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광주비엔날레에서 [버즘나무처럼]을
하며..
작성자 : 예플러
시 간 : 2004-10-19 오후 1:16:27
내 용 : 처음에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고해서 우선 안심은
되었었다. 내가 만나온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내가
그곳에 같이 있었기에 ...
그때 그 마음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서 [버즘나무처럼]
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그 사람들이 그리웠고 그런 사람들만 있으면 세상은
정말 평화로울텐데 하는 생각만이 들었다,
신작[버즘나무처럼]을 만들어 비엔날레에 10월초
광주를 찾았다.
우린 언제나 처럼 공연 장소를 찾아보고 될수있으면
배경이 아름다운 장소를 정하고 공연을 시작한다.
배낭을 메고 공연을 기다리며 평화바람 사람들을
바라보고 다가가서 물어도 보면서 다큐멘터리 연극은
시작된다. 한 여자가 나와서 배낭을 메고 짐을 풀어
소품을 꺼내어 놓고 옷을 갈아 입고 아무도 없는데
누구에겐가로 다가가 혼잣말을 하고 다시 옷을 갈아
입고 또 베낭을 메고 다시 걷고 앉고 다시 걸어간다.
중간 중간 여자의 목소리가 음악과 함께 깔리면서
세상에 말을 던진다.
어떤이에겐 세상 살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생소한 말일 수 있지만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대사.
스치는 대사중에 한 마디라도 가슴에 와닿는다면
그것으로 족한 공연이다.
공연전 의자에 앉아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출자는 말한다.
재미없어요 라고 미리 말해둔다.
혹시라도 재미난 구경을 원하는데 웃기지도 않고
사람 하나가 나와서 가다 서다 앉았다 하는 동작에
뭐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괜히 기다렸다 그 사람의
시간을 뺏는 것이 되니까 베엔날레에 볼거리도 많은데...
[버즘나무처럼]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경렬님이 두번을 함께 해주셨고 채플린님이 한번을
참여해주시고 경렬님은 우리를 무등산자락에 데려다
주었고 돈이 떨어진 우리에게 채플린은 맛있는 저녁을
주셨고 그 다음은 뱃속을 많이 비웠드랬고 중외공원을
떠나지않고 그곳에서 노숙을 하였다.
항쟁기간중에 광주에 내려오면 노숙도 했었고 연출자는
단식을 하였고 난 조금씩은 먹었었지만...
그랬었는데..그땐 5월이여서 거리에서 대합실에서
그래도 견딜만 했었다.
그런데 10월의 광주는 낮엔 따스했지만 밤과 새벽은
초겨울의 날씨였다.
중외공원 공연자대기실 천막이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밤중엔 공원에 나와 건강을 위해 걷는 사람들이
많아서 천막속에서 숨어들어온 사람처럼 자꾸 숨소리
마져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남편은 우리는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이니까 왜냐면
프로르램에 [예기플라타너스][버즘나무처럼]종일로
나와있었으므로.... 우린 종일 여기 있어도 되니까...
그나마 나를 자게 하려고 남편은 거의 한잠도 못자고
보초를 서주었다.
소품으로 가져간 옷이란 옷은 죄다 꺼내어 덥고 잤다.
못잔 사람도 잠을 잔 사람도 몸이 아프긴 마찬가지였다.
천막안에 모기는 얼마나 많던지 얼굴을 옷으로 덥고
있었어도 몇군데나 물렸는지 모른다.
다음날 이태건님을 만나 돈을 빌려서 남은 이틀은
궁전같은 곳에서 편히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공연은 중외공원 하고싶은 장소에서 원없이
하였다.
[버즘나무처럼]은 비엔날레에서 그렇게 마치고 돌아왔다.
공연을 집중해서 봐준 몇 사람의 팬들도 생겼고
예기플라타너스에 관심을 보여준 고마운 사람들도
있어서 사는게 좀 힘들었어도 잊을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