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공연2012년 프로젝트
[언덕,이 편에서]작업노트
언덕,이 편에서(그리고 param)작업노트
구성,연출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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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프로젝트 [언덕.이편에서]를 시작하며..
this shore of the hill
 
파람,피안에 길목에서 20부연작은
처음 시작할 때의 작업의지와 꿈에는 몹시 부족한 상태로
마무리된 작업이었습니다..
2002년 구상에 들어가
2003년1월 익산 미룩사지에서 시작하여
추전 승부역 거쳐 화두를 펼쳐보던 제안은
다가와 같이 화두 안아줄 사람을 찾지 못하면서
그냥 스치는 사람들과의 잛은 1회성만남만으로는
완성해 나갈 수 없는 작업의 속성상
그저 막연한 선에 대한 표현정도만 얘기 나누다 헤어지는
작업의 한계 때문에
그 다루고 싶었던 그리고 찾으며 행동하며 표현하고 싶었던 얘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제목에 다다르지 못하는 에피소드와 인물의 단면만을 스치며
2009년에 이르러서야 그 20부를 정리했습니다.
이름없는공연이 후이넘 연작으로 시작한 화두를
종결하며 이르고 싶었던 작업의 의지와 이승에서의
그 하나 남은 미련을 되새기며 다시 준비하는 작업.
파람에 담고 싶었던 ..
그리고 그나마 그 어리석고 부족한 삶의 길에서 마주하며
생각할 수 있었던 얘기를 바탕으로 기억하며
못그린 얘기들을
아무도 관심 주지 않아 찾을 수 없는 마지막 흔적 남기듯
되돌아가서 시작합니다.
7년에 걸쳐 끊기고 끊긴 이음 다시 만들며
그 작업자들은 다 잊어버려도
생명의 끈 놓지 않고 살려낸 인물들의 존재 다시 만나며 그려볼
이름없는공연 17년간의 작업을 결산하며 떠나는
이승에서의 기억과 이별의 얘기.
파람의 그 공연의 기록 중 간직해야 할 기억을 다시 찾아,정리하고
이제는 언덕저편으로 향하던 그 다음의 시선.
언덕 이편에서
피안에 이르는 길로의 순례 보다 더 한
절실한 가슴으로
모든 것을 원래로 내려놓는 시선.
존재의 의미대로의 사랑으로
아무도 알 수 없는 ..알려드리고자 욕심부리지 않는
자연그대로의 생태와 대화로
존재에서 먼지로
이승으로의 순례기회주심에 답하고 떠나는 공연.
2012년 프로젝트로
파람의 기록 되새기며 [언덕, 이 편에서]
그 작업을 시작합니다.
2012년 1월 2일 월요일오후 6: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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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도리대로 향해택한 저언덕길(언덕 이 편에서..)
this shore of the 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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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의 도리대로 향해 택한 저 언덕길
거긴줄도 모른 채 다다른 피안입구
맞이하며 한잔 차 건네주는 노인의 손.
피안의 길목에서 스쳐 만나던 사람들.
이승길 지나오며 구름만 같던 둔덕 너머
찾아온 이유따라 짧은 쉼   이은 회향
돌아서는 사람의 길 미소로서 배웅받고
일엽 편주 여행하듯 이승길에 지치는 노.
피안의 입구에서 언덕이편으로 .
.
 
파람은
피안의 산스크리토어 원어로서 열반 극락 천국 등의 종교용어와도 흡사하지만
종교이전에 생긴 언어로서
그저 우리가 인간의 도리로서 이르러야 할 이승의 저편같은 둔덕 너머.
2003년 그 파람을 제목으로 시작했던 이름없는공연의 연작작업.
그 시작의 놓아두었던 마지막 장면...
파람의 입구에까지 다다른 후 그곳에 들어가지 않고
한 노인이 건네주던 차한 잔에 목축이고
다시 언덕 이편 차안의 길로 돌아서
지금처럼 계속 존재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
 
언덕,이편에서는 파람 연작의 마지막장면이자 시작장면이었던
피안의 입구에서
그 차한 잔의 묵상 다음장면으로부터
공연을 시작합니다.
 
2012년 1월 2일 월요일오후 10:45:00
파람의 입구에서 만났던 노인,그리고 광대의 추억(언덕,이편에서)
this shore of the hill
 
파람20부작은 그 시작과 끝에
파람의 입구에서 만난 한 노인과의 만남을 둡니다.
차안에서 파람으로 이르는 길.
그 길목을 거닐어 다다랐던 언덕 저편에서.
그곳이 도달점인지도 입구인지도 모르고
노인이 건네주던 차한잔 마시며   
미소에 답하던 시간.

그 대사는
 
파람의 입구에서 한 노인을 만났어요.
삶의 희노애락일랑 온화로 지우고
파람의 입구에서 제게 물한 모금 쥐어주던 노인.
지독한 자기 낮춤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아픔을 감싸주려고
파람의 입구에서 새로이 돌아 나오던 맑은 모습.
파람의 입구에서 한 노인을 만났어요.
삶의 희로애락일랑 온화로 지우고
파람의 입구에서 제게 물한 모금 쥐어주던 노인.
(파람 작업노트중에서)
 
라고 되내여지고
파람에 이르는 길 어디선가 들었던
한 광대의 얘기도 기억합니다.
 
피안의 입구에서 물한 모금을 건네 주던 노인을 만나서
광대가 되기로 한 사람.
삶의 고통과 슬픔을 기쁨으로 읽는 법을 찾아내어
알려드리기 위해서
세상 어귀로 다가가 작은 공연을 펼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사람.
오늘도 어느 곳에서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각인시켜 그 흔적을
세상 안에 기억시켜보는 작업을 한다.
광대가 아름다운 시선으로 세상을 거닐다가
문득 세상 안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인간의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과 표정들
그리고 그 모습과 표정이 있다가 떠나간 곳에
하얀 선으로 흔적을 줄치고
그 위에 자신이 기억하는 그 모습을 다시
담아보는 작업.
공연을 마친 광대는 조용히 인사하고
광대의 옷을 일상의 옷으로 갈아입고
정갈한 모습으로 세상 속으로 돌아간다.
다음공연을 준비하여 다시 만날 때 까지
또 더 아름다운 사람들의 얘기를 찾아서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시선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2003/01/13 파람 작업노트중에서).
 
노인이 전해주던 언덕 햇살아래에서 차한 잔의 쉬임 그리고 모금.
노인의 모습과
나보다 먼저 그 노인을 만나고 돌아서
포도밭을 지나는 국도곁에서 만났던 광대.
그들이 서있던 곳 .
지금은 환시 안에서만 보이는
그들의 흔적.
지금 어딘가에서 이 길보다 먼저 또다른 정진으로
별을 거닐고 있을 원소들.
잎새에 맺힌 한모금의 이슬과
어스름 육십개 하늘에 반사빛으로 조망해주는
주마등같은 별들의 포옹.
노인의 모습보며 광대가 됐다던 이
포도밭 지나가던 국도곁에서 나누던 꿈.
가던 길 만나던 숲이 그럼하며 반겨주는 길.
 
 2012년 1월 6일 금요일오후 5:55:38
................
파람의 입구에서 물한 모금 건네주던 노인..
언덕 이편에서의 시작점이자 끝점이 되는 파람 20부작의 시작은
this shore of the hill
 
언덕 이편에서의 시작점이자 끝점이 되는 파람 20부작의 시작은
파람의 입구에서 물한 모금 쥐어주는 한 노인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가 나인지 아니면 그를 만난 이가 나인지는 모르지만
(이 모호함은 [꿈속의 꿈]으로 작업화한 삼몽사에서 다시 중첩되었습니다)
처음 이 작업의 인물을 설정하고 시작하였지만
끝내 의도하고 기대했던 방식의 연극처럼
한 사람이 배역을 한 연기자 혹은 인물의 교체등으로 이어갈 수 없었던 덕으로
그 애매함이 오히려 확실성이 되었고
놓음으로서 편해진 ,
굳이 인물의 외형이나 형태가 중요치않는 파람 작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물이 다시 [언덕,이편에서]를 이끕니다.
그리고 물한 모금 쥐어주던 그가 일어서서
언덕 이편으로 길을 떠난 듯
작업은 형태없이 (아니면 수많은 형태의 변형이 화두에 무관한 듯)
자유로운 인물의 구조를 배치하여
파람 그 첫 번째 미륵사지에서의 인물과 18회의 익산,혹은 19회 부산 보광사에서의
인물을 거쳐서 차안의 첫 인물로 등장합니다.
 
공연의 구성형태상 노인은 드러나도 좋고
그와 마주 앉아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또다른 인물이어도 좋습니다.
삼몽사의 배경은 이 장면에선 피안의 언덕으로 들어서는 입구입니다.
거기에 100의 도달치로 도착한 두 사람의 마주 앉음이
먼저 온 자와 시차를 두고 다다른 자의 차이이므로
시간의 윤회 속에서 그 시차에 따른 화자의 선후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파람에서는 다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표주박을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파람의 입구에서 건네주고 건네받는 그 물한 모금이 차인지 물인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 작업에선
취생몽사 일리도 망각의 도구인 레테의 강물도 아님은 틀림없습니다.
오히려 현무암반을 타고 뭍의 끝 바다까지 생명을 키우며 달려온 용천수의
그 출발점에서 샘솟는 그 맛과 같고 시름과 기우를 모두 버리고 찾음으로 밝혀주는
첫 눈물 한모금같은 촉감입니다.
그리고 주고받던 그 한마디.
모든 걸 알 수 없었던 파람의 시작에선 이렇게 적었습니다.
 
"파람의 입구 그 입구에서 물한 모금을 권하는 인물은
파람에 다다른 인물이고
파람의 도달치 100의 장소에서 만난 인물로 설정된다.
파람의 장정을 시작하는 지금
작가인 나도 아직
그가 어떠한 여정으로 이 100의 지점에 이르렀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도달치 100에 이르렀으므로
당연 그는 인간의 도리를 일상화시키며
무아의 경지로서 그곳에 도달했으리라.
그래서 그는 파람에 도달하여 들어서지 않고
당연히 그의 일상을 지속하길
도리처럼 선택했을 것이고
그가 만나는 또다른 도달치 100의 인물들에게
물한 모금을 권하는 순간에
제2의 인물 즉 음성해설의 인물(광대가 되기로 한 ..)도
스침을 가졌을 것이다.
파람의 시작에선
그 파람의 입구에서 만난
도달치100의 그 노인의 이미지를 재현한다.
하지만 아직 그에 대해 구체화된 것이 없으므로
단지 그 스침의 순간에 보게 된 최소한의 이미지만으로
그를 묘사하면서
파람의 후속편에 오버랩해 나가기로 한다.
(2003/01/06 오전 12:25:57 )
 
그리고 들려주길..
"파람의 입구에서 한 노인을 만났어요.
삶의 희노애락일랑 온화로 지우고
파람의 입구에서 제게 물한 모금 쥐어주던 노인.
지독한 자기 낮춤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아픔을 감싸주려고 파람의 입구에서
새로이 돌아 나오던 맑은 모습.
 
그 분을 바라보면서 저도 광대가 되었어요.
삶의 슬픔과 고통을 기쁨으로 읽는 방법을 아세요?
"
2012년 1월 10일 화요일오후 3:50:33
...........
미니어춰 방식 공연이입 작업을 위한 상상훈련-언덕,이편에서
 
10년전 2002년 파람 연작을 시작하면서 시도해보고 싶었던
미니어춰 방식의 세트를 이용한 공연작업상상을 다시 돌이켜보면서
그 후속편이면서 재구성 작 격인 [언덕,이편에서]에서 연출구상에서
다시 미니어춰 방식 공연이입 작업을 이한 상상훈련을 시작합니다.
원근법의 해체와 현실을 보는 것에 대한 연극적 상상의 대체.
작은 것을 크게 보고 크고 넓은 것을 조그맣게 보면서
그 대비 안에 공연자의 이미지를 유입시켜서
연극적 상상력을 진전시키는 것.
파람 연작3편 추천과 승부욕 공연에서 시도해보려 했던 60년대
탄광촌의 모습 만들기 저럼,오브제의 배치를
조금은 성숙한 조형물의 제작과 사물의 재배치로 구성해보는 작업을
병행해보려 합니다.
파람의 입구 ,문은 아니지만 문처럼 역할하는 어떤 상상의 조형물
그 앞에 서서 물한 모금 쥐어든 화자의 모습이라던가
나무만큼 큰 나비.저만큼 멀리 와서 돌아보았을 때 보이는 언덕 위의 문.
공연의 과정에서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고 함께 해주지 않아서
관객을 만날 수 없는,
그래서 오히려 자유로운 상상의 배치.
연출자의 눈과 공연자의 마음이 만들어내고
그리하여 어린이처럼 원근감을 무시하고 제게 보이는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여 자연 안에 담아보는 세팅.
가야산 가는길 혹은 그 기슭 어딘가에서 담아볼
첫 무대를 준비하며 이승을 돌아서는 화자의 마음과 시선으로
인간세상 돌이켜 보이는 삼라만상과 시간을 중첩시켜 보이는 만물.
그 구조적 작업 위한 상상훈련을 시작합니다.
2012년 1월 12일 목요일오후 8:30:41
 
파람-피안의 길목에서 작업노트
 
예기플라타너스란 이름으로 작업하던 2002년 겨울,
파람은 20부연작형태의 2004년프로젝트공연작품으로 기획되고
준비되었습니다.
2002년 12월 포도밭을 지나는 국도곁에서 작업을 통해
어렴풋 손에 잡힌 화두의 씨앗을 안고   
후이넘연작..등의 작업과정을 뭉뚱그려 정리해볼 마음으로
인간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억지스러움으로 잡아볼 기대로
준비하고 시작한 작업이었습니다.
(오후 9:40 2012-01-31)

그래서 2002년12월27일 처음적은 파람은..이란 제목의 작업노트는
 
파람은
피안의 산스크리토어 원어로서
열반 극락 천국 등의 종교용어와도 흡사하지만
종교이전에 생긴 언어로서
그저 우리가 인간의 도리로서 이르러야할
이승의 저편같은 둔덕너머를 뜻합니다.
예기플라타너스는 2003년 이 파람의 제목으로
연작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파람의 입구에까지 다다른후
그곳에 들어가지않고
지금처럼 계속 존재의 도리를 다하는사람들의
모습을 찾아 담기로합니다.
2002년 12월 포도밭을 지나는 국도곁에서의
작업마무리에서 형상화한 가능성을 토대로
2003년 초연을 시작으로
파람은 연작으로 만들어지며
그 연작의 영상을 담아서 다시 하나의
짧은영화로 마무리지어집니다.
피안의 문앞에 이르러서 물한모금 마시고
다시 돌아와 꽃처럼 존재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이 열린 게시판을 통해서
많은 분이 잠시라도 시간을 내서 공유하며
자신이 만나본 피안의 인물이 되어
그 얘길 형상화시켜 들려주는 작업에
함께 해주시길 바라며 작업노트를 시작합니다.
(2002/12/27 오전 9:54:42)
하고 시작됩니다.

공연의 형식에서는 20부연작으로 가능한 많은 등장인물과
장면을 담고 그 형태에서도 영화적방식을 연극적 무대형상화의 형태로
만들어 볼 계획으로 구성을 꿈꿨습니다.
 

파람은 자연속에 미니어져를 설치하고 그곁에서 연기자들이 공연하는 방식으로
가상공간을 현상화시켜나가는 방법을 택할 예정이다.
그래서 극장공간에 무대를 세우는 세트공연이 아닌
자연속에 미니어쳐를 세우고 그것을 거리감으로 조정하여 공연의 시각공간안에 담아서
원근감으로 가상공간을 형상화시켜내며
피안의 세게로 가는 길목의 다차원공간을 만들어보는
방식을 택하는 자연풍경속에서의 공연을 연출하기로 한다.
미니어쳐는 페이퍼아트를 사용하며 domud kit 방식만들기를 통해서
매공연에 하나하나 그 지역에 맞는 마을이나 건축물 이미지를 만들어
혼용해가면서
작업한다.
파람은 자연속으로 뛰어들어 파람의 이미지를 찾으며
그 찾은 이미지에 스케치하고 페이퍼아트로 만들어진 미니어처를 세워서
축약의 비율로 원근처리되는 세트와 함께 공연하는 연기자들의 모습으로
공연을 연출하기로한다.
(페이퍼아트 미니어처와 함꼐하는 공연..
2002/12/27 오후 10:02:04 )
............
 
파람은 후이넘에서 돌아와나 포도밭을 지나는 국도곁에서등의 작업을 통해서
만나고 생성된 몇몇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그들의 일상과 비일상을 찾아서 극의 배경과 중심안에 현상화시켜내는 것을
전제로 시작되엇습니다.
그래서 극을 준비하면서 이미 몇사람의 인물들이
피안의 길목에서 만나고 스치게되는 인물로 전제되었고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파람의 길목 어디에서 마나는 것인가 하는것과
그들과의 만남의 시간적 배치가 구성의 기본틀을 만들었습니다.
     
주요인물에 대한 작업노트

파람의입구에서만난노인
2003/01/06 오전 12:25:57
 
파람의입구 그 입구에서 물한모금을 권하는 인물은
파람에 다다른 인물이고
파람의 도달치 100의 장소에서 만난 인물로
설정된다.
파람의 장정을 시작하는 지금
작가인 나도 아직
그가 어떠한 여정으로 이 100의 지점에 이르럿는지는
알수없다.
하지만 도달치 100에 이르렀으므로
당연 그는 인간의 도리를 일상화시키며
무아의 경지로서 그곳에 도달했으리라.
그래서 그는 파람에 도달하여 들어서지않고
당연히 그의 일상을 지속하길
도리처럼 선택햇을것이고
그가 만나는 또다른 도달치 100의 인물들에게
물한모금을 권하는 순간에
제2의 인물 즉 음성해설의 인물(광대가 되기로한 ..)도
스침을가졌을것이다.
파람의 시작에선
그 파람의 입구에서 만난
도달치100의 그 노인의 이미지를 재현한다.
하지만 아직 그에 대해 구체화된 것이 없으므로
단지 그 스침의 순간에 보게된 최소한의 이미지만으로
그를 묘사하면서
파람의 후속편에 오버랩해나가기로 한다.

 
냇골의 뱃사공
2003/01/06 오전 12:47:29
수몰지구
그리움으로 찾아오는 누군가를 위해서
아무런 연고도 없이
다만 세상 어느곳에선가
그리움에 자기정화를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거라는 기다림으로
무한 기다림을 시작한
피안의 도달치 상위에 있을 40대 혹은 50대의 뱃사공.
후이넘에서 돌아와에서 선인의 모습 중 하나로
만날수있엇던 그 인물을 이제
파람에서 재생시킨다.
특히 뱃사공의 모습은 삶의 말년에
가장 소극적인 자기낯춤의 모습으로
무아를 이루어낸 한사람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그래서 그의 즐거운 기다림의 일상을 그리며
그를 만난 또다른 같은 도달치의 시인의 얘기를
오버랩시킨다.
물안개가 낀 수몰지역 인공호수에
작은배를 띄우고 물가에 조그마한 집을 세우고
살아가고있는 이의 아침에서 저녁까지.
저 언덕아래 버스가 정차하면 혹시라도
이쪽 길로 올라오는 누군가가 있을까 기다려보고
없으면 또 내일은 누군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 귀한 그리움의 완성을 위해서
자아를 모두버리고 고운 기다림을만들며
생을 마감하기로한 한 사람의
어느날 일상만들기.
 
[맨틀]의 이미지..
2003/01/06 오전 12:59:02
 
장덕리 어느겨울이야기의 마지막부분
실향가와 함께 증명될
맨틀의 이미지는
파람의 기본구성캐릭터로 있다.
파람안에 담긴 인간아닌 또다른 생명체의 시선.
50억년을 존재해온 맨틀의 시선은
인간의 600만년 역사를
다만 지구력 12월의 한부분으로
자기표피안에 담고있다.
 
맨틀의 이미지는
파람1에서 피안에 이르는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봄과 함게 그들아닌 다른 이들이 만들어놓은
파괴와 갈등과 상처의 산물들의 흔적을
보듬어주는 지구의 생존방식 그 일부를 담기로한다.
집.
미니어춰로 만들어진 어느 마을의 구성.
그 마을 어귀어귀에 불밝히는
작은 촛불켜기.
뿌리뽑혀지고 쓰러진 꽃들-즉 피안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소외의 흔적-을 모아 그것의 향기를
맡으며 다시 한아르므이 꽃다발을만들어
생명을 되살려주는 모습.
그리고 바라봄.
일상안에서 잊고살아가거나
피안에 이르는 길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과 편견과 자기합리화로
무리지어 살다 떠나가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실향과 자신의 그리움을 일체시켜보는
움추림.
털쉐타를 입는 모습 등등
...............
파람연작을 준비하면서
그안에 담고싶은 캐릭터들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의 예기플라타너스작업을 통해서
공연안에 생성해온 인물과 존재들중에서
피안의 길목에서 만날 수 있었을 존재들
후이넘연작에선 선인이라 불리웠고
후에 초인이라고  칭해보기도 했던
큰바위얼굴같은 존재들과의 스침
그기억과 추억의 생성을 위한 그리움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러한 인물들을 제시해주고
그 공연을 같이할 사람들이
가슴저리게 그 인물과 만나고 혼에 안으며
파람의 길을 걸어갈 여정을 담아내는 꿈.
그리고 마침내 100의 수치에 자신도모르게 이르러선
피안의 입구에서 물한모금 건네주는 노인과의 만남통해
돌아서는 장면까지의 완성.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굼은 사람들안에서 이뤄지지못했고
연극의 방식을탱하지않앗으므로해서
실존적 만남안에 결코 담아낼 수 없었던
이승에서의 인간세계에서의 미완의 작업으로
용두사미격의 작업이 된 파람입니다.
오후 9:59 2012-01-31
.   
 
너의 의미
2003/01/06 오전 1:09:48
너의 의미..
대사없이 노래로만 이어지는 캐릭터.
피안의 어느 지점에서 스쳐만난 누군가의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 감지하게 틀어둔 가요곡 한곡.

피안으로 다가가는 길을 잘못 찾은 이들에게
우리들이 보이지않는 단하나 피안으로 다가가는길에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의 수수께끼이며
그 수수께기의 답은
그 관측자자신이 피안에 이르는길의
1에서 100까지중 어느 한점 도달치에 다가서기전에는
풀리지않는다.
파람의 4장에선 대사나 독백없이
우린 그 캐릭터를 설정하고
설명도 증명도 없이
그 수수께끼를 무대위에 배치한다.

예플5월연작 잊지마세요에서 만났던
순례자의 모습을 배치해본다.
잊지마세요의 순례자부분 지문...
아침에 방에서 일어나 짐을 챙긴다
길을 걷다가 경복궁에 도착 입장권을 사서 궁내로
들어가 명성황후 조난지에서 분향한다
길을 걷다가 어느 조그만한 간이역에 도착
팻말을 발견 헌화하고 선배에게 전화를 한다.
지리산 피아골에 도착한다. 담배 한개피..
공주 우금치에 다다른다. 편지를 쓰고 소지한다
광주에 도착 길을 걷는다.
어느 한 곳에서 제대를 발견하고 분향한다
제주로 향하는 순례자
그리고 제주에서 4.3의 넋과 만나 준비한 마음을 풀어놓는다

실향가중 간주부분, 사람들속에서 문득 나타난 누군가가....
2003/01/06 오전 1:16:10
파람의 마지막부분인
실향가중 간주부분
사람들속에서 문득 나타난 누군가가....
이부분엔 앞서 등장하엿던 인물들 중 누군라도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맨틀의 바라봄과 보살핌과 오버랩되는부분
이었으면한다.
파람초연에선 순례자의 모습이 적합하다
일상의 많은 사람들이 유채색이라면
그중에 유독 무채색으로 일상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극안에 무채색으로 보인다면
그의 모습만 유채색으로 보이게
일상의 사람들이 지구의 자전속도에 맞춰
그 인력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의모습만은 자전속도보다 2-3배 느리게
인력에 구애없이 무중력을 걸어가는 모습으로 ..

파람-피안의 길목에서는 20부작을 전제로 하여
일단 이렇게 몇개의 장과 인물의 배치를 준비하고
하나하나 찾아가며 이세상 사는길에 만나고 스칠 누군가를 그리며
선인을 찾아가는 무상의 여정으로
극의 기본구조를 갖추고
일상안에 담고 기릴 시간을 고대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오후 10:03 201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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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람20부작을 회상하며 언덕 이편에서 다시 걷습니다.
언덕 이편에서 01 세가지 에피소드 중 첫번째애기.수륜
http://yegie.com/chaan01/page_01.htm
이름없는공연 2012년프로젝트공연 언덕 이편에서는 차안의 얘기입니다.
하지만 피안에 반대되는 상대적의미로서의 차안이 아니라
피안의 입구에 다다른 사람이 사람아닌 마음으로 돌아서 다시 걸어보는
회향의 방향으로서의 차안의 얘기입니다.
그래서 작업은 인간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또 그것에 영향 미치지 않으며 관계치 않는 모습으로 관계하는 다차원의 움직임 그리고
보이지 않는 보임과 거리를 유영합니다.
 
언덕 이편에서는 3장의 단시처럼 화두를 적고 지난 12년간 피안의 길목을 걸으며
만나고 진 꿈을 상시하며 잃어 버린 것,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 에피소드를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의 오브제 속에 숨겨지고 남겨진 조각들을
뜻모를 조우로 이어갑니다.
죽음이후의 순례이자 죽음 너머의 세상을 거니는 꿈으로
이승과 피안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부유하는 실존.
인간에 대한 그리움은 더 이상 욕구나 기대가 되지 않고
희망 역시 그것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며
초월의 시각과 선별한 찾음을 통한 확인의 존재로서 사람들 속에서 벗어난
사람아닌 존재의 인간세상 다시 걷기.
언덕 이편에서는 그렇게 작업합니다.
그리고 그 작업이 실존이 되어 공연과 작업의 과정을 통해서
산화하길 갈망합니다.
 
2012년 1월 성주 그리고 가야산기슭에 존재할 시간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리하여 준비하며
언덕 이편에서 그 첫 장을 세가지 에피소드로 나누어서
수륜면 가야산 성밖숲 그렇게 세 개의 시간을 공연했습니다.
 
수륜에서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인간이 만드는 토양과 자연의 재구성
그리고 그것을 통해 지워가는 그들의 추억과 생명의 단축을 담보한
편리성과 욕구의 충족을 바라봄 입니다.
지움을 통해 이루는 욕구의 만족이며 이승의 시간 가늠기준의 단명을 통한
무모함을 지혜라 일컫는 어리석음을 마주하며 상기하는 인간세상의 추억입니다.
언덕 저편에서 돌아오는 길은 갈 때의 그 길보다 더욱 황폐하고
피안의 길목에서 만나던 사람들조차 없어져서
그 흔적은 먼 옛날 이승에서의 추억으로만 상기 시켜집니다.
인간의 지혜로 토막난 마을 산기슭아래
밥짓는 연기 그리운 잔존마을.
황폐한 언덕길,동구 밖 마을길을 쓸던 사람은
낭떠러지 위에서 옛처럼 빗자루를 움직이더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나무도 없어진 옛 나무 그늘에 앉아서
잠시 시간 안에 담겨 지금 아닌 시간을 보고 있습니다.
2012년 1월12일 그리고 다시 14일
피안의 길목을 지나 다다른 후 돌아서 오던 언덕 이편으로의 길.
언덕 이편에서 그 첫 번째 공연.
그들아닌 존재로서 그들곁을 겹쳐 거니는 첫 만남은
그렇게 흙먼지 뒤덮인 토막난 언덕길한편에서
여전히 어리석은 영장류의 지혜질 곁에서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귀한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2012년 2월 2일 목요일오후 9:47:32
....................
언덕 이편에서 01 세가지 에피소드 중 두번째얘기-가야산기슭에서.
 
설산을 오르던 기억을 중심으로
미륵사지 멀리 바라보이는 평원 너머 언덕초입을 걸어 오르던 사람의 모습 상기하며
가야산기슭에서 만물상 너머 보이는 첩첩 산 고등선 따라.
어제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바위길 오릅니다.
그리고 사락눈 내리는 어느 골 바위 위에서
노인이 나인 듯 그에게 따르는 차 한잔의 나눔.
피안의 길목넘어 100의 수치를 다다랐을 때
더 이상 오를 곳 없이 능선에 앉았을 때
거기 세워진 문.보이지 않는 누각에 미닫이 사립문.
그 문앞에 다가서서 만나던 인간의 마지막 심박과 작고 깊은 호흡.
꿈속의 꿈에서 나누던 그 한잔의 옹기잔에 담겨진 이름모를 액체.
기꺼이 들어 마시며 되돌아보던 삶의 길.
단아한 삼층 석탑 하나
시야에 겹쳐지는 고등선 바라보며 언덕에 서있고
산을 따라 오르고 내림만든 인간의 길.
교정의 흔적도 남지 않은 분교장 폐교 교문석에 남은 명패.
애둘러 오던 길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명을 지우며 청아하게 다가오고.
인간의 도리대로 향해 택한 저 언덕길
거긴줄도 모른 채 다 다른 피안입구
맞이하며 한잔 차 건네주는 노인의 손.
 
피안의 길목에서 스쳐 만나던 사람들.
이승길 지나오며 구름만 같던 둔덕 너머
찾아온 이유따라 짧은 쉼 이은 회향
 
2012년 2월 6일 월요일오후 3:30:54
.....
언덕 이편에서01 세가지 에피소드 중 세 번째얘기-성밖숲.
 
하늘도 모두 가린 숲이었었는데
돌아오는 길 그곳은 단 한 장의 잎새도 없이
빈 가지 사이로 드러난 하늘
잎새로 가리웠던 시간의 몸이
눈부시게 드러난 겨울 오후의 이승.
그 길이 피안에 이르는 길목에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이곳을 지나오던 날
저 나무줄기에 올라 그 줄기에 몸뉘우고 나뭇잎사이로 바라보던 별과
그 별에게 빛으로 신호 보내던 그리움.
종이배 접어 띄우면 어느새 같이 나와 수백의 하얀 배 띄워서 뱃길을 만들고
그 사이에 등대빛 나눠주던 숲.
그대로 가꾸고 싶었던 마을의 얘기와
이윤을 앞세워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의 마음 앞에 학살당하는 아이들의 영혼과
새벽 도청에서 헤어진 벗의 흐르지 못하고 멈춰선 시간의 아픔.
후이넘에서 돌아온 이의 기억을 얘기하기도하고
성주에 처음으로 지역촛불을 켜보기도 했던 곳.
흐린 하얌.싸늘하고 시린 빈숲에서 손 내밀어 안아보는
그리운 시간의 추억.
아름다웠던 사람들,언덕 저편을 향해 떠나가 버린 그들과의 귀한 스침 그리며
성밖숲, 나뭇줄기와 가지들만이 기억해 들어주는 아무도 모르는 얘기.
그 회향길의 작별.
2012년 2월 6일 월요일오후 4:13:10
................
언덕 이편에서02 네 번째에피소드 숭의동우각로눈길언덕
 
그래 그건 소풍이었어 소풍이었을거야
애둘러 돌아가는 오감지닌 소풍길.
여기서도 다시갯벌 칠면초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곱게살던 마을어귀 넋길.
2012년 2월 3일 금요일오전 9:58:12
...................
파람 그 첫 번째 공연-촛불을 든 사람들
 
파람의 작업을 준비하던 2003년 1월이 지나고 2월을 맞을 즈음
익산에서도 열린다는 조그만 촛불집회에 함께 하는 거리공연의뢰가 있었고
준비하며 익산에서 멀지 않은 미륵사지에서의 공연을 파람의 첫 공연지로 담을
기획을 했습니다.
 
 
미륵사지의 시인
2003/01/13 오전 10:54:09
 
56억 7천만년뒤에 다시 돌아올 미륵을 그리며
숭고한 마음을 모아 건축하는 사람들의 일과 곁에서
그들의 큰마음을 어루만져줄 시를 적어가는
석양 혹은 새벽녘 미륵사지 들녘의 시인.
녹유연목와와 연꽃무늬 수막새 기와,그 건축자료들이
놓인 건축현장에서
7세기 어느 싯점 백제를 살고 잇는 한시인의 모습.
풀잎과 놓여진 기왓장사이에 한편의 산소같은
글을 적어 놓고 가는 사람의 모습.
그는 냇골에서 끝없는 기다림을 선택한
어느 뱃사공을 만나서 그를 바라보고
자신의 또 하나 도리를 찾았다고 하던
21세기의 어느 시인의 전생 어디에 선가 있었던 그 모습과
일치되어 보인다.
 
[파람1][촛불을 든 사람들]
2003/01/17 오후 5:55:05
 
익산 촛불 집회에서의 초연을 준비하며
촛불을 든 사람들을 생각한다.
 
맨틀은 촛불을 든 사람들로 대변되는 사람들이 가진 순수한 사랑을 스친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욕심이나 이기심 없이 정말 순수하게 타인만을 생각하며
아름다운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여기며
미움보다는 애처로움으로 부족한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 안으며
자신이 켜는 한 개의 촛불로 세상의 어두운 면이 변해지길 기원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존재하던 모습.
지구의 표피 위에 그렇게 동종을 사랑하고 자신을 버리는 생명체가
인간말고 더 있을까?
맨틀은 인간세상 피다 꺼진 꽃송이들을 줍다가
촛불을 든 그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하나하나를 찾아서
차가운 거리에 다시 세운다.
 
어떻게 이어가야하나..화두의 동행없는 연기자들과..
2003/01/19 오전 10:44:50
 
익산 촛불 집회와 미륵사지에서 공연할 파람엔
참가할 연기자가 둘뿐이고
그나마 연습미팅을 가질 시간조차 충분히 주어지지 않아서
배역과 스토리구성에 고심이다.
파람의 다음작업 역시 준비되고 있으나 공연일정이 나와도
다가와 같이 가는 사람은 없다.
눈에 보이고 담고 싶은 얘기는 한없이 펼쳐지는데
그것을 같이 준비하고 얘기할 사람들이 없어서
시간은 흘러도 오지 않는 연기자를 기다리며
어떤 인물을 만나고 다가가는 그런 얘기조차 나눌 시간 없이
파람은 준비된다.
아마도 파람은 백지 위에 사람들이 있었음 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제 맘대로 생각하며 여유있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만나며
전혀 딴 그림을 만들어가는 작업으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어쨋건 스스로 즐겨 절실하게 연습일을
신청하고 연습이 끝나면 그 화두로 자기가 만날 인물의
얘기에 심취하며 절실히 그려 나갈 작업을
만나 볼 수 조차없는 상태에서
그저 온다는 사람에게 그냥 어떤 인물이 있노라고
온라인상으로 전하고 그것을 그가 보고
너무도 짧은 시간 그가 자기생각대로 표현하면
그 배경과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 최선인다.
연기자 아닌 관광객의 모습으로
자연을 보고 아름다웠다고 감명받고 돌아오는
등산객이나 여행자같은 모습으로
공연에 동참하는 두개의 갈래에서
파람 연작은 만들어질 모양이다.
사람 안에서의 이 작업이 현실적으로 그렇게밖에는
되지 못할 형편이라면
동행의 개념을 포기하고
홀로 만들어 상상하고 구축하며
그저 편하게 다가와서 자기나름의 의미 짓는 모습을
작품의 의도와는 별도로 포함시켜 나가는 작업으로라도
공연은 욕심을 비워야 할 것 같다.
내가 만들지 않은 자연과 유물이 거기에 잇듯이
내가 모르는 어떤 인물들의 표정이나 행동이
그곳에 있어서 그것 마져 포함해서
파람이라는 화두 안에 그것을 넌지시 담아 포용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연작작업.
처음 의도와는 너무 다르지만
그저 그렇게라도 함께 할 사람이 있다면
감사하면서...
.
제 목 : 배역들이 생성도 되어보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
내 용 : 작성일 : 2003/01/19 오전 11:29:33
 
파람 연작에 등장할 수많은 인물들의 모습,
사람들이 와서 그 역을 하겠다고 정하면
그 인물은 한 연기자의 고정캐릭터로 정해지고
그가 이 연작 안에 그 인물을 게속해준다는 전제하에
인물이 생성된다.
하지만 파람 연작의 인물들은 아직 시작도 못해 본채
작가에서 연기자로 옮겨간 후
연기를 하겠다는 사람들의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죽어가거나 잊혀 져가는 살인행위가 행해진다.
인물에 대해 깊이있는 개인작업도 없고 그저
단순묘사를 하려 하다 말고 말고 하는 그런 식의 행위들로
인해서 절실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생성되고 주어졌던
인물들은 작가의 노트에서 입양된 후
처절히 죽어간다.
파람 1,2,3,4의 공연일정이 잡히고
각기의 인물들이 하나하나 구성되고 입양되기 시작하였으나
그를 입양한 연기자들이 그를 보살핀 작업노트도 없고
그의 생성을 표현할 날짜가 다가와도
연기자들에게 절실한 애정은 없어서
그를 죽여버리는 것에 대해서 너무 편이하다.
누군가 파람에 참가하겠다고 다가왔을 때
그의 얘기만을 믿고 입양 시켜줌으로서
고운 생명들이 하나하나 죽어가고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는다면
과연 이 입양방식의 작업이 지속될 수 있을까?
초연을 앞두고 파람은
파람과 맨틀 두역 외에는
아무런 동행자도 찾지 못해서
입양정책에 대한 재고를 생각케한다.
파람의 길로 향하는 길에 만난 사람들의 이미지는
아름다우나 그것을 받아 입양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너무 낙담스럽다.
그런 마음으로
자신에게 작가로부터 입양된 그 인물을 만나
한번이라도 처절히 눈물지며 가슴 아파보지도 않고
그저 막연하고 안이한 방법으로
연습조차없이 무대를 만들어 인간세상 앞에 선다면
그 죄악의 깊이는 얼마나 깊은가?
[파람]의 인물들을 생성시켜
세상에 내놓아야 할 시간이 이제 5일 남았다.
그 5일간 연기자의 기대치를 버리고
설치미술식 방식으로 사람없이 사람없이
사람을 표현하는 그런 방식으로 공연을 바꿔야 할 것같다.
임시방편으로 언젠가 누군가 절실히 준비하여
사람의 얘기를 사람이 표현해줄 수 있을 때 까지
비워둠으로 혹은 기대를 버린 허상의 이미지로서
연기자와의 슬픈 동행을 시작해야 할 모양이다.
있는 것처럼 보이나 없으며
같이 한다고 하지만 다른 일을 하고 있다.
파람의 인물들
그 도달치 1에 해당한 사람이라도 만나 같이
우주의 시간얘기로 함께 흐느껴 울며
만들어갈 파람의 1년은 언제나 다가올까?
 
누구나 아무 역이나 할 수 있는 공연으로 재조정.
2003/01/19 오전 11:44:23
 
파람은 연작 안에 만날 수많은 인물들을
각기 캐릭터 별로 연기자들에게 주어주고 그들이 연작 안에서
계속 그 이미지와 인물의 시간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영상작업까지 배려하여 준비하였으나
한달 간의 작업을 통해서
그것이 반지의 제왕이 나 해리포터 스타워즈 시리즈같은
대형 자본주의적 시스템 아래서 이뤄지는 계약과
법적통제및 구속같은 체제아래서가 아니면
인간세상에선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엇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배역 및 캐릭터 별 고유설정과 기다림의
연속성을 가진 작업을 포기하고
같은 캐릭터를 아무나 쥐어줄 수 있는 방식으로
대체한다.
이는 한번 쥐어준 캐릭터와 인물들이
연기자들의 비절실함과 자기만의 자유이식으로 인해서
죽어가거나 생성조차 되어보지 못한 채
다른 이를 통해서도 그 인물을 극 안에 담아보지 못하게 하는
족쇄를 채우는 결과를 초래하기때문이다.
지워진 것을 그리는 이나 미륵사지의 시인
뱃사공을 만났던 시인 혹은
뱃사공 순례자 광대 등의 캐릭터가
1회성의 작업으로 끝나버린 연기자의 몫이 되고
그가 참가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기한 만남의 공간에 그 인물을 배치시키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파람 연작은 한번 스쳐가는 연기자들의
자기허영으로 인해서
수많은 얘기를 이어가지 못하게 된다.
모든 것에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하며
시작하지만 에니메이션이나 컴퓨터 그래픽 작업
혹은 인형극이 아닌 인간이 출연하여 그들의 기분과 몸과
철학의 정도를 담보로 이뤄지는 것이 공연이므로
그들을 통제하지 않고 차선의 아름다움을 그려낼 수
있는 방법은 작가가 준비한 기대 치의 포기뿐이다.
모두가 대역같은 기분으로 연기하면
그 인물에 대해서 구차하게 고민하지 않고
공연에 참가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동행자 없이 연기자만으로 이어갈 파람은
이제 한단계 더 복잡해진 작가와 연출자의 고민을
과제로 쥐어준다.
초연은 이제 고작 5일밖에 안남았는데
실존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든 기대지를 잃고
다시 백지에서 시작하는 꼴이다.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공연되지 못한다는 것..
2003/01/19 오후 12:04:42
 
파람의 인물들이 생성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연습을 통해서 인물이 구축되지 못하고
공연에 출연하지 않으므로
배우와 연출의 가슴에만 있을 뿐
만들어지지 않음으로 표현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파람의 인물들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아니라
공연으로 표현되어야 할 인물들이며
공연에 출연하여 그 인물의 얘기가 관객 앞에 등장하여야만
생명을 가지는 겁니다.
근데 생성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잇다는 것은
그것을 하기로 한 연기자가 출연하지 않음으로 해서
공연 안에 담길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언젠가 한두 번 출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미륵사지의 시인처럼
다시 미륵사지에 가서 공연할 기회가 없고
또 그때 그 인물을 맡은 출연자가 개인적 시간의 이유로
같이 못가게 되어 공연하지 못한다면
그 인물은 결국 생성되어지지도 못하고 죽어서
파람 이란 공연 안에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기자의 마음속에 늘 화두로 두고 살아 있다는 것은
최소한 공연이 된 다음의 얘기이며
특히 그 사람만이 그 역을 할 수 잇게 했을 경우
그 인물을 맡은 연기자의 개인여건이
미륵사지의 시인의 모습을 공연 안에 담거나
담지 못하는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므로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 인물은 우리 시선 안에
표현되지 못함을 얘기합니다.
연기자가 늘 생각에 두고 있어도
공연이 되지 못하면 그건 잉태만했을 분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생명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그 인물을 살려서 적당한 곳에서 그 인물의
등장이 필요할 땐 그때 연습과 출연할 수 있는 연기자를
찾아서 그 인물을 표현한다면
파람의 인물은 생명을 얻을 수 있을거라 보고
연출방식을 바꾼 것입니다.
작업게시판에 참가의사를 표시하신 시간여행자님 역시
자신이 그 인물을 지니고 있다가
자신이 그 인물을 표현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공연에
다시 오셔서 그 인물의 부담없이
그 인물을 표현하실 수도 있습니다.
.
 
준비했던 모든 구성과 기획을 버리고 시작한 파람의 첫 공연길
 
파람을 준비하면서 그 시작도 하기 전에 고통스러웠던 것은
동행자들을 만나지 못하는 아픔이었습니다.
몇 편의 연작을 통해서 마침내 하나의 완성본을 구축할 수 있는
다음단계의 작업의 구상을 마쳣으나
전작에 함꼐하던 사람들이 그들과의 작업을 통해서 이음으로만 들어낼 이 새로운 작업에
동행하지 않으며 관심조차 갖고 있지 않은 홀로 작업이 되어 버린 현실 속에서
이어 생성시키고 싶은 마음과
그들이 해주어야만 존재할 등장인물들의 생명에 대한 고민을
이제 버려야 하는 허망함 속에서
그래도 작업을 구축하고 싶은 욕심에
모두 잊어 버린 시간을 홀로 이어가는 구도로서의 작업.
그들과 같이하고 싶어서 아니면 우연처럼 만들었던 그 얘기들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서
준비하고 구성하였던 20부연작의 작업방식은
그 자유로움과 변칙성의 열린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응답받지 못한 채 ,
그래도 그 아름다운 인물들과의 만남이 그리워서
작업 안에 담고 만났던 존재하듯 존재하지 않는 인간세상의 인물들의 얘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리움모아 끝내 만들어볼 양 시작하는 것.
파람20부작은 그렇게 다 만들어놓은 얘기를 갖고서
다시 모든 걸 버리고 백지의 상태로 돌아가서 홀로 떠나는 여정의 방식으로
구성과 방법을 바꾸고 익산 중앙로 거리 한편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이란 새로운 인물들.
역시 다시는 만나서 이어지지 못할 일순간의 사람들을 다시 스치며
그들곁에서 그저 스침을 통한 포기의 방식으로
동지잃은 동행없는 작업의 새 형태로 얼마가 될지도 모를 20부작의 그 첫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2012년 2월 8일 수요일오후 6:43:51
 
연기자의 모노드라마와 연출이 있는 공연,..
2003/01/19 오후 1:21:09
 
연기자의 홀로 연습은 자작연출의 모노드라마에서만
가능하며 [파람]처럼 작가와 연출이 있는
두명이상의 연기자가 출연하는 공연에는
연출과의 미팅없이 혼자서만의 자기배역분석은
공연의 색감을 전혀 다르게 거리를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대개의 예플 공연이 그러하듯
연출과의 연습미팅없이
그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물을 구축하거나
연습과정을 통해서 구축한 설정의 한도 안에서의
인물구축작업이 아닌
개별적 생각만의 연기자의 홀로 작업은
이 공연을 더욱 어렵게 하는 부분이 되기도 합니다.
좋은 방법은 연출과의 미팅을 통해 작업을 한후
그 진도 안에서 작업을 진행시키고
새로운 생각이나 지문 ,혹은 인물분석의 의문이 생길 경우는
다시 연출과의 미팅을 통해서
전체작업 안에서의 인물형성범위를 찾은 후
다시 연습을 하고 작업노트를 통해
그것을 정리해 나가는 방식을 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 시인의 인물분석은
그가 피안의 길목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대전제에서 벗어나지는 않게 하여야 하며
지독한 자기 낯춤과
무아에까지 이른 자기버림의 인물만을
공연 안에 담기로한 파람의 기본설정에 어긋나는
이기심이나 자기표현욕구를 0.1%라도 가진 인물은
아닌가 하는 면에선 다소 어긋남이 있어 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파람의 인물들은 그저 선한 사람을 등장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파람에 이른 사람의 진정한 면모를 찾아내는 작업이며
그렇지 않은 면이 약간이라도 의심되면 그 인물은
이 작업에 걸맞지 않으므로 재구성을 해야 합니다. .
 
 
[파람1]익산 촛불 집회 사람들이 모여있다.
2003/01/19 오후 12:18:05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리고 그들이 촛불을 들고 서로 다른 속에서도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향한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몸과 시간을 바쳐서 하나되기 위해
까아만 정적 위에 촛불을 태운다.
도시.아스팔트와 회색건물들의 거리.
피안의 길목에서 마주한 인간의 모습 중엔
그 촛불을 든 사람들 속의 누군가의 시공간이 있다.
세상의 3차원적 공간 안에서
차원을 더해서 보이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피안의 도달치의 어느 부분에 이른
사람들의 모습이다.
[파람01]은 그 시공간 안에서 공연된다.
맨틀이 거리에 다시 하나하나 놓고
애처롭게 가다듬어가는 사진들 속에
그 다른 차원의 촛불을 든 사람들의 무리가 있다.
냇골 뱃사공도 오늘은 같은 시간
그곳에 촛불을 켠다.
그리고 파람의 길목에서 물한 모금을 얻어먹고
돌아서서 광대가 되었던 한 사람도
아스팔트 거리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 턱
어딘가에 앉아서 등을 밝힌다.
누군가 사람이 더 있다면 그 역시 자신의 하던 일을
멈추고 시공을 초월한 평화를 기리는 같은 시공간에서
촛불을 켠다.
[파람01]은 진정 타인만을 위한 자기희생으로
절대순수의 가슴만으로
그렇게 촛불을 켜는 사람들의 시공간을
익산 촛불 집회 현장에 놓고 간다.
 
 
아마도 촛불의 시작이었을 겁니다.
 
물론 그전에도 누군가 어디선가 그렇게 촛불집회가 열렸겠지만
이렇게 각지에서 같은 화두를 안고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 둘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서
촛불집회라는 이름으로 동행을 찾는 작업의 시작.
2003년을 시작하는 겨울은 그렇게 촛불을 든 사람들의 얘기가
이 나라의 거리거리에 아주 조금씩 모여 서서 시작되었고
파람 연작은 그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영등동 건멀목 거리에 놓으며
그리고 촛불을 든 이들에게 따듯한 차한잔 끓여 쥐어주며
사람들 속에 또 하나의 희망진 꿈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실제 사람들이 있었고
관객이 아닌 그들의 얘기를 나누는 이들로서
파람에 이르는 길
그 도달치가 아직 어느 점 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아름답게
서로 알지 못하고 다시 만날 수도 없지만
스침만으로 아름다운 얘기를 말없이 나누는 순간을 통해
꿈꾸었던 공연아닌 공연의 방식으로
또다른 현실 속에서의 시간이
이 작업의 제목도 이 작업이 20부연작의 시작임도 아무도 모른 상태로
비련의 미완작업 파람 그 20부작은 첫 공연을 마쳣습니다.
2012년 2월 8일 수요일오후 6:57:39
......................
[파람1]익산촛불집회. 정리대본.
예기
2003-02-04 오전 2:51:31

1
한 노인이 거리 한 곳에서 차 한잔을 끓이고있다.
2003년 1월의 어느토요일
조그마한 촛불집회가 준비되고있는 소도시의 횡단보도.
사람들은 제각기 촛불을 켜들고 아무말도 없이
거리에 옹기종기서있다.
그 속에서 노인은 차를 끓인다.

2
상무대, 오늘도 화요일을 잊지않고 찾아온
금호4단지에 사는 주부는
피의자대기실에 들어앉으며
익숙한듯 넋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이번 토요일 부터는 촛불집회에 나가려고해"

준비한 초에 불을 이어 부치면서1980년에서 2003년
까지의 수많았던 사람들의 희생을 느끼면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는 거리에 나가
촛불을 든 사람들속에 어깨를 함께 한다.

3.
샐러리맨
사무실에 출근했지만 오늘은
퇴근시간이 유난히 기다려진다.
"오늘은 촛불집회가 있는 날이지..''
아침에 출근길에 산 초를 꺼내본다.
일을 정리하고 오늘은 일이 있어서 먼저
퇴근하겠노라말을 하고 사무실을 나온다.

4.
집에 돌아와 어제밤새 만들엇던 초를 꺼낸다.
그리고 그 초를 들고 촛불집회가 있는 거리로 나와
그들속에서 또한개 촛불을 지핀다.
까아만밤 뱃길을 안내하는
등대지기의 마음으로...

5.
사람의 모습을 한 맨틀.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는 거리
거리에 놓여진 꽃송이들 그사이사이로
한장한장 사진이 놓여지고
사진속의 사람들은 등대지기의 모습으로
촛불을 밝히고 잇다.
피안의 길목 어디에선가 만났던 그들의 모습과
그들이 살고잇던 작은 마을들.
그 마을어귀에 촛불을 밝히고
그 빛으로 하여 사람들의 지나온 흔적이
길이되게 한다.

차를 끓이던 노인,
자신이 피안의 길목에 이른 것도 모르며
서있는 한사람에게 이리오라 손짓한후
그에게 차한잔을 권한다.

................................................

파람1 촛불을 켜는 사람에 이어 파람 그 두 번째얘기,
 
파람1 촛불을 켜는사람들의 그 첫 번째얘기를 마치고
다가갈 팖 그 두 번재 에피소드 미륵사지에서의 공연을 결정하고
피안의길목에서 만나고 스칠 사람의 모습중 몇 개의 기본인물을
준비했습니다.
피안의 입구에서 물한모금 건네주던 노인
지구의 마음을 형상화시킨 맨틀.
그리고 미륵사지의 시간속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얘기.
언젠가 피안의 길목 어디선가 보게될 성찰과 자기정화의 기다림을 보여줄
56억 7천만년의 기다림 그 누구까지.
2012년 2월 9일 목요일오후 3:12:58
...
미륵사지의 시인
2003/01/13 오전 10:54:09
 
56억 7천만년뒤에 다시 돌아올 미륵을 그리며
숭고한 마음을 모아 건축하는 사람들의 일과곁에서
그들의 큰마음을 어루만져줄 시를 적어가는
석양 혹은 새벽녁 미륵사지들녁의 시인.
녹유연목와와 연꽃무늬 수막새 기와,그 건축자료들이
놓인 건축현장에서
7세기 어느 싯점 백제를 살고잇는 한시인의 모습.
풀잎과 놓여진 기왓장사이에 한편의 산소같은
글을 적어 놓고가는 사람의 모습.
그는 냇골에서 끝없는기다림을 선택한
어느 뱃사공을 만나서 그를 바라보고
자신의 또하나 도리를 찾았다고하던
21세기의 어느시인의 전생 어디에선가 있엇던 그 모습과
일치되어보인다.
.............
[파람2]56억7천만년을 함께 기다리고싶어서..
인간의 시간은 ,,지구의시간보다도..
2003/01/19 오후 10:51:12
 
인간의 기다림의 시간은 지구의 시간보다도
태양계의 생성시간보다도 더 길고 크다.
현실의 인간들은 100년도 안되는 자기의
삶의 단위안에서 모든것을 갖고 버리고 추구하지만
피안의 세계를 그리는 인간은
지구가 생성되어 지금까지의 시간보다도
더 많은 몇갑절의 시간뒤에 이루어질
아름다움을 그리면서 그리움을 완성시킨다.
그안에 담긴 자기의 이승에서의 100년도 못되는 생의 시간이야
허무의 먼지에 불과하고
그럼으로 인하여
그의 세상살이의 도리는 영겁으로 이어지는 시간에
속해있다.
이제는 지주만이 남고
수백년을 지탱해오던 석탑마져
보수를 위한 해체로 숨어버린 빈터에
미륵사지를 만들던 사람들의 마음이
흔적으로 남아있다.
파람과 순례자 그리고 맨틀은
그들의 따뜻한 가슴앞에 서 있다.
그리고 이곳이 또하나의 피안에 이르는
초반의 도달점에 이른 이들의 고운 흔적임을
만난다.
.....
param02 파람-피안의길목에서02(2003.1.26)익산미륵사지
http://yegie.com/param02/page_01.htm
 
파람은 익산에서 2003년1월25일과 26일 두편의 공연으로
시작되었다.
25일 [파람01]은 익산촛불집회에서
촛불집회에 나가느 사람과 촛불을 밝하는 이들의
얘기를 모았고
26일 [파람02]는 미륵사지에서
미륵신앙의 발원개념을 찾아가고 밝혀가는
선행의 기다림 그리고 그 깨달음의 도입시간으로서의
3차원세상에서의 삶
그 화두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2003/01/27 오후 12:12:22
..........
 
.................... 
파람3부 추전, 승부역에서의 공연
 
오지에 위치한 기차역으로 손꼽히는 두곳.
추천과 승부역에서의 파람을 준비하며 1960년대 강원 태백의 탄광촌
그리고 오지를 사는 외로운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얘기를 기억했습니다.
태백, 추전역으로 오르는 눈덮힌 산길.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
지금은 아무열차도 서지 않는 보통역이지만 40여년전 탄차가 빈번히 오르내리던
기차가 다니던 마을.
가족에게 줄 선물을 갖고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오는 가장의 행복한 걸음.
그리고 3등열차를 기다리는 프렛포옴에서의 시간.
그가 산길을 올라 3등열차를 타고 간 추전역 기찻길에서
은하저편 고향을 그리며 눈바람 위에 곷을 심어가는 맨틀의 모습.
가장 깊고 좁은 한평 하늘의 승부역 가는 길.
태백선 어느 건멀목에 놓인 조그마한 비목.
거기엔 아버지의 주검 앞에 적은
"모르는 사람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 당신의 죽음이 자랑스러워요."라는
글귀가 보이고 그 앞에 멈춰선 순례자의 묵상하나 더해 그리기.
 
피안의 이르는 길목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미지모음.
파람 20부작 그 3부 20분간의 공연을 준비하던 2003년 2월.
간이역 추전과 승부역에서의 귀한 기억.
 
하지만 그 추웠던 겨울 강원 오지 철도역으로의 이 공연여정을 끝으로
파람의 얘기 한 부분이나마 같이 준비하고 시작한 유일한 파람의 이음 공연자
이창원님이 스스로 연작작업의 동행을 떠나고.
추전과 승부에서의 3,4부작업을 끝으로
우려했던 대로 더 이상 이 작품의 연작내용을 인지하고 공유하며 동행할 사람이 없는
작업으로 이어지고
예플러 혼자의 이음과
그저 스치다 다가와서 앞뒤얘기도 모르면서
뜻모르고 합류했다 떠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한 작업으로
그나마 가능한 공연이 되었고
파람은 이름 없는 공연이 작업하면서 찾아 헤메인
인간세상에서 이뤄보고 싶었던 그 마지막 희망을 놓고
단절된 절망 속에서 애매하고 낙심한 가슴으로
억지 스레 희망을 고집하며 가꾸는 방식으로
작품은 남은 얘기를 이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2012년 2월 9일 목요일오후 9:35:16
......
 
 
[광부]추전에서 만날 파람의 인물-광부
2003/01/27 오후 12:15:03
 
추전에서의 파람에선
1960년대 태백 함태 탄광에 근무하던
아름다운 가장의 모습을 만나기로한다.
새 인물의 이름을 광부라고 적고
그가 다니던 시공간을 마주하며
파람의 다음작업을 준비한다
...........
 
[광부]우리가 불행할거라 믿는 사람들 속에 행복한 이가 있다.
2003/01/27 오후 2:48:38
 
우리가 그는 불행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 속에
행복한 사람이 있다.
우리가 그의 불행을 위로해준다고 섣불리
그를 위해 기도할 때에
그들 속에는 그 몇 배의 기도와 희생의 기쁨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이가 있다.
파람의 길목에서 만나 광부는
우리의 이런 섣부른 사랑의 시선과 선입견을 지워주는
인물로 보인다.
막장에 들어가길 즐거워하며
그가 광부이기에 행복한 이.
그래서 그는 까맣게 타들어가는 폐마저
행복해한다.
[파람-추전]그리고 [파람-승부]의 겨울공연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서 그 행복한 고행의 발길을
따라가보기로 한다.
결론적으로.... 아니 다시 새로운 시작글..
2003-02-04 오전 1:59:25
 
결론적으로 파람은 결국 작가의 홀로 작업이다.
연기자들이 간혹 와서 연기를 하곤 하지만
그들과 같이 집중하여 갈 수 있는 작업이 아닌 것 같다.
공연이 준비될 때도 그러하고
공연이 끝나고도 연기자들과 공유하며 정리할
기쁨을 갖지 못한 채
작업은 이어지고
이어지는 환경에 기존의 연기자가 공유할 것을
함께 하지 않으며
새로운 연기자들이 온다하여도
혼을 다해 그 인물을 같이 만들 여유를 주지 않는
독촉한 공연이 지속되고 잇다.
마치 콘티와 모든 것을 가진 한 연출자가
간혹 일정을 내서 촬영장에 나타난 연기자들에게
오늘 직을 분량을 주고
연기자는 자신이 할 일에 대한 깊은 공감대의 확인도 없이
그저 자기나름으로 홀로 예측하여 감만 잡고 표현하고 가면 끝나는
그런 식의 작업이 계속될 모양이다.
연기자들의 작업노트가 오히려
혼돈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어서
이 작업의 작업노트는 연기자의 것과
연출겸 작가의 것이 구분되어야 할 것 같다.
파람은 그 계절과 공간의 흘러감이 아쉬워서
2003년을 쉬임 없이 공연된다.
익산미륵사지에 이어 추전과 승부 그리고
그리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담아내야할
많은 피안의 길목에선 인물들과의 만남이 있다.
연기자와의 공유를 기대했던 것이 하나의 의존이고
그 의존이 이 작업의 추진력을 발목 잡고 있다.
그래서 두개의 공연을 마치고 다시
두개의 공연을 준비하는 이 싯점에서
다시 또한 부분을 포기하고
작업은 연출자 혼자의 것으로
연기자들에겐 무한한 자유의지를 주고
그 안에서 연출자의 이미지커팅만으로
대본과 공연을 구성하는 방식의 작업으로
진행방식전환의 결단을 내린다.
 
[파람3][광부]태백에서 추전으로 가는 산길고비고비에..
2003-02-04 오전 2:16:40
태백에서 추전으로 가는 산길 고비고비에
광부의 흔적이 있다.
함태탄광 채탄부로 일하며
휴가를 얻어 태백산 구비구비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가족이 있는 고향마을로
찾아가던 길.
그의 손엔 아이들과 아내에게 쥐어줄
선물이 들려있고
그는 막장생활의 즐거움을 가족에게 얘기해줄
기쁨으로 가슴 부푼다.
가쁜 숨을 다듬으려 얼음장사이로 흐르는 냇물에
손을 씻고 두 손을 모아 떠서 목마름을 달랜다.
어느새 저 멀리 보이던 외딴 집이
이만큼 앞에 와있다.
 

[파람3]추전과 승부에서의 파람
param03 파람-피안의길목에서03(2003.2.13)추전,승부역
http://yegie.com/param03/page_01.htm
 
2003-02-04 오후 6:58:56
 
추전에서 승부로 이어지는 파람의 공연공간에선
철도건널목에 놓여있는
아버지 당신의 죽음이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그 아버지와 그 작은 팻말을 만들어 세웠을
그의 자녀가 살고 있을 마을풍경.
그리고 태백의 어느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의
집으로 가는 길,
그가 잠시 머물러 겨울 땀을 식히는 냇물
그 건너편 마을 등이 준비된다.
냇가엔 뱃사공이 나룻배를 수선하고 있고
저물어가는 산골짜기 속의 쓸쓸한 역사를 지키며
밤을 맞이하고 다시 새벽을 맞이하는
겨울 작은 철도역을 지키는 사람의 호흡이 있다.
강원도 태백 탄광촌의 얘기에서
경북화전촌의 얘기로 넘어가는 두개의 공간 안에서
환상과 현실을 교차시켜 만날
피안의 길목에서 스친 가슴가슴들.
 
[파람3]작업을 준비하며.공연 일주일을 앞두고
2003-02-04 오후 7:08:24
 
언제 다시 가게 될지 모를 아름다운 곳에서의 귀한 공연의 기회에
파람의 작업은 공연을 같이할 사람과 함께 준비하지 못하고
그저 작가의 마음만으로 이미지를 노크하며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 그 숨결이 살아있었을 흔적만을 노크한다.
파람의 작업은 이 겨울 태백의 어느 작고 외로운 역을 찾아서
그곳을 지키는 아름다운 마음들과 소중히 준비한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준비하는 이 없이 그저 관광객처럼 스치는 모양새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절실한 만남의 노력도 없이 공연 1주일을 남겨두고 허공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이 사랑의 기회를 버린다.
아마도 파람은 그 동행자를 만나지 못한 채
촬영대회같은 공연만 반복하다가 마칠 초라한 작업이 될 것같다.
절실히 준비하며 가슴 벅차게 행복하였으나
사람도 마음도 같이 하지 못하는 이 작업은
결국 빈 아크로 폴리스 계단에 홀로 다가가서
아름다웠을 그 무언가를 막막히 바라보며
한숨짓는 슬픈 작업의 연속이 되지나 않을까?
 
 
[파람3]공연6일전 살골짜기 작은 겨울기차역..
2003-02-05 오전 11:01:05
 
파람의 작업 3과 4는
산골짜기에 숨어있는 작고 고운 겨울기차역과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 안에서 찾을
피안에 이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연기자들이 같이 준비하여 그 인물을 만들어 갈수없는
이 싯점에서 작가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그저 그들의 발자국과 흔적을 찾으며
자연이 말해주는 인간세상을 담은 표현,
즉 불이 켜진 작은 집이나
밥짓는 연기가 나오는 굴뚝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
해 저무는 기차역.
신호기를 흔들며 지나가는 화물열차에 인사하는
역무원 등등..
공연은 다큐멘터리 방식을 취하는
영상집의 모양으로라도 재구성될 수 있게
수없는 가상의 이미지를 구상하고
그것을 찾아 나서는 작업으로 준비된다.
선행을 하겠다거나
선인을 찾아가는 작업을 벗어나서
그저 이치대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찾다 보면
그들의 머무름의 흔적에서
피안의 길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공연6일전 ,
공연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결국 파람3과 4는 영상작가의 스케치여행을
준비하는 촉박함으로 가득찼다.
만나야 할 사람은 잇는데,
나는 흔적도 만들지 못하므로
그것을 공연으로 남 앞에 제안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추악해하던
일개 관광객이 되어서
파람을 준비한다.
단지 이 여행의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답사 혹은 1년을 걸쳐서 완성해낼
영상작업의 일환으로서의 플라타너스 작업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뿐.
연기자 없이 떠났던
플페1999의 그 여행이 귀한 결과물을 얻었듯
파람 역시 동행자 없이 흘러갈
슬픈 영상작업이 될 것 같다.
공연 6일전.
누군가의 흔적을
이미지로 담아줄 매개체가 될
작은 집들을 새로 짓기 시작한다.
 

[광부][파람3]광부가 일하던 태백의 황지리 마을 만들기.
2003-02-05 오후 2:49:07

그 느낌이야 그대로 완벽하게 재현할 순 없겠지만
고향을 떠나 황지리로 와서 즐겨 일하던
광부의 단칸방이 있던 곳
지금은 사라진 그 마을을 재현해보기 위해
같은 모양으로 똑같은 집을 만들고 잇다.
다른 사람들의 시각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그에게 보였을 그의 보금자리.
 
연기자들이 파람의 인물에 접할 때 알려주어야 할 점.
2003-02-06 오후 1:45:06
 
그들은 어떻게 파람에 이르렀을까?
혹은 어떻게 파람의 길목에서 있게 되었을까?
이 작업을 하면서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그 도달치에 관계 없이
1에서 100까지의 어느 지점에서건
파람에 이르고 잇는 이들의 모습만 등장한다.
파람의 길목에서 보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은
이 작품 안에 등장하지 않으며
다른 길목에서 그것이 피안에 이르는 길이라고
무던히 노력하며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 작품의 어느 구석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작품에 등장인물을 표현하는 연기자들에게
그들이 이미지나마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질문은
그들은 어떻게 파람의 길목에 이르렀을까 하는
것이다.
그답은
우선 그들은 자신이 선행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리고 피안에 이르기 위해 노력을 하거나 기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가 파람에 이르려고 노력한다면
이미 파람의 길목에서 자신도 모르게 빗겨나 있을 것이고
그것을 위해 선행을 시작한다면
이미 선행이라고 말할 가치조차없는 행위의 길목으로 들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파람의 인물들은 그래서 그 자신이 하는 일을
선행이라 생각도 하지 않으며 파람에 이르기 위해
절절이 기도하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저 행하면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그에게서 배우고
나자신은 왜 저렇게 아름답지 못한가 하며
자신을 꾸짓으면서 남은 것을 또 버리고 조금 더 나아지려 노력하는 모습만 보일 때
그 또한 누군가에 의해 그가 피안의 길목에 있음을
발견 케되는 것이고
그 발견자 역시 또 그런 방식으로 그곳에 이른 사람일 것이다.
결국 파람의 인물들은 무아의 존재로서
자신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인간본연의 도리만으로 존재하는 모습으로
공연 안에 담겨야 한다.
억지로 선행을 조작하거나
자만에 빠져서 누군가를 비방하고 있는 이의
모습을 형상화시키려 한다면
그는 파람의 등장인물로 절대 형상화되지 못한다.
지독한 자기 낮춤과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하는 마음.
하지만 그 자신 밖의 누군가가 바라보면 아주 많은 것을 한 것처럼 보이고
선인과 초인을 넘어선 존재처럼 보이는 경지.
우린 아직 피안의 길목에 들어서지도 못했기에
그들의 숨결조차 만날 수 없고
그래서 이렇게 극으로나마 가늠해보는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임해야 할 지극히 부족한 감각체라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며 접근해야 하며..
 
 
[파람3]의 기초구성...
2003-02-09 오후 9:47:26
 
파람은 3,에서
새로운 인물로 광부를 구성하고
파람1에 담았던 인물 중
촛불집회와 상무대의 주부를 배치시키며
새로이 나오는 인물로
뱃사공 순례자를 배치한다.

1,2,에 등장했던
노인은 배치하지 않고
순례자가 스치는 건널목을 등장시킨다.

구성대본(대사와 음악제외)
피안의 길목에 노인의 다기와 차가 끓고 있다.
1. 순례자
순례자 순례에 나선다
어느 철도건널목에 이르러
조그마한 비목을 발견한다.
"아버지 당신의 죽음이 자랑스러워요."라고 적혀있는 ..
순례자 그곳에 머물러 분향하고 잠시 머문다.
저 멀리 그 아버지를 가진 아이들의 집이 있는
동네 네채의 집이 보인다.
 
2. 파람
상무대의 주부,
양동시장의 할머니를 만나고
상무지구 종점에서 운전기사와 환담한다.
오늘도 피의자 대기실을 찾아서
꽃병에 꽃을 갈아 끼우고 촛불을 밝힌다.
 
3. 냇골
어느 수몰 지구를 지키는 뱃사공.
오늘도 아무도 모를 기다림을 갖는다..
낡아진 배를 수선하고 ..
냇골을 찾아온 누군가를 만나
마침 자신도 그곳에 가는 길이라면서
그를 태워 배를 노저어간다.
,다음 화요일
파람.오늘도 변함없이 피의자대기실에 머문다.
그리곤 이번주부터는 촛불집회에 나가려 한다고
넋에게 말한다.
그리고 촛불을 준비해서 나선다.
 
4.너의 의미
탄광촌 관사...
광부는 오늘 선물을 준비하여 집으로 가는 길이다.
태백선을 타고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산길을 걸어 저 멀리 고개넘어 보이는
아이들과 아내가 사는 집.
 
5. 실향가
맨틀,촛불을 든 사람들의 흔적을 넘어
자랑스런 죽음이 남아있는 건널목을 지나
그 아버지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넘어
아름다운 광부가 즐거이 일하고 쉬던
광산촌을 스쳐간다.
멀리서 순례자의 등장,
탄광촌을 지나 상무대,건널목 그리고
촛불을 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그들과 합류한다.


[광부]추전승부에서 그려본 [파람3]의 광부.
2003-02-16 오후 8:27:44
2003.2.13
새벽 일찍 추전역으로 오르는 해발 855미터의 산길에서
파람3은 광부의 이미지를 연출했다.
혹독한 추위와 살을 에는 바람 속으로
광부는 커다란 산길 고개를 넘어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추전역에 놓여진 광차와 찻길
그리고 얼음 맺힌 역대기실 창문.
창밖으로는 새벽화물열차를 통과시키는역무원의 모습이 보인다.
광부는 광차옆에서 담배한 개피를 피우고
열차시간에 맞춰서
차가운 바람 속의 승강구로 나가서
3등열차를 기다린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탄광지역을 지나 승부로..
승부의 낙동강상류를 거쳐서 눈이 쌓인 숲언덕길을 걸어 오른다.
[파람3]은 혹한의 계절에 태백산령을 넘어 고향으로 향하는
광부의 이미지를 그리고
그의 못다 한 얘기는 다음 연작의 이미지로 미룬다.
 
[파람3]겨울 간이역(추전) 맨틀의 이미지
2003-02-16 오후 8:40:34
2003.2.13 추전역
새벽..아침해가 뜨기 전 해발 855미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 추전의 새벽공기는 살을 에는 듯하고
산정에 몰아치는 바람은
쌓여있는 눈을 다시 일궈서 모진 눈보라로 만들거나
산길에 해일처럼 스쳐간다.
그 눈 쌓인 태백산정, 차가운 겨울 눈바람 속에서
눈길에 놓여진 꽃송이들을 거두며 걸어가는
맨틀의 모습이 있다.
 
눈 속에 파묻힌 꽃송이들은 아직 생생하지만
그 차가움 그리고 그 역설적 따스함.
생명체들은 그렇게 역설적으로 아름답기 도하다.
맨틀은 감싸 안으며 그 역설적 배치 안에 존재하는
귀한 생명무생명체들의 넋으로 인한 보존을
기억한다.
..................................................
param04 파람-피안의 길목에서04(2003.3.23)간현역
 
작업노트를 적지 않아서 그들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어떻게 만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파람 피안의 길목에서 그 네 번째 작업엔
이러 저런 인연으로 찾아온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과의 연작을 구상하며
간현역에서의 공연이 구성되었습니다.
 
주로 서울 지하철 역사에서의 공연을 하고 있는 레일아트의 일환으로
몇 번의 작업을 함께 하면서 정작 하고픈 것은 사람들이 없는 보통역 혹은 간이역사에서
공연이었고 그 마음을 구체화시켜서 몇 개의 역사에서의 공연을 신청한 결과
코레일과 철도청의 허가를 거쳐서 레일아트의 공연이란 명분으로나마
이름없는공연의 기차역사에서의 공연이 가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홈페이지를 가진 역장이나 역무원이 있는 작은 역을 알아보고 온라인을 통해서
그곳에 다가가 공연을 해도 될런지 물어본 후 허락을 맡아서 공연하게 된 경우도
있지만, 어떠한 공공건물이나 사유공간부근에서 아무런 절차없이
그저 스치듯 다가가 공연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이승.
공유지와 사유지배곤 아무 것도 없는 이곳에서 나그네나 순례자같은 이의 뜻모를 거리공연은
상업적 혹은 어떤 공연예술단체의 이름과 목적이나 정치적목적이 없어서
오히려 순수작업이 불가능한 단절.
그리고 그 설명이 구차하여 엄두도 내어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묵언의 과정들.
파람 연작은 그 첫해인 2003년과 2004년에 11부작중 4부를 다섯 개의 역에서
공연할 수 있었습니다.
 
기차 건널목의 팻말 [당신의 죽음이 자랑스러워요]가 주제였고 탄차에서 내려
광산촌언덕에 자리잡은 역사에서 집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의 얘기를
이어가고 싶어 잡았던 간현역사에서의 공연엔
그 얘기를 이어가고 싶었던 사람은 떠나고
낯설게 다가와 이미 4부를 마친 20부작의 그리움, 파람의 얘기를 생소하게 듣는 사람들과
그들이 우선 가지고 상상하며 행할 수 있는 만큼의 선한 마음만으로
피안의 길목 그 도달치 1에서 만나는 인물들이 되어보는 쓸쓸한 작업.
혹시라도 그가 만든 이 인물들을 흘려 보내지 않고
이어 생성하고 그와 마음 나누며 살아갈 작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다시금 새로이 구성해보는 여정.
스스로 행하고 있는 사람은 지금 피안의 길목에서 자신이 행하고 잇는 인물의 얘기를 찾아주고
자신의 삶속에서 아직 찾지 못한 이에겐
누군가의 얘길 들려주어 그렇게라도 근접해보게 작업을 꾸렸습니다.
명일동 강동거리 공연을 준비 중이던 김민희님은
그 공연[책방이 있는 골목 정경]에서의 인물을 파람에 담았고
성미산지킴이로서 행동하며
파람 그 다섯 번째 편인 [파람5-성미산]에서의 공연을 준비하던 스캥크님은
성민산지킴이의 얘기를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공연워크숍으로서의 접근차 다가온 여의님은
장덕리 어느 겨울이야기의 한 인물을 파람의 인물로 예를 들어주다가
그 인물을 표현해 보기로 하여 1-4편의 연작을 이어온 예플러의 맨틀과 함께
4개의 에피소드와 인물을 엮어서
중앙선 작은 역 간현역사앞 마당에서의 공연은 구성되고 공연되었습니다.
2012년 2월 25일 토요일오전 10:07:17

성미산지지
[파람4][파람5]성미산...
2003-03-10 오후 1:34:01
 
피안으로 다가가는 길을 잘못 찾은 이들에게
우리들이 보이지 않는 단하나 피안으로 다가가는 길에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의 수수께끼이며
그 수수께기의 답은
그 관측자자신이 피안에 이르는 길의
1에서 100까지중 어느 한점 도달치에 다가서기 전에는
풀리지 않는다.
성미산
작은 동산같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우린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성미산에가면
파람의 길목에서 만나던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벌목장같은 그 빈둥의 산정에서
꽃을 심고 새로이 묘목을 심는 사람이 있고
그 지워버린 것을 다시 그려주는 사람이 있다.
새들이 다 날아가도
다시 지저귀는 새들과
노래하기 위해 고운 기다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
누구에겐 그게 그저 수수께끼겠지만..
....
[파람4][파람5]성미산지기.
2003-03-19 오후 12:49:01
 
내 용 : 성미산지기는
조그마한 산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편견과 자기무리의 이기심으로
허물어가는 지구에 대해 가슴 아파하며
그들이 그러지 말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늘도 성미산에선 조그마한 산을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개의 상반된 의도로 사람들이 갈리어 있다.
처음엔 그저 자연보호와 환경의 의미로만
지킴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 당시 그는
상수도 개발로 파헤쳐질 성미산을 지키기 위해
어느날 도둑처럼 짤려진 수백그루의 나무들의
시체곁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사람들과 교대로
언젠가 또 들이닥쳐서 밀어버릴 사람들로부터
산을 지키기 위해 텐트와 밤을 지샐 물건들을 챙겨서
산등성이로 올랐다.
밤이 깊어가고 새벽이 올 때까지
시간은 시시각각 그에게
자연과 환경과 문명과 인간의 이기심과
또 많은 슬픔을 바라보게해주엇고
그 안에서 그는 밤과 새벽을 시간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이 별의 생명들과
대화할 수 있엇다.
하룻밤의 지샘을 통한
이별에서의 삶의 방식에 대한 찾음과
그리하여 찾은 지킴의 이유
그리고 그래서 얻은 실천.
그 모습을 우린 피안의 길목에서
스친다.
..........
[파람4]
그곳에 함께 있기로 한 이
2003-03-19 오후 5:46:52
 
장덕리 어느 겨울이야기의 네명의 인물 중 한명.
루사가 지나간 후 그곳에 자원 봉사차 들렸다가
어느 할머니를 만나고
집에 들려 다시 돌아와
그곳에 함께하기로 한 사람.
슬픈 사람들 허한 이들의 가슴앓이를
함께 나누며 그들과 같이 있고 파
자신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간 사람.
어느날 콘테이너로 들어서며
할머니, 저 이제 할머니랑 함께 살래요.
장덕리 모든 이 들의 쓰린 가슴을 모듬으며
함께 하면서 자신의 영혼이 가야할 길을
찾아가기로 한 사람의 모습.
 
......
......................
피안의 길목 걷던 날 되새기며 걷는 언덕 이편으로의 회향길에서
1995년부터의 작업,그 12년간의 작업을 정리하며
잔재를 거두고 초심의 공간을 기억하며 걸어가는 마지막 숨결의 해.
2012년은 파람20부연작을 정리하며 그 회향의 길에서 바라보는 작업
[언덕 이편에서]를 구성하고 이어가며 아무도 관심갖지 않고 기억하지 않을
시간들 안에 담아내고자했던 미숙한 삶의 조각들을 되새겨 멈추엇다 다시 지우고
가립니다.
파람 그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4장에서 준비했던 성미산지킴이의 공간이었습니다.
지킴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밤 숨어들어 민둥산을 만들어 버린 마을 뒷산길
수없이 드러난 하얀 속살의 나이테와 부러져 내팽겨쳐진 나무들 곁에서
그래도 마지막남은 죄악의 양심찾아서 움직이던 인간의 나태로
미안하단 말조차 못하고 그저 죄스러워 주저앉은 성미산자락에서의 공연.
2012년 3월 10일 토요일오전 11:25:07
[파람5]성미산에서의 작은 공연을 준비하며.....
2003-03-15 오후 12:47:28
 
3월14일 밤
그날 그곳에서 밤을 지새기로 한 분을 찾아
잠시 성미산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싸늘한 산등성이에서
그곳을 소리없이 지키는 비닐하우스의 불빛과
사람들을 뵈었습니다.
29일 2시혹은 3시에 그곳에서 작은 공연을 통해
작지만 절실하고 가슴아린 우리의 마음을
담아나누기로하고
다음 약속을 했습니다.
16일 그 작업을 위한 첫 연습미팅을
가집니다.
단 한 분 밖에 이 작업에 참가할 분이 안계시지만
그를 도와 함께 할 또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기다리며
성미산이란 부제의 [파람]을 준비합니다.
아마 20분정도의 조용한 나눔이 될 것 같습니다.
29일 성미산에서 뵙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작업에 동참해서 조그마한 이미지라도
함께 만들고 얘기해보시고 싶으신 분은
예기플라타너스홈피 http://www.yegie.com으로 오셔서
예기신영철과의 만남게시판에 참가 신청글 연습미팅에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29일 성미산지키기 행사에 일환으로
성미산에서 이뤄질 작은 플라타너스같은 공연에
좋은 의견도 주시고
저희의 조그만 이 작업이
성미산을 지키는 고운 이 들에게
조그마한 희망과 새로운 힘이 되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성미산에서 공연할 작품
성미산공연은 [파람5]입니다..
 
param05 파람-피안의길목에서05(2003.3.29)성미산
http://yegie.com/param05/page_01.htm
 
그렇게 제안하고 간현역 공연에 이어 준비하고 다가간 성미산에는
이 작업의 공유를 제안하고 초대한 성미산지기중 한 사람이었던 스캥크님
파람6-전쟁 속의 사람들 편을 준비 중이던 한영애님
그리고 장덕리,함께 있기로 한 이를 파람 4편에 이어 함께 한 여의님까지
세사람이 예플러와 동행했습니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인간만의 개념만으로 이뤄진 자연의 역행종족의 얘기는
간혹 이렇게 작은 마을언덕 혹은 뒷동산에서도 첨예하게 진행됩니다.
인간이 사는 한은 끝내 해결 치 못하고 그 답을 알면서도 실천치못할
부질없는 대립의 자기파괴적 종말이끌기.
대추리에서 새만금에서 4대강에서 제주섬에서 강정마을에서
어디하나 성한 곳 없이 인간의 취향대로 절단되고 채색되는 공존의무의 파괴.
때론 이긴 듯도 보이고 막은 듯도 보이지만
간혹은 타협처럼 인식의 모순 속에 스스로 파손해가는 정도의 인내심으로
인간종은 끝내 이루지 못할 꿈.지키지 못할 약속.
그 어리석음과 부족함이 습성이 되어 버린 인간종의 아픔이 어리석음을 도모하는
기능과 재주의 향상으로 더 큰 범행자가 되어가는 반문명의 존재들.
2012년 3월 10일 토요일오전 11:47:20
 
.....
언덕,이편에서03-(이름없는공연2012프로젝트)서울 마포 성미산
http://yegie.com/chaan03/page_01.htm
 
언젠가 다가와 지켜주던 누군가의 마을 뒷동산언덕.
인간에 의해 하루밤새 절단된 나무들 사이로
훤하게 해체된 민둥산 능선길에서
쓰러진 나무 잘리워진 뿌리,거기 피어나던 새순곁에 접붙여주던 생명의 가지.
수많은 해체 속에서도 간혹 이렇게 조그마한 하나 지켜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인간은 공존의 구실을 찾고 생명의 권리를 다시 연명하는 듯 싶습니다.
성미산자락에 다시 찾아가
지워진 시간을 중쳡해보며
피안의 길목으로 가던 길에 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동행했던 이승에 살던 10년어린 나의 모습과 숨길질을 만납니다.
스스로 찾아가고 애조렸던 이 그리하여 보았던 이에게만 보이는 길.
세월이 흘러 아무 것도 모르고 일상 안에 들어온 그 모습에서
공존의 미래아닌 제 종족의 편의성으로 채울 미래만 생각하며 행동하는 이질종의
찬탈공간.
주어진시간만큼 감사하며 나아닌 생명들과의 공존의 시공가꿔 살아줄 사람들이
한명이라도 더 태어나고 생성되고지는 이 별되길..
2012년 3월 10일 토요일오후 12: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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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이편에서04-(이름없는공연2012프로젝트) 춘천 의암호
http://yegie.com/chaan04/page_01.htm
 
언덕,이편에서 그 옛날 피안의 길목에서 만났던 냇골의 뱃사공을 만나러 가는 길.
후이넘 이야기 와 함께 교차되어 들려주던 선인의 이야기중 하나.
하지만 중도 건너편 의암호에서 마주하는 뱃사공의 자리엔 빗 밧줄만 뭍에서 물로 잠겨있고
수십년전 이곳을 지키던 뱃사공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밑을 들여다보면 보이던 어릴 적 뛰어 놀던 마을과 동네 뒷길넘어 소나무언덕.
그래도 언제까지는 매년 추석이나 설이 되면
고향이 보고 파서
물위에서라도 고개숙여 물에 잠긴 선산에 기도드리려 오던 이 있던 곳.
2012년 3월 20일 화요일오전 11:12:36
냇골이라고 그랬어요.
이젠 세월이 흘러 열길 아래 이 호수밑에 학교 교정과 마을 정자나무가 있는 걸
기억하는 사람도 점점 적어지는데.
그곳에 한 사람 뱃사공이 있었죠.
누군가 고향이 그리워 물밑으로라도 보려는 이를 위해
조그마한 나룻배를 준비하고 기다림을 시작한 사람.
10여년이 지나 다시 찾아온 누군가는 그를 시인이라고 했어요.
오늘도 그 골짜기 고향으로 가는 이를 위해서 자신의 말년을 기다림으로 택한
그 뱃사공이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어요.
그러다 누군가 언덕을 올라 냇골 윗마을로 걸어 올라오면
마치 자기도 마침 그곳으로 가는 길이라면서 동행을 청하지요.
 
열길 아래 호수밑으로 고향이 잠겨있고
마을어귀 뒷산언덕 물 속으로 다시 보던 곳.
그 길목 안내해주던 뱃사공이 살던 곳.
피안의 길목에서 첨 만났던 선인의 추억.
 
2012년 3월 20일 화요일오전 11: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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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이편에서05-(이름없는공연2012프로젝트) 자계리,산가장자리 마을
http://yegie.com/chaan05/page_01.htm
 
산가장자리 마을의 얘기가 만들어지고
그곳을 찾아가던 사람과 그곳에 머무르게 된 사람들의 모습이 아련한 곳.
자연을 닮은 어진 분이 계신 물고기학교 가는 길에 서있던 평화나무
도덕재 넘어 만나는 작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만나던 소박한 산골마을
그곳에서 그리던 뜻모를 인간의 낯선 사랑얘기가 시작되던 시간곳.
파람의 이르는 길에 아늑히 만나고
아련히 헤어진 환시같은 사람들의 흔적 그리며
돌아가는 길에 다시 찾아 바라보는 미소에 담은 눈물.
파람의 길목을 돌아서 회향하는 언덕 이편에서
비안개에 실려 다가와 내려앉아 돌이켜 그려보는 그리운 마음들.
새가 되어 버린 목수가 작은 영혼들을 위해 지어주었던 나무집들
다랑쉬 잃어버린 마을에 옮겨져 오름 아래 영혼의 마을을 이루었는데
마을사진관에서 얘기 들려주던 노인과
자연과 하나되는 방법을 알려주던 선생님.
한 장의 편지를 받고 찾아와 빈마을을 헤메던 이는 얼만큼 변했을까?
색동우산에 노란 장화신고 노닐던 소녀의 시간과
평화나무아래서 세상 다녀온 평화의 얘기 나눠주던 여인의 오늘도
궁금해 바라보는 중첩되는 시간 속 이승의 공간으로의 흐름같은 여정.
언덕 이편에서 그 다섯 번째 머뭄.산가장자리 마을 너머로.
 
재넘어 산골마을 두고 온 아름다운 꿈
남 몰래 다가와 머물러 심던 세상향한 사랑일
편지 한 장받고 찾아 머문 뜻모를 사랑의 부름
사람이 다시 자연되던 기적 꿈꾸던 여기에서.
2012년 8월 14일 화요일오후 3:37:05
 
언덕,이편에서06-(이름없는공연2012프로젝트) 명주사.동해바다
http://yegie.com/chaan06/page_01.htm  
 
현북면 어성전리 머물다 가는 길.
언젠가 채 못갔던 그 길을 거슬러 산사로 오르는 길.
파람에 이르던 길 스무개의 얘기도 채못 정리한 채
돌이켜 부유처럼 걸어본 한 해.문득 이어보는 여섯 번째 얘기.
산길따라 마주대하는 산사입구에서
마침 출타하시던 스님이 일부러 다가오셔서 손에 쥐어주시는 화폭하나.
"제가 연하장을 써보았습니다"하시며.
합장하여 인사드리고 헤어져
주인 비우신 산사에 잠시 머무르며 펴봅니다.
 
우리모두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
 
얼마나 울어야 마음이 희어지고
얼마나 아파야 가슴이 열이고
얼마나 사무쳐야 하늘이 열릴까
 
얼마나 미워해야 사랑이 싹트고
얼마나 속아야 행복하고
얼마나 버려야 자유스러울까
 
얼마나 태워야 오만이 없고
얼마나 썩어야 종자로 열고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
 
우리는 늘 행복합니다.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좋은 날 되소서
 
명주사에서 죽전 지혜 합장.
 
그리운 동해를 찾아 오대산기슭 산사를 내려옵니다.
한점동해와 플페1999 등대가 있는 바닷가에서
1960년 묵호의 얘기를 그렸던 언덕 위의 바보의
폭풍우치던 그 날과
주문진 밤바다,정동진에서 안인 까지에서 만나던 동해바다의 얘기와
시간과 공간을 흘러 선상 반란으로 배에서 떨어져 표류했던 곳.
그 날도 야후가 몰래 다녀간 나의 방에서 듣던 후이넘나라 파도소리까지.
방파제막혀 채 못딛고 가는 숨결.
인간에 의해 생명들의 숨결을 복원 시켜주던 그 일을 억제받고
핵연료봉을 식히고 돌아서야 하는 서글픈 동해의 물결.
떠나올 때보다 더 더욱 죄스럽고 참담해진 인간임에 슬픈 인연.
명주사 기둥기둥에 적혀있던 그 구절
기도하며 파도결에 담겨 돌아서는 이승길.
 
산기슭 돌아 걸어 발닿은 산사에서
다가와 쥐어주신 스님의 시화 한 장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
겨울바다 파도찾아 던져 담는 회회향길
 
2012년 12월 13일 목요일오전 9:10:02
 
 
 
 
param06 파람-피안의길목에서06(2003.3.30)마일연극의날 
 http://yegie.com/param06/page_01.htm
이름없는공연의 작업기록중에는 코파스 김백기 대표로부터 작업의뢰를 제안받아서 이뤄진
공연의 기록이 몇 번 잇습니다.
처음엔 대부분 작품대본을 의뢰받고 그 연출까지 의뢰받아서 자신들의 연기자들을 데리고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방식으로 작업이 시작되지만
하다보면 그것은 코파스란 단체의 어떤 공연에 차용되어 그들의 구성연출로 이뤄진 작업에
명분으로만 쓰여지는 것을 알게 되는데
파람 역시 어느날 그렇게 제안되었고 공연자들이 주어지고 그들을 연출해 달라 하였으나
막상 연출미팅은 이뤄지지 않고 공연은 그들끼리 따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축제나 지원프로그램에 참가를 위해 대본을 제출하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알게 되는. 초반 두어 번은 감쪽같아서
그렇게 속아서 제 작업인줄알고 공연자들과 연출이 따로 있는
그래서 그들의 연출을 받지 않은 우리들만이라도 진실을 갖고 접근하며 만들어낸 공연이 있었고
중간에 손을 떼어 버린 공연이 있었는데 코파스로선 이런 방식의 차용이 미안함이나 죄의식 없이
늘 이뤄지고 있었으므로 작품을 차용 당하는 사람이 그 모습을 이해해 주거나 후에 조심하는 것으로
관계를 유의하게 되었습니다.
파람6-전쟁 속의 사람들은 그들이 연출하고 통제할 수 없었던 예플러만을 중심으로 작업을 구성하고
작업에 투여된 다른 사람들을 그들의 습성에 따라 그들은 비록 다른 공연을 하고 있다하여도
파람의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로 이미지화하고 그렇게라도 연기하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전쟁 속에서도 있을 인간의 모순들이라 생각하며 작업한 공연이었습니다.
작업을 준비하는동안 연기자들과 만나지 못하는 작가 그리고 연출자의 신세에서
내가 적은 공연대본과 구성하는 음향이 어떻게 공연자들에게 생각되고
어떻게 해석되어 공연자들에게 제안되고 구성되는지 모르면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또하나의 신비한 체험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건 작업노트를 적으며 혹시라도 그 들이 찾아와 읽어주고 팜고해주엇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와
그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여도 선인의 모습으로 이해하고 바라보며 걷는
전범국의 국민으로서의 서글픔을 대학로마로니에공원의 축제마당 속에 담아내는 것.
코파스는 2004년8월 또다시 마일연극의날 코파스공연으로 같은제안과 방식을 취해왔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제안안에서 우리가 그들의 제안과는 관계없이 해야할 일을 찾아
작업을구성하고 공연했던 [앗살람알라이쿰4]까지.
2012년 10월 15일 월요일오전 7:59:15.
제 목 : [파람6]전쟁 속의 사람들..
2003-03-15 오후 2:13:30
마일연극의날 코파스참가작으로 [파람6]을 준비하며
주제인 반전과 평화에 연결되는 인물들을 찾는다.
전쟁은 어차피 강렬하고 어차피 소모적이다.
사랑은 결핍되고 미움과 욕심만이 그윽하며
정의과 복수와 응징과 방어등의 편리한 말로서 죄악이 점철된다.
파람6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장속에서 만나는 인물들로 집약하고
그 인물들은 전쟁과 정반되된 인물의 심성과 영혼의 실천을 구체화하는작업들로
전쟁의공간에 서있게 한다.
피안의 길목에서 만날 그들은 전쟁의 공간안에서 다차원적 이미지로 존재한다.
몇명의 연기자가 이 작업에 참여할수잇을지
무엇을 생각하며 반전과 평화의 단어를 힘겹게 가슴안에 담고 살고잇을지 알수없으나
그들로 하여금 세상의 공간안에 우리인간이 만들어내고 또 반대하는
역설적 상황을 배치한다.
전쟁속의 사람들..은 전쟁이 있는곳에서 전쟁박의 사람들을 표현하고
그들의 차원이 중첩된 행동을 그려가는 이미지극이다.
선을 위해서 악을 죽이면 그것이 선일까?
나의 선을 위해 내가 악이라 지칭한 어떤것을
가해하면 나의 선은 진정 누구에게도 선일까?
 
[파람6]전쟁속의 사람들 ..파람연작안에서 만나는
2003-03-18 오전 9:36:33
파람은 피안의 산스크리토어 원어로서
열반 극락 천국 등의 종교용어와도 흡사하지만
종교이전에 생긴 언어로서
그저 우리가 인간의 도리로서 이르러야할 이승의 저편같은 둔덕너머를 뜻합니다.
예기플라타너스는 2003년 이 파람의 제목으로 연작하여 한편의 공연을 완성하며
100인이상의 등장인물들을 찾아갑니다
전쟁속의 사람들도 피안의 길목에서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파람의 입구에까지 다다른후 그곳에 들어가지않고
지금처럼 계속 존재의 도리를 다하는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파람은 연작으로 만들어지며 그 연작의 영상을 담아서 다시 하나의
영화로 마무리지어집니다.
피안의 문앞에 이르러서 물한모금 마시고
다시 돌아와 꽃처럼 존재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자신이 그곳에 이르럿을때 만나본 피안의 인물이 되어
그 얘길 형상화시켜 들려주는 작업.
파람6-전쟁속의 사람들에 참여하는 공연자들도 이 작업의 화두와 흐름을 이해하면서
참여하길 기대해봅니다.
 
침략전쟁에 스스로 동참하는 이 나라의 참담한 국민이 되어..
2003-03-20 오전 1:06:02
침략전쟁에 스스로 동참하는 이 나라의 참담한 국민이 되어.
이 이기적인 인간의 인간에 대한 죄악이 중단되길 바라며
 
[파람6]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2003-03-20 오전 2:24:31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http://www.wiretapmag.org/story.html?StoryID=15291

사람들은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군복을 입은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나,
총을 들고 있는 검은 콧수염을 기른 군인들이나,
알라시드 호텔 바닥에 '범죄자'라는 글씨와 함께 새겨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걸 아세요? 이라크에 살고 있는 2천400만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라는 걸.
이라크에는 1천200만 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바로 저와 같은 아이들이요. 저는 열 세 살이니까,
어떤 아이들은 저보다 나이가 좀 많을 수도 있고, 저보다 훨씬 어릴 수도 있고, 남자 아이일 수도 있고,
저처럼 붉은 머리가 아니라 갈색 머리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아이들은 바로 저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의 아이들입니다.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리 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제가 운이 좋다면, 1991년 2월 16일 바그다드의 공습 대피소에 숨어 있다가
여러분이 떨어뜨린 '스마트' 폭탄에 살해당한 300 명의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
그날 공습으로 엄청난 불길이 치솟았고, 벽에 몰려 있던 아이들과 어머니들은 형체도 없이 타 버렸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돌더미에 붙어 있는 시커먼 살조각을 떼어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운이 없다면, 바로 이 순간 바그다드의 어린이 병원의 '죽음의 병실' 에 있는
열 네 살의 알리 파이잘처럼 천천히 죽게 될 겁니다.
알리는 걸프전에서 사용한 열화 우라늄탄 때문에 악성 림프종이라는 암에 걸렸습니다.
어쩌면 저는 18개월 된 무스타파처럼 '모래파리'라는 기생충이 장기를 갉아 먹는 병에 걸려서
손을 써 볼 수도 없이, 그저 고통스럽게 죽어갈 겁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무스타파는 단돈 25달러밖에 안되는 약만 있으면 완전히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라크에 취한 경제봉쇄 때문에 이라크에는 약이 없습니다.
아니면 저는 죽는 대신, 살만 모하메드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외상을 안고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살만은 1991년 여러분이 이라크를 폭격했을 때 여동생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만의 아버지는 온 가족을 한 방에서 함께 자게 했습니다.
모두 다 살든가, 아니면 같이 죽고 싶어서. 살만은 아직도 공습 사이렌이 울리는 악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면 저는 걸프전이 벌어졌던 세 살 때 여러분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알리처럼,고아가 될 겁니다.
알리는 3년 동안 매일같이 아버지 무덤에 덮힌 먼지를 쓸어내리며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아빠, 이제 괜찮아요.
이제 여기서 나오세요. 아빠를 여기에 가둔 사람들은 다 가버렸어요”라고. 하지만 알리는 틀렸어요.
아버지를 가둔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보이니까요.
아니면 전 걸프전이 벌어져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늦게까지 밤을 샐 수 있었다고 좋아했던 루아이 마예드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루아이는 지금 학교에 갈 수 없어서 길에서 신문을 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바로 여러분의 아이들이거나, 아니면 조카나 이웃집 아이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아들이 사지가 절단되어서 고통속에 몸부림치고 있는데도, 아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도 없고 편안하게 해줄 수도 없이 그냥 무기력하기만 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딸이 무너진 건물의 돌더미에 깔려서 울부짖고 있는데, 구해줄 수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아이들이 자기 눈 앞에서 여러분이 죽는 걸 보고 나서,
굶주린 채로 혼자서 이 거리 저 거리를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건 액션 영화도 아니고, 공상 영화도 아니고, 비디오 게임도 아닙니다.
바로 이라크의 아이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최근에 한 국제 조사단이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지금,
아이들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이라크를 방문했습니다. 조사단이 만나 본 아이들 중 절반이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도 전쟁이 뭔지 알고 있고 전쟁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다섯 살 짜리 아셈에게 전쟁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셈은
전쟁이 “총과 폭탄에 날씨는 춥거나 덥고, 우리가 불에 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열 살 먹은 아에사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렇게 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이라크의 수많은 아이들이 죽을 거예요. 당신이 TV에서 아이들이 죽는 걸 보게 되면 후회할 거예요.”
저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다른 아이들과 문제가 생기면 때리거나 욕을 하지 말고,
대신에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하라고 배웠습니다.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하게 되면,
상대방 이 한 행동 때문에 자신이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제 기분을 이해하게 되면서 하던 행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그게 '나'라고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나'는 '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라크에 사는 모든 아이들처럼, '우리'는 지금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걸 속수무책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계의 다른 아이들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그 모든 결과 때문에 고통받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목소리는 너무 작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를 때 두렵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 하거나 다치게 하거나 미래를 훔치려 할 때 화가 납니다.
우리는 내일도 엄마와 아빠가 살아 있기만을 바랄 때 슬퍼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모를 때 혼란스럽습니다.
 
미국의 인터넷 주간지 WireTap(http://www.wiretapmag.org/)에 실린
13세 미국소녀인 샬롯 앨더브런(Charlotte Aldebron)의 반전집회 연설문
번역: 참세상방송국 김미라(raise@jinbo.net)
 
 
[파람6-전쟁속의사람들][난민촌의퍼포먼서]
2003-03-28 오후 12:53:56
전쟁속에서도 우리가 만나게될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찾기.
전쟁이란 행동에 붙여진수많은 이유와 목적 명분
그리고 그것을 대항하여 다시 총을 들고
또다른 사람의 가족을 이웃들을 죽이는 시공간.
난민은 전장에서 쫒겨온 사람들 ,
밀어내어서 아무소리없이 밀려온 사람들.
그 어느 병사나 지휘관보다도 가장 큰 피해와
슬픔을 딛고 이유도 없는 슬픔을 안고 모여앉은곳.
난민촌
그곳에 그들처럼 사람들의 욕심에 제물이되어
조용히 돌아서 고향을 떠나 이곳에 머무른 운 퍼포먼서가 있다.
구호품을 기다리며 혹은 잃어버린 가족을 슬퍼하며
허한 가슴으로 전쟁을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지새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가족도 함꼐 있을 추모의 공간에
촛불을 밝히고
조용히 일어나 아름다운 공연을 한다.
난민촌 사람들이 그의 공연을 바라보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슬픔을 지운다.
난민촌 한구석 퍼포먼서의 공간은
내일도 또 다른 아픔을 지워주며
욕심이나 원한보다는 사랑으로 세상을 일으켜낼
공기의 전환을 꿈꾸는 퍼포먼서가 있다.
[파람6-전쟁속의 사람들][냇골에남은이]
2003-03-28 오후 1:07:59
냇골 이제는 그 아름답던 마을이
내가 넘치고 강이되고 다시 호수가되어 수몰되어버린 21세기.
그 50여년전 1952년
냇골에 있엇던 한사람의 얘기는 냇골을 지키던 뱃사공의 모습과 교차되어지는
과거로의 여행.
두개의 욕심과 이기심과 이론의 대립으로 갈등지어진 이 땅.
지난 2년간 포격소리하나 스쳐지나가지않았던 냇골도 이젠 저멀리선가
아련히 총포의 소리가 간혹들리고 사람들은 피난을 준비한다.
작고 고요한 방안
착은 책상앞에 앉아있던 시인 한사람.
그는 떠나가는 사람들에게 주기위한 선물들을 소중히 준비하여
가방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엇저녁 강가에 나룻배를
달빛에 바라보며 한없이 앉아있엇다.
전쟁은 고요한 지구
멘틀이 만들어준 사랑의 공간인 표피를
생명에서 죽음으로 변질시키는 인간들의 슬픈 놀이이다.
오늘 밤 그들은 떠난다고 한다.
시인은 냇골에 남겠다고 햇다.
그냥 이 지구상에 남아있겠다고햇는데
사람들은 그를 이로하며 안타가와하다가
애써 애처로운 마음을 숨기며 집으로들 갔다.
선물이 가득든 가방을 들고
냇가로 미리 나아갔다.
그리고 배를 다시 손보며
뱃전에 하나하나 사람들에게 쥐어줄 선물을 올려놓는다.
이윽고 사람들은 배를 움직여 고향을 떠나고
전쟁은 그들을 고향으로부터 이별시킨다.
냇골에 남아있던 사람
그자리에 50여년이 흐르고
다시돌아온 몇몇 사람들의 자손이 성장하고
그러다 그자리에 다시 물이 들오고 사람들은 이제 다시 다 떠나갔다.
인생의 말련을 기다림으로 간직하고싶은
한 외지인이 걸터앉은
작은 나룻배를 하나 물가에 얹혀두고..

 
지워진것을 그려나가는 이(장덕리어느겨울이야기..중에서)
2003-03-28 오후 1:16:32
지워진것을 그려나가는이
 
그림을 그리는 이.
그는 자신이 그림으로 할수있는 도리를 찾다가
2002년 가을 어느날 수해로 모든것을 잃고
모든 것이 지워져버린 고장에 다다른다.
그리고 사진한장마져도 남김없이 잃어버린 고향에서
마지막 추억으로 희망을 찾아헤매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후 그는 그들의 얘기를 듣고서
이 낯설은 고장의 모든 곳에
예전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드리는 작업을 하기로하고
몇장남지않은 예전의 마을사진과 마을 사람들의 사진집
그리고 그들의 마음안에 담긴 얘기를 듣고 다시
그려볼수있는 마을의 풍경을 스케치하고
그것을 갖고 마을로 찾아와서 그림을 그린다.
과수밭이 보이던 마을어귀의 꺾여진 나무와 쓰러진 바윗돌위에 그곳에서 바라보이던 과수밭을 그리고
없어진 길을 그길이 보이던 입구에 그린다.
몇년이 걸려 마을은 현재와 과거의 두개의 모습을
동시에 공유한 모습으로
사람들속에서 아름다움만으로 기억될 고귀한 시간을
공유하게될때까지
지워진것을 그려가는 화가의 작업은
마을사람들에게 그저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사람의
스케치여행이나 거리화가의 개념으로만 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것이 수해이전의 모습으로 완성되엇을때
지워진 것을 그려주던 화가는
또다른 마을로 떠나서 그의 작업을 계속하고
이 마을여기저기에 작은 수줍음처럼 숨어잇는
그 수백개의 그림들이 자신들에게 준 선물임을 알게되었다.
 
[파람6-전쟁속의사람들][건물조각에그림그리는이]
2003-03-28 오후 1:30:09
폭격이 지나간 거리에서
하룻밤새에 모든 일상이 정지되고
이제는 모든것이 비일상이 되어버린 거리에서
오늘도 어제처럼 일상을 그대로 재현하는사람이있다.
어제 공사하던 이웃집으로 출근해서
꿈에 그리던 자기집이 지어짐을 바라보면서
행복해하던 가족들앞에서
열심으로 집짓기 공사를 하던 인부.
그는 오늘도 그곳에가서
부서져내린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며
어제 짓던 그집을 짓는일을 하고 돌아온다.
공습경보가 지나가면
아이가 어제처럼 곁에와서
자기가족이 함꼐살 새집을 지어주는 자신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방긋웃는다.
그 아이가 방공호어디에서라도 혹시라도 만나
"아저씨 오늘은 일하러 안와요?" 하고 물으면
"폭탄과 미사일이 쏟아지고 전쟁이 났는데 집은 무슨집
이냐?" 하고
반문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이웃집 벽이 폭격으로 부서져내린 것을 보앗다.
아기의 방의 벽지도 그을려 다타버렷다.
자기방으로 들어가서
언젠가부터 손을 놓았던 그림도구를 갖고나왔다.
그리고 깨어져 밖과 안이 드러나 버린 그 시멘트벽조각과 문쪽에 고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건물조각에 그림을 그리는 이
지워져버린것을 그려주는 장덕리의
그 이와 비슷해보이는 파람의 인물이다.
며칠후 바그다드에 시가전이 펼쳐지고
이곳을 군화발로 숨고 피하고 쫒으며 총구를 내밀며
제 몸을 숨기는병사들이 왔을 때
이 깨어진 벽에 활작웃고잇는 아이의 얼굴이나
아름다운 꽃송이
혹은 고운 세상과 사람들의 그림 조각을
바라보면 혹시라도 건물밖 거리쪽으로 향했던
총구를 내리고 탄창을 빼어버린후
벽에 기대여앉아
담배라도 하나 피어물어주지않을까 하는
허황된 꿈을 꾸면서..
[파람6]전쟁 속의 사람들은...
2003-04-26 오후 8:43:46
파람6은 미국에 의해 이라크 침략 전쟁이 발발하고
우리 정부와 국회가 이에 동의하여 파병을 결정한 시기에
반전 혹은 평화를 소재로 준비되었다.
코파스의 마일 연극의 날 행사참가작으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일요일 저녁에 공연되었는데,
준비과정이 너무 미흡했고
참가자들과 진지하게 단 한번이라도
이 전쟁과 인간의 전쟁역사에 대해서
가슴 아프게 논의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그저 얼굴만 익히는 정도로 만남에 만족하며
그들에게 화두만 던져주고
그들이 그려내는 방식을 모자이크하는 방식에 머물렀다.
김백기 가시 루비 신량섭 한영애 그렇게 5사람이 출연했고
파람 연작의 의미를 가장 깊이있게 이해하며 이어온
예플러가 맨틀로 동참했다.
다섯명의 인물들은 나름대로 파람에 이르는 길목에서
만나게된 인간의 모습을 담기로 제안하고
나름대로 그렇게 노력해주어
공연은 빈약하지만 어느 조그마한 전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모자이크했다.
공연 안에는 피안의 길목노인이며 그를 만났던 광대
냇골의 뱃사공과 시인 상무대의 주부 얘기등이 나오지만
다섯인물들이 그들보다 더 아름다운
혹은 같은 정도의 도달치를 지켜내는 인간의
고운 모습으로 존재해주는 듯 환상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 작업을 통해 혹시라도
전쟁을 희화화하며 유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놓을 수는 없엇다.
파람은 늘 그렇다.
여섯번의 연작을 해나가지만 하나하나 만들어지는 인물들
그들은 과연 피안에 이르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얼만큼 애절하게 노력하고 있으며
그 노력의 결과로 이 공연에 등장하는가?
공연은 답답할 정도로 한없이 아름답지만
그 등장인물들과 연출자가 만나서 얘기하지 못하고 이뤄내는
지극히 무감각한 자기본위의 사랑인식들이
과연 파람의 인물들을 지속해 생존 시켜낼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파람과 맨틀만이
그나마 특별한 연유로 이 작업의 의미를 지속 시켜주며
기다림을 계속한다.
100명은 만났으면 하면서 찾아가는데 전장 속에서 만난 다섯명의 사람들의
그후의 모습을 또 언제 다시 더 업데이트된 모습으로
파람 안에서 만날 수 있을까?
아무런 조건없이 그저 파람에 이르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그들에게 사랑을 배우고 싶어서 조건없이 다가와
다시 그의 다음얘기를 들려줄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파람7][파람8]안면도바닷가 그리고 승언리에서...
2003-04-26 오후 8:56:18
파람과 맨틀을 맡은 한 사람의 출연만으로
안면도 바닷가에서
월례 정기 공연의 의미로 이뤄진다.
잠시라도 함께 파람의 길목에 같이 서있거나
머무르는 표정만이라도 지을 사람을 찾았으나
끝내 없어서
파람은 한달만에야 한번 이렇게
여백뿐인 공연으로 지속된다.
1,2,3,4.5 다섯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공연을
안면도공연에선
한개 부분을 줄여서
4개부분으로 하고
그 4개부분을 한 연기자의 1인3역으로
구성하고 두개부분을 여백을 두었다.
1.노인..상무대의주부
2.상무대의주부..상무대의 주부
3.냇골 뱃사공...책방주인
5.실향가..맨틀
으로 구성했다.
파람은 다시 홀로 실향가 부분을 분리시켜서
장덕리어느겨울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안면도에서 공연된다.
사람이 없어서 사람을 표현해볼 수 없다.
인형이나 조각물로는 피안에 이른 사람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지 않아서
지난 8년간 예기 플라타너스 작업에
한번이라도 참가했던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서
그가 그려냈던 의미를 다시한번
기억해주는 작업이라도 가능할 수 있게
파람 연작은 모든 걸 포기한 채
연간작업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1년의 3분의 1을 마친 지금까지
스스로 찾아온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한 나눔은 고작
7번에 불과하고 인물도 겨우 18명정도를 구축함에 그쳤다.
간혹 생각한다.
현대인은 과연 파람에 이르고 싶어는 하는 것일까?
아님 그런 화두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긍정정도는
하는 것일까?
 
벗을 잃고 서로의 배경이 되어 버린
파람 그 일곱번째 여덟 번째 작업.
 
파람은 그 일곱 번째 그리고 여덟 번째 작업이 된 안면도에서의 작업길에
그 하고 팠던 그리고 그리하여 확인하고 나누고 싶었던 모든 꿈을 버린 작업이 되었습니다
제안하여 같이 가던 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이 다가오는 이 없어 실존에서의 현실의 구체화를 포기해 버린 작업.
20부작이라는 최소한의 희망이 그 가능성을 잃고 내평개쳐진 2년만의 낙담.
아무도 동행해주지 않아 홀로 떠나온 파람의 일곱 번째 기착지 안면도에서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그 내용도 모른 채 하나 둘 까메오로 출연하고
정해진 두 번의 공연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한두 마디 화두를 엿듣고
자신이 그리는 방식의 선의 방식으로 들고 나며 머무르며
파람은 그렇게 인간세계 일상의 모습 속에 함몰되었습니다.
파람의 방식이 피안에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의 얘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홀로 한 사람 만나지도 못하면서 이승을 살아가는 외로운 자의 모습으로
그저 포함되어 스치는 방식.
장면을 구성하여 하나하나 다른 인물을
한 사람이 표현하고
뜻모를 사람들이 그 사이사이에 배경처럼 오가는 모습으로의 구성.
한 사람만 더 같이 갈 수 있었어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피안의 길목에서 만나는 사람의 얘기가
군중 속에 아무도 없이 홀로 외톨이가 되어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의 중심을 구성하고
사람들은 다가와서 인정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의 선을 표현하고 가는
피안의 길목에서 벗어나서야 보이는 얘기.
준비한 모든 얘기가 즉흥으로 오인되고
그들 자신의 즉흥적 아름다움에 심취되어
파람의 공간 마져 침범해 버리는..
그리고 그렇게 버려져가는 세상에서
6부가지 지켜왔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유하며 포용해야 하는
인간 그대로 기초만큼의 선의 개념과 실천놀이.
꽃지 해수욕장 안면도 축제 무대 곁에서의 공간에서 가진
2003년4월28일 일곱 번째 공간.
그리고 그 날밤 승언리 무대에서 또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담아본
여덟 번째 공간.
파람의 입구에서 만난 노인
상무대의 주부
그리고 냇골의 뱃사공과
맨틀의 얘기를 담았지만
그 각기의 인물을 이해하고 가슴저리게 준비한 사람이 따로 없어
예플러 혼자서 1인4역으로 그려낸 1인극무대에
축제에서 만난 사람들이 도움주듯 출연해서 각기 자기들의 얘기를
극과 관계없이 표현하고 힐링이라도 한 듯 즐거이 떠나 버린 무대.
그 공간을 만들어주고
그들의 일상의 움직임을 피안의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의 얘기를 기억하는
상상의 공간 그 같은 무대에 배치해주는 것만도
이 작업이 가진 미덕이 되어야 했을까?
2012년 12월 22일 토요일오전 9:46:37
 
 
param09 파람-피안의길목에서09(2003.5.17)
광주상무대,망월동,주남마을
 
지금도 그날 그 새벽의 계단에서..
2003-02-04 오전 12:47:32
상무대 피의자대기실로 가는 27년간의 주부의 시간중 한부분.
파람의 주요인물로 그의 27년간의 시간이 요소요소에 배치된다.
상무대와 상무지구 금호4차아파트만을 오가던
장면에서 그가 파람에 이른순간을 찾아낸다.
사실 상무대주부의 캐릭터는
2002년부터 2029년까지 27년간의
매주화요일과 그 밖의 시간을 통해서
매시간 다른 도달치의 파람의 길목에 서게된다.
[파람]의 초반작업에선 그 중간 도달치정도의 시간에
서있던 주부의 모습을 담고
후이넘의기억-상무대1부에서 보여주던 시간을 그려봤으면한다.
금호4단지버스정류장에서 기사와 얘기하고
양동시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다시 비엔날레영화가 상영되는
자유공원을 발코니로 내려다보던 그 시간
그 도달치의 파람에 선 인물.
그리고 시간을 다시 오버랩해서 10년이 흘러
피의자대기실의 벽과 실내의 모습이
다시 옛날같아져서 더욱 아련해진
어느 화요일 영혼과의 대화를 나누던 날의 모습으로 .

상무대의 주부 2029년12월 
2003년 파람을 준비하며 5월을 간직하고 실천하며 사는사람의 얘기를
담고싶어서 그려보앗던 인물들
양동시장의 할머니는 구체화되지 못하였고
상무대의 주부얘기는 사랑담론-영원, 후이넘의기억-상무대편등
예기플라타너스와 이름없는공연의5월연작에서 조금씩
등장하고 스치며 그 삶을 생성해냈습니다.
그리고 파람연작이 함게하는동지를 찾지 못해 그 구성의 근간을 잃고헤메이던 시간.
홀로라도 이어마칠 가슴으로 그 열번째연작을 준비하며
마침내 상무대 법정 대기실 실제공간에서
그 아련한 27년을 구체화시켰습니다.
 
인물대본 상무대의 주부
양동시장의 할머니를만나고
상무지구종점에서 운전기사분과 환담한다.
오늘도 피의자 대기실을 찾아서
꽃병에 꽃을 갈아 끼우고
촋불을 밝힌다.
 
전남 광주 상무지구 금호4차 아파트.
2001년5월 새로이 이전공개된 상무대 법정 피의자대기실.
27년을 하루같이 매주화요일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
2029년 12월.5.18 50주기 4.19 70주기 4.3 82주기를 맞이하는 겨울.
영원으로 이어지는 넋과의 만남.
다 잃어버린후 아무도 없는곳에서
담론의 소재마져 잃어 버린 이 지구의 사랑앞에서
2012년 12월 22일 토요일오전 10:43:17
 
이름없는공연 2월5일(2008년)평화 그 그리움으로
-상무대영창피의자대기실
http://yegie.com/205peace/page_01.htm
광주상무대 영창 피의자대기실 그리고 법정
 
사람이 사람을 해하고
욕심을 이유로
자신이 한번도 만나거나 자기를 해려하지않고 살던 읻들을 찾아 죄를 만들어
법이라는 허울로 상해하고
마침내 죽음까지 이르게하는
그리하여 이 별의 온화로움을 역행하고 거스름으로서
만물의 순행을 파괴하며
숱한 슬픔을 만들어서
끝내는 햇살과 바람마져 바라보다 울게하는 ..
상무대 옮긴자리
이제는 세월이 흘러 다시 수십년
사랑담론 -영원의 캐릭터로
매주 한번씩 이곳 피의자대기실을 찾아오던
상무 금호지구 아파트단지의 한 주부의 모습
그 얘기가 이어져 보이던 날.
이름없는공연 2008년2월5일 평화 그리움으로 일백사십 여섯번 째날.
2011년 2월 3일 목요일오후 6:37:14
   
param10 파람-피안의 길목에서10(2004.1.13)성산역
2003년5월,파람에 이르는 길 그 얘기가 함께 준비하고 이뤄가는 사람들을 잃고 홀로가 된 후에
8개월흘러 어느날 김차현 김윤경 그리고 다시 이선화님까지 세사람이 다가와
그들과 함께 파람의 화두를 얘기 나누며 준비할 수 있어 그 열 번째 와 열한 번째 에피소드가
이어 봄윱求?
2012년 12월 25일 화요일오후 2:51:59
 
제 목 : [파람10][성미산지기]
2004-01-02 오후 12:36:01
 
[파람]은 지난2003년3월 그 5편에서
성미산을 지키는 사람의 얘기를
나무들이 모조리 벌목당한 성미산정에서 공연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성미산은 다시 주민들의 것으로 돌아왔지만 성미산으로 얘기되던
파람의 그 의무가 다한 것은 아닙니다.
파람은 그10편에서 다시 성미산 곁으로 다가가 그 얘기를 지속할 겁니다.
성산역은 성미산의 줄임말에서 정해진 역명입니다.
 
제 목 : 파람 그 작업을 이어시작하며 다시 추스리기..
시 간 : 2004-01-04 오후 11:19:36
 
그들은 어떻게 파람에 이르렀을까?
혹은 어떻게 파람의 길목에서 있게 되었을까?
이 작업을 하면서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그 도달치에 관계 없이 1에서 100까지의 어느 지점에서건
파람에 이르고 잇는 이들의 모습만 등장한다.
파람의 길목에서 보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은 이 작품 안에 등장하지 않으며
다른 길목에서 그것이 피안에 이르는 길이라고
무던히 노력하며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 작품의 어느 구석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작품에 등장인물을 표현하는 연기자들에게
그들이 이미지나마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질문은
그들은 어떻게 파람의 길목에 이르렀을까 하는 것이다.
그답은 우선 그들은 자신이 선행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리고 피안에 이르기 위해 노력을 하거나 기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가 파람에 이르려고 노력한다면
이미 파람의 길목에서 자신도 모르게 빗겨나 있을 것이고
그것을 위해 선행을 시작한다면
이미 선행이라고 말할 가치조차없는 행위의 길목으로 들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파람의 인물들은 그래서 그 자신이 하는 일을
선행이라 생각도 하지 않으며 파람에 이르기 위해
절절이 기도하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저 행하면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그에게서 배우고
나 자신은 왜 저렇게 아름답지 못한가 하며
자신을 꾸짓으면서 남은 것을 또 버리고 조금 더 나아지려 노력하는 모습만 보일 때
그 또한 누군가에 의해 그가 피안의 길목에 있음을
발견케되는 것이고
그 발견자 역시 또 그런 방식으로 그곳에 이른 사람일 것이다.
결국 파람의 인물들은 무아의 존재로서
자신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인간본연의 도리만으로 존재하는 모습으로
공연 안에 담겨야 한다.
억지로 선행을 조작하거나
자만에 빠져서 누군가를 비방하고 있는 이의
모습을 형상화시키려 한다면
그는 파람의 등장인물로 절대 형상화되지 못한다.
지독한 자기 낮춤과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하는 마음.
하지만 그 자신 밖의 누군가가 바라보면
아주 많은 것을 한 것처럼 보이고 선인과 초인을 넘어선 존재처럼 보이는 경지.
우린 아직 피안의 길목에 들어서지도 못했기에
그들의 숨결조차 만날 수 없고
그래서 이렇게 극으로나마 가늠해보는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임해야 할 지극히 부족한 감각체라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며 접근해야 하며..
 

제 목 : [맨틀]그의 그리움,
시 간 : 2004-01-08 오전 1:49:28
 
지구시간 2004년1월4일
인류의 화성탐사로봇 스피릿트(spirit)는
인류에게 최초로 가장 가까운 이웃혹성인
화성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주기 시작했다.
흑백사진에 이어 칼라로 전해진 화성의 표면은 맨틀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헤어진 자아이며 또 하나 동무의 모습이다.
파람 연작 속에서 마지막부분
실향가를 따라 움직이는 맨틀은 화성의 표피를 보면서
자신의 경과된 시간을 다시금 돌이켜 기억해볼 시간을 가졌다.
한번쯤은 자신의 모습이었으며
한번쯤은 다시 돌아갈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 지역에서 6분간 직선 혹은 굽은 길을 걸어가며
멈추고 멈추고 보듬던 맨틀의 모습은
이젠 조금씩 그 시공간을 확대 시켜볼 필요가 있다.
그는 피안의 길목을 걸어가고 스쳐간
생명체들의 흔적 앞에 시공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 흔적 앞에서
그들과 다름없는 우주원소의 일종인 자신의 심성과의 공유점을 찾는다.
파람은 10편을 넘어서면서
맨틀의 걸음과 보폭에 대해서 생각했다.
맨틀은 자신의 지표면을 어떻게 걸어갈까?
거울로 자기얼굴을 바라보며
심연에 빠지는 인간들처럼 맨틀 역시
타행성에 반사시켜서 바라보면서
기억의 시간을 중첩 시켜내지 않을까?
그 아름다운 희생의 심성으로.,.
 
제 목 : [씨앗을 심는이]
시 간 : 2004-01-08 오후 4:59:38

인류 역시 생명이거늘 우린 간혹 자연과 별개의
위치에서 자연과의 교감이나 교류를 생각한다.
씨앗을 심고 가꾸고 그것을 다시 추수하고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씨뿌리며
농자로서의 삶의 아름다움을 얘기하기도한다.
수목의 어우러짐은 자연스러움이지만
인류는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 채득하고
다시 그것을 심는 것을 환경운동이라 말하며
자연은 빌린 것이기에 물려주어야 한다고 캠페인한다.
이들곁에 소외자로서의 말없는 이가 피안의 길목에 있었다.
그는 제 스스로 생태해나가지못할 씨앗들을 주워서
그들의 생명을 빼앗은 인간들의 죄를 대신 제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그들이 살고 싶어할 곳에 심기 시작했다.
바람에 날아가다 문명의 공간 안에서 뿌리 내리지
못하게 머물러버린 씨앗들을 찾아서 그들이 숨쉴 곳에
심어주는 일을 시작했다.
새로운 길이 생겨서 그들의 고향을 잃어버린
꽃과 가지들을 찾아서 그 씨앗을 안전지대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찾아가 그들을 가꾸었다.
자동차 바퀴 자국에 혹은 인간의 등산화발자국에 패여 버린
모종들 속에서 그가 심어둔 씨앗의 위치를 잃어버린
어느날 그는 한없이 슬퍼했다.
그리곤 그날부터는 가방에 지도를 준비하여
그가 씨앗을 심는 곳을 기록하고
시차를 두고 그곳을 찾아 돌보는 방법을 취했다.
산천이 바뀌고 세상은 자꾸 문명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지형을 변질시키고 그 안의 생태계도 파괴해 나갔다.
한 사람의 힘으로 그 모든 재앙으로부터 자연을
보존시킬 수는 없었겠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생성 원인이
씨앗을 심고 가꾸는 것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수십 년을 그렇게 하자
그의 가방엔 수십장의 크고 작은 지도가 쌓였고
자기 몸보다 몇배 큰 모습으로 성장한 씨앗아래서
그늘을 선물 받기도 했다.
사람들 역시 그에겐 하나의 씨앗이며 나무며 흙이다.
그래서 그는 자연이란 이름으로 모두를
평등히 대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어느곳에선가 이제는 별로 남은 곳도 없는
이 인간의 벌판에서
틈새를 찾아서 씨앗을 심고
며칠 전 심은 씨앗에 물주려 지도를 뒤적인다.
저녁노을아래 돌아서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맨틀은 고마운 정원사의 손길을 감사했다
 
 
제 목 : [책읽어주는 이]
시 간 : 2004-01-10 오전 10:53:01
 
피안의 길목 어느 지점에서
책읽어주는 이를 만날 수 있다면
그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가 읽어주는 책의 내용은 또 어떤 것일까?
책은 인간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서
역사시대이후의 학문과 예술 그리고 담론 픽션등을 통한
사상과 지식 그리고 그 사상과 지식에 대한 또다른
해석과 담론등을 담고 있다.
책은 간접체험의 매개체며
경험하지 못한 것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경험과 만남의 가교역활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들음으로서 다시 통역되는 또다른 차원의
책의 저자로서 존재의 이유를 가질 것이다.
아주 광활한 언덕 저편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을 바라보며
그 광활한 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이
피안의 길목에서 접할 수 있었던 첫번째 모습이었다.
아이는 그의 음성을 들으면서 그를 보는 것이 아니라
책읽어주는 이와 같은 방향을 보면서 듣고 있었고
책 읽어주는 이는
이곳에 와서 그에게 이 얘길 들려주는
절실한 이유를 갖고 있는 듯 보였다.
아이는 책을 읽을 수 없거나
접할 수 없는 곳에 있었고
책읽어주는 이는 이 아이 혹은 아이들을 위해서
그에게 들려줄 얘기를 찾아서
권선징악도 교육도 처세술도 오락도 아닌
그 무엇을 이렇게 읽어주고 있는 것이다.
 
제 목 : [철도 건널목 의인]
시 간 : 2004-01-10 오전 11:01:48
 
역사 속 자기희생의 길을 찾아간 사람들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길목에
철도건널목에 꽂혀있는 작은 팻말이 있고
거기엔 두 사람의 파람의 인물의 얘기가 있다.
철도건널목 사람들 눈에 잘 띄지도 않게
그러나 정성스럽게 새겨진
조그마한 나무팻말엔
모르는 이를 위해 죽어간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
그리고 그를 아버지로 둔 자식의 이름


제 목 : 동행자 없이 이어지는 파람의 정체성.
시 간 : 2004-01-10 오전 11:04:04
 
한인물 한인물 우린 그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의 지나온 삶의 흔적을 찾아가는 작업을 시작하지만
동행할 사람없이
그저 연기자로 자신을 사용하고 가버리는 사람들의 낯설음 속에서
피안의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은 늘 정체되곤 한다.
고정출연자없이 매회 다른 사람이 같은 인물을
연기하는 연속극 같기도 하고
출연 때마다 매번 지난번 자기배역의 이미지를
잊고 성장없이 다가와 늘 첫번째 씬만을
반복하는 사람뿐인 파람은 10번째 작업동안
연기자를 통해서 성숙해진 인물은 없고 연기자를 통해서
오히려 피안의 길목에서 멀어져가면서
피안의 도달치를 하향화 시켜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 작업은 영상작업이되
반복해도 많은 것을 얻지 못하는
성숙없는 인간상의 나열로 정체된 감이 있다.
동행하여 지속적으로 절실히 성숙하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작업
파람에서
연기자들은 결국 이미지의 스냅일 뿐이다.
그 자신이 준비하고 연기한 모습이
파람의 인물과 전혀 다르고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도 그 성장에 대해서 약속이 없다.
결국 작가는 하나의 영상작가로서의 이미지채집과
자기해석으로 모아놓은
전시회의 작가로서의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20회정도의 얘기로 스토리를 엮어 가려하던 작업은
초반의 등장인물들이 성장해가거나
그 얘기의 원인을 들려주는 모습으로 진전되길 바랐으나
동행자가 없는 이 상태에서
그저 객처럼 왔다가는 사람들만으로 구성되는
작업으로는 그 완성이 불가능하다.
파람의 화두는 이제
사람들에게 들려주기조차 민망한 무공감의 작업이며
공유하려 하다가는 오히려 피안의 길에서 멀어져가서는
다른 길이 피안의 길이라고 얘기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만을 만나게 될 것 같다.
파람은 구성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개인작업을 유지하는 작업이 되어버렸다.
파람만큼은 소통도 없고 제안도 무색하다.
예플 초기부터 꿈꾸어왔던
아크로폴리스계단에서의 대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멀어져갔다.
그리고 파람의 제안이 그 슬픔을 응고시키고
가졌던 모든 희망을 고갈시킨다.
 
파람은 개인전을 준비하는
모델들과의 작업으로 전락해버렸다.
작업에 들어갈수록 그리고 그 회를 거듭할수록
파람의 인물들은 인간과의 공존이 어려운 비공감의 인물들이 되엇다.
상대에게 아무피해도 주지 않았는데
언제 부턴지 그를 바라보고
필요악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존재가 되어버린 작업이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서 문득 나타난 누군가가 당신의 곁에 와서
"어젯밤 썰물에 밀려 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하거든
그 우수담은 눈빛 안에 담긴 진실을 외면하지 마세요.
저 역시 밤새 달의 인력에 빨려 나가는 바닷물을 따라서
하늘저편에 올랐었거든요.
 
제 목 : [파람10]세명의 연기자로..
시 간 : 2004-01-12 오후 4:09:23
 
오랫만에 다시 시작하는 파람 연작은
2004년 들면서 그 10번째 이미지를 이어간다.
3명의 연기자가 함께 하였고
이 중 두 사람은 새로이 이 작업에 동참하는 사람들.
그들을 통해서 10번째 이야기 안에는
씨앗을 심는이 와 책읽어주는 이 가 새로이 등장한다.
씨앗을 심어가는 이는 4편과 5편에 등장하였던 성미산을 지키는 이와
합류하여 4번째 장면에서 성미산을 지키는 텐트 안에서 같이 밤을
지새운다.
책읽어주는 이는 냇골을 찾았던 시인에게 들은
냇골 뱃사공의 얘기를 기억하면서
냇골로 찾아가는 길목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으로 만난다.
맨틀과 상무대의 주부는
기존의 인물로서 그 작업이 이어진다.
맨틀은 1편에서 만났던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과
6편에서 만났던 전장 속 사람들의 흔적을 경유하며
앞으로 만날 지워진 것을 그려가는 이 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덕리를 스쳐간다.
27년을 지속하는 상무대주부의 화요일의 미팅은
2004년 월2회 정기적으로 공연을 갖기로 한
화요일의 예플 정례공연과 일체감을 갖고 9편에서 직접 다가갔던
상무대 영창 피의자 대기실을 재현한다.
세사람의 동반으로 인해서
그간 생명만 잉태하고 이미지로 다시 살아움직이지못햇던
많은 파람의 인물들이 다시 생명과 호흡을 되찾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날 성산역 광장에서 파람10은
씨앗을 심는이
책읽어주는 이
상무대의 주부
그리고 맨틀의 이미지를 그려주며
피안의 길목에서 만나게 될 들의 10번째 얘기 속 에피소드를 스냅처럼 담는다.
 
제 목 : [파람10]구성대본및 음향시간표
시 간 : 2004-01-12 오후 4:34:44
 
무대
책읽어주는 이의 방
성미산을 지키는 이의 2인용텐트
상무대피의자대기실의 작은 꽃병과 촛불
그리고 계단
1. 씨앗을 심는이(5:40)
00:00-03:40 m 앙드레가뇽 조용한 날들
03:40-04:35 v
파람의 입구에서 한 노인을 만났어요.
삶의 희노애락일랑 온화로 지우고 파람의 입구에서 제게 물한 모금 쥐어주던 노인.
지독한 자기 낮춤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아픔을 감싸주려고
파람의 입구에서 새로이 돌아 나오던 맑은 모습.
파람의 입구에서 한 노인을 만났어요.
삶의 희노애락일랑 온화로 지우고 파람의 입구에서 제게 물한 모금 쥐어주던 노인.
04:35-05:40 m 앙드레가뇽 조용한 날들
 
2.책읽어주는 이 (3:50)
00:00-00:30 m 앙드레가뇽-첫날처럼
00:30-01:40 v
냇골이라고 그랬어요.
이젠 세월이 흘러 열길 아래 이 호수밑에
학교 교정과 마을 정자나무가 있는 걸 기억하는 사람도 점점 적어지는데.
그곳에 한 사람 뱃사공이 있었죠.
누군가 고향이 그리워 물밑으로라도 보려는 이를 위해
조그마한 나룻배를 준비하고 기다림을 시작한 사람.
10여년이 지나 다시 찾아온 누군가는 그를 시인이라고 했어요.
오늘도 그 골짜기 고향으로 가는 이를 위해서
자신의 말년을 기다림으로 택한 그 뱃사공이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어요.
그러다 누군가 언덕을 올라 냇골 윗마을로 걸어 올라오면
마치 자기도 마침 그곳으로 가는 길이라면서 동행을 청하지요.
사랑이 담긴 포도를 만들어 나눠주던 그 국도변의 농부처럼
01:40-03:50 m앙드레가뇽-첫날처럼

3.상무대의 주부(04:20)
00:00-01:35 m 토이-선물
01:35-02:10 v
지금도 그날 그 새벽의 계단에서 너의 입김에 고개를 돌려 맞이했던
그 만남의 기적이 선명해.
이렇게 시공을 넘어 다가가면 늘 함꼐할 수 있는 숨결을
그저 위로해주겠노라고 다가가던 우매함 이라니.
고마워.이렇게 함께 해주어서 .
이곳 피의자대기실
다시 그날같아졌어.. 시간이 흘러서 오히려 원래의 모습이 되었어.
02:10-04:20 m 토이-선물
 
4.성미산(03:40)
성미산지킴이와 만나는 씨앗을 심는이
00:00-03:40 m 산울림-너의 의미
5.맨틀(07:00)
00:00-01:20 e 열차 떠나는 소리 v
100억개의 형제들이 고향을 떠나 흩어져서 나는
60개하늘을 가진 조그마한 감성의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10억년을 지내며 그 감성을 식혀낼 이성적요소를 생성하면서 나를 구축했다.
그리고 40억년을 지내며 내 표피 위에
생명과 무생명체들이 살 수 있도록 나의 이성면을 감쌀 또 하나의 푸른빛표피를 만들었다.
수억의 존재들이 지질시대 위에서 생성되고 소멸되어갔으며
나는 그들의 사랑과 미움을 바라보면서
간혹 슬픔에 겨워 고향을 떠나 이 공간으로 온
그날 이전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시생대를 거쳐 600만년전 우리의 영혼을 닮은 인간들이 생성되고
난 요즘 형제이웃들과 함께 내안에 존재하는 그들의 얘길 간혹 꺼내곤 한다.
언제나 그런건 아니지만 간혹 어느 누추하고 조용한 표피구석에서 발견하는
그들의 지극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
01:20-03:50 m 정태춘-실향가
03:50-04:20 v
사람들 속에서 문득 나타난 누군가가 당신의 곁에 와서
"어젯밤 썰물에 밀려 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하거든
그 우수담은 눈빛 안에 담긴 진실을 외면하지 마세요.
저 역시 밤새 달의 인력에 빨려 나가는 바닷물을 따라서
하늘저편에 올랐었거든요.
04:20-07:00 m 정태춘-실향가

제 목 : 조금씩이라도 함께 할 수 있다면..인물들은 기꺼이 성장한다.
시 간 : 2004-01-15 오전 1:18:14
 
10번째 작업에 이르면서야 비로소
그 작업을 하는 연기자와의 동행이 시작되엇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업노트를 바라보면서 연출자의 작업공간 안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그 안에 들려 주고픈
그러나 낯설어할까봐 직접 얘기하지 못하는 모든 얘기들이 들어있다.
시간을 내어주는 이가 있다면
질문을 던져주는 이가 있다면
파람은 그만큼더 절실한 모습으로 다가가는
피안의 길가에서의 인물들로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얘길 꺼냈지만
그 많은 인연과 존재의 과정을 얘기해드릴 시간을 내주지 않아서
짧은 시간 만나는 그 만남 안에서 두서없이 얘길하고
그에게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면서 작업은 10회를 이어왔다.
그리고 이어온 만큼 얘기는 더 깊고 다양하게
성숙된 많은 등장인물들과 그들이 치룬 역사를 담고 진행된다.
10번째 이야기에서
맨틀은 이제 그간의 역사성과 시공간성을
찾아서 그 흔적을 둘러 공존하기 시작했다.
매 공연마다 그 작은 공간만을 표현하던 맨틀의 시선이
5-6개의 흔적 앞에 실향가를 부르는
그리움과 포용으로 접근하기 시작 했다.
등장인물이 회상의 이미지를 제안에 갖추기 시작함으로서
30분씩 10번 즉 300분간의 수많은 얘기와
인물 그리고 그들이 담고 펼쳣던 계절과 시간을
담기시작하므로서
연속공연으로서의 작업의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씨앗을 심는 이와 책읽어주는 이는
짧은 시간 파람의 지난 공연을 한번도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가와서 그들이 알 수 있는 만큼의 접근 안에서
합류했다.
짧은 시간 파람의 얘기를 들려줄 시간조차없어서
그들은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선한 이로서의 이미지만으로 참여하였으나
그 조그마한 흔적으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그들은 이제 파람의 인물로서
생존과 성장을 시작했다.
계속 만날 수 있다면 그들이 파람의 길목을 잇는
기한 인물이며 그들의 존재방식이
무엇인지를 같이 얘기하면서 공존해 갈수도 있게 되엇다.
파람은 10번의 인물들이 다시 두 주일을 지내고
11회에 출연하기로 약속을 해줌으로서
그들의 얘기를 바로 성장시킬 수 있다.
작가로선 그 두 인물과 맨틀 그리고 상무대의 주부의
모습이 다시 연속되어 만나지는 기회가 주어지니 감사하다.
 
제 목 : [책읽어주는 이][냇골]에 다다르다. +[냇골 뱃사공]
시 간 : 2004-01-15 오전 1:52:45
겨울 어느날 책읽어주는 이는
그 날도 약속처럼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동화책을 준비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살고 있는 그 곳에 다가가서
지난주처럼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돌아왔다.
동해안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빈 간이역에서 만나던 아이들
냇골이란 곳이 있엇다.
그곳에 작은 분교가 있었고 아이들은 한시간 이상씩을 걸어서
학교엘 다녔다.
그 고운 산골마을 아이들을 만나
소나무 한 그루가 그림처럼 서있는 학교뒷동산에서
선생님과 함께 만나 동화책을 읽어주던 날이 있었다.
그리고 4-5년이 흘렀던가
그 아이들과 냇골 조그마한 학교 교정
그리고 그 소나무 언덕과 냇골 사람들을 그리며
다시 찾아간 냇골은 수몰되어있었다.
새로 만든 상류댐에 물을 들이면서
청량한 시냇물이 흐르던 마을 냇골은
저편 산중턱으로 일부이주하고 사람들은 고향을 물에 잠긴 채 흩어져 갔다 했다.
소나무언덕에서 저편높이 보이던 조금 높은 언덕하나가
유일하게 남아서 그 아래 냇골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그 언덕으로 가는 이편 육지에
이제는 갈수없는 수로를 건네줄 빈 나룻배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냇골을 삼킨 그 언덕을 바라보면서
이편 비탈길을 오르는데
50대로 되어 보이는 한 사람이
나룻배 쪽으로 다가가 배를 손보는 듯 했다.
다가가서 인사드리고 물었다.
책읽어주는 이-안녕하세요. 저기 냇골까지 건너갈 수 있을까요?
뱃사공-네 이리 오세요. 마침 나도 그리 가는 길이니.
뱃사공-뱃삯은요 .,나도 그리로 가는 길이고..
이 배는 뱃삯을 받는 나룻배가 아니라오.
책읽어주는 이- 수몰 전에 이곳에 오곤 했는데,
아저씨는 한번도 뵌 적이 없어요 .이곳에 연고도 없으실텐데..
뱃사공-삶의 말년을 이런 좋은 곳에서 보내려 왔지요.
그냥 강바람이나 쐬면서...
좋은 곳이 었지요. 이제는 모두 잠겨버린 고향.
지금도 물 속을 들여다보면 초록색 나뭇잎과 뛰놀던 동구 밖이 잡힐 듯 들여다 보이지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사람은 수몰지구
그리움으로 찾아오는 누군가를 위해서
아무런 연고도 없이
다만 세상 어느 곳에 선가 그리움에
자기정화를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거라는 기다림으로
그곳에 있었다.
냇골의 뱃사공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책읽어주는 이의 동화책엔
또한 사람의 얘기가 적혔다.
삶의 말년에 가장 소극적인 자기 낯춤의 모습으로 누군가의 그리움을 위해서
제 남은 삶의 모든 것을 기다림으로 남겨두고 냇골 가는 길목을
지켜주던 뱃사공의 얘기가.
책읽어주는 이의 아이들에게 들려줄 그 얘길 준비하면서 냇골 그 뱃사공의 얼굴과
작은 나룻배
그리고 냇골가는 배를 타고 물밑으로 들여다보던 분교교정과 운동장,나무들 교문.
그리고 소나무언덕의 소나무들을 그리고 있다.
 
 
제 목 : [점자책을 만드는 사서]
시 간 : 2004-01-18 오전 10:55:31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그는
도서관 일을 하면서
눈만이 아닌 손으로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겐 너무도 적은 책자만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눈으로 읽기에만 익숙했던 그의 주변 모든 것들은
누구에겐 가는 소통되지 못하는
읽을 수 없는 편협된 것일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을 갖게 하였다.
책을 보다가 고운 글이 담긴 책이 있으면
점자로 그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도서관 한편엔 점자도서관이 생겼다.
손으로 읽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읽고 싶은 얘기를 만나거든
곧 그것을 점자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내 수백 권의 책이 손으로도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다.
 
param11 파람-피안의 길목에서11(2004.1.27)성산역
제 목 : [종이배를 띄우는 이]
시 간 : 2004-01-25 오후 9:48:40
 
주문진 밤바다 다리 위에서 차가운 늦가을
밤바다의 파도소리와 저 멀리 반짝이는
불빛들과 북녁으로 이어지는 동해바다를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그 수많은 종이배와 그들의 길을 비춰주는 크고 작은 등대불빛들을
꿈에서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택시운전기사의 눈에 보여 침몰시킬 수 있었다는
잠수정이 출몰된 정동진에서 안인으로 가는
길에 보았던 그 햇빛찬란한 동해바다에서도 보지 못했던 그 곳에
이렇게도 많은 종이배가 꽃과 편지와 선물을 싣고
55년동안을 오고 가고 있었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다니...
묵언의 수행자들은 하얀 색 사각종이와 예쁜 색종이를
발견하면 그 종이를 한 장으로
혹은 여러 장을 포개 붙여서 크고 작은 사각지를 만들고
그 종이를 접고 접어서 종이배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배안에다 꽃이랑 편지랑 사진이랑
전하고 싶은 얘기들 사랑을 담아서
개울로 강으로 바다로 나와 주소를 적어서 배를 띄우고 있었습니다.
금강산유람선이 뜨기 오래 전부터
아니 경비정과 군함,새우잡이배와 어선들
혹은 팀스피리트 훈련의 항공모함사이로도
잠망경을 삐죽 내민 잠수정 곁으로도 종이배들은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길에 별빛과 등대 그들이 공존하는 이중공간의 바다엔
수많은 등대가 정성과 사랑으로 그들을 배웅하고
맞이하며 바닷길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누가 제일 먼저 그렇게 가르쳐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 시절 학교에 들어가면 미술시간에
왜 제일 먼저 종이배 접는 법을 배워주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 목 : [파람11]구성대본
시 간 : 2004-01-25 오후 9:59:49
 
무대
도서관 사서의 책상
상무대 피의자 대기실
방파제로 가로막힌 바닷가 해안 숲길
 
1. 씨앗을 심는이-피안의 입구에서 물한 모금 전해주는
노인을 만나다
(5:40)
00:00-03:40 m 앙드레가뇽 조용한 날들
03:40-04:35 v
파람의 입구에서 한 노인을 만났어요.
삶의 희노애락일랑 온화로 지우고 파람의 입구에서 제게 물한 모금 쥐어주던 노인.
지독한 자기 낮춤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아픔을 감싸주려고
파람의 입구에서 새로이 돌아 나오던 맑은 모습.
파람의 입구에서 한 노인을 만났어요.
삶의 희노애락일랑 온화로 지우고 파람의 입구에서 제게 물한 모금 쥐어주던 노인.
04:35-05:40 m 앙드레가뇽 조용한 날들
2. 점자책을 만드는 사서-은총이의 편지를
받아보던 날. (3:50)
00:00-00:30 m 앙드레가뇽-첫날처럼
00:30-01:40 v
냇골이라고 그랬어요.
이젠 세월이 흘러 열길 아래 이 호수밑에
학교 교정과 마을 정자나무가 있는 걸 기억하는 사람도 점점 적어지는데.
그곳에 한 사람 뱃사공이 있었죠.
누군가 고향이 그리워 물밑으로라도 보려는 이를 위해
조그마한 나룻배를 준비하고 기다림을 시작한 사람.
10여년이 지나 다시 찾아온 누군가는 그를 시인이라고 했어요.
오늘도 그 골짜기 고향으로 가는 이를 위해서 자신의 말년을 기다림으로 택한
그 뱃사공이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어요.
그러다 누군가 언덕을 올라 냇골 윗마을로 걸어 올라오면
마치 자기도 마침 그곳으로 가는 길이라면서 동행을 청하지요.
사랑이 담긴 포도를 만들어 나눠주던 그 국도변의 농부처럼
01:40-03:50 m앙드레가뇽-첫날처럼

3.상무대의 주부
양동 시장 할머니를 만나고 버스기사를 만나고
법정피의자대기실의 꽃과 촛불을 갈다.
(4:20)
00:00-01:35 m 토이-선물
01:35-02:10 v
지금도 그날 그 새벽의 계단에서 너의 입김에 고개를 돌려 맞이했던
그 만남의 기적이 선명해.
이렇게 시공을 넘어 다가가면 늘 함꼐할 수 있는 숨결을
그저 위로해주겠노라고 다가가던 우매함 이라니.
고마워.이렇게 함께 해주어서 .
이곳 피의자대기실
다시 그날 같아졌어.. 시간이 흘러서 오히려 원래의 모습이 되었어.
02:10-04:20 m 토이-선물
씨앗을 심는이-상무대로 변한 그곳에 다시 새로운 씨앗을
심고 상무대를 거닐다.

4.(03:40)
씨앗을 심는이-상무대를 지나 전남의 한 해안 바닷가에
이르러 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이를 만나다.
나무를 가꾸다
사서-점자책을 만들기 시작하다.
00:00-03:40 m 산울림-너의 의미
 
5.
종이배를 띄우는 이-오늘도 종이배에
편지와 선물을 담아 개울물에 띄우다.

묵언의 수행자들은 하얀 색 사각종이와 예쁜 색종이를
발견하면 그 종이를 한 장으로
혹은 여러 장을 포개 붙여서 크고 작은 사각지를 만들고
그 종이를 접고 접어서 종이배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배안에다 꽃이랑 편지랑 사진이랑
전하고 싶은 얘기들 사랑을 담아서
개울로 강으로 바다로 나와 주소를 적어서 배를 띄우고 있었습니다.
 
제 목 : [파람11]씨앗을 심는이 피안의 입구에서 노인을 만나다
시 간 : 2004-01-27 오전 11:47:51
 
수십 년이 된 지도첩을 갖고 다니면서 씨앗을 심어가던
그의 여행 속에 세가지 만남이 준비되다.
첫번째
이름도 지워진 어는 길목에서
짤리어 지워져 간 그 표시점 곁에
다시 새로운 씨앗을 심으며
인간종이 만들어가는 변형에 대해서 생각한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는데
문득 어디서왔는지
한 노인이 넌지시 곁에 서서 바라보고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물어보기에
자신의 일을 얘기했다.
관심가지시며
지도첩을 쳐다보고
부드럽지만 지도첩의 일부를 보여드리며
그속에 적히고 중첩되어 기록된
나만의 부호와 메모들을 설명해드린다.
노인이 차한 잔을 권했다.
감사드리며 마셨다.
삶의 희노애락일랑 온화로 지우고
자신에게 어느 언덕등정 모서리에서
작은 언덕 아래를 내려보며
쥐어준 물한 모금.
새로운 나무의 씨앗하나가 그 노인의 곁에
동행자처럼 심어졌고
씨앗을 심는 이는
다음장의 지도첩을 넘기면서
다음 장소를 황급히 찾아 생각하였다.
언덕을 내려올 때
노인곁에 방금 전 자신이 심은 씨앗이
싹을 띄우고 새로운 줄기를 일궈냄을
착시처럼 바라보았다.
 
 
제 목 : [파람11]상무대의 주부 ,증언자의 기록하나 을 접하다
시 간 : 2004-01-27 오전 11:55:24
 
상무대 연병장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왔다.
상무대에도 보호실이 없어서 우리를 연병장에 세워둔 채
커다란 막사를 순식간에 짓고 우리를 그 안에 수용하였다.
광주경찰서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줄지어 들어갔다.
전등불이 대낮처럼 밝게 비치고, 문이라고는 출입문 하나밖에 없는 곳이었다.
우리를 세 명의 조사관이 일렬횡대로 세워놓고는 소지품을 모두 꺼내라고 했다.
나는 현금을 얼마간 지니고 있어서 다른 소지품과 함께 돈도 꺼내 놨다.
그러자 "이 새끼야! 누가 돈까지 내놓으라고 했어!!" 하며 워커 신은 발로 걷어찼다.
혼자서 일어서지 못하고 꾸물거리자 제 놈들이 세워주더니 악을 썼다.
"돈 집어 넣어, 이 새끼야!"
"소지품 내놓으라니까 내놓은 것 아니오."
"이 새끼가 어디서 이유를 달아"
하면서 조인트를 먹였다. 소지품 조사를 끝낸 후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뒷짐 지고 무릎 꿇고 머리는 처박은 상태로 계속 있어야 했다.
사람 몸이 뜨겁다는 것을 그때 정말 절실히 느꼈다.
앞 쪽은 그래도 머리가 있으니 괜찮지만 양 옆과 뒤에서
서로 몸이 닿기만 하면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열이 전해져 왔다.
공기 구멍하나 없이 찜통 같은 막사에 맞아서 열나는 사람들을 그렇게 붙여 놨으니...
그곳에 수용된 후부터는 시간관념이 없어져 버렸다.
화장실 갈 때에나 물이 필요할 때는 손을 들어 의사표시를 했다.
그 외에는 고개조차 쳐들 수가 없어서 3일간이나 수용되어 있었지만
함께 갇힌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손을 들고 용무를 말하면 물은 놈들이 컵에 따라다 손에 쥐어주면
고개 숙인 채 받아 마셔야 하고 화장실엔 안대를 하고 끌려가 일을 봐야 했다.
화장실에서는 좌로 몇 발, 우로 몇 발, 원위치하고 말해주는 대로 움직여 일을 보는데
이때 3분의 시간을 초과하면 요령 피운다고 수 없이 두들겨 맞았다.
용변도 시간에 맞춰서 보고, 보고 난 후에는 신호를 보내 되돌아왔다.
그때 내 옆에 쉰여 섯 살 된 노인이 있었는데,
시내에서 팔이 부러져 사과궤짝으로 시민들이 응급치료만 해준 상태로 잡혀왔다고 했다.
그분은 열과 통증을 못 이겨 실신해서 밖으로 데려갔는데 치료나 제대로 받았는지 모르겠다.
19일 오후부터 한 명씩 불러내어 집에 편지를 쓰도록 했다.
친구집에 갇혀 잘 있으니 걱정 말라는 내용으로 집주소를 정확히 기재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학생이나 사상자를 색출하기 위한 신원조회였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내가 그곳에서 보낸 편지를 받았느냐고 확인해 봤지만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그날 밤부터 사람들을 몇 명씩 빼내가는 일이 생겼다.
발소리가 들린 다음 부스럭거리고, 그런 다음에는 자리가 점차로 넓어졌다.
내 옆에서도 한 사람이 빠져나갔다.
그 순간 심장이 방망이질 하듯 뛰고 머리 끝이 쭈삣쭈삣 섰다.
만약 그때 불려 나가 그들이 위협하면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상관없이 모든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동안 식사도 못 하고 땀도 많이 흘렸지만,
더욱이 온몸의 진이 다 빠져 머리카락이 엉겨붙을 정도였다.
하나 둘 사람을 빼내간 후 틈이 생기면 대열 정비를 다시 하고 또 다그치곤 했다.
(증언자 : 하용만(남)
생년월일 : 1947. 1. 20(당시 나이 33세)
직 업 : 건축업(현재 막노동)
조사일시 : 1988. 12)
 
제 목 : [파람11]씨앗을 심는이 상무지구에 이르다
시 간 : 2004-01-27 오후 12:58:51

 
상무지구는 또 하나의 주거개발지역으로
산과 들의 모습으로 있던 곳이
대규모 고층 아파트촌으로 바뀌었다.
씨앗을 심는 이의 지도 속에 담겨있던 불암산 밑과
정발산아래 같이 이곳도
그가 심어서 자라던 언덕과 동산의 나무들이
일률적으로 잘리워진 후에 그곳에 전원도시라는 이름의
주택가가 들어선 곳이다.
재개발되면서 상무지구엔 아파트 단지 옆 골프장 바로 곁에
상무대란 기념공간이 섰다.
그리고 영화촬영세트처럼 만든
상무대 영창과 법정 내무반과 기념관이 생겨났다.
씨앗을 심는 이의 지도에 표시된 나무등걸은
측적결과 상무대 법정 건물 입구간판쪽 조성화단
바로 1미터 앞에 있엇다.
지워진 그곳에 그 나무등걸의 흔적과
그의 생명잔여를 찾아서 그를 보살피고 그 곁에
또 하나 새로운 씨앗을 심었다..
그리곤 열린 조그마한 입구를 통해서
법정엘 들어가보았다.
그리고 피의자대기실.
누군가 금새 지나간 듯
작은 탁자 위에 꽃병 그리고 촛불이 놓여있다.
그리고 그곳을 스쳐간 하나사람의 온기어린 흔적도..
 

2004년1월 열 번째 그리고 열한 번째 피안의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 
http://yegie.com/param11/page_01.htm
 
 파람 연작 10,11은 2003년5월에서 2006년4월까지
그 벗을 잃어 버린 파람의 공간에서 다가온 세사람이 있어서
문득 제안하고 이어본 두 편의 작업.
1월13일과 27일 두 번의 공연을 위한 날짜와 공연장을 정하고
이 작업의 동행을 호기심어리게 다가와준 세사람과 함꼐하면서
지난연작의 인물들을 다시 생존시키고
그 다가온 이들이 그릴 수 있는 새로운 인물들을 만들어
피안의 길목에 놓아보는 작업형식을 택했습니다.
나무를 심고 싶어하는 이와 점자책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를
피안의 길목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배치하고
그들의 일상의 얘기가 파람의 도달치만큼에서 각기 생성 시켜져
기존의 인물들과 오버랩되고
희망이란 결론으로 매듭지어보았던 시간.
파람의 인물들이 그들이 피안으로 걷고 잇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듯이
이승의 삶 속에서 제각기의 일상그대로 걷고 있어서
그렇게 피안인 모습.
모처럼의 동행이 성산역(월드컵 경기장역)광장에서 낮과 밤
하루를 살다가 떠났습니다.
파람10,11부연작은 그렇게 우연처럼 다가왔다가 기약없이 헤어져
다시 파람의 화두는 2006년4월까지 2년3개월간 그 만남을 멈춘 채
그렇게 머물렀습니다.
그리움만 하염없이 안은 채 수많은 인물들이 생명을 숨기고
겨울잠을 자듯 우리곁에서 떠나간 이별의 시간이 그렇게 흐르면서.
2012년 12월 25일 화요일오후 6:36:19..
 
2013년 첫공연 언덕,이 편에서07-다시 공연길에
(이름없는공연2013프로젝트)하조대
 
2013년 첫공연으로 동해 하조대 바닷가 일출즈음에 다가가서
이 시기에 이어가야할 길 그리고 새로이 담을 화두.
피안의 길목에서 돌아와 다시 걷기 시작한 회향길
언덕,이 편에서.
2012년의 여섯 번의 연작작업만으로 머무른 그 얘기들을 이어
혼합된 흐름 안에서 씨줄 날줄의 교차점에서 시작합니다.
버즘나무처럼의 마지막부분 다시 공연길에의 그 대본을 다시
공연 안에 담았습니다.
"벗이 찾아왔습니다.하늘에서.
그의 손길을 따라 다시 유랑을 떠납니다.
버즘나무처럼 존재함으로서 존재의 의미에 올바르게 답하기 위해서".
한점 의혹없는 기다림
56억 7천만년의 기다림.
한점 동해
아크로폴리스계단에서 처럼
그리고 겨울여행 등으로 이어져온 이야기들을 돌이켜보는 회상으로.
새벽바다 얼어붙은 바위섬 그리고 하염없는 파도 앞에서
인간으로 살고 진 이승.
성체등을 들고 거닐 듯,
성수를 뿌리듯 이제 또 찾아 가야할 곳
아무도 관심주어주지 않는 생명과 자연 삼라만상 곁에
사람하나로서 곁에 다가가 감싸 안으며
소리죽여 눈물지어야 할 존재의 의무로..
2013년 1월 8일 화요일오후 6:29:03
 
 
 
차안의 복기 인간력 2018년 가을에
 
차안의 복기, 영산호 금호로 떠나며 필요한 것은
그곳이 강이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그 때 그곳에 살았던 생명 무생명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지 않으며
...
주신 만큼만 가지면 살았던 인간의 시간과의 만남 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과의 만남.
그러나 볼 수 있을 것이므로 기대하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려 죄악의 동족이
탐라로 다가가는 뭍사람처럼
꽝남성으로 찾아가는 따이한처럼
연결된 시간 만큼의 원죄와 살아온 만큼의 죄를 갖고
용서도 빌 것 없이
존재의 이유에 합당한 도리만을 찾아서 떠납니다.
인간력 2018년 9월-10월 가을.
그곳이 강이었을 때
그리고 바다로 만나던 길 인간에 의해
호수가 되고 숨길이 막힌 후
하루 한 곳씩 몇 년 전 답사했던 그 곳을 목적지로
아무도 모를 얘기를 갖고 연관없이 보이는 그곳에서
피안의 입구 다다라 다시 돌아온 사람들의 작은 마음을
생각합니다.
만날 수 있다면
그래서 무언의 얘기라도 들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2018년 9월 5일 수요일오전 9:08:26
 
   
 
함께 할 이승에서의 벗이 계시다면 같이 갑시다.
시천에서 낙동강하구까지로 시작해서 강과 기도 ,이 별에서,이별의 서 그리고 차안의 복기 까지
순례하며 공연했던 그 시간들을 돌려 인간력 2018년가을에 다가갈 수 있는 만큼까지만 이라는 작은
염원으로 이제는 볼 수 없는 강으로 갑니다.
영산호와 금호따라 인간이 존재해서 사라져 버린 순리를 찾아서 죄스러운 마음과
돌이켜 지켜드리고 싶은 가슴으로 ..
9월과 10월에 함께 갈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그분과 같이 걷는 하루를 보태서
그저 물이 들 오면 들 온대로 나가면 나간대로 지구공자전의 순리따라
뭍생명과 같이 살며 지던 차안에서의 시간들을  피안 다녀오는 길목에서 죄스러이 복기하면서.
 
광주에서 출발해서 강이라 불렸던 영산강과 금강변 어디라도 한곳 드문드문 내려 앉아서
작은 나무 집 하나 짓고 강변살던 그 모습 그려볼 분 계시다면 같이 갑시다.
일정 잡아주시면 동행하고 싶습니다.
아니면 못내 홀로 느린 걸음 돌아올 시간에 억매여 미루며 다시 한점되어..
2018년 9월 5일 수요일오전 09:47:34
 
 
화요 평화를 그리는 이름 없는 영화관 (9월11일-11월13일 저녁 광주역 육교)
 
아무도 청하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 핑계로 열지 못했던
평화를 그리는 이름없는 영화관
꿈을 찍던 사진관처럼 그냥 그저 홀로 그렇게 아무도 모르더라도 아무도 관심짓지 않더라도
그들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서 준비하고 나누면 될 이야기.
2018년가을에 그 영화관을 다시 엽니다.
마지막 영화관처럼 매주 화요일 .
그리고 광주 푸른 길 시작점에서 조금 옮겨진 광주역 육교 아래서.
주변에 인가가 없어서 초저녁 잠 드시는 노인에서 피해없게
자동차들이 달리는 길목이어서
이 영화관의 영화음향이 주행과 도보길에 방해 안되게..
9월 둘째주부터 11월둘째주까지 10회에 걸쳐서.
우리가 준비하고 만들었던 평화의 시간 그 흔적들을 모아서.
2018년 9월 5일 수요일오전 10: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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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