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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4U 게시판 방명록 백업 시스템 Ver 1.0
백업일 : 2005-08-10 오후 7: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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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1
제 목
: 작업에 들어가며..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3 오후 6:18:26
내 용 : 누구나 한번쯤은 얘기하는 평화..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였노라고 내세우는 평화행동.
하지만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한 것은 무엇이며
평화는 그렇게 구호만으로 이뤄지는가?
세상을 살면서
평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속에서
실재로 존재하는 평화에
대한 기림과
그것을 향한 끝없는 실천적 행동을 바라봅니다.
평화행동은
사람이 할수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지만
전쟁의 개념을 평화라 말하는이도
있고
미움을 갖고 상대에게 평화를 강요하는
인간의 역사도 변함없습니다.
- 평화를 위하여 혹은 평화를 위해라는 말의 부질없음
그 부질없음을 평화를 향하는 발걸음과
실천적 행동가의 모습으로
그려봅니다.
그리고 평화란 말이 갖고있는 실체를
이 땅위에 실제적인
존재로 구체화시키기위해서
실존의 그것으로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고 그리고 싶어서
이 작업을 학습으로 구체화시킵니다.
이작업의
동행자들과 마주침자들이
진정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서만
인식하고
생존하며 행동하길 바랍니다.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2
제 목 : 첫 메세지 ..시인의 딜레머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3 오후 6:22:29
내 용 : 이 공연엔 매번 메세지가 낭독됩니다.
그 첫메세지는 t.s,엘리어트의
얘길 논술한
한 영문학 박사학위논문(신성철)의 일부입니다.
.................................................
여기서 시인의 딜레마는 시작된다.
시인은 추악한 현실 속에서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포착해내고,
권태롭고 짜증나는 현실 속에서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고통받으며 사는 인간 실존들을 향하여 자신이 깨달을 바를 그들의
말로
변환하여 그들로 하여금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해야 하는 것이다.
전통이나 동의가 이미 어려워진, 그런 것들을 가정할 수 없는 시대 속에서,
혹은 통일이나 질서가 명확한 형태로 존재할 수 없는 시대에 있어서
시인이 이와 같은 일을 하기에는 지난하다.
엘리엇의 살았던 시대는 니체가
선언한 것처럼 이미 신은 죽었고,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었다.
더 이상 이전의 신념이나 절대적 기준과 같은 잣대는 없고,
모든 것이 상대화되었다.
통일과 질서있던 시대의 사고와 행동유형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논리는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들었고,
자기
실리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인간을 탄생시켰다.
- 이런 산업화 사회 속에서 인간 영혼은 온갖 종류의 고립을
맛본다.
그는 전통과도, 하나님과도 분리된 채 폭도가 될 수 밖에 없다.
더 이상 전통이나 신앙의 의미가 없었다.
1차 세계 대전의 엄청난
충격은 20세기의 이런 사상적 흐름을 과속화시켰다.
유럽 문화의 대한 환상과
이상은 와해되었고 문명의 기저는 파괴되었으며
종말론적 사상이 팽배했다.
한마디로 20세기 초는 영적 고독감과 방향상실감,
자아 해방감과 이방인이라는
복잡한 의식이 팽배해 있었고,
정서적, 영적 진공 상태가 서구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엘리엇의 문제는 이 진공 상태를 향하여 말을 건네야 하는 것이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의미가 없는 진공 속에서 의미를 찾는 고독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현대의 환멸이나 권태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거기서
신앙이나
희망의 강력함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결여와 조우해야만 했다.
그것은 마치 스올의 뱃속과 같은 무의미의 심연을 뛰어넘는 것이고,
온갖 분리된 것들에 새로운 통일성과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이였다.
엘리엇은
이런 현실에 대해서 대단히 명확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의미의
진공 상태를 향하여 말을 걸 준비를 한다.
그것은 브래들리의 말을 빌리자면,
"외견"에서 시작한다.
그 자신의 공간적 현실 인식과 시간적
시대 인식에서 시작한 것이다.
인식한다는 것은 극복하는 것이다.
- 구원은 시간의 인식, 즉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되고,
그것을 통해서 극복의 길을 찾는 것으로 완결된다.
엘리엇에게 있어서
시간은 악에서 악으로 이어지는 통로이다.
그런 시간의 인식, 즉 현실 인식은
두 가지의 태도 중에 하나를 택하게
되는데, 그것은 악과 더불어 공생하거나,
아니면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다.
엘리엇은 이런 두 가지 태도 중에서 후자를
택하게 되는데,
이런 그의 선택이 종교적 자아, 혹은 시적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시적 자아는 브래들리의 경우에서 처럼 표면 밑에 있는 진정한
실체의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의 등가물을 탐구하게 된다.
이런 탐구는
단테적으로 이야기하면 원죄로 인한
현대의 고독의 진공 상태를 향해 내려가는
하향 운동이며,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스스로를 부정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태도로 탐구하는 회의적 정신, 혹은 부정적 정신의 발로이다.
이것은 결국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그 시간의 심연인
인간 실존의
비참한 현실로 내려가서 그것을 인식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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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 호 : 3
제 목 : 첫번째노래...천지인의 청계천8가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3 오후 6:27:52
내 용 : 첫번째 노래..천지인의 청계천8가
평화행동가와 평화활동가 그리고
전장을 거닐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모습에...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 서린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
어느 맹인부부 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흑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 워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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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4
제 목 : 삶에대한 감사...두번째 노래.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3 오후 8:30:27
내 용 :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의 마지막노래는
삶에 대한 감사로
그
안에 평화를 향한 행동들을 모으고
그 슬프디 슬픈 기쁨을 담으려합니다.
- ...............................
- Gracias a la Vida.
-
-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 dos
luceros que cuando los abro
perfecto distingo lo negro del blanco
y en alto cielo su fondo estellado
y en las multitudes al hombre que
yo amo
-
-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cielo que en todo su ancho
graba noche y dia grillos y canarios
martillos, turbinas, ladridos, chubascos
y la voz tan tierne de mi bien
amado
-
-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sonido y el abecedario
con l las palabras que pienso y declaro
madre amigo hermano y luz alumbrando
la vita del alma del que estoy
amando
-
-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marcha de mis pis cansados
con ellos auduve ciudades y charcos,
playa y desertos, montanas y llanos
y la casatuya, tu calle y tu patio
-
-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 el corazon
que agita su mano
quando miro el fruto del cerebro umano
quando
miro el bueno tan lejos del malo
quando miro el fondo de tus ojos claros
-
-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risa y me ha dado el llanto
asi yo distingo dicha de quebranto
los dos materiales que forman mi canto
y el canto de todos que es mi
proprio cant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
- 삶에 감사드립니다.
-
- 내가 두 눈을 떴을 때 흰 것과 검은 것,
높은 하늘의
많은 별,
그리고 많은 사람 중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을
또렷하게 구별
할 수 있는 빛나는 두 눈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 귀뚜라미와 까나리오 소리, 망치소리, 터빈소리, 개짖는
소리, 소나기소리
그리고 내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목소리
이런
소리들을 밤낮으로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귀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 어머니, 친구, 형제
그리고 내 사랑하는 영혼의 길을
비춰주는 빛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는 단어의 소리와 문자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 도시와 웅덩이, 해변과 사막, 산과 평원
그리고 너의
집과 너의 길, 너의 정원을 걸었던
그 피곤한 나의 다리로 행진을 하게한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 인간의 지식에서 나온 열매를 볼 때
惡에서 아주 멀리있는
善을 볼 때
너의 맑은 두 눈의 깊이를 볼 때
그것을 알고 떨리는 심장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 행운과 불행을 구별할 수 있게 한
웃음과 눈물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드립니다.
웃음과 눈물로 나의 노래는 만들어졌고
모든
이들의 노래는 모두 같은 노래이고
모든 이들의 노래는 바로 나의 노래입니다.
- <img src="http://letra2.s5.com/violeta1210.gif">
- * 작곡, 작사 노래 : Violeta Parra,
노래 : Mercedes
S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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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5
제 목 : 나무연작을 통해서 준비해온
평화행동가의 이미지.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3 오후 9:47:01
내 용 : 나무5에서 그리고 다시 6에서 등장하는
인물
평화운동가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 그리고 그의 이미지는
이름없는 공연팀의 공연을 통해서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노력을 접근해오던
인물들의 얘기를 구체화하여
일상화시키면서
실존에서 만날수있엇던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미지를
경하와 존경의 뜻으로
조금씩 색인하여 담아나가기로햇습니다.
- 더 낮은곳 더 가난한곳
함께살아가야할 우주를 생각하면서
평화행동을 시작한 그의 절실함은
조금식 구체화되면서
하나의 인물로
구성시키려 노력하엿습니다.
- 이제 그 본편인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에서
평화행동가
혹은 평화활동가로 이름지어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일상을 통해서
존재와
향함의 미학을
집중합니다.
-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6
제 목 : (자료)Violeta Para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3 오후 11:10:29
내 용 : Violeta Para
- 라틴 아메리카 누에바 깐시온 운동의 제1세대이자 어머니로
추앙받는 칠레 민중가수이며
칠레의 유명한 시인 니카노르 빠라의 동생인
Violeta Para는 민중의 마음과 생활을 노래하려는
취지로 당시 주류인 유행곡의
원점을 전통에서 발견하기 위해 1950년대 중반부터 칠레 민요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민요를 발굴해 노래하거나 자작곡으로 민중의 괴로움과
민족의 자각을 호소하였고, 칠레 폴크로레의 선구자로서 인근 페루나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의
토속적 리듬과 다른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굳혔다.
- 이것은 후배 음악인들에게 하나의 전형으로서 모범적 선례가
되었고, 더 나아가
그녀 사후 칠레의 누에바 깐시온이 라틴 아메리카 노래와
문화운동으로 확산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즉, 이 운동은 이사벨 파라(Isabel
Parra)일가와 빅토르 하라(Victor Jara)가 그 흐름을 이었으며
그후 낄라빠윤(Quilapayun),
인띠 이이마니(Inti Illimani ), 야뿌(Illapu) 등에 계승되었고
칠레뿐만
아니라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전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녀는 1965년 무렵부터 정신불안증에 걸리게 되고 자살미수 끝에 자신이세운
민속박물관 천막안에서 1967년 2월5일 피스톨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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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 호 : 7
제 목 : 평화를 구하는 이의 마음가짐.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5 오후 8:45:42
내 용 :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자기이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것이라고
비난 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 당신이 여러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루밤에 무너질지 모른다.
그래도 만들라.
-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라.
- 마더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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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8
제 목 : 평화행동가의 마음으로
작성자 : 솔문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5 오후 10:11:31
내 용 : 끊없는 지향 그것이 평화행동가의 마음일 것입니다
- 이번 평화행동에선 적의탱크앞에서
빈몸으로 한삼을
들고 평화의 춤을 추는이의 마음을 담아보려 합니다
적의무력앞에서 평화의춤을,
절망을 넘어선 이의 회기의 선을 허공에 그으며
한삼을 너울너울 날립니다
- 순간이나마 내가갖는 이기심을 버리고
실재하는 평화행동가
그들의 아름다움에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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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 호 : 9
제 목 : 그림그리는이의 모습
작성자
: 4막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6 오전 12:58:44
내 용 :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 이번 작업에 제목이 아주 희망적으로 느껴져
평화가
바로 앞에 있는것과같이 다가옵니다.
그림그리는이의 모습을
세번째
준비하는 시간 속에서
'앗살람알라이쿰'에서 그 정리되지 못했던 모습을
더 깊게
평화의마음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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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 호 : 10
제 목 : 길바닥 평화행동가들의 목요정기
거리행동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6
오전 10:10:29
내 용 : 27일 목요길바닥평화행동에서 공연할
예기의
[존재하는평화를 향해]초연을 위한 구성에
동참할 분들과의 연습미팅이
26일 4시 원당롯데리아에서 있습니다.
27일 광화문교보문고옆거리공연에
동행할 피스몹 참가희망자분들은
26일 이 미팅에 참가해주시거나
26일 오전까지 함께하시겠다는 글을 예기홈피게시판에
올려주시고(www.yegie.com)
27일 5시 교보문고앞 버거킹3층에서
예기와 만나
자신이 함께할
부분을 상의 한후 공연에
동참해보시길 바랍니다.
예기의 신작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는
평화행동가들의 피스몹으로 구성된
신작으로서
많은분들이 동행하면서 하나의 몹을 구성할수있게
준비한 작업입니다.
-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11
제 목 : 평화행동사진찍기놀이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6 오전 10:11:07
내 용 : 평화행동 사진찍기놀이를 피스몹방식으로 이날 공연후반부에 담으려합니다.
피스몹사진찍기놀이의 써주실 종이와 평화를 향한 문구들 그리고 삽화등을
많이 준비해서 참가해주세요.
- 지난 평화행동중 찍은 사진들이나 쓴 종이들도 피켓으로
만들어서 갖고나와주셔도 좋겟습니다.
-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12
제 목 : 초연의 음향구성...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6 오후 11:52:05
내 용 : 아직 이 작품안에 얘기하고픈 내용을
음성으로 담고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초연에선 음악만으로
존재하는 평화르 향한 사람들의
정신적
실천의 진전을 진행시켜나가고자합니다.
- 음향공연시간은 19분07초
첫번째곡은 청계천 8가를 두번
반복하며
그 사이에 1분간의 소리없는 침묵의 공간을 둡니다.
이시간
우리는 그때그때 그날의 독서(?)를 통해서
두개의 노래를 이어갈 것입니다.
1장은 그렇게 11분 22초입니다.
- 두번째 곡은
de usuahia a la qulace 입니다.
시간은
1분 33초.
평화행동가의 세상과 역사에 대한 학습과
그 영향을 가늠케해주고자
이 음악을 사용합니다.
그리하여 먼저 고민하고 실천해간 사람의
이야기속에서
그가 겪었던 그리움을
용기로 채취하는 우리를 표현하는것으로
2장을
잡습니다.
- 3장 세번째곡은 조금 성스러웁고 승화된 분위기로
평화의
존재함에 대한 경건함을 찾아가는 이미지입니다.
2장의 혁명적모습은 하나의
곱고 쏜살같은 과정이며
깨달음으로 인해서 그의 덕먕은 평화에 접근합니다.
마더데레서의 테마음을 통해서 햇살을 접합니다.
1분21초이지만
언젠가는
이부분은 아주 길게 확장될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안에 정녕존재할수있을때
이 3장의 이미지는 몇배고 확장될 것입니다.
- 4장은 공동체적 실천을 통한 동행의 자리입니다.
하나의
축제로 이어져도 좋고
스라린 가슴앓이속에서도
찾아낸 감사와 축복의
모습들을 찾아가면서
하나가 아닌 우리로서의 공간을 확보해내고픈
기대로 배치됩니다.
glacias a la vida.
생에 대한 감사를
mercedes
sosa 의 음성과 리듬이 아닌
곡을 만들고쓴 violeta parra의 그 음성과 리듬으로
선택했습니다.
그의 자살이 결코 고독하지않게..
4장은 3분 50초.
초연을거쳐서 우리의 평화성숙에 따라서
1장을 줄이고 3장을 조금씩 늘이면서
성숙한 작업으로
변모되어갔으면 좋겟습니다.
- 예기 드림
yegie dream
- 예기 드림
yegie dream
-
번 호 : 13
제 목 : 존재한다는 것과 존재시킨다는것.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7 오후 1:57:40
내 용 : 평화에 대해 작업하다가
실존하는가하는 문제에 다다렀습니다.
.
그리고 어떠한 것을 우리가 얘기할때
과연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가
아니면
말분인 허상이거나 내실이 빠진 빈껍데기의 허울임에도
불구하고
진실인양 소비되고있지는 않은가
고민했습니다.
- 그리고 그렇다면
진정 찾아가야할 곳은
실존하는
즉 존재하는 것을 향한 구체적인 움직임.
실체가 반드시 있는 것으로서의
그것의 중요성.
그리고 그렇지못하다면 부질없음.
- 행동하는 사람들곁에서 행동의 진행성과 성장성을
생각했습니다.
[존재하는 평화를향해]는 결국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갈증이며 답변의 길찾기입니다.
- 우선 네개의 장으로 그 진화의 방향을 찾앗습니다.
편의상의
구분입니다.
그리고 그 4단계의 진화안에서
열정과 맹목에서 구원과
온유까지로 다가갈
평화행동가의 삶의 존재방식을
노출시킵니다.
그리고 그 먼저간 가상을 통해서
배우려합니다.
- 존재한다는것은 하나의 이기적인 것일수도 잇습니다.
평화는 내 안에 있고 머무르는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저들 사이에 다가가
머무르는 것에 대한 용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존재한다는것은
평화의 경우에는
존재시킨다는 처절한 노력이 병행되어야만
합니다.
- 이 작업은 그 허무한 길을 찾는
부질없이 고귀한 작업이
될것입니다.
- 예기 드림
yegie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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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14
제 목 : 배경이미지로서의 평화행동들..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7 오후 2:20:49
내 용 : 존재하는 평화행동들을 찾아가는 길목에
놓여지는 배경으로서의
평화행동가들의 모습들
그리고 그현장들.
이 작업은 그 배경이미지작업을
공연안에
담을수있는만큼 최대한 담아가려 노력하며
구성에 있어서도
자발적인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실존그대로 스쳐담으려 노력하고
그리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제3의 객관자들에게
평화의 실존과 현존을
인식하게끔 도우려합니다.
- 초연에선 길바닥평화행동팀의
모습모습들이 그 실존그대로
공연에 배치됩니다.
그리고 이 작업을 위해 준비하고자한 사람들에게
그가 할수있는 각기의 평화행동을 지어주엇습니다.
그들의 작업은 극일수도
있으나
극이 아니길 바라며
실존에서 행동하지못하는 수줍음을
극이라는 핑게로
굼처럼 일시적이나마
같은 시공안에서 존재케 도와주려합니다.
- 극은 한사람의 4단계를 거치는 과정을 통한
성숙과 궁원을
메인으로 배치하고
그 배경과 곁과 그를 감싸고 그가 들어가는 공간안에
함꼐하는 평화의 실존을 그립니다.
- 조급함없이 한걸음 한걸음
성숙하게 익어가길 바라며
노력할것입니다.
함께 그리고 스치듯 그리웁게..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15
제 목 : 시작..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8 오후 2:37:01
내 용 :
평화의 진정한 실존을 향해 노력하는사람들의 길을 따라가 보기로했습니다.
1월27일 광화문 교보문고옆에서
다섯번째 길바닥평화행동의 모임속에서
김진수 김미경 한창호 세사람과 미리 준비하고
또 길바닥 평화행동분들 모두를
공연안에 담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그 초연을 가졋습니다.
이제 그 이미지속에 발견한 그리움을 화두로
그 작업을 다져가려합니다.
-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16
제 목 : 실천없는 지성을 넘어[시인의
딜레머-평화행동가]
작성자 : 솔문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8 오후 9:05:57
내 용 : 시인은 이라상안에 갇혀 말의 미학을
쫓는 자신의 작업이
일회용품의 포장지처럼 소모적이고 껍데기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말의 위선,
사랑이라 말하고 사랑이 없는 공허함
그래서,
그는 거리로 나선다
스치는수많은 삶의 사연들
그내들의 겁먹고 도망가듯
분주한 삶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것은 흉칙한 과물과 닮아있다
건물
창에 스며 비치는 자신의 모습또한 그 괴물이다
아니 더욱 흉칙하기에 그는
두려웠다
'껍데기를 벗고' 그는 나아간다
죽음으로, 죽음을 너머 저
세계로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그는 나아간다
- -솔문
번 호 : 17
제 목 : 평화의 종이배를 띄우며
작성자 : 솔문
E-mail :
U R L :
시 간 : 2005-01-28 오후 9:09:10
내 용 : 황무지, 그 거센 모래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고이접은 종이배에
평화를 새겨넣고
그 사막안으로 띄어보낸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평화의
메세지가 담긴 종이배는
미군 막사안으로
자이툰 부대 안으로
흘러흘러 갈 것이다
어느 병사의 발 밑에 멈춰선
그에게 평화를 노래할
것이다
- -솔문
번 호 : 18
제 목 : 소품도착..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03 오후 12:51:52
내 용 :
존재하는 평화를향해서 가는 길은
우선 가난해지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선 가난을 채택하고 그 방식안에서
그가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연습하기 시작햇습니다.
노래[청계천8가]는 가난한 이들을 향한
고귀한 그리움이며
그들과의 공존 즉
평화를 찾아가는 길의 이정표같습니다.
- 작업을 시작하고 공연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동안
가난한
평화행동가의 쪽방에 놓일 소품들이
도착합니다.
우편함으로 혹은 이메일로
우체부의 노크와 등기도장찍기로..
-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특별송달로 전해진
사건번호
2004카단 125114 부동산 가압류 서류도
가난한 평화행동가의 모습을 구체화시켜주는
좋은 소품입니다.
그리고 도시까스 주민세 등등의 연체독촉장도.
- 예기 드림
yegie dream
-
- 번 호 : 19
제 목 : 두번째 공연 배경인물-발견과 갈등과
초연의 인물 셋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03 오후 1:15:29
내 용 : 작업안에 세사람이 동행하여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가는 이의 성장곁에서
각기의 현존을 구성합니다.
- 첫번째사람은 거리에서 우연히 접하는
아름다운사람들의
생존방식에 대한 동경의 발견입니다.
그는 그 접촉을 통해서
자신안에
숨겨져있던 사랑의 실존방식을 찾아낼수
있습니다.
현대무용을 하는
이 가다가와서 그 단계의
평화를 거리를걷는 사람들속에서 드러냅니다.
그에게 부딪치는 모든것은
이제 새롭고
이제 존재의 방식의 변환이며
길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공유와 공존의 길안에 있습니다.
두번째인물은 갈등을 표현하지만
갈등보다는갈등에 도착하여
그갈등으로
인해 찾아낸 구체화된 자각의 실천선상에
다가섭니다.
지식과 인격과
이성이
순수한 감정보다 이로운 것으로 사용될수있는
인간의 길을찾아내고
그것을 행동으로 변환시키는이의 모습이며
그 시기 평화행동가의 이미지를
두번째 인물이 그려줍니다.
그가 다가가는 현장에는 아픔을 넉넉히 지울
수 있는
바른 존재의 길이 열릴겁니다.
- 세번째 인물은
두번째인물의 바로 다음단계입니다.
구원을 향한 이유로 갈등을 지워버린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림을 그리는이가
이 세번째 사람의 모습을
얘기해줍니다.
- 세사람은 두번째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에서
그렇게
제각기 다다른 지점에서의 모습으로
한 평화행동가의 일생의 배경에서
마주치고 존재합니다.
- 발견과 혁명과 구원의 길을 거쳐서 하나의
나무같은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평화행동가의 즐겨택한 가난한 삶 속에서
그들은
스치거나 발견되거나
거리에서 만난 동행자로 함께 조각됩니다.
-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그 두번째 공연에선
세사람과
주인공이 함꼐합니다.
그리고
첫번째 사람은 마지막 마당에서
그가 찾아낸 평화를향한 존재방식을
무용으로 푱현합니다.
두번째사람은 서재에서 일어나서
거리를 걸어갑니다.
전장에서 아이를만나고
평화의 글을 적은 종이배를 접어
전장에 강가에 띄웁니다.
세번째사람은
전장과 평화를잏어버린 사람들이 사는곳을 찾아가서
그 지워진
평화를 복구해주는 그림을 그립니다.
사람들의 모습안에 존재하던 평화를
기억케해주고
그 그림을 함꼐 그림으로서
공존의 아름다운 의무를 기억케해주는
화가의
모습으로 유랑합니다.
-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20
제 목 : 촛불의 외침-세상의 모든 열네
살...(별음자리표노래)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04 오후 11:23:15
내 용 : 촛불의 외침
= 세상의
모든 열네 살 =
- 저 어둠 속에서 수만의 작은 빛이 숨죽인 떨림으로
가녀린 떨림으로
저 침묵 속에서 수만의 아우성이 분노의 떨림으로
흐느껴 떨림으로
- 열네 살이여 아직 피지 않은 꿈이여 미처 오지 않은
세상이여
열네 살이여 죽어 하늘 별 되기엔, 살아 촛불 들고 눈물짓기엔
너무 이른
여린 꽃망울 밟은 야만의 무리 앞에 작은 촛불 밝혀 광장에
서니
이 초록별 위의 모든 열네 살 가슴 아픔 헤아리고 눈물 나누어
- * 아린 가슴 기대어 촛불 들어 외치네 순결한 꿈을 모아
새 관계를 부르네
이 초록별에서 모든 생명들이 존엄으로 더불어 손잡고
살기 위해
- 1. 피 흘리는 딜리의, 절규하는 바그다드, 돌맹이 든 가자의,
팔이 잘린 카불의
온세상의 열네 살 소중한 우리 내일 야만의 전쟁으로
더 이상 죽지 않게
- 2. 워싱턴의 평양의, 온 세상의 열네 살, 소중한 우리 꿈이
손잡고 자라나게
야만의 제국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야만의 전쟁으로
죽어가지 않도록
- 후렴) 생명의 존엄의 평화의 촛불을,
생명의
존엄의 평화의 촛불을!
-
번 호 : 21
제 목 : 가난의 선택이 평화행동의
시작일수도..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05
오후 2:17:48
내 용 :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작업을 통해서
배워가는
것은 가난에 대한
구조적 행복감입니다.
가난함이 우선되지않으면
평화는 언제나 겉돌수밖에 없다는것과
그 행동과 실천에 있어서
자유로울수
없는 자기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
평화행동가가 기르며 추구하는
평화는
공존에 기반을 두며
공존은 평등에서 가능하며
일반적 사람들의
삶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부와 빈곤 그리고 권력과 지배 등
모든 상대적
불평등과 이기심은
가난해지려는 노력에 상반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 그래서 어리석은 우리들이 가장 쉽게
평화에 접근하는
방법은
스스로 가난해지고
스스로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각과 심성과 존재하는 위치로
가장 낮은 곳에서 찾아내는 선과
가장
낮은 곳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구축해내는 평화의 걸음이
평화의 가장 쉬운 첫걸음이 될것입니다.
- 공연안에 평화행동가들은 그래서
가난을 선택하고
즐겨 버림으로서 얻습니다.
가지려하다 못얻는것이 가난이 아니고
가지려는
부에 반대하는 심성으로
선택하는 것이 가난이며
그 가난의 이유는 평화의
실존을 꿈꾸는 데
있습니다.
- 평화행동가는 가난을선택하고 그 가난의 눈으로
세상에
다가갑니다.
그리하여 온갖 반대편에 서있는 모든것들에 대해서
평화의
방식으로 저항하며
가난곁에 공존하며 위로합니다.
- 가난은 유물론적 의미에서만 아니라
물질을 제외한 인간심성과
정신세계에서도
선택되어야할
공존을 향한 자기낮춤의 언어로
이 작업안에서 사용됩니다.
- 가난이 평화의 지름길임을 모르는 평화행동가가
있을까만은
이러저런 이유로 재물의 필요성을 평화의 도구로
설명할 경우도 잇을겁니다.
하지만 그 구차한 설명이 무리수이며
기본을 변형시킨 자기만의 예외와
편협을 만들것은 우려할 일입니다.
- 가장 낮은곳으로 떨어져서
욕심없이 바라보고
그
시선으로 사랑을 행함.
존재한하는 평화를향한
욕심없는 사람들의 생존은
그렇게 존재하도록 노력합니다.
- 이 작업안의 인물들이 그렇게
쉬운 길을 알려주길 바랍니다.
가지려는것보다 버리려는것은
수만배 쉽고 현실적이므로
이 작업이
향해가는 길은
인간에게 가장 쉬운 길이 될것입니다.
- 예기 드림
yegie dream
-
번 호 : 22
제 목 : 평화행동길에 마주한 곳..세상의
모든 열네살...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09 오후 12:03:59
내 용 : 평화행동길에 마주한 곳..
세상의모든
열네살...
그 아이들을 생각하며 올린 촛불들.
도서부분을 생략하고
3번째 공연에선
그 마음그대로 다가서서 낯설게 마주친
사람들의
양심과 자각의 공간.
사람들의 촛불밝힘속에서
평화를 만들어 전해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열네살의 생명에게
이유도 모른채 죽어가게하는 사람들의
생존방식에 대해서 자각합니다.
- 지워진것을 그려가던 그림그리는이의 여정속에는
유난히
이날따라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많고
집을나선 이의 상자속에는 아이들과
함께할
색종이와 종이배 그리고 백묵등이 담겻습니다.
- 촛불을 켜서 손에 듭니다.
수많은 이유중에서 평화행동가의
촛불은
이날 이성적 존재라는어른들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죽어가는
세상의 모든 열네살아이들을 위한
자각의 촛불입니다.
- 예기 드림
yegie dream
번 호 : 23
제 목 : [가난한평화행동가의일기]강제집행
유체동산 압류예고장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0 오전 11:10:20
내 용 : 평화행동가 가난부분 방에 놓여진
소품중 하나
- [자료]강제집행 유체동산 압류예고장
- 변제시한 : 2005년 2월 14일까지
별도의 통보없이 강제집행되면
그에 따른 법비용추가
1) 먼저 법적인 조치로 귀하를 형법 제 347조(사기)에
의거,
경찰서에 편취의 범의(고이ㅡ)성 여부를 저희당사 법률팀에 의뢰검토
및 모든 법적 소송조치 하겠습니다.
- 2)다음으로 민사소송법 524조 2항에 의거
신한카드에서
미처리된 부동산및 급여등 가압류및 (법적조치)된 건에 대하여 직권 강제집행처리
및 동산(유체동산)=살림,가재도구 포함및 전세 월세보증금(친권및 법적소유지분)등을
관할 법원에 신청하여 즉시 강제 집행절차 동시에 진행하여 채권을 회수하고저
실행을 통보드립니다.
관할 법원 집달관을 대동 채무자가 없는 경우 경찰관,주민
입회하에(강제집행) 차압토록 하겠습니다.
- 모든 가능한 사회적 경제활동 및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민사소송법 제 122조 및 제 137조에 의거
강제파산결정신청(소비자파산신청)
및 제 524조에 의거
채무불이행자(신원증명,사항에 기재,사회적불이익)및
시해행위취소(재산조회,상속,증여,양도포함) 모든 소송등을 법원에 신청(허가)하고
재산명시위반시 에는,협법 제 347조에 의거 형사고소됨을 유념하시기바랍니다.
이 모든 경우 법적조치소송에 드는 비용은 귀하가 부담하시게 됩니다.
- 본 통지서를 받는즉시 연락주시기 바라며
만일 연락이
없으시면 저희 조사반이 사전예고없이
귀하의 가정을 방문하오니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 상기 진행되는 모든 법적조치는 당사의 요청에 의거 신한카드사에서
일괄 진행합니다.
- 신한 신용정보(주)채권 관리팀
번 호 : 24
제 목 : [가난한평화행동가의일기]부동산강제경매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0 오전 11:18:43
내 용 : 평화행동가 가난부분 방에 놓여진 소품중 하나
- [자료]부동산강제경매
-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결정 [경매3계]
- 사건: 2004타경 35519 부동산강제경매
채권자: 신한카드주식회사
채무자: 신영철
소유자: 채무자와 같음
- 주문
별지기재부동산에 대하여 경매절차를 개시하고
채권자를 ㅏ하여 이를 압류한다.
- 청구금액
금 6,862,115 원 및 위 돈중 6,260,870원에
대한 지연이자금
- 이유
위 청구금액의 변제에 충당하기위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04가 소76647
- 신용카드 이용대금 청구사건의 집행력잇는 이행권고결정정본에
의한 채권자의 신청은
- 이유 있으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 2004.12.28 판사 김인택
- 목록
1동의 건물의 표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623-7 원앙다세대빌라2차
- 전유부분의 건물의 표시
건물의 번호 지하-1
구조
철근콘크리트
면적 지하층1호 30.49평방미터
대지권의 표시
토지의
표시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주교리 623-7
대 144평방미터
대지권의 종류
소유권
대지권의 비율 144분의 24
채무자: 신영철
-
- 번 호 : 25
제 목 : [가난한평화행동가의일기]신용불량정보등록예정통보서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0 오전 11:22:56
내 용 : 평화행동가 가난부분 방에 놓여진 소품중 하나
- [자료]신용불량정보등록예정통보서
- 신영철 귀하
신용불량정보등록내용
정보등록기관:
주 삼성카드
연체기준일: 2004.12.12
등록예정일: 2005.3.12
등록사유
: 대출금연체 0103
채무액 : 원금 6,156,000 수수료 267,000 연체료 14,000
-
- 번 호 : 26
제 목 : 3번째 구성하는 이 작업에서는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0 오후 1:23:33
내 용 : 2월17일 길바닥평화행동에서의 공연작품은
다시 [존재하는평화를향해]입니다.
3번째 구성하는 이 작업에서는
가난부분의 성실성과
혁명부분의 도입
그리고 마지막공동체부분의 춤이 독무로
배치되도록 준비하며
- 가난한 행동가 부분엔 반전반미의 촛불집회를 배경으로
독서를 대체합니다.
- 예기 드림
yegie dream
-
- 번 호 : 27
제 목 : 혁명가...
작성자 : 예기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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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1 오후 3:00:53
내 용 :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가는 인물들 중에는
그 과정처럼 주시하여야할 혁명가의 부분이
있습니다.
테러리스트가 아닌 혁명가의 신념과 방식은
역사속에서 언제나
참으로 어려운 갈등구조안에 배치되어있습니다.
더 나은세상
그리고
버림받은이들의 편에서서
그들과의 평등과 자유 민주를 추구하는 길에서
혁명은 하나의 확실한 제안이며
희망입니다.
사람들속에 혁명의 의지가
없다면
세상은 진화되지못할것이며
진화의 노력조차 하지못한채
늘 악행의 소용돌이안에서
안주하면서
힘의 논리안에서
노예처럼
굴복할 것입니다..
- 그러나 혁명은 그 방법으로
또하나의 힘의논리를 택합니다.
그리고 힘으로 굴복시켜서 악을 제거하여야하는
논리적 모순안에 갖치는
슬픈 운명입니다.
-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에서는
하나의 낭만으로서의 과정적
존재로서의
혁명가의 생애를 스치려합니다.
그리고 무혈혁명과
상대를
감동시켜 이루어내는
평화의 혁명을 모색합니다.
- 예기 드림
yegie dream
-
- 번 호 : 28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1)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3 오전 10:52:26
내 용 : 에르네스토 체게바라
ERNESTO CHE GUEVARA(1928-1967)
- 게바라는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의 로자리오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아버지 에르네스토 게바라
린치는 귀족의 후손이었으며 어머니 세실리아 데 라 세르나는 독립전쟁 당시의
군인집안에서 태어났다. 결국 그의 부모는 부르조아 계급 출신인 셈이다. 어린
에르네스토의 부모는 무신론자였고, 공산주의자까지는 안되었지만 자유주의적
좌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돈을 모으는 데 억척스러운, 그런
인색한 사람은 아니었고 또 돈을 버는 기술도 별로 없었다.
- 에르네스토가 두 살 때 천식에 걸려 고생을 한 이후 그의
가족은 모두 코르도바(근처의 알타그라시아)로 이사를 갔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 에르네스토에게 여러 가지 운동을 가르쳤다.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당시 그는 활동적이고 자립심이 강했다고 한다. 돈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옷차림에도
신경쓰지 않았으며 자유롭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종종 고독을 즐기기도
했으며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공부에도 열심이었다고 한다.
- 청년 에르네스토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탐험심
많은 사람이었다. 열일곱살 때, 모우터를 붙인 자전거로 아르헨티나의 중부지방을
돌아다녔다. 이 여행 후에는 자동차 운전과 비행기 조종술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잠시라도 집에 붙어 있지를 못했다. 에르네스토의 부모는 결혼생활에 불화를
일으켜 1950년에 이혼한다. 자녀들은 어머니가 맡게 되었다. 청년 에르네스토는
어려워진 집안살림을 돕고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했다. 그래서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한 건설회사에서 사무원으로 일했다.
- 천식으로 고생한 적이 있는 에르네스토는 이 경험 때문에
1947년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의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회만 있으면
여행을 떠났다. 1952년에는 같은 의대 친구(친구하고 하기에는 게바라 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알베르토 그라나도스와 둘이서 10개월에 걸쳐 바이크로 여행을 했다.
칠레에서 바이크가 고장이 나자 페루의 마츄피츄까지 도보로 여행하였다. 한동안은
상 파울로의 나환자촌에서 환자들과 생활하기도 했다. 그후 아마존강을 횡단하여
콜롬비아로 갔다. 그곳에서 그의 친구는 카리카스에 남고, 에르네스토는 비행기로
마이애미까지 갔다. 여행을 그에게 남미대륙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을 대조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상 파울로
나환자촌에서의 노동을 통해 "인간들의 사랑과 유대감은 고독하고 절망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싹튼다"는 진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비행기의 출발이
지연되어 마이애미에서 1개월간 더 머물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미국의 실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8월에 귀국한 후, 의학공부에 몰입하여
1953년 3월,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다.
- 게바라는 남미 도보여행을 통해서 그곳 민중들의 비참한
생활과 그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사회과학적 안목을
길렀고 인간해방에 기초한 인식의 굳건한 토대를 쌓게 되었다. 훗날 그는 남미의
어느 땅에서도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술회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는 안락한 의사에서 급진적인 변혁주의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알레르기에 대한 연구>로 의사가 된지 두달만에 게바라는 까운을 벗어던지고
아르헨티나를 떠나 새로운 정권이 수립된 볼리비아로 갔다. 게바라의 주된 관심사는
아직 정치적인 문제에로 향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남미 일부국가에서 이미 현실화되어가는
사회개혁운동과 부딪히면서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이념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에 앞서 볼리비아의 라 파스에서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의 변호사
리카르도 로호와 만났다. 조국에서 추방된 이 반페론주의자와의 만남이 결국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 로호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1953년 볼리비아 혁명의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였고 그의 설득으로 베네수엘라(달러를 벌 수 있는 유일한 곳)로
가지 않고 과테말라(미대륙에 있어서 모범적인 혁명이 시작된 곳)로 가게 된다.
- 1954년 과테말라 중미의 이 작은 나라에서 자유주의적 좌파인
하코보 아르벤즈가 선거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혁신적인 정책을 폈으며
당시 막강했던 유나이티드 프루츠사(미국 곡물회사)가 소유하고 있던 대부분의
경작지를 국유화시킨 후 그것을 인디언과 소농에게 분배하려는 개혁을 실시하려는
중이었다.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이 나라의 지독한 빈곤상테에 충격을 받고 아르벤즈이
정책에 절실히 공감했다. "민중은 물질적으로 굶주렸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성에 더욱 굶주려 있다"는 아르벤즈의 사상에 대한 경외심을
게바라는 일생동안 간직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외심을 품고 게바라는 혁명의
실천을 위해 패덴드 순켈에서 의사를 지원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으로 향하는
여행도중에 과테말라의 우익 망명인사인 호세 카스틸료 아르마가 미국으로부터
자금을 원조받고 군대와 비행기를 동원하여 아르벤즈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일으킨
쿠데타를 목격하게 되었다.
-
번 호 : 29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2)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3 오전 10:55:02
내 용 :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는 '체 게바라'가 되었다. 이름을 새로
지어준 사람들은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 호세의 한 찻집에서 알게 된 쿠바인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1953년 7월 26일, 쿠바의 몬카타병영 공격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즉 피델 카스트로의 동지들이다. 하지만 에르네스토는 그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운동 지도자들과 만나고 싶어했다. 코스타리카에서
이미 '체'로 이름이 알려져 있던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책을 일기 시작했다.
과테말라 좌익정부의 전복이 계기가 되어 그는 맑스-레닌에 관한 학습을 시작했다.
이 학습을 통해 알게된 것은 가난하고 착취받는 나라의 혁명정부는 계속적인
착취와 수탈을 위해 미제국주의와 결탁한 자본가 세력에 의해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의 과테말라 침공을 통해 게바라는 미국에
대한 철저한 증오심과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미국의 범죄에 정면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대항하였다.
나는 아르벤즈 정부의 요직에 앉을 생각은 전혀 없소.
명백한 정치경제적인 침략을 자행한 미국과 미국자본의 횡포에 덩달아 날뛰는
반민족적인 매판자본가들에게 맞서기 위해 가난한 민중들과 함께 군대를 조직하여
했을 뿐이요. 과테말라는 지금이야말로 투쟁이 필요한 때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 - 게바라가 아르헨티나 신문기자 호르헤 리카르도 마셋티(현재
행방불명)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
CIA는 처음부터 '진지하게' 라틴아메리카에 대하여
간섭했다. 그 결과 라틴아메리가의 거의 모든 나라가 선교사를 앞세운 미국식
민주주의란 것을 통해 미국 소유의 식민지가 되어 갔다. 과테말라도 예외는아니었다.
과테말라의 여러 지역이 CIA의 조정을 받고 있는 군대에 의해 폭격을 받았다.
아르벤즈는 피신할 틈도 없었다. 과테말라 혁명은 시작되자마자 어어하는 순간에
끝나버렸다. 게바라는 투쟁에 직접 뛰어들어 레지스탕스 조직에 가담했다. 투쟁을
촉구하기도 하고 무기를 운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미 CIA의 사주를 받은 과테말라정부의 재판부가 이미 그를 사형에 처할
것을 결정, 공고하였기 때문이다. 게바라는 과테말라인 친구 엘 파토호와 함께
혁명이론을 배우러 멕시코의 수도로 향하여 달렸다. 이때가 1954년 9월 21일이었다.
- 멕시코시티에서 게바라와 파토호는 겨울참새처럼 극도로
비참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게바라는 이곳에서 혁명이론과 맑스주의, 각국의
민족해방전쟁의 전술을 두루 섭렵한다. 굶주림과 억압 그리고 독서를 통해 게바라는
철저한 급진주의자로 변해갔다. 게바라는 1955년 여름, 멕시코로 추방당한 피델
카스트로와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쿠바해방운동에 가담해 달라는
피델 카스트로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피델은 그를 쿠바 진격대의 의사로 임명했다.
피델과 나는 밤을 지새우며 토론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 그의 부대의 의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이미 내 자신의 다리가 라틴아메리카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고, 과테말라에서는 가장 잔인하게 숨통을 조였던 제국주의의
실체를 본 후였기 때문에 압제자에 대항하는 혁명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내 한
몸을 바치는 데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있을 수 없었다. 피델은 비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들이 세운 계획은 어쩌면 실패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낙관적인 태도에 공감하게 되었다. 아무튼 혁명은 코앞에 닥친 현실이었고
온몸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울부짖기만 한다든지 대충 적당히 해치워버린다든지
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게바라와 멕시코에 있던 망명 쿠바인들은
철저하고 강도높은 훈련에 돌입했다. 훈련교관은 스페인 외인부대의 대장으로
게릴라 전투에 다년간 경험이 있는 알베르토 베이요 대령이 맡았다. 베이요는
멕시코에서는 살바로르 태생의 지주로 통하고 있었다. 망명 쿠바인들은 그의
신분을 이용하여 멕시코주 찰코 지방 부근에 있는 오래된 농장을 구입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고된 훈련과 사격연습에 들어갔다.
- 726운동의 지도자들은 수개월 동안 카리브해를 건너 전사들을
무사히 쿠바까지 실어다 줄 튼튼한 배를 찾아다녔다. 마침내 피델이 베라쿠르즈주의
리오타투스판이라는 작은 항구에 묶여 있던 고물이 다 된 보트 그란마호를 찾아냈다.
이 배의 주인은 미국인인 로버트 에릭슨이었는데, 피델일행은 멕시코인 안토니오의
중개로 5만페소를 주고 이 낡은 배를 별수 없이 사들였다. 이 배는 1939년에
건조된 것인데 전체 길이는 19미터, 폭 4.5미터로서 정원은 승무원과 승객을
합쳐서 약 20명 정도였다. 250마력짜리 두 개의 엔진을 탑재할 수 있었지만 거의
모든 부분을 수리해야 할 만큼 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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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 호 : 30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3)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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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0:55:51
내 용 : 그란마호는 1956년 11월 25일 일요일, 동이 틀 무렵 닻을 올렸다. 정원을
훨씬 초과하여 82년이나 승선했다. 게다가 연료, 무기, 전투복, 식량을 적재했으니
최대 시속 9노트에 48톤의 고물 보트는 출발하자마자 허덕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멕시코에서 쿠바의 동부 오리엔테주 해안까지 가는 가장 길고 비효율적인 항로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도중에 FBI나 멕시코 경찰을 만나는 일이 없어야 되기
때문에. 보트는 언제 격침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더구나 승무원들은 모두 배멀미를
했다. 게다가 식량도 충분치 않았다. 게바라는 지병인 천식이 도져서 심하게
고생했다. 그란마호는 마침내 연료가 떨어졌고 휩쓸려오는 파도에 떠밀려 항로를
잃고 말았다. 상륙예상지점인 코로라다스 해안에서 2K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배는
산호초에 좌초되었다. 해안에 배를 갖다댄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82명의 탑승자는
모두 바다에 뛰어들어 자맥질쳐서 간신히 육지에 닿을 수 있었다. 망그로브 숲은
상륙지로는 최악이엇다. 붉은 망그로브 숲은 바다 쪽에서는 두터운 장벽처럼
보였다. 그 거대한 나무들의 밑둥에는 라카로운 빛을 띤 굴조개 따위가 칼끝처럼
빛을 발하며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게다가 물 위로 드러난 망그로브의 뿌리에는
바늘깥은 가시가 돋혀있어서 밟으면 발바닥을 쿡쿡 찌르는 것이었다. 발밑은
뻘밭이어서 발을 옮길 때마다 미끄러지기 쉬웠고 마치 뜨듯미지근한 고기국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기분마저 불쾌했다. 게다가 여러 종류의 커다란 게들이
우글거리며 기어올라와 전사들을 괴롭혔다. 설상가상으로 모기나 파리떼가 몰려오면
망그로브숲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세시간이나 걸려서 간신히 이 지긋지긋한
- 늪지대를 빠져나와 일행은 아침 9시에야 단단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오전 9시 30분 원정대원들이 늪지대를 막 벗어나자마자 귀청을
때리는 폭음이 들려왔다. 바티스타의 군대와 비행기가 그들이 상륙한 것을 발견하고
폭격을 개시한 것이다. 11시에는 폭격기 세대가 다시 나타나 피델과 그의 동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던 농가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원정대원들은 다시 쫓겨 나가야
했다. 게바라는 다음과 같이 쿠바에서의 악몽과 같은 첫 날에 대해 기록하였다.
12월 2일 우리들은 도착예정지인 코로다스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벨릭이란 지점에 상륙했다. 이때 이미 대부분의 장비는 분실되었다.
게다가 새로 준비한 군화를 신었기 때문에 늪지대를 빠져나오는 동안, 대원들의
발은 부르터지고 물집이 생겼다. 문제는 이 상처에 스며들어오는 파상풍균만이
아니었다. 카리브해를 항해하는 도중 내내 몰아친 폭풍속을 7일간이나 헤쳐왔기
때문에 항해에 익수치 못한 대원들 거의 모두가 심한 배멀미로 탈진해버려 기진맥진한
상태여서 다음의 작전을 수행해 내기가 어려웠다.
원정대원들의 모습은 무모한 계획롸 행동의 결과를
보여주는 표본이었다. 물론 초기의 이러한 자살행위에 가까운 실수들이 후에
성공할 수 있는 생생한 교훈이 되었지만..
장비중에서 우리 손에 남은 것이라곤 총, 탄약대, 눅눅해진
탄환뿐이었다. 대부분의 구급낭과 배낭은 늪지대를 빠져나오면서 잃어버렸다.
밤새도록 제당공장 소유의 사탕수수 밭을 헤치고 걸어나갔다. 전투 경험이 전혀
없던 우리 대원들은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행군 도중에 버렸기 때문에 나중엔
식량이 모자라서 사탕수수만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래야 했다. 뿐만 아니라 무심코
버린 음식 찌꺼기가 후에 화를 자초했다. 수색대가 이를 발견해서 우리를 추격하는데
좋은 단서들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또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길을 안내했던
사람들을 돌려보낸 것도 커다란 실수였다. 그들이 돌아가서 바티스타의 정부군에게
우리의 행로를 밀고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 쿠바진격 부대원들은 뿔뿔히 흩어져 도주해야 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레지스탕스들과 접선하는 일은 이미 불가능 했다.
- 12월 5일 바티스타군은 그들이 숨어있던 알레그리아 델 피오라는
사탕수수 재배지역을 습격했다. 사탕수수밭에서 140명 가량의 정부군이 그들을
포위했다. 이 전투에서 세 사람이 전사하고, 게바라를 포함하여 다수가 부상당했다.
대다수의 대원들은 사방으로 뿔뿔히 흩어져버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리하여 카스트로가 이끄는 게릴라들과 바티스타가 두목인 1만
2천여 용병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실전 속에서 단련된 장교들과 네이팜탄을
비롯하여 무엇이든 탑재할 수 있는 최신형 전투기, 게다가 정치적 군사적인 면에서
바티스타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미제국주의..... 이 모든 것들과 소수 게릴라들은
맞서 싸워야 했다.
-
- 상륙시의 사망자
- 움베르토 라모테, 오스카 로드리게스, 이스라엘 카브레라,
루이스 아르코스 베르그네스, 알만도 메스트레, 호세 라몬 마르티네스, 호세
스미스 고마스, 미겔 카바냐스, 안토니오 니코 로페즈, 칸티도 곤잘레스 디,
안토니오 로페스 후데스, 후앙 마뉴엘 마르케스, 세자르 고메스 후데스, 에밀리오
알벤토사, 산티아고 L 이르셀, 안토니오 다리오 로페스, 안드레스 루앙 바스케스,
르네 레이네 가르시아, 에드왈도 레예스 칸토, 토마스 다비드 로요, 미겔 사베드라
P., 라을 수와레스 메테스, 노에리오 카보테 피게로아, 레네 베디아 모라레스,
페릭스 엘무자 아가이
-
- 체포자와 행방불명자
- 파블로 우르타도, 알폰소 카빌리엔, 페드로 소토, 에스테반
소토론고, 호세 폰세 디아즈, 페르난도 산체스 A., 롤란도 산타나, 호라시오
로드리게스, 아르날도 페레스, 에바리스트 몬테스 데 오카, 라몬 메히아, 헤수스
고메스 칼소디야, 노베르토 고도이, 가브리엘 길 알폰소, 알세니오 가르시아
다빌라, 길베르토 가르시아 A., 마리오 후엔테스 A., 호세 후엔테스 A., 에르네스토
후데스 로드르, 마뉴엘 에차바리아, 기노 도레 파로, 라울 디아스 토레스, 후코
치콜라 카사노바, 아르투로 챠우몽트, 마리오 챠네스 데 A., 엔리케 카마라 P.,
엔리케 쿠에레스 C., 하이메 코스타 Ch., 노베르토 콜라도 A., 레이날도 벤티에즈,
헤수스 레예스 가르시아, 알만도 우아우 S., 파블로 디아즈 곤잘레스, 오넬리오
피노 이즈키에르도, 로베르토 로퀘 누네즈, 마리오 이달고 B., 로란도 노야 G.,
헤수스 몬타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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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31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4)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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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0:56:38
내 용 : 1956년 12월 25일 생존자
- 피델 카스트로, 우니베르소 산체스, 후안 알메이다, 시로
레돈도, 라미로 발데스, 알만도 로드리게스, 레네 로드리게스, 프란스스코 곤잘레스,
라휄 챠오 산타나, 에피게뇨 아메이헤이라스, 카리스트 모잘레스, 까밀로 시엔후에고스,
레이날도 베니테스, 라울 카스트로 그리고 에르네스토 게바라
며칠 후에
여섯 사람의 생존자가 합세한다. 호세 모얀, 루이스 크레스포, 훌리오 디아즈,
카리스트 가르시아, 카를로스 베르무데스...
1월 16일, 살아남은 대원들은
본격적으로 게릴라전을 개시했다
-
- 라 플라타 병영 습격
- "1957년 초, 우리들은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산악지방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라 플라타강 하구에 위치한 소규모의 병영(라 플라타 병영)을
습격하여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험준한 산간벽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알려져 쿠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습격은 게릴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투쟁의 준비가 완전히 끝났음을 확인하게 하는 계기였고, 부대전체에
있어서는 앞으로 다가올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것이었다. 게릴라군은 이
라 플라타 병영 습격사건으로 다수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 체게바라
[쿠바혁명전쟁의 회고중]에서 승리의 내용이란 약 36명의 바티스타군을 22명의
게릴라 부대가 습격, 라 플라타 병영에 붙잡혀 있던 포로들을 이끌고 유유히
사라졌다. 코바 국내에서는 독재자 바티스타 일당이 국민들에게 더 이상 게릴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이때 마침 뉴욕 타임즈의 허버트
매튜즈 기자가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 속의 게릴라 기지에 들어가 카스트로와
회견을 했다(1957년 2월 17일). 사진까지 곁들인 이 회견기사는 정부측 주장을
완전히 뒤집었다. 4월에도 미국의 방송국 기자인 봅 티버를 초청하여 기자회견을
했다. 이 회견 장면이 미국 전역에 T.V로 방영되었다.
- 산속의 게릴라군과 도시의 레지스탕스는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산속과 도시에서 통일전선을 구축했다. 이러한 통일전선은 게릴라 활동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었다.
- "열악한 조건이었다. 의약품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산속의 환자는 모두 비슷한 증세로 앓고 있었다. 이빨이 몽땅 빠져버린 노인,
기생충이나 구루병으로 고생하는 어린이들, 여러가지의 비타민 결핍증, 이 모두가
시에라 마에스트라 농민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증상이었다. 나는 단순한
치료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조건 자체를 철저하게 변혁시켜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57년 6월에는 치과의사로도 개업했다... " 내가 진료한
첫환자는 이스라엘 프라도였다. 그는 완전히 나아서 돌아갔다. 두번째 환자는
호엘 이글레시아스였는데, 그의 충치를 뽑기 위해서는 이빨에 맞춘 치료용 화약이
필요했다. 그건 일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런 힘겨운
전쟁을 치렀지만 이빨은 그대로 남아 잇몸에 달려 있었다. 그것을 뽑아내려고
온갖 짓을 대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치과의사역을 해 보기는 처음이었고, 진통제
한 알도 없었다. 그래서 심한 충치로 고통받는 환자에게는 심리적 마취를 십분
활용했다. 즉 고통스런 치료가 성공하도록 주문을 외우게 하는 방법이었다.
- 바라는 의사로서 활동하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산속에서의
전투에도 빠짐없이 참가했다. 라 플라타병영 습격에서부터 엘 우 베로 전투,
엘 옴 브리트 전투, 그리고 알토스 데 콘라도, 브웨이시토, 피노 델 아구아,
마르 베르데 등의 전투에까지.... 이 공적이 인정되어 7월에는 소령으로 진급되었다.
게바라는 굳센 의지와 용기를 갖추고 있었고, 조직가로서의 능력도 탁워하였다.
그의 생애중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의 25개월간은 그를 조직이론가, 사상가,
전력전문가 그리고 영웅으로까지 만들었다
- 릴라군은 산속의 근거지를 확고히 구축했다. 게바라는 병영본부를
건설하고 야채밭, 목장, 진료소, 빵 공장, 간이 방송국, 담배와 신발, 무기제작창
등을 세웠다. 물론 사소한 일이라도 신중하게 추진했다. 이 모든 것은 보통 사람의
능력으로는 힘든 일이었다. 게바라는 등사판 신문 [자유 쿠바인]을 발간하여
병사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 958년, 게릴라들은 세력을 확장하고 역량을 강화해 갔다.
이해 2월, 게릴라군은 드디어 산을 내려가 혁명전쟁을 개시할 것을 결의했다.
시가전이 조직되었고, 독재자에 대항하는 투쟁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개되었다.
날이 갈수록 전선은 확대되었다
- 1. 피델 카스트로,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산속에 남아 전부대
지휘.
- 2. 3월 라울 카스트로, 시에라 크리스탈 지역에 동부의 제2전선을
구축.
- 3. 후안 알메이다, 산티아고 데 쿠바를 포위하기 위해 하산.
- 4. 카밀로 시엔후에고스 별도의 공격부대 지휘를 맡기 위해
섬의 서쪽으로 향함.
- 5. 8월 31일, 체 게바라, 제 8공격부대와 함께 출발.
- 6. 에스캄브레이 산속에서는 또 다른 저항그룹이 형성되고
있었다. 핵심적인 그룹은 '대학생동맹'과 '인민사회당(공산당)'이었다.
- 게바라가 이끄는 부대는 농민들로 구성된 소규모 부대였다.
옷은 너덜너덜하게 해어지고,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배를 채웠지만, 조국해방에
대한 신념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다. 들판에서는 하늘에 노출되어있어 자주
비행기의 폭격을 받았다. 게다가 이해관계 때문이거나 혁명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참가했던 병사들은 자주 도망을 쳐서 밀고해버리곤 했다. 이런 와중에도
게바라 부대는 20개 이상의 강을 건너며 섬 중아부를 횡단하여 마침내 에스캄브레이
산속의 게릴라들과 합류했다. 게바라는 그곳에서 가축을 훔치는 등, 농민들을
괴롭히고 있던 '자칭 혁명가'들의 규율을 바로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 1958년 12월, 마침내 바티스타군은 패주하기 시작했다. 독재의
날들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게바라 부대의 산타클라라 공격은 바티스타
일당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최후의 일격이 된다. "산타 클라라는 쿠바섬의
중앙평원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인구 15만의 이 지역 중심도시이다.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온갖 소문이나 정보가 가장 빠른 시간에 모여들고 퍼져나갔다. 우리는
공격 당시 소총부대를 상당히 증강시겼고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다발적으로 공격할
수 있을 만한 역량도 갖추었다. 비롯 폭탄은 부족했지만 중화기도 갖추고 있었다.
바티스타군의 전차대를 공격할 바츄카포도 입수했다. 우리들은 까마후아니가의
도로 입구에 장갑차를 앞세우고 경비에 임하고 있는 바티스타군에게 선제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12월 29일, 해방조국을 향한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까피로
언덕의 수비는 상당히 완강했다. 30일, 이곳에서 하룻동안 전투를 계속하는 동시에
시의 다른 지역을 점차 장악해 들어갔다. 정부군은 본부와 장갑부대 사이의 통신이
두절되자 까피로 언덕이 포위되어버린 것을 알고는, 그제서야 당황하여 철도를
이용해 도주하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미 철로를 파괴해 퇴로를 끊어 놓았기
때문에 기관차와 객차 여러 대가 탈선했다.
- 때를 놓치지 않고 집중 폭격을 퍼부어 대자 장갑열차는 성냥곽처럼
부셔졌다. 고사포와 기관총, 그리고 엄청난 양의 총탄을 고스란히 내놓고, 적들은
22대의 차량과 함께 항복해오지 않을 수 없었다. 게바라 부대는 12월 31일 경에
산타 클라라의 거의 전지역을 장악했다. 그리고 그 날 밤...
- 959년 1월 1일, 새해의 첫날 새벽, 바티스타의 탈출작전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현금과 보석자루가 비행기에 실리고, 공포에 질린
바티스타 부부와 그들의 절친한 몇몇 외국인 친구들이 함께 탑승했다. 비행기는
산토 도밍고를 향해 소리없이 이륙했다. 새벽 2시 10분에 너무나도 황급히 떠나야
했기 때문에 경호원이나 수행원들은 거의 따라가지 못했고, 측근들은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바티스타의 부인 루시아는 귀금속이 달린 블라우스와
현란한 장미빛 판타롱을 차려입고 한껏 멋을 부렸지만 불안해하고 초초해하는
기색을 감출 수는 없었다. 바티스타는 측근들에게 자신이 출발한 직후 일어나는
일들을 이후 반드시 보고하도록 당부했다. 그리고 두 명의 장군에게 집무를 대행하도록
명령하고, 체라고 알려져 있는 아르헨티나 의사따위와 같은 공산주의자들의 손에는
정권이 절대 넘어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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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32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5)
작성자 :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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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5-02-13 오전 10:57:33
내 용 : 쿠바해방
- 1959년 1월 5일, 사법관 마누엘 우르티아가 대통령에, 호세
미로 카르도나가 수상에 임명되었다. 게바라는 수도 아바나의 요새인 라 카바냐
지역의 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피델이 이끈 용감한 애국청년들은 세상이 깜짝
놀랄 역사적 과업을 이룩했다. 그것은 바로 제국주의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던
친미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것이다. 무력을 사용한 싸움이 끝나고 나자, 한층
더 어려운 문제가 다가왔다. 즉 그것은 새로운 혁명이었다! 쿠바가 또다시 양키의
식민지(차라리 양키의 사창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구조를 변혁시켜야만
했다.
- 델과 까밀로 시엔후에고스는 아바나의 군정관이 되어 바티스타군의
잔당을 일소하는 일을 맡아했다. 군부와 경찰은 수년에 걸친 내전 기간동안 2만명
이상의 쿠바민중을 학살했다. 고문, 폭력, 강도질에다가 마지막엔 농가에 불을
지르기까지 온갖 만행을 밥먹듯이 저질러 왔다. 이런 야만적인 폭정을 휘두르는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미국으로부터 아낌없이 받아왔던 것이다. 이런 인간 쓰레기들을
자유롭게 놓아두는 것이 옳겠는가? 아니면 처형하는 쪽이 옳겠는가? 게바라는
이들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임무(재판권)를 맡았다. 살려두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재차 반혁명을 꾀할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총살하고 나머지는 징역을
살도록 했으며 극소수만 무죄로 석방하였다.
- 산전수전 다 겪은 게릴라들은 멕시코나 과테말라 혁명의
선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대를 전면 개편했다. 직업군인제를 폐지하고
미국이나 부르조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새로운 군대를 만들었다. 피델과 그의
동지들은 수염을 깍는 일도 미루고 제반문제를 검토했다. 1959년 1월, 게바라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논쟁이 기록되어 있다.
- "며칠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멕시코의 어느 곳에서
우리가 은밀히 토론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혁명의 강령을 쿠바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자 몬카타병영 습격에 참가했던 한 병사가 이렇게 주장했다.
'이건 단순하고도 간단한 일이다. 우리들이 하려고 하는 일은 쿠데타다. 바티스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으니 그 놈으로부터 다시 정권을 빼앗으려면 또 한 번의
쿠데타를 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바티스타가 100의 이권을 미국에 바쳤다면
우리들은 101의 이권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문제는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그에게, '우리들은 확고하게 기초를 다진
후에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으면 안된다 보다 중요한 일은 권력을 잡은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 "오리엔테의 산과 평지에서, 카므게이의 저지에서,
라스 비야스의 산과 평지 그리고 여러 도시에서의 2년 동안에 걸친 처절한 투쟁
후에 아바나에 개선한 우리 게릴라들은 초창기와는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농민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는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이들 농민의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실천을 통하여 우리는 이론을 정립해나갔다.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수행되었던 '토지개혁'의 깃발 아래 굳게 뭉쳐 우리 게릴라들은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싸워 왔다. 우리는 '토지개혁'을 통해 모든 무산자들에게
토지가 돌아가야 하며, 불법 소유자들에게서는 토지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수행하는 노력과 치르고 있는 희생이 농민의 해방을 위한
것일 때에는 아낌없이 치루어내야 한다는 것을 농민의 지지와 성원 속에서 배우게
된 것이다. 농민들에게 토지를 줄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인 급진적 토지개혁을
직접적으로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에 빌붙어먹는자들 즉, 대토지 소유자, 설탕공장
경영자, 대규모 농장소유자들의 이익과 충돌한다. 부르조아듣ㄹ은 이러한 충돌을
두려워하나 프롤레타리아는 그렇지 않다. 노동자들은 이 토지 소유자들에게 불리하게
제정된 법률을 지지하고 있다. 혁명군은 남녀를 불문하고 기본적인 사명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것은 억압과 착취의 굴레로부터 농민들을 해방시키는 사명이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토지를 쟁취하는 투쟁에 그들을 불러 일으켜서 참여시켜야
했고 그 일을 위해 오리엔테주의 구석구석가지 바로 그곳 출신의 교사들이 파견되었다."
- "쿠바 혁명정부는 사회 각 분야의 개혁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고, 민중의 단련된 민주주의 의식이 이를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농지개혁
구상을 구체화하여, 실현가능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은 혁명적인 법률이
요청되고 있다. 또한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토지의 재분배와 늘어난 농산물의
수급을 처리할 대형 유통기구의 마련이라는 두가지의 과제는 혁명정부가 어떻게
해서라도 실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 "경제적인 일은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다. 국내산업의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많은 난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컨데 산업장려정책을 진행시킴에 있어서 막 생겨나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이 기업에서 생산해낸 상품을 소비할 국내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대책도 필요하다. 이 시장의 규모는, 구매력은 크지 않더라도
물품을 필요로 하는 농민들의 수요에 맞출 정도면 된다. 사탕 담배 등을 수송하기
위한 상선도 필요하다. 또한 이전에 우리들의 소유였던 토지, 광산을 되찾지
않으면 안된다. 또 하나, 전력을 확실하게 쿠바민중의 것으로 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요금은 비싸고 아직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필요없는 전화회사를 국유화하는
일도 고려해야 한다."
- 게바라는 피델과 몇가지 점에서 의견이 일치했던 것은 틀림없었다.
게바라는 자신을 피델의 제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조직가로서의
뛰어난 수완도 있었다. 그래서 게바라는 국립농업개혁국의 공업부장이라는 경제
부문의 임무를 맡게 된다.
- 1959년 6월, 게바라는 인도, 이집트, 인도네시아, 유고 등을
돌아보는 여행길에 오른다. 게바라는 자본주의적 방법도 아니고 공산주의적 방법도
아닌 이른바 '제3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11월 28일, 게바라는 쿠바 중앙은행의
총재로 임명되었다. 초대총재가 된 게바라는 셔츠차림으로 업무에 들어갔다.
낡아빠진 군복풍의 셔츠를 걸치고, 빗질도 하지 않은 부시시한 머리로 총재자리에
앉은 것이다. 그가 이 자리에 앉아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의 급료를 5천페소에서
1천2백페소롤 줄인 일이었다. 이에 놀란 쿠바의 부르조아들은 당황하여 허둥거리며
모두 마이애미로 줄행랑 쳤다. 쿠바의 지폐는 미국에서 인쇄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지폐가 남아 돌아갈 정도로 남발되고 있었다. 게바라는 미국의
마음대로 찍을 수 없도록 지폐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인쇄하도록 했다. 우측의
사인이 그가 공무를 처리할 때 사용한 것이었다. (게바라는 지폐에 자기의 사인을
넣었다.)
- 게바라가 중앙은행 총재에 임명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중앙은행의
임원이었던 호세 산티에스테반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번 호 : 33
제 목 : [자료]체게바라전기요약(6)
작성자 : 예기
E-mail :
U R L :
시 간 : 2005-02-13 오전 10:58:24
내 용 : "은행업무 중에서 그가 가장 고심하는 것은 외화의 축적이었습니다.
매일 외환수지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그는 외환보유고를 보면서
모든 문제를 분석하곤 했습니다."
- "그는 새벽 서너시까지 피로도 잊은 채 일을 하고 늘
재정산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와 일치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에는 반드시 여러 사람들과 상의했었지요. 간부들에게 자유롭게 발언하도록
하고 최종적으로 그가 결정을 했습니다. 부하들이 과실을 범할 때는 엄격하게
질핵했었지요. 하지만 항상 인간적이었어요. 심약한 것은 용서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관용을 베풀었죠. 한 인간에 대한 신뢰는 그 사람이 정직하고 혁명적인가
어떤가 살펴보고, 일단 눈에 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뒷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 "그는 금융정책을 오로지 혁명사상을 현실화시키는
무기로서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게바라는 어떤 방법론을 채택할 경우, 그 채택의
근거를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인 측면에서 찾았지요. 중앙은행은
단 하나의 참된 가치 즉 '혁명수행에 있어서의 동지애'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원칙과 일상적인 삶 그 모두에 있어서 가장 인간적이며 혁명적인
사람이었지요."
- 1960년, 이해에 게바라는 자신의 발로 사회주의 국가의 땅을
밟아보는 꿈을 실현했다. 소련, 중국, 불가리아, 북한, 체코슬로바키아등을 방문하고
RDA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이야기의 순서가 바뀌었는데, 이미 1959년 2월 9일에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쿠바의 시민권을 얻었다.
- "확실히 라울(피델의 아우)과 나는 자주 충돌한다.
그래서 영광스럽게도 우리는 1,2등을 다투를 잔소리꾼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역사책을 찾아보면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 주는 모델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멕시코는 석유를 국유화한 후에 발전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의
대통령 카르데나스는 멕시코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우리도
멕시코처럼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들의 정책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시비를 걸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우리들이 이 나라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이고, 이 나라에서 제국주의의 손아귀에 있는 것들을
국유화하는 것과 우리의 주권을 되찾는 것은 같은 문제라는 것이다."
- 꼼꼼하게 일하는 사람, 착실하고 조직적이면서도 고집을
굽히지 않는.. 이처럼 철두철미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의 일하는 태도나 탁월한
능력을 높이 평가한 도르티코스대통령은 피델의 천거를 받아 게바라를 공업장관으로
승진시켰다. 이때 게바라의 나이 32세였다.
- 쿠바내 미국재산의 국유화와 사회주의 제국과의 통상확대.
이에 대한 양키 아저씨로부터의 공격은 예상되었던 것이다. 국유화한 토지, 은행,
제당공장, 상사 등은 대부분 양키자본가들의 소유였었기 때문이다. 1961년 1월
8일 미국은 쿠바와 국교 단절을 한다. 미국은 마침내 1961년 4월 17일부터 48시간에
걸쳐 피그만해안을 침공했다. 게바라는 이 전투에 참가하여 얼굴에 부상을 입었다.
미국의 침공으로 쿠바의 육해공군은 피해를 입었으나 혁명군은 결국 미국의 공격을
물리쳐내었다.
- 드디어 카스트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기치를 높이들고
세계를 향해 공언했다. 쿠바는 사회주의의 일원이 되었음을 선포한 것이다. 게바라는
전국 각지에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산업발전4개년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갖가지 시행착오는 감수해야 했다. 그의 경제 정책의 골격은
아래와 같다.
- 급진적 농지개혁, 사탕수수 경작지의 축소, 급속한 산업화,
1차 상품의 수입제한, 산업의 전면적 국유화, 외화축척, 임금제도의 개선...
- 게바라는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즉 노동자의
투쟁이 한결같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경제투쟁으로 나아간다는 문제였다.
- "제국주의자들의 경우에는 문제 해결이 훨씬 쉽다.
많은 이익을 올리려는 욕심이 그들의 본성이기 때문에 임금인상의 요구가 있어도
여우있게 시간을 끌다가 막판에 가서야 임금을 아주 조금 인상해주어 생색만
내면 문제가 해결되니까말이다."
- 이제야 게릴라들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지나친 임금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동을 하지않는 매우 고급스럼 직업이 있는 반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뼈빠지게 일하고도 기아임금에 허덕이는 심각한 상태였다.
게바라가 생각하기에는 무엇보다도 노동자 한사람 한사람에게 신성한 노동의
의미에 대한 자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성한 의무감에 의해 노동하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 "비교적 짧은 시간내에 생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자국보다는 '의식의 개혁'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금전욕이나 명예욕 혹은 체제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과
지도자에 대한 신뢰 그리고 자기 자신드을 위한 공동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상태에 이를 때, 더 이상 노동이 괴로울 필요가 없어지고 즐거운
의무가 될 것이다. 물질적 유혹이란 새로운 사회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과거의
유물이다. 그것은 완전히 척결되어야만 한다. 우리들이 그런 부조리한 것들과
싸워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주의 정신의 발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 쿠바사람들처럼 놀기 좋아하고 소란스러우며, 행실이 분방한
국민을 하나의 기치 아래 결집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쿠바에는 기술자도 전문직 노동자도 없었고,
경제계획도, 예산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론에서 실천으로!
노동자를 찾취하지 않으면서 생산성을 높이고 태만함, 결근, 여럿이 모여서 복잡거림
등의 생산성 하락요인을 없애기 위한 새로운 기술의 습득, 유능한 관리자의 육성,
양키의 간섭을 배제한 자주적 공장운영... 이런 사항이 게바라에게 부관된 중대한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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