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이름없는共然 예기 작업노트
2021년1월1일-6월30일     2021년7월1일-12월31일
 
20년겨울광주에 이어지는 일반명사로서의 광주 21.1
 
40주기를 넘기며 알게 된
5월에서 4월까지를 한해의 주기로 연력을 짜고
남 몰래 지켜가는 이승살이.
40년 해넘이 지내고 다시 41년째 새해를 기다리는 가슴으로
회회향의 말년을 걸어갑니다.
5월연작 103,104,105번째 작품으로
2020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광주.
그 작업이어 106번째 작업의 화두는
제 눈에만 보이고 들리는
봄 기다림의 일반명사로서의 광주이야기입니다.
세상 삼라만상. 그 여정에 동행하는 인간종이
만나고 스치고 감각하며 이름지은 것들.
그 중에서 귀하게 적어보는 옳고 선하고 고귀한 것으로 분류된
보통명사 혹은 일반명사로서의 품사.
그 이름과의 동행 그리고 따르며 품어 하나되는 삶.
그저 그냥 그렇게 일상인 듯 생활 속에서
찾아 새기고 기억하며 되뇌이고 침적하는
일반명사와 함께 하기.
언제 부턴가 누구에겐 가는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가 된 광주에서 ,
다시 새해를 기다리는 2021년 겨울봄.
그 시공의 그리움갈망.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 106번째 작업..
2021년 1월 23일 토요일오후 08:12:49
 
4.3항쟁 그리고 제주양민학살사건.
 
혼용돼어 정명못한 역사
이제라도 분리해 정명하고 남은 여정 다시 순례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4.3항쟁
그리고
두 번째는 제주양민학살..
잃어 버린 이란 이름으로 잊힘을 가리고
상생이란 언어로 사죄없이 용서됀 얘기와
70년이란 시간의 흐름에도
못내 이룬 아쉬운 성찰.
뭍떠나 다가서는 이 아련한 섬에서
인간의 방식과 타협못한 소외된 마음으로
아무도 모르게
이렇게 저라도 넋들앞에 정명하고  그 정명따라 두갈래 순례길..
처음 이정표를 세우며 걷던 14처와
그 어느 곳 하나 놓을 수 없어 홀로 걷던
그해 겨울 214곳으로의 제 2 14처순례.
그리고 영실에 지고 육시우영에 심은
마지막순례이어.
4.3항쟁 그리고 제주양민학살,두 개의 정명으로.
다시 찾아 익히는 회향길 인간력 2021년에.
2021년 1월 25일 월요일오후 2:46:02
 
 
일반명사로서의 광주
40년 해 넘어 41번째 해로 가는 길.
그 첫해 누군가가 이 마을 어귀에 서서 말해줬다는
보통명사,혹은 일반명사가 된 도시 이야기.
채 못 이해한 마음그대로의 순례와 추념의 시간들을 넘어
이제 그곳에 머물고 숨쉬며
공감하는 일반명사로서의 고을.
일상에 담기고 채워진 말없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 무명의 이야기가 소리없이 전하는
인간이 찾고 이름지어 전한 아름다운 일반명사들.
그 중 하나로 중첩해서 공간과 거리가 쥐어주는 귀한 시공간.
 
이슬,나무,풀 바위,구름,비,눈,꽃,잎새,
개울,강,바다,언덕,
사랑,평화,자유,인권,통일,희생,
그리고 광주 
 
2021년 2월 18일 목요일오후 4:13:26
 
정명제주
 
곤을동 정리하며 새롭게 만들어진 마을어귀엔
4.3해원상생거욱대가 있습니다.
55년지나 2004년에 세운다고 적혀있지만
곤을동 유적터에서 해원과 상생의 굿판을 벌여 위무하며
세운 거욱대는 이것이 아닙니다..
 
그날 세운 거욱대는 또 다른 도민들에 의해서 산산조각 깨어 부셔졌고
방사탑 솟대 위 돌새는 목이 잘려진 채 10여년간 곤을동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몇해 전 비슷한 모습으로 2004년세웠던 거욱대가 다시 세워진 겁니다.
 
정명하지 못해서 세우지 못한 너분숭이 아기무덤의 비석들.
마을사람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그저 이름들만이라도 새겨두었던
행원리 4.3사건 희생자위령탑 그리고 몇몇 마을의 추모비들.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되고 2003년 정부 진상조사의 시작과 대통령의 사과로
그 아픈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던 섬나라얘기는
하지만 그 진상을 채 밝히기도 전에 곤을동 거욱대의 모습처럼 희망을 접고
해원상생이란 어휘 안에  숨어 버린...
 
2014년4월.
4.3은 정명도 없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고'
55년이어 10년간의 일쿼온 정명을 향한 노력들은 다시 서글픈 모습으로.
도민들 속에서 합의를 찾아가는 듯 합니다. 공존이란 방식과
해원과 상생이란 어휘로.
 
미워하지 말라고 모질어하지 말라고
용서받지 못할 영혼이란 없다고 노래한다는
70주년4.3희생자 추념식장에서 불려진 어느 가수의 노래가 마치
이성처럼.
 
제주엔 2014년12월부터 2년간
제주4.3반란사건이란 이름으로 정명한 지서옛터추모표지석이
새로 세워졌습니다.
함덕,대정,화북,삼양,신엄,애월,외도,세화,성산 남원 그리고 조천지서 앞에.
 
 어느해 노근리민간인학살추모제에서 광주 5.18유족회와 ,제주4.3 유족회가
동행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제주4.3유족회는 경우회분들임을 보고
의아했습니다.
 
4.3은 대부분의 학살지에 그저 슬픈역사라고만 적혀있지만
두 유족회의 화해선언후 상생의 명목 속에 4.3반란사건이란 이름으로
4월의 피해자들이 그들이 저지른 수천 배 학살의 역사와 같은 무게로
추모됩니다.
 
정명하지 못해서 잊어 버린 마을을 잃어 버린 마을로 부르고
더 이상 다투기 싫어 서로같은 피가해자가 되어 버린 듯 포기한 곳.
항쟁과 봉기 반란 그리고 학살이 뭉뚱그려져서
분단이전의 첫 통일운동이 그 숭고한 용기마져
정명되지 못한 채 타협 속에 흘러가는 70년.
 
그들의 그 깊은 마음 타인이 알 수 없고
같이 고통받지 못해서 무어라 얘기조차 할 수 없는 이방인에게
그저 어느 한갓 같은 인류의 입장에서 마음깊이 존경하며
이승 회향길에 해원하는  우리.
20여년의 순례길에 익힌 그리움으로
홀로 정명합니다.
4.3항쟁
그리고
제주양민학살.
두 개의 이야기로.
정명제주
2021년 73주기에.
 
2021년 3월 4일 목요일오후 6:25:33
627peace84평화 그 그리움으로(2007.6.27) 제주 곤을동 
 
 
 정명제주 4월공연은 잃어버린 마을들을 찾아서.
 
하논마을 ,해산이마을, 죽성마을(오등동),리생이마을 종남마을(종남밭)
자리왓(어도리),물터진골,오리튼물,
장기동 영남동
그리고 다랑쉬마을 까지.
 
정명이후 새로이 가보는 제주섬 그 두 번째 순례일정은
섬사람들이 잃어버린 마을 이라 새겨둔 표지석따라
앚혀지고 지워져가는 마을과의 70여년만의 만남으로
준비합니다.
짧은  일정  돌아서야 하는 이방인이 몇 곳이나 다가가 머물며
마음 나눌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 지워진 마을터 혹은 비워진 마을터에
조그마한 넋집이나마 지어드리고
잠시 같이 거닐거나  님들 사시는 모습 바라보며
시간을 중첩시켜
피안의 입구에서 돌아온 언덕 이 편 회회향 길에서.
 2021년 3월 22일 월요일오후 6:11:59
 
 [그해 정동길에서 ]서울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정명제주 4.3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름 없는 공연의 5월연작 107번째 작품이 될 공연.
[그해 정동길에서]를 준비합니다.
1980년5월부터 12월까지
그해 정동길에 있던 조그마한 종합일간지 편집국.
시청검열단과 편집국을 오가며
검열과 통폐합과정속에서 적어간
그해 한 문화부기자의 모습 돌이켜보는
5월과 언론사 이야기.
4월5일 서울에서 그해 그 길을 현장답사하며
5월작업을 시작합니다.
51817과 지워진 소외에 담았던 숨겼던 이야기.
25년지나 마지막 소명으로 정리해보는 작업.
혹시라도 이번 5월..
4월5일부터 5월까지 한달간.
5월27일 새벽 정기공연에 동행을 약속하고
그해 언론사 편집국 얘기를 들으며
1980년 기자들의 모습 곁에 같이 걸어볼 분 계시면
다가와 동행을 신청하셔도 좋겠습니다.
2021년 3월 22일 월요일오후 6:53:23
 
 
제주에서 만남때
5월27일 새벽 광주공연에 참가의사를 표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연습미팅없이
공연당일만 참가하실 수밖에 없는 여건이셔서
온라인으로라도
작품내용과 배역캐릭터 의견나누며 진행해 볼수 잇을지
궁금해하며 연락드립니다.
 
일단 페북 친구맺기로 연결했지만
예기 이름없는공연의 페북은
일간지방식으로
타임라인에 하루 수십개씩의 공연사진과 동영상자료들이 오르므로
작업에 관련없는 글들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친구사이를 끊고
필요하실 때만 타임라인으로 오셔서
글 보면서 답글로 소통하는방식을 택하시길 바랍니다.
5월27일 새벽 공연작품으로 만들고 잇는
이 공연작품의 제목은 [그해 정동길]입니다
관련기사를 보시며
의지로 가능하신 만큼 찾아서
질문하고 글 주시면서 작업진행해 보시길 바랍니다.
2021년 4월 10일 토요일 오후 04:17:26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 107번째 작품
그해정동길,
이 작업에 관심가지고
그 해 언론사 기자로 공연해 볼 사람이 온다면
그에게 시간을 거슬러 작업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1년간의 준비와 기다림의 과정을 거쳐 이제 마지막 한달.
시작은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전제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원제한없이 등장인물을 만듭니다.
작가를 찾는 등장인물처럼.
공연자를 찾는 등장인물로.
2021년 4월 12일 월요일오전 08:49:06
 
그해 정동길 스케치공연.
40년이 지나 그 해의 그 길을 다시 찾았습니다.
 
4월의 정동길 정오는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사람들로 활기차고
시청 지하철역 내려 덕수궁 돌담길타고 법원 앞 미대사관 서울우유 밀크홀
융화장 엠마뉴엘 국제신문 지난 신아일보 별관.
비좁은 신문사정문을 막고 선 장갑차와
예원학교옆 좁은 마당에 세워놓은 군용텐트와 게엄군.
그 비좁은 정문을 어깨를 돌려 장갑차와 부딪기며 계단을 올라 출퇴근하던
편집국.
문을 열고 들어서 왼쪽으로 들어서 체육부와 문화부책상.
반쯤 기울어 서랍조차 잘 안 열리는 찌그러진 철재책상.그리고 그것같은 철재의자.
데스크를 보고 있는 온화한 표정의 방부장 앞에  의학과학 담당기자 김차장님.
문공부출입 중견연예담당 김기자 ,출판종교담당 정기자 여성담당 김기자,
음악 외신담당 신기자 ,그리고 문학 연극담당의 저.
8면의 지면을 가진 일곱 개 종합일간지,
10.26다음날부터 12.12를 거치며 시작된 시청 안 군사검열단.
그 언론검열 체제 아래서 한자한자 검열거쳐 조판되고 연판돼서 윤전기에 돌려져 발행되던 신문.
41년전 그해.
작은 신문이어서 상대적으로 허술하고 그래서 오히려 자유로왔던 기사작성.
아무도 쓰지 못하던 진실 앞에서 검열을 거쳐 살아남은 몇 문장과 단어로
은유로라도 적어냈던 남 모를 이야기. 그 늦봄에서 초겨울 폐간까지.
40년후에 돌아와 참담한 진실을 쓸쓸함처럼 삼키며 살았던 그해 정동길을.
다시 봅니다.
잊혀진 그 시간을 회회향 길에 다가와서.
2021년 4월 12일 월요일오전 09:48:15
 
 
그해 정동길은 518 17주년 서울에서 공연한
51817의 무대 세부분 중에서 한부분인 신아일보사 편집국 모습을
기본무대로 그리고 기본텍스트로 해서 공연을 재구성합니다.
1980년5월부터 언론통폐합되던 11월까지 6개월간의 종합일간지 편집국 문화부의
모습과 그날의 기사들을 중심으로 구성햇던 초연의 대본입니다.
 
 
예기플라타너스,이름없는공연 5월연작 1.
오늘같은밤이면(51817 1부) 2부
공연대본
신영철 작 구성
5,18 민주항쟁 17주년전야제 초연:1997.5.17 여해문화공간
 
무대,전면왼쪽 신문사편집국 그 뒷쪽 흐름의 사무실
후면 오른쪽 피아노와 거리. 쇼윈도우(영상,스크린)
  
1.(뒷면흐름.34세 금준)
  
흐름의 사무실 서서히 빛이 들어오면 34세의 금준,
흐름의 사무실에 앉아있다.
방금 전화메세지를 녹음한 듯 전화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방 안을 정리한 뒤 사무실 불을 끄고 나간다.
   
2.(뒷면흐름.비어있음)
  
무대에 남는 흐름의 빈 사무실.
이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빈사무실 공간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
  
3.(거리)
  
거리에 저녁녘 빛이 들어오면
비오는 거리.
  
4.(편집국.제시)
  
편집국.
제시의 공간일까?
제시,퇴근을 준비하는 듯 책상을 정리한 후
전화를 걸어본다.   
  
5(뒷면흐름.비어있음)
  
전화벨소리
흐름의 사무실에 걸려오는 전화벨
  
자동응답기 목소리
  
금준-안녕하세요. 사무실입니다.
광주캠프참가준비로 일찍 사무실을 비웁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시면 돌아오는 대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메시지를 듣고 삐-소리가 난후 메시지를 녹음하는 제시
  
6.(편집국.제시)
  
제시-응. 나 제시야. 함께 내려가고 싶지만 올해는 이 곳에서 할 일이 있어 여기 남으려 해.
17년동안 그 분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었다던 그 부담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의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겠지.
이 작업에 참여하려는 내 행동.
공동체 안에서 소외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범하는 죄를
조금이라도 파괴시켜주는 용기가 되었으면 해.
  
제시 메시지 끝남과 동시에 흘러나오는
음악-카페에서
제시 수화기를 놓는다
  
7.(뒷면흐름.비어있음)
  
흐름의 사무실.
빈 공간의 시간의 변화.
  
8.(편집국.제시)
  
제시,편집국안을 회상하듯 거닐어보는 제시    
  
그의 목소리-
  
시시각각으로 변화되어 가는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나태해지고
선은 점차 악이나 고루함으로 되어져 가는 것 같아.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선에 대해 고민하거나 그것을 잡고 놓치못하며 추구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비인간적으로 소외되지.
그렇지 못한 이들이 인간적이란 말로 포장되며 세상을 점차 퇴화시켜가고있어.
난 17년의 역사 안에서도 그게 보여.
같은 입으로 다른 말을 하면서 자신이 그 옛날했던 말과 사고가
지금에 와서 달라진 것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자신의 퇴화를 인정하는 이는 없어.
이것이 역사와 인류의 슬픔인 것 같아.
반대로 변하지 않는 변질이 있지.
그들에게 있어서 진실과 고뇌는 항상 이기적 신상 잡기에만 있었지.
늘 현실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비굴화시키고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에도 여전히 자기처신의 맥을 같이해.
즉 일관된 변절. 그리고 한번도 후회하거나 죄를 인정치못하는 존재들.
언론투이 얘기를 하다보면 그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언론을 떠난 사람을 찾을 수 없어.
모두들 버티다 짤린 존재들.
그 버팀 안에는 항상 비굴한 현실주의적 타협이 들어있어.
곧아야할 존재들이 휘어져 비굴하면서도 버티다가 짤리거나 뽑힌 거야.
남은 이들은 자신의 비굴함을 순간마다 작은 자리에선 간혹 인정하지만 결코 진정으로 비굴함을 인정치는 않는 거야.
17년이 흘렀어.
남행열차를 올라타는 한 탈피기자의 얘기가 그 잊혀진 변절감들을 상기시켜 자각시켜낼 수 있을까?
      
9.(제시.편집국에서 거리로)
  
제시, 편집국을 걸어나간다.
제시, 어두운 거리로 사라지고
  
10.(흐름무대 앞으로 이동하며)
다시 빈 흐름의 사무실
거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11.(거리)
노래하는 이(신현이)
  
얼마나 그댈 그리워 하는지 몰라
더 이상 외로운 난 견딜 수 없고
언제나 어두운 밤 찾아올 때면
살며시 그대이름 부르곤 했어
눈감으면 그대 곁에 있는 것 같아
하지만 그대숨결
느낄 수 없고
무겁게 나를 누르는   
이 빈 공간은
끝없는 방황으로
나를 이끄네
기나긴 기다림 속에 지쳐도
그대 외롭다고 눈물짓지마
언젠가 그대의 두손을 잡고서
함께 걸어갈 테야
오늘 같은 밤이면
그대를 나의 품에 가득 안고서
멈춰진 시간 속에
그대와 영원토록 머물고 싶어
  
기나긴 기다림 속에 지쳐도
그대 외롭다고 눈물짓지마
언젠가 그대의 두손을 잡고서
함께 걸어갈 테야
오늘 같은 밤이면
그대를 나의 품에 가득 안고서
멈춰진 시간 속에
그대와 영원토록 머물고 싶어
  
12.(앞면흐름무대 .비어있음)
흐름의 사무실
시간이 흘러 다음날 아침.
빛 다가오는 아침을 그린다.
  
13.(앞면흐름.신문배달소년.금준)
  
신문배달소년-흐름사무실 문 앞에 배달되는 조간신문
비개인 아침의 새들의 지저귐
금준 출근한다.
녹차 한 잔을 끓여 마신다.
책상 쪽으로 다가와 신문을 본다.
전화음성메시지를 듣는다.
  
삐-소리
  
제시-응. 나 제시야. 함께 내려가고 싶지만 올해는 이 곳에서
할 일이 있어 여기 남으려 해.
17년동안 그 분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었다던 그 부담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의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겠지.
이 작업에 참여하려는 내 행동.
공동체 안에서 소외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범하는  죄를 조금이라도 파괴시켜주는 용기가 되었으면 해.
  
금준,차를 마신다.
흐름의 공간 서서히 암전.
  
14.(제시실내 .제시)
  
제시의 공간으로 빛 오버랩 되면
제시 일상의 아침을 준비한다.
일어나고 창밖을 내다보고
간단한 몸풀이 운동도 해보고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냉장고를 열어 간단한 음료와 빵을 준비해서
아침식사를 요기하고
옷을 꺼내 입고 가방을 챙긴다.
문단속 확인
  
15.(제시거리)
거리로 나가면
영상은 사회를 조명하는 슬라이드 인
  
16.
흐름무대는 뒷면으로 다시 이동
  
17.(제시)
제시, 거리에서 만나는 일상들에 즐겁게 대처한다.
버스도 기다리고
지하철도 타고
사람들을 만나 인사도 하고
전화도 걸고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고   
벤치에 앉아 쉬면서
춤추는 이의 모습도 구경한다.
  
18.춤추는 여인
  
19.제시, 밤으로 다가가며 쇼윈도우 앞에 선다.
  
20.(편집국,아침 신희은,금준)
  
제시가 시간을 떠나와 앉아있던 편집국.
거기엔 자기자리에 앉아 정리하는 신희은이 있다.
금준 들어온다.
마주앉으며
  
금준-신기자님, 부탁했던 지난해 망월동추념식에서 읽혀졌던
조시여요..
신희은-아 거기 있었네.고마워요.
금준-묘하죠?
 17년전의 이 편집국에서 이렇게 다시 만나는 게..
허긴 우리에겐 별 의미도 없는 추억일수도..
  
금준 정리하고 걸어나간다.
신희은, 금준이 넘겨준 시를 낭송한다.
  
신희은-시낭독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반병섭   
  
그때, 그대들이
민주의 횃불 들고
외치고 항거할 때
캐나다 이곳에서 소파에 앉아 TV로만
그 일 보고 있었는데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그 횃불 군화에 짓밟힐 때
그대들 상했고
그대들 총칼에 죽어
그 횃불 꺼지고
  
아! 그 칠흑의 긴긴 밤에
아이고! 아이고!
痛哭 한번 못하고
그대들 위한
뜨거운 시 한 줄
쓰지 못했는데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해마다 그대들의 피
다시 붉게 되살고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
광주로! 광주로! 가는데
나는 아직 그곳 찾아
무릎 한번 꿇지 못했는데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누가 나의 자던 잠을 깨우고
고향을 물으면
내가 "광주""光州"라 하리니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금수강산 삼천리 名山중에
어느 산이 제일이냐 누가 물을 때
내가 "無等"이라 하리니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세월 흐르고   
그 횃불 다시 밝혀지는
행렬(行列)에 뒤늦게
이렇게 따라가는데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편집국 조명 아웃되고
신희은 퇴장한다.
  
34세의 금준-흐름의 사무실로 옮겨와있다
  
21.
(흐름무대 뒷면으로 이동.제시의 거리공간열림)
  
22.
(피아노앞에 연주자 최고야 나와 앉는다. 연주)
  
피아노연주곡-즉흥환상곡
  
피아노연주 동안 제시는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와
다시 자기만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가 자리에 들면..
제시의 공간은 서서히 아웃되며 편집국과 흐름의 사무실을 비추며 음악
이 흐른다.
  
23.
(피아노 연주소리 작아지면서 빈 제시의 실내공간에 노래 들려온다)
  
노래 -꿈에서 본 거리
  
아침에 문득 눈을 떠보니
낯설게 보이는 모든 게 내 주위에 가득차
일어나 다시 살펴보았더니 오래된 내 작은 방
어젯밤 꿈에 나는 보았지.
하얗게 뻗어 나가 있는 길 옆에 그 거리를
언제나 가슴으로 그리던 곳을 난 꿈을 타고 찾아낸 거야.
빠알간 벽돌 길모퉁이에서 난 플라타너스 바라보면서
웃음이 아닌 다른 건 모두 잊은 채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었지
어지럽던 내 사랑도
이제는 하늘 저 멀리 구름위로 날려버린채       
숨가쁜 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그곳을
내 꿈에서 본 거리 일 꺼야   
  
빠알간 벽돌 길모퉁이에서 난 플라타너스 바라보면서
웃음이 아닌 다른 건 모두 잊은 채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었지
어지럽던 내 사랑도
이제는 하늘 저 멀리 구름위로 날려버린채       
숨가쁜 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그곳을
내 꿈에서 본 거리 일 꺼야   
  
24.
(편집국 부장인형 두기자인형 신희은 )
  
노래가 연주되는 동안 신희은 나와 앉는다
17년전
의  그 모습들이 배치된다.
부장과 두기자는 허수아비로
그리고 흐름의 사무실은 무대 뒤에서 앞쪽으로 이동 배치된다.
  
허수아비들 그리고 신희은의 움직임.
  
그의 목소리-
1980년. 그때   
사진하나 기사 한자한자   
시청언론검열단을 통과해야만 기사는 신문에 실릴 수 있었어.
단 한자도 그곳을 피해갈수 없었지.
  
세상은 뒤바뀌고있다 했어.
사람들은 서울의 봄을 뒤로하고
잘보이지않는 폭력집단의 손길 안에서
재가 되어가고 있었던 거야.
  
우린 편집국에서 그걸 다보고 있으면서 말하지 못했어.
그날도 우린 엉뚱한 기사로 잘 짜여진 신문을 발행했고
뒤에서 쓰지 못한 얘기로 나라걱정만 조금했던 거야.
  
그게 고작 지성인이며 언론인이었어.
비굴한 인간들.
  
선배들은 굴절되면 너만 손해라고 얘기했지.
잘 견디고 살아남아서 나중에 증언하라는 식의 충고가 고작이었어
현실에 타협하다 기회를 보아
그들이 힘을 잃으면
튀어나와서
그들의 악랄함을 고발하고 나도 피해자였노라 얘기하는 것이
언론의 속성인가?
  
광주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우린 고작 기사안쓰기나 출근투쟁 등
으로
양심적(?) 언론인의 체면을 유지하려했어.
  
하지만 보다시피 우리가 쓰지않아도 데스크는
열심히 통신지 잡지 오려서 신문을 만들어냈어.
  
정말 쓸데없는 기사들만이 모여서 지면을 채우고
정작 우리가 알려야할 것은 아무 것도
신문에 나오지 않았어.
  
그래도 아무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결하거나 분신하는 기자나 언론인은 없었어.
  
기사를 안쓴다는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결국 해야할 것은 언론검열단의 눈속임을 해서라도
무언가를 은유로라도 알려야 옳은 것이 아닌가?
  
암호놀이가 시작됐어.
자 이제 시청검열단에 출근하는 저 바보 보안사소위와 나의
암호놀이를 시작하자.
너의 철두철미한 독재수호적인 선입관을 이용하여
나는 지면에 세상을 알릴 수 있다.
네가 생각하는 단어와 나의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진실을 뒤바궈 전달해 낼 수도 있다.
  
나는 다시 적극적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어.
데스크에 앉은 부장은
신아일보및 타사의 다른 동기들이 모두 기사를 안 쓰고
부장, 차장들이 모여 휴지 같은 신문을 만들고 있을 때
내가 다시 하루 몇 건씩의 기사를 취재해서 써 갖고 오자
그냥 기분이 좋았어.
  
하지만 기사는 이제 은유로 쓰여져서
우선 검열단의 보안사장교를 속이고
다시 데스크의 무미건조한 두려움을 속이고
동료기자들로부터 기사 씀에 대한
항의 어린 불평마저 들으며
숨은 암호를 찾아 읽을 수 있는
독자를 향해
쓰여지기 시작했어.
그게 최선이었어.
  
하지만 아무것도 막지도 바꾸지도 못했어.
고작 그게 전부였어.
그게 최선이었을까?
  
25.(앞면흐름. 금준 은정)
  
전면에 배치된 흐름의 사무실
금준,은정과 앉아있다.-
  
금준-
그는 지난해 시민연대의 광주국제인권캠프팀과 합류해서
광주금남로에서의 5,18 16주기전야제와 이튿날 망월동에서의
추념식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그날의 그곳을 찾았다고 해.
그리곤 돌아오는 길에 너무도 놀라운 사실에 몸서릴 쳤다고했어,
그건 17년전 자신과 언론이 만들었던 그것과 똑같은 소외와
단절과 차단의 도시로 5월광주가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지.
  
그리고 이 편지.
컴퓨터통신을 통해 만난 이로부터 받은 메일 하나가 그의 가슴을 적셨지.
읽어 봐.
  
은정-편지를 읽는다.
  
광주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고맙네요.
모두들 말로는 관심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게 부담이었든, 혹은 잘못됐다는 비판에서든.. 어쨌든 광주는 외롭습니다.
그 책임이 일차적으로는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있겠지요.
그러나 그 책임의 일부는 그런 광주를 비판하는 방관자들에게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외골수로만 가는 광주를 비판만 하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그 아픔 속에 함께 하는 자세로
설득하려는 노력은 없습니다.
문제는 애정이죠. 애정이 있으면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광주를 포위하고 있는 이 철벽같은 장벽을 허물어 뜨릴려고 하면 할수록
이 벽은 마치 늪에 빠진 물체가 허우적 거릴수록 더욱 빠져들듯 두터워짐을...
마침내 구경꾼은 늪에 빠진 생명체를 구하기를 포기하면서... 나로선 어쩔 수 없었어....이렇게 말합니다......
80년 5월에도 그랬죠? 아마?
정말이지 광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이란 ....
무슨 천형을 짊어지고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깊습니다.
때로는 광주에서도 [에이 언제 우리가 남한테 기대고 살았냐...
우리끼리 올바르면 됐지....]
이런 식의 반응이 주류를 형성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입장에 반대합니다.
우리 스스로 정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5월항쟁기간에 느꼈던 고립으로부터 오는 공포감에서 여전히 헤어날수 없기 때문입니다.
  
16년전 오늘 광주는 작은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나중에야 어찌될망정 우린 계엄군의 퇴각을 환호했습니다.
나는 도청에 들어가서 붙잡혀온 공수부대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생각 같아선 그냥 그 자리에서 총살이라도 시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때 우린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선 안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성난 군중들은 그를 제물로 삼기를 원했지만 만류했고,
투쟁의 대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판 처음 만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무장한 채였죠.
해방기간 동안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항상 우린 고립감에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서 고립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공포의 실체를 맛보았습니다.
  
물론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닫고......
책속에서 만나는 공포가 아닌 우리 앞에 가로놓인 공포감은 대단히 실질적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파멸될 수도 있고, 모든게 한꺼번에 끝나버릴수도 있는...
  
16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보면 참, 역사란 무심한 거구나 싶습니다.
진실은 왜곡되고...심지어는 희화화되고....
광주의 진실은 빛이 바래고 이제 누구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
그런 흉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원합니다.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재미를 원하고, 뚜렷한 논리적인
상징을 원하고...그런 식으로 투쟁의 진실은 형해와되고.... 이제 모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80년 5월 고립된 광주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다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십수년간을 그 문제에 매달려왔습니다. 고립은 공포다....
어떻게든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그건 우리에게 논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 점에서 저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내부건 외부건 결과적으로 고립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제게 정의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고립을 해소시켜줄 수 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정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정의가 그 자체로서 외롭고 고립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저는 언제라도 변절? 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런 저런 문제를 생각해보는 군요.
예기 님의 끊임없는 진지함에 이끌려 새삼 이런 상념을 떠올려보았습니다.
  
26.(거리- 노래하는이(김주연) -그대 먼 곳에)
  
27.(노래하는이(신현이) -홀로 된다는 것)
  
28.(금준 노래한다)
  
-나의 친구야.
  
뒤돌아 볼 때마다 그리운 내친구들
어디로 갔나
어두운 뒷골목을 헤메이고 있나
차가운 새벽 들판을 서있나
  
어딜 가야 너를 만나나
어딜 가야 너를 만나나
그리운 내 친구야
  
푸른 옷 맺힌 꿈에 눈물 삼키고 있나
저 하늘에 별이 되어 떠있나
어디간들 너를 잊으랴
그리운 내친구야.
  
금준 노래하며 편집국으로 간다.
편집국에서 정리하며 17살의 금준으로 돌아간다.
  
29.
뒷편-피아노 앞에서 최고야 연주시작
혁명 이어진다.
  
30.
사람들 조용히 모인다.
거리 걸어가는 사람들
  
31.노래들-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32.노래들-그날이 오면
  
33.노래들-님을 위한 행진곡
  
34.흐름의 사무실은 다시 뒤편으로 옮겨지고
편집국에서 다시 흐름의 사무실 쪽으로 해서 퇴장하는 금준.
  
35.
피아노연주 서서히 줄어들며   
해금연주를 위한 공간 배치된다.
  
36.
해금연주시작 -적념   
스크린에 영상비춰진다.
연주가 끝나면 스크린올라가며..
  
37.무등의 어느 계곡.
두사람 제례를 위한 씻음.
다시 한사람의 제례를 위한 씻음
  
38.제례상을 갖고나오는 사람.
제례상을 준비함
그릇 놓기 과일 놓기
  
39.
노래-오늘 같은 밤이면
흐름의 사무실에서 편집국을 거쳐 걸어나오며 노래하는 사람
  
노래
-오늘 같은 밤이면..
  
40.
제례상을 차리는 사람들.
서서히 모든 빛 아웃.
  
-공연은 내일 저녁 7시로 이어집니다.
(17일 공연끝)   
......................

남행열차(51817 2부)
공연대본
신영철 작 구성

5,18 민주항쟁 17주년전야제 초연:1997.5.18 여해문화공간

(무대는 1부 오늘같은밤이면의 무대를 재배치
,피아노위치 뒤로옮기고 교정부책상배치)   
  
41.
무대,전면왼쪽 신문사편집국
그 뒤쪽 흐름의 사무실
뒷면 오른쪽 어젯밤에 준비되던 그 상태의 제례상
   
42.(37과 같음)
서서히 빛이 들어오면
찾음.
무등의 어느 계곡.
두사람 제례를 위한 씻음.
다시 한 사람의 제례를 위한 씻음
  
43. (38에 이어짐)
앞쪽 제례음식을 만드는 공간으로부터
놓여진 제례상에 하나하나 마련한 음식을 가져다 놓는 사람들.
  
44.
스크린 내려오면 화면엔 [시민군 윤상원]이 투영된다.
이후 영화는 스크린에 공연내내 무성영화로 전편이 상영
된다.
무등계곡 졔례를 준비하는 사람들 모습사라진다.   
  
45.편집국
  
(복잡하고 정돈안된 신문사 문화부의 철제책상과 의자들
의자엔 부장과 두명의 기자모습이 인형으로배치되어있고
그들의 일상적인 대화가 녹음으로들린다.
5년차기자인 신희은과 아르바이트여고생인 장금준이
간혹 드나들며 편집국의 일상을 표현한다)
  
1980년 3월 19일 - 오전 8시 10분경
   
희은 ,급하게 사무실로 들어온다. 어깨에 매는 가방과 정장차림.
들어오면서 부장 및 10년차 선배등에게 인사를 한다.
겉옷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고, 자리에 앉아 책상을 대충
정리한다.옆에 달려있는 책상서랍을 열고, 화장품을 꺼낸 후
얼굴을 정리한다.
얼굴,눈썹,입술 순으로 정리를 한후 머리등을 대충 매만지고,
이제서야 어제 쓰다만 원고를 들추면서 마저 작성을 한다.
작성을 대충 끝낸 후 원고지와 사진을 끼워 부장에게 다가간다.   
  
46.제대
(반복과 지속 공연의 끝부분 까지 무대점유)
  
제례상 앞에 나가앉는 두사람.
찾아오는 이에 대한 기다림이 시작된다.
이후 두사람의 기다림 앞에 관객들 내려와 분향해도 좋고
사람들 그곳에 와서 절을 해도 좋다.
공연이 끝날 때 이 부분은 무대에 자유공간으
로 배치되어
오버랩된다.
  
47.흐름의 사무실
(17년이 지난 현재의 공간.금준의 사무실엔 친구인 은정이 간혹
찾아와 대화하며 금준은 흐름의사무실과 편집국 교정부 3개의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과거와 현재를 표현하곤한다)
  
금준 한손엔 서류들도 허겁지겁 들어와
가방을 의자에 던져놓고 컴퓨터를 켠다.
숨을 한 번 몰아쉬고 손가락을 꺾더니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서류를 한 번씩 쳐다보며)
  
금준- 주.. 간.. 인..권.. 흐...름.. 서울대 한 단과대학의 대학원생인    
정아무개(34)씨등 구아무개교수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해 검찰 조사
착수/국가 보훈처, 7월부터 전립선암과 버거씨..병등 고엽제
후유증에 추가 적용키로..../교육부, 북한 돕기운동과 관련
학교,학급단위나 전교조등 단체차원의 모금활동을 금지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전국시.도교육청에
보내/ 어휴,, 죽어라죽어라 하는구만.. 에.. 또..정부(화면보고)
5월..18일을 법정기념일로 제...정(다시한번 서류를 뚫어지게
보더니 눈썹을 찡긋하고는 다음으로 넘어간다)정부... 황장엽..
  
  
48,편집국.(일상의 소리 1들리기시작)
1980년 4월 10일 - 오전 9시 45분경
  
신희은 ,여러 원고들을 꺼내어 놓고, 바쁘게 원고를 마감하

모습을 비춘다.
하나 작성하고 하서, 다른 하나를 마저 쓰고, 취재했던 기록등을
들추어 가면서,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몇몇 보도자료 등도 필요할 듯. 기사를 다 쓴 후 부장에게 넘기고,
부장으로부터 지시사항을 받는다.
미다시 등을 읽고(이 부분은 소리를 낼 수도 있을것 같음), 부장의
질문에 응수한다. (동작으로만 혹은 대사도 함께)
바쁘게 사진부로 뛰어간다.
(잠시 퇴장) 이후 잠시 후 몇장의 사진등을 들고 등장.
부장에게 보인 후 자리에 와서 클립등을 찾고 정리한 다음, 원고를
들고 퇴장.
  
  
49. 빈 편집국 (일상의 소리 2만..)
  
50 교정부-교정지읽는다.(1)   
  
51.편집국
  
(5월 3일 - 인터뷰, 취재차량, 사진기자 등의 섭외장면)
희은-전화걸고있다..
"여보세요? 남덕순씨..?? 아.. 예.. 저는 신아일보사 문화부에  신
희은이라고합니다.
 이번에 '아이다' 처녀출연 하시잖아요.. 그래서 이번주 저희
신문에 연재되는 '무대인'에 남덕순씨에 관한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언제쯤 시간이 되시나요? 그냥, 이제까지의 공부과정하고,
이번 작품에 관한 얘기들이죠, 뭐.. 시간요? 오늘중이었으면
하는데요.. 그러시면, 오늘 오후 1시쯤은 어때요? 예..
그래요, 그럼.
숙대앞이요?? 그러 도록 하죠. 예.. 그럼, 조금 있다가 뵙죠. "
  
금준,들어와 문화부 각 책상에 통신지 놓고간다.
  
희은-  "예.. 저, 문화부의 신 희은인데요, 오늘 오후에
인터뷰건으로 해서 사진을 찍어야 하거든요..?? 예. 어.. 시간은
1시요. 뭐, 한시간도 안걸려요. 많이 안나가요. 예? 가깝죠.. 숙대요.
예? 어.. 얼마 안걸려 요.. 한시간이면 되는데요? 아니.. 그래도,
인터뷴데.. 저는 사진 잘못한다구요.. 시간 좀 잠깐 내세요..!! 예?
아니.. 아까는 될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아니, 그럼 문화부 기사는 안중요한가요?
됐어요, 뭐.. 몇장 찍을건데, 그거 하나 안해주면.. 아니, 됐어요. 예..
안녕히 계세요. "
  
(독백) 사진까지 내가 찍냐..
  
 "예.. 안녕하세요? 문화부 신희은인데요, 예.. 취재차랑 지원을
받으려고요.. 1시요. 숙대앞이거든요. 예? 어.. 저. 그래두.. 시간을
아끼려는 차원에서.. 힘든가요? 차로 가면.. 30분도 안걸리는데..
예.. 하긴.   알겠습니다. 버스 타죠.. 뭐.."
  
 (독백 : 전화기를 노려보며) 되는 일이 없어!
  
  
53.빈 편집국 (일상의 소리3)
  
  
54.흐름의 사
무실
아침이다 밝은 조명켜지면 책상위에 엎드려 있는 금준.
(전화벨 소리)
금준-  (한참만에 수화기 들고, 하품하며) 여보..세요.. 응.. 응... 어.
(수화기 내려놓으면서 다시 고꾸라진다) 잠시 out..
  
55. 흐름의 사무실
(다시 조명 켜지면 책상 옆 의자엔 은정. 그 옆 간이대에서 녹차를
따르는 금준, 은정은 그런 그를 눈으로 좇으며 측은하단 듯이)
은정- 얘, 너, 그러다 시집가기도 전에 몸 축나겠다.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밤샘 작업을 하고 그러니...
금준:  (차를 건네며) 어구구, 그러잖아도 온몸이 쿡쿡
쑤신다..(기지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그나저나 상담소는 어쩌구 이른
아침부터....
은정- 응. 오늘은 오후 교대야.
금준- 애들 해결사 노릇은 잘 돼고?
은정- (한숨쉬며) 에휴, 이젠 손 들고 싶어. 진즉에 시집이나 갈
걸.
금준- 언젠 또, 상담하는 애들이 다 지 새끼라고하더니.
은정-그래 넌 신문장사는 잘 돼가니? 요즘 새로운 인권소식은
뭐야.
금준- 너 장사 하면서 이리 궁상맞은거 봤니? 휴.. 늘 그렇지 뭐.
아직도 우린 바른말 하고 살긴 힘들다는거. 데모한다고 학생들에게
총을 들이대질 않나.   
컴퓨터 통신 한 번 잘못했다고 색깔의심받아 콩밥먹을 뻔하고..
겉으로는 역사 바로세우
기다 뭐다 하면서 과거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답습하고 있으니...
은정- 얘, 그래두 예전에 입도 뻥긋 못할 때 보단 조금은 살만
하지뭐..
금준- 글쎄, 아직도 뒤통수가 근질근질 한 것이 누가 날 겨누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장난기 어린 말에 은정 한 번 흘기고는 웃는다)
  
  
56.교정부-교정지읽는다(2)
  
57.편집국-빈책상 (일상의소리4 들린다.)
  
58.교정부-교정지읽는다(3)
  
59.편집국의 일상
1980년 5월 29일 - 오후 3시경
  
신희은 ,사전을 갖다놓고 외지를 번역중이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번역을 하면서, 기사를 읽는다. (연재기사 - 퍼스트 레이디)
잠시 기지개를 켠다. 하품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신기자의 책상을 본다. 신문지를 하나 든다.
(당시 광주에 관한 기사) 미다시 등을 읽는다.
조금 읽다가 책상에 다시 놓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온다. 지금
번역  하고 있는 잡지를 들어서 본다. 신기자의 책상을 보다가,
다시 자신이 작성중인 원고를 보고 쓴웃음을 지며 고개를 흔든다..
다시 자리에 앉아 번역을 계속한다.
  
60.편집국(일상의 소리 5)
1980년 6월 15일 -
 오후 2시경
  
옆에 가득쌓인 책들. 그 책들의 앞부분만 들춰가면서 신희은
기사를 작성 중.
가끔 독백으로, "다음 책은 뭐냐.. (제목을 부른다.)"
등등으로 책 소개란을 작성한다. (책은 4권정도)
  
  
61.빈 편집국 (일상의 소리 6)
  
62.교정부-교정지읽는다(4)
  
63.흐름의 사무실
  
(금준,은정과 앉아 얘기하고잇다.은정 들으면서 간혹 고개를
끄덕이거나 긍정의 의사를 표현한다)
  
금준- 신문이나 언론이란건 언제나 그 모양이었어.사실 일제시대가
마감되엇을 때 일제안에서 만들던 신문들은 모두 폐간했어야 해.
80년 5월에 광주의 민주열기를 간첩의 소행이라 적고 시민들을
폭도라고 적고 보도하던 신문과 방송들
그리고 이후 5,6공에 충성하며 나서서 전두환칭송하기에 바빴던
신문과 방송들도 그 폭력의 역사가 밝혀진 그날,모두
자신폐간했어야 돼.
하지만 역사바로세우기 등으로 모두 죄가밝혀지고 재판받는 지금
언론은 어느누구도 그 죄에 대해 법정에 서거나 용서를 비는
경우가 없이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양 자신들이
칭송했던사람들은 같은 입으로 몰아세우고 있어.
이 신문들 좀 봐.그 당시 언론들이 이렇게 이폭력에 대해
눈감아주고 치켜세워주지않았다면 과
연 군부독재정권이 군림할수
있었을까?
언론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하면서 어쩔수없엇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안해. 사람들이 폭력에 항거해 죽어가는 그때에 그들은
손가락하나 피흘리지않고 그저 검열에 복종하면서 신문사에
앉아서 가장 정의로운 것처럼 세상걱정만 해댔어.
그리곤 이튿날 신문이나 방송에 나와선 자신이 어젯밤 말한거와는
180도 다른 거짓말을 해댔지.
그게 지식인의 양심이며 고뇌의 표현인가?
그들은 자기주변의 한두명에게만 진실을 말하고 수백만명의
독자와 시청자에겐 거짓말을 했지.
그게 죄악인걸 알기나 했겠어.
아니 모르니까 지금도 뻐젓히 살아서 이렇게 전두환예찬론과
국민의 자유자제론을 써대던 기자들이 부장이나 논설위원이 되서
전두환정권창출이 잘못된 것이라고 눈하나 깜박안하고 쓰면서
가장 정의로운체 하는게 아냐?
난 간혹 이런생까도 해.지금도마찬가지지만 만약 우리나라에
언론이 없다면 오히려 벌써 훌륭한 민주화가 되엇을지도 모른다구.
언론이란 것이 진실을 왜곡하고 사실을 보도하지않으면서 오히려
진실된 여론의 형성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니까말야.
광주가 군화발에 짓밟힐 때 아예 신문이 나오지않고 방송이
없었으면 게엄사의 삐라만에 의존한 군부앞에서 최소한 진실의
왜곡은 없었을 것 아냐.         
늘 약자에게만 강하고 강한권력앞에선 해도 되는정도의 비평만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엔
 개처럼 순해져서 앞서서 복종하며 민심을
호도하고 여론을 왜곡시키는게 언론이지.
참 어제오늘 언론인들이 프레스센타에 모여서 그 당시를
증언한다며?
당시엔 개처럼 복종하던 사람들이 역사의 증언자들처럼 진실을
밝힌다고 발언들을 하겠지? 그럼 그 당시 자기들이 슨기사들은
뭐야.    
청문회증인들이 위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듯 오보와 허위기사에
대해서 더큰 책임과 법적구속을받아야하는거 아냐? 그 허위기사가
역사를 얼마나 후퇴시켯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거짓을 전했는데.
박홍신부도 릴附愎?엉뚱한 말에 대한 법적인 처벌을 받는데말야.   
            
  
  
64.편집국
1980년7월 6일 - 오전 8시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인사를 한 후 자리
뒤에 우산을 펴서 말린다. 화장을 고치는 일상을 반복한 후,
자리에 놓인 잡지쪼가리를 본다. 몇장 들추다가, 부장에게 질문
  
 "이거 뭐예요? 부업요? 그거..계속 해요? 잡지 그냥 베끼는
거잖아요.  이번엔 또 뭐예요? 양초공예...?? 할것두 많은데.. 예..
예..
알겠습니다.."
  
투덜거리면서(행동으로 표현 - 책을 탁소리가 나게 놓는다거나,
신경질적으로 볼펜을 꺼내든다) 잡지쪼가리를 정리해서 작성한다.
 
 
  
65.교정부,교정지를 읽는다(5)
  
66.편집국
1980년 8월 19일 - 오전 11시
  
조금은 화려한 정장을 입고 있다.
잡지들을 들춘다. 의류다루는 방법 등과 음식에 대한 기사들을
찾는다. 몇개를 오려서, 부장에게로 들고간다.
   
  "저.. 여성란에 올릴건데요, 좀 보세요. '유행지난 의복손질
요령'하고, 금주의 식단으로 '모듬 야채튀김'을 하면 어떻까
해서요.
괜찮죠? 예.. 내일자로 올리죠. 예..?? 아.. (웃으면서) 옷이요??
어.. 저.. 오늘 패션쇼가 있거든요. 예.. 급하게 연락이 와 놔서..
예.. 호주대사관에서 하거든요. 저.. 하얏트 호텔요. 예.. 아..
저.. 그런데요, 저도 취재라고 하면서 간신히 얻어서요.. 저.. 힘들것
같은데요.. 죄송해요.. 대신, 다음에 더 좋은 쇼 있으면 표 드릴께요.
오늘은 취재라서.. 예.. 죄송합니다.. "
  
자리로 온다.
  
67.편집국 (일상의 소리 7)
  
68.흐름의 사무실
  
금준- 결국 언론은 정의와 양심을 소외시키는 범죄집단의 역할을
하고도 그죄를 뉘우치거나 재판받지않는 유일한 집단인 것 같아.
권력이 바뀌거나 정권이 몰락해도 언론만은 남아서 하룻만에
다른옷을 갈아입고 언제그랫냐는 듯이 어제하던 말을 180도
바꿔서 다시 그 당시의 정권에 적응하는 간신같은 존재지.
언론투이를 말하지만 그건 일부 언론노동자들의 얘기고 신문이나
방송의 사주입장은 언제나 당시 세력자의 편에서지.
근데 재미있는건 그 간신들의 우매한 용기야.
하다못해 기업이나 정치계의 비리는 증거찾기에 힘이들어 그들이
발뺌이라도 할수있지만 언론은 이렇게 들쳐보면 모두 나오쟎아.
즉 그들의 거짓말은 이렇게 기록되어있어서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물안에 담기는대도 뻔뻔스럽게 행동하며 범죄에대한 인식조차
못한다는거야.
예를 들어 여기 광주시민을 폭도라고 말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사뒤에 아무개기자라고 당시 신문에 적혀있고
[전두환영웅만들기]나 [원로를찾아서]등에서 보는 시루에
아부하는 충성스런 기사나 기회주의자들의 이름과 사진이 이렇게
아무아무게교수 혹은 아무개 목사등 찾으면 바로바로 나오쟎아.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 이 윤종보기자 같은 사람은 요 며칠전
와선  전노재판땐 뉴스시간에 나와서 자신이 영웅시해 소개했던
전두환과 5공에대해 비판을 서슴치않쟎아.
자기같은 사람이 전두환을 영웅만들어 독자에게 소개하지않앗으면
그가 대통령이되고 국민투표에서 95%이상의 찬성을 얻어 5공이
생겨나기나 했겠어?          
허긴 그당시 언론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 정계에 진출했지.
내가있던 신아일보에서도 김길홍부장 이긍규차장 등  당시

정치부에서 5공생성을 오도하던 사람들이 바로 민정당에
들어가더라.   
  
  
69.교정부-교정지를 읽는다(6)
  
  
70.편집국(일상의 소리8)
1980년 9월 3일 - 오전 9시 30분
  
신희은 들어와'진귀한 기록사진'에 낼 사진들을 챙겨본다. 많은
사진더미들.
그 중에서 4개정도를 골라낸다. 아래에 사진설명을 단다. 사진과
설명을 뭉쳐서 부장에게 준다.
  
  
71.편집국
1980년 10월 25일 - 오후 2시경
  
인터뷰가 거절되어서 따지는 모습과 결국은 전화인터뷰를 하는
모습.
  
 "... 아니.. 그게 말이 되요? 양교수님하고 인터뷰를 하겠다고 어제
말씀  드렸고 어제 힘들어서 그럼, 오늘하자고 했더니, 또 무슨
일이 있으신거예요? 예? 미루자구요?? 이봐요. 나는 양교수님과
날짜잡힐 때까지 한가하게 그냥 잇는 사람인줄 아세요? 저도
취재할거 많다구요. 아니요, 시간이라봐야 얼마 안걸리니까..
그럼, 지금 계세요? 왜긴요?? 직접 못뵈면 전화로라도 인터뷰를
해야죠? 예.. (잠시 기다린다) 여보세요..?
아.. 예.. 양교수님이세요?
인터뷰 하기가 힘드네요.. 예.. 저.. 이번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공연 있으시죠? 예.. 그럼.. 질문부터 하죠.
이번 공연을 하시게 된 계기는요? 예.. 예... 아.. 그러시군요.. 예..
어..  그럼.. 이번에 하시는 작품들은요? 잠깐만요.. 조금 천천히요..
예..
이백의 야시 세 수.. 그리고? 레이디 화이트... 예.. 오페라요.. 예..
중국민요요.. 저.. 레이디 화이트가 뭔가요? 예.. 예..."(이쯤에서
조명 서서히 아웃)
   
  
72.편집국(일상의소리9)
  
  
73.흐름의 사무실
  
은정- 그래서?! 암호놀이를 시작했단말야?
금준- 응,나두 첨엔 몰랐었어.기협소속기자들은 5,18이후
태업투쟁으로 기사작성을 거부하고 있었지.하지만 그런다고 신문이
안나오는 건 아니쟎아?.
오히려 부장과 중견기자들이 쓸데없는 내용없는 기사들로 지면을
메꾸고,그래서 알려야할건 안알리고 오히려 게엄사의 대변지같은
역할만했지.
그런데 문화부의 신기자가 갑자기 기사를 쓰기 시작한거야.
5월 27일 광주에서도청이 함락되던 그날에 쓴 연극기사였는데
[블안정한 속에서도 공감짙은무대들]이란 제목의
4면톱기사였어.
시청 언론검열단에 다녀온 그는 내심 흐뭇한 미소마져 짓더라구.
사실그날 그 기사가 나가자 다른신문의 젊은 기자들이 신기자에게
항의전화까지왓어. [너마
져 배신하냐..]뭐 이런내용이엇지.
첫줄에 [극소수불순분자들에 의해 야기되는...]으로 시작되는 그
기사는 얼핏보면 계엄사의 입맛에 맞는 기사였지.
당시에 게엄사는 광주항쟁을 폭도라고 부르며 그것을 극소수
불순분자들의 소행이라고 언론에 유포시켯거든.       
근데 그 타사동료기자의 전화를 받는 신기자는 전화로이러더라구.
[너두 광주가 극소수불순분자의소행이라고 생각하니? 너두알잖아?
전두환일당이 바로 극소수불순분자라는걸.]그리곤 그 기사를
찬찬히읽어보라고 그러는거야.
거긴 대머리에 여덟 개 발달린 문어가 용왕에게 [문어
너는너무과격해]하고 말들으며 긇는물에 데쳐져 죽는다는
내용도잇고 [폭력으로 흥한자는 폭력으로 망한다]는 내용도
있었어.
시청검열단의 보안사장교들이 첫줄이 [극소수불순분자..]로
시작하니까 자기편으로안데다가 단순한 연극기사인줄 알고 그냥
넘어간거지.
사실 그당시엔 감히 대머리란 말도 신문에 나오면 삭제해버렷거든.
만화가 안의섭씨가 신문만화에 대머리를 그렷다가 두거비만화가
중단됐고 코미디언 심철호씨는 주걱턱이란이유만으로 방송출연을
못했으니까.      
그게 은유로된 기사의 시작이었어.최소한의 알릴수있는단어나
어휘만이라도 신문지면에 담아 독자에게 상징적으로라도
알려야겠다는 암호놀이같은거였지.
  
  
은정-은유로 된 기사.하지만 그렇게 은유로
쓴기사가 시민들에게
전달이 되엇을까?
  
금준-글쎄? 하지만 난 그것이 적지않은 사람들에겐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어떤 조그마한 역할은 햇다고 봐.
동아방송음악프로의 DJ를 맡고있던 작가 김홍신씨는 생방송중에
상징처럼 최근 같은단어가 다르게 쓰이면서 왜곡되어 쓰이던
단어의 진실을 다시찾아준 경우를봤다는식의 코멘트를 하기도했지.
그 [극소수불순분자.]의 얘기였지.
  
이후 신아일보가 폐간될 ㄸ까지 문화면에선 그런 식의 은유로 된
기사를 자주 볼 수 있었어. 샤르트르의 무덤없는주검이 인용되고   
굳이사람들이 밧줄에 묶인 공연사진을 싣기위해 조그마한
이벤트공연을 기사화하기도하고 민중의식을고취시킨 허균의
생각이나 단재 신채호의 사상 등을 찾아서 기사화하는 것도 그런
은유의 하나였어.
씨알의 소리가 10주년을맞을 땐 검열단에서 기사의 3분의2가
짤렸지만 그걸 각오하고 써낸 기사여서 발행인 함석헌님의 이름이
한자도 안남고 삭제당한 기사안에서도 [날 수 있을 때
까지날기위한연습이라도 하기위해 씨알의 소리를 만든다]는
문장만은 살려서 통과시켯지.
80년가을 난 그날 그 기사를 읽으면서 너무도 큰 희망을 얻었었어.
    
은정- 하지만 그 은유로 쓴 기사가 세상을바꾸진 못했잖아.
기사는 직설적으로 알려야하는게 아니야.그렇지않으면 아예
신문을만들지말던지.      
금준- 허긴그래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었어. 너도
알다시피 그런일이 어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니. 당시엔
시청에언론검열단이 있어서 기사한자한자를 보안사장교들이
검열을 한후에 지면에 담을수잇엇거든. 사실 그런 상태에서
간접적인 표현자체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구.
은정- 하지만 그 은유로 쓰여졌던 기사들을 어느 누가 얼마나
알아줬겠니. 혹 누군가 그 암호를 눈치챘을지언정 그것이 당시
고립된 광주항쟁을  알기에는 무리였을거야.
금준- 하지만 17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이라도 충분히
의미있었다고 생각해. 최소한 아무것도 쓰지않거나 아에
왜곡된기사만 쓰면서 남핑게대는 다른기자들에 비해선.   
하지만 간혹 그는 자신이 기자이면서도 단지 은유적인 말로 밖엔
표현할 수 없음이 스스로 죄책감을 안고 있었어.
그는 철필과 등사기를 갖고서도  진실을 알리려 노력햇던 당시
광주에서 지하언론작업을 한 사람들 얘기를 하면서 자신들이 단
한 장의 진실한 신문도 못만들고 그 시기를 보낸 것은 엄청난
죄악이라고 했어.
유신시대를 대학에서보낸 그가 꿈에 그렸던 언론에 들어와 막상
역사의 소용돌이안에 참용기를 모아야했을 때 이른바
최고지성인들이란 언론선배들과 동료들의 비굴함과 용기없음을
비관하면서말야.
결국 그날의 그들의 비굴함은 광주로 대변되는 참된민중항쟁의
용기들을 소외로 몰아갓고 그 죄악의 산물로 광주는 지금까지도   
소외안에 남은거지.
이 편지처럼 말야.
  
은정- 이 편지는 누구의 거니?
금준- 그가 광주의 짐을 안고 살 때, 컴퓨터통신을 통해 만난
이로부터 받은 메일이야.
당시 도청에서 함꼐 싸웠던 그는 현재 광주 어느 신문사의
논설위원이래.
읽어 봐.
  
은정-편지를 읽는다.
  
광주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고맙네요.
모두들 말로는 관심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게 부담이었든, 혹은 잘못됐다는 비판에서든..
어쨌든 광주는 외롭습니다.
그 책임이 일차적으로는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있겠지요.
그러나 그 책임의 일부는 그런 광주를 비판하는 방관자들에게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외골수로만 가는 광주를 비판만 하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그 아픔 속에 함께 하는 자세로 설득하려는
노력은 없습니다.
  
문제는 애정이죠. 애정이 있으면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광주를 포위하고 있는 이 철벽같은 장벽을 허물어
뜨릴려고 하면 할수록
이 벽은 마치 늪에 빠진 물체가 허우적 거릴수록 더욱 빠져들듯
두터워짐을...
  
마침내 구경꾼은 늪에 빠진
 생명체를 구하기를 포기하면서...
나로선 어쩔 수 없었어....이렇게 말합니다......
80년 5월에도 그랬죠? 아마?
  
정말이지 광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이란 ....
무슨 천형을 짊어지고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깊습니다.
때로는 광주에서도 [에이 언제 우리가 남한테 기대고 살았냐...
우리끼리 올바르면 됐지....]
이런 식의 반응이 주류를 형성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입장에 반대합니다.
우리 스스로 정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5월항쟁기간에 느꼈던 고립으로부터 오는 공포감에서
여전히 헤어날수 없기 때문입니다.
  
16년전 오늘 광주는 작은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나중에야 어찌될망정 우린 계엄군의 퇴각을 환호했습니다.
나는 도청에 들어가서 붙잡혀온 공수부대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생각 같아선 그냥 그 자리에서 총살이라도 시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때 우린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선 안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성난 군중들은
그를 제물로 삼기를 원했지만 만류했고,
투쟁의 대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판 처음 만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무장한
채였죠.
해방기간 동안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항상 우린 고립감에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서 고립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공포의 실체를 맛보았습니다.
  
물론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닫고......
책속에서 만나는 공포가 아닌 우리 앞에 가로놓인 공포감은
대단히 실질적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파멸될 수도 있고, 모든게 한꺼번에 끝나버릴수도
있는...
  
16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보면 참, 역사란 무심한 거구나 싶습니다.
진실은 왜곡되고...심지어는 희화화되고....
광주의 진실은 빛이 바래고 이제 누구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
그런 흉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원합니다.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재미를 원하고, 뚜렷한 논리적인
상징을 원하고...그런 식으로 투쟁의 진실은 형해와되고....
이제 모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80년 5월 고립된 광주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다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십수년간을 그 문제에 매달려왔습니다. 고립은
공포다....
어떻게든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그건 우리에게 논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 점에서 저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내부건 외부건 결과적으로 고립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제게 정의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고립을 해소시켜줄 수 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정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정의가 그 자체로서 외롭고 고립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저는 언제라도 변절? 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런 저런 문제를 생각해보는 군요.
예기 님의 끊임없는 진지함에 이끌려 새삼 이런 상념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74.교정부-교정지를 읽는다(7)
  
75.편집국
1980년 11월 20일 - 오후 3시경
   
친구와의 전화통화 - 곧 있을 언론통폐합에 관하여.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다. 친구와 전화..
  
 ".. 그래.. 그래서 요즘 '아듀 80'이라는 제목으로 년말에나 있을
기사를  쓰고 잇다니까.. 그래.. 참. 내.. 우리가 얼마나 자기 대통령
만들려고 띄워줬냐? 그래.. 쓰는 사람들도 속이 뒤집혔었다구..
그래.. 이제와서 배신이야.. 배신이.. 완전히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니까.. 멀쩡히 있
는 신문사를 왜 없애는거야? 그래..
경향신문에 가도 별거 있겠니? 가봐야.
아니.. 거기에도 문화부기자가 있을거 아냐. 부장이 제일 불쌍하지..
응.. 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뭐.. 경제지로 많이들
가더라구.
처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있잖아.. 광주말야.. 그래.. 자기한테
반대한다구 사람들 그런식으로 죽여놓고.. 뭐? 도청하라지! 직장도
없어질 판국에 이제와서 무슨 상관이냐? 갑갑해.. 하여튼.. 우선
사표를 쓰고 경향신문사에 입사지원서를 내란다. 이게 뭐니?
하여튼.. 응?
어.. 있어.  대단한 사람이지. 끝까지 버틸 생각인가봐. 첫마디가
그거더라구.  '전 안씁니다. 일신상의 이유가 없는데 무슨
사푭니까?' 와.. 대단하더라구. 응? 그래.. 휴.. 답답하지.. 짤릴걸
알고서도 이렇게 기사를 쓰고  앉아있으니.. " (조명 서서히 아웃)
  
76.편집국(일상의 소리10)
빈편집국,
  
  
77.흐름의 사무실
금준 들어온다. 한손엔 편지봉투
금준-  누구지?(발신지를 유심히 본다. 이윽고 희색이 만면)
기사거리구나.
(봉투를 황급히 열어본다. 따로 접힌 편지한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우연히.. 그분의 소식을 접해.... 너에게 전한다. 아울러
광주국제인권캠프  소식도.....(읽는소리 작아지며, out)
 
은정- 준비는 다 됐니?
금준- 뭐 준비랄 것 까지야...
은정- 그분 만나게 될지도 모를거라면서.....어떻게 살고 있을까?
금준- 작년에 참석했더라면 그때 뵈었을텐데...
은정- 인권캠프라... 5,18행사에 하나로 열린거니?
나도 잘 몰랐던 일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행사가 열렸는데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더구나.
금준- 나도 컴퓨터통신에 인권소식을 통해서 들은게 다야. 하지만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계각국에서는 광주인권캠프를 더 잘알고
있어. 지난해 캠프 이후 시민연대에서 인터넷에 싸이트를 개설해서
이후 활발한 정보교환과 자료를나누고 있거든.
그분 얘기론 5월광주는 민주화를 열망하고 픽밥받는 셰계인들에겐
하나의 상징으로 존재한데.
지난해 동티모르의 여학생이 인권캠프에 참가해서 동키모르의
민주화운동을 알리고 간후 그것이 인터넷을 통해 각국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소개되면서 동팀모르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는 신부님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것도 하나의 예지.
은정-(고개를 끄덕인다)
금준- 이제 5월광주는 전세계에서 조건과 형태는 다르지만 인권과
평화가 침해되는 사람들에겐 구도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이제 광주는 한 도시명으로서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폭력과 부정에
항의하여 목숨을 바치는 민주주의적 시민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뜻하는 추상명사가 되고있어.다만 우리에게만 정치적 혹은
다른여러 이유로 이재의님의 글에서 보듯 소외와 단절의 도구로
그대보다 더한 아픔으로 존재하는거지.    
은정- 우리가 그렇게 모르고 있었다니...
만회할 길이 있을까?
참. 기차시간에 늦겠다. 몇시차랬지? 나도 같이갔으면 좋겠는데
같이못가는게 아쉬워.
금준- 일부러 밤차로 비둘기호표를 끊었어. 남행열차 안의
사람들을 보다 가까이 접하면서 그곳으로 가려구.
  
  
78.남행열차
  
편집국 열차안으로 바뀌고 거기 금준 타고 있다.
금준-편지를 꺼내읽어본다.
  
1980년. 그때   
사진하나 기사 한자한자   
시청언론검열단을 통과해야만 기사는 신문에 실릴 수 있었어.
단 한자도 그곳을 피해갈수 없었지.
  
세상은 뒤바뀌고있다 했어.
사람들은 서울의 봄을 뒤로하고
잘보이지않는 폭력집단의 손길 안에서
재가 되어가고 있었던 거야.
  
우린 편집국에서 그걸 다보고 있으면서 말하지 못했어.
그날도 우린 엉뚱한 기사로 잘 짜여진 신문을 발행했고
뒤에서 쓰지 못한 얘기로 나라걱정만 조금했던 거야.
  
그게 고작 지성인이며 언론인이었어.
비굴한 인간들.
  
선배들은 굴절되면 너만 손해라고 얘기했지.

잘 견디고 살아남아서 나중에 증언하라는 식의 충고가 고작이었어
현실에 타협하다 기회를 보아
그들이 힘을 잃으면
튀어나와서
그들의 악랄함을 고발하고 나도 피해자였노라 얘기하는 것이
언론의 속성인가?
  
광주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우린 고작 기사안쓰기나 출근투쟁 등으로
양심적(?) 언론인의 체면을 유지하려했어.
  
하지만 보다시피 우리가 쓰지않아도 데스크는
열심히 통신지 잡지 오려서 신문을 만들어냈어.
  
정말 쓸데없는 기사들만이 모여서 지면을 채우고
정작 우리가 알려야할 것은 아무 것도
신문에 나오지 않았어.
  
그래도 아무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결하거나 분신하는 기자나 언론인은 없었어.
  
기사를 안쓴다는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결국 해야할 것은 언론검열단의 눈속임을 해서라도
무언가를 은유로라도 알려야 옳은 것이 아닌가?
  
암호놀이가 시작됐어.
자 이제 시청검열단에 출근하는 저 바보 보안사소위와 나의
암호놀이를 시작하자.
너의 철두철미한 독재수호적인 선입관을 이용하여
나는 지면에 세상을 알릴 수 있다.
네가 생각하는 단어와 나의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진실을 뒤바궈 전달해
낼 수도 있다.
  
나는 다시 적극적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어.
데스크에 앉은 부장은
신아일보및 타사의 다른 동기들이 모두 기사를 안 쓰고
부장, 차장들이 모여 휴지 같은 신문을 만들고 있을 때
내가 다시 하루 몇 건씩의 기사를 취재해서 써 갖고 오자
그냥 기분이 좋았어.
  
하지만 기사는 이제 은유로 쓰여져서
우선 검열단의 보안사장교를 속이고
다시 데스크의 무미건조한 두려움을 속이고
동료기자들로부터 기사 씀에 대한
항의 어린 불평마저 들으며
숨은 암호를 찾아 읽을 수 있는
독자를 향해
쓰여지기 시작했어.
그게 최선이었어.
  
하지만 아무것도 막지도 바꾸지도 못했어.
고작 그게 전부였어.
그게 최선이었을까?
  
옆자리에 졸고있는 남자,술에 취해 금준의 어께에 부딪긴다.
앞자리엔 수아 그리고 그의 친구
둘은 조그많게 연주하며 노래한다.
  
79.영상-두사람의 인터뷰 그리고 영정들 계속된다..
  
80.제대-
여인 찾아온다.
제문을 읽고 소지한다.
그리고 흐느껴 통곡한다.
  
81.영정들 그 이름과 생년월일 직업 묻힌곳
그리고 사인들을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함께했던사람들 하나하나 제대 앞에가 분향한다.
  
막   
      
 
그해 정동길..1차 캐릭터
 
작품은 41년이란 시간 후의 정동길로 다가가서
그 시간을 돌이켜보며 그날로부터 이어온 양심과 정의 그리고
도리에 대한 화두를 삼킵니다.
공연의 공간은 정동길에 있었고 지금도 그 모습그대로 존재하는
언론사 건물과 40년 지나며 변화된 길목 길목이고.
그 길에 다시서고 걸으며
40년전 사람들의 모습을 환시하고 접하며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금 직시하는 같고 다른 사람들의 상념입니다. 
등장인물들은 오늘의 시선으로 그 날의 인물들을 만나고
머물어 접하며 돌이켜보는 조망자들로 구성합니다.
역사를 살아가는 것들 가운데 언론에 대한 의견을 정할 수 잇는 사람.
그리고 기록되어 남은 지면을 찾아서
그 기사를 취재하고 적어 발행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공유하는 이도 등장합니다.
2021년 4월 13일 화요일오전 12:38:48
 
 
1980년5월20일 자 신아일보5면 권석창시인의 풀짐.
[그해정동길]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107번째 작품
2021년5월공연
광주항쟁에 대한 학살이 시작되던 1980년5월20일
검열을 통과하고
중앙일간지 신아일보 5면에 실은
권석창시인의 풀짐.
삼천리강산 방방곡곡에 풀이 자란다.
천지간 내려진 땅 어디에도
서러운 목숨들이 자라고 있다
연한 바람에도
부끄러이 부끄러이
숨으며 쓰러지며
살아오더니
오늘은 저 농부의 지게위에
수북한 풀더미여
쓰러진, 반역도 없이 쓰러진 목숨의 더미여
풀은 풀끼리
잘려진 모가지 끌어안고 헝크러져
서러운 목숨 서러워하며
원망도 없이 원망도 없이
상여처럼 워이 워이
떠메어져 가누나.
2021년 4월 16일 금요일오전 10:27:18
 
그해정동길에 메인테마로 사용하는 곡
whiter shade of pale
 
We skipped the light fandango

Turned cartwheels 'cross the floor
I was feeling kinda seasick
But the crowd called out for more
The room was humming harder
As the ceiling flew away
When we called out for another drink
The waiter brought a tray
And so it was that later
As the miller told his tale
That her face, at first just ghostly
Turned a whiter shade of pale

She said, there is no reason
And the truth is plain to see
But I wandered through my playing cards
And would not let her be
One of sixteen vestal virgins
Who were leaving for the coast
And although my eyes were open
They might have just as well've been closed
And so it was that later
As the miller told his tale
That her face at first just ghostly
Turned a whiter shade of pale
 
She said, 'I'm home on shore leave,'
Though in truth we were at sea
So I took her by the looking glass
And forced her to agree
Saying, 'You must be the mermaid
Who took Neptune for a ride.'
But she smiled at me so sadly
That my anger straightway died
And so it was that later
As the miller told his tale
That her face at first just ghostly
Turned a whiter shade of pale
If music be the food of love
Then laughter is its queen
And likewise if behind is in front
Then dirt in truth is clean
My mouth by then like cardboard
Seemed to slip straight through my head
So we crash-dived straightway quickly
And attacked the ocean bed
 
 
..............................
그해 정동길..점점 더 창백하게 변해가는
 
우린 가볍게 판당고 춤을 추고있었어요.
무대를 가로질러 카트휠기술도 보여주면서..
배멀미를 하는 것 같았어요.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러대며 계속하라는데..
실내는 더 큰 환호로 가득찼고
마치 천정이 떠나갈듯 했어요.
우리가 술을 더 청했고
웨이터가 쟁반에 술을 받쳐왔어요..
하지만 그건 이미 너무 늦은 일.
밀러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그녀의 얼굴이 처음엔 유령처럼 하얗게 질리더니
새하얗고 창백한 모습으로 변해갔다고.
그녀 말로는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다했지만
진실은 그대로 보일 뿐이라했지만
나는 그저 카드게임에만 빠져있었어요
그녀를 속세로 떠나는
열여섯 성녀 중 하나처럼 놔두고싶진 않았어요.
나는 눈을 뜨고있었지만
감고있는거나 다름없었어요.
너무 늦은 일이었어요
밀러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녀의 얼굴이 처음엔 유령처럼 하얗게 질리더니
점점 더 창백하게 변해갔어요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 107 그해정동길 도입부 개요.
 
1979년 10.26이후 비상계엄하에서 전두환 신군부는 12.12구테타로 정권을 장악한 후
1980년 2월부터 정보처를 설치하고
허문도의 아이디어로 ‘언론반’을 가동했다.
언론반은 계엄사령부 보도처의 신문, 방송, 잡지 등 모든 매체에 대한 보도검열을 조종 감독하였다.
언론반장 이상재는 보도검열단을 실질적으로 조종 감독하고
‘K공작’을 실시하여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들을 회유하였다.
서울시청1충에 검열단을 두고 각 지면별로 배당한 보안사장교들의 검열을 통해서
언론기사 총 1,08만 3,696건을 사전 검열하고 2만9천10건을 보도관제하는 등 언론 통제를 강화했다.
 
서울의 봄,안개속 시국 속에서 언론계도 신군부의 언론조치에 대항해서
‘언론검열 철폐와 자유언론실천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전개했다.,
한국기자협회가 1980년5월16일 검열거부 선언문을 발표했지만
이튿날인 5월18일 계엄령의 전국확대를 계기로 무의미해지고
518광주학살을 접한 부,차장이하 평기자들이 며칠간 기사작성을 거부하는 정도의 액션으로
지면엔 아무런 표시도 되지 않는 저항을 다했다.
 
신군부는 언론계의 언론검열철폐와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예의주시하면서
보안사 요원들로 언론의 논조 및 언론인에 대한 비리조사에 착수하였다
신군부는 제작거부 등 언론계가 조직적으로 저항하자 보안사 요원들을 통해 해직대상자 명단을 작성했다.
언론기자들을 국시부정자, 제작거부, 단순제작 거부, 부조리 행위자, 자체 정화자로 구분한 후,
이를 문화공보부가 언론사의 자율결의 형식으로 집행하도록 했다.
‘언론계 정화대상자’ 336명의 명단을 해당 언론사에 통보하자,
8월 각 언론사는 자체적으로 뽑은 명단을  더해서 ‘자체 정화’라는 명분으로
933명의 언론인을 강제해직 시켰다.
그리고 1980년 11월 청와대, 문화공보부, 보안사는 공조해서
언론통폐합을 단행,7개였던 중앙일간지중 신아일보사를 폐간 경향신문사로 통합하고
전국 63개 언론사를 신문 18개사, 방송 3개사, 통신 1개사로 강제 통폐합시켰다.
2021년 4월 21일 수요일오후 01:12:36 
 
그해정동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열흘동안 태업자세로 기사 한 건 안쓰고 출 퇴근만 하다가 마침내 밤새기사를 작성하고 써서
아침 출근길 편집회의에서 부장에게 제출하고
스리지 만들어서 시청 검열단에 다녀온 후 문화면 톱기사로 박스사진첨가해서 윤전기에 돌린 후
12시 초판을 받아들은 날이
바로 그 새벽 도청에 진입한 5월27일 낮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톱기사 곁에 또 하나
밧줄로 묶인 두 사람의 사진과 그것을 풀어내는 예술가의 소극장이벤트가 소개된 기사가
언론검열을 뚫고 같은 1980년5월27일자 중앙지5면에 실렸다는 것까지..
7대 중앙일간지 모두가 부장 차장급만의 기사 메꾸기로 신문을 만들고 있을 때
그 묵언의 약속을 깨고 제일 먼저 기명기사를 써내기로 하고
지난 열흘간 무대 주변을 다니며 취재해온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박스 톱 연극기사를 작성해낸 행위.
발단은 그랬다.
며칠 전부터 편집국과 사내 그리고 언론 검열단 사이에서 유언비어처럼 나돌던 믿기 싫은 이야기.
계엄사가 7개일간지를 각 5만부씩 사서 35만부를 헬기를 통해서 광주지역에 삐라처럼 살포할 계획이 있다는 것.
인쇄속도가 느린 윤전기를 가진 우리사에선
그에 대비해서 몇 시간 당겨서 기사를 마감하라는 지시에
부장,차장들이 바삐 움직이기도 했고
간지는 타 신문사에서 미리 인쇄해오는 방안도 얘기가 오가는 것을 들엇다.
고립된 도시
그래도 이 나라 다른 지역 사람들은 그 처절한 사실을 알고 있으려니 기대하던 시민들 앞에
최후 진압에 앞서서 항복요구를 받기 위한 문선용 삐라역할을 해낼 수 있는 좋은 자료로서
중앙일간지들을 사용하려는 군부.
그들이 간첩이나 공산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서면
그 태극기마저도 모두 지우고
기사나 사진에서 광주시민이나 시민군이란 이름은
모두 폭도라는 단어로 교체해 인쇄케하고.
정치사회면 아닌 경제 문화 체육부기사 어디에서도
광주에 대한 기사 한자도 쓰지 못하게 차단해 버리는 보안대장교들의 검열..
사실 그 열흘간은
그들이 삭제할 기사나 단어도 누구하나 쓰는 이 없어서
오히려 편하게 신문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모두 아무 것도 안씀으로서 그나마의 양심을 찾던 기자들의 행동이
결국 외롭게 단절된 속에서 항쟁하는 광주시민들의 희망을 꺽어 버릴 좋은 삐라가 된다니..
그렇다면 어떻게라도 그들이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려드리려고 다시 쓰기로 결심한 그날.
특별한 검열조차 필요없이 도장 찍어줬던 열흘간 검열단의 문화담당 보안사소위의 안이함을 이용해서
그 기사의 첫 문장에 속임수를 넣었다.
"극소수 몇몇 불순분자들에 의해서 야기되는 혼란."
그들이 사용하고 왜곡시킨 그 당시의 가장 큰 거짓말.
광주를 그렇게 말했고 왜곡했고 언론이 그걸 받아 표현했었다.
중앙지 기자들은  최소한
텔렉스로 타진되어 들어오는 외신과 전송사진들을 보면서
그것이 신군부 정치군인들이란 것을 다 알고 있었다.
 
27일 오전 검열단 보안사장교 앞에 가져간 스리지.
예상처럼 그 첫줄 덕분에 검열단은
여러 희곡작가들의 작품귀절과 대사들이 나오는 그 지루한 기사를 거의 삭제없이 통과시켰다. .
기사는 그 두 번째 문장에서
"그 불안정한 속에서 문화계가 받는 타격도 커서 극계의 불황도 절정에 달했다."하며
계엄하 서울 5월18일부터 26일 사이 공연되고 취소되는 여러 연극공연장의 이야기를 전개시킨 후
마지막 문장에서
 "자유의 고귀함과 그 추구방식, 완전한 자유에의 갈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승 화된 예술로 표현해내는
「빠알간 피터...」의 무대는
허튼 강요조의 논문보다 몇 배의 설득력을 은연중 안고 있다.
 사회참여로서 철학, 소설, 희곡, 비평, 정치적 행동에 이르기까지
20세기지성의 대표적 위치에 섰던 사르트르의 세계 또한
오늘 우리에게 새롭게 인식되는 의식이다. "
하고 누구의 말도 아닌 기자 자신의 논지를 적는 우를 즐거이 범하면서 박스기사를 정리했다..  
41년이 지난 5월연작 107번째 작품을 준비하면서 꺼내보고 내심 놀랐다.
1980년5월의 그 열흘간
그때 7개 중앙지 중 한 신문 문화면엔
5월광주를 어떻게든 알리고 동참하고 싶었던 몇몇 연극인들의 현장과
그것을 찾아다니면서 어떻게라도 함께 하려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려
검열단을 통과해서 활자화시킨 신문기사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모두 지워지고 삭제된 지면으로 왜곡만이 인쇄됐던 그 시간에
암호처럼 검열을 뚫고 지면에 실려서
1980년5월의 역사 속에 마치 가짜기사처럼 남겨진 일곱 번째 종합지 문화면 기사들..
 
그해 정동길을 돌이켜 걸으며 찾아보는
좁은 정문에 세워진 장갑차와 숙영 계엄군들에 게 내어준 사옥마당을 통해 출근해서
아무도 모르게 2백자원고지에 세로로 적어가던 취재기사.
그리고 편집국과 미로처럼 만들어진 지하공장 조판실과 2층 조사부를 오르내리며
스리지 만들어 쥐고 정동길넘어 시청 검열반을 오가며 마감 후 윤전기돌려 찍어낸
41년지나 지금 봐도 부끄럽지 않은 5월의 신문 한면.
그 해가 을 언론통폐합으로 사라진 어느 언론사 편집국 문화부의 얘기.
2021년 4월 25일 일요일오후 01:54:30
 
  그해정동길 작업 위한 그날아닌 날에도 공연대본중에서 편집국 부분 
1. 5월 3일 토요일 오전 8:30분 날씨 쾌청
 
현경, 우편물을 들고 경쾌한 걸음으로 등장한다. 콧노래가 절로 난다.
현경 : 신난향 씨 일찍  나왔네요, 어머, 머리했네. 단발도 잘 어울린다.
오늘 좋은  일 있나? 누구, 친구? 들러리가 신부보다 더 예쁘면  안되는데... 어디?
(옷에 묻은 얼룩, 혹은  티끌을 떼낸다.)... 고마워. (원고를 든다.) 김선배?...
오늘  늦게 출근하려나 보지? ... 응. 알았어.
 
각 책상에 우편물을 나누어 놓은 후 자신의 우편물을 개봉해 검토한다.
원고를 정리하고  미다시를 수정한다. 사진을 고르고 사진 설명을 단다.
부장출근
쾌활한 아침인사. 유쾌한 농담.
'엠마뉴엘'로 모닝 커피를 4잔 주문한다.
부장, 김기자의 안부를 묻는다.
현경 : (김선배의  원고를 건네며) 부장님, 이거 퍼스트  레이디 김선배  기사구요,
영화진흥공사로 바로  출근한다고 전화 좀 부탁한데요.
 
부장,  편집회의를  주재한다. 신기자와 현경에게서 기사설명과 원고를 넘겨받는다.
 
현경 :  (「푸른 교실」원고와 사진을  건넨다.) 어린이의 해,어린이 날인 만큼 소외된 아동들의  얘기를 실었으면 합니다.
이건 창립  10주년을 맞은 YMCA 영등포  지회 「푸른 교실 」 취재기산데요,  
근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인간관계를 풍부히 하는 프로그램을 1천회가 넘게 운영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그리고 이건 「한벗회」에서 꾸미는  골목무대 기산데 사당동 판자촌 등을  돌아다니며
불우 어린이를 위한 무료공연을 한다고 합니다.
 
한벗회 사진이  없음을 깨닫고  조사부에 전화.  사진
받으러 퇴장. 들어오며
(신기자에게) 나가? 편집부  가는 거면 이것 좀...  아니다, 내가 갈게. 다녀와요~   
분주한 편집국의 모습
 
부장, 김양삼 기자로부터 전화로 기사를 전송받고 있다.
부장 : 오늘 점심은 김양삼이가 비싼걸로 한 턱  낸다는데 점심약속 없지?
현경 : 왜요? 오늘 김선배 생일인가?
부장 :  어제 시사회 다녀왔쟎아.  촌지가 짭짤했나봐.   이거 편집국에 가져다 주고 중요한 거니까 좀 키워달라고해.
현경 : 이거  어제도 나간 기사쟎아요. 다른  기사도 많은데... 그리고 내용도 없는데 톱으로 가요?
부장 : 그럼  어떻해? 특별히 부탁받은 기산데 ...(잠시  고민)
내용이 별로  없으니까 여기 출연자  누구 누구 누구 누구를 마루사진으로 넣어서 지면을 키워. 빨리 넘겨줘
현경 : 이거 뭐, 자료사진인지 사진설명인지 모르겠군
 
부장, 김양삼 기자의 퍼스트 레이디 기사를 전화로 처리
현경, 편집부로 교정부로 공장으로 바쁘게 다닌다. 책상에서 원고를 챙겨 검열단으로 가려다
"참, 저... 부장님, 저 점심같이 못하겠는데요, 김  선배한테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
교정부 '관료제도의 문제와 해결책' 꺽쇠 부분 (5.21.)
 
 
그해정동길 작업 위한 그날아닌 날에도 공연대본중에서 편집국 부분 
2. 5월 27일 화요일 오전 10시 날씨 최류탄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들어오는 현경 휴지로 코를 푼다.
교정부로 -외면당하는 전통예술 들고 있는 게다시와 교정부의 스리지를 비교하며 교정한다.
 
첫째  문장에 꺽쇠가  빠졌거든요. {위축일로를  치닫고 있는 전통예술과 생사의 기로에 선 예술인들.}
예. 그리고 두  번째 문단 첫머리에
{사회의 냉대 속에 일반대중과의 접촉이 완전히 끊기다시피 된데다 천대를 받으면서}에서
된 데는 어이고 천대는 아이거든요.  예 천대.  대머리할 때  대 짜요. ..그리고 또 천대가 나오죠  
그 문단 끝무렵 {유일한 활로인  방송국조차도 외면하거나 천하고  있다.}
그 천대도 대머리  할 때 대자고 바꿔주세요.
예  됐습니다. 아 참 연극 좋아하세요?  
표( 「1980년 5월」, 공간사랑.  평일7시 토요일 4시 7시)가  있는 데 보러 가실래요?
어제 봤는데 공연  좋더라구요...  수고하십시오.
 
편집국에 들어선다. 책상에서 전화메모 발견. 전화를 건다.
*동료들의 항의전화
응 한기자, 나야. 전화했었어?

......
.....그렇지 않아.
무책임하지
......
그건 더 무책임하지
기사를 안쓰면 신문이 안 나오냐? 잡지 오려 붙인 이상한 신
문이 되쟎아.
.....어쨌든 난 잡지 베낀 신문을 낼 수는 없어.
.....
아- 그게 아니라니까. 끝까지 잘 읽어봐. 그리고 잘 생각해봐라,
극소수 불순분자가 누구냐? 그야말로 극소수 불순분자지. 안그래?
....아무튼 저녁에 만나서 얘기하자구...
 
부장, 들어서면 광주에 대한 걱정
 
* 장석원 이벤트
기사 중 한 문장정도를 읽었으면
이현경: (사진을 보며)   조사부죠...조부장님! 저 문화부의 이현경입니다.
장석원 이벤트  사진이요, 지금 이 사진 말고 다른 걸 썼으면 해서요.
공연 사진 중에  두 손이 뒤로 묶인 거 있죠.
예,  맞아요...온몸이 밧줄로  결박된 배우  둘이서 서로 끊어주는  장면이요.
예...  금방  될까요?   
예?  고문단이요? 아...검열단이요... 제가 알아서 할께요. 아이 조부장님. 부탁드립니다.
예... 헤헤.  그럼 10분 후에 수현이를 보낼께요. 조부장님 고맙습니다.
 
이부장: 이현경이! 너무 과격한 거 아냐?
이현경: 미리 겁먹을 필요 있나요? 짤리면 그 때가서 바꾸죠
뭐. 부장님  그렇게 걱정했던 「무덤없는  주검」기사도 결국 살았쟎아요.
(씨알의 소리 원고와 사진을  이 들고 있다.)
근데 부장님 오늘 가 보니까 검열단  보안 소위가 바뀌었더라구요,
아무래도 어제 그 토선생전 연극기사땜에 짤린거 같아요.
이부장: 뭐...?  문어 나오는 거? (어제 신문을 펴 본다.)
이현경: 사실, '대머리 문어' 부분은 제가 생각해도 좀 과격하 다 싶었는데
끓는 물에 데쳐 죽는 부분까지 살았쟎아요...
이부장: (신문의  은유기사 부분을 읽는다.) 예술은  예술이어야 하되  
사회와 고통에 대한  강건너 등불식 무관심일 수는 없다...
폭력으로 흥한자는 폭력으로  망한다....아무튼 아슬아슬 해. 이  현경이, 조심해.
부주의해서 흥한 자는  부주의해서 망하는 거야.그나 저나... 검열단 다녀왔지?
 
* 씨알의 소리 창간 10주년 기념 기사
       왕창 짤렸어요... 아니, 함석헌  님 성함 내보내지 말라고 보도지침 내려왔었어요?
왜  난 못봤지? .... 누구 누군데요.  함석헌, 김대중, 문익환, 백기완...   아휴 젠장 이걸 어쩌지? 젠장!
이부장: 이거 3분의  2가 짤렸네, 이 기사  안 되겠는데 빼야겠어. 이 현경이! 이거 말고 딴 기사 없어?
이현경: 부장님, 그러지 말고 사진을 키우죠?
이부장: 사진을? 이 책표지 사진을? 아무리 그래도 반이상을 어떻게 사진으로 채우나?
이현경: 창간  10주년을 기념하는 내용이니까 책표지를  키우는 게 당연하죠. 한 6배 정도만 확대하면 되겠는데요 뭐.
이부장: 이정도 키우면 글  차례 글씨가 보일텐데, 여기 문제될 내용이 있으면.......
이현경: (말을  막아서며) 검열 통과 한거니까  문제 없을 겁니다. 검열단에서 오케이 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긴다  해도 통과시킨 보안사 소위의 책임이지
검열받으라 해서  꼬박꼬박 검열  받은 우리  책임은 아니죠.
부장님 사진을 키우죠 네? 네? 네?
이부장: .....
이현경: 지금  태업 중이라 업무도  늦어지고 있어요.
마감시간 다 됐는데 언제 기사 만들어서 언제 검열 받습니까?
이부장: .......
이현경: 이거 우리 신문만 나가는 특종이란 말이예요.
이부장: 그럼 그렇게 해.
이현경: 제가  연락하죠. (편집부에 전화를  건다.) 편집부죠?
문화부 이...여보세요, ...  여보세요... 에이. 그냥 다녀오겠습니다.
교정부- 씨알의 소리/ 연극기사- 토선생전
 
그해정동길 작업 위한 그날아닌 날에도 공연대본중에서 편집국 부분 
3. 7월말 오후5시 날씨 찜통더위
 
부장, 달력을 넘기며  시국을 걱정한다. 자리에 앉아 신문 미다시 등을 읽으며  
김양삼 기자와 시국을 논한다.  성냥을 쌓으며
이부장 : 김대중이가 간첩이라...개나  소나 다 잡아들이는 구만. 큰일이야 큰일.
 사회 정화도 좋지만 이거 엄한 사람까지
다치는 건 아닌지 몰라. 대통령 되기  힘들구먼 등 등의 시국 관련 걱정 한참
       어? 단성사 얘네들 이거 너무하는구만. 이거 조선일보 반도 안돼잖아?
 참 나 위에서  한 소리 듣겠구먼.  안 되겠어.
       "단성사죠? 광고 영업부  박대리 좀 부탁합니다. ...
박 대리 이거 섭섭합니다.  무슨 소리라뇨? 광고 말 입니다.
       위에서 보면 나만 쪼이는 거 박대리도 알면서 ...  
어려우면 다 같이  어려운거지 조선, 동아는 덜 어렵고  신아일보만 특별히 어려운가?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도 말고 일 더  커지기 전에 잘 생각해서 처신하슈.  자꾸
       이러면 재미없어. 술? ...  술은 뭐... 알았어, 알았고 좀 신경좀 써주쇼. 예."  진작에 그럴 것이지.
 
현경, 등장. 간식거리가 들려 있을 수도 있다.
현경 : 게걸음으로 다니는 것도 한두 번이지...
코딱지 만한 신문사 정문에 장갑차를 들이밀어 놓으면  어쩌라는 거야. 스몰
사이즈 장갑차 없나?
부장 : 계엄이  해제되야 그 꼴을 안보지.  그게 언제가 될런 지...
현경 :  공수 군인들 때문에  양치도 못하겠어요. 신난향  씨, 수돗가 가봤어요?
신난희, 부장, 한마디 씩 거든다.
 
부장,   외국 잡지를
뒤적이며 기사거리를  찾고 있다.   휴가 얘기, 유니버스 얘기, 연예계 스캔들이 간간히 섞인다.
 
이부장 : 김양삼이, 이거  어때? 사진 괜찮은데.
'우아한 액세서리-파리 액세서리 전문  디자이너의 사르르 주르단이 고안
한 악어  가죽으로 만든 모자와  장갑. ' 괜찮지. 이건  또 어 때? ....
이건?  이건? (읽는다. 김기자 맞장구 친다.)
이현경 :  신문은 잘  팔리겠군요. .....(참다  참다).....부장님!... 그거 좀 심한데요.
이부장 :  어쩌겠어. 신문은 만들어야  하는데
기자들이 전부 데모하러 다니고 윤전기는 섰으니..... 나참, 일간지 역사상 발
행이  중단된 신문은  우리신문사 뿐이란다.  아니, 김양삼이,
도대체 월급을 몇% 올려 달라는 거야?
(김양삼, 응수한다.) 이현경이는 왜 데모 안하나?
(현경, 알 듯 모를 듯한 미소)
이런 월급올려 달라고 데모할 시간  없다 그거지? 하긴, 데모 할 일은 따로 있지...
그래 기사거리는 뭐 좀 찾았나?
 
현경, 신채호 관련 기사 설명. 그 외 토막기사들
       종교계, 세계 3대  종교 공통점있다. 살인말라」「거짓말 말라」등.
       기록자 입장따라 판이한 역사
       죽음에 무관심한  현대인 -자신과는  상관없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
 
부장, 「원로를 찾아서」를 읽는다.
이현경 : 아예 「어용을 찾아서」라고 제목을 바꾸죠.
이부장 : 이현경이, 좀 심하구만. 이현경 : 부장님, 이거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이부장 : 나라고 별 수 있나? 위에서 실으라고 원고 채로 내려온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누군 이런 거 싣고 싶어서 싣나?
이현경 : 그리도 부장님이 막아야지 누가 막아요?
이부장 : 모르는 소리  말게. 내 말이 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냐.
       현경, 원고를 계속 쓴다. 92-3430 부탁합니다.  
       극단 '에저또'죠... 저 신아일보 문화부기자  이현경입니다. 안녕하셨어요?  
오늘 「뱀」공연 보러 가고  싶은데 공연 있나요? 예...  저... 어제 문제가 있었다던데...
 공륜요... 줄줄이  잡혀 들어가는 장면이 걸린 건가요?  
그래서 어떻하기로 했나요?  쇠사슬만 없애면 줄줄이 잡혀 들어가도 된데요?
이거 원 공연하게  해 준 걸 감사해야 되는 건지 ...  그럼 7시 공연 맞춰서 가겠습니다.
뵙고 저녁에 할머니 집에서 소주 한 잔 합시다. 예.
 
       현경, 가방들고 퇴장.
교정부- 원로를 찾아서 (8.26.)
 
그해정동길 작업 위한 그날아닌 날에도 공연대본중에서 편집국 부분 
4.9월 2일 화요일 오전 11시 날씨 -부슬 비
 

현경, 비젖은 우산을 들고 등장. 기사 준비로 분주하다.
이현경 : 72-6890 부탁합니다.
 여보세요? 이강백 씨네  댁... 안녕하세요. 전 신아일보 문화부 이현경입니다.  
전에 전화드렸었죠? 네? 저  침묵극 때문에 인터뷰...  
예. 오래 안 걸려요. 그냥  침묵극을 하게 된 배경하고요,
침묵극의 특징 정도만  여쭤보려구요. 2시 어떠세요? 여기 위치 아십니까? 정동교회 아시죠?
거기서  MBC 쪽으로 조금 올라오면 국제신문사 빌딩이  보입니다.
그 바로  옆 건물 붉은  벽돌 건물 4층입니다.  예 고맙습니다. 그럼  이따 2시에 뵙겠습니다.
* 취재차량 지원 신청
이현경 : 배차계 부탁합니다. 저 문화부 이현경입니다.  1시에 취재차량 지원 좀 받으려고요.
네?  용달차요? 1시 전에 들어올 승용차도 없구요? 그럼 2시 까지...
없어요? ... 사진기자랑둘이 가야  되는데 어쩌지? ... 신림동이요...  할 수 없죠,  뭐. 제가 뒤에 타야죠.  
아 참, 배달이 3시죠? 용달차는 그때까지 들어와야 하쟎아요...그럼 올 땐 어떠하죠? ...
다른 신문사 차 얻어 타야죠, 뭐. 네 수고하세요. 김선배, 혹시 취재차량 증강계획 없대요?
부장님한테 건의  한 번 해보라고 말씀드리세요.  포니 4대로어떻게 취재를 다녀요.
정치부, 사회부 차 타고 나가면 문화부는 매일 용달차 신센데...
우리는  그렇다 쳐도 사진기자들 한 테 미안해서  취재가자는 말도   못하겠어요.  
그래도 김선배가 제일 선배 쟎아요...
 
부장, 등장.
(신기자로부터 긴급하게 전해 듣는다) 나? ...
국장님이? 부장, 국장으로부터  대통령 취임  기념 수필에  관한 사항을 지시받는다.
 
현경, 사진기자 섭외- 조사부 박기자, 12시 30분 정문 앞 등
이부장 : 오늘 4면은 기사 다 찼으니까 5면에 실을 연극단신 빼고 나머지는 내일 실기로 하지
이현경 : 아니, 왜요?
이부장 : 전 대통령 취임 기념 수필이 전면에 나가야 돼..
조사부죠... 전대통령 취임식  사진 올 칼라로 빨리  좀 해 주십시오.
칼라가 선명히 나와야 된다니까 신경  좀 써주세요. 부탁합니다.
이현경 : 경사 났군. 지난 금요일날  전두환의 어제와 오늘 -
유년시절-나갔잖아요.
이부장 : 김효자씨? 예  저 신아일보 문화부장 이승석입니다. 부탁한 원고  다 됐나요?
예 그럼  저희 기자가 지금 받으러 가겠습니다.
신난향이, 원고 좀 받아와. 법원 앞에서 이리 전화하면 가지고 나올 꺼야. 갈 때  조사부 들려서 사진 받아가고  오다가 검열
단 들려 와. 12시까지 넘겨야되. 자, 신문 게라지 나왔으니까 각자 확인해 보라구.
 
현경, 받아서 김선배에게 나누어 준다.
이부장 : (동아그룹 광고를 읽는다. ) 얘네 이제 텄네, 텄어.  
 
미다시의 수정과 보완을 부탁하는 전화
현경 : 여기... 「원로를 찾아서」취재기자에 제 이름이 들어갔어요.
부장 : ....
현경 : 아니, 부장님...!
부장 : 자네가 학술담당 아닌가?
현경 :  아니 그게 말이  되요? 학술담당이라고 쓰지도  않은 기사에 이름을 도용해도 되는 건가요?
부장 : 그럼 어떻하나?  미안하게 됐네. 국장님이 담당기자 이름을 꼭 써야 된다면서... 시간도  없고 해서 자네
한테 얘기도 못하고 원고를 넘겼네.  
우리 신문사가 스스로 취재한  것 처 럼 보여야 된다면서 얼마나 성화를 부리던지...
현경 : 그거야 제가 알 바 아니죠. 그리고 스스로 쓴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보여야 하죠?
그렇게 내보내고 싶으면 그냥 국보위에서 꼭 쓰라고 했음 하고 내보내는 게 차라리 귀엽지 않나요?
현경, 돌연 벌떡 일어선다.
부장 : 어디가나?
현경 : 화장실이요.
 
잠시 후 다시 들어와서 우산을 챙기며
왜 비까지 부슬부슬 오는거야!
교정부-전두환의 유년시절/ 동아그룹 취임 광고
 
그해정동길 작업 위한 그날아닌 날에도 공연대본중에서 편집국 부분 
5.11월9월 5일 수요일 오후
 
부장, 다른 신문사 부장과 전화를 하고 있다.
 
부장 : 신문들이 자기 대통령 만들려고 얼마나  띄워줬냐?
그 래... 쓰는  사람들도 속이 뒤집혔었다구  ...
멀쩡한  신문사를 왜 없애는 거야? 윤전기,  지금 오는 중이라니까?! 그 윤전기 어떡하냐?
그래...  그 윤전기  비치한다고 붉은  벽돌 모아서 신관 증축하고  있쟎아. 그래.... 참나.  
경향신문사 가도  별거 있겠냐? 가봐야  뻔하지. 문화부 부장이  둘 일수는  없쟎아...
이거 끽소리도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짤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어휴 죽겠다, 죽겠어.  
어떻하긴 뭘 어떡하냐? 사표쓰고 경향신문사로 입사지원서 내야지.
다른 애들은  어떻한데? DBS는  어떻대? TBC도?  문화방송 살은 것도 신기하군.
 CBS는? 거긴 그래도 좀 낫네....
 
현경 등장. 자리에 앉는다.
부장, 현경을 의식하며 전화를 끊는다.
 
이부장: (제법 담담하게) 들어오면서  봤지? 여러분들도 아다시피
우리 신문사가 경향신문사로 합쳐지게  되었다.
25일 부로 종간되고 15년 신문사문을 닫게  되었다.
각자 사표준비하고 경향신문 희망부서 지원서와 함께 제출하도록...
아울러서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아듀  80]이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하려 한다.
 지난 1년간 문화계를 정리, 평가하는 기사들을 부탁하네. 김양삼이는  영화 여성 방송계를,
이현경이는 연극, 출판, 학술계를 맡아 주게. 달력을 보며 일정을 설명한다.
 
현경 :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해 자진 폐간
 한다니, 우 리 신문만 불건전 신문이라는 건가요?
지방지를 하나로 정리 하는 건  그렇다 쳐도 중앙지  중에서 우리 신문사만 없애는 이유가 뭐죠??
쬐그만게 만만하다 그건가요?
부장 : 이건 루먼데 이순자 때문이라고
현경 : 예?  데스크에서 그만큼 충성했으면 할만큼 한 거  아 녜요?
부장 : 그게  아니라 ... 이순자 친인척  중 한 사람을 모르고 건드렸나봐. 사회부  기자가 기사를 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까 이순자의 먼 친척이라 이거지.
현경 : 그것 때문이겠어요? 손바닥 위에서 주무르고  싶어 그런거지.
말 잘듣는 애들만 추리겠다 ....!
....
현경: 부장님, 점심이나 먹으러 가죠. 제가 살께요.
교정부-25일5면 신아일보15년 발자취를 돌아보며
 
그해정동길 작업위한 그날아닌 날에도 공연대본중에서 편집국 부분 
6.11월30월 일요일 오후  날씨-바람많고 굉장히 추움
 
현경, 사무실 물품을 박스에 정리한다.
부장등장. 내일 12시 문화체육관 집합/ 사표, 희망원  제출 독 촉
현경 : 사표는 지난 번에 냈습니다.
부장 : (화를  내며) 정말 이러긴가? 그건 사유가 안돼.  
경향 신문사에 가지 않기  위해 사표를 쓴다는게 말이 돼?
그러지 말고 일신상의 이유라고  사유를 달아서 다시 쓰게.  
자네 때 문에 내가 얼마나 곤란한지 아나? 회사가 발칵 뒤집어 졌어요!
현경 : 하지만 저는 일신상의 이유가 없습니다.
부장 : (달래며) 이현경이,  자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네. 그 걸 왜 모르겠나.
하지만 지금당장만 생각해서는 안되네. 보다
멀리 봐야지.  무엇보다도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지금 포기하면  여기서 끝이지만 살다보면 또  좋은 날이 올지 누가 아나?
인생살이 새옹지마라고 앞일은 정말 모르는  걸세. 끝까지 살 아 남아야 뜻하는 바를 펼칠 수  있는거야.
중도에서 그만 두는 건 어쩌면 책임을 방기하는 거야.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
다 자네를  걱정해서  하는 소리니까 허투로 듣지 말고 새겨 들어. 나도 이제 더  이상은 할 말이 없네.
내 얼굴을 봐서라도 다시한번 잘 생각해 보길 바라네.
 
현경 : (마지막  인사를 한다.) 그 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박스를 들고 퇴장.)
2021년 4월 25일 일요일오후 06:45:25
 
 

언론인 정화 결과 (1980. 8. 16, 문공부 작성)
해직언론인 782명 명단
*각 사별 해임내용
△ 각 사별 해임 현황은 다음과 같음
경향신문 그룹(경향신문, MBC) - 임원·논설진 12, 편집·보도요원 88, 사무사원 24, 계 127명
동아일보 그룹(동아일보, DBS) - 임원·논설진 2, 편집·보도요원 27, 사무사원 3, 계 32명
중앙일보 그룹(중앙일보, TBS) - 임원·논설진 2, 편집·보도요원 27, 사무사원 2, 계 31명
신아일보 - 편집·보도요원 29, 사무사원 1, 계 30명
서울신문 - 임원·논설진 1, 편집·보도요원 13, 사무사원 35, 계 49명
한국일보 그룹(한국, 서울경제, KOREA TIMES 등) - 임원·논설진 4, 편집·보도요원 25, 계 29명
조선일보 - 편집·보도요원 5, 계 5명
KBS - 임원·논설진 4, 편집·보도요원 86, 사무사원 45, 계 135명
기독교방송 - 편집·보도요원 12, 계 12명
합동통신 - 임원·논설진 1, 편집·보도요원 13, 계 14명
동양통신 - 편집·보도요원 8, 계 8명
현대경제 - 편집·보도요원 34, 사무요원 1, 계 35명
내외경제, KOREA HERALD - 편집·보도요원 14, 사무요원 1, 계 15명
무역통신 - 편집·보도요원 2, 계 2명
※ 경제통신, 산업통신, 시사통신, 매일경제는 불포함
※ 위 집계에서 1,2차 정화대상자를 일괄처리한
동아일보 이외 언론사의 2차 정화대상자(비위 지방주재기자)는 포함되지 않았음.
 

◆ 정화언론인 급수별 명단
A급 총 12명
△ 동아일보
박권상(논설주간)
- 80. 2. 25 김대중 정계출현 부각을 간접 지원
- 본명은 평소 대정부비판자세 견지자로서 특히 80. 4. 17 선언채택 당시 투위 복직 문제에 배후 조종
윤재걸(출판국 기자)
- 본명은 74. 3 동아투위 가담자로 80. 4 자유언론실천을 위한 선언문 채택, 투위 복직 주장
- 80. 5 제작거부 주동인물

△ 한국일보
박 실(정치부 차장)
- 본명은 74. 10. 24 언론자유수호 선언 시 주동
- 평소 반정부 성향 포지자로 특정 정치인(김대중)지지
이 형(논설위원)
- 본명은 74. 11. 27 민주회복국민회의 동조 및 자유실천문인협회 101인 선언문에 서명
- 평소 반정부 성향 포지자로 특정 정치인(김영삼)지지
김용구(논설위원)
- 본명은 74. 10. 24 언론자유선언 시 지지사설 억제에 반발, 집필거부 주동
- 77. 12. 10 반공법 위반자 이영희 교수 구제탄원서에 서명

△ 중앙일보
김승한(주필)
- 본명은 김대중과 71년 대통령 선거 시부터 유착된 자로 평소 현정부 시책에 불만 포지
- 80. 5 중앙·TBC 기자 취재거부 당시 배후 조종

△ 합동통신
박석기(리더스다이제스트 부주필)
- 본명은 75년부터 미 CIA요원에게 국내 각종 정보 제공
- 80. 5 제작거부 당시 동사 기자들을 선동 후 배후 조종
이문승(외신부 차장)
- 본명은 78년 김태홍이 조직한 ‘독서회’에 가입, 막스레닌주의 이론 외 다수 불온 책자 탐독
- 80. 5 제작거부 주동인물

△ 동양통신
조홍래(외신부장)
- 본명은 평소 반정부 성향 포지자로 80. 5 제작거부 선동후 배후 조종

△ 국제신문
최식림(전무)
- 본명은 정계진출을 목표로 기반구축을 위한 정실인사와 사내 정화작업 시, 자파를 제외하는 등 시대적 사명감 결여

△ 영남일보
이종명(편집국장)
- 본명은 K·T 복권 이후 K·T와 유착, 차기 정가에 진출 기도한 자임
안유호(사회부장)
- 본명은 김대중에게 4백만원을 정치자금으로 헌금하고 친서수령하는 등 김대중 극렬지지자임

B급(총 97명)

△ 경향(4명)
김00(원주주재기자·범법), 이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홍수원(외신부기자·제작거부),
박성덕(편집부기자·제작거부)
△ 동아(8명)
최일남(편집부국장·제작거부), 김재홍(외신부기자·제작거부), 최맹호(사회부기자·제작거부),
배인준(사회부기자·제작거부), 이00(부산주재기자·파렴치), 심송무(사회부기자·제작거부),
강성재(정치부기자·제작거부), 김용정(경제부기자·제작거부)
△ 중앙(6명)
최형민(편집부기자·제작거부), 이흥재(편집부기자·제작거부), 김원태(편집부기자·제작거부),
신00(제주주재기자·부조리), 김00(여수주재기자·부조리), 김동호(편집부차장·제작거부)
△ 신아(2명)
김동진(편집부차장·제작거부), 이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 서울(3명)
송효익(교정부기자·제작거부), 박00(마산주재기자·파렴치), 김00(대구주재기자·부조리)
△ 한국(4명)
김영호(경제부기자·제작거부), 채의석(사회부기자·제작거부), 임재경(논설위원·제작거부),
노향기(사회부기자·제작거부), 이00(전남지사장·부조리)
△ 조선(2명)
김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박00(광주주재기자·범법)
△ MBC(5명)
임동훈(경제부장·제작거부), 김정명(편집부차장·제작거부), 노성대(보도부국장·제작거부),
오효진(사회부기자·제작거부), 임00(TV제작국장·부조리)
△ DBS(3명)
김 근(사회부기자·제작거부), 백환기(해외부기자·제작거부), 천승준(방송위원·제작거부)
△ TBC(1명)
정홍렬(외신부기자·제작거부)
△ KBS(5명)
김정남(포항방송국장·제작거부), 송00(여수방송국장·부조리), 이00(부산보도실장·부조리),
강00(전주보도실장·부조리), 박00(제주보도실장·부조리)
△ CBS(3명)
이재천(사회부기자·제작거부), 송택주(부산방송부장·제작거부), 임현모(부산방송기자·제작거부)
△ 합동(5명)
고승우(사회부기자·제작거부), 윤후상(사회부기자·제작거부), 정수용(사회부기자·제작거부),
박원근(외신부기자·제작거부), 정동채(편집부기자·제작거부)
△ 동양(2명)
임한순(외신2부차장·제작거부), 김영진(외신부기자·제작거부)
△ 국제(4명)
조00(사회부차장·부조리), 조00(편집부장·부조리), 박00(사회2부장·부조리), 김택환(편집부국장·제작거부)
△ 부산(4명)
박00(논설주간·부조리), 김형식(편집부차장·제작거부), 김성훈(외신부장·제작거부), 최주식(편집국장·제작거부)
△ 경기(3명)
조00(편집부국장·부조리), 김진동(논설위원·제작거부), 이00(지방부차장·부조리)
△ 강원(3명)
이00(정치부장·부조리), 황00(영동취재부장·부조리), 유00(정경부장·부조리)
△ 충청
이00(편집부국장·부조리)
△ 대전(5명)
권기열(정치부장·제작거부), 조00(정경부장·부조리), 성기훈(편집부장·제작거부),
윤00(사회부장·부조리), 김00(사회2부장·부조리)
△ 경남(2명)
손00(편집국장·부조리), 최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 경매(4명)
이00(편집국장·부조리), 하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이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남00(사회부장·부조리)
△ 영남(3명)
이00(지방부장·부조리), 이00(정경부장·부조리), 장수영(상주주재기자·제작거부)
△ 전북(2명)
서00(정치부장·부조리), 김00(이리주재기자·부조리)
△ 전남(3명)
박인성(주필·제작거부), 김석학(문화부장·제작거부), 장기웅(논설위원·제작거부)
△ 전매(4명)
문순태(편집부국장·제작거부), ★★양부량(사회부차장·제작거부), 이홍재(논설위원·제작거부), 서재일(논설위원·제작거부)
△ 매일
황00(경주주재기자·부조리)
△ 제주(3명)
최현식(편집국장·제작거부), 김00(편집부국장·부조리), 김규필(정경부장·제작거부)
△ 내외경제
문준철(편집국장·제작거부)

C급(총 602명)
△ 경향(30명)
조상기(사회부기자·제작거부), 고경석(문화부기자·제작거부), 김00(사회부기자·부조리),
김00(사회부기자·부조리), 김효선(사진부기자·제작거부), 이진우(대전주재기자·제작거부),
노00(안동주재기자·부조리), 전00(강릉주재기자·부조리), 이00(광주주재기자·부조리),
김00(주내보급소장·부조리), 송00(제천주재기자·부조리), 박옥재(광주주재기자·제작거부),
김00(정경연구위원·부조리), 정00(편집2국장·부조리), 신00(편집부장·부조리),
장00(조사1부기자·부조리), 임00(조사2부기자·부조리), 기00(취재부차장·부조리), 이00(조사부국장·부조리),
서00(정리부장·부조리), 김00(주필·부조리), 이00(논설위원·부조리), 강00(논설위원·부조리),
조00(조사부차장·부조리), 이00(조사부차장·부조리), 김00(정경연구소장·부조리),
이유환(편집부기자·제작거부), 김충용(편집부기자·제작거부), 윤덕한(외신부기자·제작거부),
김00(목포주재기자·부조리)

△ 동아(15명)
김00(논설위원·부조리), 이00(정치부기자·부조리), 박00(대전주재기자·부조리),
신00(광주주재기자·부조리), 이00(천안주재기자·부조리), 사00(속초주재기자·부조리),
김00(마산주재기자·부조리), 조00(기획조정위원·부조리), 이경재(정치부기자·제작거부),
이00(대전주재기자·부조리), 박병서(문화부기자·제작거부), 전만길(사회부기자·제작거부),
김성익(정치부기자·제작거부), 한00(기획위원·부조리), 박00(기획위원·부조리)

△ 중앙(14명)
황영철(지방부차장·제작거부), 전희천(편집부기자·제작거부), 전택원(편집부기자·제작거부),
허 련(출판부기자·제작거부), 정연수(출판부기자·제작거부), 방인철(문화부기자·제작거부),
이00(이리주재기자·부조리), 탁00(장성주재기자·부조리), 최돈오(편집부기자·제작거부),
박준영(사회부기자·제작거부), 김00(사회부기자·부조리), 조00(사회부기자·부조리),
김송번(편집부기자·제작거부), 이춘욱(출판부기자·제작거부)

△ 신아(34명)
김00(포항주재기자·부조리), 이00(광주주재기자·부조리), 차00(성남주재기자·부조리),
하00(장성주재기자·부조리), 이00(대전주재기자·부조리), 김00(대구주재기자·부조리),
한00(전북주재기자·부조리), 김00(여주주재기자·부조리), 성00(진주주재기자·부조리),
이영만(체육부기자·제작거부), 신충우(사회부기자·제작거부), 이00(안양주재기자·부조리),
조00(춘천주재기자·부조리), 김00(동해주재기자·부조리), 김00(대전주재기자·부조리),
박00(전주주재기자·부조리), 이00(제주주재기자·부조리), 김00(충주주재기자·부조리),
이00(안동주재기자·부조리), 최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김00(여수주재기자·부조리),
송00(함양주재기자·부조리), 정민철(경제부기자·제작거부), 엄영철(지방부기자·제작거부),
최용현(사회부기자·제작거부), 강두모(사진부기자·제작거부), 김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홍00(사회부기자·부조리), 이00(사회부기자·부조리), 이00(사회부기자·부조리),
박00(사회부기자·부조리), 이00(사회부기자·부조리), 박00(사회부기자·부조리), 이00(사회부기자·부조리)

△ 서울(15명)
조00(안동주재기자·부조리), 최00(출판국장·부조리), 최00(포항주재기자·부조리), 임00(광주주재기자·부조리),
신00(안양주재기자·부조리), 정인학(사회부기자·제작거부), 김00(수원주재기자·부조리),
이00(인천주재기자·부조리), 김00(여수주재기자·부조리), 유00(논설위원·무능), 장석영(사회부기자·제작거부),
김00(주간국장·무능), 원00(주간기자·무능), 신00(스포츠기자·무능), 성00(정리기자·무능)

△ 한국(17명)
신연숙(편집부기자·제작거부), 김윤자(주간여성기자·제작거부), 최 욱(사회부기자·제작거부),
홍00(대전주재기자·부조리), 박00(광주주재기자·부조리), 고00(보성주재기자·부조리),
이00(함평주재기자·부조리), 김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윤00(청주주재기자·부조리),
박00(울산주재기자·부조리), 김00(광주지점장·부조리), 권00(성남주재기자·부조리),
이영일(편집부기자·제작거부), 장병욱(사진부기자·제작거부), 박용수(교정부기자·제작거부),
이정섭(주간한국기자·제작거부), 임진숙(주간여성기자·제작거부)

△ 조선(12명)
신00(인천주재기자·부조리), 송00(수원주재기자·부조리), 위00(광주주재기자·부조리),
강광윤(부산주재기자·제작거부), 이정규(부산주재기자·제작거부), 송석원(대구주재기자·제작거부),
김세영(대전주재기자·제작거부), 김형배(편집부기자·제작거부), 이원섭(정치부기자·제작거부),
이의범(편집부기자·제작거부), 정00(사회부기자·부조리), 전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 MBC(41명)
김광백(경제부기자·제작거부), 김택곤(정치부기자·제작거부), 권오승(편집부기자·제작거부),
주헌일(사회부기자·제작거부), 양00(사회부기자·부조리), 우원길(편집부기자·제작거부),
김상균(정치부기자·제작거부), 정상모(외신부기자·제작거부), 김상기(보도제작기자·제작거부),
김용현(TV제작3부 차장·제작거부), 고무송(라디오제작2부 차장·제작거부), 김화신(TV제작2부 기자·제작거부),
손동용(TV제작3부 차장·제작거부), 김00(라디오제작국장·부조리), 김00(연수실위원·부조리),
전00(TV제작위원·부조리), 김00(라디오제작실위원·부조리), 박00(영업부국장·부조리), 김00(연수실장·부조리),
공00(해설위원·부조리), 조00(보도국위원·부조리), 최00(보도국위원·부조리), 강00(라디오제작위원·부조리),
진00(심사실위원·부조리), 전00(심사실위원·부조리), 이00(심사실위원·부조리), 이00(보도제작위원·부조리),
이대우(사회부기자·제작거부), 김창식(보도 부국장·제작거부), 이기혁(보도국기자·제작거부),
정00(심사실요원·부조리), 김00(심사실요원·부조리), 심00(기술부장·부조리), 최00(체육부장·부조리),
장00(FM방송부장·부조리), 임00(사진부장·부조리), 정00(TV편성부장·부조리),
강00(연수실위원·부조리), 오00(연수실위원·부조리), 허00(연수실위원·부조리), 이00(연수실위원·부조리)

△ DBS(4명)
전진우(정치부기자·제작거부), 최00(사회문화부기자·부조리), 이규민(정치부기자·제작거부), 박00(사회문화부기자·부조리)

△ TBC(8명)
오흥진(편집부기자·제작거부), 김준범(편집부기자·제작거부), 한종범(편제부기자·제작거부),
황용복(외신부기자·제작거부), 정 훈(TV편성국PD·제작거부), 남성우(사회교양부PD·제작거부),
허 0(편성부장·부조리), 이병효(편성부PD·제작거부)

△ KBS(81명)
민두식(방송위원·제작거부), 이00(사회부기자·부조리), 양휘부(정치부기자·제작거부),
남정판(정치부기자·제작거부), 전00(기획관리실장·부조리), 방00(교수실장·부조리), 김00(춘천국장·부조리),
신00(청주국장·부조리), 김00(전주국장·부조리), 김00(광주국장·부조리), 박00(사회부기자·부조리),
이규창(사회부기자·제작거부), 심의표(경제부기자·제작거부), 이희찬(부산국기자·제작거부),
전종옥(부산국기자·제작거부), 최성민(부산국기자·제작거부), 김용현(부산국기자·제작거부),
심상대(부산국기자·제작거부), 김00(광주국기자·부조리), 장00(라디오국장·부조리),
최00(방송심의위원·부조리), 김00(방송심의위원·부조리), 김00(TV제작부장·부조리),
전00(대전방송부장·부조리), 이00(편성국차장·부조리), 김00(미술부차장·부조리), 문 0(보도국차장·부조리),
임00(보도국차장·부조리), 전00(보도국차장·부조리), 이 0(보도국차장·부조리), 고00(기획부차장·부조리),
황00(부산방송차장·부조리), 임00(라디오조정부차장·부조리), 박00(방송위원·부조리),
김00(TV방송위원·부조리), 임00(TV방송위원·부조리), 이00(TV방송위원·부조리),
이00(방송과-마산·부조리), 권00(방송과-대구·부조리), 신00(방송과-포항·부조리),
조00(목포·부조리), 00(방송과-여수·부조리), 한00(보도실-제주·부조리), 한00(보도실-제주·부조리),
강00(보도실-제주·부조리), 박00(방송과-속초·부조리), 오00(방송과-영월·부조리),
김00(방송과-원주·부조리), 이00(방송과-제주·부조리), 김00(연수원장·무능), 이00(경제부기자·부조리),
이00(방송위원·무능), 이00(방송위원·무능), 박동영(사회부기자·제작거부), 장두원(편집차장·제작거부),
이홍기(경제부기자·제작거부), 김00(목
최00(방송과-포항·부조리), 김00(방송과-포항·부조리), 강00(방송과-광주·부조리),
이00(방송과-여수·부조리), 박포방송국장·무능), 이00(방
송심의위원·무능), 최00(방송위원·무능), 강00(연수원·무능), 이00(방송위원·무능),
최00(산업부차장·무능), 진00(교육국차장·무능), 허 0(교육국차장·무능), 윤00(심의위원·무능),
배00(심의위원·무능), 송00(연수원·무능), 안00(보도실-부산·무능), 조00(보도실-부산·무능),
박00(보도실-부산·무능), 곽00(보도실-부산·무능), 윤00(보도실-광주·무능), 조00(보도실-광주·무능),
채00(보도실-전주·무능), 탁00(보도실-전주·무능), 오00(보도실-전주·무능), 길00(보도실-대전·무능)

△ CBS(13명)
박00(사회문화부장·부조리), 황00(사회부기자·부조리), 노00(방송부기자-광주·부조리),
김병채(방송부기자·제작거부), 송정민(사회문화부기자·제작거부), 박00(기자-대구·부조리),
손주영(기자-부산·부조리), 최00(기자-이리·부조리), 정00(기자-이리·부조리), 한용상(정치부차장·제작거부),
권영국(정치부기자·제작거부), 윤00(아나운서-이리·부조리), 이00(아나운서-이리·부조리)

△ 합동(7명)
정남기(편집부기자·제작거부), 심00(사회부기자·부조리), 서00(광주주재기자·부조리),
김태홍(다이제스트기자·제작거부), 박영규(조사부기자·제작거부), 차장량(외신부기자·제작거부),
유숙렬(다이제스트기자·제작거부)

△ 동양(5명)
이남성(사회부기자·제작거부), 김흥식(사회부기자·제작거부), 백재욱(편집부기자·제작거부),
문00(사회부차장·부조리), 전태원(체육부기자·제작거부)

△ 국제(26명)
김 0(함양주재기자·부조리), 이삼주(서울주재기자·제작거부), 정원영(문화부기자·제작거부),
김영훈(편집부차장·제작거부), 이00(진해주재기자·부조리), 장00(사회부차장·부조리),
김00(사회1부기자·부조리), 박00(울산주재기자·부조리), 변상홍(편집부기자·제작거부),
장영기(편집부기자·제작거부), 정순태(정치부기자·제작거부), 안기태(화백·제작거부), 박숙자(교정부기자·제작거부),
양희주(서울정치부기자·제작거부), 박건일(대구주재기자·제작거부), 서해동(대구주재기자·제작거부),
정묘길(대구주재기자·제작거부), 김달호(영덕주재기자·제작거부), 김연호(안동주재기자·제작거부),
한영규(김해주재기자·제작거부), 황준철(공무국장·제작거부), 조희태(울산주재기자·제작거부),
이철호(논설위원·제작거부), 조갑제(편집부기자·제작거부), 조용현(편집부기자·제작거부),
김현구(체육부기자·제작거부)

△ 부산(18명)
변00(서울주재기자·부조리), 윤00(편집부차장·부조리), 이00(사회부차장·부조리), 정00(함양주재기자·부조리),
박00(고성주재기자·부조리), 김00(포항주재기자·부조리), 하00(사회부기자·부조리),
최희수(합천주재기자·제작거부), 변영주(김천주재기자·제작거부), 문 호(서울지사기자·제작거부),
윤상길(서울지사기자·제작거부), 최득수(서울지사기자·제작거부), 김홍현(서울지사기자·제작거부),
김수성(논설위원·제작거부), 김원규(조사부장·제작거부), 박영진(발송과장·제작거부),
이수언(서울주재기자·제작거부), 길 0(주간부기자·부조리)

△ 경기(14명)
조00(부천주재기자·부조리), 한00(평택주재기자·부조리), 허00(고양주재기자·부조리),
장인상(기획위원·제작거부), 강00(사회부기자·부조리), 김00(시흥주재기자·부조리), 장00(여주주재기자·부조리),
김00(안성주재기자·부조리), 홍00(편집부기자·부조리), 김00(편집부기자·부조리),
권00(편집부기자·무능), 백상현(교정부기자·제작거부), 정00(교정부기자·무능), 임00(교정부기자·무능)

△강원(10명)
안00(도청출입기자·부조리), 장00(강릉주재기자·부조리), 김00(횡성주재기자·부조리),
전00(정선주재기자·부조리), 노00(평창주재기자·부조리), 정00(동해주재기자·부조리),
김00(황지주재기자·부조리), 김00(논설위원·무능), 김00(사회부기자·무능), 김00(영월주재기자·무능)

△ 충청(7명)
유영혁(사회부기자·제작거부), 이00(제천주재기자·부조리), 조00(옥천주재기자·부조리),
임00(진천주재기자·부조리), 이00(홍성주재기자·부조리), 박00(조사실장·부조리), 송종헌(편집기자·제작거부)

△ 대전(9명)
이00(천안주재기자·부조리), 전00(보령주재기자·부조리), 김00(정치부차장·부조리),
우00(문화부차장·부조리), 이00(예산주재기자·부조리), 노00(서천주재기자·부조리), 오00(부여주재기자·부조리),
이00(논설위원·부조리), 허00(조사부장·부조리)

△ 경남(6명)
김00(울산주재기자·부조리), 황00(합천주재기자·부조리), 김00(통영주재기자·부조리),
전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고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조동만(정치부기자·제작거부)

△ 전북(7명)
김종량(사회부기자·제작거부), 김00(정읍주재기자·부조리), 조00(이리주재기자·부조리),
강00(순창주재기자·부조리), 고00(완주주재기자·부조리), 정00(경제부기자·부조리), 원00(김제주재기자·부조리)

△ 경매(9명)
정00(논설위원·무능), 정00(사회부기자·부조리), 황00(대구주재기자·부조리),
노00(경주주재기자·부조리), 나00(기자·부조리), 권00(기자·부조리), 반00(거제주재기자·부조리),
김00(충무주재기자·부조리), 강00(양산주재기자·부조리)

△ 영남(13명)
김도현(논설위원·제작거부), 최영일(사회부기자·제작거부), 정동우(사회부기자·제작거부),
김00(영천주재기자·부조리), 안00(문경주재기자·부조리), 박00(성주주재기자·부조리),
정00(경주주재기자·부조리), 최00(칠곡주재기자·부조리), 이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서00(진주주재기자·부조리), 조학송(서울주재기자·제작거부), 김00(기자·부조리), 서00(기자·무능)

△ 전남(16명)
양동균(논설위원·제작거부), 김영호(함평주재기자·제작거부), 김재창(벌교주재기자·제작거부),
윤재웅(영산포주재기자·제작거부), 김옥남(여수주재기자·제작거부), 김정용(남원주재기자·제작거부),
김환국(전주주재기자·제작거부), 황인강(완도주재기자·제작거부), 이순무(김제주재기자·제작거부),
이시형(여수주재기자·제작거부), 김한수(목포주재기자·제작거부), 이태희(문화부기자·제작거부),
강석오(사회부기자·제작거부), 김재철(사회부기자·제작거부), 윤00(전방 보도부차장·부조리),
임00(전방 보도부차장·부조리)

△ 전매(15명)
한00(주필·부조리), 손00(사회부기자·부조리), 이00(함평주재기자·부조리), 박화강(정치부기자·제작거부),
이운희(강진주재기자·제작거부), 신형순(완도주재기자·제작거부), 서홍용(담양주재기자·제작거부),
이상율(여수주재기자·제작거부), 김남중(여수주재기자·제작거부), 서영석(순천주재기자·제작거부),
민경관(서울주재기자·제작거부), 김00(사회부차장·부조리), 윤유석(사회부기자·제작거부),
양00(월간국 부국장·부조리), 최00(편집부차장·부조리)

△ 제주(2명)
김00(체육부차장·무능), 강병희(사회부기자·제작거부)

△ 지방방송(60명)
이00(부산문화 보도부기자·부조리), 이00(대구문화 심의실장·부조리), 황00(대구문화 보도국기자·부조리),
강00(대구문화 보도국기자·부조리), 최00(대구문화 심의위원·무능), 백00(대구문화 TV기술부장·무능),
윤00(광주문화 보도부기자·부조리), 김00(광주문화 보도부기자·부조리), 김00(광주문화 보도부기자·부조리),
김00(대전문화 해설위원·부조리), 이00(대전문화 아나운서·부조리), 이00(대전문화 심의실차장·부조리),
김00(대전문화 보도국기자·부조리), 이00(전주문화 보도부기자·부조리), 김00(전주문화 아나운서·무능),
박00(강릉문화 보도부기자·부조리), 한00(강릉문화 보도부기자·부조리), 허00(강릉문화 방송부PD·부조리),
김00(춘천문화 해설위원·부조리), 박00(목포문화 방송부기자·부조리), 김00(목포문화 방송부기자·부조리),
김00(목포문화 방송부기자·부조리), 김00(목포문화 방송부기자·부조리), 양00(남양문화 보도부기자·부조리),
박00(서해방송 보도국기자·부조리), 심00(서해방송 아나운서·부조리), 동00(여수문화 보도부차장·부조리),
조00(안동문화 송신소장·부조리), 김00(충주문화 보도부기자·부조리), 지00(충주문화 보도부기자·부조리),
국00(삼척문화 방송부기자·부조리), 김00(포항문화 방송부기자·부조리), 김00(부산문화 TV보도부차장·부조리),
윤00(울산문화 기자·부조리), 윤00(울산문화 기자·부조리), 백 0(진주문화 편성부기자·무능),
김00(춘천문화 해설위원·무능), 천00(목포문화 모니터·부조리), 고00(남양문화 R송신소장·무능),
권00(남양문화 편성부PD·무능), 정00(마산문화 기술부·부조리), 박00(안동문화 방송PD·무능),
이00((안동문화 기술부·무능), 엄00(원주문화 기술과장·무능), 이00(원주문화 기술부·무능),
박00(청주문화 아나운서·무능), 이00(부산문화 TV기획실장·무능), 홍00(부산문화 아나운서부장·무능),
서00(부산문화 기획실·무능), 이혜영(한국FM 아나운서·제작거부), 김00(울산문화 아나운서·무능),
주00(여수문화 보도부장·부조리), 김00(부산문화 보도부장·부조리), 김00(대전문화 서울지사장·부조리),
정00(전주문화 보도부차장·부조리), 김00(전주문화 TV방송차장·부조리), 변00(남양문화 편성부장·부조리),
백00(남양문화 보도부차장·부조리), 서00(마산문화 보도부차장·부조리), 함00(부산문화 TV편성부차장·부조리)

△ 기타특수지(89명)
김00(현대경제 성남주재기자·부조리), 박00(현대경제 파주주재기자·부조리),
방00(현대경제 원주주재기자·부조리), 이 0(현대경제 황지주재기자·부조리), 조00(현대경제 충주주재기자·부조리),
손00(현대경제 천안주재기자·부조리), 황00(현대경제 홍성주재기자·부조리),
문00(현대경제 이리주재기자·부조리), 권00(현대경제 영천주재기자·부조리), 박00(현대경제 포항주재기자·부조리),
이00(현대경제 김천주재기자·부조리), 이00(현대경제 거창주재기자·부조리), 류00(현대경제 충무주재기자·부조리),
노 0(현대경제 부산주재기자·부조리), 류00(현대경제 부산주재기자·부조리), 김00(내외경제 마산주재기자·부조리),
김흥구(내외경제 국제부기자·제작거부), 김기철(내외경제 취재부기자·제작거부),
강붕익(내외경제 정치부기자·제작거부), 정원조(내외경제 취재1부기자·제작거부),
김완섭(내외경제 취재1부기자·제작거부), 강00(시사통신 취재2부장·부조리), 이00(시사통신 취재2부장·부조리),
정00(시사통신 취재2부장·부조리), 주 0(시사통신 문화부장·부조리), 조00(경제통신 취재2부장·부조리),
주00(경제통신 부장대우·부조리), 윤00(경제통신 기자·부조리), 장00(경제통신 기자·부조리),
김00(경제통신 기자·부조리), 강00(경제통신 기자·부조리), 장00(산업통신 취재부기자·부조리),
박00(산업통신 취재부기자·부조리), 임00(산업통신 취재부기자·부조리), 정00(산업통신 편집차장·부조리),
유00(산업통신 취재부기자·부조리), 지00(산업통신 취재부기자·부조리), 고00(산업통신 취재부기자·부조리),
김00(산업통신 취재부기자·부조리), 윤 충(무역통신 외신부차장·제작거부), 김영실(무역통신 취재2부 기자·제작거부),
서00(무역통신 외신부차장·부조리), 김대곤(현대경제 편집1부기자·반정부), 마00(현대경제 증권부기자·부조리),
이기한(현대경제 증권부기자·반정부), 이상현(현대경제 특집부기자·반정부), 현이섭(현대경제 특집부기자·반정부), 홍순권(
현대경제 편집부기자·반정부), 백맹종(현대경제 사진부기자·반정부), 권화섭(내외경제 국제부기자·반정부),
배00(내외경제 편집부국장·부조리), 정00(내외경제 국제부장·부조리), 권태선(K.T 사회부기자·제작거부),
엄00(서울경제 산업부기자·부조리), 안정숙(서울경제 문화부기자·제작거부), 박정삼(서울경제 정경부기자·제작거부),
이00(현대경제 취재부기자·부조리), 박00(현대경제 사회2부차장·부조리), 왕길남(현대경제 정경부기자·제작거부),
한균태(현대경제 사회1부기자·제작거부), 서00(현대경제 수원주재기자·부조리),
조00(현대경제 의정부주재기자·부조리), 고석문(내외경제 사회체육부기자·반정부),
안혜성(내외경제 문화부기자·반정부), 권열웅(시사통신 편집부기자·반정부), 한명순(시사통신 편집부기자·반정부),
문왕준(시사통신 문화부기자·반정부), 허 0(경제통신 물가부장·무능), 최00(경제통신 차장대우·무능),
김00(산업통신 사진부차장·무능), 곽00(산업통신 교정부기자·무능), 이00(무역통신 편집부기자·무능),
김병규(일간스포츠 기자·제작거부), 김00(현대경제 편집부국장·부조리), 이00(현대경제 편집2부장·부조리),
전00(내외경제 취재2부장·부조리), 성00(내외경제 취재2부차장·부조리), 이00(내외경제 정치부장·부조리),
김00(내외경제 취재1부장·부조리), 김00(내외경제 취재1부장·부조리), 김00(내외경제 증권부장·부조리),
김00(경제통신 취재부장·부조리), 홍 0(서울경제 사회부부장·무능), 이00(서울경제 사회부부장·무능),
지00(서울경제 사회부기자·무능), 이00(서울경제 산업부기자·무능), 이00(현대경제 편집국장·부조리),
김00(현대경제 취재부기자·부조리), 윤흥열(현대경제 조사부 차장·제작거부)

△ 매일(5명)
임00(합천주재기자·부조리), 장00(울산주재기자·부조리), 정00(상주주재기자·부조리),
이00(충무주재기자·부조리), 안00(구미주재기자·부조리)

◆2차 언론인 정화대상 종합보고 (11월12일자 사령관 결재사인)
A급(5명)
△ 경향
서동구(조사국장·국시거부), 이경일(외신부장·국시거부), 박우정(외신부기자·국시거부),
표완수(경제부기자·국시거부)
△ 합동
김태홍(기협 회장·국시거부)

B급(13명)
△ 경향
백선기(경제부기자·반정부), 고영재(사회부기자·반정부), 주00(청주주재기자·부조리)
△ 서울
우00(의정부주재기자·부조리)
△ 조선
왕00(마산주재기자·부조리), 김00(안양주재기자·부조리)
△ MBC(지방포함)
김상호(대구 MBC 기자·반정부), 정00(의정부주재기자·부조리)
△ CBS
전00(의정부주재기자·부조리)
△ 부산
조00(남해주재기자·부조리)
△ 법률
강00(특집부 부장·부조리)
△ 기타
김동선(기협 편집실장·반정부), 안양노(기협 편집위원·반정부)

C급(53명)
△ 경향
신00(충주주재기자·부조리), 강00(제주주재기자·부조리)
△ 동아
김00(진주주재기자·부조리), 박00(울산주재기자·부조리), 박00(안양주재기자·부조리),
박종열(사회부기자·제작거부동조)
△ 서울
이00(진주주재기자·부조리), 김00(청주주재기자·부조리), 김00(제주주재기자·부조리),
최00(속초주재기자·부조리), 김00(인천주재기자·부조리)
△ 신아
김00(진해주재기자·부조리)
△ 조선
동00(속초주재기자·부조리)
△ 중앙
김00(마산주재기자·부조리), 최00(청주주재기자·부조리)
△ 동양통신
박00(부산주재기자·부조리)
△ 경제통신
전00(춘천주재기자·부조리)
△ MBC(지방포함)
강00(대구 MBC기자·부조리), 김00(포항MBC기자·부조리), 정00(부산MBC기자·부조리), 홍00(수원주재기자·부조리)
△ KBS
박00(청주방송국기자·부조리), 고대석(제주방송국기자·반정부)
△ CBS
이정일(대구CBS기자·반정부), 김광수(대구CBS기자·반정부), 최00(이리CBS기자·부조리)
△ 국제
차00(포항주재기자·부조리), 이00(산청주재기자·부조리), 조00(진주주재기자·부조리),
장00(삼천포주재기자·부조리), 조00(충무주재기자·부조리), 성00(김천주재기자·부조리)
△ 부산
박00(양산주재기자·부조리), 이00(충무주재기자·부조리), 이00(진주주재기자·부조리), 윤00(거제주재기자·부조리)
△ 경남
김00(양산주재기자·부조리), 허00(김해주재기자·부조리), 손00(충무주재기자·부조리)
△ 경남매일
장00(산청주재기자·부조리), 문00(남해주재기자·부조리), 김00(울산주재기자·부조리),
김00(울산주재기자·부조리), 조00(진주주재기자·부조리), 김00(정경부기자·부조리)
△ 영남
이00(울산주재기자·부조리)
△ 전매
강00(이리주재기자·부조리)
△ 충청
이00(홍성주재기자·부조리)
△ 경기
신 0(가평주재기자·부조리)
△ 제주
문00(문화부장·부조리)
△ 경제지
최00(내외경제 울산주재기자·부조리), 조00(서울경제 합천주재기자·부조리), 최00(서울경제 강릉주재기자·부조리
(주간내일신문, 2000.8.16)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