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은 이런 두 가지
태도 중에서 후자를 택하게 되는데, 이런 그의 선택이 종교적 자아, 혹은 시적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시적 자아는 브래들리의
경우에서 처럼 표면 밑에 있는 진정한 실체의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의 등가물을
탐구하게 된다.
이런 탐구는 단테적으로
이야기하면 원죄로 인한 현대의 고독의 진공 상태를 향해 내려가는 하향 운동이며,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스스로를 부정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태도로 탐구하는 회의적 정신, 혹은 부정적
정신의 발로이다.
이것은 결국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그 시간의 심연인 인간 실존의 비참한 현실로 내려가서 그것을
인식하는 길이다.
music out the waltz
of whispers(michael hoppe)
(언덕위에 있는빈가페엔
오늘도 사람들이 자기집처럼 편하게 다녀간다)
v-작가의 목소리
간혹 희망은 설명이나
증명보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암스트롱이 달이 다녀와도
그가 계수나무를 못본것이지
그곳에 계수나무가 없는것이라는
생각은 하지않는다.
생텍쥐베리가 비행기를타고
야간비행을하며 바라본 별들사이엔 분명 작은우물과 한송이 꽃 그리고 양 한
마리가있는 소혹성이 있엇을 것이다.
그렇지않다면 그가 왜
우리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별을보고와서 별엔 아무것도 없더라고 말하지않았을까?
우리의 작업은 별에 더
가까이 간 사람들 그리고 달에 먼저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온 사람들(직접 가서도
보지못하고 온사람말고)의
가슴과의 만남 그리고
그들의 기억안에 담긴 우리의 영혼들의 고향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이 작업의
동행자를 찾으면서 설명할수 없는 이 부분을 그저 동화책을 읽고 그렇게 믿는
마음으로 접근해주길 바라곤한다.
동행하여도 서로 떨어져
가고있음은 슬픔이며 그들이 같은 동행자로 보이는것 역시 슬픈일이다.
개개의 자아가 뭉퉁그려져서
다른 얘기로 전달되거나 자신의 영혼이 가진 진실함이 묻혀지기때문이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영혼이며 그들이 가진 모든 생각과 의심과 갈등과 사랑의 방식은 하나의 우주인데,
동행의 불편함이 본의아닌
허울을 만들어 입힌다.
music in through the
arbor(kevin kern)
(낮을 지나 밤이되고 다시
아침. 밤에는 세찬 소낙비가 여행자들의 공허한 가슴을
더욱 세차게 메몰쳣지만
그것이 반드시 슬픔으로 전해지는것은 아니다.)
(소낙비가 스쳐간 아침
새벽녁에 찾아가받아온
아이들의 빨래를 넌다.
그리곤 오늘도 산장지기처럼
까페 언덕위의 바보의 문을 열고 기다린다.)
v-작가의 목소리
기다리는 이는 상대의
말 한마디를 갖고 희망을 만든다.
그가 만드는 것은 만남을
위한 준비이며 약속된 예정에 대한 희망이다.
그의 기다림은 상대를
규제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자신으로 하여금 실천된다.
바람,비,햇살,,,그리고
시간의 지남.
그에겐 모든 것이 기다림과
희망의 매체로 인식된다.
그리고 시간은 이제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불편도 대상도 되지못한다.
억겁의 시간속에 생명체에게
주어진 작은 시간은 찰나에 불과한 것을. .
의미는 시간을 초월해서
남는것을.
(사진사는 아이를 만나
사진을 찍어준다.
아이에게 기다림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고 아이는 그리움을 가득담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 얘기를 들었다.)
(바다를떠난 여행자는 티벳에 머무른다)
music out through the
arbor(kevin ke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