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파람6]전쟁 속의 사람들.. 2003-03-15 오후 2:13:30 마일연극의날 코파스참가작으로 [파람6]을 준비하며 주제인
반전과 평화에 연결되는 인물들을 찾는다. 전쟁은 어차피 강렬하고 어차피
소모적이다. 사랑은 결핍되고 미움과 욕심만이 그윽하며 정의과 복수와
응징과 방어등의 편리한 말로서 죄악이 점철된다. 파람6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장속에서 만나는 인물들로 집약하고 그 인물들은 전쟁과 정반되된 인물의
심성과 영혼의 실천을 구체화하는작업들로 전쟁의공간에 서있게 한다.
피안의 길목에서 만날 그들은 전쟁의 공간안에서 다차원적
이미지로 존재한다. 몇명의 연기자가 이 작업에 참여할수잇을지 무엇을
생각하며 반전과 평화의 단어를 힘겹게 가슴안에 담고 살고잇을지 알수없으나
그들로 하여금 세상의 공간안에 우리인간이 만들어내고 또 반대하는 역설적
상황을 배치한다.
전쟁속의 사람들..은 전쟁이 있는곳에서 전쟁박의 사람들을
표현하고 그들의 차원이 중첩된 행동을 그려가는 이미지극이다.
선을 위해서 악을 죽이면 그것이 선일까? 나의 선을
위해 내가 악이라 지칭한 어떤것을 가해하면 나의 선은 진정 누구에게도
선일까?
[파람6]전쟁속의 사람들 ..파람연작안에서
만나는 2003-03-18 오전
9:36:33 파람은 피안의 산스크리토어 원어로서
열반 극락 천국 등의 종교용어와도 흡사하지만 종교이전에 생긴 언어로서
그저 우리가 인간의 도리로서 이르러야할 이승의 저편같은 둔덕너머를 뜻합니다.
예기플라타너스는 2003년 이 파람의 제목으로 연작하여 한편의
공연을 완성하며 100인이상의 등장인물들을 찾아갑니다 전쟁속의 사람들도
피안의 길목에서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파람의 입구에까지 다다른후 그곳에 들어가지않고
지금처럼 계속 존재의 도리를 다하는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파람은 연작으로 만들어지며 그 연작의 영상을 담아서 다시
하나의 영화로 마무리지어집니다.
피안의 문앞에 이르러서 물한모금 마시고 다시 돌아와
꽃처럼 존재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자신이 그곳에 이르럿을때 만나본 피안의 인물이 되어
그 얘길 형상화시켜 들려주는 작업.
파람6-전쟁속의 사람들에 참여하는 공연자들도 이 작업의
화두와 흐름을 이해하면서
참여하길 기대해봅니다.
침략전쟁에 스스로 동참하는 이 나라의
참담한 국민이 되어.. 2003-03-20
오전 1:06:02 침략전쟁에 스스로 동참하는 이
나라의 참담한 국민이 되어. 이 이기적인 인간의 인간에 대한 죄악이 중단되길
바라며
[파람6]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2003-03-20
오전 2:24:31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http://www.wiretapmag.org/story.html?StoryID=15291
사람들은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군복을
입은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나,
총을 들고 있는 검은 콧수염을 기른 군인들이나,
알라시드 호텔 바닥에 '범죄자'라는 글씨와 함께 새겨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걸 아세요? 이라크에 살고 있는 2천400만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라는 걸.
이라크에는 1천200만 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바로
저와 같은 아이들이요. 저는 열 세 살이니까,
어떤 아이들은 저보다 나이가 좀 많을 수도 있고, 저보다
훨씬 어릴 수도 있고, 남자 아이일 수도 있고,
저처럼 붉은 머리가 아니라 갈색 머리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아이들은 바로 저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의 아이들입니다.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리 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제가 운이 좋다면, 1991년 2월 16일 바그다드의 공습 대피소에
숨어 있다가
여러분이 떨어뜨린 '스마트' 폭탄에 살해당한 300 명의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
그날 공습으로 엄청난 불길이 치솟았고, 벽에 몰려 있던
아이들과 어머니들은 형체도 없이 타 버렸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돌더미에 붙어 있는
시커먼 살조각을 떼어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운이 없다면, 바로 이 순간 바그다드의 어린이
병원의 '죽음의 병실' 에 있는
열 네 살의 알리 파이잘처럼 천천히 죽게 될 겁니다.
알리는 걸프전에서 사용한 열화 우라늄탄 때문에 악성 림프종이라는
암에 걸렸습니다.
어쩌면 저는 18개월 된 무스타파처럼 '모래파리'라는 기생충이
장기를 갉아 먹는 병에 걸려서
손을 써 볼 수도 없이, 그저 고통스럽게 죽어갈 겁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무스타파는 단돈 25달러밖에 안되는 약만
있으면 완전히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라크에 취한 경제봉쇄 때문에 이라크에는
약이 없습니다.
아니면 저는 죽는 대신, 살만 모하메드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외상을 안고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살만은 1991년 여러분이 이라크를 폭격했을 때 여동생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만의 아버지는 온 가족을 한 방에서 함께 자게 했습니다.
모두 다 살든가, 아니면 같이 죽고 싶어서. 살만은 아직도
공습 사이렌이 울리는 악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면 저는 걸프전이 벌어졌던 세 살 때 여러분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알리처럼,고아가 될 겁니다.
알리는 3년 동안 매일같이 아버지 무덤에 덮힌 먼지를 쓸어내리며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아빠, 이제 괜찮아요.
이제 여기서 나오세요. 아빠를 여기에 가둔 사람들은 다
가버렸어요”라고. 하지만 알리는 틀렸어요.
아버지를 가둔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보이니까요.
아니면 전 걸프전이 벌어져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늦게까지
밤을 샐 수 있었다고 좋아했던 루아이 마예드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루아이는 지금 학교에 갈 수 없어서 길에서 신문을
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바로 여러분의 아이들이거나, 아니면 조카나
이웃집 아이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아들이 사지가 절단되어서 고통속에 몸부림치고
있는데도, 아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도 없고 편안하게 해줄 수도 없이 그냥
무기력하기만 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딸이 무너진 건물의 돌더미에 깔려서 울부짖고
있는데, 구해줄 수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아이들이 자기 눈 앞에서 여러분이 죽는 걸 보고
나서,
굶주린 채로 혼자서 이 거리 저 거리를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건 액션 영화도 아니고, 공상 영화도 아니고, 비디오 게임도
아닙니다.
바로 이라크의 아이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최근에 한 국제 조사단이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지금,
아이들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이라크를
방문했습니다. 조사단이 만나 본 아이들 중 절반이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도 전쟁이 뭔지 알고 있고 전쟁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다섯 살 짜리 아셈에게 전쟁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셈은
전쟁이 “총과 폭탄에 날씨는 춥거나 덥고, 우리가 불에
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열 살 먹은 아에사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렇게 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이라크의 수많은 아이들이 죽을 거예요. 당신이 TV에서
아이들이 죽는 걸 보게 되면 후회할 거예요.”
저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다른 아이들과 문제가 생기면 때리거나
욕을 하지 말고,
대신에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하라고 배웠습니다.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하게 되면,
상대방 이 한 행동 때문에 자신이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제 기분을 이해하게 되면서 하던 행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그게 '나'라고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나'는 '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라크에 사는 모든 아이들처럼, '우리'는 지금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걸 속수무책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계의 다른 아이들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그 모든 결과 때문에 고통받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목소리는 너무 작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를 때 두렵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 하거나 다치게 하거나 미래를
훔치려 할 때 화가 납니다.
우리는 내일도 엄마와 아빠가 살아 있기만을 바랄 때 슬퍼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모를 때
혼란스럽습니다.
미국의 인터넷 주간지 WireTap(http://www.wiretapmag.org/)에
실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