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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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4U 게시판 방명록 백업 시스템 Ver 1.0
백업일 : 2005-08-10 오후 7: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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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1
제 목 : 작업에 들어가며..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3 오후 6:18:26
내 용 : 누구나 한번쯤은 얘기하는 평화..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였노라고 내세우는 평화행동.
하지만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한 것은 무엇이며
평화는 그렇게 구호만으로 이뤄지는가?
세상을 살면서 평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속에서
실재로 존재하는 평화에 대한 기림과
그것을 향한 끝없는 실천적 행동을 바라봅니다.
평화행동은 사람이 할수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지만
전쟁의 개념을 평화라 말하는이도 있고
미움을 갖고 상대에게 평화를 강요하는
인간의 역사도 변함없습니다.
평화를 위하여 혹은 평화를 위해라는 말의 부질없음
그 부질없음을 평화를 향하는 발걸음과
실천적 행동가의 모습으로
그려봅니다.
그리고 평화란 말이 갖고있는 실체를
이 땅위에 실제적인 존재로 구체화시키기위해서
실존의 그것으로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고 그리고 싶어서
이 작업을 학습으로 구체화시킵니다.
이작업의 동행자들과 마주침자들이
진정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서만
인식하고 생존하며 행동하길 바랍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2
제 목 : 첫 메세지 ..시인의 딜레머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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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 L :
시 간 : 2005-01-23 오후 6:22:29
내 용 : 이 공연엔 매번 메세지가 낭독됩니다.
그 첫메세지는 t.s,엘리어트의 얘길 논술한
한 영문학 박사학위논문(신성철)의 일부입니다.

.................................................
여기서 시인의 딜레마는 시작된다.
시인은 추악한 현실 속에서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포착해내고,
권태롭고 짜증나는 현실 속에서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고통받으며 사는 인간 실존들을 향하여 자신이 깨달을 바를 그들의 말로
변환하여 그들로 하여금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해야 하는 것이다.
전통이나 동의가 이미 어려워진, 그런 것들을 가정할 수 없는 시대 속에서,
혹은 통일이나 질서가 명확한 형태로 존재할 수 없는 시대에 있어서
시인이 이와 같은 일을 하기에는 지난하다.
엘리엇의 살았던 시대는 니체가 선언한 것처럼 이미 신은 죽었고,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었다.
더 이상 이전의 신념이나 절대적 기준과 같은 잣대는 없고,
모든 것이 상대화되었다. 통일과 질서있던 시대의 사고와 행동유형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논리는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들었고,
자기 실리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인간을 탄생시켰다.
이런 산업화 사회 속에서 인간 영혼은 온갖 종류의 고립을 맛본다.
그는 전통과도, 하나님과도 분리된 채 폭도가 될 수 밖에 없다.
더 이상 전통이나 신앙의 의미가 없었다.
1차 세계 대전의 엄청난 충격은 20세기의 이런 사상적 흐름을 과속화시켰다.
유럽 문화의 대한 환상과 이상은 와해되었고 문명의 기저는 파괴되었으며
종말론적 사상이 팽배했다.
한마디로 20세기 초는 영적 고독감과 방향상실감,
자아 해방감과 이방인이라는 복잡한 의식이 팽배해 있었고,
정서적, 영적 진공 상태가 서구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엘리엇의 문제는 이 진공 상태를 향하여 말을 건네야 하는 것이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의미가 없는 진공 속에서 의미를 찾는 고독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현대의 환멸이나 권태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거기서 신앙이나
희망의 강력함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결여와 조우해야만 했다.
그것은 마치 스올의 뱃속과 같은 무의미의 심연을 뛰어넘는 것이고,
온갖 분리된 것들에 새로운 통일성과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이였다.
엘리엇은 이런 현실에 대해서 대단히 명확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의미의 진공 상태를 향하여 말을 걸 준비를 한다.
그것은 브래들리의 말을 빌리자면, "외견"에서 시작한다.
그 자신의 공간적 현실 인식과 시간적 시대 인식에서 시작한 것이다.
인식한다는 것은 극복하는 것이다.
구원은 시간의 인식, 즉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되고,
그것을 통해서 극복의 길을 찾는 것으로 완결된다.
엘리엇에게 있어서 시간은 악에서 악으로 이어지는 통로이다.
그런 시간의 인식, 즉 현실 인식은 두 가지의 태도 중에 하나를 택하게
되는데, 그것은 악과 더불어 공생하거나, 아니면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다.
엘리엇은 이런 두 가지 태도 중에서 후자를 택하게 되는데,
이런 그의 선택이 종교적 자아, 혹은 시적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시적 자아는 브래들리의 경우에서 처럼 표면 밑에 있는 진정한 실체의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의 등가물을 탐구하게 된다.
이런 탐구는 단테적으로 이야기하면 원죄로 인한
현대의 고독의 진공 상태를 향해 내려가는 하향 운동이며,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스스로를 부정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태도로 탐구하는 회의적 정신, 혹은 부정적 정신의 발로이다.
이것은 결국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그 시간의 심연인
인간 실존의 비참한 현실로 내려가서 그것을 인식하는 길이다.
 
번 호 : 3
제 목 : 첫번째노래...천지인의 청계천8가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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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 L :
시 간 : 2005-01-23 오후 6:27:52
내 용 : 첫번째 노래..천지인의 청계천8가
평화행동가와 평화활동가 그리고
전장을 거닐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모습에...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 서린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 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흑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워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번 호 : 4
제 목 : 삶에대한 감사...두번째 노래.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3 오후 8:30:27
내 용 :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의 마지막노래는
삶에 대한 감사로
그 안에 평화를 향한 행동들을 모으고
그 슬프디 슬픈 기쁨을 담으려합니다.
...............................
Gracias a la Vida.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 dos luceros que cuando los abro
perfecto distingo lo negro del blanco
y en alto cielo su fondo estellado
y en las multitudes al hombre que yo am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cielo que en todo su ancho
graba noche y dia grillos y canarios
martillos, turbinas, ladridos, chubascos
y la voz tan tierne de mi bien amad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sonido y el abecedario
con l las palabras que pienso y declaro
madre amigo hermano y luz alumbrando
la vita del alma del que estoy amand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marcha de mis pis cansados
con ellos auduve ciudades y charcos,
playa y desertos, montanas y llanos
y la casatuya, tu calle y tu pati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 el corazon que agita su mano
quando miro el fruto del cerebro umano
quando miro el bueno tan lejos del malo
quando miro el fondo de tus ojos claros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risa y me ha dado el llanto
asi yo distingo dicha de quebranto
los dos materiales que forman mi canto
y el canto de todos que es mi proprio cant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삶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두 눈을 떴을 때 흰 것과 검은 것,
높은 하늘의 많은 별,
그리고 많은 사람 중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을
또렷하게 구별 할 수 있는 빛나는 두 눈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귀뚜라미와 까나리오 소리, 망치소리, 터빈소리, 개짖는 소리, 소나기소리
그리고 내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목소리
이런 소리들을 밤낮으로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귀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어머니, 친구, 형제
그리고 내 사랑하는 영혼의 길을 비춰주는 빛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는 단어의 소리와 문자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도시와 웅덩이, 해변과 사막, 산과 평원
그리고 너의 집과 너의 길, 너의 정원을 걸었던
그 피곤한 나의 다리로 행진을 하게한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인간의 지식에서 나온 열매를 볼 때
惡에서 아주 멀리있는 善을 볼 때
너의 맑은 두 눈의 깊이를 볼 때
그것을 알고 떨리는 심장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행운과 불행을 구별할 수 있게 한
웃음과 눈물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드립니다.
웃음과 눈물로 나의 노래는 만들어졌고
모든 이들의 노래는 모두 같은 노래이고
모든 이들의 노래는 바로 나의 노래입니다.
 <img src="http://letra2.s5.com/violeta1210.gif">
* 작곡, 작사 노래 : Violeta Parra,
노래 : Mercedes Sosa
 
 
 

번 호 : 5
제 목 : 나무연작을 통해서 준비해온 평화행동가의 이미지.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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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1-23 오후 9:47:01
내 용 : 나무5에서 그리고 다시 6에서 등장하는 인물
평화운동가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미지는
이름없는 공연팀의 공연을 통해서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노력을 접근해오던
인물들의 얘기를 구체화하여
일상화시키면서
실존에서 만날수있엇던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미지를 경하와 존경의 뜻으로
조금씩 색인하여 담아나가기로햇습니다.
더 낮은곳 더 가난한곳
함께살아가야할 우주를 생각하면서
평화행동을 시작한 그의 절실함은
조금식 구체화되면서
하나의 인물로 구성시키려 노력하엿습니다.
이제 그 본편인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에서
평화행동가 혹은 평화활동가로 이름지어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일상을 통해서
존재와 향함의 미학을
집중합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6
제 목 : (자료)Violeta Para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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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1-23 오후 11:10:29
내 용 : Violeta Para
라틴 아메리카 누에바 깐시온 운동의 제1세대이자 어머니로 추앙받는 칠레 민중가수이며
칠레의 유명한 시인 니카노르 빠라의 동생인 Violeta Para는 민중의 마음과 생활을 노래하려는
취지로 당시 주류인 유행곡의 원점을 전통에서 발견하기 위해 1950년대 중반부터 칠레 민요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민요를 발굴해 노래하거나 자작곡으로 민중의 괴로움과
민족의 자각을 호소하였고, 칠레 폴크로레의 선구자로서 인근 페루나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의
토속적 리듬과 다른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굳혔다.
이것은 후배 음악인들에게 하나의 전형으로서 모범적 선례가 되었고, 더 나아가
그녀 사후 칠레의 누에바 깐시온이 라틴 아메리카 노래와 문화운동으로 확산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즉, 이 운동은 이사벨 파라(Isabel Parra)일가와 빅토르 하라(Victor Jara)가 그 흐름을 이었으며
그후 낄라빠윤(Quilapayun), 인띠 이이마니(Inti Illimani ), 야뿌(Illapu) 등에 계승되었고
칠레뿐만 아니라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전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녀는 1965년 무렵부터 정신불안증에 걸리게 되고 자살미수 끝에 자신이세운
민속박물관 천막안에서 1967년 2월5일 피스톨 자살하였다.
 
번 호 : 7
제 목 : 평화를 구하는 이의 마음가짐.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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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1-25 오후 8:45:42
내 용 :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자기이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것이라고
비난 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당신이 여러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루밤에 무너질지 모른다.
그래도 만들라.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라.
마더 데레사..
 

번 호 : 8
제 목 : 평화행동가의 마음으로
작성자 : 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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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1-25 오후 10:11:31
내 용 : 끊없는 지향 그것이 평화행동가의 마음일 것입니다
이번 평화행동에선 적의탱크앞에서
빈몸으로 한삼을 들고 평화의 춤을 추는이의 마음을 담아보려 합니다
적의무력앞에서 평화의춤을,
절망을 넘어선 이의 회기의 선을 허공에 그으며
한삼을 너울너울 날립니다
순간이나마 내가갖는 이기심을 버리고
실재하는 평화행동가 그들의 아름다움에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번 호 : 9
제 목 : 그림그리는이의 모습
작성자 : 4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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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1-26 오전 12:58:44
내 용 :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이번 작업에 제목이 아주 희망적으로 느껴져
평화가 바로 앞에 있는것과같이 다가옵니다.
그림그리는이의 모습을
세번째 준비하는 시간 속에서
'앗살람알라이쿰'에서 그 정리되지 못했던 모습을 더 깊게
평화의마음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야하겠습니다.♡♥
 
 
 
 
번 호 : 10
제 목 : 길바닥 평화행동가들의 목요정기 거리행동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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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1-26 오전 10:10:29
내 용 : 27일 목요길바닥평화행동에서 공연할
예기의 [존재하는평화를 향해]초연을 위한 구성에
동참할 분들과의 연습미팅이
26일 4시 원당롯데리아에서 있습니다.
27일 광화문교보문고옆거리공연에
동행할 피스몹 참가희망자분들은
26일 이 미팅에 참가해주시거나
26일 오전까지 함께하시겠다는 글을 예기홈피게시판에
올려주시고(www.yegie.com)
27일 5시 교보문고앞 버거킹3층에서
예기와 만나
자신이 함께할 부분을 상의 한후 공연에
동참해보시길 바랍니다.
예기의 신작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는
평화행동가들의 피스몹으로 구성된
신작으로서
많은분들이 동행하면서 하나의 몹을 구성할수있게
준비한 작업입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11
제 목 : 평화행동사진찍기놀이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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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 L :
시 간 : 2005-01-26 오전 10:11:07
내 용 : 평화행동 사진찍기놀이를 피스몹방식으로 이날 공연후반부에 담으려합니다.
피스몹사진찍기놀이의 써주실 종이와 평화를 향한 문구들 그리고 삽화등을 많이 준비해서 참가해주세요.
지난 평화행동중 찍은 사진들이나 쓴 종이들도 피켓으로 만들어서 갖고나와주셔도 좋겟습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12
제 목 : 초연의 음향구성...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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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 L :
시 간 : 2005-01-26 오후 11:52:05
내 용 : 아직 이 작품안에 얘기하고픈 내용을
음성으로 담고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초연에선 음악만으로
존재하는 평화르 향한 사람들의
정신적 실천의 진전을 진행시켜나가고자합니다.
음향공연시간은 19분07초
첫번째곡은 청계천 8가를 두번 반복하며
그 사이에 1분간의 소리없는 침묵의 공간을 둡니다.
이시간 우리는 그때그때 그날의 독서(?)를 통해서
두개의 노래를 이어갈 것입니다.
1장은 그렇게 11분 22초입니다.
두번째 곡은
de usuahia a la qulace 입니다.
시간은 1분 33초.
평화행동가의 세상과 역사에 대한 학습과
그 영향을 가늠케해주고자 이 음악을 사용합니다.
그리하여 먼저 고민하고 실천해간 사람의
이야기속에서 그가 겪었던 그리움을
용기로 채취하는 우리를 표현하는것으로
2장을 잡습니다.
3장 세번째곡은 조금 성스러웁고 승화된 분위기로
평화의 존재함에 대한 경건함을 찾아가는 이미지입니다.
2장의 혁명적모습은 하나의 곱고 쏜살같은 과정이며
깨달음으로 인해서 그의 덕먕은 평화에 접근합니다.
마더데레서의 테마음을 통해서 햇살을 접합니다.
1분21초이지만
언젠가는 이부분은 아주 길게 확장될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안에 정녕존재할수있을때
이 3장의 이미지는 몇배고 확장될 것입니다.
4장은 공동체적 실천을 통한 동행의 자리입니다.
하나의 축제로 이어져도 좋고
스라린 가슴앓이속에서도
찾아낸 감사와 축복의 모습들을 찾아가면서
하나가 아닌 우리로서의 공간을 확보해내고픈
기대로 배치됩니다.
glacias a la vida.
생에 대한 감사를
mercedes sosa 의 음성과 리듬이 아닌
곡을 만들고쓴 violeta parra의 그 음성과 리듬으로
선택했습니다.
그의 자살이 결코 고독하지않게..
4장은 3분 50초.
초연을거쳐서 우리의 평화성숙에 따라서
1장을 줄이고 3장을 조금씩 늘이면서
성숙한 작업으로
변모되어갔으면 좋겟습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13
제 목 : 존재한다는 것과 존재시킨다는것.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7 오후 1:57:40
내 용 : 평화에 대해 작업하다가
실존하는가하는 문제에 다다렀습니다.
.
그리고 어떠한 것을 우리가 얘기할때
과연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가 아니면
말분인 허상이거나 내실이 빠진 빈껍데기의 허울임에도
불구하고 진실인양 소비되고있지는 않은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진정 찾아가야할 곳은
실존하는 즉 존재하는 것을 향한 구체적인 움직임.
실체가 반드시 있는 것으로서의 그것의 중요성.
그리고 그렇지못하다면 부질없음.
행동하는 사람들곁에서 행동의 진행성과 성장성을
생각했습니다.
[존재하는 평화를향해]는 결국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갈증이며 답변의 길찾기입니다.
우선 네개의 장으로 그 진화의 방향을 찾앗습니다.
편의상의 구분입니다.
그리고 그 4단계의 진화안에서
열정과 맹목에서 구원과 온유까지로 다가갈
평화행동가의 삶의 존재방식을
노출시킵니다.
그리고 그 먼저간 가상을 통해서
배우려합니다.
존재한다는것은 하나의 이기적인 것일수도 잇습니다.
평화는 내 안에 있고 머무르는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저들 사이에 다가가 머무르는 것에 대한 용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존재한다는것은
평화의 경우에는
존재시킨다는 처절한 노력이 병행되어야만
합니다.
이 작업은 그 허무한 길을 찾는
부질없이 고귀한 작업이 될것입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14
제 목 : 배경이미지로서의 평화행동들..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7 오후 2:20:49
내 용 : 존재하는 평화행동들을 찾아가는 길목에
놓여지는 배경으로서의 평화행동가들의 모습들
그리고 그현장들.
이 작업은 그 배경이미지작업을 공연안에
담을수있는만큼 최대한 담아가려 노력하며
구성에 있어서도 자발적인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실존그대로 스쳐담으려 노력하고
그리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제3의 객관자들에게
평화의 실존과 현존을 인식하게끔 도우려합니다.
초연에선 길바닥평화행동팀의
모습모습들이 그 실존그대로
공연에 배치됩니다.
그리고 이 작업을 위해 준비하고자한 사람들에게
그가 할수있는 각기의 평화행동을 지어주엇습니다.
그들의 작업은 극일수도 있으나
극이 아니길 바라며
실존에서 행동하지못하는 수줍음을
극이라는 핑게로
굼처럼 일시적이나마
같은 시공안에서 존재케 도와주려합니다.
극은 한사람의 4단계를 거치는 과정을 통한
성숙과 궁원을 메인으로 배치하고
그 배경과 곁과 그를 감싸고 그가 들어가는 공간안에
함꼐하는 평화의 실존을 그립니다.
조급함없이 한걸음 한걸음
성숙하게 익어가길 바라며 노력할것입니다.
함께 그리고 스치듯 그리웁게..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15
제 목 : 시작..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8 오후 2:37:01
내 용 :
평화의 진정한 실존을 향해 노력하는사람들의 길을 따라가 보기로했습니다.
1월27일 광화문 교보문고옆에서
다섯번째 길바닥평화행동의 모임속에서
김진수 김미경 한창호 세사람과 미리 준비하고
또 길바닥 평화행동분들 모두를
공연안에 담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그 초연을 가&#51275;습니다.
이제 그 이미지속에 발견한 그리움을 화두로
그 작업을 다져가려합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16
제 목 : 실천없는 지성을 넘어[시인의 딜레머-평화행동가]
작성자 : 솔문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8 오후 9:05:57
내 용 : 시인은 이라상안에 갇혀 말의 미학을 쫓는 자신의 작업이
일회용품의 포장지처럼 소모적이고 껍데기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말의 위선,
사랑이라 말하고 사랑이 없는 공허함
그래서, 그는 거리로 나선다
스치는수많은 삶의 사연들
그내들의 겁먹고 도망가듯 분주한 삶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것은 흉칙한 과물과 닮아있다
건물 창에 스며 비치는 자신의 모습또한 그 괴물이다
아니 더욱 흉칙하기에 그는 두려웠다
'껍데기를 벗고' 그는 나아간다
죽음으로, 죽음을 너머 저 세계로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그는 나아간다
-솔문

번 호 : 17
제 목 : 평화의 종이배를 띄우며
작성자 : 솔문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8 오후 9:09:10
내 용 : 황무지, 그 거센 모래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고이접은 종이배에 평화를 새겨넣고
그 사막안으로 띄어보낸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평화의 메세지가 담긴 종이배는
미군 막사안으로
자이툰 부대 안으로
흘러흘러 갈 것이다
어느 병사의 발 밑에 멈춰선
그에게 평화를 노래할 것이다
-솔문

번 호 : 18
제 목 : 소품도착..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03 오후 12:51:52
내 용 : 존재하는 평화를향해서 가는 길은
우선 가난해지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선 가난을 채택하고 그 방식안에서
그가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연습하기 시작햇습니다.
노래[청계천8가]는 가난한 이들을 향한
고귀한 그리움이며
그들과의 공존 즉
평화를 찾아가는 길의 이정표같습니다.
작업을 시작하고 공연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동안
가난한 평화행동가의 쪽방에 놓일 소품들이
도착합니다.
우편함으로 혹은 이메일로
우체부의 노크와 등기도장찍기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특별송달로 전해진
사건번호 2004카단 125114 부동산 가압류 서류도
가난한 평화행동가의 모습을 구체화시켜주는
좋은 소품입니다.
그리고 도시까스 주민세 등등의 연체독촉장도.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19
제 목 : 두번째 공연 배경인물-발견과 갈등과 초연의 인물 셋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03 오후 1:15:29
내 용 : 작업안에 세사람이 동행하여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가는 이의 성장곁에서
각기의 현존을 구성합니다.
첫번째사람은 거리에서 우연히 접하는
아름다운사람들의 생존방식에 대한 동경의 발견입니다.
그는 그 접촉을 통해서
자신안에 숨겨져있던 사랑의 실존방식을 찾아낼수
있습니다.
현대무용을 하는 이 가다가와서 그 단계의
평화를 거리를걷는 사람들속에서 드러냅니다.
그에게 부딪치는 모든것은
이제 새롭고
이제 존재의 방식의 변환이며
길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공유와 공존의 길안에 있습니다.
 
두번째인물은 갈등을 표현하지만
갈등보다는갈등에 도착하여
그갈등으로 인해 찾아낸 구체화된 자각의 실천선상에
다가섭니다.
지식과 인격과 이성이
순수한 감정보다 이로운 것으로 사용될수있는
인간의 길을찾아내고
그것을 행동으로 변환시키는이의 모습이며
그 시기 평화행동가의 이미지를
두번째 인물이 그려줍니다.
그가 다가가는 현장에는 아픔을 넉넉히 지울 수 있는
바른 존재의 길이 열릴겁니다.
세번째 인물은
두번째인물의 바로 다음단계입니다.
구원을 향한 이유로 갈등을 지워버린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림을 그리는이가 이 세번째 사람의 모습을
얘기해줍니다.
세사람은 두번째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에서
그렇게 제각기 다다른 지점에서의 모습으로
한 평화행동가의 일생의 배경에서
마주치고 존재합니다.
발견과 혁명과 구원의 길을 거쳐서 하나의
나무같은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평화행동가의 즐겨택한 가난한 삶 속에서
그들은 스치거나 발견되거나
거리에서 만난 동행자로 함께 조각됩니다.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그 두번째 공연에선
세사람과 주인공이 함꼐합니다.
그리고
첫번째 사람은 마지막 마당에서
그가 찾아낸 평화를향한 존재방식을
무용으로 &#54385;현합니다.
두번째사람은 서재에서 일어나서
거리를 걸어갑니다.
전장에서 아이를만나고 평화의 글을 적은 종이배를 접어
전장에 강가에 띄웁니다.
세번째사람은
전장과 평화를&#51087;어버린 사람들이 사는곳을 찾아가서
그 지워진 평화를 복구해주는 그림을 그립니다.
사람들의 모습안에 존재하던 평화를 기억케해주고
그 그림을 함꼐 그림으로서
공존의 아름다운 의무를 기억케해주는 화가의
모습으로 유랑합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20
제 목 : 촛불의 외침-세상의 모든 열네 살...(별음자리표노래)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04 오후 11:23:15
내 용 : 촛불의 외침
 = 세상의 모든 열네 살 =
 저 어둠 속에서 수만의 작은 빛이 숨죽인 떨림으로 가녀린 떨림으로
 저 침묵 속에서 수만의 아우성이 분노의 떨림으로 흐느껴 떨림으로
 열네 살이여 아직 피지 않은 꿈이여 미처 오지 않은 세상이여
 열네 살이여 죽어 하늘 별 되기엔, 살아 촛불 들고 눈물짓기엔 너무 이른
 여린 꽃망울 밟은 야만의 무리 앞에 작은 촛불 밝혀 광장에 서니
 이 초록별 위의 모든 열네 살 가슴 아픔 헤아리고 눈물 나누어
* 아린 가슴 기대어 촛불 들어 외치네 순결한 꿈을 모아 새 관계를 부르네
 이 초록별에서 모든 생명들이 존엄으로 더불어 손잡고 살기 위해
1. 피 흘리는 딜리의, 절규하는 바그다드, 돌맹이 든 가자의, 팔이 잘린 카불의
 온세상의 열네 살 소중한 우리 내일 야만의 전쟁으로 더 이상 죽지 않게
2. 워싱턴의 평양의, 온 세상의 열네 살, 소중한 우리 꿈이 손잡고 자라나게
 야만의 제국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야만의 전쟁으로 죽어가지 않도록
후렴) 생명의 존엄의 평화의 촛불을,
 생명의 존엄의 평화의 촛불을!
 

번 호 : 21
제 목 : 가난의 선택이 평화행동의 시작일수도..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05 오후 2:17:48
내 용 :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작업을 통해서
배워가는 것은 가난에 대한
구조적 행복감입니다.
가난함이 우선되지않으면
평화는 언제나 겉돌수밖에 없다는것과
그 행동과 실천에 있어서
자유로울수 없는 자기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
평화행동가가 기르며 추구하는 평화는
공존에 기반을 두며
공존은 평등에서 가능하며
일반적 사람들의 삶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부와 빈곤 그리고 권력과 지배 등
모든 상대적 불평등과 이기심은
가난해지려는 노력에 상반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우리들이 가장 쉽게
평화에 접근하는 방법은
스스로 가난해지고
스스로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각과 심성과 존재하는 위치로
가장 낮은 곳에서 찾아내는 선과
가장 낮은 곳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구축해내는 평화의 걸음이
평화의 가장 쉬운 첫걸음이 될것입니다.
공연안에 평화행동가들은 그래서
가난을 선택하고
즐겨 버림으로서 얻습니다.
가지려하다 못얻는것이 가난이 아니고
가지려는 부에 반대하는 심성으로
선택하는 것이 가난이며
그 가난의 이유는 평화의 실존을 꿈꾸는 데
있습니다.
평화행동가는 가난을선택하고 그 가난의 눈으로
세상에 다가갑니다.
그리하여 온갖 반대편에 서있는 모든것들에 대해서
평화의 방식으로 저항하며
가난곁에 공존하며 위로합니다.
가난은 유물론적 의미에서만 아니라
물질을 제외한 인간심성과 정신세계에서도
선택되어야할
공존을 향한 자기낮춤의 언어로
이 작업안에서 사용됩니다.
가난이 평화의 지름길임을 모르는 평화행동가가
있을까만은
이러저런 이유로 재물의 필요성을 평화의 도구로
설명할 경우도 잇을겁니다.
하지만 그 구차한 설명이 무리수이며
기본을 변형시킨 자기만의 예외와
편협을 만들것은 우려할 일입니다.
가장 낮은곳으로 떨어져서
욕심없이 바라보고
그 시선으로 사랑을 행함.
존재한하는 평화를향한
욕심없는 사람들의 생존은
그렇게 존재하도록 노력합니다.
이 작업안의 인물들이 그렇게
쉬운 길을 알려주길 바랍니다.
가지려는것보다 버리려는것은
수만배 쉽고 현실적이므로
이 작업이 향해가는 길은
인간에게 가장 쉬운 길이 될것입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22
제 목 : 평화행동길에 마주한 곳..세상의 모든 열네살...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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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 L :
시 간 : 2005-02-09 오후 12:03:59
내 용 : 평화행동길에 마주한 곳..
세상의모든 열네살...
그 아이들을 생각하며 올린 촛불들.
도서부분을 생략하고
3번째 공연에선
그 마음그대로 다가서서 낯설게 마주친
사람들의 양심과 자각의 공간.
사람들의 촛불밝힘속에서
평화를 만들어 전해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열네살의 생명에게
이유도 모른채 죽어가게하는 사람들의
생존방식에 대해서 자각합니다.
지워진것을 그려가던 그림그리는이의 여정속에는
유난히 이날따라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많고
집을나선 이의 상자속에는 아이들과 함께할
색종이와 종이배 그리고 백묵등이 담겻습니다.
촛불을 켜서 손에 듭니다.
수많은 이유중에서 평화행동가의 촛불은
이날 이성적 존재라는어른들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죽어가는
세상의 모든 열네살아이들을 위한
자각의 촛불입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23
제 목 : [가난한평화행동가의일기]강제집행 유체동산 압류예고장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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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0 오전 11:10:20
내 용 : 평화행동가 가난부분 방에 놓여진 소품중 하나
[자료]강제집행 유체동산 압류예고장
변제시한 : 2005년 2월 14일까지
별도의 통보없이 강제집행되면 그에 따른 법비용추가
1) 먼저 법적인 조치로 귀하를 형법 제 347조(사기)에 의거,
경찰서에 편취의 범의(고이ㅡ)성 여부를 저희당사 법률팀에 의뢰검토 및 모든 법적 소송조치 하겠습니다.
2)다음으로 민사소송법 524조 2항에 의거
신한카드에서 미처리된 부동산및 급여등 가압류및 (법적조치)된 건에 대하여 직권 강제집행처리 및 동산(유체동산)=살림,가재도구 포함및 전세 월세보증금(친권및 법적소유지분)등을 관할 법원에 신청하여 즉시 강제 집행절차 동시에 진행하여 채권을 회수하고저 실행을 통보드립니다.
관할 법원 집달관을 대동 채무자가 없는 경우 경찰관,주민 입회하에(강제집행) 차압토록 하겠습니다.
모든 가능한 사회적 경제활동 및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민사소송법 제 122조 및 제 137조에 의거
강제파산결정신청(소비자파산신청) 및 제 524조에 의거
채무불이행자(신원증명,사항에 기재,사회적불이익)및 시해행위취소(재산조회,상속,증여,양도포함) 모든 소송등을 법원에 신청(허가)하고
재산명시위반시 에는,협법 제 347조에 의거 형사고소됨을 유념하시기바랍니다.
이 모든 경우 법적조치소송에 드는 비용은 귀하가 부담하시게 됩니다.
본 통지서를 받는즉시 연락주시기 바라며
만일 연락이 없으시면 저희 조사반이 사전예고없이
귀하의 가정을 방문하오니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상기 진행되는 모든 법적조치는 당사의 요청에 의거 신한카드사에서
일괄 진행합니다.
신한 신용정보(주)채권 관리팀

번 호 : 24
제 목 : [가난한평화행동가의일기]부동산강제경매
작성자 : 예기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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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0 오전 11:18:43
내 용 : 평화행동가 가난부분 방에 놓여진 소품중 하나
[자료]부동산강제경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결정 [경매3계]
사건: 2004타경 35519 부동산강제경매
채권자: 신한카드주식회사
채무자: 신영철
소유자: 채무자와 같음
주문
별지기재부동산에 대하여 경매절차를 개시하고 채권자를 ㅏ하여 이를 압류한다.
청구금액
금 6,862,115 원 및 위 돈중 6,260,870원에 대한 지연이자금
이유
위 청구금액의 변제에 충당하기위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04가 소76647
신용카드 이용대금 청구사건의 집행력잇는 이행권고결정정본에 의한 채권자의 신청은
이유 있으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2004.12.28 판사 김인택
목록
1동의 건물의 표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623-7 원앙다세대빌라2차
전유부분의 건물의 표시
건물의 번호 지하-1
구조 철근콘크리트
면적 지하층1호 30.49평방미터
대지권의 표시
토지의 표시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주교리 623-7
대 144평방미터
대지권의 종류 소유권
대지권의 비율 144분의 24
채무자: 신영철
 
번 호 : 25
제 목 : [가난한평화행동가의일기]신용불량정보등록예정통보서
작성자 : 예기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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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0 오전 11:22:56
내 용 : 평화행동가 가난부분 방에 놓여진 소품중 하나
[자료]신용불량정보등록예정통보서
신영철 귀하
신용불량정보등록내용
정보등록기관: 주 삼성카드
연체기준일: 2004.12.12
등록예정일: 2005.3.12
등록사유 : 대출금연체 0103
채무액 : 원금 6,156,000 수수료 267,000 연체료 14,000
 
번 호 : 26
제 목 : 3번째 구성하는 이 작업에서는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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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0 오후 1:23:33
내 용 : 2월17일 길바닥평화행동에서의 공연작품은
다시 [존재하는평화를향해]입니다.
3번째 구성하는 이 작업에서는
가난부분의 성실성과
혁명부분의 도입
그리고 마지막공동체부분의 춤이 독무로
배치되도록 준비하며
가난한 행동가 부분엔 반전반미의 촛불집회를 배경으로
독서를 대체합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27
제 목 : 혁명가...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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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1 오후 3:00:53
내 용 :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가는 인물들 중에는
그 과정처럼 주시하여야할 혁명가의 부분이
있습니다.
테러리스트가 아닌 혁명가의 신념과 방식은
역사속에서 언제나
참으로 어려운 갈등구조안에 배치되어있습니다.
더 나은세상
그리고 버림받은이들의 편에서서
그들과의 평등과 자유 민주를 추구하는 길에서
혁명은 하나의 확실한 제안이며
희망입니다.
사람들속에 혁명의 의지가 없다면
세상은 진화되지못할것이며
진화의 노력조차 하지못한채
늘 악행의 소용돌이안에서
안주하면서
힘의 논리안에서
노예처럼 굴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혁명은 그 방법으로
또하나의 힘의논리를 택합니다.
그리고 힘으로 굴복시켜서 악을 제거하여야하는
논리적 모순안에 갖치는 슬픈 운명입니다.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에서는
하나의 낭만으로서의 과정적 존재로서의
혁명가의 생애를 스치려합니다.
그리고 무혈혁명과
상대를 감동시켜 이루어내는
평화의 혁명을 모색합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28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1)
작성자 : 예기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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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0:52:26
내 용 : 에르네스토 체게바라
 
ERNESTO CHE GUEVARA(1928-1967)
게바라는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의 로자리오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아버지 에르네스토 게바라 린치는 귀족의 후손이었으며 어머니 세실리아 데 라 세르나는 독립전쟁 당시의 군인집안에서 태어났다. 결국 그의 부모는 부르조아 계급 출신인 셈이다. 어린 에르네스토의 부모는 무신론자였고, 공산주의자까지는 안되었지만 자유주의적 좌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돈을 모으는 데 억척스러운, 그런 인색한 사람은 아니었고 또 돈을 버는 기술도 별로 없었다.
에르네스토가 두 살 때 천식에 걸려 고생을 한 이후 그의 가족은 모두 코르도바(근처의 알타그라시아)로 이사를 갔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 에르네스토에게 여러 가지 운동을 가르쳤다.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당시 그는 활동적이고 자립심이 강했다고 한다. 돈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옷차림에도 신경쓰지 않았으며 자유롭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종종 고독을 즐기기도 했으며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공부에도 열심이었다고 한다.
청년 에르네스토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탐험심 많은 사람이었다. 열일곱살 때, 모우터를 붙인 자전거로 아르헨티나의 중부지방을 돌아다녔다. 이 여행 후에는 자동차 운전과 비행기 조종술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잠시라도 집에 붙어 있지를 못했다. 에르네스토의 부모는 결혼생활에 불화를 일으켜 1950년에 이혼한다. 자녀들은 어머니가 맡게 되었다. 청년 에르네스토는 어려워진 집안살림을 돕고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했다. 그래서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한 건설회사에서 사무원으로 일했다.
천식으로 고생한 적이 있는 에르네스토는 이 경험 때문에 1947년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의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회만 있으면 여행을 떠났다. 1952년에는 같은 의대 친구(친구하고 하기에는 게바라 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알베르토 그라나도스와 둘이서 10개월에 걸쳐 바이크로 여행을 했다. 칠레에서 바이크가 고장이 나자 페루의 마츄피츄까지 도보로 여행하였다. 한동안은 상 파울로의 나환자촌에서 환자들과 생활하기도 했다. 그후 아마존강을 횡단하여 콜롬비아로 갔다. 그곳에서 그의 친구는 카리카스에 남고, 에르네스토는 비행기로 마이애미까지 갔다. 여행을 그에게 남미대륙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을 대조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상 파울로 나환자촌에서의 노동을 통해 "인간들의 사랑과 유대감은 고독하고 절망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싹튼다"는 진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비행기의 출발이 지연되어 마이애미에서 1개월간 더 머물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미국의 실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8월에 귀국한 후, 의학공부에 몰입하여 1953년 3월,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다.
게바라는 남미 도보여행을 통해서 그곳 민중들의 비참한 생활과 그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사회과학적 안목을 길렀고 인간해방에 기초한 인식의 굳건한 토대를 쌓게 되었다. 훗날 그는 남미의 어느 땅에서도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술회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는 안락한 의사에서 급진적인 변혁주의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알레르기에 대한 연구>로 의사가 된지 두달만에 게바라는 까운을 벗어던지고 아르헨티나를 떠나 새로운 정권이 수립된 볼리비아로 갔다. 게바라의 주된 관심사는 아직 정치적인 문제에로 향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남미 일부국가에서 이미 현실화되어가는 사회개혁운동과 부딪히면서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이념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에 앞서 볼리비아의 라 파스에서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의 변호사 리카르도 로호와 만났다. 조국에서 추방된 이 반페론주의자와의 만남이 결국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 로호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1953년 볼리비아 혁명의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였고 그의 설득으로 베네수엘라(달러를 벌 수 있는 유일한 곳)로 가지 않고 과테말라(미대륙에 있어서 모범적인 혁명이 시작된 곳)로 가게 된다.
1954년 과테말라 중미의 이 작은 나라에서 자유주의적 좌파인 하코보 아르벤즈가 선거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혁신적인 정책을 폈으며 당시 막강했던 유나이티드 프루츠사(미국 곡물회사)가 소유하고 있던 대부분의 경작지를 국유화시킨 후 그것을 인디언과 소농에게 분배하려는 개혁을 실시하려는 중이었다.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이 나라의 지독한 빈곤상테에 충격을 받고 아르벤즈이 정책에 절실히 공감했다. "민중은 물질적으로 굶주렸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성에 더욱 굶주려 있다"는 아르벤즈의 사상에 대한 경외심을 게바라는 일생동안 간직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외심을 품고 게바라는 혁명의 실천을 위해 패덴드 순켈에서 의사를 지원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으로 향하는 여행도중에 과테말라의 우익 망명인사인 호세 카스틸료 아르마가 미국으로부터 자금을 원조받고 군대와 비행기를 동원하여 아르벤즈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일으킨 쿠데타를 목격하게 되었다.

 
 

번 호 : 29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2)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3 오전 10:55:02
내 용 :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는 '체 게바라'가 되었다. 이름을 새로 지어준 사람들은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 호세의 한 찻집에서 알게 된 쿠바인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1953년 7월 26일, 쿠바의 몬카타병영 공격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즉 피델 카스트로의 동지들이다. 하지만 에르네스토는 그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운동 지도자들과 만나고 싶어했다. 코스타리카에서 이미 '체'로 이름이 알려져 있던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책을 일기 시작했다. 과테말라 좌익정부의 전복이 계기가 되어 그는 맑스-레닌에 관한 학습을 시작했다. 이 학습을 통해 알게된 것은 가난하고 착취받는 나라의 혁명정부는 계속적인 착취와 수탈을 위해 미제국주의와 결탁한 자본가 세력에 의해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의 과테말라 침공을 통해 게바라는 미국에 대한 철저한 증오심과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미국의 범죄에 정면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대항하였다.

나는 아르벤즈 정부의 요직에 앉을 생각은 전혀 없소. 명백한 정치경제적인 침략을 자행한 미국과 미국자본의 횡포에 덩달아 날뛰는 반민족적인 매판자본가들에게 맞서기 위해 가난한 민중들과 함께 군대를 조직하여 했을 뿐이요. 과테말라는 지금이야말로 투쟁이 필요한 때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 게바라가 아르헨티나 신문기자 호르헤 리카르도 마셋티(현재 행방불명)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

CIA는 처음부터 '진지하게' 라틴아메리카에 대하여 간섭했다. 그 결과 라틴아메리가의 거의 모든 나라가 선교사를 앞세운 미국식 민주주의란 것을 통해 미국 소유의 식민지가 되어 갔다. 과테말라도 예외는아니었다. 과테말라의 여러 지역이 CIA의 조정을 받고 있는 군대에 의해 폭격을 받았다. 아르벤즈는 피신할 틈도 없었다. 과테말라 혁명은 시작되자마자 어어하는 순간에 끝나버렸다. 게바라는 투쟁에 직접 뛰어들어 레지스탕스 조직에 가담했다. 투쟁을 촉구하기도 하고 무기를 운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미 CIA의 사주를 받은 과테말라정부의 재판부가 이미 그를 사형에 처할 것을 결정, 공고하였기 때문이다. 게바라는 과테말라인 친구 엘 파토호와 함께 혁명이론을 배우러 멕시코의 수도로 향하여 달렸다. 이때가 1954년 9월 21일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게바라와 파토호는 겨울참새처럼 극도로 비참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게바라는 이곳에서 혁명이론과 맑스주의, 각국의 민족해방전쟁의 전술을 두루 섭렵한다. 굶주림과 억압 그리고 독서를 통해 게바라는 철저한 급진주의자로 변해갔다. 게바라는 1955년 여름, 멕시코로 추방당한 피델 카스트로와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쿠바해방운동에 가담해 달라는 피델 카스트로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피델은 그를 쿠바 진격대의 의사로 임명했다.

피델과 나는 밤을 지새우며 토론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 그의 부대의 의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이미 내 자신의 다리가 라틴아메리카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고, 과테말라에서는 가장 잔인하게 숨통을 조였던 제국주의의 실체를 본 후였기 때문에 압제자에 대항하는 혁명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내 한 몸을 바치는 데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있을 수 없었다. 피델은 비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들이 세운 계획은 어쩌면 실패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낙관적인 태도에 공감하게 되었다. 아무튼 혁명은 코앞에 닥친 현실이었고 온몸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울부짖기만 한다든지 대충 적당히 해치워버린다든지 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게바라와 멕시코에 있던 망명 쿠바인들은 철저하고 강도높은 훈련에 돌입했다. 훈련교관은 스페인 외인부대의 대장으로 게릴라 전투에 다년간 경험이 있는 알베르토 베이요 대령이 맡았다. 베이요는 멕시코에서는 살바로르 태생의 지주로 통하고 있었다. 망명 쿠바인들은 그의 신분을 이용하여 멕시코주 찰코 지방 부근에 있는 오래된 농장을 구입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고된 훈련과 사격연습에 들어갔다.
726운동의 지도자들은 수개월 동안 카리브해를 건너 전사들을 무사히 쿠바까지 실어다 줄 튼튼한 배를 찾아다녔다. 마침내 피델이 베라쿠르즈주의 리오타투스판이라는 작은 항구에 묶여 있던 고물이 다 된 보트 그란마호를 찾아냈다. 이 배의 주인은 미국인인 로버트 에릭슨이었는데, 피델일행은 멕시코인 안토니오의 중개로 5만페소를 주고 이 낡은 배를 별수 없이 사들였다. 이 배는 1939년에 건조된 것인데 전체 길이는 19미터, 폭 4.5미터로서 정원은 승무원과 승객을 합쳐서 약 20명 정도였다. 250마력짜리 두 개의 엔진을 탑재할 수 있었지만 거의 모든 부분을 수리해야 할 만큼 고물이었다.
 
번 호 : 30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3)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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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0:55:51
내 용 : 그란마호는 1956년 11월 25일 일요일, 동이 틀 무렵 닻을 올렸다. 정원을 훨씬 초과하여 82년이나 승선했다. 게다가 연료, 무기, 전투복, 식량을 적재했으니 최대 시속 9노트에 48톤의 고물 보트는 출발하자마자 허덕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멕시코에서 쿠바의 동부 오리엔테주 해안까지 가는 가장 길고 비효율적인 항로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도중에 FBI나 멕시코 경찰을 만나는 일이 없어야 되기 때문에. 보트는 언제 격침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더구나 승무원들은 모두 배멀미를 했다. 게다가 식량도 충분치 않았다. 게바라는 지병인 천식이 도져서 심하게 고생했다. 그란마호는 마침내 연료가 떨어졌고 휩쓸려오는 파도에 떠밀려 항로를 잃고 말았다. 상륙예상지점인 코로라다스 해안에서 2K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배는 산호초에 좌초되었다. 해안에 배를 갖다댄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82명의 탑승자는 모두 바다에 뛰어들어 자맥질쳐서 간신히 육지에 닿을 수 있었다. 망그로브 숲은 상륙지로는 최악이엇다. 붉은 망그로브 숲은 바다 쪽에서는 두터운 장벽처럼 보였다. 그 거대한 나무들의 밑둥에는 라카로운 빛을 띤 굴조개 따위가 칼끝처럼 빛을 발하며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게다가 물 위로 드러난 망그로브의 뿌리에는 바늘깥은 가시가 돋혀있어서 밟으면 발바닥을 쿡쿡 찌르는 것이었다. 발밑은 뻘밭이어서 발을 옮길 때마다 미끄러지기 쉬웠고 마치 뜨듯미지근한 고기국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기분마저 불쾌했다. 게다가 여러 종류의 커다란 게들이 우글거리며 기어올라와 전사들을 괴롭혔다. 설상가상으로 모기나 파리떼가 몰려오면 망그로브숲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세시간이나 걸려서 간신히 이 지긋지긋한
 늪지대를 빠져나와 일행은 아침 9시에야 단단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오전 9시 30분 원정대원들이 늪지대를 막 벗어나자마자 귀청을 때리는 폭음이 들려왔다. 바티스타의 군대와 비행기가 그들이 상륙한 것을 발견하고 폭격을 개시한 것이다. 11시에는 폭격기 세대가 다시 나타나 피델과 그의 동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던 농가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원정대원들은 다시 쫓겨 나가야 했다. 게바라는 다음과 같이 쿠바에서의 악몽과 같은 첫 날에 대해 기록하였다.

12월 2일 우리들은 도착예정지인 코로다스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벨릭이란 지점에 상륙했다. 이때 이미 대부분의 장비는 분실되었다. 게다가 새로 준비한 군화를 신었기 때문에 늪지대를 빠져나오는 동안, 대원들의 발은 부르터지고 물집이 생겼다. 문제는 이 상처에 스며들어오는 파상풍균만이 아니었다. 카리브해를 항해하는 도중 내내 몰아친 폭풍속을 7일간이나 헤쳐왔기 때문에 항해에 익수치 못한 대원들 거의 모두가 심한 배멀미로 탈진해버려 기진맥진한 상태여서 다음의 작전을 수행해 내기가 어려웠다.

원정대원들의 모습은 무모한 계획롸 행동의 결과를 보여주는 표본이었다. 물론 초기의 이러한 자살행위에 가까운 실수들이 후에 성공할 수 있는 생생한 교훈이 되었지만..

장비중에서 우리 손에 남은 것이라곤 총, 탄약대, 눅눅해진 탄환뿐이었다. 대부분의 구급낭과 배낭은 늪지대를 빠져나오면서 잃어버렸다. 밤새도록 제당공장 소유의 사탕수수 밭을 헤치고 걸어나갔다. 전투 경험이 전혀 없던 우리 대원들은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행군 도중에 버렸기 때문에 나중엔 식량이 모자라서 사탕수수만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래야 했다. 뿐만 아니라 무심코 버린 음식 찌꺼기가 후에 화를 자초했다. 수색대가 이를 발견해서 우리를 추격하는데 좋은 단서들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또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길을 안내했던 사람들을 돌려보낸 것도 커다란 실수였다. 그들이 돌아가서 바티스타의 정부군에게 우리의 행로를 밀고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쿠바진격 부대원들은 뿔뿔히 흩어져 도주해야 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레지스탕스들과 접선하는 일은 이미 불가능 했다.
12월 5일 바티스타군은 그들이 숨어있던 알레그리아 델 피오라는 사탕수수 재배지역을 습격했다. 사탕수수밭에서 140명 가량의 정부군이 그들을 포위했다. 이 전투에서 세 사람이 전사하고, 게바라를 포함하여 다수가 부상당했다. 대다수의 대원들은 사방으로 뿔뿔히 흩어져버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리하여 카스트로가 이끄는 게릴라들과 바티스타가 두목인 1만 2천여 용병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실전 속에서 단련된 장교들과 네이팜탄을 비롯하여 무엇이든 탑재할 수 있는 최신형 전투기, 게다가 정치적 군사적인 면에서 바티스타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미제국주의..... 이 모든 것들과 소수 게릴라들은 맞서 싸워야 했다.
 
상륙시의 사망자
움베르토 라모테, 오스카 로드리게스, 이스라엘 카브레라, 루이스 아르코스 베르그네스, 알만도 메스트레, 호세 라몬 마르티네스, 호세 스미스 고마스, 미겔 카바냐스, 안토니오 니코 로페즈, 칸티도 곤잘레스 디, 안토니오 로페스 후데스, 후앙 마뉴엘 마르케스, 세자르 고메스 후데스, 에밀리오 알벤토사, 산티아고 L 이르셀, 안토니오 다리오 로페스, 안드레스 루앙 바스케스, 르네 레이네 가르시아, 에드왈도 레예스 칸토, 토마스 다비드 로요, 미겔 사베드라 P., 라을 수와레스 메테스, 노에리오 카보테 피게로아, 레네 베디아 모라레스, 페릭스 엘무자 아가이
 
체포자와 행방불명자
파블로 우르타도, 알폰소 카빌리엔, 페드로 소토, 에스테반 소토론고, 호세 폰세 디아즈, 페르난도 산체스 A., 롤란도 산타나, 호라시오 로드리게스, 아르날도 페레스, 에바리스트 몬테스 데 오카, 라몬 메히아, 헤수스 고메스 칼소디야, 노베르토 고도이, 가브리엘 길 알폰소, 알세니오 가르시아 다빌라, 길베르토 가르시아 A., 마리오 후엔테스 A., 호세 후엔테스 A., 에르네스토 후데스 로드르, 마뉴엘 에차바리아, 기노 도레 파로, 라울 디아스 토레스, 후코 치콜라 카사노바, 아르투로 챠우몽트, 마리오 챠네스 데 A., 엔리케 카마라 P., 엔리케 쿠에레스 C., 하이메 코스타 Ch., 노베르토 콜라도 A., 레이날도 벤티에즈, 헤수스 레예스 가르시아, 알만도 우아우 S., 파블로 디아즈 곤잘레스, 오넬리오 피노 이즈키에르도, 로베르토 로퀘 누네즈, 마리오 이달고 B., 로란도 노야 G., 헤수스 몬타네 O
 
 

번 호 : 31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4)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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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0:56:38
내 용 : 1956년 12월 25일 생존자
피델 카스트로, 우니베르소 산체스, 후안 알메이다, 시로 레돈도, 라미로 발데스, 알만도 로드리게스, 레네 로드리게스, 프란스스코 곤잘레스, 라휄 챠오 산타나, 에피게뇨 아메이헤이라스, 카리스트 모잘레스, 까밀로 시엔후에고스, 레이날도 베니테스, 라울 카스트로 그리고 에르네스토 게바라
며칠 후에 여섯 사람의 생존자가 합세한다. 호세 모얀, 루이스 크레스포, 훌리오 디아즈, 카리스트 가르시아, 카를로스 베르무데스...
1월 16일, 살아남은 대원들은 본격적으로 게릴라전을 개시했다
 
라 플라타 병영 습격
"1957년 초, 우리들은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산악지방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라 플라타강 하구에 위치한 소규모의 병영(라 플라타 병영)을 습격하여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험준한 산간벽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알려져 쿠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습격은 게릴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투쟁의 준비가 완전히 끝났음을 확인하게 하는 계기였고, 부대전체에 있어서는 앞으로 다가올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것이었다. 게릴라군은 이 라 플라타 병영 습격사건으로 다수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 체게바라 [쿠바혁명전쟁의 회고중]에서 승리의 내용이란 약 36명의 바티스타군을 22명의 게릴라 부대가 습격, 라 플라타 병영에 붙잡혀 있던 포로들을 이끌고 유유히 사라졌다. 코바 국내에서는 독재자 바티스타 일당이 국민들에게 더 이상 게릴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이때 마침 뉴욕 타임즈의 허버트 매튜즈 기자가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 속의 게릴라 기지에 들어가 카스트로와 회견을 했다(1957년 2월 17일). 사진까지 곁들인 이 회견기사는 정부측 주장을 완전히 뒤집었다. 4월에도 미국의 방송국 기자인 봅 티버를 초청하여 기자회견을 했다. 이 회견 장면이 미국 전역에 T.V로 방영되었다.
산속의 게릴라군과 도시의 레지스탕스는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산속과 도시에서 통일전선을 구축했다. 이러한 통일전선은 게릴라 활동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었다.
"열악한 조건이었다. 의약품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산속의 환자는 모두 비슷한 증세로 앓고 있었다. 이빨이 몽땅 빠져버린 노인, 기생충이나 구루병으로 고생하는 어린이들, 여러가지의 비타민 결핍증, 이 모두가 시에라 마에스트라 농민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증상이었다. 나는 단순한 치료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조건 자체를 철저하게 변혁시켜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57년 6월에는 치과의사로도 개업했다... " 내가 진료한 첫환자는 이스라엘 프라도였다. 그는 완전히 나아서 돌아갔다. 두번째 환자는 호엘 이글레시아스였는데, 그의 충치를 뽑기 위해서는 이빨에 맞춘 치료용 화약이 필요했다. 그건 일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런 힘겨운 전쟁을 치렀지만 이빨은 그대로 남아 잇몸에 달려 있었다. 그것을 뽑아내려고 온갖 짓을 대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치과의사역을 해 보기는 처음이었고, 진통제 한 알도 없었다. 그래서 심한 충치로 고통받는 환자에게는 심리적 마취를 십분 활용했다. 즉 고통스런 치료가 성공하도록 주문을 외우게 하는 방법이었다.
바라는 의사로서 활동하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산속에서의 전투에도 빠짐없이 참가했다. 라 플라타병영 습격에서부터 엘 우 베로 전투, 엘 옴 브리트 전투, 그리고 알토스 데 콘라도, 브웨이시토, 피노 델 아구아, 마르 베르데 등의 전투에까지.... 이 공적이 인정되어 7월에는 소령으로 진급되었다. 게바라는 굳센 의지와 용기를 갖추고 있었고, 조직가로서의 능력도 탁워하였다. 그의 생애중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의 25개월간은 그를 조직이론가, 사상가, 전력전문가 그리고 영웅으로까지 만들었다
릴라군은 산속의 근거지를 확고히 구축했다. 게바라는 병영본부를 건설하고 야채밭, 목장, 진료소, 빵 공장, 간이 방송국, 담배와 신발, 무기제작창 등을 세웠다. 물론 사소한 일이라도 신중하게 추진했다. 이 모든 것은 보통 사람의 능력으로는 힘든 일이었다. 게바라는 등사판 신문 [자유 쿠바인]을 발간하여 병사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958년, 게릴라들은 세력을 확장하고 역량을 강화해 갔다. 이해 2월, 게릴라군은 드디어 산을 내려가 혁명전쟁을 개시할 것을 결의했다. 시가전이 조직되었고, 독재자에 대항하는 투쟁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개되었다. 날이 갈수록 전선은 확대되었다
1. 피델 카스트로,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산속에 남아 전부대 지휘.
2. 3월 라울 카스트로, 시에라 크리스탈 지역에 동부의 제2전선을 구축.
3. 후안 알메이다, 산티아고 데 쿠바를 포위하기 위해 하산.
4. 카밀로 시엔후에고스 별도의 공격부대 지휘를 맡기 위해 섬의 서쪽으로 향함.
5. 8월 31일, 체 게바라, 제 8공격부대와 함께 출발.
6. 에스캄브레이 산속에서는 또 다른 저항그룹이 형성되고 있었다. 핵심적인 그룹은 '대학생동맹'과 '인민사회당(공산당)'이었다.
게바라가 이끄는 부대는 농민들로 구성된 소규모 부대였다. 옷은 너덜너덜하게 해어지고,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배를 채웠지만, 조국해방에 대한 신념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다. 들판에서는 하늘에 노출되어있어 자주 비행기의 폭격을 받았다. 게다가 이해관계 때문이거나 혁명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참가했던 병사들은 자주 도망을 쳐서 밀고해버리곤 했다. 이런 와중에도 게바라 부대는 20개 이상의 강을 건너며 섬 중아부를 횡단하여 마침내 에스캄브레이 산속의 게릴라들과 합류했다. 게바라는 그곳에서 가축을 훔치는 등, 농민들을 괴롭히고 있던 '자칭 혁명가'들의 규율을 바로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1958년 12월, 마침내 바티스타군은 패주하기 시작했다. 독재의 날들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게바라 부대의 산타클라라 공격은 바티스타 일당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최후의 일격이 된다. "산타 클라라는 쿠바섬의 중앙평원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인구 15만의 이 지역 중심도시이다.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온갖 소문이나 정보가 가장 빠른 시간에 모여들고 퍼져나갔다. 우리는 공격 당시 소총부대를 상당히 증강시겼고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다발적으로 공격할 수 있을 만한 역량도 갖추었다. 비롯 폭탄은 부족했지만 중화기도 갖추고 있었다. 바티스타군의 전차대를 공격할 바츄카포도 입수했다. 우리들은 까마후아니가의 도로 입구에 장갑차를 앞세우고 경비에 임하고 있는 바티스타군에게 선제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12월 29일, 해방조국을 향한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까피로 언덕의 수비는 상당히 완강했다. 30일, 이곳에서 하룻동안 전투를 계속하는 동시에 시의 다른 지역을 점차 장악해 들어갔다. 정부군은 본부와 장갑부대 사이의 통신이 두절되자 까피로 언덕이 포위되어버린 것을 알고는, 그제서야 당황하여 철도를 이용해 도주하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미 철로를 파괴해 퇴로를 끊어 놓았기 때문에 기관차와 객차 여러 대가 탈선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집중 폭격을 퍼부어 대자 장갑열차는 성냥곽처럼 부셔졌다. 고사포와 기관총, 그리고 엄청난 양의 총탄을 고스란히 내놓고, 적들은 22대의 차량과 함께 항복해오지 않을 수 없었다. 게바라 부대는 12월 31일 경에 산타 클라라의 거의 전지역을 장악했다. 그리고 그 날 밤...
959년 1월 1일, 새해의 첫날 새벽, 바티스타의 탈출작전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현금과 보석자루가 비행기에 실리고, 공포에 질린 바티스타 부부와 그들의 절친한 몇몇 외국인 친구들이 함께 탑승했다. 비행기는 산토 도밍고를 향해 소리없이 이륙했다. 새벽 2시 10분에 너무나도 황급히 떠나야 했기 때문에 경호원이나 수행원들은 거의 따라가지 못했고, 측근들은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바티스타의 부인 루시아는 귀금속이 달린 블라우스와 현란한 장미빛 판타롱을 차려입고 한껏 멋을 부렸지만 불안해하고 초초해하는 기색을 감출 수는 없었다. 바티스타는 측근들에게 자신이 출발한 직후 일어나는 일들을 이후 반드시 보고하도록 당부했다. 그리고 두 명의 장군에게 집무를 대행하도록 명령하고, 체라고 알려져 있는 아르헨티나 의사따위와 같은 공산주의자들의 손에는 정권이 절대 넘어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번 호 : 32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5)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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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0:57:33
내 용 : 쿠바해방
1959년 1월 5일, 사법관 마누엘 우르티아가 대통령에, 호세 미로 카르도나가 수상에 임명되었다. 게바라는 수도 아바나의 요새인 라 카바냐 지역의 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피델이 이끈 용감한 애국청년들은 세상이 깜짝 놀랄 역사적 과업을 이룩했다. 그것은 바로 제국주의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던 친미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것이다. 무력을 사용한 싸움이 끝나고 나자, 한층 더 어려운 문제가 다가왔다. 즉 그것은 새로운 혁명이었다! 쿠바가 또다시 양키의 식민지(차라리 양키의 사창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구조를 변혁시켜야만 했다.
델과 까밀로 시엔후에고스는 아바나의 군정관이 되어 바티스타군의 잔당을 일소하는 일을 맡아했다. 군부와 경찰은 수년에 걸친 내전 기간동안 2만명 이상의 쿠바민중을 학살했다. 고문, 폭력, 강도질에다가 마지막엔 농가에 불을 지르기까지 온갖 만행을 밥먹듯이 저질러 왔다. 이런 야만적인 폭정을 휘두르는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미국으로부터 아낌없이 받아왔던 것이다. 이런 인간 쓰레기들을 자유롭게 놓아두는 것이 옳겠는가? 아니면 처형하는 쪽이 옳겠는가? 게바라는 이들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임무(재판권)를 맡았다. 살려두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재차 반혁명을 꾀할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총살하고 나머지는 징역을 살도록 했으며 극소수만 무죄로 석방하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게릴라들은 멕시코나 과테말라 혁명의 선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대를 전면 개편했다. 직업군인제를 폐지하고 미국이나 부르조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새로운 군대를 만들었다. 피델과 그의 동지들은 수염을 깍는 일도 미루고 제반문제를 검토했다. 1959년 1월, 게바라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논쟁이 기록되어 있다.
"며칠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멕시코의 어느 곳에서 우리가 은밀히 토론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혁명의 강령을 쿠바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자 몬카타병영 습격에 참가했던 한 병사가 이렇게 주장했다. '이건 단순하고도 간단한 일이다. 우리들이 하려고 하는 일은 쿠데타다. 바티스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으니 그 놈으로부터 다시 정권을 빼앗으려면 또 한 번의 쿠데타를 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바티스타가 100의 이권을 미국에 바쳤다면 우리들은 101의 이권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문제는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그에게, '우리들은 확고하게 기초를 다진 후에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으면 안된다 보다 중요한 일은 권력을 잡은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오리엔테의 산과 평지에서, 카므게이의 저지에서, 라스 비야스의 산과 평지 그리고 여러 도시에서의 2년 동안에 걸친 처절한 투쟁 후에 아바나에 개선한 우리 게릴라들은 초창기와는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농민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는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이들 농민의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실천을 통하여 우리는 이론을 정립해나갔다.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수행되었던 '토지개혁'의 깃발 아래 굳게 뭉쳐 우리 게릴라들은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싸워 왔다. 우리는 '토지개혁'을 통해 모든 무산자들에게 토지가 돌아가야 하며, 불법 소유자들에게서는 토지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수행하는 노력과 치르고 있는 희생이 농민의 해방을 위한 것일 때에는 아낌없이 치루어내야 한다는 것을 농민의 지지와 성원 속에서 배우게 된 것이다. 농민들에게 토지를 줄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인 급진적 토지개혁을 직접적으로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에 빌붙어먹는자들 즉, 대토지 소유자, 설탕공장 경영자, 대규모 농장소유자들의 이익과 충돌한다. 부르조아듣ㄹ은 이러한 충돌을 두려워하나 프롤레타리아는 그렇지 않다. 노동자들은 이 토지 소유자들에게 불리하게 제정된 법률을 지지하고 있다. 혁명군은 남녀를 불문하고 기본적인 사명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것은 억압과 착취의 굴레로부터 농민들을 해방시키는 사명이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토지를 쟁취하는 투쟁에 그들을 불러 일으켜서 참여시켜야 했고 그 일을 위해 오리엔테주의 구석구석가지 바로 그곳 출신의 교사들이 파견되었다."
"쿠바 혁명정부는 사회 각 분야의 개혁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고, 민중의 단련된 민주주의 의식이 이를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농지개혁 구상을 구체화하여, 실현가능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은 혁명적인 법률이 요청되고 있다. 또한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토지의 재분배와 늘어난 농산물의 수급을 처리할 대형 유통기구의 마련이라는 두가지의 과제는 혁명정부가 어떻게 해서라도 실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경제적인 일은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다. 국내산업의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많은 난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컨데 산업장려정책을 진행시킴에 있어서 막 생겨나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이 기업에서 생산해낸 상품을 소비할 국내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대책도 필요하다. 이 시장의 규모는, 구매력은 크지 않더라도 물품을 필요로 하는 농민들의 수요에 맞출 정도면 된다. 사탕 담배 등을 수송하기 위한 상선도 필요하다. 또한 이전에 우리들의 소유였던 토지, 광산을 되찾지 않으면 안된다. 또 하나, 전력을 확실하게 쿠바민중의 것으로 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요금은 비싸고 아직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필요없는 전화회사를 국유화하는 일도 고려해야 한다."
게바라는 피델과 몇가지 점에서 의견이 일치했던 것은 틀림없었다. 게바라는 자신을 피델의 제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조직가로서의 뛰어난 수완도 있었다. 그래서 게바라는 국립농업개혁국의 공업부장이라는 경제 부문의 임무를 맡게 된다.
1959년 6월, 게바라는 인도, 이집트, 인도네시아, 유고 등을 돌아보는 여행길에 오른다. 게바라는 자본주의적 방법도 아니고 공산주의적 방법도 아닌 이른바 '제3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11월 28일, 게바라는 쿠바 중앙은행의 총재로 임명되었다. 초대총재가 된 게바라는 셔츠차림으로 업무에 들어갔다. 낡아빠진 군복풍의 셔츠를 걸치고, 빗질도 하지 않은 부시시한 머리로 총재자리에 앉은 것이다. 그가 이 자리에 앉아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의 급료를 5천페소에서 1천2백페소롤 줄인 일이었다. 이에 놀란 쿠바의 부르조아들은 당황하여 허둥거리며 모두 마이애미로 줄행랑 쳤다. 쿠바의 지폐는 미국에서 인쇄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지폐가 남아 돌아갈 정도로 남발되고 있었다. 게바라는 미국의 마음대로 찍을 수 없도록 지폐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인쇄하도록 했다. 우측의 사인이 그가 공무를 처리할 때 사용한 것이었다. (게바라는 지폐에 자기의 사인을 넣었다.)
게바라가 중앙은행 총재에 임명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중앙은행의 임원이었던 호세 산티에스테반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번 호 : 33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6)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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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0:58:24
내 용 : "은행업무 중에서 그가 가장 고심하는 것은 외화의 축적이었습니다. 매일 외환수지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그는 외환보유고를 보면서 모든 문제를 분석하곤 했습니다."
"그는 새벽 서너시까지 피로도 잊은 채 일을 하고 늘 재정산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와 일치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에는 반드시 여러 사람들과 상의했었지요. 간부들에게 자유롭게 발언하도록 하고 최종적으로 그가 결정을 했습니다. 부하들이 과실을 범할 때는 엄격하게 질핵했었지요. 하지만 항상 인간적이었어요. 심약한 것은 용서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관용을 베풀었죠. 한 인간에 대한 신뢰는 그 사람이 정직하고 혁명적인가 어떤가 살펴보고, 일단 눈에 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뒷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그는 금융정책을 오로지 혁명사상을 현실화시키는 무기로서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게바라는 어떤 방법론을 채택할 경우, 그 채택의 근거를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인 측면에서 찾았지요. 중앙은행은 단 하나의 참된 가치 즉 '혁명수행에 있어서의 동지애'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원칙과 일상적인 삶 그 모두에 있어서 가장 인간적이며 혁명적인 사람이었지요."
1960년, 이해에 게바라는 자신의 발로 사회주의 국가의 땅을 밟아보는 꿈을 실현했다. 소련, 중국, 불가리아, 북한, 체코슬로바키아등을 방문하고 RDA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이야기의 순서가 바뀌었는데, 이미 1959년 2월 9일에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쿠바의 시민권을 얻었다.
"확실히 라울(피델의 아우)과 나는 자주 충돌한다. 그래서 영광스럽게도 우리는 1,2등을 다투를 잔소리꾼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역사책을 찾아보면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 주는 모델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멕시코는 석유를 국유화한 후에 발전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의 대통령 카르데나스는 멕시코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우리도 멕시코처럼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들의 정책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시비를 걸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우리들이 이 나라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이고, 이 나라에서 제국주의의 손아귀에 있는 것들을 국유화하는 것과 우리의 주권을 되찾는 것은 같은 문제라는 것이다."
꼼꼼하게 일하는 사람, 착실하고 조직적이면서도 고집을 굽히지 않는.. 이처럼 철두철미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의 일하는 태도나 탁월한 능력을 높이 평가한 도르티코스대통령은 피델의 천거를 받아 게바라를 공업장관으로 승진시켰다. 이때 게바라의 나이 32세였다.
쿠바내 미국재산의 국유화와 사회주의 제국과의 통상확대. 이에 대한 양키 아저씨로부터의 공격은 예상되었던 것이다. 국유화한 토지, 은행, 제당공장, 상사 등은 대부분 양키자본가들의 소유였었기 때문이다. 1961년 1월 8일 미국은 쿠바와 국교 단절을 한다. 미국은 마침내 1961년 4월 17일부터 48시간에 걸쳐 피그만해안을 침공했다. 게바라는 이 전투에 참가하여 얼굴에 부상을 입었다. 미국의 침공으로 쿠바의 육해공군은 피해를 입었으나 혁명군은 결국 미국의 공격을 물리쳐내었다.
드디어 카스트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기치를 높이들고 세계를 향해 공언했다. 쿠바는 사회주의의 일원이 되었음을 선포한 것이다. 게바라는 전국 각지에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산업발전4개년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갖가지 시행착오는 감수해야 했다. 그의 경제 정책의 골격은 아래와 같다.
급진적 농지개혁, 사탕수수 경작지의 축소, 급속한 산업화, 1차 상품의 수입제한, 산업의 전면적 국유화, 외화축척, 임금제도의 개선...
게바라는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즉 노동자의 투쟁이 한결같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경제투쟁으로 나아간다는 문제였다.
"제국주의자들의 경우에는 문제 해결이 훨씬 쉽다. 많은 이익을 올리려는 욕심이 그들의 본성이기 때문에 임금인상의 요구가 있어도 여우있게 시간을 끌다가 막판에 가서야 임금을 아주 조금 인상해주어 생색만 내면 문제가 해결되니까말이다."
이제야 게릴라들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지나친 임금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동을 하지않는 매우 고급스럼 직업이 있는 반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뼈빠지게 일하고도 기아임금에 허덕이는 심각한 상태였다. 게바라가 생각하기에는 무엇보다도 노동자 한사람 한사람에게 신성한 노동의 의미에 대한 자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성한 의무감에 의해 노동하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내에 생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자국보다는 '의식의 개혁'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금전욕이나 명예욕 혹은 체제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과 지도자에 대한 신뢰 그리고 자기 자신드을 위한 공동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상태에 이를 때, 더 이상 노동이 괴로울 필요가 없어지고 즐거운 의무가 될 것이다. 물질적 유혹이란 새로운 사회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과거의 유물이다. 그것은 완전히 척결되어야만 한다. 우리들이 그런 부조리한 것들과 싸워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주의 정신의 발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쿠바사람들처럼 놀기 좋아하고 소란스러우며, 행실이 분방한 국민을 하나의 기치 아래 결집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쿠바에는 기술자도 전문직 노동자도 없었고, 경제계획도, 예산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론에서 실천으로! 노동자를 찾취하지 않으면서 생산성을 높이고 태만함, 결근, 여럿이 모여서 복잡거림 등의 생산성 하락요인을 없애기 위한 새로운 기술의 습득, 유능한 관리자의 육성, 양키의 간섭을 배제한 자주적 공장운영... 이런 사항이 게바라에게 부관된 중대한 과제였다.
 

번 호 : 34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7)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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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0:59:22
내 용 : 게바라는 노동 그 자체보다는 자유의지로 하는 잉영노동을 더 많이 요구하였다. 그것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하나의 요인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대중교육의 원천이다. 모든 사회적 고제 배후에 있는 목적은 새로운 인간의 창조인 것이다. 게바라는 붉은 자발노동대를 만들고, 한 사람의 노동자로 돌아가 사탕수수를 거두고 노동자 주택의 건설에 참가했다. 이 모든 것이 노동자 교육의 일환이었다. 그럼 게바라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자.
"게바라는 좋은 옷이라든가 새구두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한번도 우리 노동자보다 좋은 음식을 먹은 적도 없었구요. 노동자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지급받은 것을 먹고 입었어요. 그는 특권을 갖는 것도 매우 싫어했지요. 자신의 부하에게조차 어떠한 특권도 행사하지 않으려고 항상 자신을 경계했어요. 그는 살아있는 동안 어느 한 순간도 자신이 게릴라 병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지요. 이만하면 대단한 일물아닙니까?"
"그와 함께 일했던 것은 귀중한 경험이었어요. 그는 일을 나갈 때는 제일 먼저였고 퇴근할 때는 맨 마지막이었거든요. 게다가 대개의 경우 가능한 한, 일을 마무리하려고 하다가 돌아갈 수 없을 때는 작업장에서 그냥 노숙했지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웅크리고 잤어요. 침대에서 자고 싶은 유혹은 참아내지 않으면 안되다고 하면서요."
"그 사람은 노동자에게는 공손하고 싹싹했지요. 함께 자발적 잉여노동을 할 때나 공장으로 갈 때, 처음에는 아무도 호감을 갖지 않았어요. 그래도 게바라는 우리와 함께 어울려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자유롭게 이야기를 한다든가, 물을 마시려고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기도 하면서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었지요."
"산타 코로마 농장에 있었을 때 새벽녘 무렵이었는데 게바라가 갑작스럼 천식 발작으로 시달리고 있었어요. 내가 '왜 잠시도 쉬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약을 꺼내오면서 이렇게 대답했지요. '그렇게 닥달하지 말아요.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거요.'"
"항상 무라이자라는 이름의 개를 끌고 다녔습니다. 참으로 원기왕성한 개였어요. 그는 동물을 대단히 좋아했어요. 언제인가 한번은 멕시코인가 니카라구아에서 앵무새 한 마리를 가져왔는데 게바라 못지 않게 입이 험악했답니다."
"매우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는 언제난 알아듣기 쉬운 말을 사용하였고, 그가 세운 계획들도 아주 구체적이고 확실한 것들이었습니다.
1961년 8월 게바라는 쿠바대표로 우루과이의 푼타 델 에스테에 갔다. 그곳에서는 OEA(미주기구=미국의 지배기구의 하나)의 '경제사회심의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 당시의 라이프지에 이에 대한 자세한 기사가 실렸다.
"어떤 때는 화려하고 잘난 척하는 또 어떤 때는 온화하고 호감을 주는, 구렛나루를 기른 이 쿠바대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참석자는 게바라가 능숙하게 외교적인 제스쳐를 쓴다고 하여 '체체'라고 이름붙였다. 게바라의 이상한 언동은 그를 적대시하는 그룹에게 있어서는 조소거리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미국에 거주하는 쿠바 망명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또 한편으로는 좌익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진보를 위한 동맹'의 스폰서인 미국을 공격하면서, 쿠바가 동맹의 자금원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했다. 각국의 대표들은 게바라야말로 아메리카대륙에서 소련의 침입과 지배를 불러들일 장본인이라고 생각하고는 그 자리에서 NO라고 딱 잘라 대답했다. 푼타 델 에스테 헌장에 서명한 각국 대표들은 만족해 하며 해산했다. 쿠바로 돌아가는 길에 게바라는 대부분의 산업을 국유화시켰던 쿠바경제가 이젠 위기에 직면했고, 미국과의 암거래가 다시 이루어지고 있다고 실토했다. 소련권으로부터의 원조는 만족할 만큼의 효과가 없고 쿠바에는 적당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게바라는 적대국인 미국과 동등한 상업거래가 성립되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우루과이에서 후에 '게바라의 예언'으로 이름붙여진 두가지의 연설을 했다. 그 연설 중에서 케네디의 '진보를 위한 동맹'의 속셈을 폭로하고 양키 제국주의를 비난했다. 회의가 끝난 후에는 비밀리에 아르헨티나로 가서 후론디시대통령과 회견했다. 거기에서 다시 브라질로 가서 쟈니오 구아드로스대통령으로부터 공식적인 훈장을 수여받았다.
"우리 민중이 주권을 되찾지 않으면 안된다. 독점자본으로부터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 독점자본은 이미 쿠바에 침투하여 움직이는데 그것은 거의 모두가 미국자본과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다. 쿠바는 이제 무엇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 그 해답은 다른 삶의 노동으로 부유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일이다."
1962년, 미국은 쿠바 국내에 소련의 미사일이 배치되어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은 쿠바를 침략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깨고 해군을 파견하여 쿠바를 봉쇄했다. 흐루시초프가 소련 미사일의 철수를 결정할 때까지 봉쇄는 계속되었다.
1962년에서 1964년 이 3년 동안은 게바라에게 있어서나 모든 쿠바인에게 있어서나 매우 격심한 '노동의 나날'이었다. 그는 이 기간동안 당과 대중조직을 견고하게 꾸리기도 하고, 경제계획을 세우는 등 많은 일들을 진행했던 것이다. 1963년 7월, 게바라는 경제계획세미나에 참석 하기 위하여 알제리를 방문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 그는 관리들과 경제운영을 둘러싼 논쟁을 벌였다. 그 논쟁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 논쟁에서 과연 늙은 공산주의자들이 게바라의 노선을 받아들였을까?
 

번 호 : 35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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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1:00:21
내 용 : 게바라는 연애에 대해서는 매우 쑥맥이었다. 그러나 뭇여성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틀림없다. 게릴라 전사들은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부인과 함께 살 수 없었다. 전사들이 개선할 때까지 일다(게바라의 부인)는 딸 일디타와 멕시코시티에서 살고 있었다. 1959년 1월 21일 두 모녀는 아바나에 도착했다. 게바라를 만나기 위해 쿠바로 돌아온 것이었다."제가 어린 딸을 데리고 아바나로 온 것은 1959년 1월 21일이었습니다. 이때 에르네스토는 다른 여자와의 관계에 대해 정직하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녀와는 산타 클라라 전투에서 알게 되었답니다. 나는 매우 슬펐지만 두사람 사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들은 이혼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그는 이혼하자는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그외에 별 다른 해결방법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1959년 5월 22일에 우리는 정식으로 이혼했고 그는 6월 2일에 재혼했습니다." - 일다 가데아 '체게바라, 투쟁의 나날'(1972)
다른 여자란 도대체 누구일까? 그녀는 22세의 쿠마인 교사, 알레이다 마르치 데 라 토레이다. '7.26운동연합'의 일원이고, 게바라와는 엘 페드레로 농장의 전투에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거기서 게바라부대에 합류하여 승리의 날까지 그의 곁에서 모든 투쟁을 함께 수행했다. 게바라는 재혼한 알레이다와의 사이에 네자녀를 두었다. 그는 바보스러울 만큼 부정이 넘치는 아버지였다. 게바라의 결혼생활이 정상적인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실제로 거의 모든 혁명가는 결혼생활에 실패한다. 남편의 인생은 혁명과 함께 진행되므로 평범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고참 공산주의자들은 게릴라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전혀 전투적이지 않았었다. 그들은 게바라에 대한 불신감을 갖고 있었고 그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인식부족을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게바라는 쿠바의 공산주의자들이 취하고 있던 공장자주관리방식이나 국가계획경제가 골간이 되는 소련형 사회주의 모델보다도, 정신적 자격(刺激)을 중시하고 통일적인 예산 융자제도를 취하는 중국형 사회주의 방식을 더 선호했다. 게바라와 소련의 동지들 사이에는 의견의 차이가 있었다. 논쟁이나 서로 상대방을 비꼬는 좋지못한 평이 오고가고 했지만 그다지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 이상의 대립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게바라가 소련에 대해 기본적으로 호의적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건설을 위한 당내 논쟁에 있어서도 게바라의 동지들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쿠바경제는 자력갱생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야 했다. 다양한 체험이나 생각들을 받아들여 가면서.....한편에서는 혁명의 원동력이자 사회주의 건설을 추진시킬 당이 만들어졌다. 게바라에게 있어서는 두번 다시 맞기는 힘든 어려운 일만 계속되었지만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엔 혁명적 과업의 완수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바라는 주위에서 염려했던 대로(왜냐하면 그는 경제전문가가 아니었으므로) 큰 실책을 범하지는 않았다. 레닌도, 카스트로도, 아니면 예수일지라도 그런 경우라면 그와 같이 실천했을 것이다..... 여하튼, 쿠바경제는 성장해 가고 잇었다. 이러쿵 저러쿵 헐뜯는 사람이 있어도 결국 게바라의 노선에 따라서......
 
1965년
그러나 게바라는 경제학자로서는 그렇게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쿠바경제는 그가 바라는 대로 나아가 주지만은 않았다. 1965년 1월, 그는 장기여행을 계획하고 아프리카로 향한다. 콩고, 기니아, 가나, 다오메이, 알제리, 탄자니아. 그리고 카이로를 방문했다. 알제리에서는 '제2회 아프리카 아시아 연대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는 그곳에서 소련을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소련은 돈을 지불하는 나라들에게만 무기를 내줍니다....." 3월 14일, 아바나로 돌아와서 그는 피델 카스트로와 모종의 장소에 틀어박혀 밀담을 나누었다. 그 후 직장으로 돌아온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취했다.
1965년 4월 중순, 게바라는 자취를 감추었다. 정부청사에도 사탕수수밭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카스트로는 "지금 내가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게바라는 늘 혁명의 최전선에 서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나의 관계는 아무 이상없이 좋습니다."라고 했다. 게바라의 실종에 대해서 온갖 소문과 억측이 난무했다. 피델과 싸우다가 죽었다, 도미니카에서 객사했다, 발작을 해서 멕시코시티의 병원에 감금되어 있다, 소련사람들이 시베리아로 유배보냈다, 수도승이 되어 스페인으로 갔다, 반카스트로주의자 그룹이 미국으로 납치해 갔다.......1965년 7월, 보다 사실에 가까운 소문이 콩고에서 돌았다. 게바라가 어떤 쿠바인과 더불어 촘베의 용병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해 11월 11일, 피델은 아바나의 채플린 극장에서 게바라에게서 온 편지를 낭독했다. 그것은 양친에게, 딸 일디타에게, 그리고 피델에게 보낸 세통의 편지였다. (참조- 피델에게 보낸 게바라의 편지) 민족해방을 위한 십자군의 한 전사로서 게바라는 영원한 해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단념한 것이다. 게바라는 다시 투쟁에 뛰어들기 위해 옛 벨기에령의 콩고를 훈련장으로 택했다.
1966년 3월, 게바라는 게릴라 훈련을 마치고 콩고를 떠났다. 볼리비아의 공산당원과 만나기 위해 파리를 경유하여 프라하로 갔다. 그리고 나서 최종 목적지로.... 그러나 CIA는 이미 그가 콩고에 있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유럽을 통해서 볼리비아로 갈 것이라는 것도 알아냈다. 이 때문에 게바라는 면밀한 변장작전으로 대응했다. 또 다시 구렛나루와 콧수염을 깍고 머리도 짧게 잘랐다. 헤어스타일도 커다란 수건을 이용해서 변화시켰다. 그는 우루과이의 상인 아돌포 메나로 변장을 한다.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다른 증명서도 준비했는데, 증명서에 쓰인 이름은 라몬 베니테스 훼르난데스였다. 볼리비아에 입국할 때는 메나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메나는 볼리비아의 오지에 별장 하나를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볼리비아는 여러가지 이유로 해서 게릴라 전투의 근거지로 적당하였다. 국민과 유리된 정부, 대중화된 불만, 기근, 정부의 충실한 하수인인 군대, 투쟁의욕이 넘치는 광부들, 게다가 정부내의 부정부패.... 그리고 게릴라 활동에 유림한 삼림까지 모두가 충분한 조건이 되었다. 남미의 5개국과 국경이 접해 있는 볼리비아는 장차의 라틴아메리카 민족해방군을 구성할 게릴라 공작기지로서 전략적으로 매우 이상적인 위치에 있다고 하겠다.
"이미 볼리비아를 비롯하여 라틴아메리카 여러나라에서 새로운 투쟁이 싹트로 있다. 혁명가가 수행해야 할 임무가 위험하면 위험해 질수록 혁명의 싹은 무럭무럭 커나갈 것이다. 즉 한 나라의 해방 후에도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 민족해방'이라는 신성한 의무를 완수하도록 끝까지 투쟁해야만 한다." - 제3세계(A.A.LA)의 연대를 위해 발간된 기관지 '트리 콘티넨탈지'에 체가 쓴 메시지(1967.4.16)
"라틴 아메리카 대륙은 현대의 오랜 정치투쟁에서 잊혀진 대륙이었다. 그러나 쿠바혁명이라는 인민대중의 함성이 제3세계 단합기구를 통해 전세계에 울려퍼지기 시작했으며, 이제야말로 혁명에 대해 명확한 임무를 가진 대륙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 임무란 범세계적으로 제2, 제3의 베트남을 만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최종단계에서 발악적으로 등장한 세계체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전 세계적인 연합전선을 통해서 이를 타도해야만 하는 것이다.
평소에 점잖은 신사인 미국인들은 전쟁도덕에 있어선 매우 악랄하다. 따라서 그들에 대항하는 투쟁은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쓸데없는 희생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오로지 투쟁만이 미제국주의를 물리칠 수 있다. 적들은 우리로 하여금 투쟁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투쟁을 준비하고 투쟁을 시작할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이런 전쟁이 처음에는 매우 어려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과두지배 계급은 온갖 무력을 동원하여 탄압해오고 온갖 폭력과 악선전을 이용할 것이다. 우선은 살아남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리고 이어서 베트남에서 실천된 것처럼 무장선전이라는 게릴라의 영원한 규범이 실행될 것이다. 즉, 총에 의한 선전, 적과 대치하여 승부를 거는 전투, 그 자체에 의한 선전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게릴라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위대한 교훈이 착취받고 있는 민중들 가슴속에 자리잡게 될 것이다. 민족정신이 고양되고, 보다 지난한 임무에 대한 준비와 폭력적인 탄압에 대해 저항할 준비가 가능해진다.
적이 있는 모든 지점까지 투쟁의 장을 넓히지 않으면 안된다. 적의 집, 적의 휴식처까지도 전쟁은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적에게 일초의 평온, 잠시의 휴식도 주어서는 안된다. 그 어떤 미국 병사도 자신의 막사에서나 극장, 혹은 거리에서 안심하고 다닐 수 없도록, 자신을 독안에 든 쥐로 생각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점점 더 그가 야수와 같이
 행동하게 되면 될수록, 그의 발광은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끌어 갈 것이다....." - 1967년 4월, 아바나에서 개최된 '3대륙 단합기구'회의에서 대독된 게바라의 보고서
1966년 8월:체 게바라, 볼리비아에 도착, 비슷한 차림으로 변장한 쿠바인 10명(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같이 싸웠던 강인한 전사들)도 도착 완료.
1966년 10월:산타 크루스 근처에 숨겨져 있는 집을 입수. 약 15명의 볼리비아인과 조직을 형성. 볼리비아 공산당은 게릴라전에 동조하지 않음.
1966년 11월:게라바, 농촌으로 들어가 게릴라 활동의 준비 개시. 같은 날, 즉 11월 7일부터 저 유명한 '게바라 일기'를 쓰기 시작함.
 

번 호 : 36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9)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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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1:01:25
내 용 : "오늘부터 새로운 상황에 접어들었다. 밤에 은신처에 도착했다. 여행은 비교적 순조로왔다. 변장도 아주 훌륭히 되었고 무사히 코챠밤바를 통과했다. 파충고와 나는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면서 두 대의 지프로 이틀간 돌아다녔다. 은신처 부근에 도착하여 일단 차를 멈추고, 한 대만 몰고 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혹시 코카인을 제조한다는 소문이라도 나서 근처 주민들의 주의를 끌게 되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두우마이니라는 자가 우리 그룹의 화학기사로 일하게 된 것이 수상하다...."
게바라의 일기를 읽어 내려가면 한 사람의 게릴라 전사가 겪는 인생의 희비극을 엿볼 수 있다. 동지의 배반, 낙심과 기쁨, 투쟁과 죽음 등... 처음에는 지형을 숙지하는 훈련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 가운데 새로운 게릴라들이 속속 도착했다. 1967년 3월까지 적과의 싸움은 없었다. 그러나 2명이 훈련중 익사했다. 이때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레지 드브레와 시로 브즈토스가 내방했었다.
경찰이 이 두사람을 취조해서 중요서류를 압수하고 그들로부터 게바라의 은신처를 알아냈다. 드브레와 부즈토스는 후에 체포되었고 고문에 못이겨 게릴라의 은신처를 자백한 것이다.
4월11일, 볼리비아군은 게릴라 기지를 수색하면서 그 속에서 게바라의 사진을 찾아냈다. 이 정보를 넘겨받은 CIA는 볼리비아에서 수색활동을 시작했다. 미국은 게릴라 중 두 사람의 변절자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릴라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명령은 간단했다. 즉시 사살하라...... 두 사람의 변절자 바레라와 로카바드는 볼리비아 군대에서 게바라에 대해 아는 것을 전부 불어버렸다. 4월, 볼리비아군은 본격적으로 '게릴라 사냥'을 시작했다. 2천명 이상의 병사와 대게릴라전 미국인 특별고문관들, CIA의 앞잡이들을 투입하였다.
게바라는 게릴라전에 관한 논문 '게릴라전-하나의 방법'을 쓰면서 연구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은 다른 데 있었는데 그것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실패의 원인이란
1.아직 군대와 싸울 준비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발견되어 버렸다.
2.볼리비아의 농민은 쿠바의 농민처럼 움직여주지 않았ㄷ다. 이것은 게바라의 큰 오산이었다.
3.당시 지극히 미약한 상태였던 게릴라 활동에 CIA의 그린베레가 개입하리란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4.볼리비아 공산당(비합법이어서 지하활동만 하고 있었음)의 지원이 없어 도시와의 연대가 이루어 지지 않아 게릴라는 고립되어 있었다.
5.당시의 볼리비아는 혁명적 조건이 성숙되지 못했다. 이를테면 바티스타같은 독재자도 없었고, '7.26운동연합' 같은 조직이 결성돼 있지도 않았다.
게바라는 5월의 마지막 일기에서 상황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정부군이 게릴라를 추격하고 있음, 쿠바와 연결이 안됨, 라 파스와 연락이 두절됨, 볼리비아 농민의 협력이 없음, 게릴라 내에 환자 속출, 식량 부족, 천식재발에 대한 초조함, 윤리의식의 저하, 부대가 둘로 갈라져 전투에 임했으나 한쪽이 전멸(나머지 절반도 호아킨이 지휘하는 부대와 연락이 두절됨).
8월 31일, 볼리비아군은 게릴라들이 당일 오노라트 로하즈라는 농부의 집으로 간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로하즈는 엘 이에소의 얕은 곳으로 마시쿠리강을 건너도록 게릴라를 안내할 예정이었다. 한달전, 게바라는 로하즈의 아이들을 치료해 준 적이 있었다. 결국 로하즈는 배신을 했다. 호아킨의 게릴라 부대가 얕은 내를 건너기 시작할 때, 매복해 있던 정부군은 집중 사격을 가했다. 열 명의 게릴라가 쓰러졌다. 그중 오직 한 사람 파코만이 살아 남았다. 게바라의 일기와 볼리비아 군인들과 행동을 같이 했던 볼리비아인 저널리스트 호세 알카사르의 기록에 의하면 게바라부대는 겨우 달아났음에도 불구하고, 탈출에 실패하여 결국은 다시 포위되었다. 게릴라는 둘로 나뉘어 행동했었다. 게바라의 부대와 호아킨의 부대로...
3월3일:게릴라, 매복하여 정부군을 기다림. 군측 7명 사망, 4명 부상, 10명 생포. 게릴라측은 야영지를 떠남.
4월10일:이리피티에서 군과 전투. 군병사 10명 사망, 6명 부상, 쿠바인 게릴라 루비오 전사.
4월20일:정부군을 속이기 위해 무유팜파로 내려감. 그곳에서 일행과 떨어져 있던 드브레와 브즈토스 두 사람이 체포됨. 게릴라는 길을 바꿈.
4월25일:정부군과 전투. 쿠바인 롤란도와 군측 병사 2명 사망. 항공부대가 지역 전체에 폭판 투하.
5월8일:매복하여 정부군을 기다림. 정부군 수색대 병사 3명 사망, 포로 10명(후에 즈봄만 석방). 게릴라 전원 병에 걸림.
5월30일:매복, 수색대 병사 3명 사망.
5월31일:다른 장소 매복, 수색대 병사 2명 사망.
6월26일:군과 전투, 수색대 병사 4명과 게릴라 도우마 사망. 게릴라 전체 인원은 24명이 됨.
7월20일:다른 그룹에 의한 매복. 군병사 4명과 게릴라 1명 사망.
7월27일:정부군과 전투. 4명 사망.
7월30일:또 전투. 게릴라 라울 전사, 3명 부상, 군병사 6명 사망,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약이 없었다.
8월26일:정부군과 전투. 사상자 없음.
8월31일:후위부대의 와나로 도망치다. 호아킨, 타니아, 엘 네그로, 브라울리오, 알레한드로, 모이세스, 활테르, 토로, 마이무라 전사.
9월26일:게릴라(게바라가 이끄는 그룹)에 대한 정부군의 매복 공격. 미겔, 코코, 훌리오 전사. 캄바와 레온은 적의 포로가 되었다.
10월6일:계곡에서 게릴라는 정부군 1천 8백명에게 포위됨. 도망갈 길이 없었다.
10월8일:운좋게 탈출한 세 명의 게릴라 중 한 사람 이
었던 베니그노는 게바라의 최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참조)
"볼리비아 군은 우리를 발견했다. 촌장이 정보를 제공했던 것이다. 촌장은 마을의 한 노파와 사원의 경내에서 감자를 파는 그의 아들 두 사람에게서 우리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병사들이 산의 계곡에 배치되었다. 정부군은 우리가 그들에게 유리한 지점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우리는 그날 오전, 2시 반에 이동하기로 했다. 환자가 발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두 시간의 착오가 생겼다. 오전 9시 반 경 잠을 깬 게바라는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몸은 어떠냐고 물었다. 내게 어디 아픈 곳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정찰에 나갈 수 있겠느냐고 묻고는 '이 부근 전체를 정찰해 주었으면 좋겠네. 특히 오른쪽에 있는 산을 말이야'라고 말했다.
전투가 벌어질 경우를 대비하여 파쵸를 동반했다. 나는 그때, 한쪽 손밖에 쓸 수 없었다. 백미터 정도 나아가 전방의 구릉을 살피기 위해 덤불에 몸을 숨겼다. 그때 파죠가 구릉위에 서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저기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목동인가 했지만, 목동이 나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그때가 아침 6시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보초병의 행동으로 보였다. 이윽고 구릉의 전체에 걸쳐 차례차례로 병사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캠프로 돌아와 게바라에게 전했다. '최악이다. 저 구릉 전체에 적이 깔려 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좋다. 오른쪽 계곡으로 나가서 적어도 오늘 하룻동안만이라도 발견되지 않도록 하자. 밤이 되면 봉우리를 넘어 포위망을 뚫고 탈출한다.' 계곡에는 숨을 곳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위장을 하였다. 봉우리는 5백미터 정도 앞에 있고 그곳에 군인들이 있는 것이다.
게바라는 모두를 격려하면서 방어체제를 조직하고, 탈출경로를 지시하고, 흩어졌다가 어느 장소에 재집결할 것인가도 결정했다. 계곡의 입구에 안토니오를 지휘관으로 하여 파쵸, 아르투로, 윌리가 복병으로 배치되었다. 계곡의 깊은 곳은 폼보와 나토, 우르바노가 맡았다. 계곡의 바위 근처에 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는데 게바라는 나에게 그리고 가라고 했다. 내 위치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지만, 지시한 그곳은 적군의 움직임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유리한 장소였고, 공격을 받을 경우 탈출지점으로도 용이했기 때문에 가야만 했다. 아침 8시, 나는 인티와 다리오의 도움을 받아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침 11경, 군대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나에게로 다가온 게바라에게 보고했다. 곧 우리의 말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지점에까지 적이 바짝 다가왔다. 우리는 나무 뒤쪽에 몸을 숨겼다. 나무는 둥치는 곧았고 뭄을 숨기기에도 매우 작은 은폐물이었다. 게바라가 있는 곳에 윌리와 함께 몸을 감추고 있던 아니세트와 엘나토가 폼보와 우르바노가 있는 쪽으로 파견되었다. 폼보 등을 게바라가 있는 쪽으로 다시 집결시키기 위해서였다. 아니세트가 계곡의 중앙으로 한발자욱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언덕 위의 병사들에게 발견되어 버렸다. 그는 즉시 사살되었다. 그리고 나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오후 1시 반 경이었다.
다른 동지들이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인티와 다리오 그리고 나 세사람은 높은 위치에 있었으므로 적을 쏠 수 있었지만 나머지 동지들은 낮은 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적들을 미처 볼 수가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다른 동지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총격전을 계속했다. 적군 5명 사망, 부상자 6명 발생.
오후 늦게 폼보가 우르바노와 엘 나토와 함께 우리들이 올라왔던 지점으로 계곡을 건너오려고 했다. 우리는 몸짓으로 그렇게 하면 전멸할 것이라고 필사적으로 전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어두워지길 기다리면서 우리가 내려갈 때까지 숨어있었다. 우리가 모두 다시 집결했을 때, 폼보가 '게바라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도 동시에 그들에게 반문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게바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시한 집합장소 어디에서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배낭과 발자국이 남아있어서 부상당했을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더 멀리 떨어진 집합장소로 갔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다. 봉우리를 넘어서 라 이게라 시가로 돌아가려 할 때 한바탕 총격전이 벌어졌으나 그 이후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우리는 라 이게라시가에서 6백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관목지대에 몸을 숨겼다.
아침 9시 반 경, 마을 쪽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11시 쯤 다시 몇 발의 총소리가 더 들려왔다. 후에 그것이 윌리와 엘치노, 또 게바라를 살해하는 총소리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입회인으로서 게바라의 총살을 목격했던 사람은 두 사람의 저널리스트, 볼리비안인 알카사르와 프랑스인 레지 드브레였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게바라는 부상당한 상태에서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함께 붙잡힌 사람은 볼리비아인 광부 윌리와 시몬 쿠바였다. 오후 세시 반 경이었다.
11시15분, CIA는 게바라를 총살하기로 결정했다. 볼리비아인 하사관 마리오 테란이 사형집행인 역을 자원하여 게바라에게 마구 총질을 했다. 또 다시 다른 볼리비안인 페레스 중위가 확인사살로 게바라의 목에 총을 쏘았다.
1967년 10월 9일 12시, 라틴아메리카 해방전쟁에 생명을 바친 한 사나이가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번 호 : 37
제 목 : [자료]체 게바라가 카스트로에게 보낸 작별의 편지 내용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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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1:13:26
내 용 : 체 게바라가 카스트로에게 보낸 작별의 편지 내용
 
피델
지금 이 시간 이런저런 상념들이 떠오른다네, 자네를 마리아 안토니아 집에서 처음 만났던 때와 자네가 나에게 자네 그룹에 합류하기를 청했을 때, 그리고 우리의 여정을 준비하는 동안 느꼈던 팽팽한 긴장감에 대해, 우리가 자기의 죽음을 대비해 누구에게 그 소식을 전해야 할지를 미리 말했을 때, 이 가능성은 갑자기 우리 모두에게 현실로 나타났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진실로 현실임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혁명을 할 때-그것이 진정한 혁명이라면-우리가 승리할 수도,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 말일세. 실제로 수많은 동지들이 혁명에 목숨을 바치지 않았는가.
오늘에는 이 모든 것들이 덜 극적으로 보이네. 우리가 더욱 성숙했기 때문일테지만, 그러나 또한 역사는 반복하기 때문이겠지. 나는 쿠바 땅에 국한된 쿠바 혁명에서 내 몫을 다했다는 느낌이네. 이제 나는 자네와, 동지들과, 그리고 이제는 나의 것이기도 한 자네의 인민들과 작별하려 하네. 나는 내가 점하고 있는 당의 직책과 장관직과 사령관의 직위, 그리고 쿠바 시민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네. 이제 나와 쿠바를 잇는 어떤 법적 관계도 존재하지 않네. 오직 공문서 따위로는 파괴될 수 없는 전혀 다른 성격의 관계만이 나에게 남을 것이네.
내가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건대, 나는 지금까지 정직하게 또 한결같이 혁명을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 다만 하나 내 잘못이라면 시에라마에스트라 시절 처음부터 자네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자네의 지도자적 자질과 혁명가적 기질을 좀더 빨리 이해하지 못한 것이겠지. 나는 경이로운 세월을 살았고, 미사일 위기가 계속되는 최근에까지 자네 곁에서 우리 인민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꼈네. 이런 경우에는 어떤 국가원수도 자네만큼 영민하게 대처할 수 없었을 터, 보고, 사고하고, 위험과 원칙을 형량하는 자네 뒤를 주저 없이 따른 것이 자랑스럽네. 지구상의 다른 땅들이 나의 미천한 힘을 요구하는군. 쿠바의 영도자로 남을 자네의 책임이 자네로 하여금 포기하게 할 수밖에 없게 하는 그것을 나는 하려 하네. 이제 우리가 작별할 시간이 온 게지.
내가 기쁨과 고통이 교직하는 가운데 떠난다는 걸 이해해 주게. 나는 여기에 건설자로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희망을, 내가 사랑하는 자들의 가장 사랑하는 부분을 남겨두고 가네. 나를 아들로 받아준 인민의 곁을 떠나네. 내 정신의 한쪽을 남겨두겠네. 새로운 전장에서 자네가 나에게 심어준 믿음을 간직하겠네. 우리 인민의 혁명의식과 내 의무의 가장 고결한 부분을 완수한다는 가슴 떨리는 기쁨을 간직하겠네. 제국주의와 투쟁하는 그곳에 이들이 모두 함께할 것이네. 내 아픔을 쉽게 치유하고 위로하는 바는 이것뿐일세.
다시 말하거니와 나는 쿠바에 대한 모든 책임을 벗고, 오직 이상형의 쿠바만을 기억하겠네. 그래서 다른 하늘 아래 내 최후의 시간이 도래한다면, 내 마지막 생각은 쿠바 인민들에게, 특히 자네에게 향할걸세. 자네의 가르침과 자네의 모범에 감사하네. 내 행동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것을 충실하게 간직하려 노력하겠네. 나는 늘 우리 혁명의 대외관계에 집착하곤 했지.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언제나 쿠바 혁명가의 책임을 완수할 것이며 또 그렇게 행동할 것이네. 나는 나의 아이들과 아내에게 어떤 물질도 남겨주지 않을 터, 이것이 나를 슬프게 하지는 않네. 왜냐하면 그들이 먹고, 교육받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국가가 줄 것이기 때문일세.
자네에게, 인민에게 할말이 많았는데, 그것도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 드는군.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어찌 말로써 다하겠는가. 종이만 더럽힐 뿐이겠지.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뜨거운 혁명의 열기로 얼싸안으며
체
 
번 호 : 38
제 목 : [자료]체게바라 라틴아메리카여행기 중에서..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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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1:16:43
내 용 : 산골마을을 비추는 하늘의 별빛이 정적과 추위에 함께 어울리며 신비한 어둠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흡사-이것을 무어라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다-단단한 어떤 근원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순수한 공간 속에서 증발해 버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의 개인성을 박탈해 버리며 우리를 거대한 어둠의 세계 한복판에 내동댕이치는 듯한 느낌....남자의 얼굴은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고 오직 그의 눈과 앞니 네 개가 섬광처럼 일렁였다.
나는 이 사람 또는 이 사람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한 것이 또, 나로 하여금 그의 계시를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또는 내가이미 그가 하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을 통해 누차 들었던 때문에 거림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를 아직도 알 수 없다.
 
 사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이는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도그마라는 칼날을 벗어나기 위해 유럽에서 도망쳐 여기저기를 유랑하며 별별 모험을 경험하다 여기까지 와서 자기 삶의 최대의 사건을 기다렸다는 사람으로서-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드문 경험 가운데 하나인-공포 또한 맛본 사람이었다.
 
그런데 각자 지나온 여정을 수인사처럼 나누고 나서 이야기를 끝내고 떠나려는 참에, 이 사람은 갑자기 언제나 그렇다는 듯 개구쟁이 같은 웃음과 함께 지금까지 나누었던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는 말을 불쑥 내뱉았다.
 
"미래는 조금씩 혹은 갑자기, 여기에서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권력을 거머쥘 인민에게 있도이다. 문제는 그들이 깨어나야 한다는 것인데, 권력을 획득하기 전에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오.
 
 이들은 자기가 저지른 실수의 대가를 이해하기 전에는 결코 깨어나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이것은 엄청난 대가를, 수많은 무고한 인명을 담보로 할 것이오.
 
 아니 어쩌면 그들도 그리 무고한 존재는 아닐지도 모른다오. 그들은 적응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원죄가 있기 때문이오.
 
 이 모든 희생양들, 부적응자들, 당신과 나 같은 존재들은 때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 자기 자신이 공고화한 권력을 저주하며 죽어갈 것이오.
 
왜냐하면 혁명이란 그 비인격적 형태 때문에 그들로부터 생명을 박탈하고 그들에 대한 추억을 하나의 예로서, 새로 자라나는 젊음을 흡인하는 동력으로서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오.
 
 나의 원죄는 더욱 크다오. 왜냐하면 나는 미묘한 존재 또는 당신이말했던 경험이 많은 존재로서, 나의 희생이 몰락하는 썩은 문명의 그루터기를 살찌울 줄 알면서도 그냥 죽을 것이기 때문이오.
 
그렇지만 나는 또한 알고 있다오. 역사의 흐름이, 당신이 나에게 받는 인상이 당신을 그만큼 변화시킬 것이라는 것을 말이외다.
 
 나는 당신이 주먹을 불끈 쥐고, 어금니를 깨물며 죽을 것을 안다오. 증오와 전쟁의 표본으로서 말이오.
 
 왜냐하면 당신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상징이나, 물화된 존재가 아니라 몰락하는 사회의 진정한 한구성원일 것이기 때문이오. 이제 에스프리가 당신의 입을 통해 말하고 당신의 행위를 통해 행동할 것이오.
 
당신은 나처럼 유용한 존재이나 당신은 모르고 있소. 당신을 희생시킬 이 사회에 당신이 얼마나 유용한 존재인지를 말이오.
 
"나는 그의 이빨을 보았고, 어린애같이 장난스러운 그의 웃음을 보았다. 역사를 앞질러가는 그의 주먹을 느꼈고, 멀리 속삭이는 듯한 그의 작별인사를 들었다. 그의 말과 밀착된 밤이 사위를 조여와 내 몸을 범람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순간 알아차렸다.
 
내 길을 인도하는 위대한 정신이 인류를 적대적인 두 그룹으로 나눌 것이며, 그리고 나는 인민의 편에 설 것임을, 또한 나는 어둠 속에 각인된 나의 모습을 보았다.
 
모든 교리의 해부자로, 도그마의 정신분석자로 신들린 자처럼 울부짖는 나의 모습을, 나는 바리케이드를, 참호를 뛰어넘어 피 묻은 손으로 무기를 들고 내 손에 떨어지는 적들의 목숨을 날려버릴 것이다. 그리고 마치 거대한 피곤이 갑자기 만개한 나를 덮치는 듯한, 땅에 곤두박질치는 나의 모습을 본다.
 
개인의 의지는 익명화되어 단지 메아 쿨파(mea culpa, 내 죄로소이다라는 뜻의 1560년대 라틴어 고백성사)를 읊조릴 뿐인, 진정한 혁명에 바쳐지는 제물의 모습이다.
 
벌써부터 적들의 시체 냄새로 코가 시큰해진다. 전투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온몸이 굳어온다. 새로운 떨림과 새로운 희망으로 승리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야수같은 울부짖음이 온몸에 공명한다.
 

번 호 : 39
제 목 : [자료]체의 연대기 1/2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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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1:25:57
내 용 : 1928
 
6월 14일 -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가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에르네스토 게바라 린치와 셀리아 데 라 세르나의 다섯 아이 가운데 첫째 아이로 태어났다.
 
 
1929
 
가족이 미시오네스 지방으로 이사했다. 여기서 아버지 에르네스토가 마테차 재배 농장을 하기 시작했다. 에르네스토의 여동생 셀리아가 태어났다.
 
1932
 
에르네스토의 천식이 심해지자 건조한 기후를 찾아 가족이 코르도바 지방에 있는 알타 그라시아로 이사했다. 에르네스토의 남동생 로베르토가 태어났다.
 
1945
 
게바라 가족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이사했다. 에르네스토는 여기서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1952
 
1-6월 - 에르네스토가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페루와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여행했으며, 그들은 페루에 있는 나환자촌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3월10일 - 풀헨시오 바티스타가 쿠데타를 일으켜 쿠바에서 권력을 잡았다.
 
1953
 
6월 12일 - 에르네스토가 의사가 되어 졸업했다.
7월 6일 - 에르네스토가 라틴 아메리카 곳곳을 돌아다니는 여행길에 올랐다.
7월26일 - 피델 카스트로가 산티아고 데 쿠바에 있는 몬카다 병영에 대한 무장 공격을 개시했다. 이것으로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으나, 공격이 실패하면서 카스트로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붙잡혀 감옥에 갇혔다.
12월 - 에르네스토가 코스타리카의 산 호세에서 몬카다 병영 습격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처음으로 접촉했다.
12월24일 - 에르테스토가 과테말라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하코보 아르벤스 정부가 토지 개혁을 실시하고 있었다.
 
1954
 
1월 4일 - 에르네스토가 몬카다 병영을 공격한 용사 니코 로페스를 만났다.
1-6월 - 에르네스토가 여러가지 일을 하며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했고, 망명한 다른 쿠바 혁명가들도 만났다.
6월 17일 - CIA의 지원을 받는 용병들이 과테말라를 공격했다.
6월 27일 - 하코보 아르벤스가 사임했다.
8월 - 용병들이 과테말라 시에 들어가 아르벤스 지지자들을 학살하자, 에르네스토는 아르헨티나 대사관으로 몸을 피했다.
9월 21일 - 에르네스토가 멕시코 시티에 도착해 의사로서 일할 자리를 찾았다.
 
1955
 
5월 15일 - 쿠바에서 몬카다 병영을 공격했던 피델 카스트로와 다른 투사들이 석방되었다.
6월 - 니코 로페스가 에르네스토와 라울 카스트로의 만남을 주선했다.
7월 7일 - 피텔 카스트로가 쿠바에 무장 침입할 준비를 하기 위해 멕시코에 도착했다.
7월 - 에르네스토가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의사 자격으로 게릴라 선사로서 훈련을 받는 무리 속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그는 '체'로 알려지게 되었다.
8월 18일 - 에르네스토가 과테말라에서 만난 페루의 정치활동가 일다 가데아와 결혼했다.
 
1956
 
2월 15일 - 에르네스토와 일다의 아이 일다 베아트리스 게바라가 태어났다.
6월 24일 - 체와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그 무리에 있던 다른 26명이 체포되어 이민법에 따라 억류되었다. 체는 수용소에 57일이나 붙잡혀 있었다.
11월 25일 - 체를 포함해 82명의 전사들이 멕시코의 툭스판에서 요트 그란마 호를 타고 쿠바로 떠났다.
12월 2일 - 그란마 호가 쿠바의 남동쪽에 있는 라스 콜로라다스 해변에 도착했다.
12월 5일 - 반란군이 알레긔아 데 피오에서 바티스타 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대부분이 죽거나 붙잡혔다. 체는 부상을 입고 카스트로 집단과 헤어졌다.
12월 21일 - 체가 15명으로 줄어든 카스트로의 반란군과 다시 만났다.
 
1957
 
1월 17일 - 반란군이 라 플라타에 있는 적진을 점령했다.
5월 28일 - 반란군이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엘 우베로에 있는 철통 같은 요새를 점령했다.
7월 - 체의 지도 아래 두 번째 부대가 창설되고, 그가 사령관으로 승진했다.
 
1958
 
7월 - 반란군이 엘 히게에서 바티스타 군을 무찌르고 계속 공세에 들어갔다.
8월 13일 - 체가 부대를 이끌고 쿠바 중앙에 있는 라스 비야스 지방을 향해 진격했다.
10월 16일 - 체의 부대가 에스캄브라이 산에 도착했다.
12월 28일 - 체가 라스 비야스의 수도 산타 클라라를 향해 진격했다.
 
 
번 호 : 40
제 목 : [자료]체의 연대기 2/2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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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1:26:39
내 용 : 1959
 
1월 1일 - 산타 클라라가 함락되고 체가 아바나를 향해 진격하자 바티스타가 쿠바에서 도망쳤다.
1월 2일 - 카스크로 소집한 총파업으로 나라가 마비되었다.
1월 3일 - 체가 아바나에 도착해 카바냐 요새를 점령했다.
1월 8일 -피델 카스트로가 아바나에 입성했다.
5월 17일 - 최초의 토지 개혁법이 공포되었다.
6월 2일 - 체와 알레이다 마르치가 결혼했다.
6월 12일 - 체가 기술 및 통상 협정에 관한 협의를 위해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순방하는 긴 여행길에 올랐다가 9월 8일에 돌아왔다.
10월 7일 - 체가 전국 토지 개혁 위원회에서 산업부를 책임지게 되었다.
11월 26일 - 체가 국립은행 총재가 되었다.
 
1960
 
3월 4일 - 벨기에 무기를 싣고있던 프랑스 선박 라 쿠브르 호가 사보타주로 아바나 항구에서 폭발해 81명이 죽었다.
6월 29일 - 미국 정유소가 소련 석유의 정제를 거부하자 혁명정부가 그것을 국유화햇다.
7월 9일 - 미국이 사지 않겠다고 한 쿠바 설탕을 소비에트 연방이 모두 사기로 했다.
8월 6일 - 미국의 주요 기업을 국유화했다.
10월 19일 - 미국이 쿠바에 부분적인 경제 봉쇄를 가했다.
10월 21일 - 체가 소비에트 연방과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중국, 북한을 방문하는 2개월 간의 여행에 들어갔다.
 
1961
 
1월 3일 - 미국이 쿠바와 외교 관계를 끊었다.
2월 23일 - 산업부가 창설되고 체가 산업부 장관이 되었다.
4월 17일 - 1,500명의 쿠바 망명자로 이루어진 용병들이 미국의 지원 아래 시엔푸에고스 서쪽 쿠바 남해안에 있는 피그스 만으로 쿠바를 침공했으나, 사흘만에 를라야 히론 전투에서 패했다.
8월 8일 - 체가 쿠바 대표단 단장으로서 우루과이의 푼타 델 에스테에서 열린 미주기구 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1962
 
2월 3일 -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에 전면적인 경제 봉쇄를 가했다.
8월 27일 -체가 소비에트 연방을 방문했다.
10월22일 -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의 핵미사일 획득을 비난하며 섬에 해안 봉쇄령을 내렸다.
10월 28일 - 소련의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미국이 터키에서 미국의 핵미사일을 제거하고 쿠바를 침공하지 않기로 한 대신 쿠바에서 소련 미사일을 제거해 '쿠바 미사일 위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1963
 
7월 3일 - 체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지 얼마안 된 알제리를 방문해 아메드 벤 벨라 대통령을 만났다.
 
1964
 
3월 14일 - 체가 잠시 쿠바에 돌아왔다.
4월 1일 - 체가 콩고의 반란자들을 돕기 위해 쿠바 군사 고문단과 함께 떠나기 전에 피델 카스트로에게 작별 편지를 건넸다.
10월 3일 - 피델 카스트로가 체으 작별 편지를 공개했다.
12월 - 체가 콩고 원정에서 실패한 뒤 비밀리에 쿠바에 돌아와 일단의 전사들과 함께 볼리비아에 도착했다.
 
1966
 
11월 4일 - 체가 변장을 하고 볼리비아에 도착했다.
 
1967
 
3월 23일 - 첫 번째 게릴라 공격의 성공으로 볼리비아군 부대가 패주했다.
4월 16일 -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연대를 위한 세 대륙 회으에 체의 메시지가 전달되었으며, 여기서는 그는 "두 개, 세 개, 네 개의 베트남"을 만들라고 했다.
8월 4일 - 탈영범이 게릴라으 주요 무기 정장소에 볼리비아 군을 끌고 왔다.
9월 26일 - 게릴라 전사들이 정부군에게 포위되었다.
10월 8일 - 남아 있던 17명의 게릴라가 함정에 빠졌고, 체는 싸우다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붙잡히고 말았다.
10월 9일 - 체 그리고 그와 함께 잡힌 게릴라 두명이 볼리비아 정부와 미국의 지시로 살해되었다.
 
1968
 
7월 1일 - 피델 카스트로가 서문을 쓴 체의 '볼리비아 일기'가 출판되어 무료로 배포되었다.
 
1995
 
12월 1일 - 볼리비아에서 체와 살해된 다른 게릴라들의 유해를 찾기 위한 발굴이 시작되었다.
 
1997
 
6월 28- 7월 1일 - 게릴라 7명의 유해가 볼리바아 바예 그란데의 카냐다 데 아로요에서 발견되었다.
7월 14일 - 유해가 쿠바에 도착했다.
10월 13일 - 아바나의 혁명 광장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10월 14일 - 체의 유해가 산타 클라라로 옮겨졌다.
 
 
번 호 : 41
제 목 : [가난한 평화행동가의 일기]17만원으로 남은인생살기..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4 오후 1:27:53
내 용 : 17만원정도의 현금이 남았습니다.
이제 이 17만원으로 남은 생의 작업을 이어가야합니다.
인터넷사용료는 2개월째 8만원정도 미납이니
이달까지만 쓰고 중지될겁니다.
연결되어있을 남은기간동안
가능하다면 모든 데이타를 서버에 이전시키고
자료정리안된것도 대충은 끝내야겠습니다.
컴퓨터도 곧 차압이 들어올테니
새로이만들 공연을 위한 음향작업과
하드안에있는 데이타들을
이동시키는 작업도 분주해집니다.
이동통신은 2달치 15,000원 정도가 연체되어
다음달이면 끊어질 겁니다.
받기위한 전화였지만 사실 금융사의 연체독촉외에는
별로 받을전화도 없엇습니다.그분들이 불편할텐데하는
생각입니다.
차압과 경매등의 공무가 시작되면
반자본의 이 작업은 진정한무소유의 존재로서의
공연활동을 시작하게될겁니다.
공연기록을 위한 6미리테이프를 몇통 준비햇으면 좋겟는데
남은 현금에서 5만원정도를 투자해서 10개정도
구입해두어야겟습니다.
가장 급한것은 차비입니다.
두장의 교통카드충전액이 이제 두어번 정도 길바닥공연을
하고나면 바닥납니다.
재충천을해야하는데 2월말엔 평택에갈 것까지
두장의 카드에 2만원씩 4만원 충전시켜두고
교통비를 마감해야겠습니다.
전기 수도 가스등 모든 요금은 3개월정도 체납되면
자동으로 끊어짐으로 기본료금이 상승하지는
않습니다.
지난 해 9월 광주비엔나레현장에서
처음으로 현금이 바닥나서 먹지도 잠자지도못햇던 며칠이
있엇습니다.
하지만 그후 수입없이도 가을과 겨울을 이렇게
지내고 이제 3월 평택대추리에서의 야영을 시작으로
거리로 나갈 준비를 마칩니다.
17만원에서 교통카드충전하고 6미리테잎10개사서
남은 8만원으로 작업준비를 마칩니다.
이제 거리로 나서면 온라인상의 기록도 중단되고
이 사이트는 하나의 자료관같은 개념으로
기록을 담은날까지의 작업기록공간으로
사용될수잇을겁니다.
예기팀이 죽은 후에라도...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42
제 목 : 평화의 음 나누기...
작성자 : 솔문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4 오후 9:27:31
내 용 : 평화행동가의 순례길...
그는 평화의 소리를 만들어 갑니다
한음 한음 자연과 우주의 소리를 흉내내어보며
꿈같은 현실속에서
진짜 꿈의 발견을 통한 또다른 자각
내가 내가 아닌
단절된 내가 아닌
모든 생명의 고리를
깨닫게 됩니다
산의 능선의 굴곡을 바라라보며
음을 마음에 담습니다
자연을 닮아가는
소리를 바람결에
그어느 가슴에 살포시 가닿도록
피리소리를 냅니다
특별히 배워본적이 없어
음정이 불안하여도
거친소리가 나더라도
그에게는 평화를 향한 소중한
약속들을 떠올리며
언젠가의 평화를 희망으로 믿습니다
- 솔문

번 호 : 43
제 목 : [03]이 세상의 열네살 영정들..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5 오전 10:59:27
내 용 : 가난한 평화행동가는
거리에서 세상의 열네살들 그 영정을 만납니다.
스무장도 넘는 전장속에서 만난 세상의 열네살 아이들 사진.
전쟁으로 죽어가거나 전쟁을 이유로 피해입은
아이들의 영정.
아이들의 모습을
그들이 전쟁없이 살고싶엇던 행복한 시절의 모습으로 채웠습니다.
그 영정들을 거리에 놓으면서 그 마다마다에
꽃과 편지를 놓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은 그 영혼들을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없어야할 또다른 슬픔의 이어짐을
막기위해서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난한 평화행동가가
긴 숨결로
세상의 모든열네살로 대변되는 아이들을 향해
노래합니다.
거리엔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열네살이 아닌 사람들과 열네살인 아이들
그리고 열네살이 아직 안된 아이들까지 모여서..
이 세상의 모든 전쟁과 이기심을 멈추길 바라면서..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44
제 목 : [가난한평화운동가의일기]쌀2kg과 라면.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6 오후 5:27:08
내 용 : 쌀 2kg과 라면 등 부식을 2만원어치 샀습니다.
17만원중 15만원이 남앗습니다..
2005.2.15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45
제 목 : [가난한평화행동가의일기]2만원의 지원금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6 오후 5:29:46
내 용 : 15일 연습미팅에서 2만원의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17만원.
17일 광화문에서의 목요평화행동공연에
왕복교통비로 사용할 1만원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인터넷과 컴퓨터는 더 사용하고싶어도 곧 들이닥칠
이른바 유체동산압류강제집행에서 압류되면 어차피
사용하지못하게 될 것인데다가
압류해서 경매되어도 얼마 나가지않을 물건이므로
중고컴퓨터를 필요로하는이에게
2월말에 주기로 약속햇습니다.
인터넷 사용료는 2월말까지 3개월간 연체료가
10만원정도인데
미납으로 2월말에 중단되고 그에 따른 법적조치가
별도로 이뤄질 것 같습니다.
역시 집경매를통해서 현금이 확보되면
각종 공과금연체료와 함께 우선적으로
지불해야할 항목입니다.
예기플라타너스공연과
이름없는 공연팀의 작업데이타와 홈페이지정리를
2월말까지는 대강이라도 마쳐놓을 양
매일 밥을 새면서 하고있습니다.
3월부터의 작업은 이제 공연이 이루어져도
공연사진집이나 작업노트등으로 신속히
정리되지못하거나 아예 기록되지못할겁니다.
기록되지못한다하여
멈출 수는 없는 작업이므로
생존하는 한 공연작업은 쉬입없이
지속될 것입니다.
그 기록도 가능한 한도안에서는
공공시설의 컴퓨터나 인터넷을 사용하면사러도
조금씩 전달해드리려 노력할겁니다.
사진집과 작업노트로 기록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병행작업으로 해왔던
10여년의 인간진화를 향한 소리없이
평화를 기리는 거리공연작업.
기록하여 전할수없이
현장에서 사라지는 작업이 될 것이므로
현장에서 같이 만나길 더욱 그리워하는
공연이 될 것같습니다.
2005.2.16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46
제 목 : [03]네사람의 평화행동..세번째공연구성대본.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6 오후 9:16:41
내 용 : 2005년 2월17일 7시 광화문교보문고앞
길바닥평화행동에서의 공연
[존재하는평화를향해03]의 구성대본
네사람의 평화행동

첫번째노래 [가난]
가난한 평화활동가 한사람이
이 공간 어느곳에 살고있습니다 .
그의 일상이 자연처럼 담기고
그의 배경으로
두번째 평화행동가
세번째 평화행동가가 거리에 따로 동행합니다.

두번째노래[촛불]
세상에 모든 열네살이 란 노래가 울려퍼지는
반전평화를향한 촛불집회공간.
그곳에 가난한 평화행동가가 있고
또한사람 그리운 얼굴들을 그리는
네번째 평화행동가가 있습니다.
스무장넘는 아이들 얼굴이
영정처럼 거리에 놓이고
그곳에 꽃과 편지가 소복히 쌓입니다.
사람들 촛불을 듭니다.
그곳에서 두번째 평화행동가와 세번째 평화행동가가
변화하는 모습으로 동행하고있습니다.
다시첫번째 노래[가난]
촛불집회장을 떠나서 다시 돌아온 거취공간.
춥고 가난한 밤은
세상 그리운 사람들을 이해 다시 다가가야할 내일을
준비하는 따스한 공간입니다
거리에서 스친 두번째 평화행동가의 몸짓은
어느새 하나의 춤이되어서
이가난한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위한
동행의 춤이 되었습니다.
피스마크를 그리고 평화의 배를 띄운
세번째 평화행동가는 피리로 음을나누고있고
네번째 평화행동가는
또다른 장소로 평화를 기리는
절실한 그림여행을 떠나고있습니다.

세번째노래[혁명]
평화행동가들은 제각기 혁명을 꿈꾸고있습니다.
자신보다는 아름다운 인간세상을 위해서
공평한 세상을 위해서
각기의 슬픈 각오를
나름의 방식으로 찾아가고있습니다.
짧은 순간 우리는 혁명의 이유와 방식을
이미지지어 바라봅니다.
스침처럼.환시처럼..

네번째노래[구원]
가난한 평화행동가는 구원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오해와 편견을 뒤로하고
사랑이라는 이유로
마치 후이넘의 기억을 챙기며 제아픔을 즐겨새기며
살고있는 후이넘에서 돌아온 사람입니다.
그 구원의 의미에 아직은 도달하지못하엿으나
그렇게 노력하면서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구원의 행동과 같이 어울려서
저기에들 있습니다.
세번째 평화행동가의 모습과
네번째 평화행동가의 그림그리기까지

다섯번째노래[찬미]
모두 그렇게 이미지심다가 떠난곳에
한사람이 나타나
삶을 찬미합니다.
두번째 평화행동가는 아직 혁명도 구원도 이르지못햇으나
세상을 사랑하고싶다는 소박한 발견에서 오는
찬미를 춤춥니다.
가난을알게됨을 감사하고
불평등을 알게됨을 감사하고
뭍생명이 곁에 숨쉬고 있음을 알게됨을 감사하며
전쟁이 인간안에 있음을 알게됨을 찬미합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47
제 목 : [가난평화행동일기]용도별 지폐나누기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7 오후 12:10:48
내 용 : [가난평화행동일기]용도별 지폐나누기
 
 
가난한 평화행동가는 무대에서는 한명만이 출연하지만
부부입니다.
그래서 두사람의 공간이 늘 배치되고 그안에
두사람의 얘기가 한사람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겨울을 지내며 평화행동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많아졌고 이제 활동일정도 하나하나 잡혀갑니다.
가능하다면 모든 공간에 동행하여 함께하면서
그때 그때 나누어야할 얘기와
잊지말아야할 기억해야할 이미지를
표현하고자노력하며 작업을 준비하고
거리로 나섭니다.
가난한 평화행동가에게 가장 부담스러운것은
차비입니다.
두사람이 평화행동가들과 만나서 함께할 장소까지의
이동은 걸어서는 하기어려운 거리입니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15만원정도의 남은 돈을 갖고
2월을 맞은 가난한 평화행동가에겐
한번 움직임에 6,000-8,000원정도씩 드는
두사람의 왕복차비가
삶의 방식을 제한하고있습니다.
2월말있을 평택들녁에서의 3일간의 공연을 준비하면서
5만원정도의 경비를 준비해놓앗습니다.
그러면 10만원정도의 남은 돈은
10번혹은 그 이내의 거리공연을 할수있는
교통비가 됩니다.
돌아온 작은방에 앉아서
일생하지않던 돈계산을 하면서
곰곰 예산을 세웁니다.
이제 남은 10번정도의 거리작업,
미련일랑남지않게
그리고 부족함없게 절실한 가슴으로
더 정진해야겟다고 생각하며
몇장의 만원권을 이리저리 분배하여
이쪽 저쪽 책갈피에 따로이 넣어둡니다.
2005.2.17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48
제 목 : [가난평화행동일기]길바닥 평화행동에 나가며..
작성자 : 예플러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7 오후 2:00:52
내 용 : 그동안 공연이 쉴새없이 이뤄진다는 이유로 미뤄진
작업일지는 여름부터 가을을 지나 겨울에 그리고...
하지만 이제 그나마 언제나 쓸 수 있을 것 같았던
작업은 나의 게으름으로 더이상은 편하게 쓰지도
못할 듯 싶다.
보는것 까지도 어쩜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엇그젠 연습하러 나간 자리에 해를 넘기며 못 보았던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내게 위안이 되는 말들을 해주어서 고마웠다.
겉으론 씩식하게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호기심으로 지내고 있다는
말을 하니까 의외였는지 걱정이 덜 돤 다고도 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대수롭지 않다고 말을 하면 그일은
정말 나에게 그렇게 여겨지는 효과가 생기는게 신기하다.
이제 정말로 가난해진 평화행동가의 모습으로
제2의 인생기를 맞으려 한다.
나에게 주문을 걸며..
다짐한다.
 
번 호 : 49
제 목 : 1차음성본...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8 오후 2:29:35
내 용 : .............
가난한 평화행동가는
거리에서 세상의 열네살들 그 영정을 만납니다.
전쟁으로 죽어가거나 전쟁을 이유로 피해입은
아이들의 영정.
아이들의 모습을
그들이 전쟁없이 살고싶엇던 행복한 시절의 모습으로 채웠습니다.
그 영정들을 거리에 놓으면서 그 마다마다에
꽃과 편지를 놓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은 그 영혼들을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없어야할 또다른 슬픔의 이어짐을
막기위해서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열네살이 아닌 사람들과 열네살인 아이들
그리고 열네살이 아직 안된 아이들까지 모여서..
이 세상의 모든 전쟁과 이기심을 멈추길 바라면서..
...................
평화행동가는 가난을 선택하고 그 가난의 눈으로
세상에 다가갑니다.
그리하여 온갖 반대편에 서있는 모든것들에 대해서
평화의 방식으로 저항하며
가난곁에 공존하며 위로합니다.
가난은 유물론적 의미에서만 아니라
물질을 제외한 인간심성과 정신세계에서도
선택되어야할
공존을 향한 자기낮춤의 언어로
이 작업안에서 사용됩니다.
가장 낮은곳으로 떨어져서
욕심없이 바라보고
그 시선으로 사랑을 행함.
존재하는 평화를향한
욕심없는 사람들의 생존은
그렇게 존재하도록 노력합니다...........
 
 
번 호 : 50
제 목 : [가난평화행동일기]14만5천원으로 남은일정수정하기.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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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9 오후 12:08:00
내 용 : 인접도시에서의 또다른 평화행동집회.
함께하고싶은 마음에 동행을 요청하고
그분들과 함꼐할 또하나의 작업을 준비해서
일찍그곳에 도착햇습니다.
그리고 생명과 평화를 위해
차가운 거리에 나온 분들과
평화행동에 함꼐하고 돌아옵니다.
돌아오는길 함꼐갔던 또한분의 평화행동가와
시간을 잊고 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가야할 길과
가고싶은 길...
해야할 것과
하고싶은 것들..
세상앞에 존재하며
의미에 어긋나지않게 솔선해야할
기억과 행동등에 대해서..
왕복차비2만원 그리고
대중교통이 끝나버린 밤을 달려오면서
걷다가 다시 갈아탄 차비 5천원까지
2만5천원을 쓰고
수중엔 14만5천원이 남았습니다.
대추리들녁으로 가고싶어서
그리고그곳에 머물며 지키고싶어서 준비한 예산이
5만원으론 좀 부족할것같아서
6만원으로 다시 책정해서
만원권 1장을
목요평화행동차비라 적어둔 봉투에서
평택2박3일이라 적힌 봉투에 옮겨넣어둡니다.
매산로거리에 몰라보게 웅장히들어선 역.
그 화려한 바닥재위에
세상의 열네살 아이들의 아름다운 희망의 순간들이
담긴 고운영정을 나란히 놓고
영정마다마다에 촛불을 밝히고
목놓아 노래부른 세상의 모든 열네살..
2월18일은
아름다운 일을하는 여러사람들 곁에서
그렇게 살수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51
제 목 : [가난평화행동일기]닷세만에 다시 2만원의 부식비.잔액12만원
작성자 : 예기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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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22 오후 2:10:20
내 용 : 존재하는평화를향해 중
[가난한 평화행동가의 일기]
2005.2.22
가만 생각하면 너무 많이 먹는것 같습니다.
두사람이 하루 네개씩의 라면을 먹으니
닷새만에 스무개의 라면이 다 없어집니다.
아름다운 농지를 군사기지로 바꾸어 놓으려는
또하나의 전쟁을 향해서
평화행동가는 그들녁으로 찾아가서
그곳에 텐트를 치고 상징적이나마 지킴이가되어
며칠간 밤을 지샐 계확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음주 떠날때까지의 부식을 장만하느라
또 2만5천원을 써서 이제 남은 돈은
12만원입니다.
이 12만원으로 얼마나 더 많이
현장을 찾아 이동하면서 함께할 수 있을지
언제쯤 차비가 없어서 다가가고 싶어도 가지못하고
거리에 머무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긴장을 정라하면서
일단 다음주 대추리행을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면서
이러저런 장비를 준비하고 구축합니다.
또다시 가스 전기등의 차단 통보서가 우체통에
쌓였습니다.
전쟁으로 모든것을 잃어가는
국익과 평화라는 명분으로
평화에 정반대되는 파괴를 자행하는
인간들의 모습앞에서
한명의 인간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할수있고 해야할
작은 몸짓을 위해
준비를 시작합니다.
겨울은 다갔다는데 아직도 겨울은 여전합니다.
평화를 그리워하지만
인간은 결코 봄을 구경하지도 못하고
부분적 이기주의자들의 온기만으로
겨울을 강요당하는 뭍사람들의 세상입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52
제 목 : 그림그리는이_아이들의 얼굴을 그리다
작성자 : 사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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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23 오후 11:03:06
내 용 : 2005.02.17
아이들의 그림을 그리다
앗살람 알라이쿰
나무7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꿈속의 꿈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이제는 이름을 버리고 가는
이름없는 공연팀과
함께한 작품들의 제목을 나열해 봅니다.
여기서
평화행동으로 그림그리는이의 모습으로 다가섰습니다.
무지한 제가
그저
착한일할 수 있으니 시작한 시간들이였습니다.
모두가 평화로와 질수만 있다면 이라는
막막한 희망하나에
아니,
나라도 평화로운 사람이 되기위해서가 더 맞는 얘기일것입니다.
.평화는 평화로운 마음들이 만드는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절함, 절실함, 아직도 미안하게도 하나가되진 못하였습니다.
순간
배가 고파와 밥을 차려 먹습니다.
나의 이기적인 생각에 몇번에 생각을 거듬거듬하다
더 많이 먹어 포식으로 배가 불렸습니다.
이렇쿵 배가 불러있습니다.
내 친구들아! 어쩌면 당연한 일이 겠지요
미안해요.
아이들아~
미안합니다.
이 밤이 지나면
촛불 짓패에 나가는 그림그리는이가 있습니다.
세상의 열 네살 아이들의
찢겨지고 지워진 시간들을 한폭의 사각틀속에
그려넣습니다.
모두가다 기쁨에 차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입니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그림그리는이를 통해서
평화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함께 있는것이라고 ,,

다시는 지금 벌어진 일이 일어나지않도록
지금도 벌어지고있는 현실앞에
촛불하나 피웁니다.
조용히 너무나 작게 말이없어 보이는 아이들에게
더 귀기울여 듣습니다.
더더욱 촛불하나 피웁니다.
그렇게 초에 불을 붙입니다.
 
_사막에놀러와서, 하는일 하나
 
번 호 : 53
제 목 : 그림그리는이_22일 작업미팅으로
작성자 : 사막에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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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23 오후 11:40:48
내 용 : 22일 작업미팅이을 하기위해
원당 롯데리아 이층에
예기,예플러 선생님과
블루님 니진님 솔문님 사막 이
빨갛고 번뜩이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날씨가 추워져
밖에는 조금 눈이 나리고 있었지요
커피는 목을 축이고
예기선생님 말씀은
가만가만 착한마음(씨)를
고슬고슬 축입니다.
진정으로 찾아나가는 또는 보여주는 또는 행하는 방법을
어설푸게나마 조립합니다.
 

번 호 : 54
제 목 : 그림그리는이_ 평화행동(지문)
작성자 : 사막에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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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24 오전 1:19:24
내 용 : 평화행동으로 그림을 그리는이는
찬바람과 날씨도 껴안으며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려
그리운 아이들을 보듬고자
밖으로 나갑니다.
역시 똑같은 가방안엔
그리운 아이들의 모습들이 담긴 스케치들,
연필과 오일파스텔, 붓, 물통, 먹물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버스와 지하철을 네번을 갈아타서
촛불짓패로 향하는 발걸음이
추워서 인지 리듬이 섞여 있습니다,
촛불짓패에서 반갑에 맞아주는 아이완 안아보곤
서로 두손을 마주잡고 흔들며 인사하고
어른들을 만나 악수를하며
눈을 마주치며 수줍게 웃어보입니다.
아이의 얼굴이 담긴 그림 액자를 커내여 놓고
그림속아이가 보일수 있게
빠르게 촛불을 비추고 두번째 촛불을 준비합니다.
하나둘 착한 마음들이 모여
서로의 마음들이 단단해지는것같습니다.
 
바그다드--
어느병원복도에서 마주친 다알군에게 선물해줄
{(hope for the flowers)-꽃들에게 희망을} 을 책으로 선물하기로하고 돌아와
책을 준비하는데..
두권밖에 준비하지못해
대신 그림으로 여러장 준비해 보여주기로 한다.
..............
............
.......
.....
...
.
.
_사막에놀러와서,
 
번 호 : 55
제 목 : [가난평화행동일기]마지막 8만원으로 2박3일의 여행을..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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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27 오전 2:14:26
내 용 : 존재하는 평화를향해 중
가난한 평화행동가의 일기 중에서..
2005.2.27

한주일간 다섯차례의 집회에 참가햇습니다.
반전과 평화를 기리며 차가운거리에 모여
사람들에게 기억해야할 평화를 알리는사람들
서울에서는 매주목요일에
그리고 또 다른 도시에선 매주 금요일에
그리고 토요일엔 생명과 환경을 보존하고자하는
사람들이 모여 노래했습니다.
그곳에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다시 목요일 토요일
참가하면서 버스로 기차로 전철로 밤 심야할증버스로
오가며 귀한 그리움으로
한주간을 생존했습니다.
추운겨울 거리..
샘물을 조롱박으로 떠서
손님에게 권하며 한모금마시는 모습을 표현하면서
생명과 반전을 얘기했는데
그 새 떠놓은 물에 살얼음이 얼어서
마시기에 힘이 들었습니다.
버스를 타는데 교통카드의 금액이
어느새 천원도 안남았습니다.
다음주 다가갈 지방공연까지 사용할 양으로
2만원씩 두장 4만원을 교통카드에 충전합니다.
이제 수중엔 8만원이 남았습니다.
컴퓨터통신이 시작되면서부터
그 자유공간을 통해서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평화와 생명을 위해
그리고 인간의 진화를 위해 정리해오던 작업을
10여년만에 마무리지어야할 것 같습니다.
인터넷사용료가 3개월밀려 10만원이 체불되어
이제 이달로 인터넷이 끊어진다고 연락이왔습니다.
컴퓨터도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어서
평택들판으로 떠나는 날
눈군가에게 건네주기로하였습니다.
이젠 공공기관이나 거리에서
조금조금씩 살아가는 소식과
홈피에 소식을 전하는 게 고작일겁니다.
10여년간 다른사람들의 귀한작업을
사진으로 촬영해주고 정리해주던 일과
평화를 위해 노력한 공연사진집들
행동은 계속되겠지만
그 기록을 영상으로 담아서
그 공간에 함꼐하지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던 일은
멈추어야할 욕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는날까지
없어지고 부족한 것 핑계되지않고
할수있는일은 수없이 많이 남아있을겁니다.
버림에 연연치않을수있음이
곧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감이라 생각합니다.
우편함에 쌓인 연체금 청구서들.
8만원의 남은 생활비를 놓고
도시가스 수도세 전기세 주택부금등의
제각기 독촉해야할 이유와 경고가 적힌 글과 숫자를
농담처럼 바라봅니다.
그리곤
인간에 이기심과 전략으로 인해
다시 파괴를 준비하고 그것을
그대로 가꾸고 싶은 마음으로 지키는 사람들이있는곳.
결코 사라져선 안될 고귀한 새상을
지키고싶어서 다가갈
2박3일간의 그 겨울들녁에서의 야영에
이 마지막 경비를 사용하기로 준비를 합니다.
어쩌면 이 여행이 더 이상
이동하거나 다가가 함꼐 합류할 능력을 마치는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실함과 애틋함이 더욱 간절해짐을
느낍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56
제 목 : 광주에 다가서며...
작성자 : 솔문
E-mail :
U R L :
시 간 : 2005-05-22 오후 4:27:41
내 용 : 평화를 노래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차가운 겨울을 지나왔습니다
사랑의 메세지는 바삐지나가는
차창에 부&#46379;쳐 보도블럭 틈새로
부서져 내립니다
그 부서진 노랜말들이 봄비를 머금고 피어나는
작은 풀들의 생명력처럼
제 마음에 작은 평화를 길러냅니다.
광주의 518은 이제 이곳서울에선
역사를 기억하는 행사로서
찾아보기도 힘이듭니다.
자유와 이상은, 민주화에 대한 소망은
자본의 향락과 그들만의 패션으로
가려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사회전체가 혹은 개인에게 욕망되어지는
삶의 조건들은 이제 하나의 선택적 아바타를 꾸미듯
사람들의 삶을 규격화하고 사랑과 평화의 목소리의
진실을 듯고자 하는 이들을 어디에서도 만나기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진실과 자유 그리고 평화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저의 삶 역시 개인의 안위를 살피고 감, 그이상 그이하도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많은 전략들이 숨어있는
이 자본의 전쟁속에서
한 나약한 움직임 시인이 할일이란
사람들의 욕망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사랑의 가치를 그들 사이로
환원시켜 나가는 것일테지요
25년이 지난 지금 광주의 민주영령들을 영접하러
다가섭니다.
존재하는평화를 향해서...
우리의 사랑이 그들에게도 꽃피우기를 희망하며,
2005/5/22 솔문
 
 
 
 
평화가 무엇이냐


원곡 '조약골
편곡 'core
작사 '문정현·조약골 + buzz
노래 '더 실버라이닝
        
(www.silverbeat.net)

vocal-core::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rap1-buzz::

나를 둘러싼 세상의 것을 보라
상대적인 가치와 기준에서 나의 판단이
옳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낮은 곳을 못본 척 외면하진 말아

그 곳에 진정한 너와 나의 모습이 있으니까
*세상은 모두의 것이니까
아기 까마귀, 아기 다람쥐, 한 마리의 메뚜기
모두가 주인이니까
(*권정생 님 글 인용)

rap2-buzz::

신나게 노래하자
일어나 춤을 추자
화사한 너의 얼굴
이제는 낯익구나

말뿐인 나의 행동이야
메마른 얕은 강물이야
너만을 기다리고 있어
그래서 살아갈 수 있어
.............
2005아시아인의 마당(존재하는 평화를 향해)|공연,연수에 관한 모든 것
누비라 | 2007.04.20. 15:22 http://cafe.daum.net/kumtle/Aphj/286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5월 24일 오후 5시 30분 5.18자유공원 벌판극장)
우리 반 아이들 6명, 우리 딸 소연이와 함께 봄
간만에 우리 나라 연극을 보게 되어 일단은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벌판극장이라 셋트가 정확히 구분되지 않아 누가 배우인지 누가 지나가는 사람인지 분간이 안되는 상황속에서 배우같지 않은 너무나 평범한 배우가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경기팀의 공연이었다.
극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여러 장르의 음악이 흘러나와서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 극이 이끌어져가는 느낌을 받았다.
5.18을 겪고 난 후 광주시민들의 공허감과 상실감을 그리면서 동시에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해 반대하는 즉 평화를 호소하는 극이었다.
5명의 배우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뭔가 열심히 행동들을 했다.(무언극이라고 말해도 될 듯 했다.)
5.18에 죽어간 시민들의 사진이 등장하고 여기에 종이컵안에 작은 촛불을 넣어서 사진앞에 진열하는 것은 관객들과 함께 이루어졌다(우리 반 아이들도 같이 했는데 이게 제일 재미있었다고 한다.)
한 배우가 종이로 접은 작은 배도 땅에 하나씩 놓았는데 무얼상징할까?
(내 생각인데 평화를 바라는 소망의 배가 아닐런지..)이것도 역시 관객들이 같이 놓았다.
남자 배우가 가난한 빈민의 아픔에 관한 노래에 맞추어 춤사위로 가사말을 표현하였는데 정말 너무 멋졌다.
아 하 저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총을 내려놔라라는 노래에 맞추어 또 춤을 추었는데 진짜 환상적이었다..(우리 반 아이들도 멋지다고 했다.)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좋은 연극을 보아서 좋았다.
...................
 
누구나 한번쯤은 얘기하는 평화..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였노라고 내세우는 평화행동.
하지만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한 것은 무엇이며
평화는 그렇게 구호만으로 이뤄지는가?
세상을 살면서 평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속에서
실재로 존재하는 평화에 대한 기림과
그것을 향한 끝없는 실천적 행동을 바라봅니다.
평화행동은 사람이 할수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지만
전쟁의 개념을 평화라 말하는이도 있고
미움을 갖고 상대에게 평화를 강요하는
인간의 역사도 변함없습니다.

평화를 위하여 혹은 평화를 위해라는 말의 부질없음
그 부질없음을 평화를 향하는 발걸음과
실천적 행동가의 모습으로
그려봅니다.
그리고 평화란 말이 갖고있는 실체를
이 땅위에 실제적인 존재로 구체화시키기위해서
실존의 그것으로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고 그리고 싶어서
이 작업을 학습으로 구체화시킵니다.
이작업의 동행자들과 마주침자들이
진정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서만
인식하고 생존하며 행동하길 바랍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장소- 광화문 교보문고 옆 길바닥 평화행동
2005년 2월24일 오후 6시50분
이름없는공연팀(
http://yegie.com )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작업노트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이름없는공연 2015,5월작업의 동행자를 찾습니다.
 
2015년5월 35주년 광주에서 그리고 이어진다면 춘천에서
2005년한햇동안 평화연작의 한 작품으로 공연한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그 복기 공연을 준비합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평화란 화두로 거리에서 무대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
다시 만나서 그들과 함께 지금 이시기 우리가 그려야 할 평화의 존재성을 같이
노래하고 떠나는 이 그리움에 몇 사람이나 스스로 다가와
예전처럼 그렇게 절실한 마음
같이 나눠줄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그 작업의 화두 그리고 방식.
누구나 한번쯤은 얘기하는 평화..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였노라고 내세우는 평화행동.
하지만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한 것은 무엇이며
평화는 그렇게 구호만으로 이뤄지는가?
세상을 살면서 평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속에서
실재로 존재하는 평화에 대한 기림과
그것을 향한 끝없는 실천적 행동을 바라봅니다.
평화행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지만
전쟁의 개념을 평화라 말하는 이도 있고
미움을 갖고 상대에게 평화를 강요하는
인간의 역사도 변함없습니다.

평화를 위하여 혹은 평화를 위해라는 말의 부질없음
그 부질없음을 평화를 향하는 발걸음과
실천적 행동가의 모습으로
그려봅니다.
그리고 평화란 말이 갖고 있는 실체를
이 땅위에 실제적인 존재로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실존의 그것으로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고 그리고 싶어서
이 작업을 학습으로 구체화시킵니다.
이 작업의 동행자들과 마주침 자들이
진정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서만
인식하고 생존하며 행동하길 바랍니다.
2015년 3월 10일 화요일오후 02:40:27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빚고을 산자들의 동행없이 홀로 시작합니다.
35주년 5월[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
 2015년 35주기 5월을 준비하면서
1월부터 광주 빚고을에서 5월을 같이 준비할 혹은 같이 그려줄 분들과의 만남을 그리며
34주년빛고을3부작의 영상회를 함께해줄 분이 있을까 제안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5월을  직접 준비해야 하는 시간인 3월이 다감에도
아무도 이에 응답해주는 분 없는 빚고을에서
더 이상 막연히 아무도 동행을 응해주지 않는다는 핑계만으론 있을 수 없어서
35주년5월평화난장 형식의 작업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 그 행동을 위한 생존을 홀로 시작합니다.
지난 한해 빛고을에 머무르며 빚고을이 되어 버린 이곳에서
허물어져가고 슬프게 변형되어 기념되어가는 그들의 방식에 동행하지 못하고
홀로 그린 그 계절의 얘기들을 모아
이제는 산사람이 아닌 넋들과 거리 그리고 인간에 의해 침탈되지 않고 기억을 이어주는 마지막 살아남은 존재들과의
말 없는 대화의 형식으로
2049년 또 하나 숙제가 되어 버린 35년의 기억은 이리되지 말길 그리며
금남로 보이는 20세기도청앞 민주광장 한편에서의 3일간의 영상회를 준비합니다..
2015년 3월 21일 토요일오전 11:39:23
  34주년빛고을 3부작 7월,9월11월.그 영상본 편집을 마쳤습니다..
  http://cafe.daum.net/oncorea/2Gei/3012
이제는 순례자가 아닌 이방인 주거자로서의 35주기 5월행동을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미뤄왔던 지난해 공연 34주년빛고을 7,9,11월]3부연작 공연영상집을
편집 마쳤습니다.
총 90일간의 순례공연기록을 수차에 걸쳐 정리하고 편집해서 3편의 공연영상집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하나로 묶는 작업.
34주년 5월은 그 어느 해보다 슬폈고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얘기에 묻혀서 오히려 잊혀져 간 5월과
그 지움의 공간이 변화하는 과정 안에서 그래도 정신의 혼미함을 벗어날 수 있었던
시공간과의 조우를 다룬 공연기록.
다가와 함꼐하고 보니 이제서야 보이는 또다른 좌절감과
지움의 이유.용납할  수는 없으나 이해할 수 있는 나약함.
그리고 그 나약함과 피로함의 다수가 살기 위해 이뤄가는 지움의 미학.
34주년 빛고을 7,9,11월편엔
일상의 생활환경 안에 무심의 공간이 되어 버린 5월사적지 순례를 배경으로
그래도 광주이기에 맞이하는 민주와 인권 그리고 평화에 대한 아름다운 미련의 잔재.
그리고 그 부러지지 않는 내재한 희망들과의 작은 스침과 만남.
광주인권영화제에서 마주하는 세월호유족의 목소리와
북에 다녀온 아줌마들의 통일이야기와
신은미님이 피아노연주와 함꼐불러주던 심장에 남는 사람..
광주공원과 전남대 교정에서 놀이패 신명이 이어주던 5월마당극.
오지 못한 작가없이 홀로 고국을 찾아 시립미술관 상록관에 전시된
너라도 가거라 라는 제목의 전시회.
김남주추모제에서 읽는 송경동시인의 피눈물같은 시낭송도 다시듣습니다..
아시아 문화전당과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마침내 스스로 지워 버린 80년도청과 놀이터가 되어 버리는 순교지.
그곳에 푸른색 핏빛먹은 꽃송이를 들고 바라보던
마지막 원형사적지의 17년 순례자의 모습이 역사가 되어
아무도 기억못할 흔적으로 담겨있습니다..
농성광장에 유배당했던 시계탑은 5월민주광장 바다를 덮은 간척지에
20세기 그 모습지워 대리석 새옷 입은 모형물로 치장하고 다시 섰습니다.
이제 광주는 이렇게 하나둘 원형을 지운 모조물로 대체하면서
마치 4대강사업처럼 민주의 흐름을 박제처럼 편리하게 가둬둘 모양입니다.
 
오월 분수대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점등되고
도청 앞 광장은 유희 뿐인 축제의 장이 서고
어리석은 아티스트 들의 재능을 사서
미디어아트라는 명분으로 그 쓰라린 도청벽에 비추며
시공을 버린 밤을 유희하기도 합니다.
 
35주년 새 연작은 빚고을의 이야기입니다.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
이 고을의 주인인 그들의 삶의 태도를 납득없이 이해합니다.
이방인은 더 이상 간섭없이 그저 존중하고 따라야 할 인간의 역사입니다.
그들에겐 빛이지만 이방인에겐 빚입니다.
그래서 빚고을에 이주한 이방인의 마지막 순례기를 준비합니다.
34주년 지난한해의 공연기록들을
광주 분들과 같이 보면서 얘기 나누고 싶어
공연영상집들을 완성했습니다.
누구라도 한 사람 언제 어디로 와서
같이 보며 차한잔 나누자고 해주면
그곳이 34주기 빛고을 얘기고
35주기 이어갈 사랑의 공간입니다.
 
하지만 순례자에겐 첫 표류지였던 대구보다도 더 외로운 이곳.
막막한 그리움으로 아무도 벗 만들지 못한 이곳에서
단절된 소외 앞에서 그날 님들이 겪었던 소외를 어렴풋 공감하면서
마지막 5월을 준비합니다.
빚고을에서.
 
51834july 518 34주년7월 빛고을(이름없는공연5월연작55)
http://yegie.com/51834july/page_01.htm
51834Sep.34주년9월 빛고을(이름없는공연 5월연작56)
http://yegie.com/51834sep/page_01.htm
51834Sep.34주년11월 빛고을(이름없는공연 5월연작58)
http://yegie.com/51834nov/page_01.htm
2015년 1월 28일 수요일오전 11:05:02  
 
3월23-25일 존재하는평화를향해2 그 시작을 기도, 3일간의 공연영상회.
모든 상처를 지우고 세련된 도시광장으로 변화시켜낸 아시아 문화전당 앞마당에서
이방인의 여념은 20세기 도청을 그리며
35년의 역사 앞에 34주년에 다가와 가졌던 작은 영상 보고로
이름 없는 공연 5월연작 2015년작업을 시작합니다.
34주년빛고을 3부작 공연영상회로 제목 붙이고
3월마지막 주말 3일간 20세기 도청 앞
레드페스타를 이어갈 세대들의 스케이트보드 연습공간 한쪽 구석에서
신작로 보행자들과 그들의 연습에 방해되지 않길 바라며
4편의 공연영상집을 3일간 상영합니다.
혹시 그것이 못마땅해서 제지하는 분이 계시면 상영회는 바로 중지하고
빈 스크린으로 남은 시간을 채우고 돌아설 것이며
빛고을 사람들의 삶에 피해되지 않게 순례자의 기도는 숨죽일 것입니다.
5월 이 광장 혹은 이방인에게 허락된 공간을 찾아서 그려낼
평화의 노래[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 그 준비를 위해
그리고 넋들 앞에 보고를 위한 열음으로 준비하는
이 영상회는
3월23,24,25일 저녁 밀몰 후에 가지며
상영작은
51834july 518 34주년7월 빛고을(이름없는공연5월연작55)
http://yegie.com/51834july/page_01.htm
51834Sep.34주년9월 빛고을(이름없는공연 5월연작56)
http://yegie.com/51834sep/page_01.htm
51834Sep.34주년11월 빛고을(이름없는공연 5월연작58)
http://yegie.com/51834nov/page_01.htm
그리고 34주년5월빛고을에서의 복기공연중 한편인
순애언니 51834(이름없는공연 5월연작45)
http://yegie.com/sister51834/page_01.htm
입니다.
2015년 3월 21일 토요일오후 12:27:20
 
이름없는공연의 이번 34주년빛고을3부작 공연영상회는
35주년5월의 준비 그 시작과정에서 함께 보며 얘기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찾다가
단 한 분도 응답해주신 분 없어서 가지는
이번 3월23-25일의 20세기전남도청앞 영상회는
35주년5월에 가질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를 위한 보고와 기도의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이승에서 숨을 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경을 원치않으며
관객 또한 없이 그저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을 안고 3월어느저녁 그곳이 전남도청이었고
민주의 성지였던 것을 기억하며 자신의 삶이 죄스러워 산책처럼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이 있어
그의 시간과 공간이 우리의 시공과 겹쳐지는 기적이 있길 바라며
준비합니다.
2015년 3월 21일 토요일오후 12:30:01
5월평화난장 준비하는 평화를 향해2,  광주작업자첫모임,..
누구나 한번쯤은 얘기하는 평화..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였노라고 내세우는 평화행동.
하지만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한 것은 무엇이며
평화는 그렇게 구호만으로 이뤄지는가?
세상을 살면서 평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속에서
실재로 존재하는 평화에 대한 기림과
그것을 향한 끝없는 실천적 행동을 바라봅니다.
평화행동은 사람이 할수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지만
전쟁의 개념을 평화라 말하는이도 있고
미움을 갖고 상대에게 평화를 강요하는
인간의 역사도 변함없습니다.

평화를 위하여 혹은 평화를 위해라는 말의 부질없음
그 부질없음을 평화를 향하는 발걸음과
실천적 행동가의 모습으로
그려봅니다.
그리고 평화란 말이 갖고있는 실체를
이 땅위에 실제적인 존재로 구체화시키기위해서
실존의 그것으로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고 그리고 싶어서
이 작업을 학습으로 구체화시킵니다.
이작업의 동행자들과 마주침자들이
진정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서만
인식하고 생존하며 행동하길 바랍니다.
(2005-01-23 오후 6:18:26)
)
 
위 초연에서 적었던 그 작업제안에서  몇 배 더 참담하게 후퇴된 이 시간 이 땅에서
그 참담함을 이유로 ,그때보다 몹시 더 작어진 갈망의 적극성을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우선 광주에서의 초연에 참가할 광주지역 분들과의 첫 번째 만남을 향한 기다림은
3월23-24일저녁입니다.
22일까지 연락주시면 미팅약속잡으실수있습니다.
 
2015년 3월 21일 토요일오후 3:20:12
이름없는공연,35주년 5월빛고을 평화난장 구성은 이렇게..
 
이름없는공연이 35주년 5월 빛고을과 춘천에서의 공연으로 준비하는
평화난장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는
갈망하기는 평화를 노래하는 노래들이 이어지는 거리 콘서트 형식을 택합니다.
그동안 이름없는공연이 평화를 갈망하는 현장에서 그렸던 공연의 배경음악 혹은 주제음악으로
사용되었던 노래들이 씽어송라이터들의 라이브로 이어지며
그 노래들을 배경으로 평화행동가들이 각기 자신의 몸짓과 행동으로 펼칠 이미지와 공연의 모자이크로
이어지는 거리극입니다.
이름없는공연과 같이 길바닥평화행동으로 아니면 생명평화를 갈망하는 현장에서 스쳐만나거나
함께 했던 분들이 그 노래를 불러주고 연주하면서 지금이시기 우리가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그리고 행동해야 할 평화를 그리는 시공.
실제 존재하지 않는 말뿐인 평화에서 벗어나
아무런 조건없이 진정 스스로 선택한 갈망으로 만난 2015년5월 국가잃은 이 조그마한 나라에서의
자유로운  만남.
 
1)35주년 5월빛고을에 다가와서 함꼐할 마음 있는 분들이 참여를 약속하면
2)그가 부를 노래를 정하고 mr과 노래화일을 받아서 작업을 구성하고
3)설치미술,춤 인형극 마임 몸짓등 자신이 참여할 표현방식으로의 참여를 제안해주신분들의 얘기를 모아
4)한편의 공연을 구성하고 그 구성에 따라 작업을 이룹니다.
 
참가자들이 결정될 때까지 이름없는공연의 작업자 까페의 작품게시판을 통해 공개적으로 온라인으로 준비하며
참가자가 마감되면 작업자들만이 보고 쓸 수 있는 비공개게시판으로 바꿔
작업을 완성,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공연을 하게 됩니다.
공연에 드는 모든 비용은 각자 자신이 부담하며
출연료나 개런티 차비 식비등의 진행비등은 일체 따로 제공되지 않습니다.
 
공연이 새만금 대추리 강정 용산 4대강 핵발전소.팽목항,세월호 .등등에서 이어졌던 평화와 생명의 노래들로 구성되므로
우선 1차적으로 이런 현장에서의 노래를 부르고 행동하셨던 노래하는 분들이 먼저 참여자로 구성을 마쳐야 하며
그분들의 노래를 선곡해서 공연의 다음단계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물리적시간을 정해 노래를 불러주실 분들의 참가가 마감되면
실제 라이브로 참여하실 분과 하몎하지 못하는 분들의 노래를 구성해서 나레이션이나 발언,대사등으로
공연대본을 구성하고 표현 참가자 분들의 각기의 표현방식과 주제에 연결될 퍼포먼스를 모아
공연의 콘티를 완성합니다.
 
모든 작업은 온라인으로 작업자게시판을 통해서 이뤄지면
하신 약속은 마음이 변하실 경우 언제든 게시판을 통해 그만두시겠다고 취소하시고
그만두실수있습니다..
 
이름없는공연에 자신의 노래들의 모든 사용권을 허락해주신
별음자리표님,하제운님,조약골님,박창근님의 노래는 반드시 사용하여 공연하며
그동안 직접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그저 노래가 가슴에 와닿아서 이름없는공연에 사용했던 많은 분들의 노래가
이 공연에서 만나 실제로 함꼐하는 공연이 이뤄지길 꿈꿉니다.
대략의 공연일정은 광주가 5월17일에서 27일사이에 하루 혹은 이틀 이며
춘천마임축제에서의 공연이 이뤄지거나 춘천에 갈 차비와 숙박비가 만들어질 경우 ,춘천공연은 5월29일입니다. ,
2015년 3월 21일 토요일오후 4:07:23
평화난장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광주공연에 함께 해 줄 노래 님들,,3월중으로 마감합니다..
이름없는공연의 35주년5월빛고을에서의 5월연작공연
평화난장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는 2015년 5월17일에서 27일사이 광주에서 초연하려 합니다.
평화를 노래해주는 노래꾼들의 거리 콘서트 방식으로 공연할 이 작업은
참가하실 의향을 가지신 분들이 스스로 응답해서 약속을 정해주시고  그분들이 희망하시는 시간으로
일정을 조정해서 공연일정을 잡을 예정입니다
3월중으로 참가의사를 결정해주시는 분이  한분이라도 있으면 그분이 원하시는 일정으로 일정을 잡고
작업을 진행하겠지만 한 분도 응답해주시는 분이 없으실 경우에는
이름없는공연이 스스로 공연일정을 정해서 그 일정에 참여하실 수 있는 분을 찾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 경우 이름없는공연이 의미를 담아 행동하고 싶은 일정은 5월26일과 27일입니다.
 
이름없는공연이 이번 공연에 담고 함께 하고 싶은 노래들은
조약골님의 평택 대추리, 용산,강정에서의 노래들
별음자리표님의 대추리,촛불,새만금,반전에 관한 노래들
하제운님의 강정,세월호 관련노래
박창근님의 4대강 그리고 생명평화에 관한 노래들입니다.
최상돈님의 제주노래와 임정득님의 평화에 관한 노래와
쏭,실버라이닝 꼬미 님등 길바닥평화행동에서 불려지던 노래들
그리고 손병휘님의 노래와 이지상님의 노래 오지은님의 노래등입니다.
물론 그간저희 공연에 사용되었던 이 노래들이 아니더라도
이 평화난장에 동행을 희망하시는 분이 계시면 그분의 노래가운데서
더 많은 곡들을 골라서 작품을 구성할 예정입니다.
작업의 진행상 3월말까지 참가할 노래공연자 분을 1차 마감하며
이에 응답해주시는 분이 없을 경우는
라이브없이 곡을 선정해서 퍼포먼스 만으로 공연을 구성하게 됩니다..
특히 광주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노래꾼 분들이 이 작업에 동행을 신청해주시고
이 5월 평화를 그리는 평화난장에서 같이 부르실 자신의 곡을 제안해주시면
그 곡을 바탕으로 공연을 구성하겠습니다.
2015년 3월 22일 일요일오후 2:37:25
 35주년5월작업을 위한 오늘 광주영상회 첫날(3월23일)은
저녁8시
상영작품은51834 순애언니와 416305(사일육삼백오일),
그리고 34주년7월빛고을 입니다.
보러오셔서 함께 자리하면서 얘기나누고싶다는분이 한분도 안계셔서 영상회는넋들이 보실수있게 편집축약되고
스케이드보드타는 학생들에게 방해되지않게 소리없이 상영할 예정입니다.
...
상영중 단한분의 살아있는 광주시민이라도 항의하시면
상영회는 바로 중단하고 철수합니다
2015년 3월 23일 월요일오후 2:09:39
 
 
35주년5월 이름없는공연의 평화난장 23일 그리고 27일 새벽공연
http://cafe.daum.net/oncorea/U0sS/13
 
이름없는공연의 35주년5월 평화난장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에 참가를
결정해주신분들의 명단 및 참가일정입니다. (ver.3월24일)
5월23일 토요일 오쿠다 마사시(비누방울, 마임),
5월27일 수요일 새벽-아침 김봉호(현대무용)
평화노래를 배경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으나 아직 노래하시는 분은
한 분도 참가하신다는 분이 안계십니다.
그리고 참여일정을 잡으실 분은 가능하시다면  다른 분이 참가하시는 날로
일정을 조정하셔서 홀로보다는 함께 하는 공연이 되게 갈망합니다.
그리고 광주지역에서 활동하시는 평화활동가나 공연자 분들도
참여해주셔서 외지사람들만이 쓸쓸히 그리는 5월이 되지 않게 희망합니다.  
한 분만이 참가신청하신 날은 평화난장이 아닌 [까페 언덕 위의 바보]로 공연을
구성합니다.
2015년 3월 24일 화요일오후 3:02:53
이름없는공연의 35주년5월행동을 위한 
광주분들과의 만남 그리는  34주년 빛고을 3부작 광주영상회 둘째날(3월24일).
이틀간 단 한분도 만나지못하고 마지막날로 준비햇던 25일도 오신다는 분 안계셔서
이틀간의 기다림으로 마친 마지막날 영상회
2015년 3월 24일 화요일오후 11:53:31 
 .
 이름없는공연이 준비하는 5월평화난장 [존재하는..]은
 
이름없는공연이 광주에서 35주년 5월을  준비하면서 꿈꾼 평화난장은
처음엔 그동안 이름없는공연이 만들어온 작품들에 담았던 노래.
그 노래하는 분들의 노래속에서 그리는 평화의 몸짓나눔이었습니다.
 
그리고 35년의 흐름안에 담고 이루고져했으나 이루지 못한 민주와 인권세상
평화에 대한 갈망을, 오늘 이 나라 이땅의 현실위에서 다시 다짐하는
그런 평화행동의 모자이크엿습니다.
 
2015년 5월17일부터 27일까지,
혹은 5월 한달간
오월을기억하고 다가와 동행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영상회와 복기공연,그리고 평화행동등을 연결시켜가면서
그려볼 평화 그 그리움으로 의 연작선상의 작업,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라는 제목으로 다시그리는 평화난장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극을 구성하고 기다린 노래하시는 분들이
한분도 참가의사를 표시해주시지 않았고
공연자분들 역시
개런티도 없고 국가나 지자체,문화재단 등이 주최하는 이벤트나 행사도 아닌 이 제안에
무심하시거나 마음만 보내실 뿐
직접 동행을 약속해주시는 분이 마져없어서
단몇분이라도 시간을 일치해서 같이 모여 만들고 그려보는
절실한 마음의 평화행동은 이뤄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월은 이제 광주에서도 스스로 지워져가고
이제 얼마 남지않은
아직도 못내 죄스러워 찾아오거나 머무르려는 순례자들에겐
원형사적지조차 찾기어려워진 박제된 성형도시입니다..
 
평화행동가도 공연자도
오월광주에 빚진 마음으로 살고 있다던 그 많은 인연들에게 편지를띄웎지만
올해도 역시 시간을 비워 다가와 함께하겠다 답주시는 분들이 없어서
함께 모여 같이하려던 평화난장은 포기합니다.
 
그리고 귀하게 시간을내서 만남을 약속해주시는 몇 분.
그 한 분씩 오실수잇다시는 그 일정과 시간에 맞춰서
오월한달 기다리며 만나 순례하고 공연하는
연작의 방식으로 작품을 재구성합니다.
 
지워 버린 평화난장은
단절된 조각조각의 모습으로
한분한분 오신다는 날에 그리고 하루 이틀 머무르시는 시간을 맞춰서
그분들과 같이 찾아갈 순례지를 정하고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빛고을에서 마중합니다.
 
설치미술이나 전시,퍼포먼스나 공연방식의 다양한 모습으로
행동하실 수 있는 분이 오시는 날은 그 분과 함께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를 구성해 공연하고
그저 다가와 순려하실분이 오시는날은
[까페 언덕위의 바보]를 구성해서  차 한 잔의 대화형식으로
작업을 구성하겠습니다.
 
 
5월16일부터 27일까지를 주 공연일정으로 하고
이 기간이 아니더라도 5월의 어느날
시간을내서 빛고을을 찾아주실 분이 계시다면
그날도 기다리면서
2015년 광주인들이 만들어내는 광주의 오월을 바탕으로
아직은축제가 되지 못하는 낯설은 이방인의 시각으로
우리가 찾아야할 또하나의 다른 마음을 담아가겟습니다
 
장소가 마련된다면 아니 허락된다면
지난해 34주년 5월의 빛고을 공연여정을 담은 영상회도 준비하고
이름없는공연이 준비한 이 오월빛고을순레공연에
동행을 약속해주시는 분의 일정에 따라
연작공연의 일정을 구성합니다.
늦게라도 마음을 잡아서 자신의 일상속 시간을 비워서
오월광주행을 정해주시는 분이 계신다면
오실날자와 머무를 시간정해 참가글 주시면
[존재하는평화를향해]에 동행하실 수 있게
터미널에서 역에서 기다려 그분과 함께할 행동만들어 함께하겠습니다.
광주분들로서 이 이방인이 그리는 평화행동에 동행해주거나
공연전시 장소를 제공해주실 마음 이뤄지는분이 계시다면
역시 같은 방법으로 연락주시면
같이할 평화를 준비하겠습니다.
 
평화난장으로 그려보고싶엇던 이름없는공연의 35주년 5월공연은
5월한달간
다가와 주실 분들의 일정과 마음에 맞춰서
16-27일사이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연작과
1일-31일사이 [까페 언덕위의 바보] 두 편으로 구성합니다.
 
2049년의 4월을 생각하며
2015년의 5월을 준비합니다.
말과 형식 명분을 찾아 간혹 생각하고 그리는 평화가 아닌
실재 쉼표없이 이 시공간에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2015년 4월 7일 화요일오후 12:06:35
 
2015년5월 광주 이름없는공연[존재하는평화를향해]참가자 및 일정.
 
현재까지 광주에서의 만남과 순례일정을 잡아주신분,
한국인은 현대무용하시는 한분.뿐이고
광주분도 아직 한분도 없이
오히려 일본분들이 두분 동행일정을잡아주셨습니다.
세분의 작업방식과 공연내용을 바탕으로
작업일정과 장소를 정해 작품을 구성합니다.
혹시라도 광주분들로서 이름없는공연의 35주년 오월광주순례공연에 같이 해주실분이나
타지역이나 나라에서 이름없는공연의 이 평화공연에 함꼐하기위해
5월광주를 찾아주실분은
자신이 광주에 도착하고 머무르실 일정과 함께 참가신청글 올려주시고
시간을맞출수잇다면
먼저 결정된 날짜에 맞춰서 동행일정을 잡아주시면
작품구성에 좋겠습니다
 
참가자 및 순례공연참여일정
5월8일-9일 참가자.오카모토 마사미님
5월23,24,25일 참가자 오쿠다 마사시님(비누방울,마임)
5월27일 참가자 김봉호님(현대무용)
 
2015년 4월 7일 화요일오후 12:36:51
 
이름없는공연이 준비하는 5월평화난장 [존재하는..]은
 
이름없는공연이 광주에서 35주년 5월을  준비하면서 꿈꾼 평화난장은
처음엔 그동안 이름없는공연이 만들어온 작품들에 담았던 노래.
그 노래하는 분들의 노래속에서 그리는 평화의 몸짓나눔이었습니다.
 
그리고 35년의 흐름안에 담고 이루고져했으나 이루지 못한 민주와 인권세상
평화에 대한 갈망을, 오늘 이 나라 이땅의 현실위에서 다시 다짐하는
그런 평화행동의 모자이크엿습니다.
 
2015년 5월17일부터 27일까지,
혹은 5월 한달간
오월을기억하고 다가와 동행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영상회와 복기공연,그리고 평화행동등을 연결시켜가면서
그려볼 평화 그 그리움으로 의 연작선상의 작업,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라는 제목으로 다시그리는 평화난장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극을 구성하고 기다린 노래하시는 분들이
한분도 참가의사를 표시해주시지 않았고
공연자분들 역시
개런티도 없고 국가나 지자체,문화재단 등이 주최하는 이벤트나 행사도 아닌 이 제안에
무심하시거나 마음만 보내실 뿐
직접 동행을 약속해주시는 분이 마져없어서
단몇분이라도 시간을 일치해서 같이 모여 만들고 그려보는
절실한 마음의 평화행동은 이뤄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월은 이제 광주에서도 스스로 지워져가고
이제 얼마 남지않은
아직도 못내 죄스러워 찾아오거나 머무르려는 순례자들에겐
원형사적지조차 찾기어려워진 박제된 성형도시입니다..
 
평화행동가도 공연자도
오월광주에 빚진 마음으로 살고 있다던 그 많은 인연들에게 편지를띄웎지만
올해도 역시 시간을 비워 다가와 함께하겠다 답주시는 분들이 없어서
함께 모여 같이하려던 평화난장은 포기합니다.
 
그리고 귀하게 시간을내서 만남을 약속해주시는 몇 분.
그 한 분씩 오실수잇다시는 그 일정과 시간에 맞춰서
오월한달 기다리며 만나 순례하고 공연하는
연작의 방식으로 작품을 재구성합니다.
 
지워 버린 평화난장은
단절된 조각조각의 모습으로
한분한분 오신다는 날에 그리고 하루 이틀 머무르시는 시간을 맞춰서
그분들과 같이 찾아갈 순례지를 정하고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빛고을에서 마중합니다.
 
설치미술이나 전시,퍼포먼스나 공연방식의 다양한 모습으로
행동하실 수 있는 분이 오시는 날은 그 분과 함께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를 구성해 공연하고
그저 다가와 순려하실분이 오시는날은
[까페 언덕위의 바보]를 구성해서  차 한 잔의 대화형식으로
작업을 구성하겠습니다.
 
 
5월16일부터 27일까지를 주 공연일정으로 하고
이 기간이 아니더라도 5월의 어느날
시간을내서 빛고을을 찾아주실 분이 계시다면
그날도 기다리면서
2015년 광주인들이 만들어내는 광주의 오월을 바탕으로
아직은축제가 되지 못하는 낯설은 이방인의 시각으로
우리가 찾아야할 또하나의 다른 마음을 담아가겟습니다
 
장소가 마련된다면 아니 허락된다면
지난해 34주년 5월의 빛고을 공연여정을 담은 영상회도 준비하고
이름없는공연이 준비한 이 오월빛고을순레공연에
동행을 약속해주시는 분의 일정에 따라
연작공연의 일정을 구성합니다.
늦게라도 마음을 잡아서 자신의 일상속 시간을 비워서
오월광주행을 정해주시는 분이 계신다면
오실날자와 머무를 시간정해 참가글 주시면
[존재하는평화를향해]에 동행하실 수 있게
터미널에서 역에서 기다려 그분과 함께할 행동만들어 함께하겠습니다.
광주분들로서 이 이방인이 그리는 평화행동에 동행해주거나
공연전시 장소를 제공해주실 마음 이뤄지는분이 계시다면
역시 같은 방법으로 연락주시면
같이할 평화를 준비하겠습니다.
 
평화난장으로 그려보고싶엇던 이름없는공연의 35주년 5월공연은
5월한달간
다가와 주실 분들의 일정과 마음에 맞춰서
16-27일사이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연작과
1일-31일사이 [까페 언덕위의 바보] 두 편으로 구성합니다.
 
2049년의 4월을 생각하며
2015년의 5월을 준비합니다.
말과 형식 명분을 찾아 간혹 생각하고 그리는 평화가 아닌
실재 쉼표없이 이 시공간에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2015년 4월 7일 화요일오후 12:06:35
 
 
2015년5월 광주 이름없는공연[존재하는평화를향해]참가자 및 일정.
 
현재까지 광주에서의 만남과 순례일정을 잡아주신분,
한국인은 현대무용하시는 한분.뿐이고
광주분도 아직 한분도 없이
오히려 일본분들이 두분 동행일정을잡아주셨습니다.
세분의 작업방식과 공연내용을 바탕으로
작업일정과 장소를 정해 작품을 구성합니다.
혹시라도 광주분들로서 이름없는공연의 35주년 오월광주순례공연에 같이 해주실분이나
타지역이나 나라에서 이름없는공연의 이 평화공연에 함꼐하기위해
5월광주를 찾아주실분은
자신이 광주에 도착하고 머무르실 일정과 함께 참가신청글 올려주시고
시간을맞출수잇다면
먼저 결정된 날짜에 맞춰서 동행일정을 잡아주시면
작품구성에 좋겠습니다
 
참가자 및 순례공연참여일정
5월8일-9일 참가자.오카모토 마사미님
5월23,24,25일 참가자 오쿠다 마사시님(비누방울,마임)
5월27일 참가자 김봉호님(현대무용)
 
2015년 4월 7일 화요일오후 12:36:51
 
오카모토님과 함께하는 35주년 오월,빛고을순례
2015 이름없는공연.
[존재하는 평화를향해2]연작(이름없는공연오월연작62)
2015년5월9일 토요일 5월민주광장,금남로.
 
35주년5월,다가와 머무른 빛고을에서의 기다림.
마중나가 맞이할 동무를 부르고
그 기다림에 답해주신 분을 맞아 그와 함께 오월길을 순례합니다.
그와 함께 그가 마련해준시간만큼 걸으며
지난 20여년간 먼저 본 시간을 따라 기억하면서
얘기나누고 그려보는 민주, 평화의 인간세상.
35주년맞는 5월을 기다리며 1년전 다가와 머무르며 준비한
62번째 5월연작[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
이름없는공연이 16주기,17주기.. 그 초기작업에서 그려보았던 것.
30년지나 우린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이 그린 그 아름다운세상 만들었을까?하던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회향처럼 차안에서 복기해보는 평화.
그날 그렇게 아득했던 미래의 시간으로 건너와서
다가온 벗에게 시름없이 안내합니다..
순례자처럼 찾아가는 이방인에게 공간은 이미 10년전의 그곳이 아니고
빛고을은 그 상처를 이제는 아물리려는 듯 스스로 보듬어 지웠습니다.
그리고 치워 버린 조각의 조그만 기념물들로
그 사랑과 염원을 가슴속에 숨겨 버린 초월의 공간입니다.
 
5월17일부터 27일까지 그 항쟁의 기간동안 시간을 같이하며
다시 만나고싶다는 제안에 벗들은 마음처럼 함꼐해주지 못하고
바쁜 일상을 비워 소중한 가슴으로 다가오시는 몇분이 계셔
따로 만남을 이을 연작을 구성했습니다.
 
5월9일 토요일, 오카모토 마사미님과 함께 35주년오월 빛고을 순례공연을 시작합니다.
5.18민주광장 한편에서 만나 80년도청을 다시걷고 상무관 분수대에 머무른후
금남로 그리고 예술의 거리 박효선님의 흔적찾아 민들레소극장에서 모란꽃을 만납니다.
 
낮1시부터 저녁7시까지..6시간의 순례중 부분부분 같이 만나 같이 걸어주실분.
혹은 낯선 이방인들에게 다가가 오월 그날의 얘기와 오늘의 얘기를 들려주실분.
관객이 없는 이 공연은
공연일 이틀전까지 온라인으로 참가의사 표시해주시면
동행하며 함꼐할 수 있습니다.
2015년 4월 19일 일요일오후 4:49:33
,
 
 
 
35주년 5월 이름없는공연으로 이렇게 준비합니다.
2015년 35주년 5월.이름없는공연이 준비중인 다섯가지 공연기획..
1.34주년에 돌이켜걸어본 빛고을광주. (이름없는공연 34주년5월 영상회)
2.35주년 5월연작 평화공연 -존재하는평화를 향해2
3. 이방인이 안내하는 오월길순례
...
4. 까페 언덕위의 바보(상설거리까페)
5.광주에서 함께한 세월호와의 동행들..(공연영상회).
 
지난 17년간의 오월,타지에서 그 짧은 만남의 시간만을 가지며 안타까왔던 것.
이제 이승에서의 작업을 정리하며 지난해 34주기 이곳에 다가와 머물고
그 온건히 감사안겼던 이방인의 한해로 35주년 오월을 준비했습니다.
차안의 복기로 돌이켜 그린 34주기의 계절들.
그 두려운 만남처럼, 그 그리운 찾아옴처럼
함께 혹은 홀로 다가와 거딜다 섰던 빛고을에서
지나간 그 시간들로 다시금 회향하고
같은시공에 잠겨 투사되는 잔향에 파묻쳤던 시간.
님들의 뜻따라 많은 것을 익혔지만
많이 죄스럽고 많이 부족하여
아무것도 그 마음만같지 못햇던 미완의 삶.
그리고 이렇게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짓고서야
그나마 조금씩 바라보이는 거리.
그리고 따라갈 수 없어서 끝없이 아름다운 넋들의 숨결.

1)이방인이 안내하는 오월길순례
...
34주기 그 모습보다는 조금은 차분한 가슴으로 준비한
다섯 개의 프로젝트.
35주기란 숫자에 사뭇 기대하면서 일생속에 만나고 스쳣던 지인들,
그 살아가는사람들에게 다시 던져본 제안.
 
수십명 그리운 사람들이 하나둘 옛처럼 다시 찾아와서
먼저와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 동행을 청해주면
시간을 거슬러 그와 우리가 살았던 시간과
행동햇던 수줍던 삶, 화석처럼 기억하면서
변해 버린 이곳에서 찾아내 걸어보고싶엇던 오월.
그렇게 준비한 얘기들 ,끝내 미련없고
이승의 삶이 한 자락 먼지풀처럼 그렇게
명예롭지 않았고 유명하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언제라도 냉정하지 않았던 고마우신 벗들을 찾아서
그들 앞에 공손히 손내밀어보는 마음으로.
 
2).34주년에 돌이켜걸어본 빛고을광주.
(이름없는공연 34주년5월 영상회)
지난한해 돌이켜34년 그리며 반성처럼 홀로그렷던 오월의 순례와
7월 9월 11월 세편의 시간으로 따로 묶어그렸던
오월에 대한 답변의 기록.
35년지나 아곳에서 보여드릴 그 기록의 영상회.
 
3)광주에서 함께한 세월호와의 동행들..(공연영상회).
그리고 세월호 그 슬픔따라 빛고을사람들과 같이거닐며 그린 4.3넘어 또하나 4월의 얘기.
빛고을 어느공간안에 투사해 볼 이 두 편의 얘기를 다듬어 거리에 섭니다.
 
4)까페 언덕위의 바보(상설거리까페)
순애언니를찾아 처음찾아왓던 금남로에서
그 소식따라 찾아갓던 까페 언덕위의바보.
세월을 따라 연작이 되어 그 까페는 주인아닌 주인이 되었고
머물며 기다리면 언제나 찾아와주는 참많은 사람들.
산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그시간 그 장소에서
망월동 한편에 세운 1호점.
그리고 이제 그 2호점을 매주 목요일 저녁 5월광장한편에 엽니다.
누눅ㄴ가 다가와 말걸으면 그분의 얘기,바람처럼 듣고
그가 물어보면 아는 만큼 겸손히
시간의 얘기를 해드리려.
 
5)35주년 5월연작 평화공연 -존재하는평화를 향해2
언젠가 거리에서 시작한 가난한 평화행동가의 일상을 적은 얘기는
366일 하루같이 평화를 그리던 그 366부작을 마치고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란 이름으로
지금은 오히려 그리운 시간속에서 대추리 새만금
그리고 침략전쟁의 파병국가국민으로의 처절한 미안함 그리던 그날넘어.
이제 아주오래전의 그 일상다시 펴서
두 번째 작업으로
[존재하는평화를 향해2]란제목으로 오월의 한 모서리에서 회상을 이어갑니다.
다시 잃어 버린 통일과 망루속 당신 그리고 눈되지 못하고 떠나 버린그들의 생애와
질서를 망각해 버린인간의 우매함앞에 죄스럽게 걸었던 4대강과 바다
그리고 핵을택한 인간종의 멸망을 보앗던 신생대말 인간세의 얘기와
찬탈된 어진사람들의 눈물이 고인 국가없는 나라얘기까지.
 
2015년 4월 22일 수요일오후 8:08:52
 
 
이번 35주년 5월연작공연 [존재하는 평화를향해2]중에서
최소한 꼭 한 곡은 누군가가 라이브로 노래를 해주었으면 하는데,
노래하는 분이 한분도 동행을 약속해주시지않으셔서 참담합니다.
저희가 공연에 담고싶은 이 노래의 악보를 준비해서
당일 거리에서라도 만나
그 노래하나만이라도 불러주실분을 찾고있습니다.
5월9일에서 27일사이 편하신 날 하루
광주 5월민주광장이나 금남로에서 만나
악보를 읽어 노래 불러 주실수 있는  분 계시면
편하신 일정 정해서 연락주십시요.
.2015년 4월 23일 목요일오전 12:46:06
 
 
.
정의행님,저희작업에 직접 함께해주신다는 말씀 감사드립니다.
곡은 모란이 다시 피어도 이며 현재 확정된 저희작가들과 같이 하실 수 있는 일자는
24일(일)오후4시-8시사이와 27일(수)새벽4시-6시사이입니다.
가능하면 이 두 날중 하루로 일정잡아주심 좋겟습니다만
일정맞지않으시면 18일에서 27일사이
편하신 시간과 장소(5월사적지나 의미있는장소)로 일정 잡아주시면
그에 맞춰서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http://cafe.daum.net/oncorea/2Gei/3065
2015년 4월 24일 금요일오전 11:14:18
 
 
BADA와 함께하는 35주년 오월,빛고을순례
2015 이름없는공연.
[존재하는 평화를향해2]연작(이름없는공연오월연작62)
2015년5월27일 수요일 새벽 80년도청앞 그리고 금남로.
 
언제부턴가 이름없는공연의 5월27일 새벽 빛고을공연에 함꼐해준 분.
그날 이후의 그분들이 꿈꾸던세상 이루기위해 그 광장에 섰던 그 마음으로
다가와 순례하는 그의 모습과 마주하며 약속처럼 동행하던 그모습으로
35주년 5월 그새벽 다시 ,그곳에서 만납니다.
27일의 시작에서부터 새벽 그리고 아침을 맞기까지
80년 옛 도청앞 광장에서 분수대 상무관 그리고 금남로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위에
우리가 어설피 이어온 시간,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연명하듯 살아온 이방인들이
오월,다시 하늘이 열리는 이 곳에서 님들의 마음이어 만들어내야할 그리운 세상 향해
순례하는 새벽.
약속처럼 다가와 광장을 가득 메우고 그 새벽을 채워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마음과 몸짓으로 그리는 우리의 꿈.
공연은 3시부터 BADA의 춤과 예플러의 기억으로 시작해서
다가와 같이할 더많은사람들의 모자이크로 아침까지 이어지고 헤어집니다.
동행하실 분은 자신이 다가와 그리고 표현할 시간과 음향을 미리 파일로 전해주시면
이름없는공연의 35주년 5월연작의 마지막 날 새벽을 메울
존재하는평화를 향해 2 그 마지막 평화마당을 구성해서 함께하겠습니다..
2015년 4월 25일 토요일오전 11:32:11
 
존재하는 평화를향해2..2015년 5월에 다시 시작하여 그리는..
 
이름없는공연이 광주에서 35주년 5월을  준비하면서 꿈꾼 평화난장은
그 동안 이름없는공연이 만들어온 작품들에 담았던 노래.
그 노래하는 분들의 노래속에서 그리는 평화의 몸짓나눔이었습니다.
그리고 35년의 흐름안에 담고 이루고져했으나 이루지 못한 민주와 인권세상
평화에 대한 갈망을, 오늘 이 나라 이땅의 현실위에서 다시 다짐하는
그런 평화행동의 모자이크엿습니다.
 
이름없는공연이 35주년 5월 빛고을과 춘천에서의 공연으로 준비하는
평화난장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는
갈망하기는 평화를 노래하는 노래들이 이어지는 거리 콘서트 형식을 택하고싶었습니다.
 
그동안 이름없는공연이 평화를 갈망하는 현장에서 그렸던
공연의 배경음악 혹은 주제음악으로  사용되었던 노래들이 씽어송라이터들의 라이브로 이어지며
그 노래들을 배경으로 평화행동가들이 각기 자신의 몸짓과 행동으로 펼칠
이미지와 공연의 모자이크로 이어지는 거리극,한 편의 평화난장이었습니다.
1995년부터 지난20년간 예기플라타너스 혹은 이름없는공연과 같이
길바닥평화행동으로 아니면 생명평화를 갈망하는 현장에서 스쳐만나거나
함께 했던 분들이 그 노래를 불러주고 연주하면서
지금 이 시기 우리가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그리고 행동해야 할 평화를 그리는 시공.
실제 존재하지 않는 말뿐인 평화에서 벗어나
아무런 조건없이 진정 스스로 선택한 갈망으로 만나는 시간.
2015년5월 국가잃은 이 조그마한 나라에서의 자유로운  만남.
 
하지만 준비하고 청하면서 모두 같이 빛고을에서 하루만나 지나온 자신의 과오를 사죄하며
이루지 못하고 상기하여 실천하지 못한 아픈가슴 보듬어 나누고
서로에게 다시 용기얻을 평화난장은 메아리없는 제안으로 지워졌습니다.
그리고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 없다면 단 몇사람 그래도 제안에 응답해주고
자신을 비워 다가와 줄 사람들을 기다려 그 조각조각을 모아서
한편의 공연을 구성하기로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비웠습니다.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의 초연은 10년전
그 때는 그래도 같이해주는사람들이 있어서 함께할 수 있었던
평화행동의 발자취입니다.
익히고 배운대로 상식을 따라 거리에서 평화를 노래하고
넋들과 우리가 이룩해온 이 만큼의 민주를 행동하며 외치고 그릴 수 있엇던
시간의 작업이었습니다.
 
이제 10년이 지난 통일되었던 세상도 다시 분단되고
민주되었던 세상도 찬탈되어
역사는 후퇴했고
국가는 사라졌고
진실도 침몰했습니다.
 
평화를 그리며 행동한 20년.
그리고 말뿐이 아닌 실제 존재하는 평화를 만들고싶어서 거리에서
스치고 만나며 걷고 앉던 10살어린 시절의 우리들의 마음을 다시이어
[존재하는평화를행해2]를 35주기 5월 빛고을에서 시작합니다.
 
모두 같이 만나지 못하고
이제는 환영이 되어 버린 사람들의 지금 모습이 아닌 그 옛날의 모습을 곁에 앉고
넋들을 만나듯 그들과 함께
빈거리에서 기다리며
여백을 두고 공연을 준비합니다.
 
새만금 대추리 침략전쟁과 파병 이라크 아이들의 이야기들로 그려졌던 작업은
강정마을,용산,촛불의 행진,4대강,송전탑,탈핵,세월호 등의 현장으로 더욱 더 참담하고
민주와 통일의 화두또한 그 아픔을 더해서 평화를 외칩니다.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는 두갑자 갑오년을 지난 1895년가을에거 이어지는 을미년
그리고 마지막 원형사적지마져 조각내어진 빛고을 오월의 마당에서
힘겨운 기억으로 변절을 용납하는 사람들의 일상곁을 맴도는
부질없는 순례자들의 삶보다 중요한 의지의 그리움입니다.
 
공연은 가능하면 살아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해하지 않게
그들의 삶에 민폐없이 그들이 잠든시간에 이뤄질 것이며
생활의 공간안에서 진행될 때도
참여자외엔 아무도 모르게 이뤄질 겁니다.
거리곳곳 CCTV에 어느시간만큼 기록되었다가는 사라질 공연.
범죄행위가 아니어서 경비자의 시선조차 끌지 않고
그래도 경비자의 임무로 의심의 눈초리갖고 다가와서 물어보면
그 순간 멈추어 정리하고 사라지는 방식으로.
그리고 다시 자리를 옮겨 넋들이 다가와 슬퍼하지 않게
시간안에 먼지처럼 존재하는 갈망의 평화행동으로.
이 바쁜 세상에서 그래도 의무처럼 시간을 비우고 몸을 움직여서
몇분이 제안에 응답해서 5월빛고을에서의 기다림에 다가와 주길 약속햇습니다
그래서 이 공연은 다행히
지난해 처럼 홀로 순례하며 그리는 공연에 머물지 않고
그들의 시간을 기다려서 그 님들과 각기 만나고 헤어지며
그 각각의 시간을 이어 한편의 공연을 완성합니다.
 
노래불러주는 분 아무도없어서 공연의 형식은
라이브로 노래하고 그 노래를 배경으로 이미지짓는
콘서트 형식의 공연은 되지 못합니다.
커다란 영사막이 있는 극장이나 실내공간을 스스로 내어주는 이가 없어서
영상과 함께 무대를만들어보고 싶었던 실내극도 만들지 못합니다.
모든 사적지가 그 모습을 잃어서
5월의 그 현장을 눈앞에 담아내지 못하고
지워진 시공간에서 위경도를 찾아서 그곳에 서서
우리눈에만 보이는 시간을 찾아 공연합니다.
 
민주와 평화를 그리며
단 한사람의 주권도 찬탈되지 않는세상을 향해 촛불을 들던 시청앞광장과 지역지역.
남일당건물아래 모여 망루속 님들과 함께하던 용산의 얘기와
순리를 역행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사죄하며 이별의 편지를 받아적던 4대강의 얘기와
내성천 마지막 모래강의 얘기. 구럼비와 강정,세월호와 광화문,
그리고 처음 만났던 통일 그리고 오월의 빛.까지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2015년 그 복기공연 두 번째 장에 담아낼
오월의 이름없는 공연입니다.
 
2015년 4월 26일 일요일오후 12:15:57
............
 mail from 김봉호
 
  안녕하세요 선생님 
자료가 늦었네요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BADA는 그동안 공동으로
준비했던 공연을 마치고 
 바로 며칠 아르바이트를 내리하였답니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깐요.
조금씩 생각을 하던중 이번 광주에서는 짧게나마 선생님들과 같이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원하여 정리를 좀하였답니다.
저의 3파트를 즉흥춤으로 하려하는데요 
예기선생님 구상에서 벗어나게되면 한개만 해도 상관없습니다.
저에게는 선생님이 정하신 순례길중 장소을 짧게나마(10분정도) 탐색이 필요할것 같고요.. 
결과적으론 제부분은 그렇게 중요하지않으니 선생님께서 장소들을 설정하시면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페북은 제가 잘사용하지 않으나 사람관계와 비지니스로 사용하곤 합니다.
그래서 나름 제약을 두어 사용하곤합니다. 광주의 경우(BADA와 함께...) 제가 부각되는 것이 부담되어지나 선생님께서 
원하시는것 같아 말을 아낍니다.  선생님의 활동하시는(살아가시는) 방법이 계시듯 
저는 앞에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 하거든요^^ 하지만 저를 위함에서가 아니라면 
필요에따라 언제든 어떻게든 하셔도 무방합니다.

선생님들 건강 잘챙기시고요
부족하거나 필요하신 부분, 조언해주실 것들 언제든 연락 주세요 
서울올라오시면 연락주시고요 식사라도 같이할수있길 바라며...

 
mail to 김봉호
 
 이번 오월 이름없는공연은 평화난장의 개념으로 작업을 준비햇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갖고 다가와 표현하고 행동하는사람들의 작업을모자이크하면서
그것을 바라보고 곁에 동행하는 작업방식으로
[존재하는 평화를향해2]연작을 구성했습니다.
공연은 하루에 이뤄지지않고 처음 찾아주는 9일의 공연부터 마지막에 찾아주시는 27일의 봉호님까지
하나의 주제 각기 다른 마음과 표현을 모으고
그중 하나로 저희의 공연도 부분적으로 같이 이뤄집니다.
따라서 27일 새벽3시에서 8시사이에 BADA의 준비하신 공연이 
모두 그대로 세번에 걸쳐서 세장소를옮기며 완주되길 바랍니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조금 더 넓은 지역으로 세파트를 나누어 공연하고싶지만
새벽에서 아침가지만 주어지는 시간이라
도청앞과 금남로일대에서 준비하신 작품이 이미지와 의미를 조화시킬수있는 곳을찾아
공연되도록 준비하겟습니다.
2시에 롯데리아에서만나
몇가지 순레길을 안내해드리겟습니다.
그중에 선택해서 빛과 이미지에 맞춰 시간을 결정하고 공연을 이어가겠습니다.
사이사이 이 시간 작업에 같이하는 예플러 등 다른 작가들과의 만남도 연결될겁니다.
5월이 시작되면 27일까지 계속 광주에 머무르며 작업해야할것같습니다.
29일 춘천마임축제에서 이 연작의 부분을 다시 공연하고 돌아오는길
서울 광화문에서 하루머물수있을까 꿈꾸고잇습니다..      
2015년 4월 27일 월요일오후 12:45:28
 
 
BADA 음악과 각 파트별 의미입니다, 3개로 나뉘는데요
예기선생님의 순례동선에 따라 각기 적용될 것 같습니다.
 
1. 그 곳
걷는다
이해할수 없는 억압앞에 두려움과 속에 세워진 정의로
수만번 갈등했을 그길을…
머무르다
그들이 애타게 기다렸을 그곳에…
BADA
음원 La Dispute (분쟁) 4:15”
(장소에 따라 춤의 동선이 형성되어짐-
예플러님 혹은 누군가 있다면 겹쳐지는 모습이 있을 듯 합니다)
 
2. 허락치 않았던
5월, 푸르렀을  그 거리들
꽃잎이 떨어지고는 더 이상 푸르름을 허락하지 않고
마치 겨울을 기다리며 떨어지는 낙엽이 되어
그렇게 쌓여버린 상처들…
BADA
음원 la Chute (가을) 5:49”
(장소에 따라 춤의 동선이 형성되어짐-
예플러님 혹은 누군가 있다면 겹쳐지는 모습이 있을 듯 합니다.)

3. 기억한다
19살 처음 만났던 광주의 5월 항쟁의 불꽃
그리고 이제는 이십년을 훌쩍넘어  찾아온 5월의 광주,
자연의 섭리에 부합하듯 시간 만큼이나 변해버린 거리와 사람들
더 이상 걸릴 곳을 잃어버린 검은 깃발과 조용하게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과 함께 그래도 남아있는 누군가의
벗이 되어 기억한다.
BADA
음원 No.6 In D Major Bwv 1012- Allemande (Quasi Adagio) 7:38”
(이동 동선 없이 한 장소에서 이루어짐)
 
 
35주년5월 빛고을에서 가질 이름없는공연이 준비한 평화난장
 
5월17일부터 27일까지 그 항쟁의 기간동안 시간을 같이하며
다시 만나고싶다는 제안에 벗들은 마음처럼 함꼐해주지 못하고
바쁜 일상을 비워 소중한 가슴으로 다가오시는 몇분이 계셔
따로 만남을 이을 연작을 구성했습니다.
5월9일 토요일, 오카모토 마사미님과 함께 35주년오월 빛고을 순례공연을 시작합니다.
...
5.18민주광장 한편에서 만나 80년도청을 다시걷고 상무관 분수대에 머무른후
금남로 그리고 예술의 거리 박효선님의 흔적찾아 민들레소극장에서 모란꽃을 만납니다.
낮1시부터 저녁7시까지..6시간의 순례중 부분부분 같이 만나 같이 걸어주실분.
혹은 낯선 이방인들에게 다가가 오월 그날의 얘기와 오늘의 얘기를 들려주실분.
관객이 없는 이 공연은
공연일 이틀전까지 온라인으로 참가의사 표시해주시면
동행하며 함꼐할 수 있습니다.
4월22일 오후04:09
 
@DEC21064 9일 광주 도착하시는 시간과 떠나야하는 시간 다시한번 문의드립니다..
9일 저녁시간에 스케쥴을 잡아도 되는지 아니면 저녁녘(7시정도)에 헤어져야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민들레소극장에서의 오월공연관람 희망여부도 알려주세요.
@yegieyepler 9일날은 오후 1시에 예술의 길 민들레소극장에서 만납시다.
그리고 저녁 7사까지 가능합니다. 4시에 시작한다고 하는 민들레소극장에서의 공연 관람을 희망합니다.
@DEC21064 네 그럼 9일 1시 민들레소극장앞에서 만나는것으로 일정을 확정하겠습니다
.2시부터 3시까지 순례 및 이야기 공연, 4시에 민들레소극장, 7시에 헤어지는것으로 일정을 잡겠습니다....
 
2015년5월24일 일요일..
이름없는공연의 35주년5월순레공연은 상무 화정에 있는
육군병원과 옛505보안부대 에서의 공연도 준비중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잠겨있어서 늘 들어가지못하고
그 앞에서 공연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
5월17일부터 27일사이만이라도 개방되어
광주에 남은 마지막 원형사적지로의 순례가 가능하게
관계자분들이 신경써주었으면하고 희망해봅니다.
 
보온병,커피잔과 컵 두세트 혹은 세세트. 티스푼.탁자와 의자 혹은 좌식의 테이블.테이블보.차보,
작은 화병,꽃다발모양 송이 몇개.스탠드 조명등.테이블용사진액자.시계..
그리고 스케치북 혹은 노트. 간식을 담을 작은 바구니..
.9일부터 공연할 35주년5월연작 까페언덕위의 바보 를 위해 갖추고싶은 소품들
 
35주년5월 빛고을에서가질 일곱편의 공연일정을 완성하고
그 행동을 같이 할 분들을만나기위한 웹자보와 페북이벤트공지를 완성햇습니다.
어느정도 의상과 소품을 구입하고 공연까지 이룰수있을지 의문이지만
일단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핑계없이 그 책무를 시작합니다.
 
늘 혼자만 준비해서 찾아오던 오월광주.그래도 올해는 세분이 동행을 신청해주셔서
그분들과 같이 할 프로그램을 만들고 홀로할 작업과 같이 일곱날의 공연일정을 준비햇습니다.
늦게라도 한분이라도
더 오월광주에서의 기다림에 답해 줄 분들있기를 기다립니다.
 2015년 5월 4일 월요일오전 10:09:04
 
35주년5월 빛고을에서 가질 이름없는공연이 준비한 전체공연일정.
 
5월9일(토)1시-7시 오카모토님과 함께하는 35주년 오월 빛고을순례
 1시 예술의 거리 민들레소극장앞 오카모토님과의 만남
 2시 까페 언덕위의바보 (편지,노래배우기 전화카드한 장) 상무관
 3시 민주의종 정의행님과의 합류(모란이 다시 피어도)
 4시 민들레소극장(모란꽃)
 5시반 오월의 노래,우리나라와의 스침.
 7시 오카모토님과의 헤어짐
 
5월14일(목) 저녁8시 민주광장 .34주년에 돌이켜 걸어본 빛고을 광주(이름없는공연영상회)
  51834순애언니,34주년빛고을3부작
 
5월17일(일) 35주년5월 빛고을순례-이름없는공연(5월9일-27일)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35주년빛고을의 오월을 함꼐하면서..
  17일 금남로전야제,18일 망월동,19일 5월길순례,27일 부활제....
 
5월20일(수)저녁8시  416400-빛고을에서 함께한 세월호와의 동행들
 
5월21일(목) 저녁8시 34주년에 돌이켜 걸어본 빛고을 광주(이름없는공연영상회)
  51834순애언니,34주년빛고을3부작
 
5월24일(일) 오쿠다님과 함께하는 35주년 오월 빛고을순례 2박3일
 23일12시반 유스퀘어터미널 오쿠다님과의 만남
 23일 답사 및 오월빛고을순례
 24일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
 25일 오쿠다님과의 헤어짐
 
5월27일(수) BADA와 함께하는 35주년 오월 그 새벽-존재하는 평화를향해2
새벽1시 롯데리아 BADA 김봉호님과의 만남.
2시-3시 BADA와 함께 걷는 옛도청 그리고 금남로 순례
3시-5시 민주광장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
7시 BADA와의 헤어짐
 
5월29일9금) 밤10시 춘천에서 평화행동을
춘천마임축제 미친금요일-공지천 의암공원
공연1-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
공연2-사일육사백구일
 
 
이름없는공연의 이번 35주년 오월연작도 다른 작업들과 같이 관객은 원치않으며
작업에 동행할 분들만을 찾아서 그분들과 시간과 공간을공유합니다.
같이하실분들은 페이스북이나 다움까페 이름없는공연을 찾아서
참가의사를표시해주시고 일정을 약속해서 동행하실 수 있습니다.
 
이름없는공연팀작업 후원 및 지원 온라인입금구좌번호
국민은행 438901-01-174296(신영철)
 
2015년 5월 4일 월요일오전 10:29:36
 
 [가난평화행동일기]14만5천원으로 남은일정수정하기.
 2005-02-19 오후 12:08:00
(가난한 평화행동가의 일기..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2를 시작하며
10년전 그 초연의 작업노트 중에서). 
 
  인접도시에서의 또다른 평화행동집회.
함께하고싶은 마음에 동행을 요청하고
그분들과 함꼐할 또하나의 작업을 준비해서
일찍그곳에 도착햇습니다.
그리고 생명과 평화를 위해
차가운 거리에 나온 분들과
평화행동에 함꼐하고 돌아옵니다.
돌아오는길 함꼐갔던 또한분의 평화행동가와
시간을 잊고 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가야할 길과
가고싶은 길...
해야할 것과
하고싶은 것들..
세상앞에 존재하버며
의미에 어긋나지않게 솔선해야할
기억과 행동등에 대해서..
왕복차비2만원 그리고
대중교통이 끝나린 밤을 달려오면서
걷다가 다시 갈아탄 차비 5천원까지
2만5천원을 쓰고
수중엔 14만5천원이 남았습니다.
대추리들녁으로 가고싶어서
그리고그곳에 머물며 지키고싶어서 준비한 예산이
5만원으론 좀 부족할것같아서
6만원으로 다시 책정해서
만원권 1장을
목요평화행동차비라 적어둔 봉투에서
평택2박3일이라 적힌 봉투에 옮겨넣어둡니다.
매산로거리에 몰라보게 웅장히들어선 역.
그 화려한 바닥재위에
세상의 열네살 아이들의 아름다운 희망의 순간들이
담긴 고운영정을 나란히 놓고
영정마다마다에 촛불을 밝히고
목놓아 노래부른 세상의 모든 열네살..
2월18일은
아름다운 일을하는 여러사람들 곁에서
그렇게 살수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그 두 번째 작업.
 
2005년 가난한 평화행동가의 일상을 배경으로
그의 사실적 일상을 토대로 작업을 준비하고 그 준비에 따라 행동하면서
공연을만들어갔던 존재하는평화를 향해.
돌이켜 다시 작업일지를 읽어보면서
10년만에 다시 그의 삶을 소재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미스테리처럼 자본주의 세상을 사는 반경제논리의 행동가의 얘기는
시간을 어떻게 이어왔는지 설명하기어렵습니다.
2015년 또다른 평화행동가의 오늘엔
한발작도 진전되지 못한 인간세상의 평화와
세상 한편에서 스스로 선택해서 이어가는 평화행동가의 드러나보이지 않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그들에겐 오히려 세상은 더 참담해졌고 퇴화햇으며
인간의 욕심과 오만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으로 인해 전개되는 그릇된 세상의 흐름은
끝내 이뤄낼 수 없는 비현실적 꿈을 꾸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단절시켰습니다.
 
끝내 이루어 통일되었던 세상은 다시 분단되었고
꿈꾸는 사람들의 자신을 버리는희생으로 이루어왔던 민주주의는
다시 역행되었습니다.
2005년의 평화행동은 전혀다른 방향으로 전환된 10년을 보내며
더욱 더 절실한 화두와 찬탈에 맞부딪쳣고
한편으로는 용납과 망각 그리고 좌절과 포기로 하나둘 벗을 잃어갔습니다.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그 초연의 연작을 이어가던 가난한 평화행동가의 모습은
10년을 지나 다시 시간만큼 늙은 모습으로 두 번째 얘기를 이어갑니다.
마지막 1,2만원의 잔고를 털어 교통비를 마련하고 끼니를 이어가던 그의 삶이
변절이나 타협 혹은 자본의 귀속을 택하지 않고 이어져
회기처럼 복기하는 형태로 공연작업이 구성됩니다.
 
세세히 일기처럼 적던 그의 메모는 10년지나 펴보는 이 작업에서는 그저
 
9일 공연할 까페 언덕위의바보를 위한 소품들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택배로 mdf박스를 장만하고 소품들도 하나둘 갖추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두사람이 들고 지고 계림동에서 민주광장으로
다시 금남로일대 순례지로 장소를 이동하는 것.
 
예전엔 작업에 함께하는사람들이 많아서 하나씩 나눠들면 아무일도 아니엇던 것들이,
그 반에 반도 안되는 소품도 들고이동하기에 힘겨워진 오늘.
세사람의 이동중 한사람은 가끔 짐을 지키기 위해서 남겨지기도 해야할 듯. .
 
6월통일공연과 이어지는 7월 통일응원까지만이라도 공연이어갔으면하는데
어쩌면 이번 5월로 이름없는공연도 20년간의 공연작업을 정리하게될지도 모를것 같은 전조.
그래도 광주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것 만으로도 ..
 
라는 정도로 적혀있고
제안하고 기다리고 그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10년전 같은 화두로 다가와 함께해주엇던 사람들의 모습을 흔적으로 키우며
다시 갈 수 있는 만큼의 거리,들 수 있는만큼의 짐을 갖고
제약뿐인 길을 나서는 가난한 평화행동가의 일상의 얘기를
10년전 그 방식그대로 이어 구체화합니다.
2015년 5월 5일 화요일오후 12:40:15
 
 
  35주년 5월27일 새벽-BADA
 ..김봉호
 
1. 그 곳
걷는다
이해할수 없는 억압앞에 두려움과 속에 세워진 정의로
수만번 갈등했을 그길을…
머무르다
그들이 애타게 기다렸을 그곳에…
BADA
음원 La (Quasi Adagio) 7:38”
(이동 동선 없이 한 장소에서 이루어짐)Dispute (분쟁) 4:15”
(장소에 따라 춤의 동선이 형성되어짐-
예플러님 혹은 누군가 있다면 겹쳐지는 모습이 있을 듯 합니다)
 
2. 허락치 않았던
5월, 푸르렀을  그 거리들
꽃잎이 떨어지고는 더 이상 푸르름을 허락하지 않고
마치 겨울을 기다리며 떨어지는 낙엽이 되어
그렇게 쌓여버린 상처들…
BADA
음원 la Chute (가을) 5:49”
(장소에 따라 춤의 동선이 형성되어짐-
예플러님 혹은 누군가 있다면 겹쳐지는 모습이 있을 듯 합니다.)

3. 기억한다
19살 처음 만났던 광주의 5월 항쟁의 불꽃
그리고 이제는 이십년을 훌쩍넘어  찾아온 5월의 광주,
자연의 섭리에 부합하듯 시간 만큼이나 변해버린 거리와 사람들
더 이상 걸릴 곳을 잃어버린 검은 깃발과 조용하게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과 함께 그래도 남아있는 누군가의
벗이 되어 기억한다.
BADA
음원 No.6 In D Major Bwv 1012- Allemande
  ...........
존재하는평화를향해 2-35주년 5월빛고을.
그 연작공연의 첫날 정의행님이
지난해 오월어머니집에서 그 분의 시에 곡을 붙여서
김종률님이 다시 기타를 꺼내들고 만들어 불러주셨던 그 노래를
직접 불러주셨습니다.
...
남은 오월의 날에도
연주하시며 노래하시는분들이 다가 오셔서
더 많이 이 노래를 불러보았으면 합니다.
악보를 준비하고 기다립니다.
혹여 이름없는공연자가 되어 오월 빛고을 어느곳에서
노래를 불러주시거나 연주해주실 분은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제안에 답해주십시요.
오월의 노래가 열리는 공간에 참가하는 분도 좋고
그저 오월 빛고을에 계시거나 스치는 분들가운데
노래나 연주하시는 분으로서
이 오월 넋들을 그리며 부르고싶으신 분계시면
만날 수 있길 희망합니다..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행사도 아니고 모임도 아닙니다.
개런티도 없으며 음향기재나 무대도 설치되어있지않습니다.)
 2015년 5월 10일 일요일오후 3:52:41
 
  2005년거리에서 만나고 함께했던 평화행동가들과의 얘기.10년이 지나 다시 이어보는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
10년전그날처럼 평화난장으로 같이하고싶었으나 .제
안에 답해줄 그들이 곁에 없어 홀로 그 작업의 초안을 구성합니다
.2015년5월초연위해..
 
지난10년간 그 초연때와는 달리 쓸쓸하면서도 즐겁게 의무처럼 이어왔던 존재하는평화를 향한 그리움들.
시청앞에서 용산에서 ,강정에서,4대강에서 내성천에서 ,밀양에서 고리월성울진에서
그리고 팽목에서 다시 광주에서.. ,존재하는평화를 향해2를 구성하며
2015년 5월 13일 수요일오후 1:24:10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
2015년5월 초연공연대본-
 
 
00:00 멀리서 달려오는기차소리
 
1 .가난한 평화행동가의 일상. 어느 날
00:20 music in 청계천8가-천지인
노래-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 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서린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 빈 거리여

칠흑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간주)
3:10 music f.o 청게천8가
music f.i 대한민국아-윤민석-b.g
 
2. 노원촛불 ,촛불순례
3:40
지난 한달간 그렇게도 열심히
우리가 꿈꾸던 희망된 세상을 향한
어떤 하나 결과물만이라도 먼저 만들어 보고파서 노력했지만
그 작은 기대마져 무너져 버린 그날 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거리에 모인 촛불.
 
music mix 힘들지요-박준
 
모두들 나만이라도 촛불을 끄지 말아야지 하는 가슴으로
그 자리를 지키려 오신 것이겠지요.
담담하게 그리고도 강건하게
노원거리에서의 모임은
결코 포기하거나 실망하거나
지워질 수 없는 희망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실천합니다.
 
04:20
노래..
우리가 원하는 새 세상은 결코 혼자서는 오지 않는 법.
촛불의 의미 깨달은 자의 핏물 따라 오는 법.
조금은 힘들지라도 조금만 더 갑시다.
해방의 열매 함께 나눌 날 그~리 멀지 않소.
힘들수록 더욱 강렬하게 똘똘뭉쳐 우리 하나된다면
우리 원하는 그런 세상은 어느새 우리 곁에.
조금은 힘들지라도 조금만 더 갑시다.
촛불의 열매 함께 나눌 날 그~리 멀지 않소.
힘들수록 더욱 강렬하게 똘똘뭉쳐 우리 하나된다면
우리 원하는 그런 세상은 어느새 우리 곁에.
 
조금은 힘들지라도 조금만 더 갑시다.
촛불의 열매 함께 나눌 날 그~리 멀지 않소.
b.g
힘들수록 더욱 강렬하게 똘똘뭉쳐 우리 하나된다면
우리 원하는 그런 세상은 어느새 우리 곁에.
 
06:20
촛불미사의 신부님 강론;
이 나라 국민들이 힘되는 이의  
이 나라의 주인이 되기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같이
빼앗겨 버린 주권을 다시 찾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 미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함께하시는 모든 분들께서는
그 어떤 지위도 아닌
하나의 촛불이라는 의미로
이 자리에 모여주셨습니다.
촛불이라는 이름이 더 아름답고 당당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모두 힘모아주시기 바랍니다.
 
music mix 힘들지요......
music mix up 92년장마 종로에서-정태춘
 
노래
07:20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 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09:20
3. 가난한 평화행동가:
 
고운 사람들 곁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하얀새를 접기 시작했습니다.
찬탈로 찟기워진 꿈을다시 일으키고
이기로 가득찬이 세상에서
존재의 의미 그대로의 인간도리를 찾아
함께 사는 세상 만들고져 갈망하는
슬프디 아름다운사람들의 용기와 희망을 전하며
날개를펴고
희망의 약속을 전하고 나누기 위해.
하얀새 그의 비상으로 우리의 희망이 다시 휘날려 피어나게
 
09:55
노래 :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 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훠이, 훠이... 훠이, 훠이...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music f.o 92년장마 종로에서
 
4. 용산 남일당
10:40
music in 망루속당신-해민
 
하늘 가까운 옥상에 망루 지은 건
땅에서 못다피운 꿈이 사무쳐서였나요
하느님께 하소연이라도 하고싶으셨나요
내려다본 무심한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나요
 
시신조차 볼 수 없는 어여뿐 당신
매정한 칼끝에 조각났을 몸뚱아리여
이젠 눈물조차 흘릴 수 없어
핏빛 눈망울로 허공속 당신을 그린다오
 
평생바친 삶이 무참히 도륙당해
당신이 할 수 있었던 고작 망루짓는 일이
그렇게도 바쁜 일이었나요 몸쓸짓이었나요
왜 죽여 왜 이젠 볼 수도 없게 왜 죽여 버려
13:30
 
5. 강정 구럼비
13:40
파도소리
Matthew Hoey 매튜호이:
14:50
양윤모:
 
이 바위가 하나하나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내가 안으면
이렇게 안쟎아요.. 바위가 .
인간과 바위가 스킨쉽을 해요.
부드러워요.
내 님을 껴안 듯이 따뜻합니다.
이 바위가 상처를 입으면
내가 상처를 입는거고
이 바위가 깨지면 내가 깨지는거고.
이 바위가 쓰러져 없어지면 나도 죽어요.
no. 반대.파괴적이면 안돼.
아름다운 환경.지켜야 돼.
나 몸을 던져서 막아내겠다.
그게 제 신념입니다.
무엇이 소중한 가치이고
깨달았을 때, 너는 뭐 할 것이냐.
네 인생의 최종적으로 네가 진리를 깨달아서
무엇을 할것이냐
이 아름다움을지키기 위해서
저를 던지고 싶다는생각입니다.
 
15:50
music mix in 구럼비에게 듣는얘기
가난한 평화 행동가:
 
이 별의 한 편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지금 이시기 사람들이 만들고 행하고 있는 욕망을 탓하며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멈추게 하거나
가로막을 노력을하고 있습니다
 
덧없이 흘러가는 인간의 시간곁에서
그래도 그들을 낳아주고 키워준 삶의 본향안에서
자연의 자세로 살아가고픈 사람들의 의지가
욕정에 목마른 우매함의 권력앞에 미약하게도 보이지만
그래도 이 별의 한편에 그들이 있어서
끝내 아름다운 인간의 세상.
 
현무암 아래로 놓여진 숨길로 스며들어 30년을 흐르며 생성되는 물.
중덕바다 구럼비에게 듣는 용출수의 여행얘기는
160만년의 사랑이루기 속에 담겨진 아름다운 눈물입니다.
 
자신의 뼈를 녹이고 식히는 긴 아픔을 통해 공존의 터전을 만들어준 맨틀의 마음처럼
여기 또 그렇게 인간은  감히 생각도 못할 또 하나의 사랑으로 만들어 쥐어준 곳.
 
순리 속에서 공유하고 공존하며 더불어 사는 종이고 싶어하는 우리들,
파괴하지 않고 빼앗거나 그어는 생명 무생명의 숨결도 막지 않으며
그대로 가꾸며 살고 싶어서
구럼비의 살결에 다가앉아 말없이 말 걸어보는 시간.
그리고 그에 응답해주는 소리나지 않는 말, 구럼비에게 듣는 얘기.
17:50 music out 구럼비에게 듣던얘기
 
6. 4대강 그리고 내성천
17:50
music in 작은 자유-오지은
노래:
 
너와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쓸데없는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네
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아름다운 것들을 같이 볼 수 있다면 좋겠네
작은 자유가 너의 손안에 있기를
작은 자유가 너와 나의 손안에 있기를..

너의 미소를 오늘도 볼 수가 있다면.
내일도 모레도 계속 볼 수 있다면 좋겠네
 
니가 꿈을 계속 꾼다면 좋겠네.
황당한 꿈이라고 해도 꿀 수 있다면 좋겠네.
너와 나는 얼굴은 모른다 하여도,
그래도 같이 달콤한 꿈을 꾼다면 좋겠네

지구라는 반짝이는 작은 별에서
아무도 죽임을 당하지 않길
 
20:40 music b.g
가난한 평화 행동가:
 
강은 지금 어떠한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요?
이 푸른 별 .자공전을 따르며 굽이쳐 깊고 얕게 채우고 비우며
뭍생명들의 터를 지어주며 흐르던 강이
지금 육십개 하늘을 바라보며
이 밤 드리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바위에서 모래로 ,
다시 조약돌과 바위로 자신을 생성하며
강을 정화시키고
뭍생명들의 집과 고향을 만들어 주던
모래와 조약돌들의기도는 또 어떤 내용일까요
그리고 그들의 아린 사랑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이 푸른별 강가에서
늪과 숲. 들과 언덕을 이루며 살아가던 많은 들꽃과
그곳을 고향지어 살아온 고운 생명들의 기도는
또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의 기도속에서
이 모든 기도의 반대편에 선 인간
그 인간종의 마지막 변종인 우리들이
이 강변에서 드릴수 있는 기도와
그 가능만큼 전부의 존재방식은...
 
22:00 music on 작은자유
23:00 music f.o 작은자유.
 
23:10
7.핵발전소 밀양 송전탐.
 
할머니:
사람도 수명이 다 되면 죽듯이
기계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볼 때 .
이 칠십 팔십먹은 할머니들이 볼 때.
그 수명이 다 된 기계를 갖다가
폐쇄시켜야 되는데
계속 비품 헌 것을 넣어 가지고
그 위험란 것을 헌 것를 넣어가지고.
그 뭐꼬 돌리고 있는..있기 때문에
정말로 저기 폐쇄가 돼야 된다.
그래서 우리가 거기 간다.
지금 원전은 다시 더 하면 안된다.
 
23:40
밀양 신부님:
전기로 아무리 뜨뜻하게 해 봐야
사람의 체온만큼 우리를 따뜻하게 하고 감동을주고
지치지 않고  계속 달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할머니들 손을놓지 않고
그 끝에서 여러분들 같이 뵐수 있다면
아마 이 싸움이 끝난 뒤에도
이 어르신들이 희망을가지고
꼭 밀양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지역을 위해서도 그 힘을
충분히 나눌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그 마지막 자리에까지 함께해 주시기를
다시한번 부탁드리면서
오늘 여러분 문화제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4:30
 
24:30 music 마더데레사
8. 평화행동가의 일상
 
평화 행동가는 가난을 선택하고
그 가난의눈으로 세상에 다가갑니다.
그리하여 온갖 반대편에 서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평화의 방식으로 저항하며
가난곁에 공존하며 위로 합니다.
 
가난은 유물론적 의미에서만 아니라
물질을 제외한 인간심성과 정신세계에서도 선택되어야 할
공존을 향한 자기낮춤의 언어로
이 작업안에서 사용됩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져서 욕심없이 바라보고
그 시선으로 사랑을 행함.
존재하는 평화를 향한 욕심없는 사람들의 생존은
그렇게 존재하도록 노력합니다.
'
25:30
9.416 세월호
 
정봉주 전국구:
 
아 희망이 보이기 보다는 점점 더 절망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피우지도 못하고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오는 우리 아이들.
이제 불과 열일곱 살입니다.
고등학교2학년
제아들과 동갑인 ..사랑스런 우리의 아들딸들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 나라가 원망스럽습니다.
이 꽃같은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이 당의 어른들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모두 살인의 공범들입니다.
이런 나라에 세금 꼬박꼬박내고 이나라를 사랑하고
목숨걸어 지키려고 했는지 스스로 묻고  또 묻습니다.
언제까지 힘없고 착한 사람만 피해를 보고
법 잘지키고 말 잘듣는 사람들만 죽음으로 내몰리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하는지 묻고 또 묻습니다.
아닙니다 이제 더 이상 이래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떠나면서 남긴 메세지는
이제 이런부담한 행진을 그만 끝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비록 힘은 없지만
말 잘 듣고 착한 사람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살 수 있어야 그게 나라입니다
그런나라 만들겟습니다
 
이젠두려워 눈치보면서 대충 노력하는 척 하지않겠습니다
진정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걸어야할 때 목숨을 걸어서라도 만들겠습니다
music s.i
그게 아무일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하게 죄인된 사람들이
해야할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 예쁜 사랑스런 아들딸들 가슴에 묻고
평생 고통으로 살아갈 부모님들
함께 손잡고  함께 살아가고
함꼐 책임지는그런 나라 이제 만들어보겟습니다.
27:30
 
27:30 music 산에 들에 봄이 오고 -박양희
 
노래:
산에 들에 봄이 오고
누가와서 물었네
지나가는 말로
그는 지금어디에 잇느냐고
나는 대답했네
그는거기에 잇다고
나는 대답햇네 거기에 있다고
 
산에 들에 봄이오고
누가 와서 물엇네 거기가 어디냐고
나는대답햇네 팽목앞바다
거기 가르치며 난 대답햇네
침몰한 세월 실종된 사람들
 
저 바다에 봄이 또 오고
누가 와서 물었네 그는 어디에 있냐고
그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느냐고
나는 대답햇네
맹골수도를 가르키며
그는 지금도 저기에 저기에 잇다고
나는 대답햇네 맹골수로를 가르치며
귿는 아직도 저기게 저기에 잇다고
 
산에 들에 봄이 오고
산에들에 여름이 가고
산에 들에 저 바다에
가을겨울가고
산에들에 저 바다에
봄이 봄이 또 오고
저 바다 에 봄이 봄이 또 오고
32:00
10.에필로그
32:00 음악-상상한다-임정득
36:00
멀리 떠나가는 기차소리.
 
2015년 5월 14일 목요일오전 1:57:08
 
 
 
이름없는공연의 평화난장[존재하는 평화를향해2-성남저항예술제]
22일은 넋전춤님,현애란님과 함께합니다.그리고 현장에서 만나고 스칠 열린 작가들과 함꼐
2015년 8월 18일 화요일 오전 11:45:43
 
이름없는공연 저항예술제참가작 [존재하는 평화를향해2]공연대본입니다.
저항예술제에 함께하시는 작가분들이나 이날 성남에 오실수 있는 분들가운데
생명 평화인권 촛불행동등에 참가하셨던 분들과 함께 만들 행동입니다.
작업은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들이 스스로 동참하셔서
이 대본을 배경으로 각기의 작업을 모자이크하는 평화난장방식으로 공연을 구성됩니다.
현장에서 만나 함께 해주실분들은 링크타고오셔서 이 대본에 덧글로 연락주셔서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으로 함께 행동할 부분을 말씀해주셨으면합니다.
촛불,용산,강정,탈핵 ,밀양 청도,세월호등의 아픔을 현장과 자신이 있는곳에서 같이했던 분들이
많이 오셔서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8월 18일 화요일 오후 04:19:11
 
 
평화를 그리는 이름없는 영화관 .계림동 화요촛불 그 여섯번째날인 8월25일은
5월광주와 춘천마임축제 에서 초연하고
8월22-23일 성남 저항에술제에서 공연하면서
이름없는공연이 2015년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의 1차 스토리영상을 상영합니다.
그리고 29일 세월호 500일을 준비하며
이름없는공연이 함께한 세월호 그리고 4.16 에피소드를 상영합니다.
이 영상은 지난5월3작가사진전에서 상영을위해 준비하고 상영한 영상이기도 합니다.
이번주 부터는 더이상 초대글 올리지않고
화요정기상영회에 관심가지신 분이 계시면
찾아와 함께 촛불켜줄 것이라 기다리며
평화를 향한 스스로의 행동으로 이어갈 촛불 그리며 준비합니다.
아직까지 한번도 두개이상의 촛불이 밝혀지지못한 화요촛불 이지만
언젠가 누군가 다가와 매주 그리움으로 함께해 줄 사람이
있을수도 있지않을까 그리면서 진행하는
빛고을 계림동에서의 또하나 마을 촛불입니다..
2015년 8월 25일 화요일 오후 05:07:12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