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평화 그 그리움으로366(첫공연의 마로니에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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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leftⓒyegie 2011.12.23

 

평화 그 그리움으로 366부연작 그 366일째 완결의 날에..
 
평화 그 그리움으로는 2005년 6월 마로니에 공원에서 초연하였고
이어 9월에 제주에서 두번째 공연을 가졌습니다.
앗살람알라이쿰에서 미안해요 처절히 그리고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로 이어가는
평화연작을 하나의 묶음으로 해서
거리로 갖고 나와 사람들의 평화에 대한 행동을 모아보는 작업으로
이 공연은 독특한 거리극형식을 택한 피스몹입니다.
작가는 예플러라는 한 연기자와 함께 준비한 평화의 공간 안에
그동안 해오고 만들어간 평화연작의 장면들을 재현하고 모자이크합니다.
그리고 이에 동행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다가와서
각기 자신이 가진 평화의 마음을 행동으로 준비해와서
연출자의 배치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면
그 것이 하나의 피스몹이 되고
우리의 시공은 하나의 평화 공간으로 바뀝니다.
 
두 번의 경우를 통해서 배운대로 이제 공연의 형식과 내용상의 두려움을 버리고 행동하는
양심으로서의 거리에서의 존재화를 생산하는 이 작업은
이번 세번째 작업에선 평화난장이라는 공간곁에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슬픈 희망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굳이 독촉하지 않고 접속자도 많치않은 연출자의 사이트를 통해서 온라인 글로
작업을 공지하고 그 동참자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스스로 다가오는 극소의 사람들만으로
공연의 기본틀을 구성하였습니다.
시기상으로 미국의 이라크침공 3년을 맞는 날
인간의 이기심과 야욕은 21세기에도 진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이윤을 이해서 모든 것을 합리화 시키고 그 반대편의 존재들이 가지는
아픔에 대해선 잊음을 통해서 합리화하는데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중요하고 크나큰 인류생존과 평화를 통한 존재작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사소한 얘깃거리에 흥분하면서 휩쓸려 다니는
대중성은 이제 그 선악의 개념 마져도 잊었습니다.
근본주의자를 비타협적 인물로 설정하기에 익숙하여
옳음에 완전을 무시하고 그름의 절충안을 제안하는 종이 되어서 파괴와 폭식만으로 살아갑니다.
그리움의 의미를 확대시킴으로서 무한 공간으로 빠져버린 사람들의 모습은
이기적 3차원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보이지도 않으며 거추장스러운 짐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업은 평화 그 그리움으로 란 제목대로 그리움만을 향해서 다가갈 분
아무런 제안도 제시도 동참의 촉구도 하지 않습니다.
오후 1:03 2006-03-15
.......................................
평화 그 그리움으로는
평화에 대한 그리움을 지켜내는 작품입니다.
누구나 쉽게 얘기하면서
평화에 대해서 관심 있다 하고
평화를 그리워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진정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으며
평화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큰가하고 반문해보면
사실 우리곁에
평화에 대한 갈망도
평화에 대한 그리움도
거의 존재치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를 미워하고 해하기 위한 전쟁에 대한 갈망과
전쟁으로 인해 얻는 이득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으면서
그 반대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 인류인지도 모릅니다.
아님
단어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망각 속에서
막연한 무채색의 언어로
상식없이 사용하고 있거나..
세번의 공연을 가졌습니다만
그 세번의 공연의 열기 또한 점차 줄어가고
스스로 찾아 다가와서
평화를 얘기하고 그리워할 사람도 줄어갑니다.
2005년 초연때는 참 많은 사람들이 조건없이 다가와 평화를 그리워했으나
2005년 하반기엔 바로 곁에 있으면서도 동행하지 않았으며
2006년 상반기엔 수많은 평화행동가들 곁에서
참으로 적은 사람이 외롭게 평화를 향한 그리움을 얘기했습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치밀하게 열심인데
평화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너무도 안이하고 게으릅니다.
먼저 행하지 않고
전쟁의 반대로만 평화를 얘기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서만
평화를 논하는게 고작 입니다.
전쟁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평화였는데
서로를 미워하고 해하기 전에는
서로 배려하고 평화로 왔는데
인류는 그 최초의 전쟁이후로
평화를 다시 찾아내지 못하고
끝없는 전쟁을 행하며 타인과 타인의 것을 이기고 빼앗기 위해 살아갑니다.
이제 평화라는 단어는
오히려
전쟁을 행하는 자들의 목적어로 쓰이거나
전쟁의 이유로 쓰이는 몹쓸 언어로 마져 되었습니다..
더 퇴화하고 더 가슴 아파하기 전에
평화를 위해서
평화만을 찾아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말 절실히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평화를 향한 그리움
그 절실한 그리움은
아주 쉬운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를 버리고
타인에 대한 미움을 버리고
스스로 평화를 행하며
이 행성 위에 하나의 선한 공기가 되면 됩니다.
평화 그 그리움으로는
아무런 조건없이
평화를 행하는 사람들의
고운 움직임이며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만날 귀한 만남의 장이며
서로에게 쥐어주는 용기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면
그 서로에게 주는 용기마저 없어진 슬픔이겠지만
그 서로가 없다고 해서
용기를 잃는다면
평화에 대한 그리움도 아닙니다.
또다시 평화 그 그리움으로 란 제목으로
평화를 얘기하러
임진각으로 달려갑니다.
그 절실한 그리움을 안고
평화를 그리는 원소가 되어
함께 했으면 합니다
연락기다리겟습니다.
평화를 그리워하실 줄 아시는 분들의....
2006.09.13 1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