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평화,그 그리움으로272(2010년의 명동성당&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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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leftⓒyegie 2011.12.9

 

이름없는공연 5월1일(2010년)평화 그 그리움으로272-
2010년의 명동성당에서 그리는 평화
http://yegie.com/501peace/page_01.htm
 
1970년대초 그곳에 다가가 교리를 배우고 영세를 받았을 때
그곳은 숨쉴 수 없는 시대를 촛불을 홀로 켜주고 있던 성지였습니다.
영세 후 수백 명 회원을 가진 본당단체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봉사하고 사목하던 그곳은
세상에 가려진 진실을 알리고 목마른 이들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힘이 되었었습니다.
오랫동안 가지 않던 시계를 고치고 문화관을 만들고 지하성당에서 작은 미사를
시작하고 매주 기타반주로 같이 노래할 수 있는 새 성가를 만들어 연습하던 그곳은
험한 세상 세상을 향해 이웃을 돌보며 양심을 지키려는 이들의 안식처였습니다.
성모동산이 만들어진 후, 그곳은 기도하는 곳이었고 공권력을 피해 쫒겨온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그들과 대화 나누며 꽃 한 송이 빵 하나라도 쥐어드리고 손잡아드릴 수 있는
이 땅 마지막 자유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6월항쟁 마침내 이뤄낸 시민혁명.명동성당은 그곳을 진정한교회로 만들어준
아름다운사람들의 용기로 인해서 본당마당까지 떨어지는 최루탄을 이겨내고
민주화의 성지로 다시 섰습니다.
가방에 기도서를 보여주어야지만 경찰의 저지선을 통과해서 미사를 드리려 오를 수 있었던
들머리.성모동산에 하나하나 올리는 촛불이 세상을 지키려는 아름다운 꿈이 되던 곳.
무장한 전경 대원들의 장벽 속에서도 24시간 어느 시간에도 열려져 있던 들머리와 본당마당 본당
그리고 성모동산.
누구라도 찾아가면 이유를 묻지 않고 교회본연의 가르침대로 성역을 유지해주던 곳.
언제나 기도드릴 수 있던 곳.
하지만 언제부턴가 명동성당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양심을 지키고 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교회가 가장 아려해야 할 창조의 질서를 지키고자 기도드리는 사제들의
아린 기도마저 질서를 이유로 내몰아치는 명동성당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강을 지키고자 미사를 드린 사제와 성도들이 기도를 드리려 성모동산으로 가는 것마져
철문을 닫으며 험한 목소리로 막아서는 교회.
사제들의 기도조차 막아 서던 그 성모동산에선 색색깔 조명과 환호 속에서
또다른 사제가 여자사회자와 함께 천박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가수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노래를
박수 쳐 듣습니다.
성모성월을 맞는 2010년의 서울교구 그리고 명동성당의 새로운 기도방식으로의 문화제는
이렇게 기도하는 사제들을 근접도 하지 못하게 하던 시간에 또 하나의 명동이 되어서
아린 가슴으로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듭니다.
 
가톨릭 회관 건물 벽엔 선거철 후보현수막보다 더 큰 현수막으로 5월 이곳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문화제의 내용이 소개되어있고 그 첫머리에는 이 행사의 주인공인양
한 사람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2010년 명동성당은 이렇게 아픔을 외면하고 즐거움을 찾아서 변절했습니다.
세상을 살기 가장 편한 방법은 그 시기를 사는 외롭고 고통받고 탄압하는 이들 편에 서지 않고
그 시기 공동체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무지하여 알지 못한 채
나름대로 양심을 얘기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여흥을 만들고 기도해주는 것일 겁니다.
가난한 이와 고통받는 삼라만상을 위해 같이 기도해주고 그들의 벗이 되어주던 명동성당.
마치 6월과 촛불의 성지였던 시청광장이 진정한광장으로서의 역할을갈망하는 이들을 폭력으로 몰아내고
관변축제의 공간으로 변화시켜 또다른 시민들의 여흥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처럼.
2010년 5월의 명동성당은 그들이 언젠가는 87년의 그 아름답던 민주화의 성지 얘기마져도
수치스러워 하는 교회로 변할 것같은 우려를 심어줍니다.
2010년 5월 2일 일요일오전 9: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