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다큐형식으로서의 첫작업,,(광주비엔날레초연을마치고)
작성자 : 예기
시 간 : 2004-10-19 오후 10:46:49
내 용 : 다큐형식으로서의 첫작업
버즘나무처럼은
이제껏 예기작업이 가져왔던 가설을 통한
인간의 생존에 대한 향유가 아닌
다큐로서의 작업이엇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랫듯이 예플작업은
관객을 염두에 두지않습니다.
관객은 언제나 현존하는 우리인간들의 자아를 대변하고
그래서 그들앞에 우리의 작업이 제공해드릴것은
아무것도 없기때문에
세기말부터 우린 관객과의 교류를 포기햇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리운것은
끝없는 갈망과 지워지지않는 소통의 실날같은 희망입니다.
이 실날같은 희망은 결코 대중속에서 이뤄지지않으며
삭막한 시공간에서 이뤄질겁니다.
인간이 가장 삭막하다고 하는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스쳐 반가울 것입니다.
버즘나무처럼에서 예플은 마침내
다큐로서 실존하엿습니다.
극안의 모든것은 진실이며
행하엿던 행동이며 만났던 사람들의 얘기며
실존하는 사람들의 생존과 대사만으로
그 얘길 기억하고 전달하며
그 전달을 통해서 망각하지않으려는 노력과
그노력으로 다시 실천을 지속하는 것.
즉 다큐작업은 실존으로 이어지는 기억의
연결고리로서 늦추지않고 나태해지지말아야할
의미를 자각시켜나가는
자정의 노력입니다.
광주비엔날레기간동안 총 9회의 공연을 통해서
다큐멘터리는 정화되었습니다.
낯설엇으나 이내 익숙해졋고
실존이 곧 내일의 공연안의 소재가 되는 방식은
처절할수록 즐거운 생존이었습니다.
사람을 만났으나 미처 많은 얘길 나누진 못햇습니다.
허긴 그런 애"기가 이젠 통할 세상도 아닙니다.
예기는 홀로 버즘나무란 이름으로
무자아의 세계를 찾아가고있으므로
누구에게나 흥미를 끌지못합니다.
이 세기에는 어떤 희생자도
무자아나 자기를 버린 이가 없어보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버즘나무속에선 그러한 세상에
실날처럼 살아움직이는 사람들의 얘길 찾아서
담습니다.
물론 그들이 그 다음날 다르게 살지는 모르지만
그를 만나순간 채취한 아룸다움과 귀한 순리는
하나의 기억이 되어서
절대 망각없는 인간의 이미지로 각인됩니다.
더 정진하여야하지만
정진은 버림없이는 이뤄지지못합니다.
다큐형식을 지속할수있는 작업으로
버즘나무처럼이 커가면서
가상의 그리움 [파람]연작과 만나길 바랍니다.
광주에서의 작업이 평화유랑과 제주기행을
감사의 소재로하엿듯
전주에선 광주에서의 작업까지도
포함된 사람이 다큐로 담겨지고
또다음작업엔 전주에서의 얘기가
사랑처럼 이어지는 그런 작업으로
버즘나무가 커나가길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