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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연작) 공연대본  
1장 마중(프롤로그)
 
그해 금남축제엔 38년만에
고향을 지키던 그리고 고향을 떠났던 가족 친지들 까지도 모두
다시만나보자는 약속이 있엇습니다.
그래서 5월이 오자 송정역 광천터미널마다마다엔 마중나온 이들과
서로 정겹게 만나는 반가움들이 가득했습니다.
...
그동안 이도시를 떠났던 사람들 혹은 이도시를 지키면서 살아온 벗들의
그리운 얼굴들을 넌지시라도 바라보고픈 마음.
낯익은 이름에 나이를 적어 메모를만들고
축제의 공간으로 나서는 모습으로 이 공연은 시작됩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아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만나던 님들.
어느날 문득 헤어져 아주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벗.그리고 가족.
 
38년만의 마중.고향을 떠나 살던 벗, 가족들을 반겨 만나는 모습들..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고 있어서 다시 만나는 기쁨에.

 

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연작) 공연대본  
2장 오월 금남로 축제의 공간
 
오월 금남로 축제의 공간
금남축제는
무언가 비워두고 약간은 비밀스럽게
문득 누구도 말을 멈추고
시간이라는 추억을 소재로 열리는 축제입니다.
이 나라 곳곳 여느 축제처럼 거리를 막고 광장을 열어
그곳에 각기의 부스를 만들고
한편엔 무대를 만들어서 노래하고 춤추고 만들고 체험하면서
사람들은 삶의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축제에 한 부분이 되서 그 속에 거닐고 멈추며
보고자하는 것을 그리며
그 안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귀에는 들리지 않는 침묵의 소리와
눈을 감아야 더 잘보일 환시로 주어진 시공 안에서의 축제..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는 이도 있고
아름다운 모습의 소품들을 만들어서 나눠주거나 파는 이도 있습니다.
기타 하나 들고 나와 노래하는 이도 있고
그 노래를 들으면서 따라 부르는 이도 있습니다.
몸짓 혹은 손기술로 즐거움을 표현하는 이도 있고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는 연기자도 있습니다.
 
아무도 없지만 그 모두가 있으며
축제한편 골목길 구석마다 술잔을 나누는 벗들과
음식을 나누는 가족들이 홀로그램처럼 나타나고 집니다.
 
 
 
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연작) 공연대본  
3장  금남축제는..
 
너무도 익숙한 이름들이 누군가의 부름 속에서 너무도 평범한일상처럼 들리고
고개돌려 그 쪽을 보면 38년후의 그의 모습이
38년전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게 거기에 일상이 돼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12일부터 이 5월 여러 날 축제는 계속됩니다.
도시곳곳에서 혹은 활기차게 혹은 조용히
중첩될 시간의 만남 입니다.
 
[금남축제]는 30년 훨씬 넘게
남도의 어느 도시 금남이라 불리는 거리에서 열리는 시간의 축제입니다.
세기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가슴속에 기억하고 이어가고 싶은 시간들을 찾아서
1970년대 그리고 1980년 5월 그날 이전까지의 모습을 찾아서
10일간의 시간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만드는 축제의 이야기입니다.
 
 
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연작) 공연대본  
4장  옛 전남도청.
 
한무리 축제관광객들을 이끌고 옛 전남도청을 소개하는 인솔자가 있어서
그의 안내를 들었습니다.
 
이 건물은 예전에 전남도청이었습니다.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일본건설회사 대창토목이 5개월만에 지었다고 합니다.
본관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당시에는 2층 높이에
붉은 벽돌의 외관과 화강석 및 인조석 장식건물이었습니다.
해방직후 흰색으로 다시 칠했고 1975년에 3층으로 증축했습니다.
별관을 신축건물과 연결 확장 했구요..
증축된 3층 부분은 건축가 김태만이 설계한 것으로
1, 2층에 비해 단순화했지만 초기 설계와 유사한 형식입니다..
도청이 무안으로 옮겨간 뒤에 경찰청으로 쓰이다가
아시아문화전당을 세우면서
등록문화재 제 16호로 지정된 본관만 남기고  
아시아문화전당과 부속건물속에 지금의 전시관으로 리모델링했습니다.
 
 
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 연작) 공연대본  
5장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축제가 열리는 금남로 한편.
58년생 동갑내기 몇 몇이
축제에서 낭송공연할 희곡 마지막부분을 읽고 있었습니다.
 
보라 그대 속에 우리 모두가 들어 있도다
그대의 얼굴에서 우리의 얼굴이 보이고 그대의 웃음에서 우리의 기쁨이 되살아나며
그대의 한숨에서 우리의 슬픔이 되살아나는 도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노라.
죽음마저도 다시 살아나기 위한 잠시의 과정일 뿐이 도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멈춰있으며
다만 우리들 자신이 그 시간 속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나타나도다.
 
죽음과 생명의 거듭됨 가운데 그대들은 가장 영원한 언약을 맺었도다.
이로써 우리는 그대들을 축복하노라.
비가 내린다네! 여보게 이 너절한 것들일랑 다시 전당포에 맡기지 그래?
자 우리 모두 거리로 나가요!
 
이제 내년이면 너도 환갑이다.
개뿔도 좋았지만 나도 그 연극 재밌게 봤어.
그런데 동수야,
도시 허름한 하숙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럽게 아름다와 보여서 그랬니?
아니면 그저 어느날 줏어들은 서양식 속담하나 마음에 들어서 새겨두었니?
요즘도 넌 자주 우리들 앞에서 민망하게 쏘아 부치더라..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같소? 하고.
 
 
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 연작) 공연대본  
6장  5월의 신부.
 
 
 영어선생님이었던 남편.
동료선생님들 그리고 전남고 제자들
모두 꿈처럼 축하해줬던 결혼.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만삭의 몸으로
집 앞 골목길에 나와 기다리고 만나던 그때 신혼시절.
 
금남로에서 열리는 70 80 추억의 축제.
축제의 공간한편에서 그 시절 노래들을 다시 불러주고 있는
그 시절 흑백tv로 보았던 낯익은 가수.
디제이가 신청곡을 받아 들려주는 다방풍경.
그 결혼 후 바로 얻은 아이가 벌써 서른여덟.
그리고 어머니는 이제 예순입니다.
남편과 같이 교사생활하시던 오종렬 선생님,
몇 년 전 담양 가는 길목에 세우신 518민족통일학교에서
남편과 함께 뵙고 인사드렸었는데..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
 
 
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 연작) 공연대본  
7장  충장로 그리고 예술의 거리
 
 
아프단 이야기도 슬픈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저 반겨 웃고 얘기하면서
자신이 준비한 노래와 그림 춤.몸짓을 보여주기도하고
시를 읊기도 하고
아무도 금기처럼
그 어느 이야기는 하지 않으며
그 이야기와 시간이 만들어두고 간 현실은
부정하는 사람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축제.
 
 
 축제한편 골목길 구석마다
술잔을 나누는 벗들과
음식을 나누는 가족들이
사람들 속에 홀로그램처럼 나타나고 집니다.
 
너무도 익숙한 이름들이
누군가의 부름 속에서
너무도 평범한 일상처럼 들리고
고개돌려 그 쪽을 보면
38년후의 그의 모습이
38년전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게
거기 일상이 되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 연작) 공연대본  
8장  정연오빠
 
 
금희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내이름도 아닌데 반가워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른 사람과 그 소리에 답하는 사람의 모습을 찾아 시선을 멈춥니다.
 
이십대중반 되보이는 아들과 같이 걷던 오십대 후반의 여인이 대답하고
반가운 듯 그를 부르는 사람들 속으로 구름처럼 스며들어갑니다.
 
얼굴에 남아있는10대 여고생의 모습이 더 낯익은 그의 얼굴.
천변 기독병원 길에서 언젠가 본 듯한
뜽금없이 손가락 세며
저만치 친구들과 웃고 있는 그의 나이를 가늠해봅니다.
올해 쉬은 여섯.
 
 
그리고 또 한번 금희야 부르는 중년남자의 핸드폰전화 목소리
정연이랑 여기서 우리 한잔하고들 있다
 
그 목소릴 따라 걷다가 예술의 거리 길목 선술집마당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스칩니다.
쩌렁쩌렁 큰 목소리로 다시 반쯤 취한 음성으로 누군가 말합니다..
 
현재는 순간이다. 순간을 사는 것이 인생이며 순간을 극복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것이 바로 영원을 극복하는 것이다."
"앞으로 전진하라. 정지는 안된다. 그러므로 앞으로 가진 않으면 길을 잃게 되므로 일순간이라도 정지하지 말라."
 
이미 술잔 기울이며 말하던 이의 모습은 저 멀리 인데
소리의 터널을 뚫고 들립니다.
"아무 것도 헛됨은 없어라."
우리가 사랑했던 것
외로움 당했던 것
아무 것도 헛됨은 없어라."
 
 
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 연작) 공연대본  
9장  들불야학
 
광천동 시절 들불야학이야기는
예순이 넘어 오랜만에 한자리에 한 벗들에겐
언제나 그 날처럼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칠공팔공을 돌이켜보는 이 축제에 오면
그 시절 공단마을풍경들 속에 골목길따라 시민아파트
그리고 담장하나사이로 붙은 성당 그 마당에 야학가던 길.
그 젊은 시절의 시간들이 다시 생각납니다.
예순이 훨씬 넘어도 아직 결혼않은 노총각
야학시절 친구들 만나면 기순이가 아직도 놔 주지 않느냐는 놀림..
마흔도 넘은 제자들이   문득 금남로에서 스쳐 뵙고 강학님하고 인사드리면
그 시절 함꼐헀던 그리운 얼굴들 떠오릅니다..
관현이 영철 효선등 먼저 간 친구들 이름도 새기며
함께하던 그 시절 이야기 꽃피웁니다..
얼마 전 진택이 만들어 준 그 시절 야학이야기담긴
판소리자락 되내이며
내일은 망월동 모란공원에 가서 영철 효선 관현이 하고도
술한잔나누자고  뜻모읍니다..
 
 
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 연작) 공연대본  
10장 망월동
 
망월동에 다녀왔습니다.
.빛고을 태어나 함께 살고 진 벗 혹은 은사님
그리고 먼저 간 선후배들 만나 뵈러.
 
망월동 묘지 공원 그리고 영락공원에 잠드신 이들.
직녀에게 시 남기신 통일시인
다시 시작하는 평화 미처 함께 하지 못하고 떠나신 문교수님.
출판사하던 병식,
온유한 삶의 모습 그대로 평화 남기고 떠난 의행.
그리고 늘 호탕했던 강섭.
 
살아남은 우리들이 38년전에서 다가와서
옿게살다 명바친 자네 묘비에 적힌 글을 잃어보네.
 
지난해 12월 자네와 나.
광주 도심을 벗어나 막걸리를 마시던 날,
자네는 나에게 한 구절 흥얼거렸지.
눈발 날리던 오후 무상한 세상을 노래하던 자네.......

동지섣달 긴긴밤에 잠 못들어 헤매다가
홍시한점 옆에 두고 탁주 한잔 기울이니
천상천하 유아독존 부처 따로 있었더냐
고개돌려 창 밖보니 백설선녀 내려오네
설아 설아 예쁜 설아 홍진백진 마셔 불고
명년봄에 꽃필적에 우리한번 웃어보자
 
 
 
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 연작) 공연대본  
11장 칠공 팔공 축제
 
빛고을 분들이
금남로와 충장로 그리고 5월사적지인 도청 앞 분수대 민주광장등에서 가지는
이 축제 안에 담으려는 의미들을 가늠하다가
순례자의 눈에는 조금 서글프게 진행되는 이 축제를 보며
그 안에 담아진 축제의 진정한 이야기를  발견했던 그곳.
.
다시라기굿처럼 마음에 감춰두고
그 열흘간이 없었던 시간
벗들과 모두 함께 했던 시간을 찾아 칠공팔공
그들과 같이 그려본 열 하루간의 축제.
 
금남 축제는 2018년5월17일부터 27일까지 11일간 금남로와 광주일원에서 공연됩니다.
그 시간 거기엔 칠공팔공 시절을 그리는 추억의 시공이 열리고
만나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 38년의 시간을 더 살고 진 이야기들이 스칩니다.
 
축제는 11일간의 꿈과 12일째 마지막 날의 다시라기 굿으로 현실로 이어지지만
허상의 현실과 꿈은 실존의 차원에서 반대로 구성되어집니다.
 
사람들은 그해 5월 뜻을 알려주지 않은 축제를 치루고 있었습니다.
 
늘 순례에만 익숙하던 오월 빛고을 여정이 축제의 여정 안에서
즐겁게 웃기도 하고 같이 먹고 마시기도 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오월이란 계절을 즐기는 사람들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오월 노래 아닌 칠공팔공의 가요나 팝송이 울려 퍼지고.
5.18이란 글자가 적힌 간판이나 현수막을 굳이 피하며
그해 빛고을의 오월은 그저 아름다운 계절을 맞고 보내는 오월이었습니다.
 
주먹밥도 피해야 하고 시민군과 공수부대의 대치를 그리는 현장극이나
오월민주항쟁의 모습을 그린 사진전이나 그림전도 피해야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그 오월의 열흘간이 없었던
38년의 이야기가 흘러야 하고
이 도시 곳곳에서 만나고 스치는 사람들 속에는
그 열흘간 쓰러지거나 사라져간 사람들도 모두
이 도시 5월의 공간에 살고 있어야 합니다.
 
 
아프단 이야기도 슬픈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저 반겨 웃고 이야기하면서
그럼으로서 그것이 축제가 되고
칠공팔공의 추억을 그려보는 축제의 이유가 됩니다.
 
축제로 가득한 거리 위에서
나는 38년후의 당신을 발견했고
당신은 어머님과 형제남매 ,벗들과 함께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시간 위에서 그렇게
너무도 평범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 연작) 공연대본  
12장 5월26일자 석간 문화면 기사
 
 
 5월26일자 석간지 문화면 기사 한조각이 거리에 떨어지고
그 기사를 손에 줏어들고서야
축제 속 사람들은 서서히 시간을 돌이켜 세웠습니다..
 
그해 오월 그 사건과 항쟁의 사이에서
모든 중앙지 기자들이 기사쓰기를 거부하고
언론검열단의 검열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신문에 소극적인 항거라도 했을 때
은유로라도 알리고 싶고
함께 한다고 얘기해드리고 싶어서 취재해 적었던 기사.
 
후에 그 단어만으로라도 역사가 될 것만 같아서  적어본
[1980년5월]이란 단어와 [무덤없는 주검].
사르트르의 그 연극이 공연된다는 사실을 핑계로
금남로의 그 주검 앞에 헌화하고
 
카프카의 빨간 피터의 고백에서
[탈출의 가능성은 항상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보았자 얻는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하는 대사를 찾아
도청을 지키는 시민군들의 마음을 같이하고..
 
[토선생전]을 보고 [내가 법이다]고 얘기하는 신군부의 반란과
[폭력으로 흥한 자는 폭력으로 망한다]고 그에게 얘기하는
토끼의 대사를 인용해서라도
검열단을 통과해 지면에 담고 싶었던 서글픔들.
그의 존재에 대해 한마디도 쓸 수 없었던
대머리 혹은 문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전두환을 지적하기 위해서
[문어 너는 너무 과격해]란 대사와
[끓는 물에 데쳐져 죽어가는 그의 말로에
관객들의 힘찬 박수]가 나온다는 기사까지.
 
 
아 그래 그해 이런 열흘이 있었구나 .
금남축제에선 5월의 그 열흘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2018년5월 빛고을 공간에서
옛 전남도청복원을 위한 농성은 등장하지 않으며
그저 전남도청에서 경찰청을 거쳐
아시아문화전당으로 개발된 문화재적 가치의 건물과
그 안에서 열리는 문화행사를 찾는 사람들만이 등장합니다.
 
항쟁이 없었으므로 도청도 금남로도 5월아닌 다른 이유로 인식되고
그 많은 순례지와 사적지도 모두 5월을 인식 못한 채 38년의 개발 속에서
의미없이 존재합니다.
광주엔 518번 시내버스도 없고
망월동엔 국립묘지가 없고 구묘역이라 이름진 민주묘역도 없으며
그저 제1시립 제2시립이란 이름으로 확장돼온
망월동 묘지공원과 영락공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지난 38년을 광주에서 살다 떠난
평범한 넋들이 잠들어있습니다.
 
 
거리를 걸으시는 분들 숨쉬며 참가하시는 분들은
죽은 이와 살아 있는 이 그리고 살다 떠난 이를 혼동하지 말고
금남축제의 공간에서 술한잔 식사한끼 같이하면서
주위에 들리고 스치는
떠나지 않고 살고 계신 그분들의 오늘곁에
함께 숨쉬며 이야기 나누싶시요.
그 얼굴이 비록 언젠가 슬픈 순례길에 마주했던 그 사람의
삼사 십년 전 어린 모습이 남아있더라도
시간의 선물을 꿈이라 생각하지 말고.
 
 
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 연작) 공연대본  
13장  금남축제, 채 못 나눈 이야기들은 (에필로그)
 
 그해 그 열흘간이 없었다는 생각으로
그 가정하에 작품을 구상하고
매년 5월, 그저 5월에 이 도시에서 다른 도시처럼 또 하나 축제로 열리는
금남축제란 이름의 축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5월 숨어 버린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아무일 없는 듯이 살아온 이 도시
그 38년후의 공간에서 그들과 같이
칠공팔공의 추억을 그려본 축제.
빛고을 사람들의 5월축제는 그렇게 진행됐습니다.
 
속내에 숨겨두었던 그 약속대로 마지막 날 ,
그해 5월26일 실렸던 중앙지문화면 기사 한 꼭지로
문득 시간을 돌이키고
어김없는 새벽4시 공연과
망월묘역,부활제로 이어지는 다시라기 굿.
 
이어 38년만에 다시 만나고 함께 살다 떠나가시는 벗들의 배웅까지.
 
5월은 그렇게 가고
우리가 살았던 그해 오월 금남축제의 이야기는
영상에 담았던 수십시간분량의 공연모습만으로.
돌아와 21편의 공연기록을 정리하고 다시 편집을 거쳐
160분분량의 5부작으로 기록됐습니다..
그 축제의 기록은 한편의 공연으로 다시 대본을 구성하고
혹시라도 다가올 공연동행자들을 모아
그해 38주년 5월 그 도시에는
살아남은 자들은 보지 못했던
이런 축제가 님들 곁에 있었다고 애기 들려줄 것입니다.
 
금남축제.
다음해 다시 마련된다 해도
38주년 그 처음 만남처럼 벅차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다시 만나자고 약속 해서 기다리고 다시 만나는
그 아름다운 시간은 이승과 피안을 오가면서 지속되겠지요.
 
38년전 그 모습과 이름만 남아있는 그분들의 모습을
38년후의 모습과 일상으로 스치고 뵐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축제.
5월은 38년이 지나고 아흔한번째 공연을 갖고서야 이렇게 조금
뭉게구름처럼 언약지어지고  우리곁을 떠났습니다..
 
akr
 
 
 
그해 금남축제(이름없는공연5월 연작) 공연대본   (덧글)
[그해 금남축제]의  공간에서 우리가 찾고 스쳐 만나던 분들의 나이와 이름들입니다.
김안부(74) 김경철(62)
 
정충길(78) 이세홍(76) 장정웅(76) 박기웅(75) 박기현(52)
김정선(60) 김인태(86) 김경환(57) 김재화(63) 이북일(65)
김만두(82)
 
윤성호(65) 박민환(64) 홍성규(71) 최승희(57) 홍인표(57)
조사천(71) 나홍수(72) 윤재식(69) 안병태(64) 조남신(90)
심동선(68)
 
김광석(58) 이재술(79) 김정(60) 민청진(58) 안병복(60)
황호정(101) 최미애(61) 임은택(73) 고규석(75) 민병열(69)
장방환(95) 안두환(84) 허붕(62) 문민규(56) 김함옥(56)
강복원(58) 김용표(61) 이종연(55) 박세근(73)
 
이경호(58) 정학근(68) 박인천(64) 장하일(76) 박금희(52)
임수천(77) 김상구(60) 채이병(63) 박인배(55) 양인섭(71)
기남용(60) 윤형근(59) 임균수(58) 김복만(66) 정찬용(67)
전영진(55) 김재수(63) 전정호(93) 조대훈(71) 김완봉(51)
김형관(60) 나종기(65) 김영철(남)
박창권(52) 김명철(103) 이성자(52)
 
김동진(85) 이매실(106) 김병연(56) 정민구(63) 김호중(64)
황성술(56) 서민오(62) 노경운(57) 김영선(63) 김현규(57)
 
손옥례(57) 양희남(68) 임정식(56)
 
왕태경(64) 박재영(64) 임종인(59) 조규영(76) 함광수(55)
김재평(67) 김오순(95) 김영두(54) 서종덕(55) 이명진(74)
이용충(73) 27/유진관(82) 28/손광식(58) 29/최열락(65)
 
박현숙(53) 고영자(60) 황호걸(57) 백대환(56)  김윤수(65)
박영철(65)  김춘례(56), 안병섭(60) 오정순(91) 김흥기(99)
장재철(60) 정지영(87) 진재서(64) 박종길(62), 한영길(68),
선종철(81)
 
전재수(49)
 
박연옥(87) 방광범(50) 강정배(66) 권근립(63) 김승후(57)
임병철(64) 이성귀(56) 송정교(88) 김평용(56) 조일기(70)
 
양동선(85) 오세현(63) 박용준(62) 유영선(65) 김동수(59)
김종연(57) 이강수(57) 박성용(56)  유동운(57) 안종필(54)
문재학(54) 윤개원(66) 민병대(58) 김명숙(52) 김부열(55)
조행권(76) 이금재(66) 염행열(54) 홍순권(57) 박진흥(59)
문용동(64) 서호빈(57) 박병규(58) 이정연(58) 김성근(61)
 
 
 
 
 
둥 end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