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의 홀로 연습은
자작연출의 모노드라마에서만 가능하며 [파람]처럼 작가와 연출이 있는
두명이상의 연기자가 출연하는 공연에는 연출과의 미팅없이 혼자서만의
자기배역분석은 공연의 색감을 전혀 다르게 거리를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대개의 예플 공연이 그러하듯 연출과의 연습미팅없이
그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물을 구축하거나 연습과정을 통해서 구축한
설정의 한도 안에서의 인물구축작업이 아닌 개별적 생각만의 연기자의
홀로 작업은 이 공연을 더욱 어렵게 하는 부분이 되기도 합니다.
좋은 방법은 연출과의 미팅을 통해 작업을 한후 그 진도
안에서 작업을 진행시키고 새로운 생각이나 지문 ,혹은 인물분석의 의문이
생길 경우는 다시 연출과의 미팅을 통해서 전체작업 안에서의 인물형성범위를
찾은 후 다시 연습을 하고 작업노트를 통해 그것을 정리해 나가는 방식을
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 시인의 인물분석은 그가 피안의 길목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대전제에서 벗어나지는 않게 하여야 하며
지독한 자기 낯춤과 무아에까지 이른 자기버림의 인물만을 공연 안에
담기로한 파람의 기본설정에 어긋나는 이기심이나 자기표현욕구를 0.1%라도
가진 인물은 아닌가 하는 면에선 다소 어긋남이 있어 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파람의 인물들은 그저 선한 사람을
등장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파람에 이른 사람의 진정한 면모를 찾아내는
작업이며 그렇지 않은 면이 약간이라도 의심되면 그 인물은 이 작업에
걸맞지 않으므로 재구성을 해야 합니다. .
[파람1]익산 촛불 집회 사람들이 모여있다. 2003/01/19 오후 12:18:05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리고 그들이 촛불을
들고 서로 다른 속에서도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향한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몸과 시간을 바쳐서 하나되기 위해 까아만 정적 위에 촛불을 태운다.
도시.아스팔트와 회색건물들의 거리. 피안의 길목에서
마주한 인간의 모습 중엔 그 촛불을 든 사람들 속의 누군가의 시공간이 있다.
세상의 3차원적 공간 안에서 차원을 더해서 보이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피안의 도달치의 어느 부분에 이른 사람들의 모습이다.
[파람01]은 그 시공간 안에서 공연된다. 맨틀이 거리에
다시 하나하나 놓고 애처롭게 가다듬어가는 사진들 속에 그 다른 차원의
촛불을 든 사람들의 무리가 있다.
냇골 뱃사공도 오늘은 같은 시간 그곳에 촛불을 켠다.
그리고 파람의 길목에서 물한 모금을 얻어먹고 돌아서서 광대가 되었던 한
사람도 아스팔트 거리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 턱 어딘가에 앉아서 등을
밝힌다.
누군가 사람이 더 있다면 그 역시 자신의 하던 일을
멈추고 시공을 초월한 평화를 기리는 같은 시공간에서 촛불을 켠다.
[파람01]은 진정 타인만을 위한 자기희생으로 절대순수의
가슴만으로 그렇게 촛불을 켜는 사람들의 시공간을 익산 촛불 집회
현장에 놓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