했던 공연이고 그 행복감은 무대에서 제한되어 주어진 7-8분의 시간 안에서 꿈처럼
이뤄지고 지나갔습니다.
그 공연의 짧은 시간 무대에서의 연극아닌 연극을 위해서
우리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회원 분들에게 실제로 감자를 삶아 대접하고
목도리 장갑등을 선물했습니다.
 
우연한 인연으로 서대문,고양 ,강북,성북등의 정신보건센터분들과의 연극수업과 연극만들기를
통해 참 많은 아름다운 얘기들을 만들어가며
그들과 공연했던 이제는 자료조차 남아있지 않은 작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들려주신 얘기와 다가와 복지사나 간호사분들보다 더 큰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그들 안에서 동행했던 사람들, 지금은 아무도 같이하지 못하지만
아련한 동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살아있습니다.
완전하진 않지만 이렇게라도 다시 정리해보고 우리가 눈물처럼 순수하던 사랑으로
그들곁에 다가가 얘기 나눔에 그 공연 안에서 아름다운모습으로 살아주던 인물들이
혹시라도 다시 그 날의 우리를 기억해보며 살아 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해봅니다.
그리고 이 조그마한 기억의 기록들이 어디선가 그들처럼 살고 있을 또다른 지금의 님들에게
남 모를 우연한 희망이라도 되어주었으면 하는 꿈을 꿉니다.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못만나더라도 그래서 더욱 절실히 아름다운..
.
2010년 7월 22일 목요일오전 11:52:42
공연동영상링크
http://cafe.daum.net/oncorea/96jV/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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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로움,절대義에 대한 생각그리던 1999년가을작품 창의통문을 읽으며
 
1995년가을 명성황후시해사건100년에 즈음해서 그 2년전부터 준비를 시작했던 공연
경복궁에서 3부작은 1부 다큐멘터리 연극,2부 시해의 그날 그리고 3부 을미왜란평정창의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3부작을마친후 매년 가을 정확히는 10월8일과 11월28일이되면
그후의 얘기를 이어가려 준비도하고 또 같이할 사람들도 찾으면서
1895년가을이란 제목의 작품을 제안하였으나 아무도 오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서 결국 이 작업은
2009년까지도 이뤄지지 못하고 다시 2010년 가을이 다가옵니다.
을미왜란평정창의 이후 간이작업의 개념으로 그 화두를 이어가던 작업은
1999년, 마침 10월8일로 공연일이 잡혀진 홍대거미전에서의 공연을 계기로
홍대미대생 들과 [경복궁에 다녀왔어요]란 제목의 작업이 워크숍되었고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작품은 공연당일 홍대거미전 주최측의 준비부족으로
공연이 이뤄지지 못해서 작품은 몇 주간의 연습과 경복궁순례와 그림작품들만 남긴 채
공연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낸 시해일에서 다시 이어지는 40일간의 창의일을 지내며
몇 사람이 이 작업에 다가와 같이 준비를 하고 연습을 하면서
11월28일 경복궁 혹은 춘생문에서의 공연을 목표로 만들어진 작품이
창의통문을 읽으며 입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연습을 겸한 작업으로 서대문 형무소 자리에서 고양 정신 보건 센타 분들의
엠티 공간인 장흥에서 시연,그리고 다시 11월28일 경복궁 명성황후 시해 장소에서 공연되었습니다.
 
창의통문을 읽으며는 그해 가을 춘생문사건 104년후의 가을을 맞으며
생각해본 의로움에 대한 생각의 나열과 문답이었습니다.
마침 다가온 네 사람의 작업자들에게 의로움에 대한 화두를 쥐어주고 자신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의로움에 대한 생각들을 얘기 나누면서 임최수로 대변되는 절대적인 의로움에 대한 생각을
공연 안에 담아보았습니다.
마침 다가온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의로움에 대한 생각을 이 작품 안에서 나열하는데
작가로선 그 얘기들이 그리 맞지 않는 것이었음에도 그 모든 얘기들을 인정하면서
결론적 작가의 하고픈 얘기는 마지막 화자인 예플러의 얘기로 마무리짓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104년전 세상을 살던 사람들이 그 시대 안에서 의로움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했던 것을 얘기하며
지금을 살고 있으면서 그것을 기억하고 상기하려는 사람들의 모습도 극 안에 담았습니다.
홍대거미전에서 공연하기 위해 명성황후 시해일 시해장소에서 민씨 일가 여성들이 매년 행하던
추모제 현장을 찾아 그들을 바라보며 스케치하고 그렸던 묵화들을 소품으로
관객들에게 명성황후시해사건과 을미왜란 평정창의의 역사적 사실이 설명됩니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하는 의로움이 가치 있는가 하는 뭍사람들의 서툰 의견도 퍼포머나 여대생의 말을
통해서 얘기됩니다.
하지만 이 작업은 절대의가 그렇게 무기치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고 싶어하며
절대적인 의로움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얘기하면서
마침 그 시기에 의로움에 대한 예로 두 가지 얘기가 나옵니다.
일괄적 강제적 재개발계획을 통해 삶의터전과 고향을 밀어내고 이뤄지는
신도시 개발에 임하는 공동체적 지킴의 의로움에 대한 예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에세이와 함께 전향서격인 준법서약서를 쓰고
8년간의 국가보안법 위반수감생활을
사면으로 벗어나 출감하며 "지난날 나는 간디의 비폭력 노선과 보수적 이념을 비판했다.
그것은 참으로 성급하고 좁고 무지한 판단이었다"고 말하던 한 양심수(?)의 얘기입니다.
1999년 작품을 다시 정리하며 지금 바라보니 그때 이 작업에서 홀로 의로움에 대해 얘기했던 이
두 가지 얘기는 11년이 지난 지금 일산신도시는 일산으로, 동료들과 달리 전향을 택했던 박노해님은
그가 법무장관에게 보냈던 장문의 편지와 자기에세이집의 이론처럼 분명한 변절을 딛고서도
나름 나눔문화라는 화두로 자기이론적 길을 이어가고 있고 세상도 이 두 가지 현상을 용납하고
그래서 절대의라는 것이 세상에 정말 그리 가치 있는가 하는 어리석은 결론을
사탕처럼 주어주는 인간세상을 보게 합니다.
다시 가을이 와서 이제 11년지나 이런 화두로 얘기하면
과연 몇 사람이나 절대 의에 대한 단언을 할 수 있을까?
변절과 불의에 대한용납이 일상화되어 버린 세상에서 이제는 결코 사람들 안에서는
제안조차 해볼 수 없는 작업이 되어 버린 의로운 삶에 대한 화두.
그래도 1999년가을은 이렇게라도 동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름다웠던 세상이었습니다.
2010년 7월 23일 금요일오전 10:36:48
......................
2000년 그해 절대의를 생각하며 작업했던 을미왜란평정창의의 공연대본과 큐시트
 
1999년창의통문을 읽으며 공연영상에 이어
2000년여름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작으로 준비한
경복궁에서 3부작 [을미왜란평정창의]공연영상편집에 며칠을 보냅니다.
시해의 그 날에 이어 바로 다음해에 하려 했으나
다가와 함께 준비해줄 사람이 없어서 그저 가을만 되면 홀로 썼던 작품대본을 들고
경복궁으로 다가가 1995년가을의 그 공간만을 되새겼던 날들
그리고 그 몇 년후 시해일 추념식에서 우연히 다가온 한 재야사학자 분이 쥐어주신
한 권의 책을 통해 얻게 된 [을미왜란 평정창의]의 사실.
그 사료들을 찾아 문어체 그대로 구성된 대본은
마침 그 시기 예기와의 작업을 찾아서 다가와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화술위주의 서사극적 무대극의 형태를 갖춘 공연방식으로 이 작품을 구성할 수 있었고
그래서 예기 플라타너스 작업으로선 참 특이하게 대사위주 연극의 대본을 갖춘 작품이
연습되고 공연될 수 있었습니다.
 
공연의 영사본은 당시 8미리켐코더로 찍던 시절의 소극장에서의 2회 공연의
현장 촬영이어서 많이 거칠고 음향도 잘 들리지 않거나 고르지 않아서
음향과 영상을 보정하며 편집하는 것이 무척 힘든 과정을 거치며 작업되고 있지만
절대의 라는 오래 전 가졌던 화두를 새로이 정리하며
돌이켜보는 과정으로 쓸쓸한 이 여름을 대체합니다.
영상에 자막을 넣는데 연기자들이 대본에 의존하지 않고 편하게 구술하는 모습들이
역사의 객관자로서 동행하는 가슴으로 그렸던 그때의 모습들을 상기 시켜줍니다.
다시 공연한다면
원본은 또 어떻게 읽혀질까?
혹시라도 이 가을 절대의라는 화두를 관심갖고 다가와서
115년전 그 당시의 사실 안에서 의롭게 살고 싶어하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줄 사람들은 없을까
희망하며 그해 가슴 아프게 적었던 을미왜란 평정창의의 큐시트를 겸한 최종수정본
공연대본을 옮겨봅니다.
2010년 7월 26일 월요일오후 7:05:56
예기플라타너스작품 2000/08/초연공연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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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서 3부 -
을미왜란평정창의
1895년10월8일부터 11월28일까지 40일간의 얘기
예기 신영철 구성연출
텍스트  
8월사변복수창의비사편찬회 [명성황후]

을미왜란 평정창의(예플)
1. 서막 (중형)
10월8일저녁, 중형의 사랑방 형이 임최수의 얘길 듣고있다.
(light 2 암전에서 fade in)
임최수 :
전날이 숙직이어서 그날밤 집에서 잠을 잔 까닭에, 대궐 안에서 왜란이 일어났다는 얘길 아침이 되어서야 전해 들었습니다.
그길로 대궐로 달려가 폐하 앞에 다다르니, 전후좌우로 왜병이 총칼을 빼어들고 둘러서있는데 왕세자께선 머리에 쓰셨던 관도 벗겨지신 채 옷차림이 말이 아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벌벌 떨며 폐하 곁에 서 계셨습니다. 폐하의 용안은 창백하셨고,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다.....차마 신하로서 죄스럽기가 한이 없고...... 왕세자께서 눈짓으로 부르시는 듯하여 다가갔더니 곤전에 왕비마마께서 안계시니 밖에 나가 동정을 살펴보라 하셨습니다....국모를 가까이 뫼시던 내관을 만나 물어보고서야 왕비마마의 참변을 알게 되었습니다.
(light 2 fade out)
(music 1 in)
(light 3 fade in)
2. 궁궐 안을 헤매며(임최수,궁녀)
10월8일아침7시경
(임최수 궁궐 안을 헤매다 울고있는 궁녀를 만난다. 시해의 그 장소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넋을 놓고 앉아 눈물도 말라버린 궁녀의 모습.
임최수 그에게로 다가가 그에게 황후의 안부를 묻고 궁녀 넋나간 모습으로 외마디 짧은 단어로 시해의 그 순간을 얘기해준다.)
궁녀:
낭인들이 몰려와 황후를 내놓으라 달려들었고
황후께선 그들의 칼날 앞에 세자의 이름을 부르시며.. .
(music 1 volum up)
(그의 얘길 다들은 임최수 애간장이 끊기는 아픔을 달래며 궁녀의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감싸주며 일어서 걸어간다. 남겨진 궁녀의 모습. 임최수 얼마를 걷다 무릎을 끓고 제자리에 멈춰 쓰러진다.. 그리곤 한없는 북받침으로 통곡한다.)
임최수:
이것은 옛날 한나라의 동탁과 조조도 하지 못한 일...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차마 이같은 일을 할 수 있는가?
내 비록 힘은 없으나 이놈의 역적무리들과는 하늘을 같이 하지 않으리라.
(light 3 fade out)
(light 2 fade in)
(music 1 out)
3 창의의 의지(중형,임최수)
다시 1번과같은 시간같은장소 이어서 중형의사랑방 중형 임최수를 향해 얘기한다.
임최수의 중형:
나랏일이 이같이 망극하니 경성에 있는 들 도리가 있겠느냐.
예전 성현들의 처세도 나라의 살인이 득실하고 어지러울 때는 물러갔다 오는 것이거늘 이 형인 나와 같이 시골로 내려가서 다음기회를 보아가며 팔도에 격서를 보내어 의병을 모집하면 우리 나라가 500년을 내려왔으니 덕화가 백성의 골수에 젖어 있고도 반만여년 예의 지방으로 어찌 충의의 지사가 없을 거냐.
분명히 동참할 자 많을 것이니 인재를 구하고 병력을 얻은 뒤 서울로 들어와서 조정안에 있는 역적을 쳐죽이고 왜적은 천하만국의 공법으로 담판하면 가희 원수를 갚지 않겠느냐
임최수:
이 몸은 나라에 바친 몸, 벼슬을 탄 자가 지금 군부가 위태로운 빠지고 국모가 참혹한 화를 당했는데, 어찌 멀리 떠나
장원한 일을 경영할 수 있겠습니까?
심중에 정한 바 있으니, 형님께선 고향으로 내려가 안부나 전해 주십쇼.
(light 2 fade out)
(light 1 fade in)
4..이도철과의 만남(이도철,임최수)
조그마한 다기상앞에 두고 이도철 호롱불을 켠다. 임최수 들와앉고 이를 맞이한다.
이도철 임최수의 잔에 차를 따른다.
(music 2 in)
임최수:
조정의 간신배들은 권력을 잡아 임금님을 협박하고, 밖에 있는 도적을 불러들여 국모를 시해하였소.이런 국난은 만고에 듣지 못했던 일이오이다. 천하만국에 씻지 못할 수치인데도 태평성대에 국은을 입어 직위가 높은 자들도 부귀를 탐하고 자기 일신만 생각하니 통탄할 일이오. 마침 며칠전, 종실 근친인 청안군 이재순 공이 일본주재 전권공사로 있다가, 변란의 소식을 듣고 귀국했소이다.
그 분은 충직한 분으로 덕망이 높은 위인이시죠. 그 분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창의할 뜻을 전하고 동의를 받게 되었소. 그러던 중에 평양친위대 이도철 참령 역시 벼슬을 버리고 경성에 와 있다는 소문울 듣고 ..... 생각해보니, 지난날 타인의 좌석에서 본 듯한 일도 있고하여 이렇게 만나자고 수소문한 것이오.
이도철:
나 역시 사무친 원수를 갚고자 하는 사람이요.
다시말하면 그 역적들 하고는 같은하늘 아래 같이 살수 없는 그런 원수인지라......
팔월사변에 대한 얘기를 평양에서 듣고 생각할 때 나라의 원수를 갚아 만국의 수치 치욕을 씻어야 사람이라 하였거늘 사람들은 역적에게 아첨하여 맹종하고 있으니 ....
분통이 터져 참을수가 없는 이때 임최수 공을 만나니 의분이 솟는구려.
그날이후 분개하여 직무를 버리고 서울로 올라왔으나 뜻을 같이하여 원수를 갚을사람과 큰일을 도모할 의인을 만나야하는 데... 본시 이몸은 교제가 없고 발이 넓지 못해 충의를 도모할 의인을 만나지 못하고 있던차 이렇게 임공을 만나니 힘이 솟는구려.
그믐밤에 등블을 만난 심정이오!
임최수:
아 공의 뜻이 그렇듯 낭화같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리요
대장부로서 세상에 낳아 몸을 나라에 바치고 벼슬을 받아 충실히 일하다가 나라가 어지러울 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신하된 도리인데 불행이 나라에 변란이 일어나 위태로울 때 충성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서 뜻한바 일이 잘되면 나라의 원수를 갚아서 임금님을 보호하는 것이요 그렇지 못하여 일이 잘못되면 한번 죽어서 못다한 것은 구천에서라도 원수를 갚을 것인데 어찌 구차히 살아서 역적의 언행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속으리요.
이제부터는 나의 마음을 정하였으니 형과 같이 생사를 맹서하고 거사를 같이 하리라.
 
(light 1 fade out)
(light 2 fade in)
5. 김대진의 집-임최수와 이덕순만남(임최수,이덕순,김대진)
이덕순 기다리고있고 김대진 그에게 다가와 찬 한잔을 권한다.
이덕순 예를 갖추고 차를 받는다. 김대진 나가고 이덕순기다린다.
임최수 오자 김대진이 안내한다. 임최수 방으로들어서자 이덕순 일어서며 맞이한다.
앉은후
이덕순 :
훈련대장교 이덕순입니다.
지난 8월사변 당시 훈련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왜구와 우범선 및 이두황에게 이용만 당하고, 범궐과 중전시해의 누명을 쓰게되어 그 억울함이 이를 데가 없던 차 이렇게 창의의 뜻을 전해듣고 달려왔습니다. 팔월 열아흐레날 저녁 우범선과 이두황이 졸지에 군령을 하달하여 서대문밖에 모이도록 했지요
명령대로 그 곳에 갔더니 , 자정때 쯤되어, 그 두사람이 와서 우리 장졸 500여명을 인솔하고 바로 경기감영 네거리에서 왜병을 만났으나, 전에도 야간훈련을 하러 나간 적이 있어서, 아무 의심도 없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일본인 수십 명이 대원군을 호위하고 오더니, 우범선을 불러서 무슨 지시를 한참 한 후에, 우리 훈련대와 일본수비대를 도로 뒤돌려 서대문 안으로 진입시키더니 광화문 앞에 와서, 우범선(禹範善)이가 우리 군대를 분할배치하고 각 대궐문을 파수토록 지시하였습니다.. 대원군은 우범선, 이두황, 일본수비대와 사복한 왜구 30-40여명과 같이 광화문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서 있었을 데, 날이 밝을 무렵에 궐내에서 사람들이 나오며, 분분히 하는 말이 <중궁께서 돌아가셨다>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중궁께서 피난 가셨다>라고 하며 지나 갈 때, 파수를 보고 있던 우리들은 그 때서야 궐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을 짐작하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슬슬 귀담이 들렸을 때는 <국모가 난을 당하신 것>을 듣고는 분한 마음이 솟구쳐 파수를 아니 보고 집으로 간 군병이 수백 명이나 되었는데, 그 후 그 죄를 우리군대에게 덮어 씌워 선전함으로 말미암아, 장안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우리 훈련대 장졸들이 중전을 시해하였다고 쑥덕쑥덕하니, 이와 같이 억울하고 애매한 일이 어디 있으며, 그렇다고 또 사건의 진상을 가리려 하여도 알 길이 없어서 분개하고 잇습니다.
(김대진 임최수에게 새로끌여온 물로 차한잔을 따른다.)
임최수;
그랬었구려 우리와 뜻을 같이하여 의로서 바로잡읍시다.
이덕순 :
본시 소생은 무식한 군인으로 지식도 없는데, 간인의 흉계에 속아서 나라에 불충한 큰 죄를 지었으니 억울한 누명을 벗어날 방법이 없으므로 동료 몇몇 사람과 만나서 방법론을
타진하였으나 근심과 탄식으로 고민하던 차에 임최수공의 가르침을 듣고나니 검은 구름이 해쳐가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 같으니 마땅히 힘을 다하여 수화를 가리지 아니하고
공께서 가르치시는 데로 하겠습니다."
임최수: 통분하는 이덕순의 손을 꼭 잡는다.
(light 2 cut out)
(light 2, 3 fade in)
6. 같은방 그 며칠후 (임최수 이덕순,이도철 이재순,이민굉)
임최수.이덕순, 이민굉,이재순 앉아있고 이도철들어온다.
임최수(둘러보며):
의로운 사람들의 마음에 힘입어 여러 훈련대장교와 병사들이 우리에게로 돌아와, 병력은 얻었으나 경솔하게 거사를 단행할 수는 없소. 아직 폐하께서 이 일을 아시지 못하고 계시니 군사를 영솔하소 궐내로 들어간다면, 총리대신이하 각부 대신들이 대원군을 모시고 궐내로 들어가 있어 궐문파수가 엄해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오.
이도철:
우선 무엇보다 폐하께서 이사실을 모르고 계시니 우리가 밀지를 받아 거사하는것이 마땅할것 같소. 폐하께 우리의 뜻을 말씀드리고 허락 을 얻는 방법이 있을까요? .....
(이덕순을 보며) 홍계훈 장군의 종손 홍병진과 같은 훈련대원 이죠?
이덕순:
예,그렇습니다.
이도철;
이렇게 합시다. 홍게훈 장군의 매시인 홍상궁폐하를 모시고 있고 또 폐하께서도 신임하고 있으니 홍병진을 시켜 그의 대고모인 홍상궁에게 말씀드려 폐하께 창의 사실을 말씀드리도록 합시다.
(light 2.3 fade out)
(light 1 fade in)
(music2 fade out)
7. 홍병진의 집 임최수 홍상궁을 만나다
(임최수 이도철 홍상궁)
홍상궁 앉아있고 .
임최수 이도철 이덕순 당도 이덕순은 밖에 대기하고
임최수 이도철 방으로들어와 홍상궁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앉는다.
임최수:
아직 이나라엔 피눈물을 흘리고 방바닥을 치면서 지난 8월사변을 덮으려는 만고역적들을 처단하고,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 창의할 것을 죽음으로써 상소하는 이들이 있으니, 홍상궁께서 폐하의 칙령을 받아주십시오
홍상궁:
시종의 뜻을 잘 알겠소.
내 전하께 곧바로 전하리다.
전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오
(light 1 fade out)
(light 2 fade in)
8. 홍상궁 조칙을 갖고 오다(임최수,이도철 홍상궁)
임최수 이도철 기다린다. 홍상궁 들어선다
홍상궁:
상감마마께서 창의한다는 말을 들으시고
처참하게 죽은 중전의 한을 이제야 풀 수 있겠구나
하시며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곁에서 지켜보던 내가 눈물이 날 정도였소.
자 여기 임금님께서 친히 내리신 조칙이 있소. 받들으시오.
(임최수 큰절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받아 읽는다)
(music 3 in)
임최수:
" 짐이 직위한지 30여년에 덕이 없고 정령이 밝지 못하므로 간신히 권세를 희롱하여 밖의 도적을 끌어다가 사나움을 당한 왕후가 끔찍한 참화를 당하고, 종묘와 사직이 위태함에 빠지니 짐이 이른 아침과 늦은 밤까지 숙야 근심하고 두려워서 침식이 달치 아니한 지라 임최수는 짐이 만난 신하이니 군민(君民)과 신선한 마음을 같이 하고있는 신하라.
그러니 힘을 협조하여 짐의 몸을 호위하고 붙들어주어 나라의 수치를 씻게 하라. 개국 504년 9월 조칙 하노라."
(light 2 fade out)
(light 1 fade in)
을미왜란 평정창의(예플)
9. 창의통문을 적으며
(임최수 이도철 이도철 이민굉 이재순 김대진)
임최수:
"예전에 한(漢)나라 때 태조와 다르지 아니한 즉,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함부로 알지 못하게 할 것이요. 우리들 몇몇만 대왕의 밀지를 알고 있는 것이 옳으니, 만일에 비밀이 새어나간다면 무신화(武臣禍) 가 임금님에게 미칠지 모르니 지금부터 각국공사에 연락하여 원조를 청하고, 8도에 격서를 전하여 역당의 죄악을 성토한 후에 거사할 것이 좋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국모시 해와 고종황제의 유패를 가져온 8월사변복수 및 평정창의의 큰 뜻을 은밀히 알리고 뜻을 같이할 동지들을 규합하여 가는 것이오
창의일에 우리는 8도 강산 곳곳에 방을 부쳐 진실을 모르고잇는 백성들에게 진실을알려 그에 의로 일어서는 이들을찾아 거국적인 의병을 보병 합시다.
우리의 이 창의는 2단계로 단행하는 민족적 거사임에 유의하여야 하오.
즉, 첫 단계는 "우선 국내의 역당들을 토벌하고"
다음 단계로는 "일본인들은 이 땅에서 각구 참석회의에 회부하여, 만 국공법에 의거처리 한다."는 국제법적 조치도 강구하는것이오.
(이도철 창의통문을 적어내려간다 이재순 김대진 그것을 나누어 적는다 그리고 곳곳에 방을 붙이기위한 대자보를 만든다)
(light 3 fade in)
이도철:
창의통문
삼가 대의 를 중외에 포고하는바...
주나라의 운세가 도중에 꺽인것은 신백이 도적을 불러들인 때문 이고 한나라가 기울어 망한것은 조조가 황후를 시역한 때문이어서 ... 항차 시역의 변을 눈으로 보고서 어찌 성토함의 거사가 없는가!
아! 슬프다.
8월 20일의 변을 어찌 차마 말로 입에 올릴수 있겠는가. 왜구가 비록 교활해도 내응이 없으면 흉행을 못할것이요, 내응이 비록 간사할지라도 왜구가 없으면 독을 펴지 못하는것인데... 왜구와 내응이 한덩어리로 되어 감히 나라팔아먹는 계책을 만들어 내느데 이르니 이는 남궐의 번을 빚어 이룬 것이다.
(light 2 fade in- light 1 2 3 on)
500년 종사가 장차 모실비용도 없게될 처지이고 삼천리 강산이 금수의 땅으로 변할처지라....
아! 애통하다.
각부 대신 이 폐칙을 만들어 내는데 이르니 이는 난역의 소굴이다.
개화를 빙자하고 칭하면서도 군주를 협박하고 황후를 시해하는데 이르니 이것이 개화의 본의란 말인가.
무릇 개화라는것은 주역에서 말하는바 사물을 열어 성공케 하고 백성을 교화하여 깊게하는 바인데 어찌 군주를 협박하는 개화이며 황후를 죽이는 개화란 말인가?
바야흐로 세계 각국 이 함께 모여 공을 이루고 풍속을 이루는데 있어 옛 자취만 교수해서는 아니되고 진실로 남의 장점을 취하여 나의 짧은것을 보충하고 남의 능력을 배워 내가 못하는것을 할수 있게 됨 으로서 사물의 본질을 열어 이끌고 백성의 폭풍을 창달해 마땅하다.
그런데 어찌 녹봉을 훔치고 벼슬승급만을 오르는 꽤만 내서 백성을 병들게 하고 나라를 해꼬지하는 정사만 일삼는단 말인가.
뜻을 같이하고 정의 의 군사 를 규합하여 흉악을 베고 역적을 토벌하여 군주의 글을 바르게 하고 곤위를 반드시 회복코져 하노라.
위의 뜻을 감히 팔도에 포고하고 빌건데, 여러분들은 일제히 와서 모여 사기를 놓치지 마시라. 또한 일본군대가 대궐을 침범한지 1년만에 국모가 시해되는데 10년이면 장차 또 무슨 변고가 나겠는가? 통탄할 일이로다.
병사를 양성하고 권한은 빼앗아 갔으니 성상은 고립무원이요, 법률을 새로 만들고 입에 재갈을 물리니 만백성은 분노가 치밀어도 말을 못하고 있구나.
사대부들이 그 누군들 500년 성은을 입지 아니하였겠는가.
성은을 입었음에도 월급많은것에 눈을 돌려 외적의 수족이 되었으니 다음에 죽으면 무슨 면목으로 27왕의 영혼을 만
나볼수 있으며 또한 무슨 얼굴로 조상님과 아버지 상당에 들어가겠는가?
이 시역을 보고서도 어찌, 한마디 말도 없고 성토함이 없는고!
우리들은 종사 가, 장차 망하는것을 볼수가 없어서 감히 동지들을 이끌고 흉적을 토벌해서 나라를 바르게 하고자 하
노라.
벼슬아치들이여, 8도의 백성들이 일제히 호응해서 우선 국내의 역당을 토벌하고 일본인들은 각국이 참석한 회의에
회부하여 만국공법에 의거 기필코 처리코져 하노라.
10. 창의전야 11월27일밤 훈련원(이재순 이민굉 임최수 이도철 이덕순)
훈련원 창의작전계획
행동개시를 11월27일 밤으로 협의 정하고 의거참여 간부들 30여명을 그 날밤 훈련원에 집결 이덕순 훈련원에 호롱불과 촛불을켠다.
이재순 이민굉 임최수 이도철 등 들어와 앉는다.
(music 3 out)
임최수:
(light 2, 3 fade out- light 1 on)
내가 폐하를 동소문 밖으로 모시고 가서 봉영을 선언하면, 이도철 참령과 이민굉 정위로 하여금 무장하고 선발대로 나가게 하십시오. 이참령께선 군복으로 갈아입고 동별령에 직접 들어가 친위대 제1중대장 남만리 및 제2중대장 이규홍을 지휘하여 태화궁에 병력을 대기시키고 있다가 각국 공사가 담판하러 입궐하는 그때에 성문이 열리면 입궐하여 3대로 나누어 임무를 수행하시오.
1대는 폐하를 호위하고 또 하나는 폐하의 조칙이 내리면 이에 따라 역신들을 처단하고 나머지 1대는 각 문을 지키시오. 시위대 대위 이민굉은 그날밤 동료장교 이덕순,김진호,홍직길과 함께 동별영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춘생문으로 가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입궐토록 하십시오.
그리고 이미 서울주재 각 외국공관에 거병의 뜻을 전하고 도움을 청했소. 허나 일본공관엔 조선국의 일에 간섭 말기를 요구했소.또한 서양인들과 널리 친교를 맺고 있는 이충구에게 러시아 공사관과 통로의 확보를 전담케 했고,중추원의관 안경수에게 이 거사일시를 통보했소.그리고 미국공사관에 피신하여 있는 이범진과 이윤용을 접촉해 주시오.
(light 2 fade in- light 1,2 in)
11.춘생문으로
춘생문이 세워지고 그앞으로 모여드는사람들
(각기 자기의 위치에서 그리고 모여기다리며)
(이덕순,이민굉,홍상궁,이재순,)
(music 4 in)
이덕순:
창의격서가 사방에 전하여 성내 외는 유언비어가 난무하여 신심이 소란하니 훈련대 장졸들이 거사를 재촉하는구려.
같이 죽고 같이 살자고 뭉쳐지는 반면 갈수록 거사비밀이 노출될 염려도 커집니다.
하지만 한가지 자저하는 일은 궐내에서 내응하여 궐문을 열어줄 사람을 찾아야하는 것인데...
이민굉:
전에 나와 같이 잇던 이진호가 나와는 정분이 두터워 친형제와 같은데 그날이후 시위대 참령으로 궁궐을 호위하는 임무를 띄고 궐문열쇄를 맡아 갖고 있으므로 부탁하면 가능할 것입니다. 임금님으로부터 신임하는 사람인데 며칠전 나를 찾아왔기에 우리는 신하된 도리로서 복수 창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더니 맹세코 같이 죽자고 서약하고 내가 창의군을 이끌고 궐문을 열어 달라고 할 것이니 그때 대궐문을 열어달라고 하였더니 쾌히 승낙하며 반가워했나이다
(light 1 fade out)
(light 3 fade in-light 2,3 in)
홍상궁:
임금님께서 10월 11일 축시에 군사를 이끌고 대궐북문 춘생문 앞으로 오면
문을 열라 명할 것이니 일자와 시각을 어기지 말라 하시었소.
(light 3 fade out light 1 fade in)
임최수:
리덕순 김진호는 오늘 숙직하는 장관 남만리를 시켜 군사9백명을 이끌고 구국충신 이도철참령을 대장을 영솔케 하시오 윤웅열,김재풍은 의사 수백 명을 이끌고 뒤를 따르게 하고 김재풍은 의병 3백명을 지휘하여 경성 4대문과 각 요소요소에 매복하였다가 역당이 도망가는 것을 막고 체포하시오
또 고하니 천위지척지지라 총소리를 내지 말 것이오
궐문을 들어간 뒤에는 역당을 잡을 때 한사람이라도 상해시키지 말 것을 신신 당부합니다.
(악사거문고를 들고 한쪽에 등장한다)
(light 2 fade in)
12.춘생문앞에서
(light 3 fade in-light 1,2,3 in)
(전열에 이도철 그리고 바로옆에 이덕순 이민굉 이재순 기다림 그리고 ..)
(문이 열리고 총성 .그 첫발에 이덕순 쓰러지고 그를 얼싸안고 앞으로 나서는 이민굉)
그곁에서 .
김춘풍:
(light 4 fade in)
11월 27일 밤의 거병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군의 거병에 호응한 일부 민간인을 포함하여 군민 약 천여명이 집결지인 춘생문 앞에 모여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같은날 27일 자정과 28일 새벽 사이에 대궐안에 있던 친위대 참령 이진호가 배신하여 문을 열어주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그 창의 사실을 역당들에게 알기전까지는요.
자정이 지나도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윤웅열이 몸소 춘생문 밖으로 나가고, 그의 아들 윤치호가 수십명의 영국군을 데리고 왔다 되돌아 갔습니다.
창의군의 심리는 동요되기 시작했고, 일부 민간인들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춘생문 안에서 군호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문 안쪽에선 일본군 1개 중대 약 사 오백명의 병력이 소총을 발사하며 밀려나왔습니다.
창의군은 흩여졌습니다.
이 민족적 거사가 이진호 참령의 배반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진호가 말하기를 며칠전, 이민굉이 내게 다가와서는 자기가 어떤 사람들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나라의 원수를 갚을 것이니, 이는 훈련대 장졸이 협력을 하고 임금도 아시고 있는 일이요 라고 하였고, 또 오늘은 임금이 내게 오셔서 오늘 새벽 세시에 춘생문으로 군사가 올터이니 문을 열어주라는 명을 하셨소. 이는 곧 창의 거사임이 확실하오, 그리하여 군부대신서리 어윤중께 이렇게 알리는 바이오..
(light 4 fade out)
13. 그 새벽동틀무렵
(light 1)
임최수: (방으로 들어가 앉아 호롱불을 켜고 조칙을 꺼내며)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하늘에 있다하더니....
이진호가 우릴 배반하고 역적행위를 했다니...이 또한 천운이 따르지 못한 것..... 그대들은 어서 피신하시오.
뒤날 다시 기회가 있거든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해 주시오. 어서 가보시오..............
당초에 창의를 시작할 때 혼자 살고자 함이 아니거늘 어찌 몸을 피하겠는가!
(light 2,3 fade out)
(임금계신 쪽을 향해 큰절을 하고 홍상궁에게 받은 조칙을 불태운다).
사람들 이도철 이민굉 이재순 제각기 머무르듯 움직인다.)
(light 1 fade out)
(music 4 out)
(사이)

14. 유서
11월15일 재판정에서
(light 2 fade in)
(거문고연주시작)
임최수:
"창의하여 일할 모의를 내고 생각을 발한 것은 실상은 본인이요.
나를 수괴로 다루는 것은 의로 보아 피할 마음이 없소. 마음으로 통탄할 일 은 8월20일(음력)의 국모시해 범인이 지금까지 잠잠하고 이를 성토한 다는 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는데, 오늘의 본인은 도리어 역적의 이름 을 쓰게 되었소...
내몸이 시종직에 있으면서, 8월20일 사변 뒤 군부의 안위를 알 수 없고 국모의 살아 계신지 돌아가셨는지 막연하여 알 수 없고 걱정과 분함에 격하여, 살아있는게 죽을 것만 같지못하다. 과거지사 나라에서 폐비한 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모두 그때에 임금이
하신 일이고 많은 신하들이 오히려 죽음으로 간쟁한 바가 고금역사에 잘 나와 있는데 어찌하여 오늘같이 조정의 간사한 무리들이 외국인과 짜고서 전 에 없던 짓을 행하게 되었는가?
그래서 위태로운 국부를 붙들어 드리고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끌어들여 의를 일으켜서 간당(奸黨)을 제거하고 왕국을 붙들어 지키고자 함이지 결코 위를 범하고 흉한 기도를 한게 아니오..
외국공관에 거병의 뜻을 보냈는데 정동 각 외국공관에는 도와 달라고 하였고, 일본의 공관에는 너희들과 관계없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하였 소."
"... 임금님 사랑하기를 아비 사랑하기보다 더 하였고, 나라 근심하기를 집안 근심보다 더 하였도다. 오호, 하늘과 해가 붉은 마음에 비친다 하였거늘 멀고 먼 푸른 하늘은 어찌도 그리 무심한고! 아 죽은 뒤에 다시 이 의리를 이어서 일어날 사람 없으면 이것이 한 이로다"
(light 3 fade in)
(거문고연주)
(light 2 fade out)
15 .그리고 오늘
(light 4 fade in)
사람들 겉옷을벗어 현재의 옷으로 갈아입거나 자신으로 돌아온다.
김대진 차한잔을 끓여 사람들에게 권하고 사람들 그차를 마시며
돌아본다.
(light 1,2,3 하나하나 fade out)
(거문고연주끝나면 music 5 in)
(light 4 남아있고 객석 light in)
..................
아무에게도 초대받지못한 4대강순례공연 7월영상회를 마치며..
 
강에 다녀왔습니다.
지난겨울 그리고 봄 다시 이 여름에
그리고 그곳에서 강과 기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청원이나 바램이 아닌
행동의 기도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 뭍생명과 동행하는 일.
 
이렇게 편지를 적었습니다.
지난가을부터 겨울지나 봄까지
녗차례 지금 이 시기 꼭 만나야 하고
이 시기 이 땅을 살게 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으로 다가가야 할 일이었기에
강을 찾았고 공연하며 그 공연을 영상에 담아
강의 얘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강을 찾아 떠날 여유가 소진되었을 때
그래도 차비 없이도 할 수 있는 마지막 작업의 연명을 찾아서
사람들에게 제안하며
용기내어 만남을 제안하는 편지를 적었습니다
 
이 여름 7월엔 이름 없는 공연자가 되어 함께 강과 기도하고 픈 사람들을 찾아서
거리 어느 구석 조그마한 벽 하나라도 허락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강의 얘기를 비추어 새기며 그 앞에서 기도하겠습니다.
 
강과 기도
전원하나만 꽂을 수 있는 여건과 영상을 비출 조그마한 벽이나 공간을 가지신분
연락주십시오
단 한 분이라도 부르시면 다가가서 그 사람과 함께 하겠습니다.
강과 강사람의 얘기를.
그리고 기다리며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살면서 지금껏 만나온 사람들
거리에서 우연이라도 만나면 안녕하냐고 안부라도 묻던 사람들
그리고 혹시라도 인터넷에서 검색어 쳐보다가
강에 다녀온 사람의 이 마음 이해하고
모르는 사람하고라도 이 시기 강의 얘길 듣고 나누고 싶어할 사람들이 있을거라고.
 
며칠 뒤 다시 편지를 썻습니다.
이제는 차비도 떨어져서 남한강이나 여강마져 물리적으로는 다시 만나려 갈 수 없지만
그래도 머무는 서울지역에서는 마지막 남은 돈을 아껴쓰면서
이동할 수 있는 지역에서 생명과 평화 강과 산야를 얘기나눌 사람들을 만나서
마지막 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의무적 작업,함께 할 수 있기를 갈망하면서
.,..
4대강순례공연영상회 그 순례 상영회 길을 나서며 고운 벗과의 만남 기다립니다.
 
강에 다녀왔습니다.
지난겨울 그리고 봄 다시 이 여름에
그리고 그곳에서 강과 기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청원이나 바램이 아닌
행동의 기도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 뭍생명과 동행하는 일.
 
이 여름 7월엔 이름 없는 공연자가 되어 함께 강과 기도하고 픈 사람들을 찾아서
거리 어느 구석 조그마한 벽 하나라도 허락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강의 얘기를 비추어 새기며 그 앞에서 기도하겠습니다.
 
강과 기도
전원하나만 꽂을 수 있는 여건과 영상을 비출 조그마한 벽이나 공간을 가지신분
연락주십시오
단 한 분이라도 부르시면 다가가서 그 사람과 함께 하겠습니다.
강과 강사람의 얘기를.
 
사무실이나 아파트 혹은 개인집 거실이나 마당 한 편에서도 
아이들과 혹은 가족이나 친지랑 보실 분
혹은 홀로 보실 분도 게시판을 통해 신청해주시고 연락주시면
찾아가서 상영회와 공연가지며 강과 강사람들의 얘기
한분에게라도  더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하고.
하지만 놀랍게도 더 이상 떠날 수 없었던 7월은
단 한 분의 답신도 받지 못한 채 기다리던 고운 벗과의 만남은
하나도 이뤄지지 못한 채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어
다가와 같이하자는 이 하나없이 쓸쓸히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름 만나 보고픈 희망을 안고 블로그나 홈피게시판에 들려서 적었던
그 편지글들을 하나하나
주인이 꺼내보지도 않은 그 게시판을 찾아다니며
비참한 가슴으로 되찾아서 외롭게 불태우며
미완의 7월을 마감합니다.
 
지독한 그리움으로 오라고도 하지 않는 그곳에 스스로 찾아가 부탁해서
셀프로 이틀간 가졌던 두리반옆 골목에서의 자체기획영상회 한번이
그나마 존재해서 위로가 되어 버린..
몇몇 사람의 희귀한 질문에 답하며 행여나 만날 수 있을까 다시 오지 않는 약속을 기다리던.
오히려 미련스런 기다림으로
제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망석이 되었던 2010년7월..
 
사람에 대한 마지막 만남에 제안에
아무도 응답주지 않아서
오랜 벗들과 새로운 고운 이들을 만나
강의 얘기를 주고받으며 강사람의 기도를 같이 나누고 싶었던 희망은
초라한 절망으로 막을 내리고
인간에 대한 순진한 제안이 이 시기 이땅에서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자각시켜줍니다.
 
이제 조금 더 절실하고 편한 가슴으로
인간세상에선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쓸쓸한 얘기를 시작합니다.
다가와 같이하자는 사람의 마음을 찾아 동행해보고 싶었던 그 부질없는
나약한 기대는 버리고
늘그러듯이 살아 있는 이보다는 죽은 이 들과
살아있는 무생명들 곁에서 그들의 손길따라
마지막 시공을 이동하며
강과 기도
그 화두 이어 아름다운 죽음넘어 생을 이어가는 이들과 만날
파람의 언덕 그 길을 따라 마지막 작업 준비합니다.
2010년 7월 28일 수요일오전 9:50:15
강과 기도06(이름없는공연4대강순례연작)문수스님소신공양추모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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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왜란펑정창의 200년8월공연영상집을 완성하며.
 
옛 영상테잎을 찾아서 그것을 몇 번 변환을 거쳐서 wmv화일로 만들고
그 파일을 가지고 음향을 뽑아서 제대로 전달될 수 있게 편집하고 다시 그 음향본위에
영상을 재조정해서 입히는 방식으로
2000년8월에 공연한 을미왜란평정창의의 영상본을 편집완성했습니다.
오래되고 보존상태가 안좋은 테잎을 재생시켜 만드는 과정이라서 몇 부분 끊기는
부분도 있지만 대학로 조그만 지하소극장인 아리랑소극장에서 여름장마로
호우가 퍼부어 쏟아지던 날 그 비를 뜷고 찾아온 십여 분의 관객을 앞에 놓고 공연된
그 절실하고도 아름다운 작업의 기록이
오늘의 화두로 이어지며 재생됩니다.
그렇게 애태우며 자료를 조사하고 현장을 답사하고 학자와 유족들을 만나면서
작업했던 경복궁에서3부작을 마감하던 이 작업은 이후
후이넘의 기억을 거쳐서 1895년가을이란 화두로 이어졌지만
1895년가을은 이후 작업을 찾아  다가오는 사람들이 없어서
끝내 미완의 작업으로 답보된 채 아직도 그 얘기를 이어줄 인물들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채
꿈을 구는 작업으로 남아 배우를 기다리는 등장 인물들로 남아있습니다.
 
이 작품 을미왜란 평정창의에서 굳이 동학의 노래를 사용했던 숨은 이유를
몇 명의 출연자들이 모여서 함께 그리는
1895년 가을 그 얘기의 기회가 이어졌으면 하는 꿈을 구면서
10년전 여름, 아름다운사람들과 만나 극의 내용은 물론 그 희곡과 무대구성방식및 형태에 대해서도
참 많은 토론하면서 만들었던 을미왜란 평정창의의 공연영상을 편집완성하여
온라인상에 올려놓습니다..
 
乙未倭亂平征倡義 을미왜란 평정창의
예기플라타너스 경복궁에서3부작중 3부,200년8월공연영상
2010년 7월 28일 수요일오후 10:58:40
乙未倭亂平征倡義
경복궁에서 3부작중 3부 을미왜란평정창의
(1부 다큐멘터리연극 2부 시해의그날)
2000.8.26-27아리랑소극장.독립예술제
경복궁에서3부작 작업노트  공연대본
을미왜란 평정창의(예플)
명성황후시해사건에서
춘생문사건까지 1895년연작.
경복궁1부 다큐멘터리연극(1995.경인미술관)
경복궁2부 시해의 그날(1995.10.26-27 경복궁)
창의통문을읽으며(1999.11.12/28 장흥/명성황후조난지)
경복궁3부 을미왜란평정창의(2000.8.26-27)
1895년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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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지금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강과 기도 금강작업을 준비하며..
 
지난6월말 낙동강하구 대남강변에서 스물여섯번째 작업으로
시천교 아라뱃길 공사현장에서 시작했던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란 제목으로 진행해온
4대강순례 첫 번째연작 작업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승에서의 마지막작업이 되리라 생각하며 그 이음으로 강과 기도란 제목의
작업을 시작한 7월.
마지막 갈망을 갖고 이승의 삶에서 인연지어졌던 사람들에게 손 내밀었던 4대강순례공연영상회작업은
단 한 사람도 응해 손잡아주는 이 없어 미수의 그리움으로 잠겨지고
이제 사람들에게 가졌던 그 모든 미련을 털고 아직 채 못오른 파람의 길목을 다시 찾아가는 모습으로
의문없이 강과 기도 연작을 시작합니다.
 
차비를 마련 못해서 더 이상 강을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민예총 분 들의 생명의 강 살리기 예술행동팀의 두 번째 강굿 금강작업에 무임동승이 가능하게 되어
지난겨울과 봄 쓸쓸히 만났던 아름다운 강 금강과의 귀하고 절실한 만남을 준비합니다.
 
강을 향해 귀기울이며
기도조차 이기적이고 자기본위적인 인간들에 비해서
맨틀의 가슴에 귀기울여보았듯
그 맨틀의 표피 위를 형성하고 뭍생명들의 존재와 순회의 터전을 만들어준 산과 강
그리고 돌과 모래의 기도는 어떤 것일까 생각합니다.
지금 이시기 이 지표면에서
인간의 이기로 인해 조각되어 져가며 그들이
존재 앞에 드리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
 
강은 지금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요?
이 푸른 별 자공전을 따르며 궆이쳐 깊고 얕게 채우고 비우며
뭍생명들의 터를 쥐어주며 흐르던 강이
지금 60개하늘을 바라보며 이 밤 드리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바위에서 모래로 다시 조약돌과 바위로 자신을 생성하며
강을 정화시키고
뭍생명의 집과 고향을 만들어주던
모래와 조약돌들의 기도는 또 어떤  내용일까요?
 
그리고 그들의 아린 사랑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이 푸른 별 강가에서
늪과 숲, 들과 언덕을 이루며 살아가던 많은 들꽃과
그곳을 고향지어 살아온 고운 생명들의 기도는
또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의 기도 속에서
이모든 기도의 반대편에선 인간
그 인간종의 마지막 변종인
우리들이 이 강변에서 드릴 수 있는 기도와
그 가능만큼 전부의 존재방식은.
2010년 7월 29일 목요일오후 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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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오늘(2000년7월31일) 안면도 바람아래에서의 공연-산타를 찾아가는 이
 
10년전오늘 2000년7월31일 안면도 바람아래에서 공연한 작품,
산타를 찾아가는 이-바람아래 그 영상을 편집완성합니다.
 
산타의 실존을 아직도 확실히 믿으며
선물보다는 그 외롭고 고독할 것만 같은 차원여행의 여정을 이승의 시간 속에서
스쳐라도 한번 만나고 싶은 분.
 
그 작업의 첫 화두를 잡고 작업노트를 적던 날
[겨울여행2]산타의 추억..                                   
1998/12/04 11:17   
 
 
산타크로스에 대한 추억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물질적 소유욕을 이루기 위한 조건부 선행의
기대심리가 대부분인 것 같다.
대개의 사람들은 산타를 자신이 원하는 어떤 선물을
주려오는 존재로 기다린다.
하지만 우리가 성탄에 기다려야 할 것이 과연 물질적 선물일까?
아침에 일어나 머리맡에 혹은 양말 안에 담긴 선물이
자신이 갖고 싶어하던 어떤 상품이어서
좋아하던 기억만이 산타의 추억으로 남아
그것을 그리워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꿈이었다고 하면서
그 꿈을 잃어가는 자신을 한탄해하는 것이 인간들이라면
우리의 이 세상살이는 너무 초라하고 슬픈 것이 아닌가?
꿈을 찍는 사진사와 산타를 기다리는 마음을
한 선상에 놓고 [겨울여행2]를 만들어보자.
그의 꿈이 찍혀 나오던 사진 한 장
그 사진을 다시 찍으러 갔을 때 
그 사진관은 마치 꿈에 보았듯 사라져 있었고
어느 크리스마스날
산타는 마치 그 꿈을 찍어주던 사진사처럼 다시
그에게 다가와서
물질이나 상품이 아닌 진정 그리워하던 꿈을 전해주고 가는 
그런 만남.
올 겨울에는 5차원의 공간을 맴돌며 차원 이동을 하는
성니콜라스의 영혼을 아크로폴리스로 찾아가서 만나야 할 그처럼
산장을 찾아 누군가에게 필요한 소중한 것을 놓아두고 가던 
그 사람을 만나듯
욕심없는 마음으로 기다려보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그리고 산타에 대한 믿음은 1995년 작업노트에서 이미 ..
제  목 : 산타클로스                                                 
올린이 : yegie   (신영철  )    1995/12/21 12:27
성 니콜라스 주교는 우리가 요즘 흉내내듯
정말 그 비슷한 외모를 가진 실존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행동 역시 성탄일이 되면 평소 자신이 보아두었던
가난한 이웃의 착한 아이들을  찾아가서 선물을 한아름주길
좋아했다.
그의 죽음은 실종으로 기록되어있다.
그 날도 썰매를 타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돌아가던 길이었다고
전한다.
예수의 죽음 후에 우리는 예수가 매년 온다고 믿지 않는다.
석가나 마호메트 역시 우리들 현실 속에서 성니콜라스 주교만큼
살아서 계속 존재함으로 구체화되진 못하고 있다.
예수가 무덤을 열고 일어서 사흘만에 나간 것이
사람들이 마지막 본 전부다.
하지만 산타클로스는 수 백년 동안을 매년 성탄절이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최근 기독교가 서양에서 동양으로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가 종교에서 상업화의 한 수단으로
왜곡되게 변모해버린 현대에 만들어진 얘기야 틀리겠지만..
그가 실종되고 최소한 몇해 동안 성탄일 밤의  산타 출연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현실적 감각으로 전달되어 왔다.
성니콜라스는 눈 속에서 실종되었다.
나는 그가 차원이동의 공간으로 빠져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그날 그 모습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자신의 사랑을 시공을 초월하며 전달할 수있는 인물이 되었다.
그가 드나드는 차원이동의 벽은 지구공전의 시간대를 반복하면서 
주기적인 시차를 만든다.
즉 그의 1초는 우리지구공간에서 1년 즉 지구 1공전의 시간과 같다. 
그래서 그는 실종 그 당시의 모습그대로 주기적으로 성탄에
자신의 썰매에 선물을 싣고 사랑과 봉사를 했다.
그가 영혼이 아니므로 실제 어린이들은 그에게 안길 수 있으며
그의 수염을 잡아당겨볼 수도 있엇다..
나는 이런 숭고하고 아름다운 시공과 차원을 초월한 사랑이
인간들에 의해 진실로 전해지지 않고 
거짓과 불신 상행위로 이어져가는 타락이 아쉽다.
산타클로스를 알고픈 사람은 가톨릭성인전에서 우선 
성 니콜라스 주교를 찾아 그의 생을 추적해보라.
우리는 지구공전의 이맘때쯤 분명 살아있는 그를 찾아 만나볼 수도    
있다.
난 가끔 그의 실종이 우연한 4차원공간으로의 유입이 아닌
그의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고픈 4차원의 어떤 인물의
인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 만남을 찾아 꿈을 꾸듯 여정을 제안하고 사람들과 함께 했던 작업은
1999년 봄,성북정신보건센터와 고양정신보건센타 두 곳의 회원 분들과 같이
각기의 워크숍을 통해서 대본의 기본줄거리가 구성되었고
4월에 강북문예회관과 고양문예회관에서 가진 각기의 공연이
각기 다른 방식과 인물구성으로 집체극의 형식과 그림동화형식의 극형태로 초연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원성공연예술축제에 참가,노을지은 수원성언덕에서 고양정신보건센터분들과
또 조금은 다른 형태로 아름다운 공연이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2000년 여름 안면도 예술축제를 준비하며 작업은 등장인물의 단순화와
1인의 로드 무비 스타일의 3인극으로 극 구성을 정리하여
안면도 바람아래해수욕장을 배경으로 작업을 완성했습니다.
이후 산타를 찾아가는 이는 기본대본을 텍스트로 해서 단기적인 워크숍공연이나
어린이들과의 캠프공연에서 다시 작업하였고 이어 연작으로 [산타를 찾아]를 구성하여
겨울 추전 승부역을 찾아 외로운 역무원들께 그 얘기를 쥐어드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산타를 찾아가는 이 공연은 바람아래에서의 공연이후엔
사진만 촬영했을 뿐 전체공연을 동영상으로 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 작업을 하게 된다면 바람아래에서의 공연형식과 구성을 기본틀로 해서
완성시켜 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싶었던 마음과 이후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아서
사람들과 같이 성니톨라우스의 얘기를 나누며 그가 살고 있는 5차원의 공간과의 만남,
그리고 실존의 확신을 바탕으로 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업의 시간들이 주어지고
그 결과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만날 산타의 모습과 그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존재의 방식에 대한 확신이 응집되어 이뤄지는 작업을 기대합니다.
 
공연의 대본은 기본줄거리와 논리를 작가가 완성한 후
산타를 찾아가는 이 역을 맡은 김선재님이
작품의 기본 줄거리와 추적의 과정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이 다시 어릴 적 산타로부터 받아서 보관하던 선물의 소포 우편 포장지를 찾아서
그 우표에 찍힌 우체국소인으로부터 시작하는 과정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방식을 택했고
그 결과 산타를 찾아가는 이의 일상과 생각 그리고 여정부분의 대본은
연기자가 직접 작업하였습니다.
 
바람아래공연은 김선재 예플러 두사람을 중심으로 작업이 이뤄졌고
이창원 이승석 두 분이 동행을 준비했으나 이승석님이 개인사정으로 공연에 참가하지 못했고
김봉석님이 현장에서 까메오로 유럽 어느 도시 거리의 광대역을 맡아 함께 해주었습니다,
2010년 7월 31일 토요일오전 2: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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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를 찾아가는 이 -바람아래 편 공연대본
 
예기플라타너스(이름없는공연) 2000년7월31일
안면도 예술축제 참가
바람아래 공연
 
극작 연출 예기,
공동구성 김선재
 
출연
산타를 찾아가는 이 -김선재
비인 고기에게 먹이를 주는이-이창원
유럽 거리공연하는 광대-김봉석
카페 언덕 위의 바보-예플러
 
춘천행 기차를 타고 국제 마임 축제를 다녀왔다.
아는 사람들이 좀 있으려나 했는데... 실망이었다.
비도 부슬부슬 오고...
그런데 뜻밖에 가끔 인터넷상에서 작업하는 모습만 관심있게 지켜 보았던
예기 플라타나스의 공연이 한쪽 구석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얘기라도 나누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생각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어쩌다 보니 주책맞게도 작업팀만 남아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까지 끼어서
다음 공연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리곤 그들을 만난 자리에서
산타를 찾아가는 사람의 얘길 접한다.
산타는 실존인물일까?

산타크로스란 어른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온 나에게
그들은 산타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산타..과연 산타가 있을까..
뭐라고 해야 할까... 산타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을 만난 느낌을...
진짜 산타의 존재를 믿는 걸까?
아니면 그냥 작품을 하기 위해 그렇게 내게 얘길한걸까?
얘길 들으며 내 어릴 적 추억 속의 가장 큰 미스테리였던
산타에 관한 기억이 밀려온다.


오늘은 하루종일 바람만 맞은 날이었다.
성신이와의 약속도 아침부터 서둘러 나왔는데 깨졌고...
너무 일찍 간 탓인지 자주 가던 레코드 가게의 문도 닫혀있었으니까
바람맞은 셈이었다.
역시 난 너무 일찍 나오면 뭐가 안된다니까...
시간 때우러 들어간 근처 도서관에서
난 할 일없이 산타에 대한 책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니콜라우스에 대한 책을 찾는 이가 있어서
아 ! 산타클로스하고 서슴없이 얘기했다.
니콜라우스가 바로 산타의 실존인물이며
3세기경 유럽에서 살았던 주교였으니까.

도서관에서 빌려온
성니콜라우스에 대한 책을 읽는다.
그는 터키의 한 바닷가 마을에 살았고 어려서 고아가 되었으며
그 후 신부가 되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했으며
특히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 후 북구의 어느 마을에서 사라졌다-

어린 시절 회상에서 돌아와
편지함을 꺼내 본다.
하지만 그때 부모님이 직접 주신 것 같지 않은
산타의 선물하나,
선물과 함께 동봉된 카드엔
니콜라우스라고 적혀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선물은 우편으로 배달된 것
포장지에 찍힌 발송지의 우체국소인.
내가 아는 누군가가 산타가 바로 니콜라스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써 보낸 것일까?
그렇지만 어린 나에게 왜 굳이 산타라는 정겨운 이름을 쓰지 않고
낯설기만한 니콜라스라는 이름을 적어서 보낸 것일까?
누가 그때 그곳까지 가서 니콜라우스란
이름으로 내게 성탄선물을 보내준 것일까?

15년전의 그 소포와 함께 있던 카드의 소인은 비인이었다.
지도를 펴서 샅샅이 찾아보니 내가 듣도 보도 못했던 충남의 작은 마을.
결국 오늘은 마음 한 구석에 밀어 놓았던 니콜라스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무작정 장항선 열차에 올랐다.
웬지 이 여행이 여기서 끝나고 말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이상한 설레임...

기차여행
니콜라우스의 선물,
그 포장지소인에 찍힌 곳으로 가는 열차 안.
사람들은 여행 속에서
모르는 이와도 쉽게 친해진다.
늘 만나던 사람처럼 정겹게.

역무원도 없이 그저 빈 작은 역사 앞에
정차해선 길손을 내려놓고 떠나가는 간이역.
예쁜 꽃들이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역사를 나와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걸었다.

바닷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있는 중년 아저씨.
우체국 가는 길을 물으려고 다가갔다가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닌 먹이를 주는 모습에 잠시 당황했다.
저 넘어 방파제가 놓이고 생활수가 오염되어
물고기들에겐 양식이 고갈되어
이렇게 그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갈코리없는 낚싯줄에
소중히 먹이를 마련해서 기다린다는 얘기.

한참을 곁에 앉아 바라보다가
우체국 가는 길을 물어보고 그분과 헤어졌다.

조그만 우체국
우체부는 15년전 성탄 즈음의 어느 날,
낯선 외국인이 곱게 포장한 선물들을 갖고 와
일일이 등기로 발송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 마음속으로부터 갖고 싶어하던 그
선물을 이런 작은 마을에서 부쳐준
산타라는 이름의 그 외국인은 도대체 누군가?

우체국을 나올 때 우체부는 10년간
보관해오던 그 반송된 선물상자를 나에게
주었다.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수확에 한 순간 기뻤지만
주소란에 그가 적어놓은- 노르웨이, 오슬로라는 영문을 보고 황당함에 빠졌다.
그렇다면 나에게 선물을 보낸 니콜라스가 북구 어딘가에서 사라졌다던
성 니콜라스, 산타 클로스 일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산타를 흉내 내는 성 니콜라스의 후예쯤이라도 되는 건가?
산타가 정말 존재하는 걸까?

니콜라우스에 대한 기억을 전해준 우체국직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우체국을 나왔다.
나에게 산타라는 이름으로 선물을 보내주었던 그 카드의 주인공에
대한 더욱 깊은 궁금증을 가지며..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그가 다녀갔던 이 작은 마을.. 그는 정말 나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저 바다를 건너 온걸까.

바닷가엔 고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그 사람의 온화한 기다림이
그대로 그림처럼 남아있엇다.

그 여행이후 늘 궁금증으로 쌓여있던
니콜라우스란 외국인의 주소지로의 여행.
여행을 준비하는 가방엔 15년전 받은 그
선물과 카드 그리고 여행지우체국에서 받은
포장을 뜯지 않은 또 하나의 선물과
유럽의 어느 도시 명이 적힌 등기접수증.

독일 프랑크푸르트로의 직항티켓을 끊고,
유레일 플렉시 패스를 예약했다.
비행기안에서 창밖을 보며 그와의 만남을 꿈꾼다..
드디어 니콜라우스가 주소지에 적은 노르웨이에 온 나...
나는 과연 그를 찾을 수 있을까.. 그는 왜 15년전 나에게 내가 그토록 바라던
선물을 준 걸까...
그리고 니콜라우스란 이름을 쓰며 산타의 흉내를 내는 그는 누굴까?

유럽 어느 도시, 광장의 사람들
광장에서 책을 보고 있는 사람.
초겨울의 햇살이 따사로운 광장에 앉아
삶의 고운 이유를
기억해 내려는 듯한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준비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거리로 나온 광대의 모습.

유럽의 여러 곳-마을,성당,
버스를 타고 다시 여행을 한다.
그 도시에서 니콜라우스에 대해서 묻고
다시 유럽의 몇몇 곳을 다녀
성니콜라우스 주교의 흔적을 추적한다.

가이드 북에서 본대로 오슬로 카드 1일권을 구입해서
가장 번화한 곳이라는 칼 요한 거리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지도에 적힌 방향대로 15분쯤 걷다 보니
마주치는 대성당.
사무실로 들어가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성 니콜라스에 대해 물어 보았더니
그녀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에서 보았던 그런 내용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근 15년동안 니콜라스란 이름의 신부님이 계셨는가도
물어 보았지만 최근 20년동안엔 그 이름을 한 신부님이
한 분도 계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
시내의 테르미니 역으로 가는 30분 소요의 급행열차를 타고
로마로 들어와 또 1시간을 관광삼아 걸으며 바디칸 시국에 도착했다.
어느 한 쪽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가보니 한국인 신부님 한 분과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관광하고 있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하다보니
신부님께 다가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고
신부님께 성니콜라스 찾는 일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주교였던 성니콜라스의 자료에는 그의 최종 성직지가 벨기에로 나와있엇다.
도무지 종횡무진하는 그를 따라 잡기가 힘이 들단 생각이 스쳐갔다.
벨기에로 가야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나에게
신부님이 헤어지며 끝까지 한번 노력해 보라고 충고를 해주셨다.
자신도 산타의 존재를 아직 믿는다는 말씀과 따뜻한 웃음도 잊지 않으시고..

가려고 마음을 먹고 나자 이 여행은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얻어하는 여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엇다.
고마운 사람들..

유레일 야간 열차에 오르다.
무려 18시간을 넘게 기차를 타고 브뤼셀에 도착했다.
그리곤 그가 있었다는 성당을 찾아가
성니콜라스가 주교를 지낸 기록은 찾아보지만
3세기경의 사람일 뿐 15년전의 그는 찾을 길이 없다.

마지막 닿은 니콜라우스의 흔적이 남은 브뤼셀의 작은 마을
마을어귀엔 아이들을 모아놓고 책을 읽어주고 있는 남루한 옷차림의 여인하나.
아이들은 귀를 쫑긋하며 그의 얘기를 듣고
그는 사랑이 담긴 아름다운 얘기들을
읽어주며 아이들에게 소중한 삶의 의미를 전한다.

아이들과 같이 그의 얘기를 듣다가
관광객이냐고 묻는 그에게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니콜라스에 대해 묻자
산타클로스를 얘기하냐면서 지난 겨울에도 직접 선물을 받았다고 말한다.

15년전 한국의 어느 우체국에서 자신에게 소포를 붙였던 그와 일치하는 산타.
세월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나이마져도.
하지만 그 사람은 20여년전 자신이 어렸을 때도
산타 즉 니콜라스주교님에게 선물을 받았다며 그때도 그분은 똑같은 나이였다고
얘기해준다.
난 처음엔 그저 농담을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가 말하는 니콜라스의 모습이
비인에서 우체부아저씨에게 들었던 모습과 일치하니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산타클로스를 보았냐고 하면 거진 다 아-산타클로스 하고 말한다.
책에서 보았던 것처럼  정말 니콜라우스가 산타클로스일까?
그는 270년도에 태어난 사람인데..
어떻게 이곳 사람들은 그를 보았다고 얘기하고..
왜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그의 모습이 변화가 없다고 하는 걸까
그를 만났다는 사람의 너무도 실감나는 얘기는 어떻게 설명 되야 할까?

 산타의 얘기를 들려주는 카페

언덕 위의 바보라는 이름의 카페는
거리를 약간 벗어나 조그마한 숲속에 있엇다

장미 한다발을 병에 담으니 카페 안이 환해지며 마음까지
밝아지는 느낌이다.
오늘 낮엔 마을에 아주머니께서 과자를 만들었다면서 한 접시 가지고 오셨다.
시원한 녹차를 권해 드렸다.
아주머닌 며칠 전 산타까페를 찾는 사람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는데
왔었냐면서 물으신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마을 분들이 친철히 대해주심에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바다를 바라본다.

카페엔 사랑스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사람들.
한가롭고 평화롭다.
산타를 아는 사람.
그는 오늘도 멀리서 산타를 찾아 이곳 까지온
한 여행객에게 산타의 얘길 들려준다.
영원히 살아서 5차원의 공간 속에서 끝없는
선행을 행하고 있는 성 니콜라우스에 대한
얘기를.

바다가 보이는 커다란 통유리의 카페 내부,
한눈에 들어오는 바닷가 정경.
그저 바라만보고 있어도 좋은 곳이다.
일주일전엔 스위스에서 니콜라우스를 찾아온 여행객에게 컵받침을
두개 주었더니 마치 산타에게서 선물 받은 느낌이라며
가면서 &#47750;번이고 감사하다며 까페가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손을 흔들며 갔다.
고향에 돌아가면 자기도 누구에겐가 선물할 어떤 것이라도
미리 준비하여서 전해주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가슴이 푸근해진다

어느 마을 작은 호텔
선행의 끝이 없이
영원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그 겨울밤 눈길에서 사랑을 베풀다가
차원이동을 해 간 니콜라우스.

그리곤 시차를 초월한 사랑 속에서 3차원의
우리세계 곁에서 영원한 사랑을 베풀면서
희망을 전하는 아름다운 그의 영혼.

산타는 실존의 인물이고 사람들 곁에서
이렇게 서로 아끼고 사랑하라고 얘기해주는 것을..

오늘도 즐거이 까페 문을 열고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차를 준비해 놓고 과일도 조금 준비해 두었다
오늘도 설레이기는 어제와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이다
엽서를 습관처럼 쓴다
쓴 엽서를 가져가기 좋게 비치해 놓는다
그리곤 찾아온 사람에게 줄 작은 선물에 하나로 손뜨게를 한다.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니콜라우스에 대해 알고 싶어서 멀리 한국에서 찾아온 사람이 있어서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산타를 찾으신다구요?
5차원에 대해 들어보셨어요.
니콜라우스, 그분은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영원한 사랑을 베풀다
차원이동을 해간 분이세요.
시차를 초월한 사랑 속에서 3차원의 우리 곁에서 영원한 사랑을 베풀며
희망을 전하는 실존 인물이세요.
인간을 구성하는 본질적요소는 심신이 아니라 영혼이쟎아요.
그래서 모든 영혼은 하늘로 부터와서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니까요.

숙소로 돌아와
창가로 들어오는 북구의 겨울밤 별빛을
바라보며 그 만남에 감사한다.

산타는 진정 우리들 곁을 떠나지 않고
생존하는 사랑이었음을.

반송되어온 선물을 끌러본다.
역시 고귀한 사랑의 선물과 누군가 정말
아름다운 아이에게 주고 싶었던 따스한 선물.
그의 선물에 들어있던 카드와 똑같은 모양의
카드. 느껴지는 그 촉감.

까페에서 만난 그는 인간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는 심신이 아니라 영혼이라고
했으며, 모든 영혼은 하늘로부터 와서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라 했다.

선행의 끝도 없이 영원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그 겨울밤 눈길에서
사랑을 베풀다 차원이동을 해 간 니콜라우스. 그리곤 시차를
초월한 사랑 속에서 3차원의 우리 세계 곁에서 영원한 사랑을
베풀며 희망을 전하는 아름다운 그의 영혼.

이제야 니콜라우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그가 왜 어리고 욕심많고 이기심으로 충만한 나에게까지도 그 사랑을
베풀어주었는지..

그는 내가 듣도 보도 못했던 일광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부쳐주었고,그때의 그 인형은 단순한 크리스마스 선물의 차원을 넘어
내가 그를 찾아 갈 수 있게 해주었으며 산타의 마음을,, 그 사랑을 깨닫게 해주었다.

어쩌면 내가 그를 찾아 여기까지 오게 된건 니콜라우스가 연결 지어 논
어떤 발자취를 따라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가 만나온 그 많은 사람들..바로 내가 그토록 그리던 산타의 모습은 아닐까..

나또한 내가 기억하지 못할 뿐 별을 가꾸려 내려온 5차원적존재이며,,
그것을 깨달은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무엇을 해야 하는지 마음깊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니콜라우스 뿐만 아니라 그러한 베품의 길을 택한 무수한
5차원적 존재들이 있기에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 걸..
이제 모두를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람들을 둘러싼 심신보다 그 안의 영혼적
존재가 보이므로..
착하고 아름답지 않은 영혼이 있을까..

마을어귀
아침, 여행을 정리하는 마음은 새로운
탄생처럼 신비하다.

마을 어귀 수돗가에서
가난하지만 맑게 웃고 있는 한 아이를 만나
키가 닿지 않는 그에게 물을 마시게 도와준다.
아이는 농아였다.

주인을 찾지 못했던 산타의 그 선물을 마치
산타처럼 그 아이에게 쥐어준다.

정말 고운 사랑을 실천하는 가슴으로.
아이의 행복을 빌면서..

(수돗가에서 아이를 만나 수화한다)

니콜라우스를 찾기 위해 시작했던 나의 여행은,
산타의 고운 마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되어 아름다운 세상에 눈뜨게 한다.
그 수돗가에서 만난 아이에게
산타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쥐어주며
이제 나는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니 새로운 여행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나의 발걸음이 닿는 어느 곳에 서나 니콜라우스의 체취가 느껴지니까..
그가 지금도 나의 뒤에서,,저만치 먼 곳에서,,때론 내옆 자리에서도
나를 보고 인자하게 웃고 있는 것만 같다.
 
2010년 7월 31일 토요일오전 3:16:50
산타를 찾아가는 이-바람아래 (santa-baram)공연동영상
...................
행주동 한강하구 강변에서 평화 그 그리움으로 읽어보는 강과 기도
7월21일 295일째 평화 그리기,그리고 8번째 강과 기도공연기록
 
강을 보고 싶어갔는데 강은 볼 수 없었습니다.
나루터라는 이정표따라 강변을 찾아가보았으나
거기엔 나루터란 대형가든식 음식점만 1,2호점 이어져있을 뿐
강가로의 접근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시 강이 보고 싶어서  한강하구 행주내동 행주외동 이어지는
강변 길 따라 걸어봅니다만
강변은 도로에 인접한 대형음식점들과 유흥공간들과 그들의 주차장.
들여다보니 강이 보이는 쪽은 자릿세를 받는 유원지의 그것처럼
모두 음식을 주문하고 회식을 해야만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전망식 포장막으로
가려져있습니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4대강역시
강이 개발되고 그곳에 자전거도로가 나고 그곳에 인공녹지가 구축되면
그곳들도 이처럼 유흥과 회식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제각기 땅 주인이 되어,돈낸 사람만 강으로의 접근을 허락하는..
어릴 적 누구나 뛰어 놀던 금모래 은모래와 발담그고 수영하던 강변은 없어지고
강은 이 개발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려는 이들과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재물을 가진 자들만의 공간으로 변해갈 겁니다.
 
강을 보고 싶어 강변으로 가는 일반버스를 타고 강가에 내렸는데
강은 보지 못하고 줄지어 이어진 음식점과 그사이사이 통행금지령이 이어진
담과 철조망만 보다가 돌아섰습니다.
간혹 틈새로 보이는 강을 볼 수 있었으나
이렇게 강을 훔쳐보는 것마저 힘겨워
저 반대편 경인운하 터미널공사장을 바라보며 그 반대편 행주동에서
수많은 댐과 보를 지나 힘겹게 흘러올 강과
제 길을 따로 두고 흘러 들어와 합쳐질 바닷물과의 억지스런 만남을 서글퍼할
한강물에 손이라도 담그고 얘기 나누고 싶었던 걸음은 꿈이 되었습니다.
 
행주동 한강하구엔 아직도 통일이란 이름을 내세운 안보교육이 있고
강변은 온통 철조망으로 이어져있으며
철조망 밖으로 간혹 보이는 우리사는 땅의 강을
사진도 찍을 수 없는 접근과 촬영을 금지한다는
경고문들이 군 부대장들의 이름으로 걸려져 있습니다.
 
낙동 하구에서 시천까지 역으로 올라오면 그 마지막자락 한강하류 이곳에서
인간이 자랑스럽게 이루고 지키려는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이
가장 아픈 모습으로 결론지어져 있었습니다.
2010년 8월 1일 일요일오전 11:51:25
 
 ......................
강과 기도09-공주 공산성 금강보 그리고 금강선원에서..
 
평화 그 그리움으로 이백아흔여섯째날
민예총 생명의 강 지키기 예술행동 세 번째
금강순례 강굿에 동행하여
처절히 미안하고 그리운 그 강으로 다시 갑니다.
그리고 강을 그대로 흐르게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따스한 삶의 모습들을 바라봅니다.
 
금강선원엔 아무도 없이 비어있었고
소신공양 문수스님의 영정만이 기도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2010년 8월 2일 월요일오전 12:41:50
 
공주 공산성 금강선원에서 그 7월의 마지막날 저녁
나눈 강과 기도 그 아홉번째 공연,그 대본중 음성녹음부분.
 
1.
강에 다녀왔습니다.
지난겨울 그리고 봄 다시 이 여름에
그리고 그곳에서 강과 기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청원이나 바램이 아닌
행동의 기도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 뭍생명과 동행하는 일.
 .....................
2. 
강은 지금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요?
이 푸른 별 자공전을 따르며 궆이쳐 깊고 얕게 채우고 비우며
뭍생명들의 터를 쥐어주며 흐르던 강이
지금 60개하늘을 바라보며 이 밤 드리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바위에서 모래로 다시 조약돌과 바위로 자신을 생성하며
강을 정화시키고
뭍생명의 집과 고향을 만들어주던
모래와 조약돌들의 기도는 또 어떤  내용일까요?
 
그리고 그들의 아린 사랑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이 푸른 별 강가에서
늪과 숲, 들과 언덕을 이루며 살아가던 많은 들꽃과
그곳을 고향지어 살아온 고운 생명들의 기도는
또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의 기도 속에서
이 모든 기도의 반대편에 선 인간 .
그 인간종의 마지막 변종인
우리들이 이 강변에서 드릴 수 있는 기도와
그 가능만큼 전부의 존재방식은.
...............
3.
강은 지금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요?
이 푸른 별 자공전을 따르며 궆이쳐 깊고 얕게 채우고 비우며
뭍생명들의 터를 쥐어주며 흐르던 강이
지금 60개하늘을 바라보며 이 밤 드리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바위에서 모래로 다시 조약돌과 바위로 자신을 생성하며
강을 정화시키고
뭍생명의 집과 고향을 만들어주던
모래와 조약돌들의 기도는 또 어떤  내용일까요?
 
그리고 그들의 아린 사랑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이 푸른 별 강가에서
늪과 숲, 들과 언덕을 이루며 살아가던 많은 들꽃과
그곳을 고향지어 살아온 고운 생명들의 기도는
또 어떤 것일까요?
731평화 그 그리움으로 공연사진집
http://yegie.com/731peace/page_01.htm
731 평화 그 그리움으로(강과기도09)공연영상집
http://yegie.com/oncoreariverpray09.html
.............
2004년 인천,2006년 광주 그리고.. 8월
이름없는공연 통일영화제를 준비하며...
 
2004년 인천,2006년 광주 그리고 2007년 부산..
그리고 올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우리들의 6,8월.
 
오랜 분단의 벽을 내리고져 남북의 국민들이 비록 몇백명 수준이었지만
매년6월과 8월을 서로 오가며 만남과 인사를 시작하던
꿈같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6.15선언 그 4년째가 되던 2004년엔 인천에서 그리고 2006년엔 광주에서
하지만 그토록 어렵고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상처나 마음상하지 않게 노력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던 그 만남은 광주에서의 만남을 끝으로 2007년 부산에서의 만남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고 다시 2010년은 6월에도 8월에도 말조차 못 꺼낸 채
우린 다시 닫혀진 벽 앞에 서서 그리움도 다 잊고 다시 서로에게 상처주고 상처받으며
마음에도 없는 힘 겨루기를 합니다..
 
그 선하고 아름답던 만남의 모습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버리고
눈물조차 메마른 원한의 주적이 되어 버린 국가주의 안에서
그저 마냥 그립고 아프기 만한 국민들은 짧았던 그 통일날로의 행진들을
한낮의 꿈은 아니었을까 다시 그 꿈 이어가고 싶은 마음으로 망연히 눈을 감습니다.
 
우리민족대회가 처음으로 열리던 인천이란 도시가 마냥 부러워서 그곳으로 달려갔던 그해,
문학경기장을 열망으로 찾아온 이들이 멀리서나마라도 함께하며 나눈 통일의 기쁨.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게 조심하며 가장 아름다운 배려로 서로조심하며
간절한 평화의 갈망으로 바라보던 서로들.
이렇게 만나면 되는 것을 그리고 다시 만납시다..
기다려 다시 만난 광주,
빗속의 상무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그리고 이튿날 조선대교정에서 다시 만나
그리던 평화 그리고 통일.
5월에서 통일로 라는 티를 입은 그를 다시 스치며 만나던 삼일포.
하지만 이듬해 부산에서의 만남은 이뤄지지 못하고
그들이 끝내 오지 않는다는 얘길 듣고서도
찾아간 부산.
너무도 조심스레 그렇게 살얼음 위를 걷듯 아름다운 미래를 위한 노력으로 사랑을 키워왔는데
한 순간 무너져 되닫혀 버린 그 곳에서 아름다운 만남을 준비하던 빈 공간을 거닐며
눈물짓던 그해.그리고 다시 3년뒤,
이젠 만나자고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가보고 싶다고 얘기조차 다시 할 수 없는
역사의 후퇴 속에서 참담히 함몰되어가는 인간의 시간.
그 흐름 속 한편에서 우린 기다리고 있으며
한번도 분단없이 지난 60년간을 살아온 뜻모를 사람들의 얘기를 공연하고 있습니다.
마임 페스티벌,21일간의 직시,마술피리,비오는 날 경원선에서... 등대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금강초롱처럼 피어 반기는..그리고 평화 그 그리움으로..로 이어지는 그리움.
2010년6월에 이어 8월도 지우지 못하고 허물지 못한 아픔은 끝내 이렇게 흐릅니다.
 
우리가 만나고 함께 손잡고 노래 불렀던 6년전 그리고 4년전 인천과 광주에서의 우리민족대회의
영상과 그 축제의 도시에 다가가 함께 그렷던 통일 그리기를 회상하며
통일영화제를 준비합니다.
8월14,15,16,17일 통일과 평화에 대한 영상회,상영공간을 찾습니다.
 
8월14,15,16,17일 통일과 평화에 대한 영상회[2004년에서 2010년까지]를 준비합니다.
이중 하루 혹은 이틀이상 일자를 빌려
2010년 8월 이름없는공연,통일을 향한 영상회의 장소를 제공해주실 의향있으신 분은
연락 주십시오.
갤러리나 극장공간을 가지신 분으로서 첨예하게 다시 대립된 이 시기
우리가 그리는 통일의 의미를 새기고 싶은 분의 마음을 기다립니다.      
특히 2004년 우리민족대회를 가졌던 인천지역에서의 상영회를 희망합니다. 
연락 주실 곳
http://cafe.daum.net/oncorea/2Gei/797
019-696-2550 예기 신영철
 
2010년 8월 9일 월요일오후 3:01:39
 
....................
8월14일 6시 신촌 아트레온 토즈에서의
이름없는공연 통일영상회에 초대합니다
 
6.15 공동선언을 기점으로 맞이했던 희망어린 통일의 발걸음은
10년이 되는 오늘 다시 닫친 슬프고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이어지고있습니다.
 
그 부끄러움 앞에 모진 가슴으로
이름없는공연이 그 10년간 작업해온 공연 중 몇 편을 모아서
이름없는공연 통일영상회를 준비하고
8월14일 조그마한 장소를 빌려 그 영상회를 엽니다.
 
언제나 그렇듯 늘 안부처럼 보고 싶다 하시지만
막상 일정을 정하고 장소를 정해 기다리면 
아무도 오지 않는 평화를 향한 이름없는공연영상회.
 
몇 군데 지인들에게 연락드려서 함께 할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영상회의 장소를 구하지 못한 안타까움 뒤로 하고
유료로라도 구할 수 있는 조그마한 모임공간을 대관하여
같은 화두안은 단 몇 사람만이라도 만나고 얘기 나누고 싶어서
그 만남을 그리며 영상회를 준비하고 초대합니다.
 
마임페스티벌 21일간의 직시 마술피리
비오는 날 경원선에서 만난 풍경,등대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겨울여행3
그리고 삼일포에서 공연한 금강초롱처럼 피어 만기는 까지
이름없는공연이 예기 플라타너스 시절부터 이어온 통일연작들과
이제는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립기 만한
2004년 인천 2006년 광주에서 만났던 우리민족대회의 회상.
 
그 10년간의 공연영상들 모든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4일간의 통일영상회는
8월14일 하루 2시간의 유료로 대관할 수 있었던 장소에서의 하루만으로
다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얘기 나누고 싶어 이 영상회를 준비하고
혹시라도 아무도 오지 않는 쓸쓸한  영상회가 될지도 모를
이 영상회에 절실한 가슴안고 찾아줄 사람을 초대하고 기다립니다.
 
오실 분 들은 이 초대의 글에 미리 꼭 13일까지
오신다는 답글로 귀한 약속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분단으로 6.15 공동선언 10주년 지내는 2010년 8월
이름없는공연 통일공연영상회
일시 2010년8월14일 6시-8시
만남시간 5시30분
5시30분까지오셔서 로비에서 미팅가진후 6시부터 상영회가집니다.
초대에 응해주실분들 예약 답글주실 곳
 http://cafe.daum.net/oncorea/2Gei/799
장소 서울 신촌 토즈아트레온점 모임방 
(2호선 신촌역4번출구-이대역방향으로 5분도보-아트레온극장건물14층)
 http://www.toz.co.kr/booth/JB_booth/booth_jb_basicinfo.asp?idx=3
2010년 8월 11일 수요일오후 6:56:53
................
2004년7월부터2006년4월까지의 예기플라타너스연작 [앗살람알라이쿰]
 
2004년 통일화두의 작업 [마임 페스티벌]에 이어
옛 공연영상집을 정리하며 조금 먼저 꺼내보고 싶어 꺼낸
그해 가을의 작업.
마침 50살지나서야 우연히 다가온 제주섬으로의 첫 만남의 그곳에서
당시 절실히 그리던 평화의 화두로 작업한 앗살람알라이쿰.
4.3의 땅에 처음 드린 인사말 당신에게 평화를.. .
 
 
앗살람알라이쿰  2004년7월 그 작업에 들어가던 날 적은 작업노트(2004.7)

반전과 평화를 화두로 한
절실한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별러오다가
이라크 침략 전쟁의 파병국 대열에 선 나라의
국민이 되어버린 어느날부터
그 절실함을 피부에 감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실천적 삶의 모습을 가지려고 백방으로
두리번거렸습니다..

체감하지 못하고 방심하고 망각하노라면
반전이나 평화는 그저
자기생존의 일정한 편의주의적 말 장난으로서
매듭지어질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나의 오감에 직접 체감되지 않는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역사를 바라보면서
타인의 아픔이나 비애를 체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반전이나 평화의 절실함을
이 지구를 향해 정의롭게 외칠 수 있는
진정함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는
무던한 자기확인이 필요했습니다.

스스로 자각해보고 부끄럽지 않게
자신은 정말 꿈에도 평화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사는가
그래서 그의 평화에 대한 한마디와 행동이
사람들 속에서 합당하게
회자될 수 있는가?

그렇게 노력하였으나
전쟁의 불씨하나라도 가슴속에 갖고 있다면
그는 평화를 얘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 작업을 준비함에 힘이 들었습니다.

미루고 미루던 그 부족함이
반전과 평화를 얘기하는 사람들 속으로
먼발치에서나마 다가가면서
그들의 절실함-물론 부분적인 조각조각의 절실함 일수도
있겠지만-을 마주하면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절실함을 향해서
그리운 하나의 의문으로
인간세상의 평화에 대한 화두로
숙제장에 불러준 숙제를 적어 귀가한 학생처럼
이 작업은 시작됩니다.

나는 사람들이 평화를 이룰거라고는 생각 치 않습니다.
그분이 약속했던
56억 7천만년뒤에까지도
평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같습니다.
다만 그것을 외치는 사람들의
고귀한 실천만이
세상 어느 구석 구석에서의
호전가들의 양심을 자극해주는
부분적 꽃잎으로 피었다간 밟히곤 할 것입니다.

만남의 인사에서
그리고 헤어짐의 인사말로
평화를 얘기하기로한 것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입으로 다시 미움을 키우는 것도
사람들입니다.

지구인들 가운데 아주 미세한 일부가
매일 밤마다 평화를 향한 글을 하나씩 쓴다면
전쟁이 조금은 줄어들까요?
나약해 보이리만치 무던한 민초가
밟히고 뽑히어도
용서하면서 평화를 노래하면
빼앗고 더 가지려는 자
자신 안에 남을 가두려는 자들의 행동이
조금은 누그러 들까요?

혹자는 여러 이유를 찾아가면서 논쟁으로서
전쟁논리를 대항하지만
전쟁이란 행위를 용납시키기 위한
무슨 논쟁의 필요가 있을까요?

세상엔 전쟁을 하는 자와
전쟁을 하지 않는 자로 구분됩니다.
예플 작업은
당신에게 평화를 이라고 인사말을 건네는
사람들
즉 전쟁을 하지 않는 자들의 얘기를 통해서
전쟁과 반전 그리고 평화의 화두에 접근하려 합니다.

절대 싸우지 않는 자는
가장 큰 힘을 가진 인류로 여겨집니다.
단 그가 싸우지 않는 이유가
비굴함이나 나약함 두려움이 아닌
평화와 반전의 의지일 경우입니다.

앗살람 알라이 쿰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진정으로 그렇게 얘기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얘기를 지구표면에 나열하다보면
세상은 그 순간만이라도 조금은
평화로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 부질없는 그리움으로
이 작업을 시작합니다.
 
앗살람알라이쿰 공연연보
2004
7.31단양방곡장작가마예술제
8.3 자이툰 파병한 날 광화문 널린 노래방
8.26 인사동,널린노래방
8.29 마일연극의날(코파스)
8.30 청와대 앞 반전단식 36일째
9.2 노원구,널린 노래방
9.16-18 평화바람 단식평화순례 (춘천교대.시흥 신천성당,월미평화축제)
9.19 명동,4차만민공동회
9.22-24 제주거리예술제 9.23 대흘리
9.27 4.3제주순례
11.4 인천대 인권페스티벌
11.24 동국대
11.24 대학로
11.25 능곡동화읽는어른모임
11.25 성균관대
11.27 울진평화모임
전범민중재판 12.2 대학로 12.3 국회의원회관
12.4 대전유성유스호스텔 12.5 광주금남로
12.6 대학로 12.7 연세대 12.8 연세대 12.19 ktp평화여행
2005
1.20 부시취임일,광화문길바닥평화행동
5.1 안면도예술축제
11.20목인갤러리 문재선개인전
2006
4.6 한송이평화(한신대)
2010년 8월 12일 목요일오후 4: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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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누구라도 한분 이상만 계시면 함께하고 싶었던
2010년8월의 이름없는공연통일영상회는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6.15 공동선언 10주년을 지내며
어찌 보면 4반세기분단의 역사 속 가장 아픈 6월과 8월을 보내며
그래도 누군가 그 아픔  절실하여 함께 나눌 사람있을까 준비해온 작업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다시 홀로 아무도 모르게 분단 날을 맞고 보냅니다..
공연을 준비할 사람있을까 제안도 해보고 그것이 어렵다면
지난 10년간 예기플라타너스와 이름없는공연의 통일연작에 한번이라도 참여하였거나
바라보았던 혹은 이제라도 관심 가져줄 사람 다시 만날 수 잇을 까하여
2004년 인천 우리민족대회때 의 그 희망에서부터 마임 페스티벌 21일간의 직시연작으로
이어온 작업의 흔적들을 새롭게 영상으로 정리하고 그것을 상영할 장소를 찾아헤메다
끝내 아무도 만나지 못하여 다시 유료로라도 장소를 대관하여 누구라도 한분 이상 와주면
같이 영상회를 보면서 2010년8월 우리가 의식조차 못하고 치루는 아픔을 기억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준비한 통일영상회조차 오신다는 분 단 한 분도 안계셔서
결국 대관했던 장소를 예약취소합니다.
영상을 편집하고 통일의 화두를 되새기며 본 영상들을 두 사람 같이 편집하고 시사한 영상들을
굳이 자신들이 다시 보기 위해서 상영 공간을 빌려서 그곳에 가서 보는 것은
굳이 필요 없는 일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느끼는 일은 우리가 정말 통일을 이젠 원치 않고 있다는 것.
그래서 미움과 이기심조차 배상받을 만큼의 어떤 경제적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통일없이 영구적인 분단의 삶도 개의치 않는 나라로 이 지구상에서 또 하나
기이한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는 망연까지.
통일은 조건없는 사랑이며
미움과 질시의 버림입니다.
그리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가 눈을 감고 바라보고 만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사람들의
그리운 얘기는 분단의 당연화 속에서도 통일의 조건화 속에서도
눈물처럼 남아있습니다.
꼭 8.15가 아니라도 누군가 이 작업노트를 보면서
애절히 준비한 이름없는공연의 통일영상회를 같이 보자고 찾아줄 사람이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나 하나만 이라도 보고 싶은데 와줄 수 있겠느냐고 하시는 분이 계셔서
연락주시길 절망으로 고대합니다
 
 
 
이름없는공연은 함께 하시고 자하는 분들을 위한 작업입니다.
이번엔 지난7월부터 8월 통일관련작업에 대한 동행자를 찾는 과정을 가졌으나
한 분도 연락이 없으셔서 할 수 없이 14일 일방적으로 통일영상회 일정과 장소를 최종적으로 정해 공지를 올렸는데
이렇게 만남 갖고 싶으신 분이 같이 못하셔서 아쉽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단한분이 되더라도 작업 내용을 보시다가 원하실 경우
먼저 언제 어디서 이런 공연이나 영상회했음 좋겠다고 시간제안하시면
그 분에 맞춰서 프로그램이나 일정을 잡는 만남 방식은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보시고 싶은 영상회나 대화모임,워크숍등 같이하고 픈 작업 잇으시면 편하신 시간과 장소 제안해주시길 바랍니다.
2010.08.11. 17:27
 
6.15공동선언 10주년을 지내는 2010년8월엔 지난 2004년 인천에서 가졌던
우리민족대회를 회상하며 꼭 인천에서 통일영상회를 갖고 싶었었는데 반지하 돌체 ..등등
제가 아는 인천 지역 분들과의 인연의 깊이만으로는 인천에서의 통일영상회가 불가능했습니다.  
아쉬움 안고 인천 아닌 곳에서 그날 우리가 조심스럽고 용기있게 이루었던 인천의 얘길 영상회로 준비합니다.2010.08.11. 19:07
 
32분 회원전체메일도 두번 보내고 개인적으로 핸드폰 전화 연락되는 분들께는 문자메세지도 발송했으나
아직 단 한 분도 와주신다는 분이 안 계시네요.13일오전까지 기다리보고
정말 한분도 안계시면 예약을 취소하고 그 반공간에 홀로 낭비하게 될 장소 대관비를 포기하고
15일 이포보로의 순례차비로 대신하려 합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이시기 통일에 대한 마음 나눌 3분정도만이라도 이름없는공연 카페에 함께 하는 분들 가운데 있어서
이 어렵게 준비한 영상회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13일 낮 12시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정합니다.. 2010.08.12. 14:31 new
 
결국 지난 6월15일부터 2달동안을지내며 준비했던
6.15공동선언 10주년인 올해의 8.15날을 맞는 통일관련작업은 같이 통일을 화두로 한 작업을 할 사람을 찾지 못해
공연을 만들지 못하고 영상회를 준비하여 함께보고 얘기 나누고 자했던 영상회 역시
영상을 새로 편집하고 공간을 대관하여 기다렸으나 단한분도 오시겠다는 이가 없어서 대관을 최종적으로 예약취소하고
여느해 처럼 예기 예플러 두 사람만의 이 분단의 땅 어느 곳에서 그리는 작업으로 마감합니다.
통일이 혹시라도 꿈에도 소원인 분들을 언제 다시 만나서
함께 그 것을 위한 성실한 노력을 기울여볼 날이 또 있을런지요?
2010.08.13
2010년 8월 13일 금요일오후 5: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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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3일 저녁 대구생명평화미사에 4대강순례공연영상회[강과 기도 ]를 준비하며
영남 지역 다른 지역에서의 순례영상회도 꿈꿔봅니다..
 
강에 다녀온 예기 그리고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강과 기도에 대한 얘기들.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지난가을부터 겨울거쳐 봄까지 다녀온 첫 번째 얘기에 이어
그 아픔 견디며 인간을 보듬어주는 아름다운 강과 삼라만상의 기도와
그 아픔 속에서도 마지막 남은 인류의 희망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강사람들의 모습,
그 곁에 다가가서 그려본 이름없는공연의 또 하나 기도를 이어가는 얘기.
일곱 번째 열리는 대구생명평화미사에 함께 할 기회주셔서
40분시간안에 영상과 얘기담아서 다시 낙동강을 만나러 갑니다.
 
낙동강을 지키는 귀한 기회로 다시 갈 수 있게 된 강으로의 순례길
성주 영주 대구 부산 군위 등 낙동강을 지키는 분들 가운데 이름없는공연의 4대강순례영상회와
공연 함께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미리 연락주시면 8월21일부터 29일사이 저희 가진 여건 안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일정 맞춰서 함께 하고 싶어.연락 기다립니다.
서울지역에서의 4대강순례영상회공지보시면서 계신 지역에서도 영상회보고 싶다고 연락 주셨던 분들
아름다운 강을 지키기 위해서 순례하시는 분들이나 퍼포먼스 행동 혹은 모임가지시는 분들 만나고 싶습니다
희망일정과 시간 장소적어서 연락 주십시오.
2010년 8월 13일 금요일오후 7: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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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기도 10..천서리 이포보현장에서..
 
이포보 현장에 다녀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 한가운데 흉물 스레 세워지고 있는 보 건설현장 위에 올라가
몸과 마음을 다해 자연그대로의 강의흐름을 지켜내기 위해 지새는
세사람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들에게 전해드리고자 가져간 최소한의 음식물마져도 끝내 전해드리지 못하고 돌아서
그저 강가에서 멀리 마주 보며 손 흔들어드리는 것으로 애탄 마음 나누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삶의 가치를 정리하고 그 가치에 따라
인간본위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세상 안에서
뭍생명과 자연과 그들과의 공존을 위한 애절함으로 저렇게 인간방패가 되어
인간의 부족함을 일깨워주는 분들.
강과 기도 그 열 번째 여정은
남한강변 천서리 강가에서 이렇게 또 하나 아름다운 그리움을 바라봅니다.
2010년 8월 16일 월요일오후 7:58:55
공연영상 http://yegie.com/oncoreariverpray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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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경기장에서 통일을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문학경기장에서 좋아하는 프로팀을 생각하지만
이름 없는 공연자에게 이곳 인천문학경기장은
어느날 우리가 하나되어 만났던 그리운 통일의 공간으로 기억됩니다.
언제 부턴가 6월15일이 8월15일과 하나의 의미가 되어 같은 그리움의 화두를 적시는
날이 되었고
그 4년후 그 잡은 손의 결실로 어렵고 소중하게
꿈처럼 성사되었던 아름다운 통일이루기.
2004년 우리민족대회를 준비하고 치루는 이 도시를 보면서 부럽기 만하던 그 날들.
한 주일을 매일 밤 경인전철과 시외버스를 타고 찾아가서 그리고 만나던 한주일간의 꿈.
그리고 이어진 문학경기장에서의 단한 번의 만남.
이렇게 만들어 가면되는 것 .
이렇게 조심스레 서로를 배려하면서 손 내밀고 잡으면 되는 것이란 걸
체감하던 날.
하지만 6년만에 다시 닫쳐 버린 가슴들,그리고 그 이기심들로 인해서
그리운 사람들은 다시 만남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6년전 그날 그렇게 이루어진 꿈의 공간에 다시 앉아
언제 우리가 만났었냐는 듯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곳에
애타는 그리움 홀로 새기며 다시와 남 몰래 앉아봅니다.
지난달이던가 비 내리던 저녁,명동성당 들머리에서의 생명평화미사를 준비하면서
문득 그리워진다고 한 신부님이 부르시던 노래.
심장 속에 남는 사람..
2004년 6월에 우리 민족 대회 열리던 문학경기장에서 처음 듣고서
아내 모두들 같이 불렀던 그 노래가 생각납니다.
10년전 그렇게 행복했던 그 꿈은
10년지나 지금 어느새 다시 가마득한 꿈이 되어 버리고
오가며 반겨 만나던 사람들은 또다시 지난 오열의 반세기처럼
다시 막힌 장벽 앞에서 자유롭게 오가지 못합니다..
그 아름다웠던 통일의 꿈은 이제 다시 꾸어서도 안될 금기의 꿈이 되었고
그리움과 눈물도 죄가 되어 버리는 역류의 시간으로
2010년의 6월과 8월이 갑니다.
아무도 상기하지 않는 그 빈운동장에
아무도 모르는 의미를 기억하며
실로 오래만에 버스를 타고 인천 문학동에 내려
보이지도 않는 환상을 만나려는 듯 달려갑니다.
그리고 그날 같이 다니며 그 아름다운 통일을 얘기해주던 작은 인형 다시 꺼내
삼일포연화대의 추억 그리며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그 고귀한 시간을 되새깁니다.
6.15공동선언 10년되던 2010년 8월에..

6.15공동선언4돌 2004년6월인천우리민족대회스케치

 
2010년 8월 16일 월요일오후 9: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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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 다녀갑니다.(817평화,그 그리움으로-김대중도서관)

http://cafe.daum.net/oncorea/7Ff4/149

당신이 소중히 이루었던 민족의 약속은 파기되고
거친 제안으로 슬픔만 키우는 공동선언10주년,그리고 너무 아쉽게 떠나신 1주기 기일에
동교동 그 골목 서재에 찾아가봅니다.,
어렵고도 어렵게 이루었던 민주와 인권의 세상에서 용서와 화애로
그토록 애태웠던 그리움을 하나하나 이겨내 현실화 시켜주었던 분.
그가 있어서 행복했던 그 시간.돌이켜 그리고파서
동교동 그 골목 서거1주년추모행사로 맞아주는
도서관을 찾아 다시 애타게 그리운 평화를 그려봅니다
그리고 떠나오며 적습니다.
그리워 다녀갑니다.
366날 하루도 잊음 없이 평화 그리기
그 이백 아흔 일곱째 날에'
2010년 8월 18일 수요일오후 6: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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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맞는 대구생명평화미사에 초대받아 강과 기도 첫 영상본을 편집합니다.
 
천주교 대구 교구가 진행하는 일곱 번째 대구생명평화미사에 앞선 프로그램으로
이름없는공연의 4대강순레공연영상을 초대받아
[강과 기도]그 첫번째 편집본을 완성합니다.
40분이란시간제한과 4대강사업의 진실을 잘 모르는 신도들에 대한 교육과 설명용으로
상영될 영상이라는 한계가 주어짐으로서
마음껏 감성에 호소할 본연의 공연영상집이 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속초와 마산에서의 상영회를 가졌던 시천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64분본에 이어
이시기 어느 곳에서 누군가 보고픈 사람이 있어 불러주는 관객을 대상으로 한
4대강순례공연연작 두 번째 작업인 [강과 기도]란 화두의 영상본이 처음으로 만들어집니다.
총 26편의 연작으로 작업마친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의 영상본과
지난주 이포보에서의 공연까지 10번의 공연을 마친 강과 기도 총 36편의 영상을 갖고
40분의 영상을 정리하는 작업엔 지난가을부터 겨울 봄 그리고 여름까지
인간의 오만과 이기에 의해 파괴되고 역류되어가는 강과 모래 그리고 삼라만상 자연의 아픔이
극단으로 치닫고 그 속에서 변종처럼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기도가
눈물지어 이어집니다.
아마도 강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에겐 이 눈물처럼 흐르는 영상이 가슴에 설명되지 못할 겁니다.
직설적인 설명이 필요하고 분노가 필요한 이들에게 이름없는공연의 모습은
그 존재의 이유조차 찾을 길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편집을 하면서도 과연 이렇게 설명이나 교육 홍보가 필요한 자리이지만
그안에서도 누군가 꿈꾸는 사람들
그리고 의무처럼 강으로 다가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을 지니며 그 만남을 그리는 가슴으로 영상본을 완성합니다.
2010년 8월21일 현재의 얘기는 이렇게 절망 속에서도 굳센 희망과 용기의 모습으로
완성됩니다.좀더 많은 것을 좀더 소중한 모습들을 하염없이 보여드리고 싶지만
강과 기도 그 열한 번째 기도를 위해 영산강 강굿이 열리는 학산리 승천보로 떠나며
그곳을 거쳐 이튿날 대구에서 만날 생명평화미사와 돌아오는 길 다시 만날 낙동강을 그림으로서
그 욕심을 대신합니다..
filename riverpray40m
2010년 8월 21일 토요일오전 11: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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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D.FESTA Outdoor  참가작 1895년가을
이름없는공연의 12일 총 24회연작거리공연이 1차 기획안
 
2010년 가을 대학로에서 한달간 이뤄지는 거리공연에
이름없는공연은 그간의 거리공연의 형식적 내용적 주제적인 실험과 경험들을 기반으로
이시기 우리들 인간이 잠시 삶의 공간에서 가져야 할 인간에 대한 담론을
연작형식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준비합니다.
 
1895년가을 은 이름없는공연의 1995-2000년 5년간 작업한 경복궁에서 3부작의 후속편으로
준비해온 작업입니다.
115년전 이 가을 이곳에서 그리고 이 지구 별 어느 곳에서 동시대를 살면서
세기말의 아픔과 희망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얘기,
그리고 그들이 마래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전해주는 얘기들.
100년후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평가해줄까?
그 질문을 안고 살고 지던 사람들의 얘기가 오늘 이시기 또다른 시간을 만들며
인간의 역사를 그려내는 사람들의 모습 앞에 교차되는 작업.
1895년 가을,음력8월10일 대보름을 앞둔 10월3일부터 의로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을미왜란 평정창의의 그날 11월28일 아침까지 그 가을 이 땅에서
아름다운 그리움으로 생을 키웠던 사람들의 그리움이
거리에서 아름다운 정물처럼 풍경이 되어 115넌후 같은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
말을 걸어주는 얘기.
축제의 거리공간속에서 가을저녁 아름다운 이미지로 시와 노래와 그림 그리고 몸짓으로
한달간을 같이 살면서 꿈 키울 과거와 현재의 우리가 인연지어 만나 그리는 1895년가을 그리고
우리가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들..
연작의 형식으로 2010년가을밤 12일간 총24회의 거리공연형식의 작업을 준비합니다.
 
희망공연일
10월13,14,15,16,17 20,21,22,23,24,27,28일
수목금토일, 저녁 7시-7시30분/8시-8시30분
설치에서 마침까지 30분씩의 공연으로 총 12회의 드라마를 하루 2회씩
24회연작으로 20여명의 작업자들이 1인다역으로 인물들의 얘기를 구성해서
거리를 하나의 정과 동적인 역사의 공간으로 만들어 이야기를 완성해갑니다.
 
작품제목 [1895년가을]
공연팀 이름없는공연
구성,연출-예기 신영철
출연 워크숍참가자 및 공연인들의 특별출연
공연일시 10월13일-28일까지 매주 수목금토일)
오후 7시,8시 (1일2회 12일간 총 24회공연)
 
작품줄거리
1895년 가을 명성황후시해사건을 앞둔 한가위 저녁부터
을미왜란 40일후 춘생문에서의 을미왜란평정창의일까지의 이 나라와
1895년 세기말을 살던 여러 나라 사람들의 가을단상을 모아 그려보는
미래의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의 얘기와 아름다움 그대로의 세상을 만들고 주고 싶어한
인간의 애처로운 담론..
1895년 가을은 명성황후시해와 을미왜란 평정창의가 있던 가을입니다.
동학혁명의 불꽃이 쓰러져간 1년후의 가을이고
사람들은 밀려오는 새로운 문물과 정신세계의 교류에 귀기울이며
새로이 다가올 세상을 기다리며 살았을 가을입니다..
그로부터 115년이 흘러 돌아보면 우리는 그들이 그리워한 1세기후의 희망에
걸맞게 살아가고있는가 죄스럽습니다
.1895년 겨울이후를 미지의 세상으로 기다리며 살고있던 그날의 사람들은
100년후의 우리들보다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 고왔던 사람들의 꿈과영혼을 만나며 아름다운 세상으로 회귀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꿈과 희망에 답하지못하고 이미 퇴화해버린 100년이후의 인간으로서
뒤에 다가올 2085년년의 사람들앞에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115년전의 사람들처럼만이라도 살아갈수있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100년후의 사람들에게 그때 그사람들은 아름다웠다고 얘기들을수 있을까?
[1895년 가을]은 100년간의 퇴화를 고백하며 죄스러움으로 다가가 그리워하는
100년전 이 지구를 지켜주며 미래의 우리를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과의 만남입니다..
 
2010년 8월 24일 화요일오후 8: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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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공연의 2010년가을작업 1895년가을 공연에 동행할 분들을 찾으며
15년의 준비를마치고 그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름없는공연이 1995-2000년에걸쳐만든 경복궁에서3부작 이후 준비해온
[1895년가을]을 마침내 2010년가을에 115년전 사람들의 꿈 이란 화두로
준비합니다.
그리고 이 작업에 동행하면서
100년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을 찾아 보고픈 이들을 찾아
그들과의 작업을 계획합니다.
20명이상의 주요 캐릭터를 준비하고 이 작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언제나처럼 한 분도 오지 않으셔도
이번 가을엔 그 작업을 완성하려 합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오셔서 워크숍을 통해서 거리와 극장공간에서
1895년 그 가을의 사람들의 마음을 동행하고 표현해보며
그것을 통해 100년을 지나고 부끄럽지 않을 사람의 가을을 만들어보실 분이
다만 몇분이라도 있어서
이 작업이 공연의 형태를 갖추고 사람들의 공간에 이미지될 수 있는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연은 9월부터 개별적으로 준비되어
준비된 만큼의 사람들의 모자이크로
연작방식의 거리공연과 정리작업으로 완성됩니다.
 
우리에겐 명성황후시해사건일인 10월8일부터 그 40일후인
11월28일의 을미왜란 평정창의까지의 1895년가을날의 얘기를 중심으로 해서
그 시기 이 지구상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오버랩시키며
이 작업은 구성됩니다.
10월12일부터 11월7일까지 대학로에서 열리는
2010 D FESTA OUTDOOR에 참가하여 20회정도의 공연으로 작업되며
10월29일 플페와
11월1일부터 7일까지 홍대 앞 씨어터제로에서의 공연까지
수업과 창작 공연을 이어가며 이뤄질 2010년 가을
115년전 이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의 아름다운 꿈을 찾아보는
1895년 가을작업에 동행하실 분은
이름없는공연 홈피 1895년가을 작업게시판을 통해서 참가신청하시고
작,연출가와의 면담을 통해서
자신이 스스로 행동할 만큼의 시간과 약속을 정한 후
동행하시길 바랍니다.
1895년가을 작품홈페이지 http://www.yegie.com/1895aut.html
1895년 가을은 명성황후시해와 을미왜란 평정창의가 있던 가을이다.
동학혁명의 불꽃이 쓰러져간 1년후의 가을이고 사람들은 밀려오는
새로운 문물과 정신세계의 교류에 귀기울이며 새로이 다가올 세상을 기다리며 살았을 가을이다.
그로부터 105년이 흘러 돌아보면 우리는 그들이 그리워한 1세기후의 희망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는가 죄스럽다.
1895년 겨울이후를 미지의 세상으로 기다리며 살고 있던 그 날의 사람들은
100년후의 우리들보다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 고왔던 사람들의 꿈과 영혼을 만나며 아름다운 세상으로 회귀한다.
그리고 그들의 꿈과 희망에 답하지 못하고 이미 퇴화해버린 100년이후의 인간으로서
뒤에 다가올 2095년의 사람들 앞에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한다.
100년전의 사람들처럼만이라도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100년후의 사람들에게 그때 그 사람들은 아름다웠다고 얘기들을 수 있을까?
[1895년 가을]은 100년간의 퇴화를 고백하며 죄스러움으로 다가가 그리워하는
100년전 이 지구를 지켜주며 미래의 우리를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2006년9월14일 작업노트)
2000년 이 작업의 화두를 열면서 적었던 작업노트.
그 10년이 흘러서 마침내 이제 한점 완성본을 만듭니다. 
2010년 8월 27일 금요일오전 10: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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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다가올 사람들을 기다리며 115년후 가을 홀로 작업에 들어가며
 
100년이 지난 후를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얘길 다루고 싶었던 [1895년 가을]은
9.11사태가 있던 2001년 가을 [후이넘의 기억]공연을 마친 날
그 다음해 가을공연을 예정으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작업에 동행할 사람이 오지 않아서 작품은 시작되지 못하고 시간을 끌면서
하나의 짐으로 매 년 가을이 올 때마다 가슴 조여했습니다.
100여년전 100여년 후를 살아갈 사람들 즉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눈에
자신들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정화시키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들.
그 많은 인물들이 얘기를 걸고 다가오는데 그 얘기를 같이 나눠줄 사람이 없어서
홀로 애태우며 매 가을을 보내고
이제 핑계를 버리고 그 첫 단추만이라도 홀로라도 채우며 시작하기 위해서
1895년 가을을 [파람]과 같은 연작방식으로라도 구체화 형상화하기로 하고
작업을 시작합니다.(2006년 9월14일 작업노트)
 
2006년 9월 1895년 가을이란제목의 작품 홈피를 만들고 작업노트에 적은
111년후에 라는 제목의 첫글입니다.
그리고 몇 번의 작업과 조각공연으로 공연은 준비되었으나 그 준비가 이어져 하나의 얘기로
완성되지 못하고 다시 4년이 숙제처럼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제 115년이 지나 더 이상 늦춰지면 100년후의 우리 혹은 100년전의 사람들이란
단어조차 걸맞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마침 이름없는공연의 15년간의 거리공연도 정리하는 싯점에서
그리고 2010년의 가을이란 또 하나 참담한 시간을 맞고 보내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가슴으로 이 작업을 시작합니다.
마침 대학로에서의 디페스타에 20회정도의 거리공연의 일정이 잡히고
이어 씨어터 제로에서의 일주일간의 극장공연의 기회도 마련되어
이 공연을 거리와 극장에서 조금은 자유롭게 게릴라 공연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어
일단 최소한 10명은 있어야 공연형태가 가능한 이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사람을 기다리고 그래서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 맞춰서 대본을 구성하던
이름없는공연의 방식을 탈피해서
누군가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등장인물들을 미리 만들어서 대본을 구성하고
기다리는 방식으로 작업에 임합니다.
2010년 9월 5일 일요일오전 9: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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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의 기본구성은 이땅에서의 그 가을을 보내던 사람들의 얘기,
그리고 등장인물들
 
1895년가을의 전체적이야기속에 바탕이 되는 얘기는
그 가을 조선이라는 이 나라 이 땅에서 그 가을을 보내던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당연 명성황후시해사건의 모의과정에서부터 을미왜란평정창의까지의 가을얘기가
경복궁에서 3부작의 등장인물들과 비등장 인물들을 교차하면서 진행됩니다.
공연에 참가하여 같이하고 자하는 사람들이 다가와 이 작업이 이뤄진다면
그 시공간의 인물 속에서 자신이 각기 다가가고 안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의 얘기가
취사선택되어 쓰여지겠지만 아무도 대상자 없이 작업이 시작되는 이번 작업 안에서는
일단 작가의 취향대로 인물이 상상되고 역사적 순간이 그에게 쥐어지는 방식이
택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대원군,오까모도고문관,이경직,명성황후,상궁,재의,울고 있는 궁녀,등 시해의그날에 사람들과
임최수,이도철,이덕순,중형,고종황제,홍상궁, 이민굉 이재순 김대진,등 을미왜란평정창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같은 가을을 살았던 사람들 중에선
이 작업의 주제에 동행하는 얘기를 들려주는 인물들로
아인슈타인,갈릴지브란,헤르만헤세,라이너마리아릴케,로뎅,드보르작,막심 고리키,세쟌,율리아 체마이테,
브람스,H.G.웰스,알프레드 노벨,뢴트겐,이사도라던컨,과 그의 주변인물들이
이 공연에 등장인물입니다.
그리고 무명의 인물들로서
이 공연의 가장 아픈 얘기를 이끌어갈 동대문 안 주막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중 창의통문 조각을 가진 사람,
술에 취한 사람,춘생문에 다녀온 사람,우금티의 아픔을 못잊는 사람 등과
첫 편지를 받아든 사람,1895년전을 준비하는 큐레이터, 랭보의 무덤을 돌보는 소년등도
그 가을의 얘기에 담아서 그려질 등장인물들입니다.
2010년 9월 5일 일요일오전 10: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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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디페스타 거리 공연 일정 확정 10일간 총 20회연작으로 공연구성.
 
[1895년 가을] 대학로 디페스타 거리 공연 일정이 확정되었습니다.
축제기간중 대학로 골목길에서 저녁 7시와 9시공연을 중심으로
10일간 총 20회의 연작으로 공연을 진행합니다.
 
공연일은 10월12일(화)1-2회 13일(수)3-4회 14일(목)5-6회
19일(화)7-8회 20일(수)9-10회 22일(금)11-12회 23일(토)13-14회
26일(화)15-16회 27일(수)17-18회 28일(목)19-20회
 
총20회의 연작이지만 하나하나의 공연이 1895년가을의 인물들의 얘기를
독립된 장면으로 하나하나씩 상황극을 구성하고 총 20편의 공연이 모여서
하나의 얘기를 완성시키는 거리극 형태로 공연은 구성됩니다.
 
이동형 충전식 앰프하나정도로 음향을 처리하며 mp3로 연결해서 작업하며
빔프로젝터와 노트북을 이용해서 건물벽에 영상을 비추면서 공연하는 방식도
병행합니다.
조명은 골목곳곳의 자연광들을 사용하며
전기스탠드 호롱불 책상 의자 테이블등을 소품으로 제작 혹은 구입해서
연기자들이 갖고 이동하고 조립하면서 공연합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이 공연을 같이해줄 공연자를 찾는 일 입니다.
작품의 주제와 화두를 인식하고 관심과 사랑을 안고 스스로 찾아와
공연이라기보단 하나의 사색과 실천의 개념으로 이 작업에 동행해줄 사람이
같이했으면 좋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이름없는공연이 그런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이미 어려워진 요즘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최악의 경우
디페스타 측에서 연결 시켜주는 공연자들이 적거나 없을 경우는
출연자들이 각기 연습할 분량이 그리 많지 않으므로
일당이 책정된다면 시간제 자봉이나 아르바이트 등을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1895년가을의 기존,기본줄거리인 경복궁에서 연작에 참가했던 분들이
다시 다가와 같이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아니면 그간 이름없는공연에 같이 했던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다시 와서
우리가 그간 만들고 그렸던 아름다운 꿈을 이어 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있지만
일단은 모든 것이 없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그래도 누군가 다가와서 같은 화두를 안고 축제의 거리한쪽에서
남들과는 또다른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꿈을 같이 꾸어줄 사람을 기다리며
115년전 이 가을,이승을 살아갔던 아름다운 사람들의 얘기를
메아리도 없는 허공에 환시처럼 그려놓을 이 작업을 시작합니다..
2010년 9월 6일 월요일오후 11: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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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알버트,시계를 들고 상상의 빛을 타고 우주를 나는 꿈을 꾸는 소년
 
(1895년가을신영철구성대본)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년3월14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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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밀라노,삼촌에게 편지를 쓰는 소년)
카이사르 삼촌,
전기와 자기 그리고 에테르가 서로 어떤 관련을 갖고 있는지를
실험해보고 싶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맛도 냄새도 없지만
이 우주전체에 존재하며 파동을 전달해주는 물질.
호수에 돌을 던지면 만들어지는 물결 즉 파동.
하지만 호수에 물이 없다면 파동은 생기지 않는다
그 파동을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가 되는 물질 에테르의 실체는 어떤 것일까?
그릇에 모든 공기를 빼낸다하여도 빛은 여전히 그 그릇을
통과할 것이고 따라서 에테르도 거기 있어야 하는데...
(폴리 테크닉 입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취리히로 떠나며
그리고 입시에 실패하던 그 날도 15세의 그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빛이 광선을 타고 우주공간을 날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사물이 광선으로부터 어떻게 해서 보이게 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광선 위에 놓인 시계는
째깍거리며 움직이고 있겠지만
지구에서 그 시계를 보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시계바늘이 항상 같은 위치에 있을 것 같다.
  
시계를 손에 들고 상상의 빛을 타고
우주공간을 날아가고 있는 자신.
1895년 가을,
16살 알버트의 그 가을은 그렇게 아름다웠습니다..
2010년 9월 7일 화요일오전 8: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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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의 우리가 나눌 얘기[1895년가을] 연습 및 만들기,9월17일부터 시작합니다.
 
이름없는공연의 2010년가을프로젝트공연 [1895년가을]거리 및 극장공연이
참가자신청과 워크숍과 연습미팅을 병행하는 작업을 9월17일부터 시작합니다.
 
10월 대학로에서 열리는 디페스타에 10일간 20회공연과
11월1-7일 씨어터제로에서의 공연까지
총 27회의 공연을 이어갈 이 작업은
1895년가을을 살던 115년전 사람들의 삶의 단상을 모자이크하면서
역사와 시간 속을 살다간 사람들의 삶과 현재의 우리를 대비하면서
존재의 이유를 찾아가는 아름다운사람들의 자기정화를 향한 작업입니다.
 
남녀노소관계없이 개인 혹은 단체로 참가하실 수 있으며
참가하실 분은
다움까페 이름없는공연에 오셔서 참가의사 표시하고
자신이 연습미팅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스스로 정해서 연습미팅을 잡은 후
작,연출가와 만나 함께 작업하면서
그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작업 한 만큼의 비중으로 구성되는 공연작업 안에 참가하여
자신이 희망하는 공연에 전체 혹은 일부일자만 참여가능한
워크숍을 겸한 공연형태에 동행하시면 됩니다.
 
참가자와의 미팅 및 연습은 9월17일(금요일)부터 시작되며
연습공간은 홀대 및 합정역 근처에서 적절히 만나 작업합니다.
공연일은
대학로 공연이 10월12일부터 거리공연으로 시작되어
12,13,14,19,20,22,23,26,27,28일까지 거리극형식으로 10일간 20회연작으로 공연되며
29일 문래동에서 플라타너스 페스티벌로
11월1-7일 홍대 입구 씨어터 제로에서 극장공연으로 이어집니다.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줄거리와 개요, 참가자들과 같이 만들어가는 작업노트
그리고 작 연출자의 화두와 작업개요등은
카페 이름없는공연 안에 있는 1895년강르 작업게시판을 통해서 
그 배경에서 전개 작업진행과정까지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으므로
참가신청미팅을 통해 참가가 결정된 분은
온오프라인 작업을 통해서 자신이 희망하는 시간과 공연일정을 정해서
이 작업에 참가하실 수 있습니다.
 
100여년전 이 땅과 지구상 다른 곳에 살았던
가슴저린 사람들
100년후의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볼 때 무어라 해줄까 생각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살다간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며 보낼
이 가을의 슬픈 만남에 동행해볼 거리극과 극장공간극의
자유로운 동행자를 찾습니다.
 
참가신청미팅이나 연습미팅약속은 온라인을 통해서  24시간전에 반드시 
온라인으로 약속을 정한 후에 가져주시길 바라며
이 시기 이 땅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또 하나의 귀한 사랑을 나눌
아름다운사람들을 기다립니다.
2010년 9월 16일 목요일오후 2: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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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4평화,그 그리움으로 영종도 가을바다에서
 
영종도 왕산 을왕리..가을바다에 왔습니다.
축제를 마친 이들과 함께.
이제는 광대마져도 이벤트의 도구가 되어 버린 쓸쓸한 지구상에서
그래도 정치적 도구나 상업적 이벤트의 도구가 아닌
광대의 그 모습을 유지하며 세상한구석에서 아름다운 삶을 노래해주는 크라운들과 함께
세상 모든 아픔곁 상념의 일상에서 벗어나
따사로운 마음으로 보낸 며칠간의 휴식.
그리고 그들과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찾아온 가을바다.
아직은 따가운 햇살아래 사리,조금 따라 움직이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거닐어보는 모래밭.
강에 다녀온 새한 마리,갈매기들과 얘기 나누고
갯벌에 적어보는 파스 마크 그리고 평화,그 그리움으로
이제는 아껴 그리는 평화 그리기 298일째.
남은 날 68일.
2010년 9월 16일 목요일오후 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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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전주한옥마을영화제를 기획하며..1,
정재민님께 장소결정을 위한 제안드립니다.
 
전주한옥마을영화제는 양사재가 제안하고 기획해주는 영화제로서
지난3회동안 전주영화제와 전주소리축제기간에 전주한옥마을에서
자체기획하여 이틀간 매일저녁 한옥마을 실내 혹은 야외공간에서 진행된 영화제입니다.
영화제성격은 비상업 영화 즉 기획과 제작과정에서 유료상영계획을 갖고 만들지 않은
진정한 독립영화들 그리고 한옥마을을 소재나 주제로 잡은 영상작품들을
모아 상영해 보고자한 소박한 의도로 시작했고 진행된 영화제입니다.
하지만 홍보의 부족을 이유로 상영 희망작이나 출품작이 접수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이름없는공연의 영상작품들로 이틀간의 영화제상영시간을 메꾸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따라서 예기의 이름 없는 영화제같은 개인작품발표의 장으로
영화제는 구성되고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이 영화제가 어떠한 기획적인 의도를 확대시키거나
규모를 키우지 않는 한은 전주한옥마을에서 열리는 이름없는공연의 영상회나
예기연출의 다큐멘터리 영상작품전의 성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짙습니다.
 
한해를 쉬고 다시 시작되는 이번 가을 제4회 한옥마을영화제 역시
그 기획이나 규모면에서 다른 시도없이 전과같은 조촐한 방식으로 영화제가 제안되고
그래서 그 뜻을 받아들여 정해진 일자에 맞게
작지만 아름다운 그리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이틀간의 영화제를 준비해보려 합니다.
 
이 영화제가 3회를 거치면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장소적 문제였습니다.
양사재마당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상영한 두 번의 영화제나
차마당에서 상영한 세 번째 영화제모두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영업장소인 이유로
양사재마당에서의 상영회는 숙소에 머물 분들이 오시면 영화를 보던 사람들에게도
숙소에 머물 손님들에게도 서로 피해가 되는 면이 있었고
차마당에서의 영화제역시 영화상영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술을 마시는 분들이
한 테이블이라도 있을 경우 영화를 보시는 분들에게나 손님들에게 서로 방해가 되어서
영화제의 진행이 거북했습니다
그리고 3회때 한옥마을 골목길에서 가진 야외영상회의 경우는
길거리 한 편 벽에 영사막을 치고 길 건너편에 객석을 설치함으로서
영사막과 객석사이에 인도와 차도가 있어서 지나가는 행인들이나 자동차들이
수시로 영사막을 가로막게 되어서 행인들에게도 관객에게도 불편한 공간이 이뤄졌습니다.
 
따라서 한해를 쉬면서 공간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을 갖지 못한 채
다시 시작하는 이번 경우에는
최소한 영업공간에서의 상영은 피해야 한다는 조건과
거리공연의 경우는 상영막과 관객사이에 도로가 배치되지는 않을 수 있게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는 것이 우선과제입니다.
 
특설무대나 영사 공간을 만들어서 상영회를 가지는 방식은  원치 않는 영화제이지만
영화를 보고자하는 분들이 타인에게 방해를 주거나
거리를 지나가는 분들이나 가게나 숙소를 찾으신 분들이 영화를 보시는 분들에게 피해를 주는
불편함이 안생기는 공간을 찾아서 그곳에 영사막을 설치하고
관람을 하실 수 있는 객석을 갖출 수 있게 할 공간을 찾는 것이 이번 영화제기획의
첫 단계였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제를 제안하신 양사재에 부탁드립니다.
우선 한옥마을에 있는 영업 공간아닌 야외공간으로서
영사막과 객석을 독립되게 설치하여 그사이에 도로나 인도가 가로지르지 않게
배치할 수 있는 곳으로 몇 곳을 제안합니다.
보시고 이곳 중에서 한 곳을 먼저 골라서 장소허가를 맡아주시고
그곳에 영사막 설치 공간과 음향연결여건을 확보해 주십시오.
 
전동성당입구나 마당한편 ,경기전 정문 앞,
교동 아트 센타 마당, 공예품 전시관옆 휴식공간,
한방문화센터앞 공간,전통문화센터입구 쪽 마당
6곳을 제안드립니다.
이중 한 곳을 결정하고 섭외를 마쳐주시면
그 공간에 맞는 영상작품상영프로그램을 작성하여
영상회준비작업 및 기획을 진행시켜 나가겠습니다.
 
9월하순중으로 1차 전주에 내려가서 상의드리려 했으나
경비를 마련하지 못해서 온라인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빠른 진행부탁드립니다.
2010년 9월 18일 토요일오후 1: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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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 도입부 75세의 이하응(1820-1898) 첫번째장면
 
한가위 저녁 서울 어느 가옥마당에서
한 노인이 그를 찾아온 한 사람과 얘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너무도 오래 산 듯한 자신의 인생을 회한하며 쓸쓸히
내키지도 않는 약조를 합니다.
 
그의 독백같은 대화내용.
 
그만 되었소. 늙은 터에 그러지않아도 이제 정치는 사양할 참이었소.
그나 저나 이번에 삼포공사는 매우 솔직한 사람인
모양이구려. 이렇게 시답지 않은 약속으로 나를 끌어들이려 하다니
그 순진함만은 마음에 든다 그 말이오.
허락이고 자시고 할 게 어디 있겠소. 내가 반대한들 그대들이 이번
계획을 취소할 리 만무하지 않겠소.
솔직하지 않더라도 그만한 이치야 삼척동자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
도대체 정녕 노리는 것이 무엇이오?
무엇 때문에 또다시 이 늙은이를 앞장 세우려는 게요?
단순히 지금의 내각을 뒤엎자는 것이 목적이오?
그렇다면 정상공사는 어찌하여 이 나라 국정을 또 다시 중전의
손에 돌려주었더란 말이오? 당신네 나라는 공사가 바뀔 때 마다
정책을 바꾸는 전통이라도 지닌 게요?

내가 일찍이 그대들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으나 이미 욕심도
여한도 없는 나를 앞장 세우려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 아니요? 
말하시오. 그게 무엇인지를.
 
(그의 대답을 듣고)
그래.. 그만한 까닭이 없고서야 그 일에 나를 굳이 끌어들이려 하진 않았겠지.
그래 거사일은 잡힌게요?

한가지만 더 물어봅시다. 그대들은 중전을 치겠다고 하면 내가 그를 몹시 반기리라 생각하셨소?
괜찮소 얘기해보오. 강본 고문관과 나 사이 아니오?
언젠가 그대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입장을 떠나 나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소?
내가 내 며느리를 미워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 제안을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던 건가?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구려.
북쪽 곰에게 먹히느니 고양이에게 먹혀 달라는 얘기 아니오.
어쨌거나 중전이 그대들의 허를 찌르긴 찌른 모양이구먼.
설령 내가 거절한다 하여도 그대들은 나를 기여이 끌어들이고야 말 것 아니요.
강본 고문관
오늘이 바로 조선의 명절인 팔월 한가위요.
오늘아침 이 나라 백성들이라면 그가 비록 살인을 저지른 금수라 해도
모두가 제 조상들에게 햇곡식으로 지은 밥을 지어 올리고 차례도 드렸을 것이요.
2010년 9월 18일 토요일오후 10: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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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마을 영화제를 준비하며 정재민님께 .두 번째 문의 및 상의드립니다.
 
영상회 장소로서 양사재가  확정된 상태에서
추진되는 영상회라면
당일 영상회 시간동안 양사재의 숙박손님들과 영화관람객과의 사이에
부딪침이 일어나지 않게 공간을 조정하여야 하는게 급선무입니다.
 
그리고 영상회 역시 양사재 마당에서 상영할 경우는
영사기재와 음향기기의 배치 및 객석의 배치문제로 20인이상의 객석배치가 불가능합니다.
특히 양사재 마당은 상가가 아닌 주택가여서
영상이나 공연의 음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지금가지 가져본 영사재마당에서의 영화제는 그래서
전문적이고 본격적인 영화제의 모습을 갖출 수 없는 조건하에서 진행되었고
그래서 영화제의 발전적인 면모를 만들어낼 염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양사재 마당에서의 상영이라면
예전과 다름없는 형태의 비전문가적인 형태의 야외 영상회가 이뤄질 것입니다.
 
장소에 대한 생각을 더해보시고 양사재 주최이지만
한옥 마을 안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서 
야외 영상회가 가능한 제반 조건을 갖춘 곳을 찾아서 상영장소를 결정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음향은  사용하시던 카세트정도의 앰프로는 제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늘 최대음량을 올려놓고 상영했는데도
잘들리지 않는 음량이어서
최소한의 야외공연용 음향용량은 갖춘 앰프를 빌리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영화제의 장소가 결정되면
그곳에 맞는 프로그램을 정하고
최소한의 안내작업을 해야 합니다.
 
영화제의 시간장소 영화제상영작등이 소개된 홍보물이
한옥마을내에 최소한의 장소엔 1주일전엔 배포되어서
개인적으로 얘길 듣고 오는 사람만에 의존하기보단
한옥마을을 찾는 사람 중 관심 가질만한 사람이 
인맥이 없어도 찾아와 자유롭게 영상회를 만날 수 있는
길을 제공해야 될 것 같습니다.
 
당일 영화제장소에는 안내판과 상영시간표
그리고 상영작에 대한 안내물 들이 비치되어 있어야 하며
2명정도의 안내인을 배치 시켜서
영화제에 오시는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내는 할 수 있는
구조를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번 영화제에 혹시 다른 분들이 상영 신청을 하신 작품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작품인지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없을 경우는 이번 영화제상영작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전주시의 지원을 받는 영화제라면
그 신청시에 제출한 어느 정도의 영화제상영작에 대한 제한이나 조건도 있을 것으로 아는데
그 상영작의 프로그램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락주시면
제가 그 내용에 따라서
전체 혹은 부분적 참가작을 결정하겠습니다.
2010년 9월 19일 일요일오후 9: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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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결국 공연자 없이 1-2인극으로의 구성을 다시 생각하면서
 
대학로 거리 공연으로 20회의 공연 일정을 잡았지만
초청한 축제측에서 이 공연을 같이 준비할 거리극 워크숍공연자들을 20여명 모아 주겠다고 하던 제안은
아마도 이뤄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전 춘천마임 축제측에서 3회에 걸쳐서 매년 건널목공연을 기획하고 그 구성과 연출을 의뢰하면서
워크숍일정까지 준비하고 기다렸으나 결국 단 한번도 참가자를 모으지 못해서 실패했듯이
이번 대학로 디 페스타에서의 거리극에서도 의뢰 때의 마음과 말과는 달리
그 다가올 인원을 믿고 일정을 잡았지만 결국 이번에도 단 한 사람도 참가자의 제공없이 공연을
감당해야 할 지경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 앞에서 미리 최악의 경우를 예측하고
아무도 안온다는 전제하에서 20회의 거리극을 준비하는 것이 안전해 보입니다.
즉 20명 혹은 최소한 10명정도의 출연자들을 데리고 거리극을 구성하려던 원래의 의도는 희망사항으로 접고
개인적으로 함꼐할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과 같이 하는 공연으로 작업을 구성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같습니다.
 
1인5역정도의 캐스팅으로 10여명정도의 인물들이
공연에 동행하면서 만들 수 있는 여건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던 공연의 대본과 구성 그리고 형식적인 방식도
이제 포기하고 공연을 재구성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간 이름없는공연과 같이 했던 사람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같이하고 싶다던 사람들은 참 많은데
막상 이 가을의 작업안을 작성하고 연락을 취한 결과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기본틀이 되고 기초 대본이 되는 시해의 그 날과 을미왜란 평정창의
창의통문을 읽으며 와 1895년가을ㄹ 간이공연에 함께 했던 이들도
이 가을 다시 만나 같이 완성할 이 작업의 기회에 단 한 사람도 관심이 없습니다.
 
결국 15년을준비히고 지속해온 작품이면서도 혼자 혹은 한 두 사람 전혀 이 작업을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 만나 신작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 공연은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는 20회공연을 예플러 한 사람의 모노드라마로
동서양 수십명의 남녀노소인물을 형상화시키면서
작품을 완성해야 할 경우도 각오하고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이 작업에 참가를 신청하고 의사를 표시한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 작업의 전체 총 20회 공연에 같이 참여한다는 확정을 해준 것도 없고 하여
과연 그 사람들이 이 공연 안에 며칠이나 시간을 내어 공연에 참여해줄지가 우선 결정되어야
그가 나오는 날과 안나오는 날로 작품을 구분하여 전체적 구성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일단 현재로선 두 사람 역시 작품의 전체를 같이 준비하고 나누려는 분이기보다는
한두 부분 정도 자신의 역할만 가지며 동참해주려는 입장인 듯하여
작품의 주제나 흐름 그리고 전체적 구성을 같이 대화 나누며 작업할 기회는 가지지 못한 채
이 작업은 예플러의 1인극에 간혹 한두사람이 조연으로 출연하고
극의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이 까메오로서 인간 사물이 되는 방식정도의 도움을 모아서
작품이 완성될 것 같습니다.
 
절실한 가슴으로 인간이라는 미물로서의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며
가슴 시린 화두를 들고 115년전을살던 사람들을 만나며
2010년의 가을 안에서 1895년가을을 살아보며 이 한 계절의 작업을 통해서
그들의 말처럼 우리도 한 100년후의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자각하며 생존을 키워보고자했던 작업의 화두는
결국 같이 눈물지을 동지없이
낯선 거리에 의미 나눔이 없는 사람들 안에
낯선 메아리로 조각될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 속에서
어느 순간이라도 한번쯤 같이 존재했던 이들을 만나 그와 같이 추억처럼 나누고 싶었던 화두는
참담한 외톨이가 되어
안부조차 관심없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 있는 이들보단 죽은 이 들과의 만남을 행복해하며
보이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와 같이 시공을 걷고 쉬는 모습으로
이 작업은 구성을 시작합니다.
 
이승에서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지만 그래도 100년의 시공을 넘어
5차원공간에서 만나 바라보고 얘기나눌 누군가의 희망이
대학로 오늘을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축제의 거리 한편에서
스무번남짓 그들의 삶의 방식과는 너무다른 존재의 방식을 갖고 숨쉴 공연
[1895년가을]을 이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2010년 9월 19일 일요일오후 10: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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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달에 내리는 비]에서 가질 2010 12회 플라타너스 페스티벌 9월30일참가자마감
 
세상을 향해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대화를 청하는 작업을 하는 표현자들이
그들이 처음 그러한 작업을 하고자 하였던 그 마음과 제세로
아무런 구속이나 조건없이 독립예술의 형태로
스스로 준비하고 만들어서 다가와 함께 하는 만남.,
이름없는공연은 다양하고 수많은 축제와 페스티벌 곁에서
작가들이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준비하고 표현하는 이 형태를 페스티벌이라
여기며 매년 10월29일 축제를 갖습니다.
그리고 올해 2010년 그 열두 번째 축제를 맞아
오꾸다 마사시 님의 문래동 스튜디오를 새로운 모습으로 마련한 소극장
[달에 내리는 비]에서 플라타너스 페스티벌을 엽니다.
 
분야나 장르에 구속없이 어떠한 형태로든 작가적 방식으로 구성하고 표현하는 이들이
1년에 하루, 자신이 진정으로 나누고 싶은 작업을 준비해서
직접 모든 작업을 자기 스탭으로 구성하여 참여하는
플라타너스 페스티벌.
 
올해는 9월30일까지 참가신청을 받으며
장소적 제한으로 10평정도의 문래동 철공장골목 3층 한 예술가의 작업공간을
개조한 공연자에서 그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을 준비해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몇 분간 어떤 제목의 작품을 하시겠다고 신청하시면
선착순으로 시간을 배정받으셔서
축제의 프로그램이 구성됩니다.
 
참가하실 분은
참가자 이름,참가작품제목,공연소요시간(예;30분), 희망작업시간(예;오후4시-4시20분)
으로 3가지 항목을 적어서
9월30일자정까지
다움까페 이름 없는 공연 안에 있는 플라타너스 페스티벌 작업게시판
http://cafe446.daum.net/_c21_/bbs_list?grpid=1EU3f&fldid=60WQ
에 신청해주시거나
인터넷을 못하시는 분은 019-696-2550(예기 신영철)으로 문자 보내주시면
선착순으로 접수됩니다.(같은 시간대의 공연을 신청하신 분이 있으실 경우는 먼저
신청하신 분이 우선결정되고 후에 신청하신 분께 다시 시간조정과정을 통보해드립니다.)
 
플라타너스 페스티벌은 각 작품별로 각 작가가 자신이 마련한 작품을 가져와 선보이는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축제로서 이름없는공연은 축제의 일자와 공간 만을 제공하고
작품의 스텝이나 기재,혹은 참가경비나 작품료 등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http://cafe446.daum.net/_c21_/bbs_list?grpid=1EU3f&fldid=60WQ 에 오시면
그간의 플타너스페스티벌에 대한 자료글과 공연사진 및 영상집 등을 보시면서
이 축제에 대한 안내를 참고 하실 수 있으며
온라인으로 궁금증이나 문의사항 올려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각종 분야에서 세상을 향한 표현작업하시는 분들의
스스로 주인되어 마련하는 축제의 마음이 모여 열두 번째 맞이하는2010년
플라타너스 페스티벌이 세상에 대한 아름다운 제안이 되길 꿈꿔봅니다.
2010년 9월 21일 화요일오후 6:3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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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공연대본 1장-4장(도입부,여행자,대원군,아인슈타인 웰즈의 타임머신)
 
이 작업,오랫동안 사람을 찾아서 함께 하자고 오지 않는 사람을 핑계로 작업하지 못하고
15년을 기다려왔지만,115년 지나 2010년가을,
이제 더 이상 놓을 수 없고 지체할 수 없어 긴박하고도 절실한 가슴으로
함께 할 사람없이 홀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고 만날 수많은 사람들을 아무도 같이 준비하고 표현해주지 못하여도
그리하여 그들의 고귀한 영혼의 호흡이 115년후 이승에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여도
아린 가슴으로 죽음을 기다리며 그 세기말을 살던 사람의 가슴들 누군가와
같은 마음,같은 심정으로 자신을 정진하며 죄스럽고 용서비는 가슴으로
인간의 세상에서 세상에 주어진 사람의 책무를 완성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삶에 여정,
그 먼지같은 원자로서의 몫이라도 해내고 가야 할 본연의 자성으로
아무도 출연해주지 않을 공연연출 대본을 씁니다..
정리된 인물과 이 가을 그를 그리며 만나게 되는 장면부터 형상화시켜 나가게 될 것이므로
대본의 각장과 공연의 순서 그리고 완성본의 장면순서는 다를 것이며
에피소드의 첨삭은 공연을 거듭하면서 다시 이뤄져서
완성본은 공연이 모두 끝나고 다시 뜻모를 공연을 준비할 때에야 그 모습을 갖출 것입니다.
 
1장
프롤로그
재의,1895년가을을 거니는 인물,골목길어귀,호롱불아래서 털실로 뜨게질을 시작합니다.
 
1895년 가을은 명성황후시해와 을미왜란 평정창의가 있던 가을입니다.
동학혁명의 불꽃이 쓰러져간 1년후의 가을이고
사람들은 밀려오는 새로운 문물과 정신세계의 교류에 귀기울이며 새로이 다가올 세상을 기다리며 살았을 가을입니다..
그로부터 115년이 흘러 돌아봅니다.
지금 우리는 그들이 그리워한 1세기후,그들의 희망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는가 죄스럽습니다.
1895년 겨울이후를 미지의 세상으로 기다리며 살고 있던 그 날의 사람들은
100년후의 우리들보다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 고왔던 사람들의 꿈과 영혼을 만나며 아름다운 세상으로 회귀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꿈과 희망에 답하지 못하고
이미 퇴화해버린 100년이후의 인간으로서
다시 100년후를 살아갈 사람들 앞에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100년전의 사람들처럼 만이라도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100년후의 사람들에게
그때 그 사람들은 아름다웠다고 얘기들을 수 있을까?
그 어느 해보다 인간이어서 서글픈 이 가을, 이 별,이 한구석에서
100년간의 퇴화를 고백하며 죄스러움으로 다가가
우리를 그리워했을 그 가을의 님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안겨서 포근히 말 들어봅니다.
"100년후의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얘기할까?"
100년전 사람들에 비해 너무나 척박해져버린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서글퍼 안타까이 눈물짓지는 않을까?"
고맙게도 이렇게 말씀지시는 분들.
우리도 그 100년이 지난 후 이 가을 이거리에서
그들을 만나고 바라보며 너무도 교만하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면서.. 
 
2장
1895년10월3일 처소로 찾아온 일본인 강본 서기관을 맞은 75세의 이하응 
그의 독백같은 대화내용.
 
한가위 저녁 서울 어느 가옥마당에서
한 노인이 그를 찾아온 한 사람과 얘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너무도 오래 산 듯한 자신의 인생을 회한하며 쓸쓸히
내키지도 않는 약조를 합니다.
 
 
그만 되었소. 늙은 터에 그러지않아도 이제 정치는 사양할 참이었소.
그나 저나 이번에 삼포공사는 매우 솔직한 사람인
모양이구려. 이렇게 시답지 않은 약속으로 나를 끌어들이려 하다니
그 순진함만은 마음에 든다 그 말이오.
허락이고 자시고 할 게 어디 있겠소. 내가 반대한들 그대들이 이번
계획을 취소할 리 만무하지 않겠소.
솔직하지 않더라도 그만한 이치야 삼척동자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
도대체 정녕 노리는 것이 무엇이오?
무엇 때문에 또다시 이 늙은이를 앞장 세우려는 게요?
단순히 지금의 내각을 뒤엎자는 것이 목적이오?
그렇다면 정상공사는 어찌하여 이 나라 국정을 또 다시 중전의
손에 돌려주었더란 말이오? 당신네 나라는 공사가 바뀔 때 마다
정책을 바꾸는 전통이라도 지닌 게요?

내가 일찍이 그대들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으나 이미 욕심도
여한도 없는 나를 앞장 세우려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 아니요? 
말하시오. 그게 무엇인지를.
 
(그의 대답을 듣고)
그래.. 그만한 까닭이 없고서야 그 일에 나를 굳이 끌어들이려 하진 않았겠지.
그래 거사일은 잡힌게요?

한가지만 더 물어봅시다. 그대들은 중전을 치겠다고 하면 내가 그를 몹시 반기리라 생각하셨소?
괜찮소 얘기해보오. 강본 고문관과 나 사이 아니오?
언젠가 그대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입장을 떠나 나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소?
내가 내 며느리를 미워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 제안을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던 건가?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구려.
북쪽 곰에게 먹히느니 고양이에게 먹혀 달라는 얘기 아니오.
어쨌거나 중전이 그대들의 허를 찌르긴 찌른 모양이구먼.
설령 내가 거절한다 하여도 그대들은 나를 기여이 끌어들이고야 말 것 아니요.
강본 고문관
오늘이 바로 조선의 명절인 팔월 한가위요.
오늘아침 이 나라 백성들이라면 그가 비록 살인을 저지른 금수라 해도
모두가 제 조상들에게 햇곡식으로 지은 밥을 지어 올리고 차례도 드렸을 것이요.
 
3장
취리히에서의 폴리 테크닉 시험에 실패하고 돌아온 그 해,
하지만 수학과 물리점수에 감탄한 감독관들은 다음해의 입학을 약속해주었습니다.
소년은 그 즈음 갈릴레이와 뉴턴의 생각을 이어서
이 세상 아무도 찾지 못했던 새로운 이치에 대한 생각에 잠겨있었습니다.
 
(15세의 아인슈타인 도시의 한구석에서 편지를 쓴다)
 
"카이사르 삼촌,제가 드리고 싶은 제안하나가 있어요.
전기와 자기 그리고 에테르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실험해 보고 싶어요.
제가 손목에 시게를 차고 빛의 광선을 타고 우주공간을 날아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사물들은 시간의 광선을 통과하면서 어떤 현상을 보일까요?
내 손목에 채워져 광선 안에 놓인 시계는 여느 때처럼 똑닥 거리며 가겠지만
지구에서 그 시계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 시간이 흐르지 않거나 멈춰진걸로 보일겁니다.
시계바늘이 그 먼 거리를 여행하는 동안에도 같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모든 운동은 상대적이며, 모든 등속 운동계는 같은 조건에서 물리 법칙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운동계에서는 외부에 비해 시간이 느리게 흐를 것이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물체는 진행 방향으로 길이가 줄어들 것 같아요..
빠른 속도로 달리는 물체는 질량이 늘어나겠지요..
어떠한 질량을 가진 물질도 빛의 속도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아요."
 
4장
H.g 웰즈(Herbert George Wells)의 타임머신을 읽고 있는 사람.
 
이 책 읽어보셨어요.지난주에 새로 나온 소설책인데 놀랍고 재미있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고 있어요
H.g 웰즈란 작가가 쓴 단편집인데
작가자신이 다녀온 얘길 들려주는 형태로 적혀진
80만년후의 미래를 다녀온 시간여행자의 얘기.
타임머신이란 이름의 기계를 타고 시간여행을 한다네요.
지구의 미래모습을 보고 싶어서 떠났지만 그가 보게 된 지구의 미래는 그리 밝지 못해요.
여기 읽어볼께요.
 
별을 보고 있자니 모든 근심과 세상의 걱정거리가 사라지는 듯 했다.
헤아리기 어려운 엄청난 거리와 미지의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별들의 운동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지구의 극이 그려내는 세차주기도 생각해보았다.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지나온 동안 그 조용한 회전이 이루어지는 동안
모든 전통,복잡한 사회조직,국가,언어,문학,인간의 야망,그리고 인류에 대한 기억 마져 지상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여기 작가가 그린 미래의 세상에서 만나는 몰록과 엘로이 두 유형의 인간.
마치 지금 우리의 세상을 비유하는 것같아요.
'몰록'은 산업사회에서 '생산노동자'로서 무의식적으로 엘로이에게 옷과 상품을 '바치고' 있거든요.
그들은 생산을 위해 지하로 들어 갈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점점 변한 인간노동자가 몰록이지요.
그런데 지하에는 식료가 없어요.
식료품을 하나 둘  소비하던 그들은 끝내는 엘로이를 잡아먹고 연명하는 괴물이 되고 말아요..
그리고 또 하나 집단인 엘로이는 산업사회에서 상류층 소비자집단이죠.
지상에서 거리낌 없는 생활을 누리고. 그들에겐 적도 없고 생산할 이유도 없어서
노동에 종사할 이유도 없지요.
그래서 그들의 키는 작아지고 하늘거리는 손발로 무력하게 지상에서 살아가는데
결국은 몰록의 고깃덩이가 되고 말지요.
그런데 정말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이런 기계,작가는 어떻게 생각해냈을까요?
타임머신이란 이름도 재미있고.
(책을 덮으며 생각에 잠긴다)
 
2010년 9월 22일 수요일오후 5: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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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공연대본 5장
 
5장 노래
브람스의 네개의 엄숙한 노래1악장 가사 전도서3장 18절-22장
(브람스의 네 개의 엄숙한 노래는 평생을 사랑했던 이에게 드린 그의 마지막 가곡으로
1895년가을 부인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돌아온 후 그의 병석소식을 들으며 쓰여졌습니다.
이 작업 안에서 배경 혹은 연주곡으로 사용됩니다)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2010년 9월 23일 목요일오전 9: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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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공연대본 6장-9장(브람스,민영환,명성황후,여행자,헤르만헤세)
 
6장
1895년10월3일 브람스 ,프랑크프루트에서의 마지막 만남이 된 클라라와의 시간.
(배경음악-브람스 현악6중주1번 2악장-부제브람스의 눈물)
 
1895년 10월3일
초로의 한 작곡가가 마이닝엔에서 빈으로 돌아오는 길에
프랑크프루트에있는 옛 스승의 집에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될 거란 것도 모른 채
쓸쓸하면서도 따스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제는 일흔일곱살의 할머니가 된 스승의 부인 앞에
자신 또한 예순셋 초로의 모습으로.
거실에 들어설 적에 부인은
남편의 제자이자 일생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던 그의 최근작곡한 소품
인터메초 e단조 op.118 nr.6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삶의 희망이 되어주던 벗들도 하나 둘 떠나고 3년전 마지막혈족이던 누이 엘리제마져 세상을 떠난 후
다시 지난해엔 헤르미네마져 떠나보낸 더 이상 아무런 음률도 만들어내 못할 것같아 절필한 작곡가.
그리고 그 삶의 한가운데 이모든 슬픔과 고독 이겨낼 수 있게 의미가 되어주었던 분.
요하네스는 그렇게 지나간 시간들을 아련히 회상하며 쓸쓸히 부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피아노건반 위에 놓인 부인의 손을 살며시 잡아드렸습니다.
이제는 어느덧 쭈글쭈글 해진 부인의 손,
연주를 멈추고 그에게 답례해주는 미소.
그리고 두 노인 사이에 흐르는 그 고귀하고도 오래된 정감곁에서
부인의 막내딸인 오이게니(44세)가 지난날의 흔적을 회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10월이 시작되던 그 가을의 어느날,
설마 그것이 1년의 간격을 두고 다시 만나게 될 그리움 앞에 주어진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이었음도 모르고.
 
7장
중궁전 앞 뜰
민영환 중전에게 대원군의 편지를 전하고 그것을 받아든 명성황후가 의로움으로
피하지 않고 당당히 죽음을 맞을 것을 얘기한다.
 
민영환-
먼저 이걸 보시옵소서. 대원군께옵서 진용조카더러 제게 친히 전하라 하였다 하옵니다.
명성황후-
이게 무슨 문서란 말이냐.
상궁-
중전마마, 정녕 모르고 계시옵니까? 며칠 전부터 저잣 거리에 나돌던 불순한 풍문이 사실인가 보옵니다.
이 문서는 궁내부 고문관으로 있던 오카모토란 자가 오늘 해질녘
공덕리의 아소정으로 가져왔다하옵니다.
명성황후-
모를 일이구나. 그런데 대원군 나리께서는 어찌하여 이같은 괴문서를 내게 보내셨더란 말이냐.
민영환-
중전마마, 대원이 대감이 저를 보내신 뜻은 사태가 이러하니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라심일 것이옵니다.
명성황후-
그러하면 이 문서만으로 아무런 부연도 없이 그대를 내게 보내셨더란 말이오
민영환-
그것을 주시면서 중전마마께옵서는 그 문서만으로도 충분히 대처하시리라는 말씀뿐이었습니다.
상궁-
더 이상 무얼 의심하십니까. 중전마마. 대원군께옵서는 중전마마의 목숨을 구하고자 함이 명백하지 아니하옵니까.
명성황후-
대원군께서 내 목숨을?
민영환-
그러하옵니다, 누가 뭐라 하여도 중전마마는 대원군나리의 법통을 이은 며느리시옵니다.
당신께서는 차마 며느리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 것이옵니다. 마마
명성황후-
그렇다면 대원군께서도 이제 몸도 마음도 늙으신 모양이구려.
그러시겠지요..
아버님은 이제 그만 이 쯤에서 사가들의 붓 끝으로 당신을 숨기고 싶으시겠지요.
들으시오. 저잣 거리의 풍문이 말 그대로 바람같이 스치는 소문이기만을 바랬었소.
허나 지금에 이르러 일본인들의 불궤지심이 사실인들 어찌 하리요.
사람도 제 각각이듯이 나라 또한 저마다 내세우는 것이 다를 것이오.
하물며 그들이 어떤 자들이오 여러 번 겪어보지 않았소.
그들이 칼을 디밀기로 기왕에 마음먹었다면 땅끝까지라도 쫓아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 들 것이오.
이 나라는 힘으로야 당장에 그들과 맞설 수 없소.
사태가 그러한 지경인데 나라고 하여 언제까지 물러서기만 하리요.
그래서는 이 나라 국모의 체통이 말이 아니지요.
이 나라의 무력 이상의 더 큰 것이 있음을 그들이 어찌 알겠소?
설령 죽음에 이른다 하여도 난 두렵지 아니하리다. 맞설 것이오.
나는 그 자들이 내새우는 칼날 앞에 조선의 국모로 의연하게 맞서리라.
상궁-
중전마마 아니 되옵니다.
민영환-
중전마마 고정하시옵소서
명성황후-
아버님께도 며느리의 이런 뜻을 그대로 전해 주시오.
그렇게 말씀 올리면 아버님께서도 아마 며느리의 뜻을 해아리시리라 믿으오.
나는 이제 달리 할 일이 남았소 그만들 물러가시오
민영환-
아니 되옵니다.중전마마 마마께서 살고 있고서야 나라가 있습니다.
그렇게 짓밟혀서는 나라의 체모는 어찌 되오며 국모 잃은 만백성의 원성은 어찌 하오리까.
명성황후-
계정이 정녕 이리도 못난 위인이던가.  지금 와 한갓 목숨을 구걸코자
이리 숨고 저리 발버둥친다 하면 저들에게 이 나라의 나약함과 비열함만 구경시키는 것 아니더냐.
때로는 살아있음보다도 죽음이 더 값진 것임을 어찌하여 모른단 말이더냐.
보아라 나는 그 자들에게 백년을 씻어도 지워지지 않을 부끄러움으로 살아남을 것이니라.
 
8장
다시 여행자
백년을 씻어도 지워지지 않을 부끄러움,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의로움과 당당함으로 이겨내던 또 하나의 화두
백년이 지나도 부끄럽지 않을 삶.
존재의 이유에 화답하며 살아가는가 스스로 질문해보는 사람들.
그리고 힘겹고 어려워도 그렇게 행하며 욕심과 이기를 버리고
우주의 바른 요소가 되어 익히고 지키며 살아가고픈 어진노력.
그리고 그리하여 그들이 그 존재의 목적을 이유로 꾸는 꿈.
 
9장
뤼빙겐의 한서점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18세소년 헤르만헤세,
(빈서점을 지키며 책을 정리하고 시를 적으며 지내는 어느 가을날, 시-낙엽)
부모님이 강제로 보낸 기숙학교에서 뛰쳐나온 소년에게
선생은 그 아이가 정신병자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맹신도였던 부모는 그 말을 듣고 소년의 몸에 마귀가 들어있다고 마귀추방의식을 가 봄윱求?/font>
소년은 자살을 기도했고 다시 정신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마침내
학업을 그만두고 시계 공장 견습공으로서 가져본 육체노동,그리고 책방에 점원으로 일하게된 소년은
서점에서 책을 정리하면서 그리고 대학강의실을 드나들면서 조금씩 학습의 즐거움을 알아갔습니다.
 
이제야 편안과 활기를 다시 찾았으며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된 것 같아.
공포와 증오와 자살에 대한생각으로 가득찼던 암울한 시간이 지난 것 같아.
내가 커서 시인이 되던가 아니면 아무 것도 될 수 없다면 그것은 열세 살 때 결정된 것일 꺼야..
.....
나는 저 밑에 내려다보이는 세상을 보며 생각한다
누가 내게서 너를  훔쳐가도 좋다고.
나는 이세상에서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세상에 잘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세상도 나의 혐오에 충분히 응수하고 앙갚음하였다.
여태 살아있으니 세상과 싸우면서도 견디어 온 셈이다
...........
꽃마다 열매가 되려 하고
아침은 저녁이 되려 하나니
변화하고 없어지는 것 말고는
달리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여름까지도
가을이 오자 조락을 느끼려 함에
나뭇잎이여 바람이 너를 유혹하여도
끈기있게 그대로 달려있거라
네 유희를 계속하며 거역하지 말고
가만히 그대로 내 버려 둘지니
바람이 굴러가게 하여라
 
2010년 9월 23일 목요일오전 10:47:22
..................
[1895년가을]공연대본 10장-13장(칼릴지브란,드보르작,서유견문,을미왜란)
 
10장
보스턴 빈민가를 살아가는  12살의 칼릴지브란.
보스턴 빈민가에 이민온 오토만 시리아 출신의 열두살 소년
몰락한 아버지와 헤어져
어머니와 4남매가 도망치듯 찾아온 뉴욕.
보스턴의 사우스 엔드에 정착한 가족  
어머니는 재봉사일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레이스 장식이 달린 옷과 아마포로 만든 옷을 갖고 이 집 저 집을 행상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가족에게 돌아오시는 어머니..
오토만 시리아,북부레바논의 산악지대 베사리 마을.
삼나무 숲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사색과 명상 속에서 보낸 소년.
밤색 머리와 높은 이마, 꿈꾸는 듯한 눈을 지닌 소년은
친구들에게 늘 말하곤 했습니다..
'나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꿈꾸지 않아.'
고향을 떠나 온 신세계 미국에서의 삶..
보스턴의 빈민굴에서의 이방인의 삶이지만
소년은 오늘도 가슴속 깊이부터 들려오는 영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던 그에게도 공부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민자를 위한 영어학습 과정과 함께 정착촌 주변 예술학교에 등록한 뉴욕에서의 첫 가을.
선생님은 미술에 특히 재질을 보이는 그에게 출판사를 하시는 화가겸 사진작가
한 분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프레드 홀랜드 데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그 분.
지브란의 그림과 글을 보면서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책의 삽화도 그리고 디자인 일도 해보자고 제안하며
소년의 창작작업에 후원자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11장
프라하로 돌아와 그려보는 뉴욕에서의 생활,54세의 드보르 작이 신세계로부터
(드보르작 교향곡9번 2악장 )

그리고 이 가을 신대륙 미국을 찾아온 보헤미안.
지난2년 동안의 낯설고도 즐거웠던 아메리카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다시 고국 체코로 돌아와 회상해보는 뉴욕. 
레녹스와 애스터가 기증한 장서들과 틸덴 재단(Tilden Foundation)의
신탁금을 기반으로 설립되는 뉴욕공공도서관과 그 주변길. 
모닝 사이드 언덕의 클래어몽 애비뉴에 맨허튼음대를 오가며 바라보는 아메리카.
사람과 마차로 가득찬 길 한 가운데 서서
신세게를 꿈꾸는 이 나라의 미래를 예측해 보던 지난 봄..
내쇼널음악원의 한 흑인학생으로부터 발견하게 되었던 흑인영가.
그리고 음악원원장실로 불러서 다시 듣고 또 들어보던 젊은 흑인 가수 헨리의 노래.
지극히 아름답고 변화무쌍한 테마를 가진 흙의 산물.
이것이 미국의 민요이며 목화밭을 노래하던 노예들의 영가 속에
위대한 음악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얘기하던 자신..
그리고 또 하나의 이방인 인 자신이 뉴욕을 거닐며
쉰을 넘은 보헤미안 음악인이 신세계로부터 그리는 망향의 노래.
잉글리시 호른의 애수어린 선율로 소박하게 시작하는 아홉번째 교향곡 2악장 라르고.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흑인노예들과 이 땅의 주인이었을 인디언까지.
자유와 민주를 갈망하며 찾아온 이 신셰계에서 이룩한 아메리카라는 나라.
이들은 이곳에서 과연 그들이 지향하는 아름답고 민주적인 신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리하여 100년이 지나고 또 100년이 지나도 제국이 아닌
평화를 만들어줄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뛰놀던 아름다운  보헤미아의 그 평화를 꿈속에 그리며
신세계로부터 적어보는 음률..
(1895년가을의 뉴욕거리모습 그리고 그곳에서 꿈을 그리며 사는 다인종의 사람들 삶의 모습이
교향악9번 꿈속의 고향을 배경으로...)
 
 
12장
(여행자 지난여름 일본에서 발행된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구해서 몰래 읽고 있는 사람).
나라라고 하는 것은 한 겨레의 국민들이 일정한 토지를 차지하여 살면서
언어, 법률, 정치, 습속과 역사를 같이 하며,
또 같은 임금과 정부를 섬김으로써 이해 관계와 세상을 잘 다스림과
세상이 어지러움을 함께 하는 공동체이다. 토지가 넓은지 좁은지,
그리고 국민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서 산천을 차지하면서
작은 나라나 큰 나라나 별이나 바둑알처럼 흩어져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되는 원리에 따라서 생각해 보면 피차의 구별이 없지만
나라가 나라되는 큰 도리로 따져 보면 저 나라와 우리 나라의 구별이 있다.
그러니 나라는 사람들의 회합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나라가 세워짐에 따라서 터전을 이룩하는 것이다.
나라가 비록 사람을 따라서 그 이름을 얻는다고 하지만,
사람도 나라가 없으면 터전을 얻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름도 없게 될 것이다.
이제 그 이치를 밝히기 위해 비유를 들어 보자.
사람이 비록 가족의 성씨와 항렬자를 가지고 있지만,
이는 자기 한 몸의 사사로운 이름에 지나지 않고 어디서나 두루 통하는 공적인 이름은 아니다.
가령, 우리 조선 사람으로 말한다면 '조선인'이라는 세 글자가 가장 중대하고 공적인 것이다.
 
13장
10월8일 아침 경복궁 향원정 한쪽에서 만난 울고 있는 궁녀.
 먼동이 트기도 전에 일본인 들은 이곳 녹원 숲으로 황후의 시신을 갖고 와서
석유를 부은 후 화장해 버렸지요.
그리곤 그날 아침 한성신보 등을 통해서 명성황후가 난리를 맞아 대궐 안의 혼란 속에서
고종황제를 버려둔 채, 자신의 목숨만을 연명키 위해 도망을 갔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했지요.
미우라는 사건을 확인한 후 영사관으로 돌아가 본국에 보고 하며
"드디어 조선은 일본의 것이 되었다. 이제야 안심이다"고 말했다합니다.
시해의 그날 일인들은 미리 준비했던 대로 친일내각인 제4차 김홍집 내각을 구성 했구요.
재무대신 심상헌은 내각에서 나와 행방을 감추었고, 내무대신 박정양은
서명하지 않고 사직해 버렸습니다.
김홍집 내각은 명성황후가 고종황제를 버리고 궁을 탈출했다는
이유로 3일 후인 오늘 아침 명성황후를 폐위하고 서인으로 한다는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황후는 두번 시해 당하신 거지요.
김홍집 내각은 이 사실을 서울주재 각 외교공관에 통지하였습니다.
명성황후폐위칙령은 고종황제가 서명도 하지 않은 날조된 것이지요.
각국 외교관들은 이 칙령이 고종황제로 나온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즉각 반박했지만
일본공사 미우라만은 그 내용을 인정한다고 공식견해를 밝혔습니다.
여기 황후의 시신이 한줌의 재가 되어 제 앞에 있습니다.
조선을 지킨 마지막 등불..
1895년 10월 8일 음력으로는 8월 스무날 동트기 전
건청궁,옥호루의 작은 골방에서 황후는 세자의 이름을 부르시며 일본 낭인들의 손에
무참히 시해 당하셨습니다.
(울고 있는 궁녀 한줌의 재를 꺼내 쥐어준다).
기억하세요. 그 분의 뜻을..
황후께선 의연히 말씀하셨지요.
저들이 정녕 이 한 목숨을 원한다면 기꺼이 죽어 내 백성들의 가슴에 피맺힌 영혼을 묻으리라.
그리하여 이내는 차라리 저들 간교한 무리들이 백년을 씻어도 지워지지 않을
부끄러움으로 살아남으리라.
2010년 9월 24일 금요일오후 8:58:36
 
...............
[1895년가을]공연대본 14장-16장
(로뎅,칼레의 시민들,고골리,이제르길리 노파,단코 임최수와 중형)
14장
(55세의 오퀴스트로뎅. 1895년가을 칼레 시청 앞에 세워진 칼레의시민 조각상 앞에 어색하고 슬픈 가슴으로
작품을 지켜보는 그 )
1337년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영국군이 프랑스 북부 도시인 칼레를 공격했을 때 얘기입니다.
수 개월간의 결사항전으로 버텼으나 식량고갈과 영국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마침내 항복을 선언해야 했던 도시 칼레.
에드워드3세는 마지막 운명 앞의 칼레시민들에게 공포합니다.
칼레가 여섯명의 대표를 골라서 내일아침가지 내게 넘긴다면 그들의 처형으로서
도시전체의 학살과 파괴만은 면하게 해주겠다"고.
이 제안을 받은 칼레의 지도층사람들은 서로 죽음을 택하겠다고 앞 다투어 나섰습니다.
칼레최고의 부호였던 유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먼저 그 희생을 자원했고 이어서 지도층에 있던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동시에 나서는 바람에 자원자가 7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결국 다음날 아침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은 빠지기로 합의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에드워드의 조건대로 스스로 목에 밧줄을 걸고 맨발에 홑옷 만을 걸치고
성을 나서서  영국군 진영의 교수대 앞으로 다가가는 사람들.  
여섯 명이 도착했고
일곱번째 사람은 오지 않았습니다.
희생자로 제일 먼저 자원했던 유스타슈 드 생 피에르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 주어진 소식은
자원자들이 혹시라도 자신보다 일찍 오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먼저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나머지 여섯사람은 당당한 모습으로 영국군 진영으로 나아갔고
전후 사정을 전해 들은 에드워드 3세는
이들의 용기에 감복해 이들 모두 그냥 살려주었답니다.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던 한 조각가가
이들 용감한 시민 대표를 기념하는 조형물을 세운다는 얘길 듣고 자신의 작업장으로
칼레시장을 초청해서 10년을 홀로 준비해왔던 이들의 조각상을 자신이 만들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영웅적인 선조들을 아름답게 미화하여 굳센 영웅상으로 표현하기를 원하는 칼레시민들
그래서 주연 격인 유스타슈 드 생 피에르를 중앙에 세우고 선동하는 듯한 모습을 하게 하고,
나머지는 피라미드 형식으로 나열하는 고전적인 조각상을 원했지만..
그러나 조각가가 이 가을 완성한 작품은 사람들이 기대한 것과 같은
애국적 영웅의 늠름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칼레시에 대한 희생적인 정서와 죽음에 대한 공포와의 딜레마에 고민하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고독하게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섯사람들.
초인적인 영웅이라기보다는 앙상한 몸매와 남루한 옷차림,
오랜 전쟁의 기근에 찌든 피로감.패배의 비애,그리고 적의 손에 넘겨질 도시에 대한
불안과 죽음에 대한 고뇌를 모두 나타내고 싶어한 그.
칼레시청 앞에 여섯개의 청동인형으로 만들어 세워진 칼레의 시민들.
각각 다른 자세를 취하여 시청 앞 광장에 세워진 아름다운 사람들.
외형상으론 따로서있지만 심리적으로 전체적으로 일체화하고 있는 그들.
558년 지나 이 도시에 세워진 지도자들의 아름다운 희생과
고귀한 사랑이 만들어낸 용기.
하지만 시민들과 같은 높이로 시민들 속에 그대로 서있게 하고 싶었던 그의 바램은  이뤄지지 못하고
5피드 높이에 받침대위에 우뚝 세워진 청동상,그리고 쇠난간으로 둘레를 싸서 접근조차 힘들게
세워진 조각상.
그들의 마음과는 다르게 시민들과의 함께 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다시 영웅이 되어 고립되어 제막되어버린
시청 앞 광장의 그 작품을 보며 다시 쓸쓸해진 도시와 인간에 대한 비애.
   
15장
(27살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막심 고리끼)가 발표한 단편 이제르길리 노파를 읽는 사람.
그리고 단편 속 노파이자 알렉세이의 할머니가  들려주는 얘기)
(책읽는 이 혹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이)
희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볼가강 연안 니즈니 노브고르드에서 태어났다는 그.
스물일곱의 그가 아린 가슴으로 써낸 책한 권을 읽고 있습니다.
100년전쟁속 프랑스 칼레의 시민들처럼.
암울한 현실을 바라보며 인류의 해방을 선도할 영웅을 그려보던 이..
내가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뱃사리아의 아르케만 부근 해안에서 였어요.
어느날 저녁 함께 일하던 한때의 몰다비아인들이 해변으로 몰려가 버린 뒤,
이제르길리 노파와 나는 포도넝쿨의 짚은 그늘 아래누워
바닷 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녹아 드는 것을 바라보면서요.
어두운 숲속으로, 쫓겨난 동족을 이끌고 걸어가는 단꼬의 얘기.
가고 가도 점점 숲이 깊어지고 사람들은 단꼬를 원망하고 앞날에 대해 절망했지요
(책을 읽음 혹은 할머니의 목소리)
숲은 여전히 음울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천둥은 더욱 사납게 울부짖었으며
비가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지.
"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단코는 천둥처럼 부르짖었어.그리고는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찢어
그 속에서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 머리위로 높이 치켜들었지.
그것은 태양처럼,아니 태양보다 더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어.
사람들을 향한 이 위대한 사랑의 횃불 앞에서 숲은 고요해졌지.
그 빛에 쫒겨 산산이 부서진 어둠은 늪의 석은 아가리 속으로
흔적도 없이 스며들었고,놀란 사람들은 화석처럼  그 자리에 못박혀 버렸어.
"자 갑시다"
단코는 소리치며 타오르는 심장을 높이 쳐들고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홀린 듯 그 뒤를 따라 돌진했지.
숲이 다시금 수상하게 술렁대기 시작했지만
그 소리는 달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파묻혀 버렸어.
불타는 심장의 기적에 압도된 사람들은 빠르고 용감하게 앞을 향해 달려갔지.
도중에도 계속해서 쓰러지는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그들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거나 누구를 원망하는 일없이
기꺼이 죽어갔어.
단코는 의연히 앞장서서 달렸고
그의 심장은 한결같이 눈부시게 타올랐지.
돌연,그들의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숲이 활짝 열렸어.
열린 숲은 울창한 모습 그대로 물러나 멀어지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찬란한 햇볕과 비에 씻긴 청신한 대기의 바다로 빠져들었지.
뇌우는 아직도
그들 뒤쪽의 숲에서 포효하고 있었으나
이곳은 태양이 빛나고 초원이 숨쉬며
풀잎은 빗방울을 머금어 반짝이고
강물은 황금빛으로 구비치고 있었어.
석양을 받아 붉게 물든 강물은
마치 단코의 가슴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선혈처럼 보였지.
용사 단코는 드넓게 펼쳐진 자유의 대지에 시선을 던지며 의연히 미소 지었어.
그리고는 쓰러져 죽어갔지.
기쁨과 희망에 들뜬 사람들은 누구하나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고
주검옆에서 그의 용감한 심장이
아직도 붉게 타오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어.
오직 그중의 신중한 한 사람만이 이런 사실을 알아차렸으나
웬지 두려운 마음에 그 심장을 발로 짓밟아버렸지.
그러자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꽃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갔어.
바로 그것이 소나기가 오기 직전에 나타나는 초원의 푸른 불꽃들이지.
(다시 여행자, 책읽는 이)
노파가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초원은 괴괴한 정적에 잠겨있었어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이 심장을 불사른 용사 단코의 위대한 사랑에
대지도 감동한 것 같았지요.
이제 노파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어요.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 늙은 여인의 기억 속에 아직도 얼마나 많은 추억들이 깃들어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한 나는 불타는 단코의 위대한 심장과
이토록 아름답고 힘찬 전설을 창조해낸 인간의 상상력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든 노파의 누더기를 풀어헤치고
메마른 가슴을 드러냈어요.
나는 그녀의 늙은 몸을 살며시 덮어준 뒤,
그 옆의 대지에 몸을 눕혔답니다.
초원은 고요하고 어두웠어요
하늘에는 먹구름이 느릿느릿 쓸쓸하게 기어 다니고 있었고
바다는 스산하고 구슬프게 설레이고 있었어요.

16장
(한성 1895년 10월8일 밤, 마을어귀,주막에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이)
(그리고 임최수,중형의 집,호롱불 앞에 앉아 방담하는 두 사람.)

 임최수-
전날이 숙직이어서 그 날밤 집에서 잠을 잔 까닭에,
대궐 안에서 왜란이 일어났다는 얘길 아침이 되어서야 전해 들었습니다.
그 길로 대궐로 달려가 폐하 앞에 다다르니,
전후좌우로 왜병이 총칼을 빼어 들고 둘러서있는데
왕세자께선 머리에 쓰셨던 관도 벗겨지신 채 옷차림이 말이 아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벌벌 떨며 폐하 곁에 서 계셨습니다.
폐하의 용안은 창백하셨고,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차마 신하로서 죄스럽기가 한이 없고......
왕세자께서 눈짓으로 부르시는 듯하여 다가갔더니
곤전에 왕비마마께서 안계시니 밖에 나가 동정을 살펴보라 하셨습니다....
국모를 가까이 뫼시던 내관을 만나 물어보고서야
왕비마마의 참변을 알게 되었습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임최수의 중형:
나랏일이 이같이 망극하니 경성에 있는 들 도리가 있겠느냐.
예전 성현들의 처세도 나라의 살인이 득실하고 어지러울 때는 물러갔다 오는 것이거늘
이 형인 나와 같이 시골로 내려가서 다음기회를 보아가며
팔도에 격서를 보내어 의병을 모집하면 우리 나라가 500년을 내려왔으니
덕화가 백성의 골수에 젖어 있고도 반만 여년 예의 지방으로 어찌 충의의 지사가 없을 거냐.
분명히 동참할 자 많을 것이니 인재를 구하고 병력을 얻은 뒤
서울로 들어와서 조정안에 있는 역적을 쳐죽이고
왜적은 천하만국의 공법으로 담판하면 가히 원수를 갚지 않겠느냐
임최수:
이 몸은 나라에 바친 몸, 벼슬을 탄 자가
지금 군부가 위태로운 빠지고 국모가 참혹한 화를 당했는데, 어찌 멀리 떠나
장원한 일을 경영할 수 있겠습니까?
심중에 정한 바 있으니, 형님께선 고향으로 내려가 안부나 전해 주십쇼.
2010년 9월 28일 화요일오후 1:44:52
................
[1895년가을]공연대본 17장-20장(이덕순,세쟌,뭉크,이사도라던컨)

17장
(김대진의 집-임최수와 이덕순만남(임최수,이덕순,김대진)
여행자,청계천아래 빨래터에서
한성의 가을은 그렇게 슬프게 흘러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르게 사실은 왜곡되고 그 왜곡된 소문 속에서
모른다는 것이 죄가 되는 줄도 모르는 세상에서 우매하도록 순수한 사람들이
이 가을을 살아가는데
진정 의로운 삶이란 무엇일까?
스스로 찾아 하릴없이 고뇌하며 제 생명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어하는 정의에 대한 그리움이
세기말 한성 한편에서 조각됩니다..

이덕순 기다리고 있고 김대진 그에게 다가와 찬 한잔을 권한다.
이덕순 예를 갖추고 차를 받는다. 김대진 나가고 이덕순 기다린다.
임최수 오자 김대진이 안내한다. 임최수 방으로 들어서자 이덕순 일어서며 맞이한다.
앉은 후 )
 
이덕순 :
훈련대 장교 이덕순입니다.
지난 8월사변 당시 훈련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왜구와 우범선 및 이두황에게 이용만 당하고,
범궐과 중전시해의 누명을 쓰게 되어 그 억울함이 이를 데가 없던 차
이렇게 창의의 뜻을 전해듣고 달려왔습니다.
팔월 열아흐레날 저녁 우범선과 이두황이 졸지에 군령을 하달하여 서대문밖에 모이도록 했지요
명령대로 그 곳에 갔더니 , 자정때 쯤되어, 그 두 사람이 와서
우리 장졸 500여명을 인솔하고 바로 경기감영 네거리에서 왜병을 만났으나,
전에도 야간훈련을 하러 나간 적이 있어서, 아무 의심도 없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일본인 수십 명이 대원군을 호위하고 오더니,
우범선을 불러서 무슨 지시를 한참 한 후에, 우리 훈련대와 일본수비대를 도로 뒤돌려
서대문 안으로 진입시키더니 광화문 앞에 와서,
우범선(禹範善)이가 우리 군대를 분할배치하고 각 대궐문을 파수토록 지시하였습니다..
대원군은 우범선, 이두황, 일본수비대와 사복한 왜구 30-40여명과 같이 광화문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서 있었을 데,
날이 밝을 무렵에 궐내에서 사람들이 나오며, 분분히 하는 말이
<중궁께서 돌아가셨다>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중궁께서 피난 가셨다>라고 하며 지나 갈 때,
파수를 보고 있던 우리들은 그 때서야 궐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을 짐작하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슬슬 귀담이 들렸을 때는
<국모가 난을 당하신 것>을 듣고는 분한 마음이 솟구쳐 파수를 아니 보고 집으로 간 군병이 수백 명이나 되었는데,
그 후 그 죄를 우리군대에게 덮어 씌워 선전함으로 말미암아,
장안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우리 훈련대 장졸들이 중전을 시해하였다고 쑥덕쑥덕 하니,
이와 같이 억울하고 애매한 일이 어디 있으며,
그렇다고 또 사건의 진상을 가리려 하여도 알 길이 없어서 분개하고 잇습니다.
(김대진 임최수에게 새로 끌여 온 물로 차 한잔을 따른다.)
임최수;
그랬었구려 우리와 뜻을 같이하여 의로서 바로잡읍시다.
이덕순 :
본시 소생은 무식한 군인으로 지식도 없는데,
간인의 흉계에 속아서 나라에 불충한 큰 죄를 지었으니 억울한 누명을 벗어날 방법이 없으므로
동료 몇몇 사람과 만나서 방법론을
타진하였으나 근심과 탄식으로 고민하던 차에
임최수공의 가르침을 듣고 나니 검은 구름이 해쳐가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 같으니
마땅히 힘을 다하여 수화를 가리지 아니하고 공께서 가르치시는 데로 하겠습니다."
 
18장
(생트빅투아리산 56세의 폴세쟌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된 개인전을 준비하던 시간)
 
생트 빅투아르산 속 조그마한 오두막집.
화상 블라르의 제안으로 파리에서 가질 자신의 첫 개인전을 준비하며 지내는 나날..
굴곡의 반생을 정리하며 이제는 가족과 친구와도 떨어져 마치 은둔자처럼 이 오두막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고향을 보며 자신의 가슴에 다가오는 모습대로 자연을 그립니다.
56세의 가을을 오로지 창작에만 몰두하며 보내는 나날.
빛과 그림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산과 자연 그리고 마을의 색감.
햇살을 받으며 바람에 살랑이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그림 속 나무들 .
 
세쟌느: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에 있는 것 같다..
풍경은 나의 마음 속에서 인간적인 것이 되고
생각하며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몸과 마음은 나의 그림과 일체가 된다.
무지개 빛의 혼돈 속에서 하나가 된다  
프로방스 지방의 변하지 않는 모습 속에서
지질학적인 힘이 바위마다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있다.
세찬 수액이 나무 안에 흐르고 있는 것을 너무도 선명히 느낄 수 있다.
 
(파리에서 열린 세쟌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개인전 작품들 흐른다)
베토벤의 월광을 배경음악으로 뭉크의 작품이 이어지며
 
19장
노르웨이 32세의 에드바르트 뭉크,오슬로에서의 개인전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서
 
절망의 현실 속에서 죽음대신 그림을 선택한 사람.
오슬로 미술학교에서의 생활과 그 생활 속에서 그린 삶과 죽음에 대한 응시,
오슬로에서의 개인전을 보고 사람들은 서른 두 살의 그를  절망의 화가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통해서
끊임없는 생명을 추구하고 싶었습니다
오귀스트 쿠로의 판화 작업장에서 일하면서 새롭게 시작해보는 판화작업.
6년전 파리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 에이베르그와의 지난시간들을
달빛 어린 창가에서의 만남으로 회상해보며
 
20장
17살 소년 이사도라던컨의 가을 만들기
1877년 5월 26일 달콤한 탐욕의 자본주의가 화려한 유혹으로 타오르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별이 빛날 때’ 태어났습니다..
아빠는 실패한 은행가이지만 파산과 스캔들로 얼룩진 삶을 산 그분의 내면은
멋쟁이 시인이자 예술 옹호자입니다.
파산과 이혼으로 인한 궁핍 때문에 나는 어머니가 손수 짠 빨간 망토와 모자를 입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편물을 팔아야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프로디테의 별입니다.
어머니는 밤마다 우리들에게 큰 소리로 글을 읽어주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휘트먼의 시 ‘나 자신의 노래’입니다..
나는 아마도 휘트먼의 정신적인 딸일 겁니다..
‘나는 나를 찬양하고 나를 노래하리라. 그리고 내가 취한 것에 그대도 취하리라.’ 
 
생계를 위해 끝없이 돈벌이에 매달리면서도 언제나 시와 음악을 중시하는 우리가족.
나의 진정한 교육은 어머니 발치 아래 양탄자에 누워 있는 동안 이뤄지고 학교 교육은 쓰레기입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기로 한 나는 시간이 날 때면 인적이 없는 숲 속으로, 해변으로 가서
옷을 모두 벗고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몸으로 춤을 춥니다.
그럴 때면 바다와 나무가 나와 함께 춤을 추고 있음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답니다. 
2010년 9월 30일 목요일오후 12:07:33
...........
[1895년가을]공연대본 21장-22장(우금티의 농민,케테콜비츠)
21장
(11월8일 우금티의 농민)
 
공주 우금티 언덕 11월8일, 남 몰래 언덕에 올라온 한 사람이 보자기를 풀어
젯상을 차립니다.
고부에서 만석보를 허물고
백산에서 황토현에서 황룡천에서 전주성에서
죽창과 총포를 놓고 관군과 화해하던  전주화약의 기쁨도 잠시,
집강소,교정청의 약속도 무의로 돌아가고
끝내 평등하고 자유롭게 모두가 함께 사는 새로운 세상..
그 벗들과 함께  꾸었던 꿈.
지난 가을 이곳에서 관군과 일본연합군의 총칼에 쓰러지고
자네들 같이 예언처럼 노래했듯 1년지나 을미년 이 가을에 다시 되내여 봅니다..
갑오세 갑오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네.
몸은 활활 불타 재가 될 것 같은데, 가슴은 터져 갈갈이 하늘을 날 것 같은데....
온몸은 찢겨져 걸레가 되는 것 같은데.
갑오세 갑오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네.
순창으로 피해 재기와 거사를 꿈꾸던 녹두장군은 한신현과 김경천의 배신으로
피로리에서 체포되었고 지난 3월 손화중,최경선,김덕명,성두환님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파랑새가 되어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8월 일본인은 마침내 국모를 시해하였고
우리의 꿈을 공격하던 홍계훈과 관졸들마져
일인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하지만 님들의 창의의 꿈,이 가을에 이어 다시 사발통문을 썼습니다..
님들을 죽인 원수들과 같이 전주화약의 그 날처럼 화해하여
새로운 불의를 향해 창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염려치 마십시오.
결코 님들과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살아갈 겁니다.
 
22장
독일,26세 케테콜비츠의 판화,직조공의 봉기를 통해서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직조공들이란 제목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연극의 감동을 안고 돌아와
<빈곤>, <죽음>, <회의>, <직조공의 행진>, <소요>, <결말>의 6부작으로
그 날의 충격과 감동을 석판과 동판에다 새겼습니다.
초기 산업화시대의 자본가와 수공업자들의 갈등을 기본 축으로
1844년 독일 변두리 슐레지엔에서 임금을 거의 굶어죽을 수준으로 삭감한
기업가에 대항하는 직조공들이 최초로 봉기를 다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하우프트만의 희곡과는 다르게 민중적 사고를 중심으로
그들의 삶과 투쟁에 시선을 집중했습니다.
억압자들의 모습은 그리지 않고 직조공들의 존재, 비참한 삶, 강렬한 몸짓을 새기는 것만으로
계급투쟁을 정확히 묘사하며,
자본가의 야만성과 직조공들의 처절한 분노를 단순하고 명료하게
사실주의 형식으로 담아냈습니다.
짓밟힌 어둠의 시대에 캄캄한 창살을 뚫고 들어오는 한줄기 '빛'에 주목하며
처참하게 깨어진 직조공들의 봉기 앞에
직조공들에게 안겨주고 싶었던 것은
'희망은 반드시 있고, 찾아온다'는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시궁창의 예술이라고 이 팒화들을 비난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 케테 콜비스는 스물여섯의 젊은 여성으로서 동시대의 한편에 같이 살아가는
슬픈 직조공들의 모습을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습니다.
2010년 9월 30일 목요일오후 3:30:14
.......................... 
1895년 가을,4명의 인물을 표현할 김경수님께
 
김경수님 이 작업에 동행하며 아직 자신이 준비할 인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시간을 같이하면서 인물을 만들어갈지 연습일정을 적어주지 않으셔서
표현해야 할 인물의 구성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드리기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 각 인물들이 겪어내는 역사적 사실과 시간들을 어느 정도 공부하고
그 인물의 시대와 성격 그리고 그들이 그 가을 어느날 갖고 있었을
마음과 역사 속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감지하신다는 전제하에
현재 작업노트에 올리고 잇는 대본에서 각 인물부분을 참조하여
그 대본의 해설이나 대사 혹은 독백을 배경으로
그 인물의 시간을 장면지어 묘사해낼 수 있게 구성을 준비해보시길 바랍니다.     
현재 하시기로하신 인물들에 대한 대본은 우선 다 올렸습니다.
그 인물이 나오는 각 장을 각기 하나의 공연으로 생각하여
10분에서 30분정도의 장면을 구성해보고 그것을 연출자와 상의하여
검토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진 후
그 인물에 대한 장면과 표현의 완성대본을 구성히여
전체공연 안에 모자이크 방식으로 합류시키는 방식을 택할 겁니다.
가능하다면 그 인물의 마음과 시대적 배경을 충분히 파악하고
그 인물이 되어서
그의 시간과 115년의 시차를 두고 현재를 사는 자신의 모습으로
그의 존재방식을 표현해낼 수 있을 만큼 각 인물에 대한
애정어린 접근이 이뤄졌으면하고 희망합니다.  
.
일단 아직 어떻게 표현하실지 감을 잡으실수있게 제안하신 각 인물에 대해
구성을 위한 조언을 드립니다.
헤르만헤세
1895년 가을 헤세는 열 일곱의 소년입니다.
대본에 적힌대로 그의 소년시절의 어느 가을
뤼빙겐의 한 서점직원으로 일하는 소년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심한 종교적 편견 속에서 고통받는 시절을 보낸 후 어렵게 찾은 자유로움으로
시계공장 견습공으로 일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서점의 책을 정리하며 시를 적어 보기도 하고
대학강의실에 도강하면서 꿈을 꾸는 아름답고 행복한
열 일곱 소년의 모습이 희망차게 표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활 마지막 부분
노트에 시한편을 적어보는데
낙엽이란 시를 적으며 가을을 거니는 모습
낭송과 함께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
드보르작.
뉴욕에서 내셔널음악원 학장 생활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54세의 보헤미안의 프라하에서의 시간.
그의 거실에서 악보를 펴서 곡을 만들며 뉴욕에서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부터
그의 모습을 그려 보았으면 합니다.
배경음악으로는 신세기로부터 2악장을 사용하며
그 음악 안에 뉴욕에서 만난 흑인영가와 신세계 아메리카에 대한 기대감과 우려,를
묘사합니다.
뉴욕거리에선 한편으론 열두살 빈민 아랍소년 칼린지브란의 모습이 교차되고
조선인 유길준의 모습도 스쳐지나 갑니다.
그리고 신세계교향곡 2악장말미에 장이 바뀌어
아시아의 작은 나라 조선에서는 명성황후시해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덕순.
임최수는 시종으로서 임금을 모시던 시종원의 한 벼슬이며 문신입니다..
그래서 이 공연 안에 등장하는 창의의 인물 중에서
임최수는 문신으로서 거사를 준비한 인물이며
무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은 이덕순입니다.
이덕순 조선군 훈련대의 장교로서
1895년가을 대본에 쓰여진 그 대사대로
창의의 소식을 듣고 스스로 임최수를 찾아가 거사에 동행할 것을
약속한 군인입니다.
특히 이덕순의 경우에는
명성황후시해일에 우범선부대에 이용당하여
자신의 부대가 중전을 시해했다는 누명까지 쓴 터라
그 억울함과 분노가 더더욱 창의에 절실한 가슴으로 동참합니다.
그 전 해에 관군으로서 갑오농민혁명을 토벌하는 작전에
일인들과 연합군으로 참여했던 과오에 대한 뉘우침도 있습니다.
이 역을 맡을 분은
이덕순의 이러한 등장과 만남,그리고 거사에 과정에 동행하는 모습과
11월27일밤에서 28일 새벽 춘생문으로 부대를 데리고 가서
문이 열리기를 지키던 모습까지를
동작으로 구성하여 대본을 구성할 수도 있고
임최수와의 첫 만남을 대사로 처리해볼 수도 있으며
춘생문에서의 의거를 준비하며 자신의 집이나 훈련대마당에서
홀로 무술을 다듬는 장면으로 그를 묘사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사도라던컨
 자유분망하고 아름다운 17세 미국소녀의 아름다운 나날을 묘사합니다.
쓰여진 대본은 그의 자신감과 행복감 그리고 삶에 대한 기대감을
독백 혹은 친구에게 말하는 것으로 묘사되어있습니다.
가난한 가족의 모습과 소년이 자유를 그리는 숲과 바닷가를
그립니다.
극의 구성순서상 베에토벤의 월광교향곡 1악장이 근접한 장면에 배경음으로 구성되어
이사도라던컨 부분을 이어지지만
17세 소녀 이사도라의 몸짓을 표현할 수 있는 19세기말에 있었던 다른 음악이 있다면
그 곡을 사용하여 솔로 무용을 안무하여도 좋을 듯합니다.

공연은 전체적으로 쓰여진 대본을 바탕으로 서사극적인 방식으로
각 인물의 시간을 오버랩시키며 전개되지만
그 대본을 표현하는 방식은
그 인물을 표현할 사람의 표현방식에 따라서 연극이나 마임 춤 혹은 퍼포먼스
낭독 회화 연주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이 가능합니다.
다만 그 모든표현은 최소한 대본 안에 나오는 내용과 지명 인물등의 역사적 사실을 이해한 후에
그 안에서 그 인물의 실제적 사실에 근거한 시간의 모습이
이 작업이 가진 전체적 화두, 즉 존재의 방식에 대한 확고한 목적을 안고
표현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릅니다.
그리고 물론 1895년 가을 이후의 시간에 대한 예측이나 전제없이
1895년가을을 현재로 작업되어야 합니다.

 2010년 9월 30일 목요일오후 9:57:37
.....................
2010년 10월, 님들과 함께 살아갈 특별한 가을이 시작됩니다.
 
2010년가을을 특별히 보냅니다.
115년전의 가을 같은 시절 이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일상보다는 세상과 미래를 생각하며
무언가 자기존재의 의미를 찾아서 후세에 부끄럽지 않을 흐름의 존재로서
살아보고자 했던 이들의 모습을 찾아서 그들을 만나는 일.
그리고 그들과의 말없는 대화 속에서 지금과 지금으로부터 다시 100년후의 인류와
우주 앞에 이름이나 유명아닌 아름다운 존재성을 갖추려는 자기정진의 노력을.
 
공연인 듯 일상인 듯 꿈을 시작합니다.
10월12일부터 시작될 그 꿈의 현상화는
초반엔 아무도 같이 하겠다는 사람을 찾지 못해서
홀로 그 사람들과의 만남을 시작하게 됩니다.
일단 12,13,14일 3일간 대학로 디페스타가 열리는 거리 한 구석에서
여섯 번의 공연은 예플러 홀로 작업하며
거리에서 만날 누군가와 의미도 모를 이들의 이미지 속에서
환시처럼 환상처럼 보이지 않는 것 보지 못하는 것들을 놓고
화두를 던지는 쥐어보는 작업으로 이 작업의 도입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아마도 쓰여진 대본의 순서대로 여섯 번의 공연을 통해서
1장에서 9장 혹은 10장까지는 홀로 작업될 것 같습니다.
이하응 아인슈타인 웰즈 브람스 헤르만헤세 칼린지브란 명성황후 민영환 등의 인물과
그 주변의 사람들이 이 3일간 여섯 번의 환상곡 안에 만남을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15,16일은 이 작업의 중반부터 등장할 우금티와 전주성의 꿈을 그리던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전주에서 작업하고 다시 대학로로 돌아오면
두 번째주 7회부터 시작되는 공연의 10장이후 인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할 사람은 결국 만나지 못한 채 이 작업은 이렇게 홀로 가면서
귀하게 시간을 내어 부분적으로나마 참가할 사람들을 만나 스치며
이 가을의 얘기를 마무리 지을 겁니다.
이 작업의 흐름을 찾기 위해 10월8일은 장충단과 건청궁의 답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895년가을 이땅에서의 시린 가을을 지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작해볼 작업.
오랫동안 그려왔던 그리운 화두와 님들과의 귀한 만남이 이어질
생의 가장 아름다운 가을이 [1895년가을]작업을 이유로 시작됩니다.
2010년 10월 1일 금요일오전 10:10:48
...............
 
[1895년가을]공연대본 23장-27장(율리아 체마이테,의병지휘서,알프레드 노벨,춘생문)
23장
(리투아니아,율리아 체마이테의 첫 작품[가을밤]
아주 먼 옛날에는 드녜프르 분지에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지금은 발트해연안에 살면서
라트비아인과 더불어 오이로피데에 속하며
우리들만의 언어 리투아니아어르 쓰는 이들이 사는 나라..
13세기 리투아니아공국을 세워서 15세기까진 번성하였지만
계속된 주변국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고 살아가는 우리들.
제정러시아의 지배하에서 금기된 민족주의.
율리아는 리투아니어어를 천시하는 상류집안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금지된 리투아니아어를 배웠으며
가난한  농노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열여덟살때 일어난 1월혁명속에서 그들의 마을을 이해했으며
실패로 끝나버린 서글픈 민족주의혁명의 협조자가 되어
그 속에서 남편을 만나고 결혼했습니다..
서른 여덟되던 해 지우지네나이 지방으로 이주해서 20년간
농장을 가꾸며 작품활동을 한 율리아는
3년전 우쳰티스로 이주했습니다.
크리스티요나스 도넬라이티스의 시 메타이를 읽으며
리투아니아어로 쓰여진 그의 서사시 4계절에 심취해보던 시간.
그리고 이곳에서 작가로서의 활동과 국가 계몽운동 참여를 후원하는
폴비라스 비신스키스와 친교를 맺게 되었고
마침내 1895년 나이 오십에 첫 작품집 [가을밤]을 출간합니다.
그가 함께 한 조국 우크라이나의 농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얘기로.
 
24장
(달산 ,농민,술한잔 들이킨다  서파 유필영의 의병지휘서를 읽는다)

하늘은 푸르르지만 벗은 이제 곁에 없습니다.
황토현 길목에서 당신들을 다시 봅니다.
의병운동이 시작되고 이제 우린 또다른 세상을 그립니다.
하인 화(花)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얼굴빛이 검더라고 하니
몸이 피로해서 병이 난 것은 아닌가 걱정이다.
일전에 청송 사람에게 들으니 너희들이 지경을 통과하면서
군졸들이 민폐없이 조용히 지나갔다는
遠近 주민의 칭송이 자자하니 참으로 기쁘고 다행한 일이다.
이 곳에서 생각하니 너희들이 주둔한 지역은
험준하고 산으로 처지고 길마저 좁은 곳이니 잘 생각하여
작전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길 바란다.
네가 외지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을 것을 생각하니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급히 두어 조목을 써서 보내니 이 염려하는 말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무슨 일이든 남을 무시하는 언행은 삼가고
상대방의 일이 비록 맞지 아니하더라도
반드시 사연을 들은 후 천천히 말을 하여 설득을 하며
남의 앞에 나아가 언성을 높이지 않도록 하여라.
客陳에서는 절대로 자주 출입하지 말고 귓속말로 속삭이는 말은
삼가도록 하여라.
장수가 부임한 후에는 禮에 따라 한두 번 問候를 드리는 외에는
자주 친밀히 하지 않도록 명심하여라.
營中에서 軍官과 軍卒에게 한결같이 誠信으로 接待하여야지
혹이라도 지혜와 기교로서 다스려서는 안 된다.
무릇 다른 진영에 들어갈 때에는 먼저 군법을 물은 후에
主將을 대함에는 각각 예에 합당하게 하여
더욱 공경하고 言語 또한 자세하게 진술하여 誠意로서 남을 감동시키도록 힘쓰길 바란다.
군졸이 行軍하는데 禁할 것은 절대로 농민을 侵掠하지 말며
旅舍에서 宿泊할 때는 인원수를 기준하여 비용을 나누어 주고
조금도 민폐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
府에 들어가 邑을 지날 때는 먼저 군졸에게 명하여 발포를 하여
주민을 놀라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前程에서 留宿할 때에는 반드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먼저 路程에 보내
관사를 정하는 등 절차를 밟고 크게 위세를 부려 소란을 피워 놀라게 하지 말라.
아침 저녁으로 반드시 군졸을 위문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 감복하게 하며
병든 군졸에게는 더욱 긍휼을 더하여 옛사람이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어
죽을 힘을 다하는 것과 같이 하여라.
유숙할 때에는 마땅히 더욱 신중하고 치밀하게 하여 예상치 않은 재난에 대비하여야 한다.
이것은 兵家에서 이르는바 머무를 때는 반드시 견고하게 하라는 뜻이다.
공문 왕래는 절대로 나에게 쓰게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나이 젊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지 아니하여
군대를 이끌고 지경을 나섬에 있어
내가 拙하고 심약하다 하여 편안하게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가.
천만 경계하고 삼가서 군기를 패하게 하지 말자며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말게 하는 것을 깊이 바라는 바이다.
이때 삼가지 않으면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 곧 지극히 짧은 순간이다.
이에 간략히 조목조목 지시하니 때때로 살펴보아 명념을 더할 지이다.

25장      
(병상의 노벨,폰슈트너의 편지를 읽는다)

당신은 사색가이며 시적인 능력이 풍부하고 씁쓸한 성격이지만 좋은 사람입니다.
결코 행복을 모르는 당신은 높은 하늘을 날면서도 아주 나쁜 의심의 덩어리로 가득차 잇습니다.
당신은 인간사고의 거대한 수평선과 집요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너무나 깔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아는 거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이게 나에게 보인 당신모습의 전부요
20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20개나라에 94개의 공장을 가지고 이 사업장 저 사업장을 옮겨 다니며 사는 내게
빅토르 위고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방랑자라고 했지.
하지만 나를 태운 마차는 나의 일인감옥이었어.
슈트너 당신이 그렇게도 반대했던 나의 발명품 다이너마이트는
스티른베르흐의 말처럼 꼬마들의 무기,하층민의 권총이 되었고
매일 평균 3건씩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한 암살사건이 발생했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악용하는 것에 대해 큰 책임감은 느끼지 않았어.
오히려 무연화약을 만들어내기에 열중했고 군수물자회사를 사들여 무기제조회사를
만들었지.
6년전 당신의 소설 무기를 놓아요 를 읽었오.
점점 무력화되어가는 세계에 대항하며 평화주의 운동의 지침서가 되어준 책.
7년전 남동생 루드비히가 죽었을 때  신문들은 이름이 비슷한  나의 죽음으로 알고 부고기사를 썼었지.
그 제목이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다이나마이트의 왕이 죽다' 였지.
사람을 더 많이 더 빨리 죽이는 방법을 개발해 부자가 된 인물 이라고도.
폰슈트너의 말처럼  무기는 평화의 수단이 될 수 없는 것.
평화를 위해 무기를 만든다는 나의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던지.
(유언장을 작성한다)
..........
26장
(1895년 11월27일 노벨의 죽음,그리고 유언장의 공개)

7년전, 한 신문의 오보 속에 죽음의 사업가라고 칭해졌던 그가 오늘 정말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이제 파리에서 작성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보관해 두었던 그의 유언장이 공개합니다.
나의 전재산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것을 밝힙니다.
원금은 나의 집행인들에게 맡겨 안전한 곳에 투자해 기금을 조성하게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자는 지난해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을 선정해서
상을 주는 형태로 매년 지급토록 합니다.
이자는 5개부문에서 공헌한 사람에게 골고루 분배하도록 합니다.
첫째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둘째 화학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셋째 생리학이나 의학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네째 문학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이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을 쓴 사람.
다섯째 국가간 우애를 돈독히 하거나 군대를 폐지 도는 축소시키거나
평화회담을 주장하고 개최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사람에게.

27장
(춘생문이 가까운 성내 어느 곳.여행자)

하지만 지구저편에서 세계의 평화를 향한 한 노 과학자의 유언이 읽혀지던 날 밤.
조선의 춘생문에선 ..
11월 27일. 밤의 거병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군의 거병에 호응한 일부 민간인을 포함하여 군민 약 천 여명이 집결지인 춘생문 앞에 모여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같은 날 27일 자정과 28일 새벽 사이에 대궐 안에 있던 친위대 참령 이진호가 배신하여
문을 열어주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그 창의 사실을 역당들에게 알기전까지는요.
자정이 지나도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윤웅열이 몸소 춘생문 밖으로 나가고, 그의 아들 윤치호가 수십명의 영국군을 데리고 왔다 되돌아 갔습니다.
창의군의 심리는 동요되기 시작했고, 일부 민간인들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춘생문 안에서 군호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문 안쪽에선 일본군 1개 중대 약 사 오백 명의 병력이 소총을 발사하며 밀려나왔습니다.
창의군은 흩어졌습니다.
이 민족적 거사가 이진호 참령의 배반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2010년 10월 3일 일요일오후 2:19:38
................
[1895년가을]공연대본 28장-30장(찢겨진 창의통문조각,경포 에필로그)
28장
(성문 밖,찟어진 창의 통문 조각을 주워 숨기는 오늘의 사람.)
1895년 가을은 명성황후시해와 을미왜란 평정창의가 있던 가을입니다..
동학혁명의 불꽃이 쓰러져간 1년후의 가을이고
사람들은 밀려오는 새로운 문물과 정신세계의 교류에 귀기울이며
새로이 다가올 세상을 기다리며 살았을 가을입니다..
그로부터 115년이 흘러 돌아보면
우리는 그들이 그리워한 1세기후의 희망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는가 의문이 듭니다..
1895년 겨울이후를 미지의 세상으로 기다리며 살고 있던 그 날의 사람들은
100년후를 사는 지금의 우리들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더 아름다와 보이는데
정작 그들은 세기말 시린 아픔 속에서
더 아름답지 못한 자신들을 죄스러워하며 부끄러워하네요.
그 고왔던 사람들의 꿈과 영혼을 만나며
115년지난 이 가을, 우리의 삶 또한 100년후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부끄러움안고 가슴조아립니다.
그 가을을 걷던 그들의 꿈과 희망에 답하지 못하고 이미 퇴화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들이 그리워하고 추구하고 노력하던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게 망각하고 파괴 시켜버린 것은 아닐까?.
100년전의 사람들처럼만이라도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100년후의 사람들에게 그때 그 사람들은 아름다웠다고 얘기들을 수 있을까?
 [1895년가을]을 마침내 2010년가을에 115년전 사람들의 꿈 이란 화두로 준비하고.
그리고 이 작업에 동행하면서
100년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을 찾아 보고픈 이들을 찾아 나섰지만
그 슬픔 나누지 못한 채 이렇게 가을은 또 마무리지어집니다..
삼라만상의 한 원소로서 태어나 공존하고 보존하며 살아야 할 존재의 이유에 답하지 못하며 사는
서글픈 종족의 나태함 지우지 못하면서...
29장
(거리를 거니는 1895년의 인물들 속 여행자의 독백)
백년을 씻어도 지워지지 않을 부끄러움,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의로움과 당당함으로 이겨내던 또 하나의 화두
백년이 지나도 부끄럽지 않을 삶.
존재의 이유에 화답하며 살아가는가 스스로 질문해보는 사람들.
그리고 힘겹고 어려워도 그렇게 행하며 욕심과 이기를 버리고
우주의 바른 요소가 되어 익히고 지키며 살아가 고픈 어진노력.
그리고 그리하여 그들이 그 존재의 목적을 이유로 꾸는 꿈.
30장
(경포, 한 사람 홀로 술한잔을 달빛아래 들면서)
스물일곱나이에 저보다 먼저 간 누이가
세상을 바라보며 그렸던 시와 글들을 모아봅니다.
人言江南樂
我見江南愁
年年沙浦口
腸斷望歸舟  '
4백년전 배다리건너 저편에 살았다는 그 소년.
한정록을 적으며 꿈꾸었으나 떠나지 못한 속세에서
그의 생각은 하나의 생명이 되어
경포의 달을 건너 동해로 떠나고..
세월이 흘러 그의 생각이 전설이 되었을 쯤
한 사람이 벗을 잃고 다가와 멈춰선 곳.
조각배로 경포를 흘러내려 통천댁 너른 인심에
숙기도 없는 그가 하루를 묵으며
열화당 기둥에 기대여
오은거사와 나그네의 세상얘기 귀기우려봅니다.
다시 2백의 세월이 흘러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초희 남매의 모습과
그들이 거닐던 곳에 들어선 아흔 아홉 칸
무경의 마음을 그리며
홀로 찾아와 오르는 누각.
하늘과 바다 호수와 술잔에 뜨는 달은 여전한데
님의 눈동자에 뜨는 달은 찾을 길 없어
네개의 달이 하염없는 슬픔을 그리는데..
(끝)
2010년 10월 3일 일요일오후 3: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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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전주한옥마을영화제 프로그램 및 상영시간표
 
양사재가 기획하고 주최하는 제4회 전주한옥마을영화제는
올해도 이름없는공연의 공연영상작품들로 이틀간의 프로그램을구성해서
상영됩니다.
 
각 상영작품 자료 및 상영시간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날 2010년10월15일 양사재
7:00-7:40 강과 기도-40분편집본(41)
7:45-8:06 앗살람알라이쿰10-제주 대흘리에서(21)
8:06-8:50 찾아가는 가족콘서트-2009년가을제주(44)
 
둘째날 2010년10월16일 양사재
7:00-7:16 한옥마을2008년4월(16)
7:16-8:02 을미왜란평정창의(46)
8:02-8:14 415peace시속 4킬로미터(12)
8:14-8:27 1227peace용산참사현장 342일째날에(13)
8:27-8:40 강과 기도12-대구 대봉성당에서(13)
8:40-9:00 평화그림010 문수스님소신공양추모제에서(20)
 
작품안내
강과 기도(40분편집본)(41분)
2009년가을부터 2010년여름가지 정부의 토목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4대강을 찾아 홀로 혹은 같이 기도하며 만난 사람들과의 순례공연기록
 
앗살람알라이쿰10-제주 대흘리에서
http://yegie.com/assalaam10/page_01.htm
 
찾아가는 가족콘서트-2009년가을제주
http://yegie.com/yegiephoto/fconcert09aut/page_01.htm

 
한옥마을2008년4월
2008년 5월 제1회 한옥마을영화제상영을위해 만든 전주한옥마을의 2008년4월스케치영상
http://yegie.com/oncoreahanok2008apr.html

을미왜란평정창의乙未倭亂平征倡義
http://www.yegie.com/18951128.html
1895년10월8일 명성황후시해사건일아침부터 11월28일아침까지 40일간 임최수 이도철..등을
중심으로 이뤄진 을미왜한평정창의의 기록을 극화한 공연영상.
을미왜란 평정창의(예플)
 415peace시속 4킬로미터
http://yegie.com/415peace/page_01.htm
강원도 양양군현북면에서 아이들이 호소하는 로드 킬에 대한 생명평화공연단상.

 
1227peace용산참사현장 342일째날에
http://yegie.com/1227peace/page_01.htm
 
강과 기도12-대구 대봉성당에서
http://yegie.com/riverpray12/page_01.htm
 
평화그림010 문수스님소신공양추모제에서
http://yegie.com/peacepic010/page_01.htm
2010년 10월 5일 화요일오후 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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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공연을 며칠 앞두고 ..
 
몇 년 동안 가을을 맞을 때마다 그리며 준비하던 작업,
같이할 사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작업이라서 늘 사람을 기다리며 준비를 포기해야 했던
10여차례의 가을.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할 수 없어
1인극의 형태로라도 작업의 대본을 완성해야겠다는 최후의 다짐을 할 때,
마침 대학로 디페스타의 거리 공연 프로젝트 의뢰와 소극장 씨어터 제로의 극장공연의뢰가 있어서
그들과 같이 작업하면 좋겠다는 의지로 작업을 준비시작했습니다.
20여명의 출연자들과 같이 거리극 형태로 만들어 달라 던 디페스타거리극 주최측의 얘기와
9월부터 워크숍을 모집해서 극장 공연을 해보자던 씨어터 제로의 제안도
결론적으로 모두 지나가는 말이 었는데
그것을 믿고 10여명의 공연자가 출연하는 작업으로 작업을 준비했던 덕에
작업은 그래도 전 30장으로 구성된 대본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거리극과 무용과 역사의식에 관심 가지신 한 분이 오셔서
작업에 부분 동행하시기로해서 그분과 같이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결국 공연은 10여명의 공연자가 같이 하는 거리극이 되지 못하고
대학로 2010년 가을밤 거리와 골목에서
한 두 사람의 공연자가 이어가며 오버 랩시키는 사색극의 형태로
이번초연은 그 작업의 모습이 형성됩니다.
이 작업의 기초를 이루었던 몇 편의 연작에 같이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
그 화두를 진전시키고 이어가고 싶었으나 그들은 끝내 오지 않고
몇 년을 준비하며 얘기 나누고 조금씩이라도 같이해보자고 했던 이들도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 가을 우리는 그 역사적 사실과 의미와 이음에 무심하고
관심을 가질 의미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무심할수록 더욱더 절실히 그려지는 자성의 공연으로
이 작업은 홀로 사색에 빠져보는 만나지 못한 이들과의 시간을 벗어나 중첩하는 만남의 방식을
찾아갑니다.
오래도록 같이 얘기 나누며 공감하고 쓰라린 그 길을 답사하며
인간의 죄악과 희망과 의로움에 대해서 생각해볼 동지가 없어서
쓸쓸히 준비하지만
그 쓸쓸한 독백과 사색이 오히려
존재의 가치를 만들어내며
소외와 무심의 도시 한구석에서 그릴 그리움을 확대시킵니다.
공연은 30장의 얘기를 때로는 길게 때로는 스치듯 단순하게 오버 랩시키며
115년전의 인물들과 그들 곁에서 더 큰 사랑과 존재의 의미를 찾아 행했을
무명과 실명인들의 모습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혹은 투명의 존재로 배치하고
마주하며
볼 수 있는 사람만 볼 수 있는 그리운 사람만 그릴 수 있는
정물화의 모습으로 사색극의 형태를 구축합니다.
간혹 음향이 가능하다면 누군가의 소리를 거리 구석 어디에 선가 들리게하고
도시소음에 숨겨진 그 소리를 들을 사람과 같이
듣지 않으며 들으며 보지 않으며 보는 대화를 노력할 겁니다.
빔프로젝터의 희미한 영상이 19세기말의 모습을
115년후 가을  같고 도 다른 공간에 투영하면서
거리갤러리처럼 19세기를 그린 1895년전이
사람들의 무심한 그림자 속에서 배경처럼 가려질 겁니다.
누군가 책을 읽고 있고 뜨개질을 하고 있으며
의로운 세상을 향한 글을 적고 잇을 것이며
관객을 원치않는 낯선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 2010년 가을 대한민국 서울이란 도시 대학로라는 축제의 공간에서
눈물처럼 존재하다 사라질 겁니다.
쓰여진 대본을 독백처럼 읽을 것이며
애절한 시를 낭송도하고 인간의 미래를 경고한 단편소설을 읽거나
그 책얘기를 혼잣말처럼 들려주기도 할 겁니다.
공간은 한없이 자유롭게 바뀌지만
아무도 그 바뀜의 공간을 이해하거나 제대로 바라봐주진 못할 겁니다.
설명이 부족하고 설치없는 상상의 공간 안에서
역사의 시간과 장소를 찾아가 그들을 만나는 한두 사람의 서글프고 절실한 그리움이
이 도시 그리고 21세기를 자신과 자기가 인지하는 굴레,
그리고 인간위주의 이기심으로 키워 나가는 인간세상에서 공유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895년가을]은 다시 그 어는 작업보다 더 고통스럽게
그 불소통과 무심의 공간에 그 자체를 이유로 이 세상이 가진 극최소의 확률을 전제하며
외로움도 모르고 열심히 준비해서 메아리 쳐 줄 공간적배치도 없는 곳에서
말없이 말을 걸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몇 백년이 지나 누군가가
적혀진 역사 속에서 찾아낼 또 하나의 무명인의 작업으로
존재의 이유에 합당하게 살아간 가을로
부끄럽지 않으려 노력한 먼지같은 한 인간의 모습으로
기억아닌 밟힘이 되고져 .
2010년 10월 7일 목요일오후 1:3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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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기도 13 내성천 그리고 바위늪 구비에서..
 
33명씩 333대의 버스를 타고 이 가을, 강으로 다가가면
1만명이 강을 만나게 됩니다.
아름다운사람들이 준비하고 그에 응해 스스로 다가온 사람들이 만나는
333프로젝트 세 번째 순례에 동행합니다.
회룡포 마을과 내성천 그리고 바위늪구비.
지난겨울 뿅뿅 다리 건너다 얼어붙은 강 위로 내려 걷다가 하염없이 앉아보았던 모래강,
신발을 벗고 발 담그며 마치 100년전 사람들처럼
인간의 이기를 이유로 이 시간 곳곳에서 처참히 사라져가 버리는
모래강의 마지막 눈물을
가을햇살아래 내성천에서 만납니다.
조금 너머 내려 흐르면 처참히 파괴되고 파여지는 인간의 이기도 모른 채
강가에 신발 벗어두고 발담근 아이 어른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작은 생명체들.
그리고 모래알들의 흐름.
문수스님 뭍생명과 묵언 속에 눈물안고 노닐던 군위 지보를 지나며
인간이 해할 수 없는 유일한 것.대기층넘어 맑은 가을하늘 바라보고
해질녘 다가와 선 남한강교에서 내려보는 바위늪구비.
공사를 의뢰받고 이 곳에 와서 중장비에 올라탔던 사람들에게도
그 아름다움은 느껴졌을텐데
어찌 장비를 운전하여 이 귀한 생태의 보루
바위늪구비를 학살하고 폐허로 만드는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이젠 강가에 가득 놀던 새들도 다시 오지 않고
순례자를 반겨주던 개쇠스랑개비,도꼬마리,매듭풀,가시박,구슬갓냉이,비수리,패랭이,
엉겅퀴,익모초,물억새,마름,쑥부쟁이 가족들은 이제 그 고향의 흔적도 찾을 길없이
수없이 할켜 내는 기계발자국과 쌓여지고 옮겨지는 흙더미만.
그려도 그려도 존재치 못하는 평화
그 그리움으로 그리기 이백 아흔 아홉째날
그리고 강과 기도 열세 번째얘기.
2010년 가을 그래도 아직 남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희망짓던 내성천 그리고 바위늪구비에서..
 
http://yegie.com/1009peace/page_01.htm
2010년 10월 10일 일요일오전 1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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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가을 디페스타 거리공연 첫날을 시작하며
 
1895년 가을 20부작으로 준비한 디페스타에서의 거리공연은
그 형식상 몇 가지 원칙을 두고 준비를 마칩니다.
첫째 총 30장의 대본을 3-4장씩을 1회분으로해서
하루 2회씩 10일간 20회에 걸쳐 연결해 나갑니다.
공연자를 찾았으나 같이하는 분은 춤을 전공으로 하시는 한분,
그래서 아마도 이번 공연은 예플러의 정물화적인 이미지극 부분과
한 사람의 춤극 형태로 거리를 지나거나 입장을 기다리는 극장 공연 관람자들을
배경으로 그들과 함께
조용한 사색극과 때로는 격동적인 춤극의 형태를 오버랩 시키면서
진행됩니다.
7시 조금 이른 저녁과 9시 깊은 밤 거리에서 이뤄지는 공연은
가로등과 건물이나 가게조명등을 주로 이용하고
한편으로는 어두운 벽면을 이용한 희미한 영상투여로 작업하고
촛불 호롱불 등불 등을 이용한 이미지작업을 하고
책걸상 등의 이동과 보관이 어렵고 공간상 자동차들이 다니는 골목길을
많이 이용하는 관계로 소품배치나 설치가 불가능하여
이를 배제하고 사람이 들고 움직 일수 잇는 정도의 소품과 악세사리
그리고 영상기기만으로 공연을 구성합니다.
1장에서 30장까지 기본적으로는 시간적 흐름을 따르지만
연작의 앞뒤에 반복씬을 만들어 다른 분위기에서 같은 장면을 연출해보고
부분적으로는 장소에 맞게 시간적 회상식으로 장면을 배치 시켜봅니다.
광대와 취객을 기본등장인물로 배치하고 싶어 최종까지 사람을 찾았지만
끝내 이 작업에 동행해볼 의향을 가진 남자공연자를 만나지 못하여서
결국 까메오나 엑스트라만으로 이를 대체하게 됨이 아쉬운 점입니다.
 
첫날 1,2부중 1부 첫공연은
1장과 2장 3장으로 프롤로그에서 한가위 날의 이하응 그리고 소년 아인슈타인의
꿈과 실험을 가을거리 한구석에 조그맣게 제안하고
두 시간 후 2부에선 아인슈타인의 실험부분을 다시 도입부로 해서
4장 타임머신으로 이 작품이 앞으로 전개시켜볼 19세기말의 사회상과
100년이 지난도 아직 이루지 못한 그 계급과 투쟁의 몰록과 엘로이로 얘기한 후에
다시 프롤로그로 마무리집니다.
즉 3장 4장 1장으로 구성됩니다.
4장 시간여행부분에 배경음으로 굳이 리투아니아 게릴라를 사용하여
인간의 슬픈 투쟁과 희망을 위한 희생을 암시,앞으로 전개될 1895년가을의
시린 사람들의 바른 세상에 대한 꿈을 준비합니다.
 
가능하다면 매일매일 공연을 통해 115년을 오버랩하는 가을과 인물들을 만나고
그 다음날의 공연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6,8,6장의 공연으로 3주간의 흐름을 준비해서
대본처럼 이 가을을 정갈히 보내려 합니다.
김경수님 그리고 다음주부터 합류할 오꾸다마사시님이 오면
작업은 예플러 혼자 시작한 이 얘기가 조금씩 낯선 거리에 슬픈 이해를
채워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등과 촛불을 켜줄 사람
길가에 앉아서 벗과 동지들을 생각하며 술한잔 마셔줄 사람.
우리가 이 가을 만나 보고픈 사람들이 그 가을 115년전해에 발간한 책을 읽어줄 사람.
미래를 향한 꿈을 꾸던 사람들을 그리며 곷과 촛불을 켜주고
조용히 앉아서 가을 낙엽 지는 거리와 밤하늘을 바라보며
함께 사색해줄 사람들을 기다리며
관객없이 다가온 몇 몇의 모두가
이 가을의 사람이 되어 하나의 무대를 만들
가을축제의 한구석에서 지낼 작고 소중한 시간을 시작합니다.
2010년 10월 12일 화요일오전 10:14:46
.........................
1895년가을 그 만남,20부연작거리공연을 시작하고
 
115년전 가을을 살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오랜 시간을 보듬어 시작하는 말 걸음.
디페스타축제의 공간,그러나 평일 대학로마로니에공원과 골목골목길은
깊어가는 가을을 머금고 조용히 시간을 만들어내고 흘러갑니다.
첫날 두 번의 무대는 문예진흥원 미술관과 붙은 골목길,두 개의 소극장사이에 비어있는 건물에서
두 개의 공간을 정하고 스크린을 설치한 후에 1895년가을 한성 어딘가에 살던 여행자의
등잔불 켜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나 100년후의 사람들의 기억으로 경복궁에서 행해졌던 시해의 그 날의 공연영상으로
시작하는 이하응과 아인슈타인.
가을이 거리에서 혹시라도 문득 스쳐가다가 아니면 다가와 바라보다가
이렇게 시린 마음으로 절실한 마음 말거는 사람의 얘기가 고독한데,
이렇게라도 만나는 옛사람들과의 만남의 실현,그리고 100년이 지난도 부끄럽지 않을 삶을 햔한
작은 의지의 약속이 진행되는 짧고도 그리운 시간과 공간.
한시간 반을 지나 다시 조금 공간을 옮겨서 두 번째 공연이 시작되고
공연은 다시 소년 아인슈타인의 모습과 h.g.웰즈의 신간 타임머신을 읽고
그 책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얘기가
에투바 게릴라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오버랩됩니다.
휴이넘과 야후의 얘기를 갖고 만들어보던 후이넘 연작처럼 또 하나 화두로 다가오는 몰록과 엘로이.
세월이 흐르고 세기가 흘러도 인간이 스스로 예언했던 그 모순과 지배 피지배 불평등의 세상은
변치않고.
총 20부의 연작으로 10일간의 공연 안에 30장의 이어지는 드라마를 지속적으로 이어가지만
그 얘기의 전체를 같이 얘기 나누고 만날 사람하나없는 가을.
그중 하루 한 회의 공연만이라도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서 20회의 각 공연은 개별공연으로
그것이 전부인 듯 구성하므로 4부공연엔 다시 1895년가을 한성의 여행자 그가 다시
100년의 시간을 두고 만나고 그리는 사람의 모습이 마무리 인물로 등장합니다.
2010년 10월 13일 수요일오후 3: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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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얘기.
1895년 가을 둘쨰날 어제에 이어 그 세 번째,네 번째얘기를 준비합니다.
시간적 구성에 의해서 명성황후시해사건일인 10월8일이전의 얘기를 그리다 보니
헤르만헤세 브람스의 얘기가 이 3,4부에 이어지는데
브람스와 헤르만 헤세 부분을 같이 만들어보기로 한 공연자들은 다음주부터나 공연을 할 수 있어서
이들의 얘기를 표현함에 있어서 그들을 비워두고
주변인의 모습으로 이들의 얘기를 등장시켜야 하는 날입니다.
10월3일 클라라와의 마지막 만남 이후 브람스가 작곡에 들어간 네 개의 엄숙한 노래부분은
두 사람의 따뜻한 다과를 곁들인 만남에서 시작해서 그 시기에 살다가 죽어간 이들의 마음을
같이하는 죽음과 남은 이 들의 삶에 대한 모습을 그리고져
꽃과 촛불과 등불을 모아 하나의 추모의 공간을 만드는 장면.
사람들이 많았으면 같이 추모를 준비하며 그 안에 나눌 얘기도 많았을 텐데
홀로 수십명의 추모를 준비하며 일단 한 사람이 가지는 여백의 공연으로 이장면을 구성 마칩니다..
배경으로 며칠 뒤 공연에 등장할 세쟌의 인물화 속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4부는 명성황후의 등장입니다.의연했던 그 모습 다시한번 상기하며 공연은 도입부를갖고
다시 주제부인 여행자의 한성에서의 삶을 그리고
헤르만헤서의 어린 시절을 이어주며 다음장의 인물들을 이어 연결해줄 준비를 마칩니다..
헤르만헤세는시인이며 작가였지만 그의 그가 그린 세기말의 풍경들도 아름다워서
헤세의 어린 시절 서점에서의 일과의 배경으로 그가 일생을 통해 남긴 그림들을
풍경처럼 나열해봅니다
2010년 10월 13일 수요일오후 3: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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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스타 기간 대학로에서 거리 공연 공간찾기
 
1895년 가을은 디페스타의 프로젝트 프로그램으로 기획되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거리극의 개념을 거리어디에서나 무대가 되고 공연공간이 될 수 있게
현장성을 확대시키는 방식을 택해서 준비했는데
의외로 대학로란 공간이 그리고 그 골목골목이 무대공간으로 재생되는데 주민들에 의한
제약이 많습니다.
디페스타의 깃발이 대학로 곳곳에 붙어있지만 마로니에 공원공간을 벗어나면
대부분의 상가건물과 소극장들 그리고 아름다운 구조물들로 구성된 거리공간들은
거리공연을 위해 앉아서 무엇을 하거나 약간의 소품을 설치하는데도 바로 바로
건물주나 상인들의 제재가 들어오고 심지어는 길가에 앉아서 소품정리를 하는 것조차
허가되지 않고 쫒겨나는 상업지구입니다.
게릴라식 공연으로 골목골목을 치고 빠지는 식으로의 이동거리공연만이 가능하고
이동무대나 소품의 세팅등은 불가능합니다.
답사하며 준비했던 많은 곳들이 막상 공연장소로서의 활용에서 이런 이유로 공연이 불가능했고
그중 주최측이 그나마 협조를 허락 받았던 두 곳도 13일 공연을 시조해 본 결과
한군데는 억지로나마 불안 속에서 공연이 가능했고 두 번째 장소는 공연이 끝내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공연을 보러 줄을 서 있는 관객이나 보고 나오는 관객들이 거리공연을 보게 되어도
안된다는 정도로 극장이나 공연자 분들이 생각하고 있어서 대학로 골목은
그렇게 거리공연공간으로는 자유롭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3부와 4부는 그래서 답사하고 준비했던 곳과는 다른 형태로
공연시간직전까지 공연장소가 몇 차례 다시 바뀌고
장소세팅을 몇 번 바꿔야 하는 과정을 거쳐서 다소 어렵게 이뤄 봄윱求?/font>
다음 주 부터의 공연은 인원도 확장되고 공연의 방식도 실내장면이 아닌 옥외장면이 많이
있으므로 변화가 있겠지만
이번 디페스타의 대학로 공연의 경우는
거리나 골목에서 무대의 모습을 설치하고 공연을 하기 전에는
거리와 지물을 이용한 거리에서의 공연은
상가와 건물관리인들에 의해서 철저히 저지된다는 점을 유의해서
작업공간을 기획하고 구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10년 10월 14일 목요일오전 9: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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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가을,디페스타거리공연둘째날,웰즈,클라라,브람스와 헤세의 그 가을그리기
 
1895년 이틀째날 3,4부는 카페와 골목에서의 공연으로 구성되었지만
골목길공연은 무산되었고 대학로 카페 앞 공연은 3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번 디페스타 거리 공연에 유일하게 협조를 해주었다는 단 한 곳의 가게입구에서
불완전하게나마 공연이 진행 되었습니다.
타임머신기계나 그가 가본 미래의 지구 한 구석을 암시하는 듯한 구조를 배경으로
소설 타임머신을 읽고 얘기해주는 한 독자의 모습을 시작으로
브람스와 클라라의 만남은 브람스를 준비한 공연자가 아직 참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카페 입구 작은 테이블과 그를 마주 본 대기의자에 앉아서 브람스를 맞이하고 얘길 나누는
클라라의 모습,그리고 네 개의 엄숙한 노래는 인간생명의 유한과 죽음 앞에 남은 이 들의
의식을 연결시켜서 3부를 마쳤습니다.
이번 공연기간중 다시 할 기회가 있을거라는 희망으로 브람스의 부분을 비워두고
구성하였습니다.오꾸다 마사시 님과 예플러가 마주 앉아 환담하여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며
낙엽지는 가을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을 준비합니다.
4부공연은 경복궁에서의 대원군의 편지를 민영환으로부터 받아든 명성황후의 얘기,
그 역사의 시간이 흘러가면 다시 프롤로그의 인물이 해설자처럼 등장하여 호롱불아래
뜨개질을 하며 역사 앞에 정진을 고심하고 다시 장이 바뀌어 또 한 사람의 새로운 인물
헤세가 등장합니다.저녁녁 서점에서 일하고 일을 마치고 길을 나서서 집으로 가는
소년의 모습을 배경으로 대학로 문예진흥원자리 측문에 설치된 스크린엔 그가 세상에 남기고간
'아름다운 수채화작품들이 영상으로 거리전시를 가집니다.
1,2부를 공연하였던 빈건물 하나가 이번 대학로 거리공연에 유일한 자유공간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별을 바라보던 그곳이 오늘은 헤세가 일하는 작은 책방으로 탈바꿈합니다.
2010년 10월 14일 목요일오후 2: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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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 이동공연으로 시작해본 [1895년가을디페스타]3일째 5,6부 공연
 
대학로 디페스타의 축제공연여건에 따라서 작업도
3-4장을 한 회로 묶어서 한 회의 공연을 한 장소에서 하는 설치형 공연을 포기하고
1장씩 이동하며 공연하는 방식을 연속화시키는 방식으로 공연 형태를 바꾸고
음향기재도 앰프없이 간이용 스피커를 사용하여 전원연결없이 작업할 수 있게
방식을 바꿔서 3일째 공연인 5,6부 공연을 가졌습니다.
편리한 점은 기동성이고 연속적 공연방식에 따른 장면을 준비하고
거리로 나가서 미리 장소를 보아둔 후 현장상황에 맞게 한 곳 한 곳을 찾아가서
준비한 장면을 3-5분 공연하고 다시 다음장소로 이동하여 세팅하고 공연한 후
다시 움직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전원을 따로 연결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포터블용 음향과 영상기재를 갖고
이동하면서 작업하므로 기동성이 강하고 거리골목골목과 지형지물들을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함이 추가되었습니다.
다만 거리에서 이렇게 일상 안에 문득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익숙치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공연을 시작할 곳엔 디페스타를 안내하는 깃발를 세워두고 그걸 들고 있는 이가
혹시라도 있을 사람들의 질문에 안내를 해줄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번거로움은
감수해야 합니다.
 
하나의 묶음으로 3-4장면을 짧은 이동공간이나 한 공간에서 해야 하는 제약이 없어지므로
거리의 좁은 공간과 특수공간도 이용하여 그 장면에 맞는 공간을 찾아 공연을 할 수 있음이
유리하고 거리공연의 특성대로 무대와 객석을 혼용시키는 작업이 가능합니다.
이제 출연자들이 한두 명 합류하고 까메오나 엑스트라를 지원하는 분들이 늘어나면
작업은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거리공연의 맛을 더할 것입니다.
작품의 주제와 화두가
무심의 거리에 사색적 상념을 펼쳐보며 혹시라도 멈추고 공감하며 자신을 정진할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스치는 것을 꿈꾸는 작업이라서 어떤 면에서는 구경방식의 관객이 모여서 보고
박수를 치고 연기자가 답례하는 방식이 아닌 이미지극과 사색공간의 배치라는 면이
이뤄집니다.
1,2,3,4부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다시 그 며칠 후의 모습으로 5,6부에 재등장하며
그들의 공간에서 우리와 공존합니다.
웰즈의 책을 보는 이,한성의 여행자,아인슈타인,헤세가 비내리는 저녁 대학로 거리에서
115년의 세월을 지나 서있고 걸어 다니며 우리를 향해 꿈을 꾸듯 바라보고 있고
우린 그들을 스쳐 맞아주며 자신의 정진과 존재의 이유를 찾아 나갑니다.
2010년 10월 15일 금요일오전 11: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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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재영화제로 이름바뀐 가을 한옥에서의 이틀간 4회 한옥 마을 영화제
 
한옥 마을 영화제란 이름으로 3회를 가졌던 전주한옥마을 양사재주최의 영화제가
양사재영화제로 이름을 바꾸고 조금은 더 발전한 모습으로
가을 한옥마을 양사재에서 열렸습니다.
한지에 소중히 손으로 직접 쓰고 그린 포스터가 한옥마을 곳곳에 붙어서
소박하게 준비한 영화제와 그 식전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음악회를 소개하고
다소 시리게 추워진 유서깊은 한옥마당에서 작은 음악회로 식전행사를 가지니
많은 분들이 자리를 채워주고 가을한옥에서의 고운 시간을 가족과 같이 즐깁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화제,이름없는공연이 지난 한해간 이 나라 곳곳을 돌면서
바라보고 행동했던 얘기들과 그리며 담아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얘기 나누고 싶어한
작업들이 영상으로 상영됩니다
식전행사를 마치고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비웠지만 그래도 조용하고 집중된 분위기 속에서
끝까지 남아서 그 얘기들을 보아주는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던 시간입니다.
내년엔 4-5월로 시간을 바꿔서 그리고 장소도 몇 군데 더 생각해보면서 이 작고 소박한
만남은 이어질거라 합니다.
향교 뒤편에 소박하게 앉아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분들의 그 모습처럼,아니면
가람선생의 머무르며 그리던 그 마음처럼 평화를 그리는 주인의 소박하고 숨은 정성이
이 작은 행동으로 세상한편의 시간을 정겹게 해주는 영화제였습니다.
.
 
2010년 10월 18일 월요일오후 12: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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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기도 그 열네 번째 ,섬진,영산강에서 .
 
강과 기도 그 열네 번째 순례는
4대강1만체험 333프로젝트 광주 전남 팀의 섬진 영산강 순례와 함께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발론자 들의 수익성에 별 도움이 될 수 없는 지형을 흘러서
그나마 이 땅에서 여유롭게 흐를 수 있다는 강 섬진강.
모래톱과 수달의 서식지,강의 원래 모습은 이러하다고
이제는 이렇게라도 찾고 찾아서 볼 수밖에 없는 이 나라의 강.
하지만 그곳도 길게 쌓여진 뚝방.
그대로 차고 비우며 조화롭게 살아야 할 강변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장벽처럼 쌓아져 버린 뚝은 마치 바다를 가로지르는 방조제처럼
같이 살줄 모르는 인간의 닫친 마음을 증명해줍니다.
광주천 자락따라 영산강길 걸으며 두 개의 강변을 봅니다.
더불어 살고 파 계절을 따라 피고지고 채우며 살아가는 가녀리고도 강한
뭍생명들이 만들어준 모습과 쉴새 없이 파괴하고 학살하며 자신들의 이기로 독식하는
생태계 이단종의 죄악이.
그리고 이번엔 지난번 순례의 반대편으로 가서 통과하는 나주 노안 학산..
상처입힌 이들은 그 사실도 잊은 듯 묵묵히 노동하며 자신들만의 생존을 추구하고
인간과 같은 세상에 살아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주와 질곡의 생을 살아야 하는 뭍생명체들의 숨겨진 눈물 앞에 다시 서며
영산강 구비구비 그리운 존재들이 치루는 이 가을 그 생명의 숨결에 귀기울입니다.
2010년 10월 18일 월요일오후 12: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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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가을]7,8부 헤세의 가을,그리고 지브란과 드보르작이 거닌 아메리카
 
[1895년 가을]디페스타에서의 10일간의 공연 중 둘째주 첫공연,네 번째날 7,8부
 
몇 차례 미팅을 통해서 준비해온 공연자 김경수님이 합류 ,헤세 부분을 같이하고
지브란,드보르작 그리고 유길준이 걸었던 아메리카란 나라의 뉴욕의 얘기가
시작됩니다.
보헤미아와 이슬람과 신대륙의 얘기가
막연한 꿈을 가지고 모여들어 인간이 구축해야 할 신세계에 대한 갈망을 가늠하던 시기.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 뒷골목 짙어가는 가을밤거리 빈 건물 앞 거리에서
무심의 군중 속에 오버랩 시켜보는 사색의 말 걸음.
평화에 대한 인간의 꿈은 세기가 지나도 변함없는데
한때는 갈망했던 그 얘기가 1000년을 지나 어긋나고 첨예화되어 버린 잘못의 구렁텅이 속에서
오히려 무심과 망각으로 버림받은 의로움.
소년 헤세와 지브란은 그 자신도 데미안과 예언자같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리라
생각조차 못했던 시기의 모습으로 이 거리 한편에서 서점점원으로 가난한 이민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만납니다.
헤세의 시집을 들고 그가 그린 수채화들을 가을골목한편에 영상으로 전시합니다.
그리고 클라라와의 만남에서 돌아와 그의 벙환 소식을 듣고 작곡을 시작한
네 개의 엄숙한 노래 그 첫 장은 어느 마을 뒷언덕배기,묘원철문 앞에 놓여지는 촛불과 헌화.
그 누군가의 참배곁에 죽은 이 들에 대한 위령곡이 되어 놓이고
세쟌이 그린 그가 만났던 이들의 초상화가 115년전 가을을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곁에 심어줍니다.
2010년 가을 이렇게 그립고 그립던 1895년의 가을이 서울 대학로 한구석에서 흐릅니다.
묘지철문으로 사용된 경성대 건물은 새롭게 건설되던 뉴욕도서관의 모습처럼 공사 중이고
주마등처럼 보이는 은행나무 사이로 비치는 가로 등빛 아래 떨어지는 낙엽에
헤세의 싯귀가 스칩니다.'
 
Jede Blute will zur Frucht,
꽃마다 열매가 되려하고
Jeder Morgen Abend werden,
아침은 저녁이 되려 하나니.
 
Ewiges ist nicht auf Erden
변화하고 없어지는 것 말고도
Als der Wandel, als die Flucht.
달리 이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Auch der schonste Sommer will
눈부시게 아름답던 여름까지도
Einmal Herbst und welke spuren
가을이 오자 조락을 느끼려 함에.
 
Halte, Blatt, geduldig still
나뭇잎이여, 바람이 너를 유혹하여도
Wenn der Wind dich will entfuhren.
끈기있게 그대로 달려있거라.

Spiel dein Spiel und wehr dich nicht,
네 유희를 계속하며 거역하지 말고.
Lab es still geschehen,
가만히 그대로 내버려 둘지니.
 
Lab vom Winde, der dich bricht,
바람이 굴러가게 하여라
Dich nach Hause wehen.
집으로 불어가게 하여라.
 
2010년 10월 20일 수요일오후 12: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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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9,10부 시해의 그날 그리고 창의를 생각하는 이덕순의 얘기
 
1895년가을 총 20부중 제 9,10부를 그리는 디페스타 다섯째날.
마침내 을미왜란의 사실이 울고 있는 궁녀의 목소리와 추모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조선은 숨겨지고 왜곡된 역사적 사실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고 행동을 준비하는 이들의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창의를 결심하는 이들 중 한 사람인 ,조선군 수비대 이덕순의 얘기는
공연을 지켜온 화자인 한성의 여행자 모습 곁에서 무사의 검무로 표현됩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디페스타의 공간에서 그동안 숨죽여 얘기해왔던 담론이
축제의 메인공간에서 동적인 춤사위로 표현되며
이제 극은 역사적 현실을 외면없이 직시하고 그 안에서 신세계를 찾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구체화 시켜줄 중반부로 넘어갑니다.
디페스타의 공연여건상 30장의 공연은 다소 시간적 사실의 순서를 교차시키면서
총 20부의 공연으로 구성을 진행 시켜갑니다.
115년을 지나 바라보고 찾아가는 슬픈 만남의 노래가 오늘 우리가 지키지 못하고
망각하거나 잊으려 노력하는 어리석음과 그에 대한 자기합리화와 모순된 변명의 대중화에
감각하며 이 가을 대학로 어느 축제 안에서 사람이란 굴레로 서글피 이어집니다.
이제 우리는 지난세기말 같은 괴로움을 안고서도 희망과 용기를 찾아 행동했던
사람들의 얘기를 이어갈 겁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서 퇴화의 속도를 완화시키는 일을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그리하여 한두 사람이라도 이 아픈 세상에서 절망을 벗어나
의로움과 진실을 향하는 마음과 남 몰래 스스로 찾아서 나아가는
자신의 행동하는 양심에 위로받기 바랍니다.
2010년 10월 21일 목요일오전 10: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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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디페스타 여섯째날 11,12부 단코에서 이사도라까지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창의가 준비되던 가을 이제 디페스타의 20부작거리극은
그 해 가을 10월중순과 하순의 얘기로 들어갑니다.
막심 고리끼의 첫 단편 이제르길리 노파가 발표되고 56세의 세쟌은 그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단 한 번의 개인전을 준비하며,두문불출 .생트빅투아리산 속 마을외딴집에서
오직 그림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르웨이, 32세의 에드바르트 뭉크는 오슬로에서의 개인전을 마치고
이 가을 파리로 돌아옵니다.
우리가 이미 만났던 지브란,드보르작이 거닐던 아메리카 신대륙에선 또 하나의 자유인으로
세상을 살아갈 소녀 이사도라가 맨발로 춤을 추며 동네를 뛰놀던 가을이기도 합니다.
고리끼의 얘기 속 이제르길리 노파 그리고 이제르길리 노파의 얘기 속의 단코를 만나
이제 세기말 세상저편에서 이뤄질 아름다운 꿈들과 절망 속에서도 피어난 의로움과 용기들을
준비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절망 속에서도 끊임없는 생명을 추구했던 화가의 작품들을
가을 거리전으로 만나보려 작업을 준비 마칩니다.
대학로 조금은 쓸쓸한 축제의 거리에서 그래도 유희와 놀이보다는 사색과 자기정진의
상념에 귀기울여볼 누군가를 찾아서 거리에 놓아보는 115년전 이 세상을 먼저 살며 꿈꿨던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
총 20부연작중 11부는 단코-세쟌-뭉크-이사도라 네사람의 얘기를 이은 하나의 공연으로
춤과 전시의 형태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한편에서 25분간 공연하고
12부는 다시 각 장 별로 대학로 골목 곳곳을 찾아다니며 이미지처럼 오브제처럼
30장의 남은 인물들 중 몇 몇과의 만남을 무심의 현재공간 안에 겹쳐 투명해보려 합니다.
2010년 10월 22일 금요일오전 10: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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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디페스타,마지막3일간의 15-20 6부의 구성..
 
대학로 2010년가을 디페스타가 열리는 거리 한편에서 만들어보고 만나보는 옛사람들과의
조우.총 30장의 대본을 작성하고 20회의 공간을 구성해서 공연을 만듭니다.
2주간 7일간의 작업으로 14부까지의 공연을 마치고 이제 남은 한주간
작업의 시간을 정리하며 만났던 그들을 보내야 하는 3일간 6부의 공연이 남았습니다.
총 30장의 작업은 중후반에는 을미왜란 평정창의의 장면들이 많이 교차되며
같은 시기 우리가 모르는 지구저편나라에서 비슷한 사고와 인격을 가지고 진행되던
농노와 자유,자본과 사회주의의 지배 피지배의 구조가 형성되어가며 세기말의 슬픔이
애우러 집니다
그리고 신세계와 미래를 향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내고 싶은 갈망과 아프고도 고된 시도들이
이뤄집니다.
3일간의 마지막부분은 그간 7일간의 14부 작업을 통해서 만나고 스쳤던 사람들이
상기되고 그들을 떠나 보내야 하는 이별이 조각됩니다
기획부터 실현까지 15년을 더 기다렸으나 결국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홀로이 영혼들을 만나 그들의 곁에 앉아봄으로서 오랜 숙제를 풀고
그나마 홀가분하게 이승을 떠날 자유를 얻어낸 먼지같은 작업.
인터넷을 통해 그래도 그 아픔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어서
수많은 질문과 의문을 감수하면서도 다가와 같이해준 단 한명의 사람이 있어서
그나마 100년전 사람들 그 그리운 넋들에게 송구스럽지만은 않았던 공연.
수많은 이유와 알 수 없는 퍼즐을 풀어가면서 만나본 그 가을의 해답은
115년이 흘러 이 가을에 예언처럼 더더욱 외롭고
인간은 그렇게 그들이 꿈꾸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것을 추구하고 형성하며
그 안에 제 희망을 이룩하고 갈구하며 살아갑니다.
이 가을 초연의 마지막 날은 끝내 이승에선 만날 수 없는 잃어 버린 한 개의 달을
기억하며 술한잔 적시고 이 가을에 가졌던 존재의 이유를 마무리합니다.
 
아름다운여인 케테콜비츠와 체마이테를 만나고
동대문 안 한 주막 마당에서
벗들이 풀잎되어 피어난 우금티 언덕에서 읽던 유필영의 의병지휘서간을 다시 꺼내 읽을 겁니다.
 
일생에 단하루 사람다웠던 노벨은 남 몰래 유언장을 적고
그가 그 유언장을 적으며 세상에 사죄하던 날 춘생문에선 다시 의로움이
인간의 배신으로 쓰러져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작업을 통해 약속하고 싶었던
심신과 이기의 어리석음으로부터의 벗어나
남은 시간의 정진을 고백하고 약조하며
경포의 달을 보며 115년전에 남들과 술한잔 기울입니다.
끝내 볼 수 없는 님의 눈에 뜨는 달 찾지 못하고
네 개의 달만으로 나룻배를 띄우며.
2010년 10월 25일 월요일오전 08: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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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디페스타에서의 20부연작으로의 초연을 마치고
 
오랜 숙제와 약속을 지켜낸 안도와 또다시 만나게 되는 아쉬운 이별
새로운 인물들과의 만남,한사람 한사람 애정을 갖고 나눠 만들고 싶었던 인물들은
거의 모든 인물을 예플러 한 사람이 표현하고
김경수님이 그중 여섯인물을 맡아주어서 두 사람의 힘으로
그 가을의 만남이 미약했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새겨 만나며 우리곁에 맞아 얘기나눌 수 있게
115년을 뒤로  발자취따라 찾아가본 시간여행이
몇 해를 벼른 가을화두에 의무를 홀가분하게 지워줍니다.
그리고 그 지움과 함께 이제 벗이 되어 우리곁에 와 앉은 그들.
익숙하지 못했던 이름과 그들이 살던 마을과 거리의 이름도 초연히
가까워지고 시간을 넘나들어 귀하게 만난 벗.
대학로 2010년의 가을은 그들을 만나 나누면서 그렇게
남은 시간의 정진을 배웠습니다.
애둘러 읽어보며 스침을 멈추고 감싸 안겨보는 시간의 유추 속에서
불과 한두 시간 후의 자신도 결정 못하고 수없이 약속을 변경하기 익숙해져 버린
이즘의 사람들 속에서
그 무심과 냉혹의 거리 앞에 100년후의 나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는 공연.
유명이 아니라 무명으로서 100년후의 나 자신이 삼라만상 앞에 쥐어드릴 사랑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 실천을 감행하는 먼지같은 존재로서의
공존의 원소.
간혹 우리는 그 무심의 거리에서 시간여행자 혹은 이방인처럼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움직이거나 멈춰있었지만
10일간 20회의 공연시간속에서 당신조차 모르는 당신의 아름다움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들어도 주지 않는 이들에게 초연히 말 걸고 대답 기다리며
공양처럼 기도처럼 남 몰래 흐느꼈습니다.
타인의 죄를 대신할 수 있는 세상,그리고 그것이 용납되어 타인이 지은 죄들이
나의 자정으로 마술처럼 원상복귀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간혹 해보면서
마지막장면 연꽃되어 태어난 벗들을 보며
네 개의 달과 마주 앉아 막걸리 한잔을 마십니다.
그리고 다시 그 홀로 앉아 마시던 그 잔을 돌려 우리가 같이 한모금 마셔봅니다.
 
2010년가을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학로에서의 잔상을 거두어 넋과 함께
조금은 더 홀가분한 가슴으로 님들의 얘길 작은 극장으로 가져가서
이젠 더 이상 기다림도 의미없을 사람에 대한 기다림을 멈추고
관객이 없는 공간,아무도 찾아주지 않을 홍대 앞 어느 소극장 공간에서
당신들이 있어서 불행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 가을의 아름다웠던 만남을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그리고 이제 1895년가을은
4계절 어느 시간에도 가을이 되어 당신들 곁에 가는 날까지 잊거나 망각하지 않고
함께 하겠습니다.
2010년 10월 29일 금요일오후 3: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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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내리는 비에서의 12회째 플페
 
한 사람이 이날의 축제를 위해 공간을 준비해주고
플페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기억하고 준비해서 다가와준
세사람이 만들어준 작은 페스티벌.
그 축제의 뜻을 알 리없는 사람들이 그저 한 사람의 전화를 받고
그의 공연을 보러 와서 보고 담소 나누는 자리로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이름 모르게 이렇게 이루어지는 작은 축제가 또다른 모습으로 이뤄집니다
대추리의 추억과 생명평화를 놓치지 않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한 축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상념에 동참한다면 세상은 이미 아름다워졌겠지만
공연예술의 공간으로 소개되고 이어지는 관객 즉 구경꾼들과의 만남은
형식과 재미를 찾아가며 자아 찾기에만 익숙한
자기희생과 공양을 모르는 세상살이가 이루는 서글픈 인간현실의 단면을
플페의 공간에서도 이어갑니다.
열두 번째 플페를 진행하면서
이제는 플페가 공연의 형태를 벗어나야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관객을 부르지 않는 작업으로
한점 그리움이 되고픈 사람들이 1년을 준비해서
눈물처럼 만나는 양심의 실천으로 재구성되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늘 그렇게 다시 찾아와주고 기억해주며
아름다운 마음 놓지 않고 작업 안에 담아 내는 김진수님은
1년에 한번 이렇게 플페에서 만납니다.
다른 일상은 알 수 없으나 플페때에 보여주는 성숙해진 그분의 모습이
플페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고 만나줍니다.
인간 속에서 그러나 인간들밖에 한 걸음 떨어져서, 초월의 개념으로 존재하며
노래를 전해주는 별음자리표님 역시 플페를 위해 선약의 원칙을 지켜 내준 귀한 분입니다.
다만 플페가 그분의 생각 안에서 누구의 생일이라 거나 누가 하는 축제에 와주는 것이 아닌
한 송이 평화란 제목으로 거리를 스스로 나서던 그가 가르쳐준 축제의 방식을 따르는
자신이 세상을 향해 일 년에 하루를 비워두고 그것을 준비하는 진정한 축제가 되어서
그 만남이 의무가 아닌 소망의 실천으로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이렇게라도
그의 지난한 해의 삶의 족적을 가늠하며 새 노래와 우리를 세상에 있게 해 준 시절의 노래를
다시 듣게 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몇해 전 문래동사람들이 플페를 축제 속 축제로 초대했을 떄처럼
이곳은 어차피 우리가 근접할 수 없는 예술혼 들이 살아 숨쉬며
치열히 만나고 교류하는 곳같습니다.
달에 내리는 비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극장 공간과 그 극장의 주인이 만들어내고
초대하는 얘기,그리고 그 초대에 응해서 찾아와주고 공간해주는 예술가들의 이 거리는
또 하나의 색감으로
대학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교류와 만남의 구조를 만들어냅니다.그래서
이곳에선 촛불집회도 플페도 그저 하나의 예술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지워집니다.
몇해 전 온앤오프분들이 준비했던 물래 아트 페스티벌을 위한 플페 때와는 다르게
정말 정성들여 이 날의 프로그램을 준비해준 오구다님의 정성으로
열두 번째 플페는 플페가 아닌 하나의 공연프로그램으로 낯설게 마무리지어졌습니다.
그리고 또 다음해를 준비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세사람이 있어서 그리고 정성들여 준비해준 분이 계셔서 많은 사람들이
대추리 얘기도 전해듣고 강의노래와 평화에 대한 노래도 스쳐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리바리 짐을 사 들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찾아가 우리가 떠난 후 누군가 머무를 사람들을 위해
준비해간 축제를 담아두고 오던 제1회 플라타너스 페스티벌이
그리워집니다.
다시 그런 사람들 13년지나 만날 수 있을련지
내년엔 홀로 가더라도 황새울 혹은 어달동, 미향마을 혹은 해창산 같은 곳에서의
축제를 준비하며 진정 이 축제의 의미를 이해하고 동행해줄 분들의 참가신청을 받습니다.
2011년 10월29일 아직 선약된 것이 없는 분들 중에서
세상을 향해 가장 외로운 얘길 제 삶의 방식으로 모습지어 얘기꺼낼 사람이 계시다면
하루를 비워두고 님이 주인이 되는 귀한 축제의 시간을 준비해 동지처럼 이방인처럼 그렇게만날수
있길 기다립니다..
2010년 10월 30일 토요일오전 9: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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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극장공간으로 들어가면서.
 
1895년가을이 대학로 거리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해 나가면서
씨어터제로에서의 극장공연 일정을 정하고
같이 할 사람을 찾았지만 그간 의사를 타진했던 사람들 중 아무도
연습미팅을 자지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서 결국 5일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은 의미가 없고
또 대학로 거리극처럼 엑스트라나 까메오의 형태도 용납될 수 없는 극장공간의 속성에 따라
참가자를 마감하고
예플러 혼자의 작업으로 이 공연을 구성에 들어갑니다.
대학로 공연에서 함꼐해주었던 김경수님이 많이 작업에 공감대를 이루며
이제쯤 정말 우리가 하고 픈 얘길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다른 일정이 생겨서 이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아쉽고
오래 전부터 씨어터제로에서의 공연일정을 얘기하면서 작품에 대한 얘기도 몇 차례
들려줄 수 있었던 오꾸다마사시님도 그간 많은 시간 동안 한번도 작업을 위한 준비를
함께 하지 못해서 남은 시간 동안 물리적으로도 인물을 구성하고 상의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고 또 마음 역시 절실한 가슴을 가지고 참여하기엔 문제가 있어서
결국 이 작업에 동행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이 가을에 만나고 나누고자 했던 님들과의 그리움은
11월 한성의 4대문밖 어느 조그만 지하공간에서 115년 이승에 살아있는 한 사람의
실존의 시간 위에 시간 여행을 하시는 님들의 협조로 준비됩니다.
혹시라도 연극이나 퍼포먼스나 하나 볼까 하고 들어오거나
아는 사람이 뭐 하는가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까 두렵지만
가능하다면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우리가 이시기에 꼭 시간을 내어 반성하고 돌이켜보며 정진을 위한 노력으로
바위처럼 먼지처럼 목숨을 걸고 해야 할 일을 찾아가는 걸
공간해줄 사람 한 사람이라도 이승에서 만날 수 있길 꿈꾸며
이 죄스럽고 미련한 인간의 가을에 그들 보다 못한
가장 어리석은 이의 몸과 정신으로 5일간 10시간의 슬픈 고행을 준비합니다.
이 가을 그리움에 답해주었던 아름다운 영혼들이
벗이 되고 100년이 지나도 부끄럽지 않을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대화의 공간.
 
1895년가을 씨어터제로에서의 두 번째 공연은
11월3일부터 7일까지 5일간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 그리움 같이 나누고 싶은 분들이 계셔서 찾아와주신다면
그리고 같이 있고 싶다고 말 걸어주신다면 그분이 넋들과 같이할 공간에 오시는 방법
알려드리고 그 약속된 시간에 기다리겠습니다.
2010년 10월 30일 토요일오전 9:4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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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 씨어터제로에선 2부작으로
 
1895년가을 극장공연인 씨어터제로에선
예플러의 모노드라마로 그리고 같이하기로 약속하고
자신이 함께 할 장면의 인물을 설정하고 의상과 소품을 준비하여 찾아올
참여자들을 기다리며 공연을 구성합니다.
총 30장으로 구성되었던 공연은 14장과 16장을 빼고
1장에서 15장까지를 1부로
17장에서30장까지를 2부로해서
2부작으로 구성,하루에 한부씩 공연을 진행합니다.
첫날 3일은 만남을 위한 설치의 공연입니다.
씨어터 제로 빈 극장공간을 두 사람이 다가와서
1895년가을의 님들을 만날 공간으로 준비를 하는 모습이 공연됩니다.
그리고 4일과 5일에 첫 번째 1,2부가
6일과 7일째 두 번째 1,2부가 연작으로 공연됩니다.
작업은 설치영상전 형태의 모습으로 115년후의 사람이
옛사람들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만나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 작업의 화두를 기억하고
실천의 방법을 찾아보는 과정이며 보여주거나 관객과 만나 소통하는
방식의 공연이 아닌 스스로 찾아가는 시간여행의 형식을 취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실 분들이 계시다면 오신다고 연락주시고 시간을 정하면
그 시간에 동행하는 방식으로 공연이 이뤄지며
그저 공연을 보러 극장을 찾아오는 방식으로는
이 작업을 만나실 수 없습니다.
 
1895년가을의 한성사람들을 만나실 분은
개량한복이나 민복을 준비하셔서 오시면 됩니다.
같은 시대를 살던 유럽이나 아랍,신대륙을 거닐던 분들을 만나실 분은
현대의상이 아닌 수수한 근대적 의상을 입고 오시면 됩니다.
책이나 호롱불 촛불,망원경,등 대본을 보시면서 상상하실 수 있는 그 시대에 어울릴
소품들을 갖고 오시거나 오셔서 만드는 작업도 가능합니다.
객석없이 무대에 함께 앉거나 서서 거닐며
보 실 수 있습니다.
브람스의 피아노곡을 들으시며 클라라와 같이 먹을 과일바구니를 준비해오셔도 좋고
헤세가 점원으로 있는 서점에 들어오셔서 책을 골라보실 분은
자신이 골라서 볼 책을 몇 권을 갖고 오셔도 좋습니다.
아무도 오신다는 분이 안계신 경우에도 오전 10시에서 3시사이 어느 시간에
1시간20분간 공연이 진행됩니다.
극장은 언제나 열려있고 출입이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입장하시면 잡담하시거나 2010년의 사람으로 행동하실 수 없습니다.
공간의 약속이 깨어지므로
이 약속을 무시하거나 모르는 사람은 이 공연에 초대되지 못합니다.
2010년가을에 115년전 그 가을의 시린 아름다움을 만나는 작업은
11월3일부터 7일까지 그 두 번째 장소인 서울의 홍대 입구 조그마한 지하극장공간에서
이뤄집니다.
오늘 이승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실 100년을 지난 후 누군가가 무명의 존재로 바라보고
평가해줄 자신을 만드는 작업이 부질없고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업은 거리아닌 실내공간에서의 작업은
그들과 무관하게 정말 그리워서 찾아오는 사람만을 만나는 작업으로 이뤄지며
아마도 단 한 사람의 이승의 인물도 만나지 못하고 그저 넋들과 만나는 슬픈 공간으로
5일간의 기다림을 마무리 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만남을 기초로 다시 일어서
남은 생의 마지막 길,기력을 다해 그들이 쥐어준 얘기에 귀기울이고 용기얻으며
이 작업을 통해 온 계절 모두 가을이 되어집니다.
2010년 11월 1일 월요일오전 1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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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 씨어터제로 설치 영상 공연은 이렇게 구성되고 전개됩니다.
 
1부(11월4,6일공연)
1한성-2대원군-3아인슈타인-4타임머신-5클라라(브람스)-6죽음-7명성황후
-8한성-9헤세-10지브란-11드보르작-12서유견문-13궁녀-14단꼬
2부(11월5,7일공연)
1이덕순-2세쟌-3뭉크-4이사도라-5우금티-6케테콜비츠-7체마이테-8의병지휘서
-9노벨-10유언-11춘생문-12에필로그-13네 개의 달
 
씨어터 제로에서의 공연은 영상설치전의 모습을 취합니다.
극장공간의 두면 혹은 세면에 빔프로젝터로 두 개의 영상을 투사하여
시간적 흐름을 음향과 함께 진행시킵니다.
만약 영화나 영상회에 익숙한 사람이 있다면
한편의 영화를 보는 자세로 이 작업을 대할 수 있게 영상회가 진행됩니다.
극장공간은 객석없이 바탕무대와 극장 구조물사이에
27개의 에피소드를 표현할 19개의 공간을 세팅합니다
 
한성의 여행자의 공간을 기본으로 해서
아인슈타인의 실험공간
타임머신을 읽는 공간,
브람스를 기다리며 과일을 준비한 클라라의 공간,
죽음에 대한 헌화가 이뤄지는 공간,
헤세가 일하는 서점과 거리공간,
지브란이 살던 뉴욕
드보르 작이 거닐던 아메리카
단꼬의 얘기를 들려주는 노파의 공간
세쟌의 화실 그리고 세쟌의 전시회공간
뭉크의 어두운 작업 공간
우금티 언덕
직조공들과 같이하는 케테콜비츠의 공간
농노들과 함께 하는 체마이테의 공간
의병지휘서를 읽을 공간,
노벨의 회상공간
유서와 평화행동가들의 행동공간
춘생문의 새벽소식을 듣는 여행자의 공간
경포,마지막술잔을 홀로 드는 이의 공간
 
이 공간들은 무인의 정물로 혹은 공연자의 실존으로
아니면 그곳을 준비하고 찾아와 거기에 머물러주는 누군가의 공간으로
자유롭게 활용되며 한 공연자의 이동공연방식으로 전개를 가집니다.
 
공연은 1부는 1시간18분31초
2부는 1시간 1분 49초로
2회에 걸쳐 진행되지만
누군가 하루에 다 함께하고 싶다는 분이 계시면 그분을 위해서
그 날은 총 2시간20분20초의 공연을 이어서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영상의 여백은 공연자가 채우거나 함께 만나시는 분들이 채우는 공간이며
채우지 못하면 그대로 비워두는 공간으로 소리와 함께 색감만을 벽에 투영합니다.
 
영상이 투영되지 않는 시간은 27개에피소드에 인물들이 살고 있는
19개의 공간을 상징하는 인물들의 오브제가 전시되어있는 설치미술의 전시공간 모습을
띕니다.
 
공연 안에서 그 시간 그들이 나누던 얘기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고픈 편지나 선물 어떤 오브제의 나눔도 가능하지만
이번공연엔 준비한 사람이 따로 없어서
그 부분은 쓸쓸한 여백만으로 공허하게 흐를 겁니다.
오히려 아무도 오지 않고 그리지 않는 그러한 무관심이
지금을 표현하는 현실이 되어서
115년후 가을의 무심을 증명해주는 극의 전개를 도울 것입니다.
2010년 11월 2일 화요일오전 8: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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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어터제로에서의 1895년가을은
 
2010년 11월,115년전 가을을 살다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그들과
가슴 조아리며 조심스레 얘기나누기 위해 준비한 가을이 또 하나의 현실과 추억이 되어
흘러갑니다.
공연이라는 형태를 갖추고 이어지지만
이렇게 공연이란 핑계로나마 그들과 공유하며 실존할 수 있는 이 가을은
이승에서의 재의를 판정하고 정리함에 있어서 하나의 작은 디딤이 됩니다.
10월한달간 만남을 만들었던 대학로 디페스타의 거리에서의 작업은
이제 아무도 없는 작은 공간으로 그들을 모시고 와서 조용히 만나며
혹시라도 다가와 115년전의 그 시간을 공유해주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설치미술전을 꾸미는 갤러리의 작가처럼
영상전을 준비하고 상영하는 독립영화감독처럼
그리고 아름다운 기억을 더듬으며 만남을 초대하는 제의사처럼
홍대 앞 씨어터제로 지하소극장공간에서 닷새간의 가을오후를 머무릅니다.
 
낯설게만 느껴졌던 이들이 이제는 동지가 되어 시공을 초월해서
그들 또한 그렇게 외로웠던 시간들과 상기하던 자정의 시간들을 속삭여 들려주고
지난달 대항로에서의 만남은 이제 또 하나 이름모를 민초의 역사가 되어
들풀처럼 이곳에 심어집니다.
다섯 날을 첫날은 만남을 기다리며 초대의 공간을 만드는 작업으로
둘째날부터 다섯째날 까지는 1,2부 연작으로 재구성한 만남을
이틀씩 두 번 반복하며 지금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먼저 간 그들의
마음 앞에 섭니다.
대학로에 서는 전체일정은 같이 못했지만 그래도 다가와 동지가 되어주었던 한 사람이 있어서
그나마 외롭지 않았는데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이곳은
그마저 없이 예플러 혼자서 그들의 공간을 찾아 옷을 갈아 입으며 시간여행을 합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하기에 모노드라마 같기도 하고
영상과 대화하며 등퇴장하는 여백의 반복이
영상 앞에 자주 등장하는 한 사람의 공연 같기도 하고
공연하다 자리를 자주 비우고 영상으로 연결하며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씨어터제로에서의 공연이 외롭지 않은 것은
이 공간을 마련해주고 단한 명의 관객이 되어서 같은 공연을 보아주는 한 사람이 있어서 입니다.
20부연작으로 거리에서 공연된 작업은 출연자조차 모두 볼 수 없어서
아무도 그 줄거리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단편적인 이미지를 스침에 불과했지만
씨어터제로에서의 공연은 이틀간의 공연을 통해서 이 작업의 전체를 만날 수 있어서
이렇게 1시간을 같이 있어주면서 그 의미를 같이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인물들과 그들과 만나며 알게 된 숨은 얘기들이
115년을 지나서야 이렇게 하나로 모아지는 숨결의 연장 속에서
그 참담한 퇴화의 현장 속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끝없이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인가를 쓸쓸히 확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못하는 자신의 우주에서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자성해보는 꿈.
1895년가을을 작업하며 다시 만나는 것은
언젠가 뜻 모르게 화두삼았던 그들이 떠나온 하늘에 대하여 입니다.
 
사람들은 잘도 만나는데
모처럼의 극장공간을 마련하고 거리아닌 공간에서 닷새간 만남을 기다리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은 이름없는공연이란 작업이 가지는
이승에서의 삶의 방식이 이제는 그들에게 소통의 흥미도 존재의 가치도 잃은 이유일 겁니다.
15년전 시작된 이 작업이 결국은 그렇게 인간 아닌 원소로서의 사람얘기로 전개되었습니다.
공연도 아니며 행사도 아닌 그래서 타인이 흥미를 가질 수 없는
실존의 방식이 되어 이렇게 이 가을을 귀한 그리움으로 싹 피우고 집니다.
 
1895년가을의 마지막얘기는 이렇게 어렵게 만난 그분들과의 얘기를 조금 더 연장하고자
창의일에 즈음해 한옥마을 전주에서의 작업으로 이어가려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마치면 이 가을 이승에서 홀로 함께 한 1895년가을과 함께
2010년의 가을도 하나의 얘기가 되어 누구의 관심도 끌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언약이 되어
우주한편에 먼지처럼 휘날릴 겁니다.
 
남은3일간 아무도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같이하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도 없었던 인간세상에서
혹시라도 무슨 공연이라도 보려는 듯 보러 와주거나
쓸데없는 관심과 부질없는 이기적 인연이 우선되는 인간적사고로
이 작업의 공간이 만나지고 인식되는 일이 있을까 넋들에게 두렵습니다.
2010년 11월 5일 금요일오전 8: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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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가을 씨어터제로 공연,인연의 확인과 소수자와의 만남을 향한 작업을 마치고..
 
지금 이시기 이곳에 살면서 이기심을 버리고 자기 아닌 다른 것과의 존재함을 위해
추구해야 할 것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찾고 제시하며 실천하는 작업,
그것이 공연의 형태를 띄고 준비되고 제안되는데
아쉽게도 그 화두가 소수자를 찾아가는 일이 되어 버린 현실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자가 전쟁을 추구하는 자들 속에서 소수자가 되고
자기와 자기집단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과 남을 해하는 것이 절대 안된다고 믿고
그렇게 행하려는 자가 소수자가 되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살길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어렵게 노력하는 이들의 삶이
그렇게 할 필요까진 없다고 여기며 쉽게 타협하고 포기하는 것이 인간적이라는 세상에서
소수자가 되어 버린 이곳에서..
이름없는공연은 대중의 그런 마음에 피해주고 불편하게 해드리기라도 할까봐
그들을 피해 한구석에서 희소해 져가고 사라져가는 소수자를 찾아
한 순간이라도 잠시 스쳐 만나고자 갈망하는 작업으로 그 긴여정의 찾음을
귀결지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객즉 구경꾼과 평론가가 외면하는 작업을 원하며
그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세상에서 정말 다른 생각을 바보처럼 하는 사람들이 시간과 용기를 내어서
찾아 만나는 ,그러면서도 절대 특별시되거나 유명해지지 않아야 하는 이름없는 작업을
그립니다.
1895년가을은 그렇게 준비되었고
그 의미에 다라 거리를 벗어나 작은 극장 공간에서
아무도 오지 않기를 바라며
절실한 가슴으로 그래도 혹시라도 이승에 이런 관심 가져줄 사람 남아있을까 꿈꾸며
재미도 없고 흥미도 끌지 못하게 설명도 해설도 없이
찾아서 풀어야만 찾을 수 있는 그런 암호를 연결시켜서 21세기초 인간시공간에 서
3개월간의 메아리도 없는 수백개의 편지들을 통해 작업노트를 적고
그 결과물을 5일간,극장공간에 담으며 남들을 기다렸습니다.
공연이 종반에 다다를 즈음 마지막 희망으로 그래도 이곳에서 인연을 가졌던 이들,
전화번호부에 적힌 서른 명 정도되는 이들에게 늘 받기만 하던 버릇을 버리고
만나고 싶다는 문자메세지를 스펨처럼 보냈습니다.
고맙게도 세 사람이 그 귀한 시간을 내서 이 그리움에 답해주었고
그들이 있어서 115년전의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꿈을 계승치 못하고 파괴하며 이승을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은 덜해졌습니다.
공간을 내어주고 이 작업을 정성껏 준비해주었던 이정희님
그리고 정말 참 오래만에 만나 며칠을 매일 찾아와 함께 해 준
15년전 가을 이 작업연작의 첫 순간을 같이해주었던 오카모토님.
그리고 대추리와 낙동강 영산강을 같이 거닐며 작업했던 이정훈님
5월27일밤 옛 도청을 넋들과 같이 지새우며 그 새벽을 같이 맞기 위해 이름없는 작업에
동행해주었던 김봉호님.
세상을 살면서 그래도 이승에서의 존재함이 인간 속에서도 가치가 있었다고 용기주신
이 네분이 있어서 홀로 절규하던 115년후의 좌절은 그래도 다시 용기를 갖고
여생을 가게 합니다.
언제또 이렇게 귀한 공간에서 귀한 그리움
순수한 마음그대로 광고없이 관객아닌 사람들만을 만나며 같이할 수 있을 기회가 올 수 있을까
감사하며 이 가을 홀로 꾸던 꿈얘기를 네사람과 같이 여성이서
넋들과 함께 꿈속에서 나눕니다.
2010년가을은 그렇게 흘러가고
오늘은 우금티 언덕에 제를 드리던 사람의 시간입니다.
직접 가진 못하지만 새로운 세상 만들기 위해 나서던 그 날의 사람들에게 쥐어진
의병지휘서 조각, 고이 접어 품에 안으며
다시 강으로의 순례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다시 4,3제주에 이제는 순례가 아닌 한점 그리움으로 3박4일의 여정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돌아와 전주화약의 그 거리에서 호롱불에 불 켜며 1895년가을의 얘기를 마무리지으면
2010년 이 가을은 사가들의 시선 안에 들어오지 않는 남 모를 역사가 되어
들풀이 되어 실명인의 민화처럼 이별 어느 곳에서 단코의 심장처럼 짓밟혀 산화합니다.
1895년 가을 소수자들이 이루고 싶었던 꿈은 아무 것도 인간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전례는 115년이 지난 오늘의 꿈 역시 100년이 지난 돌이켜보면 그러할 겁니다.
하지만 소수자가 할 일은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고
바라지 않고 행하는 것입니다.
115년이 중첩되어 흐르는 가을,그때 이 별 곳곳에서 귀하게 찾아낸 님들의 소중한 모습이
오늘에도 꺼지지 않고 눈물처럼 더 강하고 여리게 자연이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2010년 11월 8일 월요일오전 10:33:01
http://yegie.com/1895zero/page_0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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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공연의 [1895년가을-디페스타] 공연영상집완성
 
대학로 페스티벌(디페스타)의 거리공연을 계기로 지난15년간 준비해왔던 작업을
1차 초연본으로 완성한 [1895년가을]의 공연영상집을
132분의 영상으로 완성했습니다.
1회에 15-20분정도의 분량으로 연속극형태로 10일간 20회에 걸쳐 공연했던
이 작업은 총 공연시간은 총 30장의 300분정도가 되지만
연작방식에서 겹치는 부분을 정리하고 편집하여 전체대본중에서 제외된
몇 개의 에피소드를 빼고 공연된 전체 줄거리를 수록하여 총 2시간12분의 영상으로
편집을 마쳣습니다.
이 영상은 극장공연으로 이어진 씨어터제로 공연의 두 개의 다른 배경영상중 1부영상으로
1,2부로 나뉘어서 공연의 메인스크린을 투영되기도 했는데
자막처리등을 수정하여 디페스타 거리극의 모습만으로 영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아마도 다로 영상회를 가질 일은 없겠지만 초연의 모습과 극장초연의 배경영상의 원본으로서
후의 작업에 자료가 될 수 있게 생략없이 전체공연의 음향과 영상을 수록하다보니
2시간12분이란 큰 용량의 영상이 되었습니다.
1895년가을은 이 작업을 초연으로 이제 또 하나의 연작으로 부분공연되거나
발췌공연을 거듭하면서 이름없는공연 안에서 존재의 가치를 찾아 정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디페스타 공연에는 이 작업을 이룰 수 있게 기회를 마련해준 디페스타 outdoor프로그램 기획진과
스텝들 그리고 이 공연에 유일하게 다가와서 함께 그 얘기를 부분적으로나마 같이
실존시켜 주었던 김경수님의 동행이 작업을 더 풍부하게 해주었습니다.
1895년가을 초연인 디페스타편의 공연사진집은
1895년가을(20부연작거리공연1,2부)2010.10.12 디페스타 
1895년가을(20부연작거리공연3.4부)2010.10.13 디페스타  
1895년가을(20부연작거리공연5.6부)2010.10.14 디페스타 
1895년가을(20부연작거리공연7.8부)2010.10.19 디페스타 
1895년가을(20부연작거리공연9.10부)2010.10.20 디페스타 
1895년가을(20부연작거리공연11.12부)2010.10.22 디페스타 
1895년가을(20부연작거리공연13.14부)2010.10.23 디페스타 
1895년가을(20부연작거리공연15.16부)2010.10.26 디페스타 
1895년가을(20부연작거리공연17,18부)2010.10.27 디페스타 
1895년가을(20부연작거리공연19,20부)2010.10.28 디페스타  에서
132분의 공연영상집은
1895년가을-디페스타 이름없는공연 공연영상집(132분)
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2010년 11월 9일 화요일오후 4: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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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4일 [겨울여행3-고립장벽] 공연구성
 
언젠가 빛고을에 갔다가 그 기차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차표를 갖고 떠나는 여행을 세 번째 겨울여행의 테마로 삼아
벽과 경계를 구름처럼 통과하는 여행을 그려보았습니다..
팔레스타인평화를 위해 동행하는 사람들에게서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은 아니 점점 더 단단히 보수되는
지구 저편 고립장벽에 대해서 얘길 듣습니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와 인권의 차단,
그 편의를 위해서 인간이 이 땅 위에 만들어 세우는 크고 작은 수많은 장벽들.
그리고 그 장벽으로 인해 빼앗겨 버리는 인간의 삶.
그 고립장벽 앞에 다가가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습니다.
세 번째 겨울여행 그 다섯번째 작업은
함께 만들 평화를 그립니다.
평화는 그저 아침에 일어나서 기대처럼 준비하고 자연의 모습대로 떠나는
어느날의 여행입니다.
아침,창을 열어 하늘을 바라보고 뒷마당에 피어난 꽃에 물을 주고
오늘 오라고 적어준 벗의 편지를 다시 펴서 읽어보고
차한 잔을 마시면서 샌드위치를 준비해서 도시락을 싸서 들고 집을 나서는 아침.
삼나무밭길을 지나 마을언덕에 올라 바라보는 간이역,
열차가 오면 차표대신 하얀 종이꽃송이하나 들어 보이고 열차에 오르고
마을버스처럼 곧 내리는 냇가길.
손을 담궈보고
걸어가며 보이는 장벽
하지만 가만히 손으로 밀면 벽은 구름처럼 열리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인사하고
다시 이슬방울처럼 시작되는 일상.
모두 평화만을 노래하고 언덕 위엔 어제처럼 다시 꽃이 피어나고
들풀과 들꽃처럼 사는 사람들
통일된 행성에서 다시 바라보는 아름다운 노을.
 
.1.길
경계를 만들어둔 곳
장벽을 지나는 기차역
기차를 태워서 장벽을 건네주는 사람

길은 자연이 만들어 배려해준 대로 지구생성과 동시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통해 물이 흐르고 바람이 가로지르고
생명들이 움직였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거나 돌아서 갔고
그래서 못갈 길도 없었으며
벽이나 경계 또한 없는
이 행성은 물과 뭍이 조화롭게 이뤄진 그대로의 길이었습니다.
 
어느날 인간이 생셩되고
더 많이 갖고 싶은 자와
빼앗고 싶은 자가 생기면서
내가 갈수 있는 곳과
다른 이를 가지 못하게 하는 곳을 만들고
내 영역과 네 영역을 구분하면서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를 구분짓는 것을 길이라 하였습니다.
길은 갈수있는 것이 아니라
이만큼 만 가고 저 만큼은 가지 못하며
누구는 통과하고 누구는 통과할 수 없는 제한의 공간으로서
이 행성 위에 구분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 제한을 오히려 길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말하는 그 길이 생김으로서
자유롭게 다니던 통로는 제한되거나 막히고
길과 길사이에는 매표소나 증명서제시를 요구하는 경비초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 길은 극소수 인간들의 길입니다.
그 제한을 만들고 따르는 이들만의 구속입니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람들에겐
그 경계나 국경이 없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그 길이 그들 앞엔 상존합니다.
 
2.장벽을 넘어가는 기차
지금 우리가 떠나는 이 겨울여행의 기차는
인간의 이기심을 저편에 두고
예전부터 있었던 그 길을 다닙니다.
 
이 기차를 타면 인간이 이 행성에 만들어놓은
어리석은 경계와 벽과 국경을
연기처럼 통과합니다.
 
당신이 이제 그것을 알게 되어 이 열 차표를 얻게 되었으므로
다니며 경계를 버린 또 다른 사람들에게
통일된 행성의 여행을 인식 시켜주는 이 열차표를 전해주세요.

2010년 11월 13일 토요일오전 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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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기도15-이름없는공연4대강순례연작,333프로젝트 남한강,낙동강 길에서
 
다시 그리운 강과 만납니다
100년전 그 가을을 살던 사람들과의 만남 안에서 공존을 당연시하던 시간을 벗어나서
악몽을 꾸듯 비현실의 공간에서 다시 만나야 하는 강.
강은 115년전의 사람들과 우리를 비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33프로젝트와 함께 가보는 강길.
그래도 지금 이땅에서 이렇게라도 강을 찾아가는 아름다운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러면서도 늘 조금은 서운한 것은
오늘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을 처음 만나러 가는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안내하는 분들은 불과 몇 계절 전에 몇 개월 전에 있었던 그 아름다움을 기억시켜 주려고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파헤쳐진 현장 앞에 이 분들을 안내하지만
안이한 우려로서는 따라 갈수도 없게
무서운 속도로 세차게 파괴하고 학살해 나가는 저들 앞에서
원형을 알길 없는 그들이 그리는 한숨과 각오는
강에게 그 아픈 소식 전하며 설마 하는 가슴으로 찾아갔던 그날.
그들과 같이 얘기나눈 어느덧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 버린 그 시간을
이 처참한 현재에 중첩시켜야 하는 슬픈 순례자의 눈에는 낯설기만 합니다.
이름과 추억만이 남은 바위늪구비엔 아직도 떠나지 못한 새들이 건설장비들의 소음곁에서
죽어가고 트럭에 실려간 벗들을 찾고 있고
내성천 모래강은 오늘도 그렇게 마지막 자연의 길을 따라 곡선지어 흐르며
본류와 지류곳곳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학살과 강제이주를 자행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묵묵히 견뎌냅니다.
언젠가 여강 금모래 은모래와 바위늪구비를 지나왔을 이 모래들이 오늘 여기서
사람들에게 지나온 곳의 얘길 전해듣습니다.
물 밖과 물 속에서 숨쉬던 습성을 이제는 잊어야 하는 들꽃들이 변해 버린 강,
얕고 옅은 강길따라 반기던 겨울고향을 잃어야 하는 겨울새들에게 전할 소식에 눈물 맺혔는데
위로도 해드릴 수 없는 우리는 결국 인간을 제외하고 지켜낼 당신들의 자정을 염원합니다.
2010년 11월 14일 일요일오전 8: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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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여행3-고립장벽]1114평화 그 그리움으로 300
고립장벽앞, 평화 앞에 벽은 착시였고 우린 꽃한송이로 그 곳을 통과합니다.
 
[겨울여행3-고립장벽]1114평화 그 그리움으로
평화 그리기 그 삼 백일째 되는 날 서울에서.
꿈속에서도 꿈을 꿉니다.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입니다.
인간의 이기가 진실이 아니고
인간의 간절한 사랑이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저지선에 가로막혀 편지조차 전할 수 없는 이 나라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남들에겐 허망해 보이는 일,이 세상에서 평화를 그리는 것이 현실인 이들이
11월14일 이 지구 곳곳에서 같은 꿈을 현실화시켜 내는 이들과
또한 번 꿈 안에 모였습니다.
세 번째 겨울여행 그 다섯 번째길에 오른 저희도
파람으로 가는 길목에서처럼
필연적으로 당신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피켓을 들고 있는 손에 우리가 이룬
벽도 장벽도 없는 통일된 세상을 통과하는 기차표를 한 장씩 전해드립니다.
홀로 가다가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우린 또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순례를 떠나겠지만 이렇게 이곳에 모여서
눈물 속에서도 희망을 실천하는 분들이 계셔서 용기가 납니다.
기차는 하얀 종이꽃 한 송이 꺼내 보이면 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차가 가는 길 막아 서 있던 장벽은
손 내밀어 가볍게 밀면 그것이 인간의 이기와 무지가 만들어낸 착시와 허상이었음을 알려주며
태초의 그것처럼 누구나가 같이 걷던 자연그대로의 길을 보여줍니다.
절망 앞에 당신들이 서있어서
인간은 평화를 현실화시킵니다.
죽고 또 죽어도 죽이고 또 죽여도 다 못 죽일 그 평화의 실체를
님들이 하나의 원소와 효소가 되어 인간 안에 이어갑니다.
2010년 11월 15일 월요일오전 9: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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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점,그리움-언젠가 떠났던 그날처럼..
 
한점 그리움 ,누군가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제안하고
같이 떠나던 작업.
그 제안은 오히려 낯설음으로 인해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몇 년이 흘러
이제 두 번째 그리고 그 제안에 답 해주는 사람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홀로 그 작업을 떠납니다..
4.3순례도 끝내야 했던 그 마지막 여행길에서 돌아와
한점 그리움안고 다시 준비하는 님들과의 만남.
그저 그리움 한점 만 갖고 아무도 함께 하지 못하는 이승에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분단을 원치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화해도 소용없이
계엄령이 선포되고 그 아름다운 섬의 중산간이 쓰라림에 당도하던 그 날 그 시간을 찾아서
60년지나도 이루지 못하고 퇴화만 해가는 이승을 사는 인간의 실존 앞에서
함덕에서의 3박4일간의 일정잡아, 한점 ,그리움으로 다가갑니다.
2010년 11월 15일 월요일오전 11: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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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점 그리움-계엄하 제주섬에서..3박4일간의 공연을 마치고
 
한점 그리움으로 계엄하 제주섬에 다가갑니다.
며칠 전 육시우영 거쳐 원동마을에서 들려온 믿을 수 없는 소식.
그리고 헌법에도 없는 계엄령이 섬전체에 발효된다는 소식에 뭍을 떠나
달려가보는 섬.
함덕에 3박4일간 머무르며 한점 그리움 그 두 번째 여정은 시작됩니다.
계엄령의 아픔을 기억하며 찾아왔는데 그날 제주는 강정에 해군기지를 수용하기로 발표하고
이제는 스스로 용납하고 파괴해 나가는 평화의 섬,
그렇게 당당히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마음을 더 이상 달랠 길은 없고
평화는 죽은 이 들의 가슴에만 염원처럼 남아 맴돕니다.
 
9연대본부가 주둔한 함덕 백사장.서청과 함께 작전을 준비하는 군은 계엄령으로
더더욱 삼엄하고
지난날 말부터 토벌군은 제주출신 9연대장병 100여명을 총살했고,
양민들과 함께 도내 곳곳에서 체포해오는 공무원 교육인 언론인들의 모습이
서우봉 아래 함덕에 서글프고 아린 모습으로 다시 보입니다.
15일밤 뭍에서 다가가 마주하게 된 함덕은 그렇게 젖어들고
16일 아침 연대본부를 지나 오르는 서우봉은
화사하던 유채꽃도 모두 지고 밤새 들리던 몇마디 총성만이 의문처럼 짓 씻겨진
서우봉 기슭과 파도 삼키는 검은 돌과 돌 사이.
미끄러짐에 찟기워지고 부러진 나뭇가지들의 흔적.
북촌지나 김녕거쳐 구좌 중산간으로 올라갑니다.
비자낭 숲으로 그윽한 평대 근처에서 중산간 마을사는 아름다운사람들의 모습
간혹 만나면 62년이란 시간의 차이로 직접 말을 걸 순 없지만
님들의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욱 슬픈 만남,무심이 오히려 낯익은 그 만남.
아련히 스쳐갑니다.
수백 년 지기 숲과 나무들이 얘기해주는 말
같은 장소에서 그들은 평화를 듣고 있고 우린 오늘이후의 슬픔을 보고 있습니다.
세 번째날 다시 함덕에서 출발하여
북촌 김녕 지나 비자에서 중산간을 걷기 시작
계엄령이 선포된 오늘,다랑쉬 마을로 찾아갑니다.
구좌면 유격대가 있다는 다랑쉬오름
세화 쪽 길에서 보이는 다랑쉬오름아래 마을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중산간 마을마다 군경토벌대의 소개령이 내렸다는데
찾아가는 길 목장을 가운데두고 저 멀리 오름 아래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련히 보입니다.
빗질하듯 수색하였다는 오름.
흐린 하늘 아래 늦가을이 섬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초토화작전이 시작되던 날.
언젠가 우리가 세워두고온 마을이정표,사방탑처럼 돌 하나 얹고
빈 마을을 거닙니다.
그리고 다랑쉬 오름에 오릅니다.
오른 후 분화구를 가운데로 오름을 걸으며 62년을 중첩해서 섬을 내려다봅니다.
오름 정상에 조그마한 관리초소.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그곳에서 한 분이 나오시면서 방명록을 내놓습니다.
월랑봉정상에서 오늘 굳이 이곳을 찾아 올라온 이에게
일상처럼 반기시며 좋은 시간되라고 인사해주는 분.
그리운 분들 생각하며 이름없이 숨결 기록하고 다시 걸어보는 오름길.
동굴로 거처를 정하고 숨어 살아야 할 저 분들의 행렬,
이제는 다시 오셔서 이 오름 위에 같이 앉아서 고운 바람결따라
억새와 들꽃되어 그 날을 추억하듯 얘기 들려줍니다.
한 점 그리움으로 님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뭍은 아직도 당신들의 깊은 시름과 가슴을 모르고
다가가고픈 뭍사람의 마음 역시 당신들의 곁에 받아들여지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중첩시켜 맞아주는 분들.
그리고 인류와 함께 살아준 아름다운 섬..
겸허히 그리고 조심스러움 안은 채 소중히 준비했던 한 점 그리움,
님들의 포근함, 귀한 만남에 감사하며 뭍으로 돌아옵니다.
2010년 11월 18일 목요일오후 6: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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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공연,이제는 관객없는 공연을 향해서..
이름없는 공연을 준비하고 또 실천하면서 보다 절실해지고 또 그래서 찾아가는 길 중 하나가
관객 없는 공연의 지향입니다.
구경꾼 혹은 관중이라 의미되는 백과사전적 어휘.
국어사전에는 공연 따위를 구경하는 사람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구경의 뜻은 흥미나 관심을 가지고 봄. 혹은 흥미나 관심을 일으키게 하는 대상.
이름없는공연은 우선 방식상에서 상행위를 벗어났고
언제부턴가 주제나 소재에서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에서 벗어나려 노력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인간의 흥미와 관심을 찾아가며 그들과의 소통을 찾아야 하는데
처음시작할 때와는 달리 세기를 지나며 인간의 흥미와 관심이 참과 진실 정의에서 멀어져가고
공연과 관객의 관계 역시 절실한 그리움의 만남이 아닌 낱말뜻 그대로 구경꾼과
그들 앞에 상품을 만들고 제시하는 행위로서의 만남으로 귀착되어갑니다.
특히 공연의 요소 중 하나로 낙점지어진 관객의 성향이 이렇게 귀착되어갈 때
이름없는 공연이 할 수 있는 진정한 그리움의 길은 일반론적인 공연이기를 포기하고
그 요소라는 관객을 피해가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절실한 그리움을 가진 사람들이 약속처럼 우연히 만나 다다르는 그곳에서 나누는 얘기.
일상공간 안에서 흥미와 관심에 휩쓸리지 않는 존재의 의미와 도리로서의 꿈을 기억하고
그것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서 절실한 가슴으로 준비하고 행하는 작업을 공연이라 하고
같은 마음을 가진 이 들이 모래알처럼 찾아내어 스스로 순례처럼 다가와 만나게 되는 것을
만남이라 하려 합니다.
그래서 구경꾼이 아닌 참여자로서 비록 같이 는 못하여도 다른 방식 다른 길에서 교차하며
필연처럼 다다르는 그곳에서 만나는 것.
이름도 중요 치 않고 흥미나 관심도 중요 치 않은 다만 그러함으로서 마땅한 것.
산사람들의 이기심과 편의보다는 넋이 되어 함께 하는 이들에게 향하며
사람보다는 삼라만상의 순리를 찾아 순례하며 바라보고 그 안에서 찾아보는 것은
결국 아무도 관심짓고 흥미가지지 않는 곳에서 기억하고 그리는 눈물입니다.
2010년을 보내며 이제 이름없는 공연은 인간세상 안에서
그들과는 다르게 공연이라는 글자의 뜻을 사용하며
그저 이름없는 것이 되도록 길을 잡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공연이 아니므로 관객도 원치않으며 그들이 없는 곳으로 찾아가
순례자들과의 만남을 그리며 기다림의 작업을 이른바 공연처럼 시작합니다.
이제는 아무도 만날 수 없어졌기에 너무도 그리워서
만나고 자하는 그리움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작업노트를 적으며
사진과 동영상을 기록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사람들이 볼까 걱정합니다.
공연으로 영화로 작품으로 보려는 사람들의 관점과 이론이
그 작업과 공연 안에 만났던 아름다운 넋들과의 얘기를
갈갈이 찟고 토막내어 판가름하는 것이 죄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리운 사람이 그 절실함을 이유로 오랜 길을 헤메어 필연적인 만남을 갖고
그 작업기록조각에 담긴 슬픈 사랑을 암호처럼 찾아내줄 것만을 꿈꿉니다..
인간이어서 보지 못하고 인간이어서 외면하며 합리화시키고
그래서 소통하고 공유하기에 익숙한 어떤 것들이
이름없는 공연과 만나져서 서로를 불편하지 않게 되길 바라며
이 작업은 이제 인간세상에서 떠납니다.
사람들이 무시하길 바라며 듣지도 보지도 않길 바라며
그들 안에서 가장 큰 소외로 그들에 대한 사랑 찾아가는 그리움으로
뜻다른 공연을 지속하려 합니다.
5월빛고을과 4.3순례가 그리하여 아름다우며
1895년가을 115년전으로 찾아가는 시간여행이 그리하여 아름다우며
이기심과 타협없이 존재하고 흐르는 제주섬 그리고 강의 눈물이
그리하여 감사합니다.
까페는 진정한 외로움을 지닌 사람들과의 만남이 되게
출석부를 만들고 아무도 적지 않을 그 출석부를 열흘에 한번씩 정리하며
그리운 이의 절실함에 답해줄 수 있는 만남만으로 이어가려합니다.
116년전 전주화약의 마음 그리며
전주로 찾아가서 이 가을 만났던 이들과 1895년가을의 마지막 공연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12월엔 다시 강을 찾아 떠나며 혹시라도 같이 강과 모래와의 만남을 준비해서
떠나줄 사람이 있을까 동행자를 찾아봅니다.
연말 수많은 찬탈과 생명평화의 파괴에 대한 죄스러움을 정리 못한 채 넘기는
인간세상에서 인간종 임을 사죄할 일들을 찾아서 파람에 길목에 들풀처럼 설 수 있는 일
동지를 그리며 준비를 시작합니다.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오전 11:31:16
 .........................
[1895년가을]전주공연을 준비하며..
 
115년전 그 가을의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 나누는 가을.
1895년가을 지난10월의 초연과 11월초 극장공연에 이어서 2010년가을의 마지막작업으로
전주공연으로 준비하는 일.
함께 할 사람을 찾았지만 역시 아무도 없어서 그 기다림을 마감하고
 
전주화약의 그 곳을 그리며 의병지휘서를 들고 창의일을 며칠 앞두고 전주로 향할 준비를 합니다.
전주에서의 공연은 1895년가을중 한성부분만을 모아서
그 가을 이땅에서의 그 사람들이 거닐었을 그 거리와 흡사한 그리고 정말 그리워하던 누군가가
흐느껴 울었을 남도의 그곳 전주천 옆 향교마을에서 시차를 교차하며 공연을 준비합니다.
비록 같이하는 사람없고 관심가지고 다가와 바라봐주는 이 없어도
15년을 숙제처럼 간직해온 얘기의 마지막을 2박3일간의 한옥마을에서의 시차를 둔 연작으로
만남을 준비합니다.
공연은 전체 중에서
1.한성 8.한성 13,울고 있는 궁녀 17.이덕순  21,우금티  24,의병지휘서
26,유언장(노벨) 27,춘생문  28-29에필로그 30,네 개의 달
11개의 장을 한옥마을과 전주천변 그리고 오목대,경기전 등의 거리와 양사재에서의 실내공연으로
기다림의 공간을 만들고 115년전 그들과의 첫 만남의 가을을 마칩니다.
그리고 헤어짐.
이승을 사는 현재의 사람들도 같이하고 싶어서 15년을 기다리며 꿈꿔왔지만
결국 이렇게 님들과의 만남은 단 두 사람 더 이상 누구도 없이
이렇게 그 가을의 얘기를 마치고 이별을 합니다.
2010년 11월25일부터 26일 27일까지 2박3일간의 이별여행.
그래도 이 가을 당신들이 다가와 만나주어서
남은 이승에서의 삶의 시간에 대해 용기도 얻을 수 있었고 행복했습니다.
전주에서 뵙겠습니다.
2010년 11월 22일 월요일오후 11: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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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을의 마지막 전주화약의 성내에서 끝내 피폭소식을 들으며.
 
그 가을의 마지막을 보내며 정리하는 1895년가을 전주성에서의 공연은
11월말에 찾아온 아주 시린 바람과 연평도 포격소식.
어렵게 만들었던 통일도 다시 지우고
끝내는 이렇게 고이 키워왔던 평화는 이들의 곁을 떠나고..
1년전 전주화약의 성내를 바라보며
창의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그리는 작은 땅.
사람들은 스스로 그렇게 자신의  얘기만으로 비극 마져 남의 일이 되어 버린
이 세기에 115년을 지나 부끄러움으로 돌이켜보는 님들의 아련한 가슴앓이.
1895년 가을은 그렇게 무심 속에서 시작해서
오늘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전쟁과 어떠한 이유로도 구제받지 못할
이웃을 향한 포격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결국은 의로운 사람들이 평화를 만들어 내겠지만
그 의로움에 대한 그릇된 해석이 서로를 향할 때 치루는 어리석음이
혼돈을 넘어 이윤과 이기로 현혹하고 지배하는 인간세상.
 
100년이 흘러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더 퇴화해가는 존재의 아픔 속에서
몇 사람이 그렇게 자의아닌 공범의 아림으로 사람종의 삶을 지샙니다.
2010년 11월 29일 월요일오후 3: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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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8일 평화,그 그리움으로120 죤레논의 기일에..
 
12월8일.3년전 이날 평화박물관앞 조그마한 골목에서
평화에게도 한번 기회를 달라고 노래하던 그의 기일에
시린 피켓팅을 하던 평화,그 그리움으로 이 백일째의 공연영상을
트윗과 카페에 올리고 하루를 보냅니다.
이유없는 전쟁에 동조하며 파병으로 국익을 도모하던 이 나라의 아픔을 생각하던 그해 겨울
하지만 3년이 지난 오늘은 어렵게 이루었던 통일도 다시 저 버린 채
눈물이 되어 버린 이 나라.
상설 파병부대마져 만든 이 나라는 이제 파병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 나라 저 나라에 경제적 이윤을 위해 군대를 보내는데도 익숙한
평화를 명분으로 어떤 전쟁도 두려워하지 않는 호전적나라가 되어 버린 듯합니다.
 
2007년 오늘 평화박물관앞 좁은 골목에서 그의 노래를 들으며 홀로 들던 평화피켓 위에
적힌 대사는 이렇게 흐릅니다..
120일째을 맞는 12월8일의 평화 그리기는
평화를 노래하다 이날 세상을 떠나간
한 젊은이를 생각하며
그의 노래 곁에 평화피켓을 듭니다.
 
경원선을 거닐며 함께 했던 한 작가의
귀한 평화 그리기가
인사동 평화박물관 작은 갤러리에
소중히 전시되고 있었고
 
흉탄에 맞아 쓰러지던 그 젊은이를
가슴에 안았던 그의 아내가
작가에게 적어준
우리가 키울 꿈에 대한 메모 한 장이
마침 그곳에 ..
 
2010년 12월 8일 수요일 오전 08: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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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부터 31일까지
 
금년한햇동안 이름없는공연이 이 나라 곳곳을 순례하며 공연한
공연영상들을 모은 공연영상회를 준비하며
그 일정을 잡고있습니다.
 
영상회는 보시고자하시는 분이나 단체나 공간을 가지신 분이
이곳에 오셔서 신청하시면
그 구성원이나 성격에 맞게 프로그램을 구성해서
찾아가는 영상회입니다.
 
여러분이 모이는 어떤  행사나 모임전후에 상영도 좋고
한 두분이라도 개인적으로 공연영상을 의뢰해주시면
희망하시는 시간과 장소를 조정해서
찾아가 영상회를 마련해드립니다.
 
이름없는공연은
2010년한햇동안
생명과 평화 그리고 인권 등을 화두로
이 나라의 아픈 현장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햇습니다. 
그리고 그 공연을 영상으로 담아서
공연영상집을 만들엇습니다.
공연현장에서 만나지못하신 분들
그러나 함꼐 화두를 나누고싶으신 분들이
한분이라도 게시다면 이곳에오셔서 영상회만남을 의뢰해주시면
2010년 마지막달
동행하고파서 기다립니다.
2010년 12월 8일 수요일 오후 9: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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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조계사에서의 아이사 행사현장 한쪽 구석에서 상영할
 
이름없는공연의 4대강순례공연영상 [강과 기도-2010년가을편] 27분짜리로 편집완성했습니다.
그날 영상회에도 관심주실 분 만나면 좋겠습니다.
 
 
 
12시쯤 도착해서 장소를 살펴본후 영상가능한장소를찾으면 1시나 1시반경부터 상영할 예정입니다.
27분용으로 새로이 이날 상영을위해 편집한 [강과 기도2-2010년가을]을 메인으로 상영하고
상영여건이 된다면 행사장 한편에서 오며 가며 잠시씩 보실수있게
2009년 4대강순례공연기록을 담은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64분)와
2010년 4대강순레공연기록을 담은 [강과 기도](40분)을 연속상영할 예정입니다.
 
영상상영에 대한 문의나 의견은 까페 이름없는공연 http://cafe.daum.net/oncorea 으로 연락주십시요
 
이름없는공연 4대강순레연작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연작공연 공연사진집입니다.
이름없는공연 4대강순레연작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연작공연동영상입니다
이름없는공연의 4대강순례연작[강과기도]공연영상집링크입니다
2010년 12월 9일 목요일 오후 8: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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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공연의 공연영상회는 영화가 아닌 현장의 환시로 인식되면 좋겠습니다.
 
한해를 정리하며 12월들어 며칠간 남은 이 해에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다시 거리로 나설 준비를 합니다.
한햇 동안 이 나라 곳곳을 순례하면서 나름의 존재방식과 조건으로 행한 일들,
가능하다면 시선이 닫지 않는 곳에서,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망각의 장소에서
헤아려 행하고 싶었던 얘기들이 어설프고도 그립습니다.
그 얘기들을 적은 영상을 안고 누군가와 같이 보고 싶어서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영상회를 다시 준비하고 장소를 가진 사람,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서 허공에 글을 올리고 기다리고 잇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미련이 남아서
언젠가 한번은 내게 전화를 주어서 내 전화번호부에 기록된 사람들 중 몇 몇에게
영상회를 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답이 없지만 그래도 몇 사람 안부인사처럼 전화를 걸어옵니다.
그들이 우리의 안부가 아닌 이름없는공연이 다니며 나누었던 이름모를 그들의 안부에
귀기울여주면서 함꼐할 시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더 적극적으로 지금이시기 아름다운 갈망 만들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공간을 찾아서
동행을 제안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음만 가지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열린 곳을 찾아서 조심스레 문의를 드리고
다가갈 양입니다.
첫주 12일 일요일엔 조계사에서 13,14 월화요일엔 홍대 근처 어느 카페에서
그리고 17일금요일엔 서울한복판에 열리는 거리사진전에 동행을 말씀드리고 준비합니다.
15일과 16일 그리고 18일도 인천이나 서울 어딘가에서 일정이 잡혔으면 좋겠습니다.
 
2010년가을 다시 4대강을 순례하며 마주한 공연영상을 새롭게 편집해서 세 번째 완성본을
만들었습니다.[시천에서 낙동강 하구까지](2009년가을겨울)[강과 기도](2010년봄여름)에 이어
[강과 기도2-2010년가을]이라고 제목 붙이고 세상과 얘기 나누고 싶어서 영상회란 이름으로
이 겨울의 만남을 준비합니다
사람들이 안부를 묻고 서로 회포를 푸는 이 계절에
몇 사람만이라도 산사람과 제 이웃아닌 이들의 안부를 묻는
세가지사랑 중 가장 큰 그 세번째 사랑이 이 세상에 그립습니다.
 
이름없는공연의 영상회는영화의 관람이 아닌 현실 안에 담기는 환시같은 현실과의 동행으로
인식되길 바랍니다.그리고 그리하여 그 곁에서 스스로 대화를 찾고 행동을 찾는
따사로운 만남이 이 무심의 거리 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눈물처럼 스치길 꿈꿉니다..
2010년 12월 11일 토요일오전 10: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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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그리는 이름없는 공연영상회- 2010년12월 그 첫날 아홉번째 얘기에
 
거리영상회 혹은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 영화제 등의 제목으로 세상한편에서
남 몰래 공연해온 얘기들을 영상으로 다시 무심의 거리에 내려놓는 작업.
올해는 지난 한해 동안 이 나라 곳곳을 순례하며 홀로 그렸던 그 얘기들을 모아
그 아홉번째 얘기로 영상회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보여드리는 영상회에 서 벗어나서
누군가를 그리며 기다리던 그 기다림도 버리고
공연의 그 마음처럼 세상 어느 곳에 문득 비추이는 환시처럼
그리운 사람에게만 보이도록 그렇게 구석진 곳을 찾아 준비한 빔프로젝터와 스크린을
폅니다.
2010년 12월 그 영상회의 첫날은
조계사에서 열리는 아름다운 이들의 사랑이야기란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의 나눔의 김장.
어느날 문득 걸려온 영상회 의뢰에 영상을 편집하고 이 날의 만남을 위한 자막도 넣었지만
낮시간에 옥외에서 이뤄지는 행사 그 한편에 주어진 공간엔
햇볕이 내내 비추어서  설치해본 스크린 영상에 투여된 강의 얘기는
아무도 눈으로는 보실 수 없었습니다.
하얀 스크린에 아무 것도 비춰지지 않는 햇볕아래에서의 영상회.
하지만 지난 봄,여름 이곳에 세워졌던 한강선원에서 한번이라도 같이하고 싶었던
절실한 만남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지만
몇 계절을 지내고 이렇게라도 누군가의 허락으로 작은 영사막이 조계사영내 앞 벽면에 설치허락되고
그곳에 비춰보는 강과 새들과 물고기 뭍생명에 대한 경건한 그리움
그리고 문수스님 수경스님..모습도 경첩되며
눈부신 햇볕에 싸여 하얗고 따스하게 내리는 영사막 위의 눈물.
2010년 12월,다시 시작하는 평화를 그리는 이름없는 공연 영상회란 이름의 우리의 공연은
이렇게 조계사 아름다운사람들의 나눔 곁에서 보이지도 않게 시작됩니다.
 
하늘과 땅에 공기처럼 얘기나눌 영상을 새로이 편집하고
그 일정을 준비하여 떠나며 적었던 글처럼
이번 작업은 영상을 비추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고 떠나며 세상 어딘 가에 다가가서
남 몰래 만나는 작업입니다.언제나 그렇듯 같이 준비할 사람을 미리 찾아 기다려도 보고
그 영상을 온라인에 먼저 올리면서 그것을 보고 얘기 나눠줄 사람의 말씀도 기다리면서
이 겨울을 지탱하려 합니다..
 
2010년가을 다시 4대강을 순례하며 마주한 공연영상을 새롭게 편집해서 세 번째 완성본을
만들었습니다.[시천에서 낙동강 하구까지](2009년가을겨울)[강과 기도](2010년봄여름)에 이어
[강과 기도2-2010년가을]이라고 제목 붙이고 세상과 얘기 나누고 싶어서 영상회란 이름으로
이 겨울의 만남을 준비합니다
사람들이 안부를 묻고 서로 회포를 푸는 이 계절에
몇 사람만이라도 산사람과 제 이웃아닌 이들의 안부를 묻는
세가지사랑 중 가장 큰 그 세번째 사랑이 이 세상에 그립습니다.
 
이름없는공연의 영상회는 영화의 관람이 아닌 현실 안에 담기는 환시같은 현실과의 동행으로
인식되길 바랍니다.그리고 그리하여 그 곁에서 스스로 대화를 찾고 행동을 찾는
따사로운 만남이 이 무심의 거리 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눈물처럼 스치길 꿈꿉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 작업의 화두입니다.
오늘(12,12)조계사에서의 아홉번째 영상회에 이어 열 번째,열한번쨰 영상회는
내일(12,13)과 모레(12.14) 홍대 앞 어느 카페에서 열린다는 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1박2일의 또 하나 시린 축제로 만나는 곳, 리버4이드모텔..로 갑니다.
평화를 노래하는 이름없는공연 영상회 이번주 상영일정-
12일 아이사(조계사)
13,14일 리버4이드(홍대오백)
두 손과 등에 빔프로젝터,밧데리 그리고 영사막으로 쓸 암막스크린 들고 메고
이 부질없는 영상회를 허락받은 곳으로 향합니다..
이 겨울 저희가 할 수 있는 일 이름없는공연 영상회 오늘부터 거리상영 시작합니다.
17일 경천대길걷기(대한문-광화문).15,16,18일
그리고 다음주 상영장소나 상영미팅도 찾고 있습니다.
2010년 12월 12일 일요일오후 11: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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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의 도시 속 강가에서의 평화 그리기- 리버4이드모텔곁에서
 
리버4이드모텔이라는 이름으로 강을 생각하는 이들이 서울 홍대 근처 한 클럽을 빌려서
이틀간 열린 공간을 마련했고 이름없는공연도 그 곁에서 평화를 그리는 이름없는 공연영상회
그 열 번째 작업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이틀간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두 시간씩
그렇게라도 열린 이 도시의 어느 공간에서 다시 강을 만났습니다.
한구석에 마련해준 영사막과 공연공간은 행사를 준비하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낯선 얘기처럼
방해되지 않게 영상의 음향을 줄이거나 혹은 없앤 채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얘기는 사람들 속에서도 사람없이
지난 일곱 개 계절을 그리던 그 그리움 담아 상기하며
님들의 구슬픈 마음 홀로 나누고 돌아섭니다.
두 개의 빔프로젝터로 한 스크린 위에 두 개의 영상을 같이 투영하며
그 앞에 우리가 강에서 만났던 마음을 다시 그리고
인간이어서 죄스럽고 책임과 죄악 공유해야 하는 모진 가슴 통회합니다.
 
2010년겨울 평화를 그리는 이름없는공연영상회는
이제는 그마져도 아무도 공유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대로 기다림의 미련을 버리고 나아갑니다.
사람이어서 굳이 할 수 없는 일,
사람이어서 그리워하지 못하는 일을 찾아서
사람아닌 사람으로 이 아픈 시간을 먼지처럼 무색무취의 존재가 되어
보이지 않게 사람아닌 님들의 영혼을 찾아 걸어갑니다.
50여년살면서도 절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해준 님들의 아름답고 소박한 사랑에 감사하며..
http://yegie.com/nonamemov10/page_01.htm
2010년 12월 15일 수요일오전 11:06:09
.........
조안 그리고 두물머리 303일째 생명평화미사 곁에서 301일째 평화 그리기
 
300일째 생명평화기도가 하루도 빠짐없이 이뤄지는 곳.
366날 하루도 놓침 없이 평화 그리기 그 삼 백일하고 하루 더해지는 날,
조안 쪽 ,이미 공사가 시작된 유기농 단지 쪽을 찾아 공연을 하는데
어디선가 보고 있었던지 그곳은 촬영금지된 곳이라고 경고방송이 나옵니다
걷고 바라보고 서있는 것은 금지하지 않으므로 나머지 부분 촬영없이 공연을 마치고,
조안을 지나 댐으로 가둔 물위로 부서질 듯 서 있는 양수대교를 걸으며
이 물에 잠긴 곳에 살았을 아름다운 것들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 300일이전 그때부터 또 하나 대추리,도두리처럼 익숙해진 고향길
두물머리로 갑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3시즈음,
아름다운사람들이 모여 생명평화미사를 드리는 곳.
새로 지은 공소엔 아름다운 겨울햇살이 비추이고
비닐 하우스 공소에 만들어둔 창밖으로는 산중턱까지 채워진 물결이
꿈을 그리며 채워져 바람에 흐느낍니다.
집없는 방랑자에겐 유기농 식단이 호사스러운 남들의 얘기일 뿐이지만
그래도 인간이 채택한 그나마의 대안으로 이렇게 어렵게라도 이루어 공존을 추구하는데
그것 마져 파괴해야 직성이 풀릴 무리의 생각과 시선.
인간은 그렇게 이 별에서의 독존을 찾아 멸망을 자초합니다.
인간에게 평화란 그렇게 그저 그리움만으로 이어지다 마는 것.
삼 백일 넘어 다시 하루를 사직하는 평화 그리기.
모래강과 마을을 삼킨 이곳에서
오늘 이 땅 수없이 이뤄지는 순리의 막음 이후
인간이 마주할 또다른 슬픔을 한 순간 먼저 봅니다.
2010년 12월 17일 금요일오전 10:21:13.
http://yegie.com/1216peace/page_01.htm
,,,,,,,,,,,,,,,
경천대길걷기 경천대 거리사진전에 네 번째날에 함께하며
 
강과 기도 열 아홉 번째
지율 스님과 작가 분들이 기록한 경천대 사진 작품들을 들고
서울대한문에서 덕수궁 돌담길 지나 광화문 시청 앞까지
낙동강로드맵을 그려보자고 하신 제안에
사람들이 귀기울여 다가와 동행합니다..
 
매주 금요일의 약속 그 네 번째날.
이름없는공연도 평화그리움으로 다가가 고운 님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언젠가 촛불을 걸고 침묵으로 걸었듯이
집시법이 제한하는 간격을 두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끊임으로 이어져
거리에 섭니다.
가슴에 안은 사진 한 장,아리게 죄스럽고
무심한 사람들의 거.리
회색빛 하늘 눈비에 젖은 도로는  묵언수행자들의 발자국따라
강길되어 적셔집니다.
2010년 12월 19일 일요일오후 9:24:06
http://yegie.com/riverpray19/page_01.htm
 
.........................
다시 전쟁을 하고 있군요.
 
이 나라,이 사람들 다시 전쟁을 하고 있군요.
미움이 미움을 더해서 마침내는 서로를 상처 내고 숨을 거두면서 자신도 쓰러질
인간아 만든 가장 큰 악행 전쟁을 시작하고 있군요.
서글픔 이겨내고 가져보았던 짧았던 통일도 짧았던 사랑도 다시 지우고
서로를 상처주고 미워해야만 행복해지는 습성에 젖어서
어떠한 미움에도 평화를 선택하는 이들에게마저
평화의 명분으로 상처를 내는 전쟁을 택하는 나라.
이름없는공연은 이 전쟁의 공간에서 네 번째 겨울여행을 준비합니다.
 
2006년 작업했던 [겨울여행3]대본 및 작품구성(오후 11:59 2006-08-11)
 
1.아침 (morning 6:28)
여행을 준비함

그리고 변함없는 기다림을 준비하는 사람들.

어느날 누구에겐가에게서 받은 기차표 한 장
그 기차표는 우리가 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곳
그렇지만 가고 싶었던 곳이 행선지로 적혀져 있습니다.
그 기차를 탈 날을 기다리면서
여행을 준비하고
마침내 그날 열차표에 적혀진 역으로 향합니다.
늘 다니면서 보지 못하던 그 기차역에
지정된 시간 기차가 보이지 않던 기찻길이 보이고
사람들이 열차를 탑니다.
그리고 떠납니다.
 
한정거장 한정거장
우린 왜 이 열차가 이미 운영되는 것도 모르고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며
믿지 않으며
미워하고 조건만 제시하면서
이 열차가 운행되고 있음을 외면했을까?
겨울여행을 떠나는 차창가 햇살이 그리고 빗줄기가
따사롭기만 합니다

2.출발
(경의선타고 3:27)
통일은 됐어
처음 그 얘길 들을 때는
그 저 통일을 염원하며 살아온 한 노시인의
가슴벅차 내밷은 과장된 시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막연했던 염원이
다가가 바라보고 만나고 헤어지는 실존으로 체감되면서
제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못느끼며
그곳에 서있으면서도 가고 싶어하는
부질없는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린 이미 만나고 있고 가고 있으며
사랑하고 있으며
서로 용서하고 있는데
수줍어서 아닌 체
그렇게 더디게 손 내밀어
통일된 것도 모르고
서툰 이기심과 논리로 통일을 토론하고 있네요.
 
벌써 몇해 전부터 이미 통일열차가 달리고 있고
이 차표를 얻으면 누구나 그리던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어요.
 
.........
그리고 알았습니다.
통일은 이미 되었지만
우리 마음은 아직도
수줍은 양심으로 인해
이리도 멀게만 지내고 있다는 것을

3. 카페 언덕 위의 바보
겨울여행자를 기다리며 맞이하는 사람들
(through the arbor 3:45)
오늘은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만 어느새
비가 후드득 하니 내린다.
촛불을 서너 개쯤 켜놓았다.
누군가 이곳에 들렸다 갑자기 비가 오면
쓰고 갈 수 있도록 우산 몇 개를 챙겨놓았다.
그리고 난로에 불도 켜놓고 차도 준비해 놓았다.
앙투안은 늘 올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이곳에 온다.
오늘도 그는 비행사 복장을 하고 야간비행을 했을 때
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폭풍우를 지나 구름 위 달과 별이 초롱한 고공에
올라 갔을 때를 회상하기도 하고...
무엇이든지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볼 수 없다는
말과 제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돌아가는 그에게 우산을 건네 주었다.
그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나도 어느새 하늘을
날고 있는 듯 싶었다.

4.길
(memory-pop 2:39)

경계를 만들어둔 곳
장벽을 지나는 기차역
기차를 태워서 장벽을 건네주는 사람

길은 자연이 만들어 배려해준 대로 지구생성과 동시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통해 물이 흐르고 바람이 가로지르고
생명들이 움직였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거나 돌아서 갔고
그래서 못갈 길도 없었으며
벽이나 경계 또한 없는
이 행성은 물과 뭍이 조화롭게 이뤄진 그대로의 길이었습니다.
 
어느날 인간이 생성되고
더 많이 갖고 싶은 자와
빼앗고 싶은 자가 생기면서
내가 갈수 있는 곳과
다른 이를 가지 못하게 하는 곳을 만들고
내 영역과 네 영역을 구분하면서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를 구분짓는 것을 길이라 하였습니다.
길은 갈수있는 것이 아니라
이만큼 만 가고 저 만큼은 가지 못하며
누구는 통과하고 누구는 통과할 수 없는 제한의 공간으로서
이 행성 위에 구분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 제한을 오히려 길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말하는 그 길이 생김으로서
자유롭게 다니던 통로는 제한되거나 막히고
길과 길사이에는 매표소나 증명서제시를 요구하는 경비초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 길은 극소수 인간들의 길입니다.
그 제한을 만들고 따르는 이들 만의 구속입니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람들에겐
그 경계나 국경이 없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그 길이 그들 앞엔 상존합니다.
 
5.장벽을 넘어가는 기차
(knockin' on heaven's door 2:51)
지금 우리가 떠나는 이 겨울여행의 기차는
인간의 이기심을 저편에 두고
예전부터 있었던 그 길을 다닙니다.
 
이 기차를 타면 인간이 이 행성에 만들어놓은
어리석은 경계와 벽과 국경을
연기처럼 통과합니다.
 
당신이 이제 그것을 알게 되어 이 열차표를 얻게 되었으므로
다니며 경계를 버린 또 다른 사람들에게
통일된 행성의 여행을 인식 시켜주는 이 열차표를 전해주세요.

6.열차가 지나간 후
여행을 마치며..

(여름밤의 꿈 4:49)
우리의 삶이 우주시공 안에 가치 있어야 할 의미의 한점이 되었으면..
보이지 않는 곳 관심이 주어지지 않는 곳에서도 그리움과 진실을 찾으며
희망하는 사람과 생명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생의 모습을 이미지로 낙점 지어 간다는 희망에 대한 투명한 확신을 갖게 노력한다면..
돌아오는 길에 만난 모르는 이로부터 받아든 또 한 장의 차표로 겨울여행을 준비합니다.
그리움을 희망으로 확신하며 사랑하기 위해서죠.
메세지 남겨주세요.
2010년 12월 20일 월요일오전 9:49:13
...............
순례강에서 만난 아름다운동무들모습만들기
 
2010년 한해를 정리하며 다시 만남을 준비하는 낙동강순례.
낙동강에서 크리스마스를..이란 제목으로 떠나는 이들을따라
1박2일의 강순례.
그 순례강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동무들의 모습을 만들며
366날 하루도 잊음없이 평화그리기 그 302일째날을 지냅니다.
라마단지나 성탄.인간의 축복만을 생각하는 이 시기에
이 별 강과 함께살고지는 아름다운 벗들에게도 평화가
다시 주어지길...
 
순례강에서 만났던 동무들의 모습,
발자국이 아름다왔던 작은동물들,
이름모를 새들의 비행.그리며
그 모습 하얀그림자처럼 그려오려
잎새랑 모아 코팅해봅니다.
2010년 12월 23일 목요일오후 9: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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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그리는 이름없는공연영상회-
강과 기도-2010년 낙동 편
상주에서의 첫상영회를 마치고
 
누군가와 같이 보고 싶어만 들지만 결코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어 만들지는 않는 그런 영상집.
공연을 그대로 기록하므로 시나리오도 없고 영상적 미학을 추구할 필요도 없는
그래서 독립영화라 불리기 싫고 다큐멘터리라고도 말하는게 어색한 공연영상회.
참으로 오래만에 누군가가 보고 싶다고 불러주어서
그 시간과 장소에 맞게 그분들이 지어준 제목에 최대한 적합하게 여러 개 공연영상을 편집해서
하나의 얘기로 엮어보는 일.
낙동강에서 크리스마스를 이란 1박2일의 순례가 기획되고
첫날 토론회에 앞서 낙동강영상 이란 주제로 영상회를 의뢰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겨울 준비하던 2010년의 이름없는공연 영상회 중에서 올 한해 낙동강 순례에서의
공연만을 모아서 편집을 했습니다.
4대강순례연작공연을 편집본으로 만든 4번째 작품이며 강과 기도의 2010년낙동강편입니다.
대한문 앞에서 시작하여 광화문을 거쳐 길을 내는 경천대 거리사진전 그 다섯 번째 행동을 마치고
낙동강으로 향한 분들,차고 어두운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에 상주환경농협학교에 도착 저녁식사후
여장을 풀고 모여 앉았습니다.
그리고 35분상영본으로 편집된 낙동강영상을 마치 영화관에서처럼 집중해서 보아주셨습니다.
화면이 작아서 뒤쪽에 앉으신 분들에게 영상에 담긴 글들이 다 보였을지 의문이지만
그래도 선명한 색감의 화면에 비춰지는
순례길에 만났던 낙동강의 모습이 별의 눈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이미 사람들의 마음을 떠난 이 얘기가 크리스마스를 낙동강에서 보내기로하고 찾아온 이분들의
눈과 마음에 어떤 불편으로 다가가진 않았을까?
 
강과 기도란 제목으로 이제 20편의 연작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 영상회를 마지막으로 강과 기도연작은 마무리됩니다.
4대강순례연작 처음엔 그저 찾아가보고파서 시작한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에서
강이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강과 기도 연작은 이제
그 3차연도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제목의 연작으로 그 화두를 바꿉니다.
이날 영상회를 같이 보아주신 분들과 함께 이튿날 낙동강 순례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며
그 화두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화두의 답을 찾는 실천의 길을 엮기 위해
또 한해를 살아갈 얘기
그 새로운 화두를 담을 제목은 [이별에서]입니다.
2010년 12월 26일 일요일오전 9: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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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공연4대강순례연작 세 번째 [이별에서]그 첫얘기.
낙동강에서 크리스마스를 팀과 1박2일의 낙동강순례를 함께하며..
 
성탄은 이 별을 가꾸던 자연과 뭍생물에게도 축복이었을까?
구제역으로 도로가 곳곳이 막히고 사람의 방문을 불쾌히 여기는 마을사람들.
쉬임 없이 퍼다 나르는 강모래와 긁어 모아둔 리모델링(?)용 기름진 농토들.
인간의 일은 자연의 순리를 바꿔서 병을 만들고
생태의 작위적 형상화작업은
모래의 여행을 멈추게하고 이방에 실어 나른 종자로
강가엔 가시박이 강점을 시작합니다.
묵묵히 흐르던 그리고 공존을 유지하며 별을 키우던 삼라만상이
이젠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같습니다.
600만년의 수명을 이제 놓고 우리 스스로 이 별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탄은 이 별을 가꾸던 자연과 뭍생명들에게도 축복이었을까?
그들에겐 어떤 선물을 우린 쥐어드렸을까?
쉬임 없이 빼앗고서 아낌없이 준다고 미화하고
혹자는 현생의 자신을 위해 혹자는 자신의 자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개발 혹은 보호의 명분으로 공존을 파괴한 인류는 이제 그 어리석음을 이유로
본의던 아니던 이 별의 작별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별을 보기 위해서 하늘만 보았던 이 종족.
별을 보기 위해 그리고 망원경 없이도 선명히 보기 위해
자신이 밟고 감싸고 존재하고 있는 이곳이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별인 것을 모릅니다.
이제 다시는 또 다른 별이 인간에게 채취되지 않길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 한그루의 나무를 보살피고 강물에 손담그는 시간.
2010년 12월의 마지막주 낙동강 변에서
이별에 序 그 첫 작업을 시작합니다.
2010년 12월 26일 일요일오전 10: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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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이름없는공연자상 두 분의 최종후보를 선정하면서..
 
언제나 어떤 작업을 기획하고 시작할 때 그 화두와 소재,의도를 공개하고
같이할 사람을 공개모집하고 그 공지를 보고 다가온 사람의 시간에 맞춰서
그가 함께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같이 하여 작업을 완성하는..
이름없는공연은 늘 그렇게 작업해왔지만
언제 부턴가 하나 둘 자신의 시간을 내서 다가와 함께 해주던 사람들이 줄어서
이제는 한해 동안 100여작품을 공연하며 기다렸으나
단 한 사람만이 다가와 그것도 전체공연이 아닌 일부공연에 같이해주었을 뿐.
지난해부터 이름없는공연자상은 그 기준을 작품과 작품정신의 우수성을 고르던 방식을
버리고 그저 같이해준 마음만으로도 감사하는 감사의 표현으로 정의되었지만..
2010년은 누군가가 의뢰해서 만날 수 있었던 단기적 워크숍공연도 없어서
사람을 만나 작업에 대한 얘기만들 기회도 없었습니다.
다만 2-4월에 새로 생기는 고마리 작은 학교에 같이 있으면서
그곳 아이들과 비정기적인연극수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3편의 공연을 만들 수 있던 것이 그나마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2010년은 통 털어 이름없는공연에 같이 와서 해준 분은
이 아이들과의 작업과 1895년가을 디페스타 작업에 참가해준 김경수님
두 팀이 이름 없는 공연자상의 해당자 전부며 전체후보이자 최종후보자가 되었습니다.
 
고마리 작은 학교 아이들과의 작업엔 전체를 위한 연극수업으로 시작했지만
두 번째 작품부터는 함께하고 싶은 아이들만 참가할 수 있게 진행되어서
교육이 아닌 진실을 나눌 수 있는 두 편의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시속4킬로미터]와 [평화그림009]
두 작업에 참가한 참가자들 중에서 장난기 없이 그리고 비록 적은 시간이지만
이름 없는 공연자의 작업의도를 이해하고 동행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절실한 가슴으로 생명과 평화를 얘기해준 이는
나은진 나은성 두 자매 뿐이었고 그중 조금 더 깊이있게 접근하고 표현하며 실천적
그리움을 그려준 이는 나은진님 이었습니다..
이야기를 가상하고 표현을 구성한 작업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공간인 산골마을에서
실존의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사실을 바탕으로 인간이 해야 할 도리를 찾아가는
생명평화의 실천적 길을 찾아보려는 작업은
새벽 마을길을 오가는 자동차를 탄 사람들에게 전하는 가슴절실한 편지를 적고
초봄 따스한 햇살아래 방 앞 발코니 아직은 찬바람에 앉아서 적어보고 읽어보는
평화엽서들.그리고  평화 그림 안에 담아 내는 진실이
이제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없는 귀하고 아름다운 이름없는공연의 마지막
모습처럼.
어성전을 떠나오며 이별선물처럼 세상을 순례하며 모으고 전했던 그 평화그림들을
쥐어주고 왔는데..혹시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지...
 
115년전 가을의 사람들을 만나며 오늘을사는 인간의 자성을 통한 정진을 그려보고 자했던
[1895년가을]은 10일간 총 20부연작으로 대학로 디페스타에서 공연되었고
최소한 10여명의 공연자가 같이하는 것으로 알고 준비되었던 대본과 공연방식은
아무도 응답없는 공연에 예플러 1인극으로 진행되었고 연속극처럼 이어지는 연작식 공연에
그중 며칠을 김경수님 한 분이 다가오셔서 연습미팅과 준비를 통해서
궁녀,이덕순,단코,이사도라 주막의 농민등 몇 가지 배역을 같이하면서
비록전체를 보시진 못했으나 부분적으로나마 동행하며 귀한 공연을 같이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면에서도 마음 나눔에 사도 연극이 아닌 진실성에 동행하면서
15년을 기다려 준비해온 연작의 마지막편 1895년가을의 초연을
고독한 홀로 작업으로 끝나지 않게 동지가 되어주었습니다.
다만 이름없는공연자상의 최종후보로서 결함이 있다면
작품의 전체를 같이하지 못한 부분참여로서 미완의 참여자였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는 15년을이어온 이 작업도
다시는 아무도 다가와주지 않을 것 같은 현실 앞에서
이름없는공연을 찾아와 동행해준 마지막 참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점이
이분의 짧은 동행을 꿈처럼 그립게 상기 시켜줍니다.
 
12월30일 [시속4킬로미터][평화그림009]의 나은진님과
[1895년가을]의 김경수님 두분 중의 한 분을 최종적으로
2010년의 이름없는공연자로 결정하고 그분께 감사를 전하는 시상식을 가집니다.
1,2회때는그래도 소정의 상금도 준비해서 전해 드렸었는데
상금제를 없애고 감사의 상으로 그 성격을 바꾼 후
그 첫해인 지난해엔 수상자가 오시지 않아서 준비한 선물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분은 아직도 이름없는공연이 자신에게 감사하며 이름없는공연자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겁니다.
올해에도 수상자를 결정하면 조그마한 마음의 선물 준비해서
그분께 전해드리며 이름없는공연이 외롭지만은 않게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싶은데
한해를 정리하는 그날 다시 뵙고 함께 했던 작업 영상회도 하면서 얘기나눌 수 있을련지 ...
 
2010년12월30일 저녁6시
이정훈 님이 초대해주셔서 그분의 작업실인 더미작업실에서
이뤄지는 이름없는공연영상회와 함께 2010 이름없는공연자상도 후보작의 상영과 함께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2010년 12월 28일 화요일오후 5: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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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0일 문래동 더미연습실에서의 평화를 그리는 이름없는공연영상회
 
12월30일 이정훈 님의 초대로 갖게 된
문래동 더미연습실에서의 평화를 그리는 이름없는공연영화제는
2010년 이름없는공연자상과 병행해서 이뤄지므로
후보자인 나은진님과 김경수님이 공연한 후보작품을 중심으로
영상회 프로그램을 구성합니다.
후보작 첫 번째 작품은 김경수님의 참가작품 [1895년가을]
전체가 3시간의 작품이어서 그중 일부만을 상영합니다.
총 30장중 7장만을 상영합니다..
나은진님의 후보작은 [시속4킬로미터]와 [평화그림009]입니다
그리고 2010년의 주요화두를 정리한 작품들로
6월항쟁길민주올레 경천대거리사진전 용산남일당..두리반 등의 얘길 담은
bye2010과 민예총의 영산강 강굿과 함께 한 [강과 기도11]을 엮어서
1시간30분의 영상회를 구성했습니다
2010년 이름 없는 공연자상은 영상회현장에서 수상자가 발표되며
마지막 상영 작품으로 수상작이 상영되며 수상자 분이 오시길 기다리며
조그마한 감사상품도 준비하고 기다립니다.
 
12월30일 평화를 그리는 이름없는공연영상회 상영프로그램
문래동 더미연습실 저녁 6시-7시30분)
 
[1895년가을-디페스타](전체20장중13,17,20,21,26,28,29장 7장)
[평화그림009]
[시속4키로 미터]
[bye2010]
[강과 기도11-영산강 강굿]
2010년 12월 29일 수요일오후 4: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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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마지막날 세가지작업을 마치며..
 
2010년12월31일 세가지 작업을 준비하고 이날을 마감합니다.
3시 경천대길걷기  거리사진전.
지난주 낙동강에서 크리스마스를 에 이어 다시 대한문 앞에 모여
한장한장 사진판넬을 들고
다시 말없이 거닙니다.
많은 이유와 마음의 감정이 교차되는 세모의 이방의 거리에서
사람들을 스칩니다.
4대강순례공연연작 두 번째작업 [강과 기도]는 이제 새롭게 준비하는
그 세 번째 작업[이별에서]에게 화두를 넘기며 이날의 걷기로
스물한번째 공연을 마칩니다.
4대강순례첫 작업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 그 스무 여섯 작업과 함께
마흔 일곱개 작업을 순례처럼 이어오며 화두를 찾아봤지만
결론은 인간은 이제 이 별을 위해서 이별의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저녁,두리반 송년 칼국수음악회에서
bye2010 이란 제목으로 정리한 한해를 돌아보는 영상회와 함께
그 세 번째 연작의 시작[이별에서]그 두 번째.작업을 시작합니다.
늘 곁에서 해도 아무도 모르던 이름없는공연이
모처럼 사람들이 모여서 보아주는 무대로 마련된 공간 안에서
공연으로 이뤄집니다.
강의 기도를 들으려 다가갔던 그 얘기들과 그의 기도에 동행하고 픈 인간의
별종으로서의 순례의 기억이 영상 안에 담기고 사람없는 시공에서
인간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멸종을 감수하며 이별을 기다리는 그리움이 시작됩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잇는 것은 인간퇴화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느리게 조정하며 그 안에 한구석에서 만이라도 종의 존재이유에 합당한
선의 흔적을 남기는 남 모를 의지와 용기의 실천입니다..
 
2011년 1월 1일 토요일오후 5:11:06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