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궁- 중전마마, 정녕 모르고 계시옵니까? 며칠 전부터
저잣 거리에 나돌던 불순한 풍문이 사실인가 보옵니다. 이 문서는 궁내부
고문관으로 있던 오카모토란 자가 오늘 해질녘 공덕리의 아소정으로 가져왔다하옵니다.
명성황후- 모를 일이구나. 그런데 대원군 나리께서는
어찌하여 이같은 괴문서를 내게 보내셨더란 말이냐.
민영환- 중전마마, 대원이 대감이 저를 보내신 뜻은
사태가 이러하니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라심일 것이옵니다.
명성황후- 그러하면 이 문서만으로 아무런 부연도 없이
그대를 내게 보내셨더란 말이오
민영환- 그것을 주시면서 중전마마께옵서는 그 문서만으로도
충분히 대처하시리라는 말씀뿐이었습니다.
상궁- 더 이상 무얼 의심하십니까. 중전마마. 대원군께옵서는
중전마마의 목숨을 구하고자 함이 명백하지 아니하옵니까.
명성황후- 대원군께서 내 목숨을?
민영환- 그러하옵니다, 누가 뭐라 하여도 중전마마는
대원군나리의 법통을 이은 며느리시옵니다.
당신께서는 차마 며느리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 것이옵니다.
마마
명성황후- 그렇다면 대원군께서도 이제 몸도 마음도
늙으신 모양이구려. 그러시겠지요.. 아버님은 이제 그만 이 쯤에서 사가들의
붓 끝으로 당신을 숨기고 싶으시겠지요. 들으시오. 저잣 거리의 풍문이 말
그대로 바람같이 스치는 소문이기만을 바랬었소.
허나 지금에 이르러 일본인들의 불궤지심이 사실인들 어찌
하리요. 사람도 제 각각이듯이 나라 또한 저마다 내세우는 것이 다를 것이오.
하물며 그들이 어떤 자들이오 여러 번 겪어보지 않았소.
그들이 칼을 디밀기로 기왕에 마음먹었다면 땅끝까지라도 쫓아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 들 것이오.
이 나라는 힘으로야 당장에 그들과 맞설 수 없소. 사태가
그러한 지경인데 나라고 하여 언제까지 물러서기만 하리요. 그래서는 이
나라 국모의 체통이 말이 아니지요. 이 나라의 무력 이상의 더 큰 것이
있음을 그들이 어찌 알겠소? 설령 죽음에 이른다 하여도 난 두렵지 아니하리다.
맞설 것이오. 나는 그 자들이 내새우는 칼날 앞에 조선의 국모로 의연하게
맞서리라.
상궁- 중전마마 아니 되옵니다.
민영환- 중전마마 고정하시옵소서
명성황후- 아버님께도 며느리의 이런 뜻을 그대로 전해
주시오. 그렇게 말씀 올리면 아버님께서도 아마 며느리의 뜻을 해아리시리라
믿으오.
나는 이제 달리 할 일이 남았소 그만들 물러가시오
민영환- 아니 되옵니다.중전마마 마마께서 살고 있고서야
나라가 있습니다. 그렇게 짓밟혀서는 나라의 체모는 어찌 되오며 국모 잃은
만백성의 원성은 어찌 하오리까.
명성황후- 계정이 정녕 이리도 못난 위인이던가.
지금 와 한갓 목숨을 구걸코자
이리 숨고 저리 발버둥친다 하면 저들에게 이 나라의 나약함과
비열함만 구경시키는 것 아니더냐. 때로는 살아있음보다도 죽음이 더 값진
것임을 어찌하여 모른단 말이더냐. 보아라 나는 그 자들에게 백년을 씻어도
지워지지 않을 부끄러움으로 살아남을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