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가을-우금티(이름없는공연)118주기우금티 기일첫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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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가을
을미왜란부터 춘생문사건까지 1895년연작.
 
예기촬영공연사진집
후원 및 지원금 온라인입금구좌번호 국민은행 438901-01-174296(신영철)
copyleftⓒyegie 2017.9.24 
 

1895년가을-우금티(이름없는공연)118주기 우금티 기일에.

음력으로 읽고 양력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그 가을의 얘기.
팔월 스무날의 경복궁에서의 얘기에 이어 11월8일 공주 우금티 언덕에 다가가
홀로 제드리던 한 사람의 농민의 모습찾아 다가간 12월4일.
1주기되던 그 날의 얘기 담은 118주기 그 날의 투시.
 
1895년 가을 그 30장중 21장을 도입부로 시린 바람이 가슴 아픈 그 언덕을 찾아
제 아닌 제를 드림으로  공연을 시작합니다.
 
공주 우금티 언덕 11월8일, 남 몰래 언덕에 올라온 한 사람이 보자기를 풀어
젯상을 차립니다.
고부에서 만석보를 허물고
백산에서 황토현에서 황룡천에서 전주성에서
죽창과 총포를 놓고 관군과 화해하던 전주화약의 기쁨도 잠시,
집강소,교정청의 약속도 무의로 돌아가고
끝내 평등하고 자유롭게 모두가 함께 사는 새로운 세상..
그 벗들과 함께 꾸었던 꿈.
지난 가을 이곳에서 관군과 일본연합군의 총칼에 쓰러지고
자네들 같이 예언처럼 노래했듯 1년지나 을미년 이 가을에 다시 되내여 봅니다..
갑오세 갑오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네.
몸은 활활 불타 재가 될 것 같은데, 가슴은 터져 갈갈이 하늘을 날 것 같은데....
온몸은 찢겨져 걸레가 되는 것 같은데.
갑오세 갑오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네.
순창으로 피해 재기와 거사를 꿈꾸던 녹두장군은 한신현과 김경천의 배신으로
피로리에서 체포되었고 지난 3월 손화중,최경선,김덕명,성두환님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파랑새가 되어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8월 일본인은 마침내 국모를 시해하였고
우리의 꿈을 공격하던 홍계훈과 관졸들마져
일인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하지만 님들의 창의의 꿈,이 가을에 이어 다시 사발통문을 썼습니다..
님들을 죽인 원수들과 같이 전주화약의 그 날처럼 화해하여
새로운 불의를 향해 창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염려치 마십시오.
결코 님들과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살아갈 겁니다.
 
그리고 제2장은
1895년가을 30장중 24장
달산에서 벗잃은 어느 농민군의 모습이 되어
서파 유필영의 의병지휘서를 읽어봅니다.

하늘은 푸르르지만 벗은 이제 곁에 없습니다.
황토현 길목에서 당신들을 다시 봅니다.
의병운동이 시작되고 이제 우린 또다른 세상을 그립니다.
하인 화(花)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얼굴빛이 검더라고 하니
몸이 피로해서 병이 난 것은 아닌가 걱정이다.
일전에 청송 사람에게 들으니 너희들이 지경을 통과하면서
군졸들이 민폐없이 조용히 지나갔다는
遠近 주민의 칭송이 자자하니 참으로 기쁘고 다행한 일이다.
이 곳에서 생각하니 너희들이 주둔한 지역은
험준하고 산으로 처지고 길마저 좁은 곳이니 잘 생각하여
작전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길 바란다.
네가 외지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을 것을 생각하니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급히 두어 조목을 써서 보내니 이 염려하는 말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무슨 일이든 남을 무시하는 언행은 삼가고
상대방의 일이 비록 맞지 아니하더라도
반드시 사연을 들은 후 천천히 말을 하여 설득을 하며
남의 앞에 나아가 언성을 높이지 않도록 하여라.
客陳에서는 절대로 자주 출입하지 말고 귓속말로 속삭이는 말은
삼가도록 하여라.
장수가 부임한 후에는 禮에 따라 한두 번 問候를 드리는 외에는
자주 친밀히 하지 않도록 명심하여라.
營中에서 軍官과 軍卒에게 한결같이 誠信으로 接待하여야지
혹이라도 지혜와 기교로서 다스려서는 안 된다.
무릇 다른 진영에 들어갈 때에는 먼저 군법을 물은 후에
主將을 대함에는 각각 예에 합당하게 하여
더욱 공경하고 言語 또한 자세하게 진술하여 誠意로서 남을 감동시키도록 힘쓰길 바란다.
군졸이 行軍하는데 禁할 것은 절대로 농민을 侵掠하지 말며
旅舍에서 宿泊할 때는 인원수를 기준하여 비용을 나누어 주고
조금도 민폐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
府에 들어가 邑을 지날 때는 먼저 군졸에게 명하여 발포를 하여
주민을 놀라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前程에서 留宿할 때에는 반드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먼저 路程에 보내
관사를 정하는 등 절차를 밟고 크게 위세를 부려 소란을 피워 놀라게 하지 말라.
아침 저녁으로 반드시 군졸을 위문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 감복하게 하며
병든 군졸에게는 더욱 긍휼을 더하여 옛사람이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어
죽을 힘을 다하는 것과 같이 하여라.
유숙할 때에는 마땅히 더욱 신중하고 치밀하게 하여 예상치 않은 재난에 대비하여야 한다.
이것은 兵家에서 이르는바 머무를 때는 반드시 견고하게 하라는 뜻이다.
공문 왕래는 절대로 나에게 쓰게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나이 젊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지 아니하여
군대를 이끌고 지경을 나섬에 있어
내가 拙하고 심약하다 하여 편안하게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가.
천만 경계하고 삼가서 군기를 패하게 하지 말자며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말게 하는 것을 깊이 바라는 바이다.
이때 삼가지 않으면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 곧 지극히 짧은 순간이다.
이에 간략히 조목조목 지시하니 때때로 살펴보아 명념을 더할 지이다.
 
비바람에 쓰러져 버린 대나무인형들.
가을들판에 젖어든 눈물,저녁즈음 언덕에 맴돌고.
하늘엔 눈이라도 곧 내릴 듯 서글픈 구름.
우금치 전적지라 이름지어진 이곳.
민중의 꿈이 이슬처럼 쓰러져간 이곳에서
118년이 지나도 이루지 못한 인간의 세상,죄스러워하며
대나무줄기에 피어낸 오색 지화로
님들이 그리던 아름다운 세상,그 곷밭을 만듭니다..
 
117년전 님들을 잃은 그 이듬해 1895년가을 이곳에 홀로 올라 남 모를 제를 올리며
벗을 그리워했을 누군가의 모습찾아
100년지나 우리도 오늘 이렇게 다가와 그립니다.
끝내 평등하고 자유롭게 모두가 함께 사는 새로운 세상..
그 벗들과 함께 꾸었던 꿈 돌이켜 되새기며..
2012년 12월 7일 금요일오후 12:34:37