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전에서의 파람에선 1960년대 태백 함태 탄광에 근무하던
아름다운 가장의 모습을 만나기로한다. 새 인물의 이름을 광부라고 적고
그가 다니던 시공간을 마주하며 파람의 다음작업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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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우리가 불행할거라 믿는 사람들
속에 행복한 이가 있다. 2003/01/27
오후 2:48:38
우리가 그는 불행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
속에 행복한 사람이 있다. 우리가 그의 불행을 위로해준다고 섣불리
그를 위해 기도할 때에 그들 속에는 그 몇 배의 기도와 희생의 기쁨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이가 있다.
파람의 길목에서 만나 광부는 우리의
이런 섣부른 사랑의 시선과 선입견을 지워주는 인물로 보인다. 막장에
들어가길 즐거워하며 그가 광부이기에 행복한 이. 그래서 그는 까맣게
타들어가는 폐마저 행복해한다. [파람-추전]그리고 [파람-승부]의 겨울공연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서 그 행복한 고행의 발길을 따라가보기로 한다.
결론적으로.... 아니 다시 새로운 시작글.. 2003-02-04 오전 1:59:25
결론적으로 파람은 결국 작가의 홀로 작업이다.
연기자들이 간혹 와서 연기를 하곤 하지만 그들과 같이 집중하여 갈 수
있는 작업이 아닌 것 같다. 공연이 준비될 때도 그러하고 공연이 끝나고도
연기자들과 공유하며 정리할 기쁨을 갖지 못한 채 작업은 이어지고
이어지는 환경에 기존의 연기자가 공유할 것을 함께 하지 않으며
새로운 연기자들이 온다하여도 혼을 다해 그 인물을 같이 만들 여유를 주지
않는 독촉한 공연이 지속되고 잇다. 마치 콘티와 모든 것을 가진 한
연출자가 간혹 일정을 내서 촬영장에 나타난 연기자들에게 오늘 직을
분량을 주고 연기자는 자신이 할 일에 대한 깊은 공감대의 확인도 없이
그저 자기나름으로 홀로 예측하여 감만 잡고 표현하고 가면 끝나는
그런 식의 작업이 계속될 모양이다. 연기자들의 작업노트가 오히려
혼돈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어서 이 작업의 작업노트는 연기자의 것과
연출겸 작가의 것이 구분되어야 할 것 같다.
파람은 그 계절과 공간의 흘러감이 아쉬워서
2003년을 쉬임 없이 공연된다. 익산미륵사지에 이어 추전과 승부 그리고
그리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담아내야할 많은 피안의 길목에선 인물들과의
만남이 있다.
연기자와의 공유를 기대했던 것이 하나의
의존이고 그 의존이 이 작업의 추진력을 발목 잡고 있다. 그래서 두개의
공연을 마치고 다시 두개의 공연을 준비하는 이 싯점에서 다시 또한
부분을 포기하고 작업은 연출자 혼자의 것으로 연기자들에겐 무한한
자유의지를 주고 그 안에서 연출자의 이미지커팅만으로 대본과 공연을
구성하는 방식의 작업으로 진행방식전환의 결단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