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대본
신영철 작 구성
5,18 민주항쟁 17주년추념식 초연:1997.5.18 여해문화공간
 
 신영철 작의 이 공연대본은 누구던 필요하신 분이 저자 사전승인없이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대본은 공연연출과정에서 얼마던 첨삭되고 각색되어도 가능하며 필요하시다면
트라마트루기로서 작가를 활용하셔도 좋습니다.
특히 마임이나 무용 퍼포먼스의 대본으로 많이 활용되길 바랍니다.
신영철 공연대본작품집 목록
예플공연비디오를 보급합니다
(무대는 1부 오늘같은밤이면의 무대를 재배치
,피아노위치 뒤로옮기고 교정부책상배치)  
 
41.
무대,전면왼쪽 신문사편집국
그 뒤쪽 흐름의 사무실
뒷면 오른쪽 어젯밤에 준비되던 그 상태의 제례상
  
42.(37과 같음)
서서히 빛이 들어오면
찾음.
무등의 어느 계곡.
두사람 제례를 위한 씻음.
다시 한 사람의 제례를 위한 씻음
 
43. (38에 이어짐)
앞쪽 제례음식을 만드는 공간으로부터
놓여진 제례상에 하나하나 마련한 음식을 가져다 놓는 사람들.
 
44.
스크린 내려오면 화면엔 [시민군 윤상원]이 투영된다.
이후 영화는 스크린에 공연내내 무성영화로 전편이 상영된다.
무등계곡 졔례를 준비하는 사람들 모습사라진다.  
 
45.편집국
 
(복잡하고 정돈안된 신문사 문화부의 철제책상과 의자들
의자엔 부장과 두명의 기자모습이 인형으로배치되어있고
그들의 일상적인 대화가 녹음으로들린다.
5년차기자인 신희은과 아르바이트여고생인 장금준이
간혹 드나들며 편집국의 일상을 표현한다)
 
1980년 3월 19일 - 오전 8시 10분경
  
희은 ,급하게 사무실로 들어온다. 어깨에 매는 가방과 정장차림.
들어오면서 부장 및 10년차 선배등에게 인사를 한다.
겉옷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고, 자리에 앉아 책상을 대충
정리한다.옆에 달려있는 책상서랍을 열고, 화장품을 꺼낸 후
얼굴을 정리한다.
얼굴,눈썹,입술 순으로 정리를 한후 머리등을 대충 매만지고,
이제서야 어제 쓰다만 원고를 들추면서 마저 작성을 한다.
작성을 대충 끝낸 후 원고지와 사진을 끼워 부장에게 다가간다.  
 
46.제대
(반복과 지속 공연의 끝부분 까지 무대점유)
 
제례상 앞에 나가앉는 두사람.
찾아오는 이에 대한 기다림이 시작된다.
이후 두사람의 기다림 앞에 관객들 내려와 분향해도 좋고
사람들 그곳에 와서 절을 해도 좋다.
공연이 끝날 때 이 부분은 무대에 자유공간으로 배치되어
오버랩된다.
 
47.흐름의 사무실
(17년이 지난 현재의 공간.금준의 사무실엔 친구인 은정이 간혹
찾아와 대화하며 금준은 흐름의사무실과 편집국 교정부 3개의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과거와 현재를 표현하곤한다)
 
금준 한손엔 서류들도 허겁지겁 들어와
가방을 의자에 던져놓고 컴퓨터를 켠다.
숨을 한 번 몰아쉬고 손가락을 꺾더니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서류를 한 번씩 쳐다보며)
 
금준- 주.. 간.. 인..권.. 흐...름.. 서울대 한 단과대학의 대학원생인   
정아무개(34)씨등 구아무개교수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해 검찰 조사
착수/국가 보훈처, 7월부터 전립선암과 버거씨..병등 고엽제
후유증에 추가 적용키로..../교육부, 북한 돕기운동과 관련
학교,학급단위나 전교조등 단체차원의 모금활동을 금지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전국시.도교육청에
보내/ 어휴,, 죽어라죽어라 하는구만.. 에.. 또..정부(화면보고)
5월..18일을 법정기념일로 제...정(다시한번 서류를 뚫어지게
보더니 눈썹을 찡긋하고는 다음으로 넘어간다)정부... 황장엽..
 
 
48,편집국.(일상의 소리 1들리기시작)
1980년 4월 10일 - 오전 9시 45분경
 
신희은 ,여러 원고들을 꺼내어 놓고, 바쁘게 원고를 마감하는
모습을 비춘다.
하나 작성하고 하서, 다른 하나를 마저 쓰고, 취재했던 기록등을
들추어 가면서,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몇몇 보도자료 등도 필요할 듯. 기사를 다 쓴 후 부장에게 넘기고,
부장으로부터 지시사항을 받는다.
미다시 등을 읽고(이 부분은 소리를 낼 수도 있을것 같음), 부장의
질문에 응수한다. (동작으로만 혹은 대사도 함께)
바쁘게 사진부로 뛰어간다.
(잠시 퇴장) 이후 잠시 후 몇장의 사진등을 들고 등장.
부장에게 보인 후 자리에 와서 클립등을 찾고 정리한 다음, 원고를
들고 퇴장.
 
 
49. 빈 편집국 (일상의 소리 2만..)
 
50 교정부-교정지읽는다.(1)  
 
51.편집국
 
(5월 3일 - 인터뷰, 취재차량, 사진기자 등의 섭외장면)
희은-전화걸고있다..
"여보세요? 남덕순씨..?? 아.. 예.. 저는 신아일보사 문화부에  신
희은이라고합니다.
 이번에 '아이다' 처녀출연 하시잖아요.. 그래서 이번주 저희
신문에 연재되는 '무대인'에 남덕순씨에 관한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언제쯤 시간이 되시나요? 그냥, 이제까지의 공부과정하고,
이번 작품에 관한 얘기들이죠, 뭐.. 시간요? 오늘중이었으면
하는데요.. 그러시면, 오늘 오후 1시쯤은 어때요? 예.. 그래요, 그럼.
숙대앞이요?? 그러 도록 하죠. 예.. 그럼, 조금 있다가 뵙죠. "
 
금준,들어와 문화부 각 책상에 통신지 놓고간다.
 
희은-  "예.. 저, 문화부의 신 희은인데요, 오늘 오후에
인터뷰건으로 해서 사진을 찍어야 하거든요..?? 예. 어.. 시간은
1시요. 뭐, 한시간도 안걸려요. 많이 안나가요. 예? 가깝죠.. 숙대요.
예? 어.. 얼마 안걸려 요.. 한시간이면 되는데요? 아니.. 그래도,
인터뷴데.. 저는 사진 잘못한다구요.. 시간 좀 잠깐 내세요..!! 예?
아니.. 아까는 될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아니, 그럼 문화부 기사는 안중요한가요?
됐어요, 뭐.. 몇장 찍을건데, 그거 하나 안해주면.. 아니, 됐어요. 예..
안녕히 계세요. "
 
(독백) 사진까지 내가 찍냐..
 
 "예.. 안녕하세요? 문화부 신희은인데요, 예.. 취재차랑 지원을
받으려고요.. 1시요. 숙대앞이거든요. 예? 어.. 저. 그래두.. 시간을
아끼려는 차원에서.. 힘든가요? 차로 가면.. 30분도 안걸리는데..
예.. 하긴.   알겠습니다. 버스 타죠.. 뭐.."
 
 (독백 : 전화기를 노려보며) 되는 일이 없어!
 
 
53.빈 편집국 (일상의 소리3)
 
 
54.흐름의 사무실
아침이다 밝은 조명켜지면 책상위에 엎드려 있는 금준.
(전화벨 소리)
금준-  (한참만에 수화기 들고, 하품하며) 여보..세요.. 응.. 응... 어.
(수화기 내려놓으면서 다시 고꾸라진다) 잠시 out..
 
55. 흐름의 사무실
(다시 조명 켜지면 책상 옆 의자엔 은정. 그 옆 간이대에서 녹차를
따르는 금준, 은정은 그런 그를 눈으로 좇으며 측은하단 듯이)
은정- 얘, 너, 그러다 시집가기도 전에 몸 축나겠다.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밤샘 작업을 하고 그러니...
금준:  (차를 건네며) 어구구, 그러잖아도 온몸이 쿡쿡
쑤신다..(기지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그나저나 상담소는 어쩌구 이른
아침부터....
은정- 응. 오늘은 오후 교대야.
금준- 애들 해결사 노릇은 잘 돼고?
은정- (한숨쉬며) 에휴, 이젠 손 들고 싶어. 진즉에 시집이나 갈
걸.
금준- 언젠 또, 상담하는 애들이 다 지 새끼라고하더니.
은정-그래 넌 신문장사는 잘 돼가니? 요즘 새로운 인권소식은
뭐야.
금준- 너 장사 하면서 이리 궁상맞은거 봤니? 휴.. 늘 그렇지 뭐.
아직도 우린 바른말 하고 살긴 힘들다는거. 데모한다고 학생들에게
총을 들이대질 않나.  
컴퓨터 통신 한 번 잘못했다고 색깔의심받아 콩밥먹을 뻔하고..
겉으로는 역사 바로세우기다 뭐다 하면서 과거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답습하고 있으니...
은정- 얘, 그래두 예전에 입도 뻥긋 못할 때 보단 조금은 살만
하지뭐..
금준- 글쎄, 아직도 뒤통수가 근질근질 한 것이 누가 날 겨누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장난기 어린 말에 은정 한 번 흘기고는 웃는다)
 
 
56.교정부-교정지읽는다(2)
 
57.편집국-빈책상 (일상의소리4 들린다.)
 
58.교정부-교정지읽는다(3)
 
59.편집국의 일상
1980년 5월 29일 - 오후 3시경
 
신희은 ,사전을 갖다놓고 외지를 번역중이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번역을 하면서, 기사를 읽는다. (연재기사 - 퍼스트 레이디)
잠시 기지개를 켠다. 하품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신기자의 책상을 본다. 신문지를 하나 든다.
(당시 광주에 관한 기사) 미다시 등을 읽는다.
조금 읽다가 책상에 다시 놓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온다. 지금
번역  하고 있는 잡지를 들어서 본다. 신기자의 책상을 보다가,
다시 자신이 작성중인 원고를 보고 쓴웃음을 지며 고개를 흔든다..
다시 자리에 앉아 번역을 계속한다.
 
60.편집국(일상의 소리 5)
1980년 6월 15일 - 오후 2시경
 
옆에 가득쌓인 책들. 그 책들의 앞부분만 들춰가면서 신희은
기사를 작성 중.
가끔 독백으로, "다음 책은 뭐냐.. (제목을 부른다.)"
등등으로 책 소개란을 작성한다. (책은 4권정도)
 
 
61.빈 편집국 (일상의 소리 6)
 
62.교정부-교정지읽는다(4)
 
63.흐름의 사무실
 
(금준,은정과 앉아 얘기하고잇다.은정 들으면서 간혹 고개를
끄덕이거나 긍정의 의사를 표현한다)
 
금준- 신문이나 언론이란건 언제나 그 모양이었어.사실 일제시대가
마감되엇을 때 일제안에서 만들던 신문들은 모두 폐간했어야 해.
80년 5월에 광주의 민주열기를 간첩의 소행이라 적고 시민들을
폭도라고 적고 보도하던 신문과 방송들
그리고 이후 5,6공에 충성하며 나서서 전두환칭송하기에 바빴던
신문과 방송들도 그 폭력의 역사가 밝혀진 그날,모두
자신폐간했어야 돼.
하지만 역사바로세우기 등으로 모두 죄가밝혀지고 재판받는 지금
언론은 어느누구도 그 죄에 대해 법정에 서거나 용서를 비는
경우가 없이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양 자신들이
칭송했던사람들은 같은 입으로 몰아세우고 있어.
이 신문들 좀 봐.그 당시 언론들이 이렇게 이폭력에 대해
눈감아주고 치켜세워주지않았다면 과연 군부독재정권이 군림할수
있었을까?
언론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하면서 어쩔수없엇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안해. 사람들이 폭력에 항거해 죽어가는 그때에 그들은
손가락하나 피흘리지않고 그저 검열에 복종하면서 신문사에
앉아서 가장 정의로운 것처럼 세상걱정만 해댔어.
그리곤 이튿날 신문이나 방송에 나와선 자신이 어젯밤 말한거와는
180도 다른 거짓말을 해댔지.
그게 지식인의 양심이며 고뇌의 표현인가?
그들은 자기주변의 한두명에게만 진실을 말하고 수백만명의
독자와 시청자에겐 거짓말을 했지.
그게 죄악인걸 알기나 했겠어.
아니 모르니까 지금도 뻐젓히 살아서 이렇게 전두환예찬론과
국민의 자유자제론을 써대던 기자들이 부장이나 논설위원이 되서
전두환정권창출이 잘못된 것이라고 눈하나 깜박안하고 쓰면서
가장 정의로운체 하는게 아냐?
난 간혹 이런생까도 해.지금도마찬가지지만 만약 우리나라에
언론이 없다면 오히려 벌써 훌륭한 민주화가 되엇을지도 모른다구.
언론이란 것이 진실을 왜곡하고 사실을 보도하지않으면서 오히려
진실된 여론의 형성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니까말야.
광주가 군화발에 짓밟힐 때 아예 신문이 나오지않고 방송이
없었으면 게엄사의 삐라만에 의존한 군부앞에서 최소한 진실의
왜곡은 없었을 것 아냐.        
늘 약자에게만 강하고 강한권력앞에선 해도 되는정도의 비평만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엔 개처럼 순해져서 앞서서 복종하며 민심을
호도하고 여론을 왜곡시키는게 언론이지.
참 어제오늘 언론인들이 프레스센타에 모여서 그 당시를
증언한다며?
당시엔 개처럼 복종하던 사람들이 역사의 증언자들처럼 진실을
밝힌다고 발언들을 하겠지? 그럼 그 당시 자기들이 슨기사들은
뭐야.   
청문회증인들이 위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듯 오보와 허위기사에
대해서 더큰 책임과 법적구속을받아야하는거 아냐? 그 허위기사가
역사를 얼마나 후퇴시켯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거짓을 전했는데.
박홍신부도 릴附愎?엉뚱한 말에 대한 법적인 처벌을 받는데말야.  
           
 
 
64.편집국
1980년7월 6일 - 오전 8시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인사를 한 후 자리
뒤에 우산을 펴서 말린다. 화장을 고치는 일상을 반복한 후,
자리에 놓인 잡지쪼가리를 본다. 몇장 들추다가, 부장에게 질문
 
 "이거 뭐예요? 부업요? 그거..계속 해요? 잡지 그냥 베끼는
거잖아요.  이번엔 또 뭐예요? 양초공예...?? 할것두 많은데.. 예..
예..
알겠습니다.."
 
투덜거리면서(행동으로 표현 - 책을 탁소리가 나게 놓는다거나,
신경질적으로 볼펜을 꺼내든다) 잡지쪼가리를 정리해서 작성한다.
 
 
65.교정부,교정지를 읽는다(5)
 
66.편집국
1980년 8월 19일 - 오전 11시
 
조금은 화려한 정장을 입고 있다.
잡지들을 들춘다. 의류다루는 방법 등과 음식에 대한 기사들을
찾는다. 몇개를 오려서, 부장에게로 들고간다.
  
  "저.. 여성란에 올릴건데요, 좀 보세요. '유행지난 의복손질
요령'하고, 금주의 식단으로 '모듬 야채튀김'을 하면 어떻까
해서요.
괜찮죠? 예.. 내일자로 올리죠. 예..?? 아.. (웃으면서) 옷이요??
어.. 저.. 오늘 패션쇼가 있거든요. 예.. 급하게 연락이 와 놔서..
예.. 호주대사관에서 하거든요. 저.. 하얏트 호텔요. 예.. 아..
저.. 그런데요, 저도 취재라고 하면서 간신히 얻어서요.. 저.. 힘들것
같은데요.. 죄송해요.. 대신, 다음에 더 좋은 쇼 있으면 표 드릴께요.
오늘은 취재라서.. 예.. 죄송합니다.. "
 
자리로 온다.
 
67.편집국 (일상의 소리 7)
 
68.흐름의 사무실
 
금준- 결국 언론은 정의와 양심을 소외시키는 범죄집단의 역할을
하고도 그죄를 뉘우치거나 재판받지않는 유일한 집단인 것 같아.
권력이 바뀌거나 정권이 몰락해도 언론만은 남아서 하룻만에
다른옷을 갈아입고 언제그랫냐는 듯이 어제하던 말을 180도
바꿔서 다시 그 당시의 정권에 적응하는 간신같은 존재지.
언론투이를 말하지만 그건 일부 언론노동자들의 얘기고 신문이나
방송의 사주입장은 언제나 당시 세력자의 편에서지.
근데 재미있는건 그 간신들의 우매한 용기야.
하다못해 기업이나 정치계의 비리는 증거찾기에 힘이들어 그들이
발뺌이라도 할수있지만 언론은 이렇게 들쳐보면 모두 나오쟎아.
즉 그들의 거짓말은 이렇게 기록되어있어서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물안에 담기는대도 뻔뻔스럽게 행동하며 범죄에대한 인식조차
못한다는거야.
예를 들어 여기 광주시민을 폭도라고 말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사뒤에 아무개기자라고 당시 신문에 적혀있고
[전두환영웅만들기]나 [원로를찾아서]등에서 보는 시루에
아부하는 충성스런 기사나 기회주의자들의 이름과 사진이 이렇게
아무아무게교수 혹은 아무개 목사등 찾으면 바로바로 나오쟎아.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 이 윤종보기자 같은 사람은 요 며칠전
와선  전노재판땐 뉴스시간에 나와서 자신이 영웅시해 소개했던
전두환과 5공에대해 비판을 서슴치않쟎아.
자기같은 사람이 전두환을 영웅만들어 독자에게 소개하지않앗으면
그가 대통령이되고 국민투표에서 95%이상의 찬성을 얻어 5공이
생겨나기나 했겠어?         
허긴 그당시 언론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 정계에 진출했지.
내가있던 신아일보에서도 김길홍부장 이긍규차장 등  당시
정치부에서 5공생성을 오도하던 사람들이 바로 민정당에
들어가더라.  
 
 
69.교정부-교정지를 읽는다(6)
 
 
70.편집국(일상의 소리8)
1980년 9월 3일 - 오전 9시 30분
 
신희은 들어와'진귀한 기록사진'에 낼 사진들을 챙겨본다. 많은
사진더미들.
그 중에서 4개정도를 골라낸다. 아래에 사진설명을 단다. 사진과
설명을 뭉쳐서 부장에게 준다.
 
 
71.편집국
1980년 10월 25일 - 오후 2시경
 
인터뷰가 거절되어서 따지는 모습과 결국은 전화인터뷰를 하는
모습.
 
 "... 아니.. 그게 말이 되요? 양교수님하고 인터뷰를 하겠다고 어제
말씀  드렸고 어제 힘들어서 그럼, 오늘하자고 했더니, 또 무슨
일이 있으신거예요? 예? 미루자구요?? 이봐요. 나는 양교수님과
날짜잡힐 때까지 한가하게 그냥 잇는 사람인줄 아세요? 저도
취재할거 많다구요. 아니요, 시간이라봐야 얼마 안걸리니까..
그럼, 지금 계세요? 왜긴요?? 직접 못뵈면 전화로라도 인터뷰를
해야죠? 예.. (잠시 기다린다) 여보세요..?
아.. 예.. 양교수님이세요?
인터뷰 하기가 힘드네요.. 예.. 저.. 이번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공연 있으시죠? 예.. 그럼.. 질문부터 하죠.
이번 공연을 하시게 된 계기는요? 예.. 예... 아.. 그러시군요.. 예..
어..  그럼.. 이번에 하시는 작품들은요? 잠깐만요.. 조금 천천히요..
예..
이백의 야시 세 수.. 그리고? 레이디 화이트... 예.. 오페라요.. 예..
중국민요요.. 저.. 레이디 화이트가 뭔가요? 예.. 예..."(이쯤에서
조명 서서히 아웃)
  
 
72.편집국(일상의소리9)
 
 
73.흐름의 사무실
 
은정- 그래서?! 암호놀이를 시작했단말야?
금준- 응,나두 첨엔 몰랐었어.기협소속기자들은 5,18이후
태업투쟁으로 기사작성을 거부하고 있었지.하지만 그런다고 신문이
안나오는 건 아니쟎아?.
오히려 부장과 중견기자들이 쓸데없는 내용없는 기사들로 지면을
메꾸고,그래서 알려야할건 안알리고 오히려 게엄사의 대변지같은
역할만했지.
그런데 문화부의 신기자가 갑자기 기사를 쓰기 시작한거야.
5월 27일 광주에서도청이 함락되던 그날에 쓴 연극기사였는데
[블안정한 속에서도 공감짙은무대들]이란 제목의
4면톱기사였어.
시청 언론검열단에 다녀온 그는 내심 흐뭇한 미소마져 짓더라구.
사실그날 그 기사가 나가자 다른신문의 젊은 기자들이 신기자에게
항의전화까지왓어. [너마져 배신하냐..]뭐 이런내용이엇지.
첫줄에 [극소수불순분자들에 의해 야기되는...]으로 시작되는 그
기사는 얼핏보면 계엄사의 입맛에 맞는 기사였지.
당시에 게엄사는 광주항쟁을 폭도라고 부르며 그것을 극소수
불순분자들의 소행이라고 언론에 유포시켯거든.      
근데 그 타사동료기자의 전화를 받는 신기자는 전화로이러더라구.
[너두 광주가 극소수불순분자의소행이라고 생각하니? 너두알잖아?
전두환일당이 바로 극소수불순분자라는걸.]그리곤 그 기사를
찬찬히읽어보라고 그러는거야.
거긴 대머리에 여덟 개 발달린 문어가 용왕에게 [문어
너는너무과격해]하고 말들으며 긇는물에 데쳐져 죽는다는
내용도잇고 [폭력으로 흥한자는 폭력으로 망한다]는 내용도
있었어.
시청검열단의 보안사장교들이 첫줄이 [극소수불순분자..]로
시작하니까 자기편으로안데다가 단순한 연극기사인줄 알고 그냥
넘어간거지.
사실 그당시엔 감히 대머리란 말도 신문에 나오면 삭제해버렷거든.
만화가 안의섭씨가 신문만화에 대머리를 그렷다가 두거비만화가
중단됐고 코미디언 심철호씨는 주걱턱이란이유만으로 방송출연을
못했으니까.     
그게 은유로된 기사의 시작이었어.최소한의 알릴수있는단어나
어휘만이라도 신문지면에 담아 독자에게 상징적으로라도
알려야겠다는 암호놀이같은거였지.
 
 
은정-은유로 된 기사.하지만 그렇게 은유로 쓴기사가 시민들에게
전달이 되엇을까?
 
금준-글쎄? 하지만 난 그것이 적지않은 사람들에겐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어떤 조그마한 역할은 햇다고 봐.
동아방송음악프로의 DJ를 맡고있던 작가 김홍신씨는 생방송중에
상징처럼 최근 같은단어가 다르게 쓰이면서 왜곡되어 쓰이던
단어의 진실을 다시찾아준 경우를봤다는식의 코멘트를 하기도했지.
그 [극소수불순분자.]의 얘기였지.
 
이후 신아일보가 폐간될 ㄸ까지 문화면에선 그런 식의 은유로 된
기사를 자주 볼 수 있었어. 샤르트르의 무덤없는주검이 인용되고  
굳이사람들이 밧줄에 묶인 공연사진을 싣기위해 조그마한
이벤트공연을 기사화하기도하고 민중의식을고취시킨 허균의
생각이나 단재 신채호의 사상 등을 찾아서 기사화하는 것도 그런
은유의 하나였어.
씨알의 소리가 10주년을맞을 땐 검열단에서 기사의 3분의2가
짤렸지만 그걸 각오하고 써낸 기사여서 발행인 함석헌님의 이름이
한자도 안남고 삭제당한 기사안에서도 [날 수 있을 때
까지날기위한연습이라도 하기위해 씨알의 소리를 만든다]는
문장만은 살려서 통과시켯지.
80년가을 난 그날 그 기사를 읽으면서 너무도 큰 희망을 얻었었어.
   
은정- 하지만 그 은유로 쓴 기사가 세상을바꾸진 못했잖아.
기사는 직설적으로 알려야하는게 아니야.그렇지않으면 아예
신문을만들지말던지.     
금준- 허긴그래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었어. 너도
알다시피 그런일이 어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니. 당시엔
시청에언론검열단이 있어서 기사한자한자를 보안사장교들이
검열을 한후에 지면에 담을수잇엇거든. 사실 그런 상태에서
간접적인 표현자체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구.
은정- 하지만 그 은유로 쓰여졌던 기사들을 어느 누가 얼마나
알아줬겠니. 혹 누군가 그 암호를 눈치챘을지언정 그것이 당시
고립된 광주항쟁을  알기에는 무리였을거야.
금준- 하지만 17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이라도 충분히
의미있었다고 생각해. 최소한 아무것도 쓰지않거나 아에
왜곡된기사만 쓰면서 남핑게대는 다른기자들에 비해선.  
하지만 간혹 그는 자신이 기자이면서도 단지 은유적인 말로 밖엔
표현할 수 없음이 스스로 죄책감을 안고 있었어.
그는 철필과 등사기를 갖고서도  진실을 알리려 노력햇던 당시
광주에서 지하언론작업을 한 사람들 얘기를 하면서 자신들이 단
한 장의 진실한 신문도 못만들고 그 시기를 보낸 것은 엄청난
죄악이라고 했어.
유신시대를 대학에서보낸 그가 꿈에 그렸던 언론에 들어와 막상
역사의 소용돌이안에 참용기를 모아야했을 때 이른바
최고지성인들이란 언론선배들과 동료들의 비굴함과 용기없음을
비관하면서말야.
결국 그날의 그들의 비굴함은 광주로 대변되는 참된민중항쟁의
용기들을 소외로 몰아갓고 그 죄악의 산물로 광주는 지금까지도  
소외안에 남은거지.
이 편지처럼 말야.
 
은정- 이 편지는 누구의 거니?
금준- 그가 광주의 짐을 안고 살 때, 컴퓨터통신을 통해 만난
이로부터 받은 메일이야.
당시 도청에서 함꼐 싸웠던 그는 현재 광주 어느 신문사의
논설위원이래.
읽어 봐.
 
은정-편지를 읽는다.
 
광주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고맙네요.
모두들 말로는 관심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게 부담이었든, 혹은 잘못됐다는 비판에서든..
어쨌든 광주는 외롭습니다.
그 책임이 일차적으로는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있겠지요.
그러나 그 책임의 일부는 그런 광주를 비판하는 방관자들에게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외골수로만 가는 광주를 비판만 하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그 아픔 속에 함께 하는 자세로 설득하려는
노력은 없습니다.
 
문제는 애정이죠. 애정이 있으면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광주를 포위하고 있는 이 철벽같은 장벽을 허물어
뜨릴려고 하면 할수록
이 벽은 마치 늪에 빠진 물체가 허우적 거릴수록 더욱 빠져들듯
두터워짐을...
 
마침내 구경꾼은 늪에 빠진 생명체를 구하기를 포기하면서...
나로선 어쩔 수 없었어....이렇게 말합니다......
80년 5월에도 그랬죠? 아마?
 
정말이지 광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이란 ....
무슨 천형을 짊어지고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깊습니다.
때로는 광주에서도 [에이 언제 우리가 남한테 기대고 살았냐...
우리끼리 올바르면 됐지....]
이런 식의 반응이 주류를 형성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입장에 반대합니다.
우리 스스로 정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5월항쟁기간에 느꼈던 고립으로부터 오는 공포감에서
여전히 헤어날수 없기 때문입니다.
 
16년전 오늘 광주는 작은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나중에야 어찌될망정 우린 계엄군의 퇴각을 환호했습니다.
나는 도청에 들어가서 붙잡혀온 공수부대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생각 같아선 그냥 그 자리에서 총살이라도 시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때 우린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선 안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성난 군중들은
그를 제물로 삼기를 원했지만 만류했고,
투쟁의 대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판 처음 만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무장한
채였죠.
해방기간 동안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항상 우린 고립감에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서 고립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공포의 실체를 맛보았습니다.
 
물론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닫고......
책속에서 만나는 공포가 아닌 우리 앞에 가로놓인 공포감은
대단히 실질적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파멸될 수도 있고, 모든게 한꺼번에 끝나버릴수도
있는...
 
16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보면 참, 역사란 무심한 거구나 싶습니다.
진실은 왜곡되고...심지어는 희화화되고....
광주의 진실은 빛이 바래고 이제 누구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
그런 흉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원합니다.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재미를 원하고, 뚜렷한 논리적인
상징을 원하고...그런 식으로 투쟁의 진실은 형해와되고....
이제 모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80년 5월 고립된 광주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다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십수년간을 그 문제에 매달려왔습니다. 고립은
공포다....
어떻게든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그건 우리에게 논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 점에서 저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내부건 외부건 결과적으로 고립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제게 정의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고립을 해소시켜줄 수 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정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정의가 그 자체로서 외롭고 고립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저는 언제라도 변절? 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런 저런 문제를 생각해보는 군요.
예기 님의 끊임없는 진지함에 이끌려 새삼 이런 상념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74.교정부-교정지를 읽는다(7)
 
75.편집국
1980년 11월 20일 - 오후 3시경
  
친구와의 전화통화 - 곧 있을 언론통폐합에 관하여.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다. 친구와 전화..
 
 ".. 그래.. 그래서 요즘 '아듀 80'이라는 제목으로 년말에나 있을
기사를  쓰고 잇다니까.. 그래.. 참. 내.. 우리가 얼마나 자기 대통령
만들려고 띄워줬냐? 그래.. 쓰는 사람들도 속이 뒤집혔었다구..
그래.. 이제와서 배신이야.. 배신이.. 완전히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니까.. 멀쩡히 있는 신문사를 왜 없애는거야? 그래..
경향신문에 가도 별거 있겠니? 가봐야.
아니.. 거기에도 문화부기자가 있을거 아냐. 부장이 제일 불쌍하지..
응.. 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뭐.. 경제지로 많이들
가더라구.
처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있잖아.. 광주말야.. 그래.. 자기한테
반대한다구 사람들 그런식으로 죽여놓고.. 뭐? 도청하라지! 직장도
없어질 판국에 이제와서 무슨 상관이냐? 갑갑해.. 하여튼.. 우선
사표를 쓰고 경향신문사에 입사지원서를 내란다. 이게 뭐니?
하여튼.. 응?
어.. 있어.  대단한 사람이지. 끝까지 버틸 생각인가봐. 첫마디가
그거더라구.  '전 안씁니다. 일신상의 이유가 없는데 무슨
사푭니까?' 와.. 대단하더라구. 응? 그래.. 휴.. 답답하지.. 짤릴걸
알고서도 이렇게 기사를 쓰고  앉아있으니.. " (조명 서서히 아웃)
 
76.편집국(일상의 소리10)
빈편집국,
 
 
77.흐름의 사무실
금준 들어온다. 한손엔 편지봉투
금준-  누구지?(발신지를 유심히 본다. 이윽고 희색이 만면)
기사거리구나.
(봉투를 황급히 열어본다. 따로 접힌 편지한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우연히.. 그분의 소식을 접해.... 너에게 전한다. 아울러
광주국제인권캠프  소식도.....(읽는소리 작아지며, out)
은정- 준비는 다 됐니?
금준- 뭐 준비랄 것 까지야...
은정- 그분 만나게 될지도 모를거라면서.....어떻게 살고 있을까?
금준- 작년에 참석했더라면 그때 뵈었을텐데...
은정- 인권캠프라... 5,18행사에 하나로 열린거니?
나도 잘 몰랐던 일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행사가 열렸는데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더구나.
금준- 나도 컴퓨터통신에 인권소식을 통해서 들은게 다야. 하지만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계각국에서는 광주인권캠프를 더 잘알고
있어. 지난해 캠프 이후 시민연대에서 인터넷에 싸이트를 개설해서
이후 활발한 정보교환과 자료를나누고 있거든.
그분 얘기론 5월광주는 민주화를 열망하고 픽밥받는 셰계인들에겐
하나의 상징으로 존재한데.
지난해 동티모르의 여학생이 인권캠프에 참가해서 동키모르의
민주화운동을 알리고 간후 그것이 인터넷을 통해 각국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소개되면서 동팀모르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는 신부님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것도 하나의 예지.
은정-(고개를 끄덕인다)
금준- 이제 5월광주는 전세계에서 조건과 형태는 다르지만 인권과
평화가 침해되는 사람들에겐 구도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이제 광주는 한 도시명으로서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폭력과 부정에
항의하여 목숨을 바치는 민주주의적 시민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뜻하는 추상명사가 되고있어.다만 우리에게만 정치적 혹은
다른여러 이유로 이재의님의 글에서 보듯 소외와 단절의 도구로
그대보다 더한 아픔으로 존재하는거지.   
은정- 우리가 그렇게 모르고 있었다니...
만회할 길이 있을까?
참. 기차시간에 늦겠다. 몇시차랬지? 나도 같이갔으면 좋겠는데
같이못가는게 아쉬워.
금준- 일부러 밤차로 비둘기호표를 끊었어. 남행열차 안의
사람들을 보다 가까이 접하면서 그곳으로 가려구.
 
 
78.남행열차
 
편집국 열차안으로 바뀌고 거기 금준 타고 있다.
금준-편지를 꺼내읽어본다.
 
1980년. 그때  
사진하나 기사 한자한자  
시청언론검열단을 통과해야만 기사는 신문에 실릴 수 있었어.
단 한자도 그곳을 피해갈수 없었지.
 
세상은 뒤바뀌고있다 했어.
사람들은 서울의 봄을 뒤로하고
잘보이지않는 폭력집단의 손길 안에서
재가 되어가고 있었던 거야.
 
우린 편집국에서 그걸 다보고 있으면서 말하지 못했어.
그날도 우린 엉뚱한 기사로 잘 짜여진 신문을 발행했고
뒤에서 쓰지 못한 얘기로 나라걱정만 조금했던 거야.
 
그게 고작 지성인이며 언론인이었어.
비굴한 인간들.
 
선배들은 굴절되면 너만 손해라고 얘기했지.
잘 견디고 살아남아서 나중에 증언하라는 식의 충고가 고작이었어
현실에 타협하다 기회를 보아
그들이 힘을 잃으면
튀어나와서
그들의 악랄함을 고발하고 나도 피해자였노라 얘기하는 것이
언론의 속성인가?
 
광주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우린 고작 기사안쓰기나 출근투쟁 등으로
양심적(?) 언론인의 체면을 유지하려했어.
 
하지만 보다시피 우리가 쓰지않아도 데스크는
열심히 통신지 잡지 오려서 신문을 만들어냈어.
 
정말 쓸데없는 기사들만이 모여서 지면을 채우고
정작 우리가 알려야할 것은 아무 것도
신문에 나오지 않았어.
 
그래도 아무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결하거나 분신하는 기자나 언론인은 없었어.
 
기사를 안쓴다는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결국 해야할 것은 언론검열단의 눈속임을 해서라도
무언가를 은유로라도 알려야 옳은 것이 아닌가?
 
암호놀이가 시작됐어.
자 이제 시청검열단에 출근하는 저 바보 보안사소위와 나의
암호놀이를 시작하자.
너의 철두철미한 독재수호적인 선입관을 이용하여
나는 지면에 세상을 알릴 수 있다.
네가 생각하는 단어와 나의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진실을 뒤바궈 전달해 낼 수도 있다.
 
나는 다시 적극적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어.
데스크에 앉은 부장은
신아일보및 타사의 다른 동기들이 모두 기사를 안 쓰고
부장, 차장들이 모여 휴지 같은 신문을 만들고 있을 때
내가 다시 하루 몇 건씩의 기사를 취재해서 써 갖고 오자
그냥 기분이 좋았어.
 
하지만 기사는 이제 은유로 쓰여져서
우선 검열단의 보안사장교를 속이고
다시 데스크의 무미건조한 두려움을 속이고
동료기자들로부터 기사 씀에 대한
항의 어린 불평마저 들으며
숨은 암호를 찾아 읽을 수 있는
독자를 향해
쓰여지기 시작했어.
그게 최선이었어.
 
하지만 아무것도 막지도 바꾸지도 못했어.
고작 그게 전부였어.
그게 최선이었을까?
 
옆자리에 졸고있는 남자,술에 취해 금준의 어께에 부딪긴다.
앞자리엔 수아 그리고 그의 친구
둘은 조그많게 연주하며 노래한다.
 
79.영상-두사람의 인터뷰 그리고 영정들 계속된다..
 
80.제대-
여인 찾아온다.
제문을 읽고 소지한다.
그리고 흐느껴 통곡한다.
 
81.영정들 그 이름과 생년월일 직업 묻힌곳
그리고 사인들을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함께했던사람들 하나하나 제대 앞에가 분향한다.
 
막  
신영철 구성연출,예기플라타너스공연작품집..예플5월연작 51817 후이넘에서돌아와2-광주 잊지마세요 파람  
겨울여행2  책방이있는골목풍경 시해의 그날(경복궁에서3부작) 사랑담론-영원 후이넘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