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music-in 현경과 영애-아름다운사람
(여자의 집.떠나는 날 아침 아이와 남편과 인사하며 촬영여행을 준비한다)
사람들. 원래 하나였던 우리가 이렇게 여러 개의 모습으로 태어나 살아간다.
아름다운 진화를 위해 시차를 두고 고향을 떠나오던 그날, 그날 그곳에서의
우리들의 모습과 마음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말야.. 사실 우린 얼마나 자기영혼의
실체를 기억하고 있을까?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으로 다가와 가져보는 이
시간 동안 원래 하나였던 우리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너와
나 혹은 우리와 남으로 다시 만나는 이 순간 안에서. 고향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려 존재의 의미도 잊어버린 우리들, 회귀의 그날 전에 미리 기억하고
잊지 않음으로서 더 많이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는 없을까?
8.
(여자. 기차역. 광주행 표를 사들고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광주로의 동행을 마지막으로 권유하고 불확실한 대답을 들으며 전화를
끊는다.)
인식하거나 기억하지도 못하는 우리들의 행동과 삶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 앞에 [잊지 마세요]란 말을 건넨다는 것은 정말 무리한 일일지도
몰라. 작업을 준비하면서 세상을 보다 가까이서 바라보고 사람들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처참하리만치 외로운 이의 독백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이 작업은 처음부터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는 실패작이 될 거란 걸 알아.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준비하고 실천할 수밖에 없는 말 한마디는 잊지 마세요
하는 그 말 한 마디야 . 하긴 그들이 비록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들리지
않게 얘기할 뿐이지만.
9. (순례자-아침에 방에서 일어나 짐을
챙긴다) 아주 오래 전 아니 어제였을까? 어느 조그마한 마을 우린
그곳을 돈암동 혹은 [51817]이라고 부르기도 했어.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
그 사람들은 어디서 그 사랑을 이어가고 있을까? 기억하고 있을까? 안타까워서
기억하세요 하고 말해보려 하지만 그 말을 들어줄 여유도 없이 슬픈 모습으로
자아에 빠져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비참한 욕구에 침몰된 기억잃은
영혼들. 그래서 다시 그리움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잊지마세요 하고 속삭여라도
보고 싶어.
(여자. 광주 도착. 버스 정류장에서 첫 번째 목표지로 가기
위한 버스편을 찾는다. 옆의 사람에게 물어 확인한다.)
사람들은
늘 자신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하고픈 것 안에서 사랑이나 선을 찾곤하지.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은 사랑하고 픈 것만 사랑하며 행동하고 픈 것만 행동해.
그래서 자신의 이기심의 전제 안에서 사랑하고 봉사하지. 하지만 선이나
의를 위해 자기를 버리지는 못한다 해도 그 조그마한 이기적 사랑의 불씨가
영혼을 기억하는 시작은 될거야.
(여자,전시회가 열리는 곳을 촬영한다.
또 다른 행사장으로 계속 이동하며 촬영을 한다) (순례자-길을 걷다가 경복궁에
도착 입장권을 사서 궁내로 들어가 명성황후 조난지에서 분향한다.)
(여자.광주의 다른 행사장을 찍는다. 지친 모습으로 잠시 쉰다. 전화를
걸어 다른 행사장의 일정을 확인하고 이동로를 재조정 하기도 한다.) (순례자-길을
걷다가 어느 조그만한 간이역에 도착 팻말을 발견 헌화하고 선배에게 전화를
한다.)
10. 우리는 살아가면서 꿈처럼 현실을, 현실을 꿈처럼
인식하는 존재들이야. 하지만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본질적 원소가 영혼임을
알지 못하고 심신의 조각들을 본질로 착각하며 살고 있는거야. 그래서
모든 영혼들의 귀한 본질을 기억하지 못하고 3차원적 공간 안에서 보고
듣는 것에 급급해 이기적인 행복만을 추구하지.
(여자,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광주에서는 생각보다 얻어 갈 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는 푸념섞인
내용이다. 온 김에 순애 언니를 찾아보아야 겠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들이 떠나온 하늘에 대하여]처럼 이 작업은 우리가 뿌연 창을 통해 바라보는
불순함과 어리석음을 문을 열어 바로 바라보는 훈련이며 시각의 전환이
되었으면 해. 눈으로 보던 것을 눈을 감고 보고 귀로 듣던 것을 귀를
막고 들으며 정신이라는 뇌세포로 인지하던 것을 영혼으로 인지하는
작업의 징검 다리 작업이었으면 하고 말야..
11. (여자,방송국에서
사람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애 언니를 찾아보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다) (순례자-지리산 피아골에 도착한다. 담배 한 개피..)
(방송 카메라 앞에서의 여자의 인터뷰) 여자- 김순애 씨를 찾고 있어요.
헤어진 건 아마 76년도 였던 것 같고 ..그때 순애 언니가 열 여덟 전 열네살이었어요.
노동하시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저희 칠 남매만 남아 정임 언니랑
오도가도 못하고 방을 구하러 다닐 때 저희를 보살펴준 언니예요.
정임언니랑 저희 동생들을 보고 아무도 방을 내주지 않고 문전박대할 때
순애 언니가 우연히 저희보고 자기 집에라도 가서 같이 지내자고 해서 상계동으로
가게되엇어요. 불암산 밑에 재현국민학교쪽 작은 문방구가 있었고 그 뒤
쪽에 판자집이었는데 단칸방에서 구로동 공장엘 출퇴근하는 언니였어요.
마침 주인이 없이 세들어 사는 방이어서 주인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지만
그 조그마한 방에 혼자살기도 불편한데 싫은 표정하나도 안보이고 우리남매
일곱을 모두 한방에 데려가 그 겨울을 났어요. 막내가 네 살이었어요.
맏인 정임 언니는 순애 언니 소개로 공장엘 나갔지만 그래도 여덟식구의
생활이란 게 늘 부족한데 순애 언니는 자기 먹을 것은 챙기지도 않고 우리동생들만
주고 .. 동생들이 춥다고 이불싸움하다 저나 정임 언니한테 야단이라도
맞아 울면 순애 언니가 나서서 먼저 덮어주고 아랫목에 뉘우며 언니랑 저를
야단쳤어요. 네..넷째동생이 집 앞 가게에서 빵을 훔쳐먹다가 주인아저씨에게
잡혀서 집에까지 온적이 있었어요. 정임 언니는 없었고 저는 무서워서
나가지도 못하고 숨어버렸는데, 마침 아파서 공장엘 못가고 쉬고 있던 순애
언니가 달려나가 아저씨에게 죄송하다고 비는 거예요. 그리고 들어와서는
내가 울고 있는 걸보고 같이 막 울쟎아요. 넷째 동생에겐 한마디 야단도
안치시구.. 그저 너희같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만
말하면서...
정임 언니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어요. 25년동안 상계동에서의
그 겨울을 잊지 못하고 늘 순애 언니 얘길 했어요. 꼭 찾아서 은혜를
갚아야 한다구.. 아님 다른 사람에게라도 꼭 언니의 은혜는 보답해야 된다고..
20년전엔가 우연히 광주에서 부딪겼는데 그저 눈인사만 하고서 가시더래요.
정임 언니 이름은 기억하실거예요. 키가 적었고 좀 통통한 편이였어요.
(여자-방송촬영을 마친다)
12. (언덕 위의 바보라는 이름의
카페. 카페 주인-오늘 하루 사용할 물건과 물품들을 준비하고 챙긴 쇼핑백을
두 손에 들고 카페에 들어선다. 준비해온 물품들을 꺼내어 정리한다.)
나는 이 작업에서 우주에 공존하며 별을 가꾸고 있던 모든 영혼들이
이 지구에서 서로 자신을 기억하고 회상할 수 있는 영혼의 시선이
교차되길 노력해. 그러면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던 3차원적 갈등과 선입견
고통과 욕심 그리고 편애와 미움이 모두 한갓 부질없는 찰나임을 발견케될
것이니까. 그리고 그 것을 기억함으로 인해서 외모나 선입견으로 미워하거나
아니면 동정하거나 사랑하던 단순한 미물로서의 가슴들이 열릴거구.
우리가 왜 사랑하여야 하며 왜 이 짧은 순간의 여행에서 자신을 버리고
공동체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의미를 알게 될 거야.
(여자,다시
광주촬영은 계속된다. 망월동으로 가는 길목에 다다르면 문득 언니로부터
들은 카페가 생각이 난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그 카페를 묻기 시작한다.)
(순례자-공주 우금치에 다다른다. 편지를 쓰고 소지한다) (카페 주인-준비해온
물품들을 꺼내어 정리한다. 테이블 위에 작은 인형 몇 개와 엽서 약간..
다른 한켠엔 안개꽃 한다발을 병에다 꽂는다)
오늘 이 작업을 통해 우리들 중 몇 사람만이라도
이제까지의 왜곡된 오감을 던져 버리고
모두 다 하늘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영혼임을
발견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우리가 알고잇는 현실이 꿈이고
꿈이라 믿어온 영혼의 세계가 바로
그들과 내가 떠나온 하늘,즉 현실임을 어렴풋이나마
감각하게 되었으면 좋겠어.
보이는 사람만 볼 것이며
들을 수 있는 사람만 들을 수 있을거야.
편견이 자신을 감싸고 있다면 그 벽으로
인해 영혼을 보지 못하거나
아니면 못보고도 보았다고 거짓말을 하겠지.
우린 아마 착각하는 현실처럼 진실을 시시각각으로
공유할 순 없을거야.
우리가 떠나오던 날
우린 이 여행의 짐을 꾸리면서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고자 미물적 속성을
즐겨 짊어졌고
그 순간에 우린 이미 회상의 능력을 소실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인간의 능력안에 담긴 영혼의 존재는
죽음이 없는 우주 안에서
기억할 사랑마져 벗어두고 온 것은 아닐테니까.
14.카페 언덕 위의 바보 사람들은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하기에 익숙해서 모두를 사랑하지는 못해.
내가 만든 우리 안에 또래나 동아리를 만들고 가족의 개념 마져도 벽의
개념으로 사용해. 우리라는 개념이 만들어질 때마다 가족이라는 개념을
만들 때마다 하나 하나의 단절의 벽을 쌓고 있는 것같아. 나의 가족이란
말은 곧 남의 가족이란 말을 만들고 우리라는 말 역시 우리 아닌 남들이란
말을 만들어 .
(여자,금남로까페에서 얘기들은 망월동 입구 카페 언덕
위의 바보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카페의 주인과 순애 언니에 대한 얘길 나눈다.)
그러다 테이블 곁에 놓여있던 한 사람의 편지를 꺼내주고 여자 그것을 읽는다.)
광주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고맙네요. 모두들 말로는 관심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게 부담이었든, 혹은 잘못됐다는 비판에서든.. 어쨌든
광주는 외롭습니다. 그 책임이 일차적으로는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있겠지요.
그러나 그 책임의 일부는 그런 광주를 비판하는 방관자들에게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외골수로만 가는 광주를 비판만 하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그 아픔 속에 함께 하는 자세로 설득하려는
노력은 없습니다. 문제는 애정이죠. 애정이 있으면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광주를 포위하고
있는 이 철벽같은 장벽을 허물어 뜨릴려고 하면 할수록 이 벽은 마치
늪에 빠진 물체가 허우적 거릴수록 더욱 빠져들듯 두터워짐을... 마침내
구경꾼은 늪에 빠진 생명체를 구하기를 포기하면서... 나로선 어쩔 수 없었어....이렇게
말합니다...... 80년 5월에도 그랬죠? 아마? 정말이지 광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이란 .... 무슨 천형을 짊어지고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깊습니다.
때로는 광주에서도 [에이 언제 우리가 남한테 기대고 살았냐... 우리끼리
올바르면 됐지....] 이런 식의 반응이 주류를 형성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입장에 반대합니다. 우리 스스로 정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5월항쟁기간에 느꼈던 고립으로부터 오는 공포감에서
여전히 헤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6년전 오늘 광주는 작은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나중에야 어찌 될망정 우린 계엄군의 퇴각을 환호했습니다.
나는 도청에 들어가서 붙잡혀온 공수부대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생각 같아선 그냥 그 자리에서 총살이라도 시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때 우린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선 안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성난 군중들은 그를 제물로 삼기를 원했지만 만류했고,
투쟁의 대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판 처음 만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무장한 채였죠. 해방기간 동안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항상 우린 고립감에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서 고립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공포의 실체를 맛보았습니다.
물론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닫고...... 책 속에서
만나는 공포가 아닌 우리 앞에 가로놓인 공포감은 대단히 실질적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파멸될 수도 있고, 모든게 한꺼번에 끝나버릴 수도 있는...
16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보면 참, 역사란 무심한 거구나 싶습니다. 진실은
왜곡되고...심지어는 희화화되고.... 광주의 진실은 빛이 바래고 이제 누구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 그런 흉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원합니다.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재미를
원하고, 뚜렷한 논리적인 상징을 원하고...그런 식으로 투쟁의 진실은 형해화되고....
이제 모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80년 5월 고립된 광주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다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십 수년간을 그 문제에 매달려왔습니다.
고립은 공포다.... 어떻게든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그건 우리에게
논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 점에서 저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내부건 외부건 결과적으로 고립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제게 정의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고립을 해소시켜줄
수 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정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정의가 그 자체로서 외롭고 고립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저는
언제라도 변절? 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래만에 ...이런 저런 문제를
생각해보는 군요. 예기 님의 끊임없는 진지함에 이끌려 새삼 이런 상념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music in - 김민기 아름다운사람
(둘의 얘기가 계속되고 여자는 카페 주인을 카메라에 담는다.인터뷰)
나는 소외가 투쟁적 또래의식을 만들어온 사회적구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다소간의 어려움을 느끼곤 해 . 하나라는 개념이 확대되어 정말 하나라는
안에 모든 것을 넣지 못하면 그건 둘 혹은 그이상의 개념과 상통하고 결국은
적개나 경쟁 혹은 소외를 만들거든. 가족공동체란 말의 의미를 생각해 봤어.
그것은 우리 가족 너희 가족이란 개념이 아닌 생명체 모두가 하나의 가족개념을
갖는걸 말하지.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가족이란 것이 편애나 그로 인한 슬픔을
자제하게 되고 그것이 간혹은 냉정으로 오해받을 수 도 있을 것 같아.
마치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면 그 여우와 다른 여우를 구분하게 되어
모든 여우를 사랑할 수 없게 되는 모순 안에서 미처 만나지 않은 모든 여우마저
가족공동체로 사랑하려 할 때 길들여진 여우가 오히려 사랑의 소외를 느끼는
그런거지.
(뒤편으로 제주로 향하는 순례자 (그리고 제주에서
4.3의 넋과 만나 준비한 마음을 풀어놓는 순례자의 모습)
우리가 이제
살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서로를 마주할 때 욕정의 재물인 심신의 오감으로
보지 않고 본연의 영혼을 만나는 훈련이야. 일상의 사람들은 마치 씬레드라인에
나오는 전장 속 군인들의 모습과도 같아. 고향을 그리면서도 늘 고향과
멀어져가는거야. 그들의 영혼은 과연 기억잃은 자신의 육신을 어떻게 다시
만날까? 하지만 가끔씩은 외쳐봤으면 좋겠어 [잘 지내고 계신가요?]
마치 와타나베히로꼬처럼.
(여자,누군가 준비해 놓은 제대 앞으로 가
향을 피우고 광주를 떠날 채비를 한다.)
원래는 하나였던 우리의 그
큰 영혼의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내게 반문하고 내 마음과는 너무도
다른 또다른 나를 인간 안에서 바라보는거야. 어쩌면 같은 영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상대를 죽이는 씬레드라인의 우리들의 모습처럼
시간의 공존 속에서 단지 역사라고 오판하는 우리의 망각을 보면서 기억하고
계신가요 기억하세요 이렇게 말하는거야 그리곤 마지막으로 잊지 마세요
우리가 떠나온 하늘에 대하여 하고 말야.
(까페언덕위의바보에 노래하는
이 나와서 노래한다)
music3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in -out
행복했어, 고마웠어, 나 지금 너에게 미안해 하고 있어 그토록
아름다웠던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리 멀리 있어도 지금 빛나는
저 별처럼 Chorus) I Will Give You Everything Your Heart Wishes For
To Tee Day We All Go, I Just Want You To Know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인걸 아주 가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 바보처럼 날 사랑해줬던 널 보고 싶어라 너의 환한
미소 어쩌다 내가 아프면 나보다 더 아파했었던 내 친구 Chorus)
I Will Give You Everything Your Heart Wishes For To Tee Day 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